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유쾌한 시공간 - 4부, 2장 시선의 전복과 봉상스의 해체

건방진방랑자 2021. 7. 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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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시선의 전복, 봉상스의 해체

 

 

호곡장(好哭場)’?

 

 

유머가 만들어놓은 매끄러운 공간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물론 범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중세적 엄숙주의와 매너리즘이 전복되면, 그 균열의 틈새로 전혀 예기치 못한 일들이 솟구치기 때문이다. 그 순간, 18세기 조선을 지배했던 통념들은 가차없이 허물어진다. 무엇보다 그의 유머에는 언제나 패러독스가 수반된다. 주지하듯이 패러독스, 역설은 통념의 두 측면인 양식(bon sens)과 상식에 대립한다.

 

봉상스, 그것은 한쪽으로만 나 있는 방향이며, 그에 만족하도록 하는 한, 질서의 요구를 표현한다. 그에 반해 역설은 예측불가능하게 변하는 두 방향 혹은 알아보기 힘들게 된 동일성의 무의미로서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패러독스란 봉상스의 둑이 무너진 틈을 타고 범람하는 앎의 새로운 경지이다. 의미와 무의미의 사이 혹은 의미의 전도, 그것이 바로 패러독스다.

 

강을 건너고 처음 마주친 요동벌판, 그것은 정녕 놀라운 경험이었다. 정사와 한 가마를 타고 삼류하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아침을 먹고 10리 남짓 가서 산모롱이 하나를 접어드는 순간, 정진사의 마두 태복이가 갑자기 말 앞으로 달려 나와 엎드려 큰소리로 말한다.

 

 

백탑(白塔)이 현신(現身)함을 아뢰옵니다. 도강록(渡江錄)

白塔現身謁矣.

 

 

연극적인 제스처로 장차 펼쳐질 장관을 예고한 것이다. 수십 보를 채 못 가서 겨우 모롱이를 벗어나자, 안광이 어른거리고 갑자기 한 덩이 흑구(黑毬)가 오르락내리락 한다. 드넓은 평원을 보는 순간, 그 엄청난 스케일에 압도당하여 연암은 이렇게 독백한다.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인생이란 본시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吾今日始知人生本無依附, 只得頂天踏地而行矣]”이라고, 삶의 통찰이 담긴 멋진 멘트다.

 

하지만 뒷통수를 내려치는 건 그 다음 대목이다. 말 위에서 손을 들어 사방을 돌아보다가 느닷없이 이렇게 외친다.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好哭場! 可以哭矣]!”

 

12백 리에 걸쳐 한 점의 산도 없이 아득히 펼쳐지는 요동벌판을 보고 처음 터뜨린 그의 탄성이다. 통곡하기 좋은 곳이라니? 어리둥절한 동행자 정진사의 물음에 연암의 장광설이 도도하게 펼쳐진다. 이름하여 호곡장론(好哭場論)혹은 통곡의 패러독스! 천고의 영웅이나 미인이 눈물이 많다 하나 그들은 몇 줄 소리 없는 눈물만을 흘렸을 뿐,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서 쇠나 돌에서 나오는 듯[聲滿天地, 若出金石]”한 울음은 울지 못했다. 그런 울음은 어떻게 나오는 것인가?

 

 

사람들은 다만 칠정(七情) 가운데서 오직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 뿐, 칠정 모두가 울음을 자아낸다는 것은 모르지. 기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즐거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사랑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욕심[]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이야. 근심으로 답답한 걸 풀어버리는 데에는 소리보다 더 효과가 빠른 게 없지.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일세. 지극한 정()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저절로 이치에 딱 맞는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무에 다르겠는가. 도강록(渡江錄)

人但知七情之中, 惟哀發哭, 不知七情都可以哭. 喜極則可以哭矣, 怒極則可以哭矣, 樂極則可以哭矣, 愛極則可以哭矣, 惡極則可以哭矣, 欲極則可以哭矣. 宣暢壹鬱, 莫疾於聲, 哭在天地, 可比雷霆. 至情所發, 發能中理, 與笑何異?

