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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발승암 기문 - 10. 김홍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백동수 본문

책/한문(漢文)

발승암 기문 - 10. 김홍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백동수

건방진방랑자 2020. 4. 1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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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김홍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백동수

 

 

그런데 이 단락에서 연암과 문답을 주고받는 사람은 과연 누굴까? 앞 단락에 의하면 그는 본래 김홍연의 행적을 잘 아는 사람이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사람이 백동수白東修(1743~1816)가 아닐까 생각한다. 백동수는 서얼 출신의 무반武班으로, 이덕무의 처남이다. 연암은 35세 때인 1771년 과거를 완전히 포기하고 이 자와 더불어 명산에 노닐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용력이 절륜하고 무예에 출중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한미한 신분 때문에 몹시 불우하였다. 이 글은 1779년경에 쓴 게 아닌가 추측되는데, 당시 백동수는 건달 신세였다. 훗날 그는 무직武職인 장용영壯勇營 장교將校를 거쳐 박천 군수를 지냈다. 정조 때 왕명으로 편찬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조선의 무예를 집대성해 놓은 책는 그와 이덕무ㆍ박제가가 힘을 합쳐 만든 책이다. 아마도 그는 무예에 정통해 있었던 듯하다. 백동수는 비록 생애 후반에 말단 벼슬을 얻어 함으로써 형편이 다소 나아지기는 했으나 그전까지는 가난을 면치 못하였다.

 

과정록에 보면 백동수가 연암 앞에서 술주정을 부리다 볼기를 얻어맞은 일이 서술되어 있다. 이 인물의 개성이 이 일화에 잘 집약되어 있다고 판단해 아래에 잠시 인용한다.

 

 

백동수는 힘이 몹시 세고, 몸이 매우 날랬으며, 지략이 있었다. 를 갖춰 아버지(연암)를 섬기기를 마치 비장裨將이 장수를 섬기듯 하여, 어려운 일이든 쉬운 일이든 궂은 일이든 좋은 일이든 조금도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하루는 어디서 잔뜩 취해 갖고 와 아버지 앞에서 술주정을 했다. 아버지는,

자네 소행이 무례하니 볼기를 맞아야겠다!”

고 말씀하시더니 판자때기로 볼기짝 열 대를 쳐서 그 거칠고 경솔함을 나무랐다. 백군은 처음에 장난으로 그러시는 줄 여겼는데 나중에 그것이 꾸지람인 줄 알게 되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부터 백군은 감히 다시는 술을 마신 채 아버지를 뵙지 않았으며 사람들에게

내가 언젠가 연암공의 책망을 들은 적이 있소이다.”

라고 말했다 한다.

白博川東脩, 與先君同庚. 膂力絕倫, 精悍有瞻. 畧事先君執禮, 如褊裨之事主帥, 夷險燥濕, 少無憚勞.

一日從他醉歸, 使酒於前. 先君曰: “君無禮, 可受杖.” 以剪紙板, 打其臀十, 戒其粗率.

白君初以爲戱, 後乃知其誨責也. 自是不復敢被酒入謁曰: “吾嘗被燕岩公責矣!”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부질없는 짓

2. 가는 산마다 보이는 그 이름

3.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

4. 가뭄의 단비처럼 제공된 김홍연의 개인정보

5. 왠지 남 같지 않다 했더니

6. 왈짜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7. 이름이 곧 존재라는 착각

8. 이름이 남길 바라는 허망함에 대해

9. 이름에 집착하는 유교, 그 너머

10. 김홍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백동수

11. 9년 만에 실제로 만나게 되다

12. 늙어서도 이름에 집착하며 기문을 부탁하다

13. ()에 드러난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

14.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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