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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역설(Paradox)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역설(Paradox)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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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

Paradox

 

 

둥근 사각형, 하얀 까마귀, 고독한 군중, 소리 없는 아우성…… 이런 문구들은 역설적인 표현의 사례다. 사각형이라면 그 정의상 모가 나야 하고, 까마귀는 하얄 수 없으며, 군중은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고독할 수 없고, 아우성은 시끄러운 소리를 뜻하므로 소리가 없을 수 없다. 이처럼 역설이란 그 자체로 모순을 빚을 수밖에 없는 진술을 가리킨다.

 

논리적으로 말하면 역설은 고전 논리학의 세 원리 가운데 배중률(排中律)에 위배되는 명제다나머지 두 원리는 모순율과 동일률이다. 배중률이란 어떤 명제가 성립하든가 하지 않든가 둘 중 하나일 뿐 그 중간은 없다는 원리인데, 이에 따르면 둥글거나 사각형이거나 둘 중 하나만 성립할 뿐 둘 다 성립할 수는 없다. 명백히 모순적인 명제를 폐기 처분하지 않고 역설이라는 개념으로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역설은 우선 듣는 사람의 주의를 환기시켜 신선하고 상상력에 찬 사고를 촉발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조지 오웰(George Orwel, 1903~1950)의 정치 풍자소설 동물농장에서는 동물들이 불평등한 집단농장을 혁명으로 뒤집었으나 결국 전체주의 체제를 낳고 말았다는 점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이런 역설이 등장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문학이나 예술에서의 역설과 달리 철학에서는 역설이 철학적 사유를 진행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대표적인 예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제논(Zenon of Elea, BC 495~430)의 두 역설이다. 하나는 화살의 역설이다.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면 시위를 떠난 화살은 우선 과녁과의 거리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지점을 통과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나머지 거리의 절반에 이를 것이다. 또 그 다음에는 남은 거리의 절반까지 갈 것이다. 이런 식으로 추론하면 화살은 계속 나아가지만 결국 과녁에는 닿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떤 지점이든 남은 거리의 절반을 끊임없이 지나쳐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역설은 아킬레우스와 거북의 경주인데, 이것도 내용은 비슷하다. 고대의 만능 스포츠맨인 아킬레우스보다 느림보의 대명사인 거북이가 조금만 먼저 출발해도 아킬레우스는 영원히 거북을 따라잡지 못한다. 아킬레우스가 거북이 있던 곳까지 달려가면 거북은 거기서 몇 걸음이라도 더 가 있다. 다시 아킬레우스가 접근하면 거북은 걸음을 아예 멈추지 않는 한 아주 조금이라도 앞서간다. 이런 운동이 아무리 되풀이되어도 아킬레우스는 결국 거북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제논이 이런 역설을 전개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의 의도는 만물이 변화한다고 본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os, BC 540~480)의 사상을 반박하고 운동이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 515~)의 사상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논의 역설은 그 뒤 수많은 증명과 반증을 낳았으며, 오늘날의 고등수학에서도 무한의 개념을 설명할 때 좋은 예로 사용된다제논의 역설은 무한급수의 계산법으로 해결된다. 화살이 간 거리를 무한급수로 더하면 화살은 결국 과녁에 닿게 된다.

 

 

 

 

현대의 논리학을 확립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수학의 집합 개념을 이용한 역설의 예를 보여준다. 자신 이외에 모든 것을 포함하는 집합 A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집합에는 자신이 포함될까, 되지 않을까? 만약 A에 자신이 포함된다면 가정에 위배되고, 만약 A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가정에 의해 A의 요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A는 역설적 집합이 된다.

 

논리적 역설은 성서에서도 발견된다. 신약성서의 디도서에는 그레데인(크레타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이 경우 그 선지자 본인이 크레타인이므로 그의 말을 긍정한다면 그가 한 말은 거짓이 된다. 이것은 원래 고대 크레타의 에피메니데스라는 사람이 제기한 역설이었다. “내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라는 명제가 참일 경우 내 말은 참일까, 거짓일까?

 

논리적 훈련이나 문학적 수사의 목적이 아니라면 역설은 무의미하다. 그 이외의 경우에 역설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권력을 통해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해석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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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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