 

 

요컨대 기쁨이나 분노, 사랑, 미워함, 욕심 어떤 감정이든 그 극한에 달하면 울 수가 있으니, 그때 웃음과 울음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극치를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슬픔을 당했을 때 애고’ ‘어이따위의 소리를 억지로 부르짖을 따름이다. 궤변 혹은 예측불가능한 생성. 이에 다시 정진사가 묻는다.

 

 

이 울음터가 저토록 넓으니, 저도 의당 선생과 함께 한번 통곡을 해야 되겠습니다그려. 그런데 통곡하는 까닭을 칠정 중에서 고른다면 어디에 해당할까요?

今此哭場, 如彼其廣, 吾亦當從君一慟, 未知所哭, 求之七情所感, 何居?

 

 

대답 대신 또 다른 궤변이 이어진다. 갓난아기는 왜 태어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는가? 미리 죽을 것을 근심해서? 혹은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그렇게 보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다. 그러나 연암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갓난아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는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탁 트이고 환한 곳으로 나와서 손도 펴보고 발도 펴보니 마음이 참으로 시원했겠지. 어찌 참된 소리를 내어 자기 마음을 크게 한번 펼치지 않을 수 있겠[兒胞居胎處, 蒙冥沌塞, 纏糾逼窄, 一朝迸出寥廓, 展手伸脚, 心意空闊, 如何不發出眞聲盡情一洩哉]”느냐는 것이다. 즉 이때의 울음은 우리가 아는 그런 울음이 아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경계를 넘는 순간의 환희이자 생에 대한 무한긍정으로서의 울음인 것이다.

 

그러니 갓난아기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서,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고[故當法嬰兒, 聲無假做. 登毗盧絶頂, 望見東海, 可作一場]”, “산해관까지 1,200리는 사방에 한 점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이 맞닿아서 아교, 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하고, 예나 지금이나 비와 구름만이 아득할 뿐이야. 이 또한 한바탕 울어볼 만한 곳이 아니겠는가[自此至山海關一千二百里, 四面都無一點山, 乾端坤倪, 如黏膠線縫, 古雨今雲, 只是蒼蒼, 可作一場]!”하는 것이 호곡장론(好哭場論)의 대단원이다.

 

이런 식으로 연암은 패러독스를 통해 저 높은 곳 혹은 심층에서 놀고 있는 관념들을 표면으로 끌고와 사방으로 분사하게 만든다. 처음에 그의 궤변에 당혹해하고 어이없어 하다가도 차츰차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결국은 설복당하고 만다. 그리고 돌아보면 이미 애초의 봉상스(bon sens)는 아스라이 멀어지고 눈앞에는 아주 낯선 경계가 펼쳐져 있다.

 

참고로 이 호곡장론(好哭場論)부분은 독자적으로 인구에 회자되어 일종의 고사성어로 활용되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것이 다음에 나오는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시 요동벌판[요야, 遼野]이다.

 

 

 

千秋大哭塲 戲喩仍妙詮 천추의 커다란 울음터라더니 재미난 그 비유 신묘도 해라
譬之初生兒 出世而啼先 갓 태어난 핏덩이 어린아이가 세상 나와 우는 것에 비유했다네

 

 

요동벌판을 보고 연임이 , 참 좋은 울음터로구나라고 외친 것과 갓난아이의 울음에 대한 궤변을 미리 전제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텍스트다. 이렇게 비약과 생략을 통해서도 충분히 소통될 정도로 그의 패러독스는 사람들을 휘어잡았던 것인가?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봉상스(bon sens)해체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각에 의한 알음알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울음을 단지 슬픔에만 귀속하는 것이 울음의 잠재력을 위축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인간의 지식은 한없이 비루해진다. 이목에 좌우되어 대상의 본래 면목을 보지 못하는 사유의 한계, 그것을 격파하고자 하는 것이 연암의 진정한 의도이다.

