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발승암 기문 - 8. 이름이 남길 바라는 허망함에 대해 본문

책/한문(漢文)

발승암 기문 - 8. 이름이 남길 바라는 허망함에 대해

건방진방랑자 2020. 4. 16. 15:43
728x90
반응형

8. 이름이 남길 바라는 허망함에 대해

 

 

이야기하던 자가 대꾸가 없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옛날 사마상여司馬相如[각주:1]없다라는 분과 있을 리가 있나라는 선생을 허구적으로 설정해 서로 문답하게 하는 글을 쓴 적이 있거늘 지금 나와 그대가 우연히 절벽 아래 흐르는 물가에서 만나 서로 문답하고 있네그려. 먼 훗날 생각하면 우리 모두가 있을 리가 있나선생일 터이니 이른바 발승암이란 자가 있을 리가 있나?”

그러자 그는 발끈하여 얼굴에 노기를 띠고 말했다.

내 어찌 황당한 말을 지어낸 것이겠습니까? 정말 김홍연은 존재하외다!”

나는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는 너무 집요하이. 지난날 왕안석王安石[각주:2]나라를 비판하고 신나라를 찬미함(劇秦美新)[각주:3]이라는 글에 대해 변증辨證하면서 이건 필시 곡자운谷子雲[각주:4]이 지은 글이지 양자운揚子雲이 지은 글이 아니다라고 하였고, 또 소동파蘇東坡[각주:5]서경西京[각주:6]에 과연 양자운이 존재했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네. 대저 두 사람의 문장은 당세에 밝게 빛나 역사책에 이름이 전하는데도 뒷사람이 그들을 논할 적엔 오히려 이런 의심을 두거늘, 하물며 심산유곡에 헛된 이름을 새겨 비바람에 깎이고 패여 백 년도 못 가 익힐 사람이야 말해 무엇 하겠나!”

이 말을 듣고 그 사람 또한 껄껄 웃고는 가 버렸다.

談者無以應, 則余笑曰: “昔長卿設無是公烏有先生以相難, 今吾與子, 偶然相遇於古壁流水之間, 相答問焉. 他日相思, 皆烏有先生也, 安有所謂髮僧菴者乎?”

客勃然怒於色曰: “吾豈謊辭而假設哉? 果眞有是人也.”

余大笑曰: “君太執拗. 昔王介甫辨劇秦美新, 必谷子雲所著, 非楊子雲, 蘇子瞻曰: ‘未知西京果有楊子雲否也.’ 夫二子之文章, 烟蔚當世, 流名史傳, 而後之尙論者, 猶有此疑, 而况寄空名於深山窮壑之中, 而風消雨泐, 不百年而磨滅者乎?” 客亦大笑而去.

상대방이 아무 말이 없자 연암은 사마상여의 작품에 등장하는 두 허구적 인물인 없다님과 있을 리가 있나선생을 끌어와 자신의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사실 연암이 말하고자 한 바는 이름에 대한 추궁의 결과 상대방이 말문이 막혀 버린 대목에서 이미 다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선문답 같은 것으로, 도가 높은 사람만이 알아챌 수 있다. 보통 사람이 볼 땐, 뭔 말인가 싶고, 말장난 하나 싶을 뿐이다.

그래서 연암은 바로 다음 구절에 없다님과 있을 리가 있나선생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부터는 7에서 나눈 문답의 주석이요, 부연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연암이 말하고자 한 바는, 모든 존재는 시간의 풍화 작용 앞에서 소멸하게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문답을 나누고 있는 우리도 몇 백 년이 지난 후에는 없었던 것처럼 되어 버릴 거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이른바 발승암이라는 자가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상대방은 연암의 이 말을 연암이 발승암이라는 사람의 실존을 부정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는 화를 내며 이런 어투로 말한다. “정말로 김흥연은 있다니까요!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구요!(果眞有是人也)” 이 대목은 참 재미있다.

