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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발승암 기문 - 5. 왠지 남 같지 않다 했더니 본문

책/한문(漢文)

발승암 기문 - 5. 왠지 남 같지 않다 했더니

건방진방랑자 2020. 4. 1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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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왠지 남 같지 않다 했더니

 

 

조선 후기 부의 축적으로 협객이 출연하다

 

조선 후기 도시의 발달과 상업 발전은 중간계급의 성장을 가져왔다. 특히 중인 서리층은 이런저런 이권에 개입함으로써 많은 부를 축적해 갔다. 이들의 부는 판소리를 비롯한 서민 예술의 물질적 기초가 되기도 했으나 그 대부분은 유흥 공간으로 흘러들어 갔다고 생각된다. 이들은 재력을 바탕으로 서화를 사 모으기도 하고, 골동품이나 값비싼 중국 물건, 사치품 따위로 집을 장식하기도 했다. 혹은 유협遊俠이나 협객으로 행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부는 서유럽의 발흥기 시민계급처럼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방향으로 그 출로를 찾지는 못했다. 조선 후기의 중간계급은 비록 물질적 힘은 획득했지만 정치적ㆍ사회적 진출의 가능성은 봉쇄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퇴영적이거나 유흥적인 생활에 빠져 들기 십상이었다.

연암은 밝히고 있지 않지만 김홍연은 개성 사람이었다. 조선 시대에 개성이 정치ㆍ사회적으로 얼마나 소외된 공간이었던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주영염수재라는 집의 기문晝永簾垂齋記을 검토하는 자리에서 비교적 자세히 언급한 바 있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당시 무과에 급제했다고 해서 다 벼슬을 한 건 아니다. 극히 일부만이 벼슬을 할 수 있었다. 벼슬을 하기 위해서는 권력가에 줄을 대거나 관계 요로에 뇌물을 주거나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다못해 관찰사의 비장裨將 자리 하나를 얻어 하기 위해서도 평소 그 집에 드나들며 공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게다가 김홍연은 개성 사람이 아닌가. 이러니 그가 말단 벼슬이라도 얻어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이다. 김홍연이 무과에 급제하고도 벼슬을 하려 하지 않은 데에는 이런 사정이 있다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단락 중 김홍연이 쩨쩨하게 벼슬자리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不肯碌碌求仕進)”는 구절에 특히 눈을 줄 필요가 있다. 아마도 연암은 이 구절을 아주 힘주어서 썼을 것으로 여겨진다. 쩨쩨하게 벼슬자리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 연암은 김홍연의 이런 면모에서 자신과의 기질적 동질성을 발견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연암은 쩨쩨한 인간을 누구보다 싫어했고, 비록 곤궁한 생활을 하면서도 권력에 빌붙거나 현실에 영합해 벼슬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쩨쩨하지 않고 호쾌하며, 비루하게 벼슬하려고 하지 않은 김홍연에게서 연암은 신분을 넘어 어떤 유대감 같은 것을 느꼈을 법하다.

 

 

 

협객에게서 자신을 보다

 

연암은 젊은 시절부터 민간의 협객에 호감을 품고 있었다. 이런 부류의 인간은 좀스럽거나 약삭빠르거나 아첨을 잘하거나 고분고분한 인간 유형과는 정반대의 기질을 지닌바, 선이 굵고 오만하며, 위선적이지 않고 의리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태도나 행위는 유교적 예법에 잘 들어맞지 않음은 물론 그에 저촉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점잖은 선비나 도학자라면 이런 부류의 인간에 호감을 가지기는커녕 그들을 불온시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연암은 왜 젊은 시절 이래 여항의 이런 인물들에게 호감을 보인 것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연암의 독서 체험과 관련된다. 연암은 10대 중반에 사기열전을 공부하면서 사마천의 글쓰기와 인간학에 심취한 바 있다. 몇 천 년의 중국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빼어난 문장가 두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사마천과 장자莊子를 꼽을 수 있을 터이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말에 장천마지莊天馬地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는 하늘과 땅이 있는데 장자의 문장이 곧 하늘이라면 사마천의 문장은 땅이라는 말이다. 장자는 인간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하기라도 하듯 기궤奇詭하고 희한하기 짝이 없는 문장을 구사했다면, 사마천은 어찌 이리도 예리하게 인간의 심리와 본질을 통찰했을까 싶은 글을 남기고 있다. 두 사람의 문장은 모두 기세가 펄펄 넘치며 신출귀몰하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의 후대 문인들은 늘 장자와 사마천을 우러르며, 그들의 문장 필법을 배우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인들은 두 사람의 문장을 흉내만 내었을 뿐 그 정수精髓를 터득하지는 못하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장자와 사마천의 문장을 배우려면 기가 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가 약한 사람이 기가 펄펄 넘치는 이 두 사람의 문장을 제대로 소화할 수는 없다. 연암은 타고난 기가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젊은 시절 사마천의 열전을 읽고 그 정수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으며, 중년에는 장자를 읽고 상상력의 경계를 한껏 확장시킬 수 있었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부질없는 짓

2. 가는 산마다 보이는 그 이름

3.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

4. 가뭄의 단비처럼 제공된 김홍연의 개인정보

5. 왠지 남 같지 않다 했더니

6. 왈짜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7. 이름이 곧 존재라는 착각

8. 이름이 남길 바라는 허망함에 대해

9. 이름에 집착하는 유교, 그 너머

10. 김홍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백동수

11. 9년 만에 실제로 만나게 되다

12. 늙어서도 이름에 집착하며 기문을 부탁하다

13. ()에 드러난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

14.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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