 

여행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문의 번화함을 마주한 연암은 기가 팍 꺾여 그만 돌아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치민다. 순간, 온몸이 화끈해진다.

 

 

이것도 남을 시기하는 마음이지. 난 본래 천성이 담박해서 남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는데. 이제 다른 나라에 한 발을 들여놓았을 뿐, 아직 이 나라의 만분의 일도 못 보았는데 벌써 이런 그릇된 마음이 일다니. 대체 왜? 아마도 내 견문이 좁은 탓일 게다. 만일 부처님의 밝은 눈으로 시방세계(十方世界)를 두루 살핀다면 무엇이든 다 평등해 보일 테지. 모든 게 평등하면 시기와 부러움이란 절로 없어질 테고. 도강록(渡江錄)

此妒心也. 余素性淡泊, 慕羡猜妒, 本絶于中. 今一涉他境, 所見不過萬分之一, 乃復浮妄若是, 何也? 此直所見者小故耳. 若以如來慧眼, 遍觀十方世界, 無非平等, 萬事平等, 自無妒羡

 

 

여래의 평등안(平等眼). 시방세계를 두루 살필 수 있는 그 눈이 있어야 편협한 시기심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옆에 있는 장복이를 보고, “네가 만일 중국에 태어났다면 어떻겠느냐[使汝往生中國何如]?” 하자,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중국은 되놈의 나라[中國胡也]’라 싫다고 대답한다. 어쩜 이렇게 사상이 투철할 수가. 물어본 연암만 머쓱해졌다.

 

그때 마침 한 소경이 손으로 월금을 뜯으며 지나간다. 순간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 이렇게 말한다. “저이야말로 평등안을 가진 것이 아니겠느냐[彼豈非平等眼耶].” 근거는? 소경은 눈에 끄달려 시기하고 집착하는 마음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여래의 눈이 천지만물을 두루 비출 수 있는 것이라면, 소경의 눈은 빛이 완전 차단된 암흑이다. 하지만 둘은 모두 편협한 분별과 집착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여래의 평등안소경의 눈이 곧바로 연결되는 이 돌연한 비약. 연암 특유의 역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이런 식의 돌출과 비약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열하를 앞에 두고 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너던, 창대는 다쳐서 뒤에 처지고, 홀로 말에 의지해 물을 건너게 되었을 때, 동행자가 위태로움에 대해 말한다. “옛사람이 위태로운 것을 말할 때 소경이 애꾸말을 타고 한밤중에 깊은 물가에 선 것[盲人騎瞎馬, 夜半臨深池]’이라 했는데, “오늘밤 우리가 실로 그 같은 꼴이 되었다고. 그러나 연암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소경을 보는 자는 눈 있는 사람이라 소경을 보고 스스로 그 마음에 위태로이 여기는 것이지, 결코 소경 자신이 위태로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오. 소경의 눈에는 위태로운 바가 보이지 않는데, 대체 뭐가 위태롭단 말이오?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視盲者有目者也. 視盲者而自危於其心, 非盲者知危也, 盲者不見所危, 何危之有?

 

 

보는 것의 위태로움. 그것은 결국 자신의 눈을 앎의 유일한 창으로 믿는 데서 오는 것이다. 감각을 앎의 유일한 원천으로 삼을 때 삶은 얼마나 위태롭고 천박해질 것인가. 이때의 체험을 담은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에서 연암은 그 점을 거듭 환기한다. “소리와 빛은 외물(外物)이다. 외물은 언제나 귀와 눈에 누가 되어 사람들이 보고 듣는 바른 길을 잃어버리도록 한다. 하물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 험난하고 위험하기가 강물보다 더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병통이 됨에 있어서랴[聲與色外物也, 外物常爲累於耳目, 令人失其視聽之正, 如此. 而況人生涉世, 其險且危, 有甚於河, 而視與聽, 輒爲之病乎].”

