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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승암 기문 - 4. 가뭄의 단비처럼 제공된 김홍연의 개인정보 본문

책/한문(漢文)

발승암 기문 - 4. 가뭄의 단비처럼 제공된 김홍연의 개인정보

건방진방랑자 2020. 4. 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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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뭄의 단비처럼 제공된 김홍연의 개인정보

 

 

어떤 이가 본래 김의 행적을 잘 알아 나에게 얘기해줬는데, 그에 의하면 김은 곧 왈짜[각주:1]였다. 왈짜란 대개 여항의 허랑방탕하고 오활한 이들을 일컫는 말인데, 이른바 검객이나 협객俠客과 같은 부류를 말한다. 그는 젊은 시절 말 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무과에 합격했으며, 힘이 세어 범을 때려잡거나 좌우 옆구리에 기생 둘을 끼고 몇 길의 담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쩨쩨하게 벼슬자리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이 본래 부유하여 돈을 물 쓰듯 하였고, 고금古今의 유명한 서첩書帖과 좋은 그림, 칼이며 거문고며 골동품, 기이한 꽃과 풀 따위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어, 혹 하나라도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천금을 아끼지 않았으며, 준마駿馬와 송골매를 늘 좌우에 두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늙어 머리가 세었으며, 자루에다 끌과 정을 넣고 다니며 명산에 두루 노니는데, 이미 한라산에 한 번 올랐고 백두산에 두 번 오른바 그때마다 손수 바위에 자기 이름을 새겨 후세 사람들도 하여금 세상에 자기가 있었음을 알리려고 한다는 거였다.

或有素知金行跡爲道, 金乃濶者, 葢閭里間浪蕩迂濶之稱, 如所謂釖士俠客之流. 方其少年時, 善騎射, 中武科, 能力扼虎, 挾兩妓, 超越數仞牆, 不肯碌碌求仕進, 家本富厚, 用財如糞土, 傍蓄古今法書名畵, 劒琴彛器, 奇花異卉, 遇一可意, 不惜千金, 駿馬名鷹, 動在左右. 今旣老白首, 則囊置錐鑿, 遍遊名山, 已一入漢挐, 再登長白, 輒手自刻石, 使後世知有是人云.

이 단락에 이르러 글은 확 바뀐다. 앞의 123이 흡사 산수기에 방불한 서술이라면, 이 단락은 그와 달리 김홍연이라는 인물에 대한 서사敍事. 그래서 시냇물이 쭉 흐르다가 이 대목에 이르러 소를 이루어 잠시 구비 도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혹은 빠른 호흡으로 진행되던 이야기가 이에 이르러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느낌이기도 하다. 연암은 앞에서 김홍연과의 기이한 인연을 이리저리 서술했으나 김홍연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고 독자는 그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 연암이 이처럼 독자를 잔뜩 궁금하게 만들어 놓은 다음 이 대목에서 비로소 김홍연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고도로 계산된 글쓰기라 할 만하다. 금방 개략적인 정보라고 말했지만, 여기서 제공된 김홍연에 대한 정보는 충분한 것이 아니다. 연암은 김홍연을 잘 아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임을 밝히면서 김홍연의 인물 됨됨이 중 몇 가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가뭄에 단비라는 말이 있지만, 이 정도 정보도 독자로서는 고마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점은 이 단락에서 제시된 김홍연에 대한 정보가 세간 사람들의 에 비친 김홍연의 상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것은 대체로 외면적인 상이요, 이 외면적인 상에서는 김홍연의 내면 풍경 같은 것은 잘 확인되지 않는다. 이 역시 고도로 계산된 것이라 생각되지만, 연암은 이 글의 뒷부분에서 김홍연에 대한 내면 정보, 김홍연의 내면 풍경을 살짝살짝 드러내는 방식으로 글을 써 나가고 있다. 요컨대 김홍연이라는 인간에 대해 한꺼번에 말하지 않고 단락의 여기저기에 정보를 분산해 배치함으로써 독자가 외부에서 내부로, 개략적인 데서부터 정세精細한 데로, 먼 곳에서부터 가까운 곳으로, 행위로부터 마음으로 이동하며 김홍연을 이해하도록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글쓰기 책략에서 우리는 인간 본질에 깊숙이 다가가고자 한 연암이 노력을 읽을 수 있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부질없는 짓

2. 가는 산마다 보이는 그 이름

3.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

4. 가뭄의 단비처럼 제공된 김홍연의 개인정보

5. 왠지 남 같지 않다 했더니

6. 왈짜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7. 이름이 곧 존재라는 착각

8. 이름이 남길 바라는 허망함에 대해

9. 이름에 집착하는 유교, 그 너머

10. 김홍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백동수

11. 9년 만에 실제로 만나게 되다

12. 늙어서도 이름에 집착하며 기문을 부탁하다

13. ()에 드러난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

14. 총평

 

  1. 왈짜: 허랑방탕한 짓을 일삼는 난봉꾼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기생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거나, 각종 유흥으로 소일하거나, 협객으로 행세하면서 당시의 도시 공간에 독특한 존재 방식을 구축하였다. 조선 후기에 상업자본과 도시의 발달에 따라 유흥 공간이 생성ㆍ확장되면서 이런 유의 인간이 서식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다. 왈짜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으로는 판소리 열두 마당 중의 하나인 「왈짜타령」이 유명하다. 당시 무과에 급제했으나 벼슬자리를 얻지 못해 놀고 있는 사람을 ‘선달’이라고 불렀는데, 김홍연이 이에 해당된다. 김택영의 『소호당집韶濩堂集』에 실려 있는 「김홍연전金弘淵傳」에 의하면, 김홍연은 원래 개성의 부유한 양반집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독서보다는 기방妓房에 출입하는 걸 더 좋아했던 듯하고, 자식의 이런 잘못된 행실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그의 부친은 그로 하여금 무과에 응시하게 하였다. 하지만 김홍연은 끝내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지 못해 집안의 가산을 탕진하고 말았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김홍연은 원래 출신은 양반이었으나 실제로는 중간계급으로서의 삶을 살았으며, 협객의 부류였다고 생각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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