그래서 연암은 껄껄 웃으며, 다시 설명을 시작한다. 연암은 이번엔 유명한 역사적 인물을 끌어와 이야기를 펼친다. 나라를 비판하고 신나라를 찬미함劇秦美新이라는 글은 일반적으로 양자운이 지은 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글의 작자는 양자운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양자운이라는 인물이 서경에 과연 존재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까지 있다. 역사책에 이름이 전할뿐더러 그 저작이 지금 전해지는 이런 유명한 사람조차도 이런 판이니, 심산유곡에 이름자를 새겨 놓는다고 해서 불멸이 보장될 것인가? 불멸은커녕 백 년이나 가겠는가?

이 말에 비로소 상대방은 연암의 뜻을 깨닫고 웃으며 자리를 떴다고 했다. “껄걸 웃고는 가 버렸다(客亦大笑而去)”는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 역시 재미있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부질없는 짓

2. 가는 산마다 보이는 그 이름

3.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

4. 가뭄의 단비처럼 제공된 김홍연의 개인정보

5. 왠지 남 같지 않다 했더니

6. 왈짜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7. 이름이 곧 존재라는 착각

8. 이름이 남길 바라는 허망함에 대해

9. 이름에 집착하는 유교, 그 너머

10. 김홍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백동수

11. 9년 만에 실제로 만나게 되다

12. 늙어서도 이름에 집착하며 기문을 부탁하다

13. ()에 드러난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

14. 총평

 

 

 

 

 

  1. 사마상여司馬相如(기원전 179~기원전 117): 한漢나라 초기의 저명한 문장가다. 특히 ‘부賦’라는 장르의 글을 잘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무제武帝에게 「사냥游獵賦」이라는 제목의 ‘부’를 바친 적이 있다. 이 글은 허구적인 인물인 ‘없다’라는 님과 ‘있을 리가 있나’라는 선생의 문답을 통해, 임금이 동산을 화려하게 꾸며 거기서 사냥을 즐기는 일에 탐닉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원문에는 ‘없다’라는 님이 ‘무시공無是公’으로 되어 있고, ‘있을 리가 있나’라는 선생이 ‘오유선생烏有先生’으로 되어 있다. ‘무시’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뜻이며, ‘오유’는 ‘어찌 있겠는가’라는 뜻이다. [본문으로]
  2. 왕안석王安石(1021~1086): 송나라 신종神宗 때의 문인이자 정치가이다. 문장에 능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신법新法을 통해 개혁을 시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신법은 국가재정의 확보 등에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급격한 개혁으로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그는 기존의 유학자들과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양웅揚雄에 대해서도 보통의 유학자들과 달리 그 행위와 공적을 높이 평가했다. [본문으로]
  3. 「진秦나라를 비판하고 신新나라를 찬미함劇秦美新」: 진나라를 비판하고 왕망이 세운 신나라를 찬미한 글인데, 양웅이 신나라를 세운 왕망에게 아첨하기 위해 지었다고 하나, 일설에는 양웅이 지은 것이 아니고 양웅과 동시대의 인물인 곡자운谷子雲이 지었다고 한다. [본문으로]
  4. 곡자운谷子雲: 곡영谷永을 말한다. ‘자운子雲’은 그 자다. 『태현경太玄經』과 『법언法言』 등 겅젼 해석과 관련된 저작 외에 성제의 사치를 풍자한 부賦를 남기기도 하였다. 왕망이 정권을 찬탈해 신나라를 세우자 이를 찬미하는 문장을 써서 후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문장을 쓴 적이 없다는 설도 있다. [본문으로]
  5. 소동파蘇東坡는 소식蘇軾(1036~1101)을 말한다. ‘동파’는 그 호다. 소순蘇洵의 아들이자 소철蘇轍의 형으로, 대소大蘇라고도 불린다. 촉蜀 사람으로, 구양수歐陽修의 인정을 받아 그의 후원으로 문단에 등장하였다. 왕안석의 신법이 실시되자 구법당舊法黨으로 지목되어 지방관으로 전출되었고, 나중에는 해남도海南島로 유배되었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며, 시詩ㆍ서書ㆍ화畵에 모두 능했다. [본문으로]
  6. 서경西京: 서한西漢의 수도인 장안長安을 가리킨다. 한편 동한東漢 때의 도읍인 낙양洛陽은 동경東京이라고 부른다. [본문으로]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