 

화담 서경덕(徐敬德)에 얽힌 유명한 에피소드가 인용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한 소경이 어느날 문득 눈을 떴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눈이 보이지 않을 때는 몸 전체의 감각을 동원해서 길을 찾았는데, 이제 눈에 들어오는 온갖 사물의 현란함에 사로잡히자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소경에게 화담이 말한다.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還閉爾眼].” 이걸 소경으로 평생 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정말 넌센스다. 정민 교수한테 들은 바에 따르면, 개화기 때 정말 그렇게 해석하고는 이래서 나라가 망했다며 흥분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근대적 지식은 단선적, 표피적이었던 것이다. 화담의 요지는 현란함에 눈 빼앗기지 말고, ‘본분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연암의 의도 역시 마찬가지다.

 

연암은 요술대행진을 기록한 환희기(幻戱記)의 뒤에 붙인 후지(後識)’에서 이 삽화를 활용한 뒤, 이렇게 덧붙인다. “눈이란 그 밝음을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오늘 요술을 구경하는 데도 요술쟁이가 눈속임을 한 것이 아니라 실은 구경꾼들이 스스로 속은 것일 뿐입니다[目之不可恃其明也如此. 今日觀幻, 非幻者能眩之, 實觀者自眩爾].”라고,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알게 된다. 혹은 자신보다 더 큰 적은 없다. 자신이 보는 것이 곧 자신의 우주다. 등등, 곱씹을수록 삶에 대한 다양한 지혜가 산포되어 간다.

 

 

 

 

타자의 시선으로

 

 

이목(耳目)의 누()’는 시선의 문제로 수렴된다. 시선은 대상을 보는 주체의 관점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공고해질 경우, 견고한 표상의 장벽이 구축된다. 소중화(小中華)주의나 레드 콤플레스등 한 시대를 관통하는 이데올로기 또한 결국은 시선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연암의 패러독스는 무엇보다 시선의 자유로운 이동을 수반한다. 밀운성에서 한 아전의 집에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정사가 불러서 청심환 한 알을 주자 여러 번 절을 해댄다. 몹시 놀라고 두려워하는 기색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막 잠이 들었을 즈음 문을 두드리는 이가 있어 나가보니 사람 지껄이는 소리와 말 우는 소리가 시끌벅적한데, 모두 생전 처음 듣는 것이었을 테니. 게다가 문을 열자 벌떼처럼 뜰을 가득 메우는 사람들, 이들은 대체 어디 사람들인가. 고려인이라곤 난생 처음이니, 안남 사람인지 일본 사람인지, 유구 사람인지 섬라 사람인지 분간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략)

正使招給一丸淸心 則無數叩拜 有驚怖戰掉之狀 盖方其睡際 有叩門者 人喧馬鳴 想應初聞之異聲 及其開門 則蜂擁盈庭者 是何等人也 所謂高麗無因而至此 則北路之所初見也 想應莫辨安南日本琉球暹羅 (中略)

 

아마도 그는 같은 나라 사람이 함께 왔다고는 생각지 못하고, 남만(南蠻)ㆍ북적(北狄)ㆍ동이(東夷)ㆍ서융(西戎) 등 사방의 오랑캐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줄로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놀랍고 떨리지 않으리오. 백주 대낮이라 해도 넋을 잃을 지경이거늘, 하물며 때 아닌 밤중에랴. 깨어 앉았을 때라도 놀라 자빠질 지경이거늘 하물며 잠결에서였으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여든 살 노인일지라도 벌벌 떨며 까무러치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인데 더구나 열여덟 살, 약관도 되지 못한 어린 사내였음에랴.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彼必不識同國同來 想應分視 南蠻北狄東夷西戎 都入渠家 安得不驚怖戰掉 雖白書惝怳矣 况深夜乎 雖醒坐駭惑矣 况睡際乎 奚特十八歲弱冠穉男也

 

 

바로 두 번 째 문장부터 젊은 주인의 눈으로 초점이 이동되었다. , 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일행을 되비추고 있는 것이다. 열여덟 이국 젊은이의 눈에 느닷없이, 그것도 한밤중 잠결에 들이닥친 조선인들이 대체 어떻게 보였을까? 한마디로 그건 동서남북 사방 오랑캐들이 뒤섞여 있는 아수라장에 다름 아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소중화(小中華)의식으로 무장한 집단이건만, 시선만 바꿔버리면 졸지에 야만인 총출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 기묘한 역설!

