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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90. 조선시대 문인들의 우정을 엿보다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90. 조선시대 문인들의 우정을 엿보다

건방진방랑자 2021. 10. 30.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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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인들의 우정을 엿보다

 

 

相離千里遠 相憶幾時休 서로의 거리 천 리나 머니 그리워하는 마음 언제나 그칠까?
以我虛漂梗 憐君誤決疣 나는 부질없이 떠도는 신세로 그대가 잘못 혹을 째버림을 가엾게 여기네.
靑春愁已過 碧海暮長流 푸르른 봄날은 시름 속에 지나버렸고 푸른 바다는 저물도록 길게 흐르는 구나.
夢裏還携手 同登明月樓 꿈에서나 도리어 손을 잡고서 함께 명월루에 올라보세.

 

 

世故殊難了 離愁苦未休 세상일 매우 이해하기 어려우니 이별시름 기어이 그치지 않네.
緣詩君太瘦 隨事我生疣 시 때문에 그대는 너무 야위었고 일 때문에 나는 혹이 났구려.
夜月誰同酌 春天獨泛流 달밤에 그 누가 술자리 함께 하랴. 봄날에 홀로 배를 띄웠다네.
還朝知不遠 匹馬候江樓 돌아올 날 멀지 않다는 걸 알겠으니, 필마로 강의 누각에서 기다리겠네.

 

그래서 소화시평권하 90은 두 사람이 함께 주고받은 시가 등장하여 그 당시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시를 통해 김석주는 포의로 어떤 일도 하지 않았던 반면에, 홍만종은 왜의 사신을 접대하는 관리로 동래에 파견되었음도 알 수 있다.

 

相離千里遠 相憶幾時休 世故殊難了 離愁苦未休
以我虛漂梗 憐君誤決疣 緣詩君太瘦 隨事我生疣
靑春愁已過 碧海暮長流 夜月誰同酌 春天獨泛流
夢裏還携手 同登明月樓 還朝知不遠 匹馬候江樓

 

교수님은 이 두 편의 시를 볼 때 각자를 따로 볼 것이 아니라, 두 시를 한꺼번에 같이 보는 게 이해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된다고 알려주셨다. 그건 각 구절이 그대로 답장 형식으로 대응되도록 시를 썼기 때문이다.

 

우선 1구에서 김석주는 서로의 거리가 멀어 그리워하는 마음만 사무친다고 말을 했다. 그에 대해 홍만종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 세상일 맘처럼 안 되어 이별의 시름만 계속된다고 승인해줬다. 이렇게 보면 확실히 홍만종은 당신의 마음이 곧 내 마음입니다.’라는 마음이 읽힌다.

 

2구에서 김석주는 은근히 자신의 신세를 타령하는 마음이 읽힌다. 자신은 접위관이 되어 동래까지 와야 하는 떠돌이 신세인데도 홍만종의 혹을 잘못 째버렸다는 소식에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통해 은근히 혹을 잘못 째버려 신세가 처량하다 해도 당신이 지금의 내 상황보단 낫구려라는 심정이 들어 있다. 하지만 이에 질세라 홍만종도 2구에서 반전의 묘미를 선사한다. 즉 당신은 겨우 시 짓는 것 때문에 야위었을 뿐이지만, 자신은 관리의 일로 바쁜 나머지 혹이 났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통해 어이 그런 섭한 말 마소. 당신은 겨우 시 짓는 것으로 야위었을 뿐이지만, 나는 일 때문에 혹까지 났으니라는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2구는 마치 누가 누가 더 불우한가?’를 겨루는 양상을 띠고 있어 재밌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3구에서 김석주는 부질없이 봄날은 지나버렸고 푸른 바다는 해가 저물었음에도 길게 흘러간다라고 표현하며 접위관의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걸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솔직히 푸른 바다가 저물도록 길이 흐른다는 표현은 그저 배경을 묘사하는 정도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교수님은 접위관의 업무를 보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걸 유추해서 생각해보면 왜 나라의 사신들이 계속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알려줬고 그건 자신이 그만큼 바쁘다는 걸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일 수도 있다고 알려줬다. 이에 대해 홍만종은 마치 월하독작(月下獨酌)이 떠오를 정도의 쓸쓸한 심사를 드러낸다. 달 뜬 밤에 함께 술 잔 기울일 친구도 없어 봄날에 쓸쓸이 배를 띄웠다고 하니 말이다. 김석주가 봄날이 지난 줄도 모르게 공무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자, 이에 대해 홍만종은 그대 어여 한양에 와서 나와 배 띄워 한 잔하세.’라는 답장을 한 셈이다.

 

4구에서 김석주는 매우 바빠 동래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 꿈에서나마 함께 만나자구라는 벗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홍만종도 그 마음을 받아 돌아올 날 머지않았으니, 그대 올 때 강의 누각에서 기다리겠네라고 받았다. 김석주는 꿈에서나 보자고 한 것을 홍만종은 꿈에서 말고 현실에서 꼭 만나자는 말로 받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읽고 보니 마치 두 사람의 우정이 지금 뭇 연인들의 사랑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은 사랑우정을 확 나누고 둘 사이엔 엄청난 감정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상 조선 시대엔 둘 사이의 간극이 크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우정이야말로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연암은 회성원집발(繪聲園集跋)에서 벗을 2의 나[第二五]’라는 말까지 쓰지 않았던가. 이번 편은 그들의 우정이 얼마나 깊었는지, 그리고 서로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여실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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