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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발승암 기문 - 11. 9년 만에 실제로 만나게 되다 본문

책/한문(漢文)

발승암 기문 - 11. 9년 만에 실제로 만나게 되다

건방진방랑자 2020. 4. 1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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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9년 만에 실제로 만나게 되다

 

 

그로부터 9년 뒤다[각주:1]. 나는 평양에서 김을 만날 수 있었다. 누가 그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김홍연입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의 자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대심! 발승암 아닌가!”

김군은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보더니,

어떻게 저를 아시지요?”

라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옛날 만폭동에서 이미 자네를 알게 됐지. 집은 어딘가? 옛날에 수집한 물건들은 잘 간직하고 있는가?”

김군은 서글픈 얼굴로 말했다.

가난해져 다 팔아 버렸지요.”

왜 발승암이라고 하나?”

불행히도 병 때문에 불구가 된 데다[각주:2] 늘그막에 아내도 없어 늘 절집에 붙어사는 까닭에 그렇게 자호自號하지요.”

그 말과 행동거지를 살펴보니 옛날의 모습과 태도가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젊을 적의 그를 보지 못한 걸 참 애석하게 생각하였다.

其後九年, 余遇金平壤, 有背指者, 此金弘淵也. 余字呼曰: “大深, 君豈非髮僧菴耶?” 金君回顧熟視曰: “子何以知我?” 余應之曰: “舊已識君於萬瀑洞中矣. 君家何在? 頗存舊時所蓄否?” 金君憮然曰: “家貧賣之盡矣.” “何謂髮僧菴?” : “不幸殘疾形毁, 年老無妻, 居止常依佛舍, 故稱焉.” 察其言談擧止, 舊日習氣猶有存者. 惜乎! 吾未見其少壯時也.

그 사이 9년이 흘렀다. 이 단락은 9년 뒤 연암이 김홍연을 평양에서 만나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이 대화를 통해 김홍연의 만년 모습과 그 쓸쓸한 내면이 그려진다. 연암이 대뜸 김홍연의 자를 부르며 대심! 발승암 아닌가!”라고 말을 건네는 장면에선 한편으로는 연암의 장난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암의 기뻐하는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비록 자기 혼자 그랬던 것이기는 하나 오랜 동안 그를 알아왔던 만큼 연암에게는 김홍연과의 이 만남이 몹시 반가웠을 법하다. 그래서 마치 친한 벗을 부르듯이 자호自號로써 그를 불렀던 것이리라.

 

하지만 김홍연이 연암을 알 리는 없다. 그래서 김홍연은 연암을 물끄러미 보다가 어떻게 저를 아시지요?”라고 반문한다. 이 단락 초입의 이 대화는 붓끝이 살아있고, 신운神韻이 생동한다. 말은 간략하지만 연암의 기뻐하는 얼굴과 김홍연의 의아해하는 표정이 생생히 재현된다. 그래서 독자는 마치 그 현장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상황의 기미와 인간의 심리를 극히 절제된 묘사로 예리하고 깊이 있게 포착해내는 연암 문장의 특징과 묘미가 여기서 잘 드러난다.

이어지는 연암의 물음과 김홍연의 답변 역시 절묘하다. 연암은 이 문답을 통해 김홍연의 현재 처지를 그려 냄과 동시에 김홍연을 둘러싸고 있는 서글프고 쓸쓸한 분위기를 통해 그 내면을 살짝 느끼게끔 만든다. 묘한 것은, 김홍연 스스로로 하여금 스스로에 대해 말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독자는 김홍연이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리고 집도 아내도 없이 절간에 붙어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김홍연이 왜 자신의 호를 발승암이라고 했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그러고 보니 발승암髮僧菴이라는 말은 머리 기른 중이 사는 암자라는 뜻이다. ‘발승髮僧, 머리만 길렀을 뿐이지 아내도 집도 없이 절에서 연명하는 자신의 신세가 중과 다를 바 없음을 자조해붙인 이름이리라. ‘은 흔히 사대부들이 겸손의 뜻으로 자신이 거주하는 곳을 ○○이라 이름하고 이를 자호로 삼곤 하였다. ‘발승암이라는 호에 보이는 자는 이런 용례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사대부들의 호에 보이는 자가 청빈과 겸손의 뜻을 붙인 것이라면, 발승암의 경우 자는 절의 암자를 뜻하는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김홍연의 이 자호 속에는 지독한 자조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고, 독자는 그 말뜻을 음미하는 과정에서 한 인간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보며 연민의 감정을 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단락은 앞의 편들과는 전혀 다른 정서와 미감을 자아낸다. 이번 편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전에 가졌던 유쾌한 마음이 싹 가시고, 왠지 서글프고 쓸쓸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연암은 이 단락의 끝에서 그 말과 행동거지를 살펴보니 옛날의 모습과 태도가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젊을 적의 그를 보지 못한 걸 참 애석하게 생각하였다(察其言談擧止, 舊日習氣猶有存者. 惜乎! 吾未見其少壯時也)”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김홍연은 늙고 병들어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협객의 풍모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연암은 그를 보며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지금도 저러한데 젊을 때는 오죽했을까. 그 걸출한 풍모를 못 본 게 한스럽다!’

 

우리는 이 단락에서 김홍연이 병으로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김홍연 자신의 말을 통해 알게 된다. 그것은 아주 완곡하게 표현되어 있어 무슨 장애이며 어느 정도의 장애인지, 그리고 신체가 얼마큼 손상되었는지에 대해서 통 알 수 없다. 왜 이렇게 모호하게 표현해놓은 걸까? 이렇게 묻는 까닭은, 장애에 대한 이런 표현 방식에 연암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연암은 김홍연의 장애에 연민을 느꼈고, 그래서 그것을 까발리지 않고 은근히 말하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연암의 속 깊은 배려다. 혹 누가 당신이 연암 마음속으로 들어가 봤나요? 어찌 그런 줄 아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리라. “그럼요, 들어가 보다마다요!”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부질없는 짓

2. 가는 산마다 보이는 그 이름

3.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

4. 가뭄의 단비처럼 제공된 김홍연의 개인정보

5. 왠지 남 같지 않다 했더니

6. 왈짜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7. 이름이 곧 존재라는 착각

8. 이름이 남길 바라는 허망함에 대해

9. 이름에 집착하는 유교, 그 너머

10. 김홍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백동수

11. 9년 만에 실제로 만나게 되다

12. 늙어서도 이름에 집착하며 기문을 부탁하다

13. ()에 드러난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

14. 총평

 

 

  1. 그로부터 9년 뒤: 앞 단락의 명산 유람시기를 고려하면 1779년경이 된다. 연암은 1778년 홍국영을 피해 연암협으로 이거移去했다. 그리고 1780년 5월에 연행을 떠나 같은 해 10월에 귀국한 후 서울과 연암협을 오가는 생활을 하며 『열하일기』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문으로]
  2. 병 때문에 불구: 김홍연은 노년에 이르러 한쪽 눈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갖게 되었던 듯하다. 김홍연은 혹 천연두를 앓았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천연두에 걸리면, 죽지 않고 살아난다 할지라도 얼굴이 몹시 얽게 되고 또 실명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실명한 사람의 대부분은 바로 이 천연두 때문이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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