 

 

 

 

우리의 술문화

 

 

시점변환이야말로 연암이 즐겨 사용하는 기법 중 하나다. 말하자면, 타자의 눈을 통해 조선의 문화나 습속을 바라봄으로써 익숙한 것들을 돌연 낯설게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 사신들의 의관은 신선처럼 빛이 찬란하건만, “거리에 노는 아이들까지도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서도리어 연극하는 배우 같다고 한다. 또 도포와 갓과 띠는 중국의 중옷과 흡사하다. 연암이 변관해와 더불어 옥전의 어느 상점에 들어갔더니, 수십 명이 둘러서서 자세히 구경하다가 매우 의아하게 여기면서 서로 말하기를, “저 중은 어디에서 왔을까한다. 유학자보고 중이라니?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대체 중국의 여자와 승려와 도포들은 옛날 제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조선의 의관은 모두 신라의 옛제도를 답습한 것이 많았고, 신라는 중국제도를 본뜬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풍속이 불교를 숭상한 까닭에 민간에서는 중국의 중옷을 많이 본떠서 1천여 년을 지난 오늘에 이르도록 변할 줄을 모른다”.

 

입만 열면 공자, 맹자, 주자를 읊조리면서 정작 패션은 천 년 전 불교적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표리부동’, 그런데도 조선 사람들은 도리어 중국의 승려가 조선의 의관을 본떴다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겨울에도 갓을 쓰고 눈 속에도 부채를 들어 타국의 비웃음을 사고 있으니, 주제파악을 못해도 한참 못하고 있지 않은가.

 

예의에 살고 예의에 죽는다할 정도로 프라이드가 강한 조선 선비들의 복장이 사실은 중국의 중옷에서 유래했다는 이 역설, 연암은 냉정한 어조로 그 연원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마치 사건 혹은 통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그것의 자명성을 해체시켜 버리는 니체의 계보학을 연상시킬 정도로 분석의 틀이 치밀하다.

 

다음과 같은 경우도 그런 예 중 하나이다.

 

 

술 마시는 풍속은 세상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험하다. 술집이라고 하는 곳은 모두 항아리 구멍처럼 생긴 들창에 새끼줄을 얽어서 문을 만든다. 길 왼쪽 소각문에 짚을 꼬아 만든 새끼로 발을 드리우고 쳇바퀴로 만든 등롱(燈籠)을 매달아둔다. 이런 건 필시 술집이라는 표시다.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

東人飮酒毒於天下 而所謂酒家 皆甕牖繩樞 道左小角門 藁索爲簾 簁輪爲燈者 必酒家也

 

 

중국의 술집들이 지닌 멋드러진 운치를 논한 뒤에 이어지는 말이다. 조선의 술집이란 운치는커녕 비루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술잔은 커다란 사발 크기인데, “반드시 이마를 찌푸리며 큰 사발의 술을 한 번에 들이켠다. 이는 들이붓는 것이지 마시는 게 아니며, 배부르게 하기 위한 것이지 흥취로 마시는 게 아니다[必以大椀蹙額一倒 此灌也非飮也].” 옳거니! 소위 대학가에서 지금도 횡행하고 있는 사발식의 전통이 연암시대에도 있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술을 한번 마셨다 하면 반드시 취하게 되고, 취하면 바로 주정을 하게 되고, 주정을 하면 즉시 싸움질을 하게 되어 술집의 항아리와 사발들은 남아나질 않는다[故必一飮則醉 醉則輒酗 酗則輒致鬪敺 酒家之瓦盆陶甌 盡爲踢碎].” 이 또한 지금껏 면면히 이어지는 배달민족의 전통아닌가(^^).

