조선시대 문인들의 우정을 엿보다
相離千里遠 相憶幾時休 | 서로의 거리 천 리나 머니 그리워하는 마음 언제나 그칠까? |
以我虛漂梗 憐君誤決疣 | 나는 부질없이 떠도는 신세로 그대가 잘못 혹을 째버림을 가엾게 여기네. |
靑春愁已過 碧海暮長流 | 푸르른 봄날은 시름 속에 지나버렸고 푸른 바다는 저물도록 길게 흐르는 구나. |
夢裏還携手 同登明月樓 | 꿈에서나 도리어 손을 잡고서 함께 명월루에 올라보세. |
世故殊難了 離愁苦未休 | 세상일 매우 이해하기 어려우니 이별시름 기어이 그치지 않네. |
緣詩君太瘦 隨事我生疣 | 시 때문에 그대는 너무 야위었고 일 때문에 나는 혹이 났구려. |
夜月誰同酌 春天獨泛流 | 달밤에 그 누가 술자리 함께 하랴. 봄날에 홀로 배를 띄웠다네. |
還朝知不遠 匹馬候江樓 | 돌아올 날 멀지 않다는 걸 알겠으니, 필마로 강의 누각에서 기다리겠네. |
그래서 『소화시평』 권하 90번은 두 사람이 함께 주고받은 시가 등장하여 그 당시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시를 통해 김석주는 포의로 어떤 일도 하지 않았던 반면에, 홍만종은 왜의 사신을 접대하는 관리로 동래에 파견되었음도 알 수 있다.
相離千里遠 相憶幾時休 | 世故殊難了 離愁苦未休 |
以我虛漂梗 憐君誤決疣 | 緣詩君太瘦 隨事我生疣 |
靑春愁已過 碧海暮長流 | 夜月誰同酌 春天獨泛流 |
夢裏還携手 同登明月樓 | 還朝知不遠 匹馬候江樓 |
교수님은 이 두 편의 시를 볼 때 각자를 따로 볼 것이 아니라, 두 시를 한꺼번에 같이 보는 게 이해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된다고 알려주셨다. 그건 각 구절이 그대로 답장 형식으로 대응되도록 시를 썼기 때문이다.
우선 1구에서 김석주는 ‘서로의 거리가 멀어 그리워하는 마음만 사무친다’고 말을 했다. 그에 대해 홍만종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 ‘세상일 맘처럼 안 되어 이별의 시름만 계속된다’고 승인해줬다. 이렇게 보면 확실히 홍만종은 ‘당신의 마음이 곧 내 마음입니다.’라는 마음이 읽힌다.
2구에서 김석주는 은근히 자신의 신세를 타령하는 마음이 읽힌다. 자신은 접위관이 되어 동래까지 와야 하는 떠돌이 신세인데도 홍만종의 혹을 잘못 째버렸다는 소식에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통해 은근히 ‘혹을 잘못 째버려 신세가 처량하다 해도 당신이 지금의 내 상황보단 낫구려’라는 심정이 들어 있다. 하지만 이에 질세라 홍만종도 2구에서 반전의 묘미를 선사한다. 즉 당신은 겨우 시 짓는 것 때문에 야위었을 뿐이지만, 자신은 관리의 일로 바쁜 나머지 혹이 났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통해 ‘어이 그런 섭한 말 마소. 당신은 겨우 시 짓는 것으로 야위었을 뿐이지만, 나는 일 때문에 혹까지 났으니’라는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2구는 마치 ‘누가 누가 더 불우한가?’를 겨루는 양상을 띠고 있어 재밌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3구에서 김석주는 ‘부질없이 봄날은 지나버렸고 푸른 바다는 해가 저물었음에도 길게 흘러간다’라고 표현하며 접위관의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걸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솔직히 ‘푸른 바다가 저물도록 길이 흐른다’는 표현은 그저 배경을 묘사하는 정도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교수님은 접위관의 업무를 보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걸 유추해서 생각해보면 왜 나라의 사신들이 계속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알려줬고 그건 자신이 그만큼 바쁘다는 걸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일 수도 있다고 알려줬다. 이에 대해 홍만종은 마치 「월하독작(月下獨酌)」이 떠오를 정도의 쓸쓸한 심사를 드러낸다. 달 뜬 밤에 함께 술 잔 기울일 친구도 없어 봄날에 쓸쓸이 배를 띄웠다고 하니 말이다. 김석주가 ‘봄날이 지난 줄도 모르게 공무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자, 이에 대해 홍만종은 ‘그대 어여 한양에 와서 나와 배 띄워 한 잔하세.’라는 답장을 한 셈이다.
4구에서 김석주는 ‘매우 바빠 동래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 꿈에서나마 함께 만나자구’라는 벗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홍만종도 그 마음을 받아 ‘돌아올 날 머지않았으니, 그대 올 때 강의 누각에서 기다리겠네’라고 받았다. 김석주는 꿈에서나 보자고 한 것을 홍만종은 꿈에서 말고 현실에서 꼭 만나자는 말로 받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읽고 보니 마치 두 사람의 우정이 지금 뭇 연인들의 사랑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은 ‘사랑’과 ‘우정’을 확 나누고 둘 사이엔 엄청난 감정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상 조선 시대엔 둘 사이의 간극이 크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우정이야말로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연암은 「회성원집발(繪聲園集跋)」에서 벗을 ‘제2의 나[第二五]’라는 말까지 쓰지 않았던가. 이번 편은 그들의 우정이 얼마나 깊었는지, 그리고 서로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여실히 볼 수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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