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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발승암 기문 - 3.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 본문

책/한문(漢文)

발승암 기문 - 3.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

건방진방랑자 2020. 4. 1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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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

 

 

무릇 명산을 유람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지극히 위험한 곳까지 찾아가 온갖 어려움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기이한 경치를 구경할 수 없는 법이다. 나는 평소 이전에 산에 오른 일을 회상할 적마다 오싹해지며 자신의 무모함을 뉘우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다시 산에 오르면 그만 지난날의 경계를 소홀히 해 가파른 바위에 오르기도 하고 깊은 낭떠러지를 내려다보기도 하며, 몸을 모로 하여 아슬아슬하게 썩은 잔도棧道[각주:1]를 밟고 낡은 사다리를 오르기도 하면서 왕왕 천지신명에게 무사하기를 빌며 살아 돌아가지 못할까봐 벌벌 떨면서 두려워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사朱砂[각주:2] 사슴 정강이 크기는 될 정도로 큼지막하게 쓴 붉은 글씨가 늙은 나무 등걸과 오래된 등나무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서렸는데, 어김없이 김홍연세 글자였다. 나는 마침내 험난하고 궁박하고 위태롭고 곤란한 상황에서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뻐 그로 인해 힘을 내어 더위잡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아갈 수 있었다.

大凡好遊名山者, 非犯至危排衆難, 亦不得搜奇探勝. 余平居追思往䠱, 未甞不慄然自悔也. 然而復當登臨, 猶忽宿戒, 履巉巖, 俯幽深, 側身于朽棧枯梯, 往往默禱神明, 惴惴然尙恐其不能自還. 而大字硃塡, 如鹿脛之大, 隱約盤挐於老槎壽藤之間者, 必金弘淵也. 乃反欣然如逢舊識於險阨危困之際, 爲之出力而扳援先後之也.

동아시아에는 산에 노니는 것을 즐기는 문화가 있다. 그것은 연원이 아주 오래다. 가령 논어같은 책에도 요산樂山(산을 즐김)’이라는 말이 보이며, 공자가 태산에 올랐다는 말이 보인다. 그 후 한대漢代나 남북조 때에 이르면 고사高士들이 어지러운 현실을 피해 산수에 노니는 게 하나의 풍조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유산遊山(산에 노님)’이라는 용어도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당대唐代에 이르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유종원柳宗元에 의해 산수유기山水遊記라는 문학 장르가 확립된다. 산수유기는 줄여서 산수기山水記라고도 하는데, 동아시아의 독특한 회화 장르인 산수화와 대응된다. 산수기와 산수화는 사대부가 지배 계급으로 자리 잡은 송대宋代 이후 대단히 성행하게 되며, 명대明代에 이르면 급기야 방대한 산수기 선집들이 여럿 엮어지게 된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의 경우 조선 전기에도 산수기는 창작되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특히 사대부 문인이라면 너나없이 산수에 노니는 일과 산수기 짓는 일을 운치 있는 일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는 중국 명나라 사대부들의 취미에 영향 받은 면이 적지 않다. 특히 18세기 조선 사회에는 중국에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가 들어선 데 대한 반감으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거나, 당쟁을 피해 재야에 있거나, 당대의 정치 현실을 혐오하여 재야 선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산수 유람이 큰 유행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에 대한 선비 사회의 반성을 촉구하는 글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 단락의 앞부분에서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유산遊山에 탐닉하는 연암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연암은 연암대로의 개인적 이유가 있어 이처럼 산수 유람에 경도傾倒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당시 조선 사대부 사회의 문화적 풍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연암의 유산에의 탐닉을 보여주는 이 단락의 앞부분은 비록 흥미롭기는 해도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것은 그러나 그때마다로 이어지는 뒷부분을 말하기 위한 일종의 뜸들이기 같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늙은 나무 등걸과 오래된 등나무 사이로 보일 듯 말 듯(隱約盤挐於老槎壽藤之間)” 바위에 붉게 새긴 김홍연이라는 이름 석 자가 보였다는 구절에서 우리는 당시 연암이 느꼈던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고립무원의 지경, 공포에 사로잡힌 상황에서 낯익은 이름이 나무 사이로 얼핏 보이자 연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반가움과 기쁨을 느꼈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연암은 마침내 험난하고 궁박하고 위태롭고 곤란한 상황에서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뻐 그로 인해 힘을 내어 더위잡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아갈 수 있었다(乃反欣然如逢舊識於險阨危困之際, 爲之出力而扳援先後之也).” 연암은 드디어 김홍연과 벗이 된 것이다. 벗이란 무엇인가. 어려운 상황에서 힘이 되어 주고, 만나면 기쁘고, 그로 인해 자기가 격려 받고 용기를 낼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던가. 이 단락은 연암과 김홍연이 어느새 이런 의미의 벗이 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단락에 이르기까지 연암은 김홍연에 대해 뚜렷한 심리 변화를 보여준다. 연암은 1에서 김홍연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피력하고 있고, 2에서는 분노를 표하고 있으며, 이 단락에 와서는 고마움과 반가움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김홍연은 처음에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가, 곧 질시의 대상이 되며, 종국에는 우애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이처럼 연암의 심리가 변화하는 데 맞추어 글은 심한 기복起伏과 굴곡을 보여준다. 요컨대 김홍연은 처음에는 단순한 타자他者의 위치에 있었으나 거듭된 대면과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비타자非他者’, 혹은 또 다른 나로 정립되기에 이른다. 생각해보면 이 과정은 우리가 친구를 사귀는 과정, 혹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손을 맞잡고 서로 깊은 유대를 형성하게 되는 과정과 닮아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웃기는 것은, 연암이 아직도 실제로는 김홍연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연암은 바위에 새긴 이름자와의 대면만을 통해 김홍연과 친구가 된 셈이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부질없는 짓

2. 가는 산마다 보이는 그 이름

3.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

4. 가뭄의 단비처럼 제공된 김홍연의 개인정보

5. 왠지 남 같지 않다 했더니

6. 왈짜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7. 이름이 곧 존재라는 착각

8. 이름이 남길 바라는 허망함에 대해

9. 이름에 집착하는 유교, 그 너머

10. 김홍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백동수

11. 9년 만에 실제로 만나게 되다

12. 늙어서도 이름에 집착하며 기문을 부탁하다

13. ()에 드러난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

14. 총평

 

  1. 잔도棧道: 발을 붙일 수 없는 험한 벼랑 같은 곳에 선반을 매듯이 하여 낸 길을 말한다. [본문으로]
  2. 주사朱砂: ‘단사丹砂’라고도 하는데, 붉은색의 염료다. 부적이나 글씨를 쓰는 데 사용한다. 명승지 같은 데 가면 바위에 이름을 새긴 뒤 붉은색을 칠해 놓은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붉은색이 바로 주사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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