 

알코올 중독의 기준은 술의 양이 아니다. 얼마를 먹었건 자기통제력이 상실되면, 그건 모두 알코올릭(alcoholic)’의 상태라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술문화는 범국민적 알코올릭을 지향하는 셈이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이 비슷한 소설 제목이 유행했던 기억이 난다. 맞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은 알지 못한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법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엽기적으로 술을 마시는지를 우리 자신은 알지 못한다. 다른 것과 견주어질 때, 그때 비로소 불을 보듯환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연암이 겨냥하고 있는 바도 바로 그것이었으리라.

 

이렇게 패러독스를 구사하고 있는 와중에도 연암은 이주민(李朱民)이라는 친구를 떠올린다. 술주정이 심해서 함께 동행하지 못했지만, “만리타향에서 술잔을 잡으니 뜬금없이 그 친구가 생각난다. 이주민이 오늘 이 시간 어느 술자리에 앉아 왼손으로 술잔을 잡고 만리타향에 노니는 나를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萬里他鄕 忽思故人 未知朱民今辰此刻 坐在何席 左手把杯 復能思此萬里遊客否].” 고질적 습속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해대면서도,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또 어쩌지 못하는 이 따뜻한 가슴! ‘알코올릭에 대해 한참 흥분하며 연암의 논의를 따라가고 있던 나 또한 이 대목에선 빙그레 미소를 짓지 않을 도리가 없다.

 

 

 

 

판첸라마의 동불도 받지 못하는 편협함

 

 

어떻든 이처럼 외부자 혹은 타자의 시선으로 우리를 보면, 전혀 예기치 않은, 혹은 보이지 않던 면목들이 클로즈 업된다. 시선의 전복을 통한 봉상스(bon sens)해체! 이런 식의 수법은 단지 풍속의 차원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을 평가할 때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열하에서 판첸라마가 동불(銅佛)을 하사했을 때, 조선 사신단이 마치 꿀단지에 손 빠뜨린 것처럼 당혹스러워하며 한바탕 소동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 일에 대해 연암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 구리 불상도 반선이 우리 사신을 위해 먼 길을 무사히 가도록 빌어주는 폐백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이라도 부처에 관계되는 일을 겪으면 평생 누가 되는 판인데, 하물며 이것을 준 사람이 바로 서번의 승려임에랴. 사신은 북경으로 돌아와서 반선에게서 폐백으로 받은 물건을 역관들에게 다 주었고, 역관들도 이를 똥이나 오물처럼 자신을 더럽힌다고 여기고 은자 90냥에 팔아서 일행의 마두에게 나누어주었고, 이 은자를 가지고는 술 한잔도 사서 마시지 않았다. 반선이 준 선물을 조촐한 물건이라고 굳이 말한다면 조촐하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다른 나라의 풍속으로 따져본다면 물정이 어두운 촌티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행재잡록(行在雜錄)

乃法王所以爲我使祈祝行李之上幣也 然而吾東一事涉佛 必爲終身之累 况此所授者 乃番僧乎 使臣旣還北京 以其幣物盡給譯官 諸譯亦視同糞穢 若將凂焉 售銀九十兩 散之一行馬頭輩 而不以此銀 沽飮一盃酒 潔則潔矣 以他俗視之 則未免鄕闇

 

 

이미 살펴보았듯이, 연암 역시 티베트 불교나 판첸라마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밀교적 분위기는 연암으로서도 흔쾌히 긍정하기 어려운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그 역사와 원리를 촘촘히 기록했을뿐더러, 이처럼 판첸라마의 선물에 대해서도 조선인들의 편협함에 대해 냉철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한 시선에서 보면 정사에서 마두배에 이르기까지 조선 사신단은 일종의 돌격대처럼 보인다. 이유도, 목적도 모른 채 소중화(小中華)주의의 깃발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 돌격대!

