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뭄의 단비처럼 제공된 김홍연의 개인정보
이 단락에 이르러 글은 확 바뀐다. 앞의 1편과 2편과 3편이 흡사 산수기에 방불한 서술이라면, 이 단락은 그와 달리 김홍연이라는 인물에 대한 서사敍事다. 그래서 시냇물이 쭉 흐르다가 이 대목에 이르러 소沼를 이루어 잠시 구비 도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혹은 빠른 호흡으로 진행되던 이야기가 이에 이르러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느낌이기도 하다. 연암은 앞에서 김홍연과의 기이한 인연을 이리저리 서술했으나 김홍연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고 독자는 그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 연암이 이처럼 독자를 잔뜩 궁금하게 만들어 놓은 다음 이 대목에서 비로소 김홍연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고도로 계산된 글쓰기라 할 만하다. 금방 ‘개략적인 정보’라고 말했지만, 여기서 제공된 김홍연에 대한 정보는 충분한 것이 아니다. 연암은 김홍연을 잘 아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임을 밝히면서 김홍연의 인물 됨됨이 중 몇 가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가뭄에 단비라는 말이 있지만, 이 정도 정보도 독자로서는 고마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점은 이 단락에서 제시된 김홍연에 대한 정보가 세간 사람들의 ‘눈’에 비친 김홍연의 상像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것은 대체로 외면적인 상이요, 이 외면적인 상에서는 김홍연의 내면 풍경 같은 것은 잘 확인되지 않는다. 이 역시 고도로 계산된 것이라 생각되지만, 연암은 이 글의 뒷부분에서 김홍연에 대한 내면 정보, 김홍연의 내면 풍경을 살짝살짝 드러내는 방식으로 글을 써 나가고 있다. 요컨대 김홍연이라는 인간에 대해 한꺼번에 말하지 않고 단락의 여기저기에 정보를 분산해 배치함으로써 독자가 외부에서 내부로, 개략적인 데서부터 정세精細한 데로, 먼 곳에서부터 가까운 곳으로, 행위로부터 마음으로 이동하며 김홍연을 이해하도록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글쓰기 책략에서 우리는 인간 본질에 깊숙이 다가가고자 한 연암이 노력을 읽을 수 있다.
▲ 전문
인용
11. 9년 만에 실제로 만나게 되다
14. 총평
- 왈짜: 허랑방탕한 짓을 일삼는 난봉꾼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기생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거나, 각종 유흥으로 소일하거나, 협객으로 행세하면서 당시의 도시 공간에 독특한 존재 방식을 구축하였다. 조선 후기에 상업자본과 도시의 발달에 따라 유흥 공간이 생성ㆍ확장되면서 이런 유의 인간이 서식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다. 왈짜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으로는 판소리 열두 마당 중의 하나인 「왈짜타령」이 유명하다. 당시 무과에 급제했으나 벼슬자리를 얻지 못해 놀고 있는 사람을 ‘선달’이라고 불렀는데, 김홍연이 이에 해당된다. 김택영의 『소호당집韶濩堂集』에 실려 있는 「김홍연전金弘淵傳」에 의하면, 김홍연은 원래 개성의 부유한 양반집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독서보다는 기방妓房에 출입하는 걸 더 좋아했던 듯하고, 자식의 이런 잘못된 행실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그의 부친은 그로 하여금 무과에 응시하게 하였다. 하지만 김홍연은 끝내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지 못해 집안의 가산을 탕진하고 말았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김홍연은 원래 출신은 양반이었으나 실제로는 중간계급으로서의 삶을 살았으며, 협객의 부류였다고 생각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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