 

 

 

 

전족에 대한 시선

 

 

한족 여인들의 전족(纏足)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전족이란 여성들이 발을 작게 만들기 위해 발을 꼭꼭 싸매는 습속이다. 예쁘고 작은 발이야말로 가장 성적인 표징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금병매(金甁梅)를 보면, 여주인공 반금련의 걸음걸이를 연보(蓮步), 즉 연꽃 같은 발걸음에 비유하는 경우가 종종 나오는데, 그게 바로 이런 맥락이다.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그걸 위해선 아주 어릴 때부터 두 발을 조일대로 조여 성장을 멈추게 해야 했으니, 이 습속이야말로 여성에 대한 신체적 억압의 대표적 사례인 셈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중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전족의 거부를 핵심 강령의 하나로 채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이 철저히 한족의 습속이라는 점이다.

 

열하일기에 따르면, 지배집단인 만주족은 극구 금했으나 한족 여인들은 만주족과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법령을 어기면서까지 전족을 고집하고 있었다. 만주족에 의해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지자, 한족 남성들이 자신들은 만주족의 변발을 수용하는 대신, 여성들에게는 전족을 고수하도록 함으로써 서로 역할분담을 했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통치전략과는 다른 종류의 권력, 곧 습속이 하나의 억압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생생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한족이 통치할 때도 하위주체에 불과했던 여성에게 이미 망해버린 왕조의 전통을 사수하는 역사적 사명이 주어지다니.

 

어처구니없어 보이겠지만, 억압의 기호가 졸지에 저항의 징표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은 우리 시대에도 적지 않다. 이슬람권 여성들의 부르카(얼굴을 가리는 천)’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여성억압의 대표적 습속임에도,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 속에서 그것이 이슬람 문화의 상징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이슬람 여성들은 벗을 수도 없고, 뒤집어 쓸 수도 없는이중적 질곡에 빠지고 말았다. 한족 여성과 전족의 관계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아무튼 당시 중국의 정치적 배치상, 한족들의 입장에선 전족이란 마땅히 고수해야 할 전통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연암이 보기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낡은 관습일 따름이다.

 

 

한족 여인네들의 활굽정이처럼 생긴 신은 차마 눈뜨고 못 보겠더군요. 뒤뚱거리며 땅을 밟고 가는 꼴이 마치 보리씨를 뿌리는 듯 왼쪽으로 기우뚱 오른쪽으로 기우뚱, 바람도 하나 없는데 저절로 쓰러지곤 하니 참, 그게 뭔 짓인지 모르겠습디다.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漢女彎鞋 不忍見矣 以跟踏地 行如種麥 左搖右斜 不風而靡 是何貌樣

 

 

이처럼 어떤 유의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을 때, 사물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유일무이한 시점을 고집하는 한, 사물의 다양성과 이질성은 함몰되고 만다. 그가 보기에 초월적인 법칙은 없다. 가령, 사람들은 백로를 보고서 까마귀를 비웃지만, 까마귀의 검은 깃털도 해가 비치면 혹은 비취빛으로 혹은 석록빛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런데도 까마귀를 검은 빛에 가뒀을 뿐 아니라,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다시금 까마귀를 가지고서 천하의 온갖 빛깔에다 가두어놓고서 공연히 화를 내고 미워한다. 그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배치에 따라 유동하고 변화하는 차이들일 뿐이다.

 

 

 

 

말의 아수라장

 

 

그의 패러독스는 모든 차이들을 무화시켜 동일성으로 환원하려는 도그마에 대한 통렬한 웃음이 깔려 있다. “중요한 것은 이데아를 파면시키는 것이고, 이념적인 것은 높은 곳이 아니라 표면에 있다”(들뢰즈), 그의 언어가 가장 높은 잠재력에 도달하는 것도 이 역설의 열정에서이다.

 

물론 자신도 그 프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머와 개그의 주인공이 언제나 연암 자신이었듯이, 타자의 시선, 혹은 역설의 프리즘은 연암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투사된다.

 

 

사신을 따라서 중국에 들어가는 사람에겐 모름지기 부르는 호칭이 있다. 역관은 종사(從事)라 부르고, 군관은 비장(裨將)이라고 부르며, 나처럼 한가롭게 유람하는 사람은 반당(伴當)이라고 부른다. 소어(蘇魚)라는 물고기를 우리나라 말로는 밴댕이[盤當]’라고 하는데, ()과 반()의 음이 서로 같아서이다.

從使者入中國 須有稱號譯官 稱從事軍官 稱裨將閒遊 如余者 稱伴當 國言蘇魚稱盤當 盤與伴音同

 

압록강을 건너면 소위 반당은 은빛 모자의 정수리에 푸른 깃을 달고, 짧은 소매에 가벼운 복장으로 차림새를 갖춘다. 그러면 길가의 구경꾼들은 이를 가리키며 문득 새우라고 부르는데, 무엇 때문에 새우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무장한 남자를 부르는 별칭인 것으로 보인다. 지나가는 곳의 마을 꼬맹이들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일제히 가오리 온다. 가오리 온다고 외치며, 더러는 말꼬리를 따라다니며 다투어 외치는 바람에 귀가 따가울 정도이다. ‘가오리 온다라는 말은 고려인이 온다라는 뜻이다. 피서록(避暑錄)

旣渡鴨綠江則所謂伴當 銀頂翠羽 短袂輕裝 道傍觀者 指點輒稱蝦 不識爲何稱蝦 而蓋似是武夫之別號也 所過村坊 小兒群聚 齊呼哥吾里來哥吾里來 或隨馬尾 爭唱聒噪 哥吾里來者 高麗來也

 

 

경계를 넘자마자, 서로 다른 언어가 부딪히면서 일으키는 말의 아수라장이 시작된 것이다. 그걸 낱낱이 포착한 연암이 일행들에게 말한다. “이제 세 가지 물고기로 변하고 마는구먼[乃變三魚].” 그러자 사람들은 세 가지 물고기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何謂三魚]?” 한다. 연암은 조선의 길에서는 밴댕이라고 부르니 이는 소어라는 물고기요, 압록강을 건넌 이래로는 새우라고 부르니 새우도 역시 어족이고, 오랑캐 아이들이 떼를 지어서 가오리라고 외치니 이는 홍어가 아니던가[在道稱伴當 是蘇魚也 渡江以來 稱蝦 蝦亦魚族也 胡兒群呼哥吾里 是洪魚也]?” 이어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러고 나서 곧 말 위에서 시 한 수를 읊는다.

 

 

翠翎銀頂武夫如 은빛 모자 정수리에 푸른 깃을 꽂은 무부의 차림새로
千里遼陽逐使車 천리 먼 길 요양에서 사신의 수레를 뒤쫓노라
一入中州三變號 한번 중국 땅에 들자 세 번이나 호칭이 바뀌었으니
鯫生從古學蟲魚 속좁은 사람 예부터 자잘한 학문이나 배웠노라

 

 

무부, 고기 세 가지 ―― 이것이 이국인들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다. 그러나 자신은 그저 오래전부터 자잘한 공부벌레, 곧 하릴 없는 식자층의 일원일 뿐이다. 물론 그 어느 것도 연암의 진면목은 아니다. 그러나 굳이 그렇지 않다고 우길 것도 없다. 어차피 내가 누구인가는 타자의 호명 속에서 규정되는 법’. 쏘가리도 되었다 새우도 되었다 가오리도 되었다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타인들의 고루한 편향을 보는 건 쉽다. 그러나 그 시선을 자신에게 비추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자신을 기꺼이 타자의 프리즘 속에서 볼 수 있는 건 고정된 위치를 벗어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의 자유에 다름아니다. 연암의 패러독스가 한층 빛나는 건 바로 이런 자유의 공간에서이다.

 

 

 

 

인용

지도 / 목차

과정록 / 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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