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의 색채 그걸 응원해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
박지원(朴趾源)
달사와 속인
達士無所恠, 俗人多所疑. 所謂少所見, 多所恠也. 夫豈達士者, 逐物而目覩哉? 聞一則形十於目, 見十則設百於心, 千恠萬奇, 還寄於物而己無與焉. 故心閒有餘, 應酬無窮. 所見少者, 以鷺嗤烏, 以鳧危鶴. 物自無恠己, 廼生嗔一事不同, 都誣萬物.
까마귀의 검은색 속에 감춰진 여러 색
噫! 瞻彼烏矣, 莫黑其羽. 忽暈乳金, 復耀石綠. 日映之而騰紫, 目閃閃而轉翠. 然則吾雖謂之蒼烏可也, 復謂之赤烏, 亦可也. 彼旣本無定色, 而我乃以目先定. 奚特定於其目? 不覩而先定於其心.
검기 때문에 거울이 된다
噫! 錮烏於黑足矣, 廼復以烏錮天下之衆色. 烏果黑矣, 誰復知所謂蒼赤乃色中之光耶? 謂黑爲闇者, 非但不識烏, 並黑而不知也. 何則? 水玄故能照, 漆黑故能鑑. 是故有色者, 莫不有光, 有形者莫不有態.
정형화된 아름다움은 없다
觀乎美人, 可以知詩矣. 彼低頭, 見其羞也; 支頤, 見其恨也; 獨立, 見其思也; 顰眉, 見其愁也. 有所待也, 見其立欄干下; 有所望也, 見其立芭蕉下. 若復責其立不如齋坐不如塑, 則是罵楊妃之病齒, 而禁樊姬之擁髻也, 譏蓮步之妖妙, 而叱掌舞之輕儇也.
계자의 시는 까마귀의 검은색이다
余侄宗善字繼之. 工於詩, 不纏一法, 百體俱該, 蔚然爲東方大家. 視爲盛唐, 則忽焉漢ㆍ魏, 而忽焉宋明. 纔謂宋明, 復有盛唐. 嗚呼! 世人之嗤烏危鶴, 亦已甚矣. 而繼之之園烏忽紫忽翠. 世人之欲齋塑美人, 而掌舞蓮步, 日益輕妙, 擁髻病齒, 俱各有態, 無惑乎其嗔怒之日滋也. 世之達士少而俗人衆, 則默而不言可也. 然言之不休何也?
噫! 燕岩老人, 書于烟湘閣. -『燕巖集』 卷之七
해석
달사와 속인
達士無所恠, 俗人多所疑.
달사(達士)는 괴이하게 여기는 게 없고 속인(俗人)은 의심나는 게 많다.
所謂少所見, 多所恠也.
말했다시피 본 것이 적기 때문에 괴이한 것이 많은 것이다.
夫豈達士者, 逐物而目覩哉?
어찌하여 달사가 사물마다 따라다니며 눈으로 보았겠는가?
聞一則形十於目, 見十則設百於心,
하나를 들으면 눈에 열 가지가 드러나고 열 가지를 보면 마음에 백 가지가 갖춰져
千恠萬奇, 還寄於物而己無與焉.
온갖 괴이한 것과 수많은 기이한 것이 도리어 사물에 붙기에 나는 관여할 게 없다.
故心閒有餘, 應酬無窮.
그러므로 마음은 한가롭고 여유로워 응수함이 무궁해진다.
所見少者, 以鷺嗤烏,
그러나 본 것이 적은 사람은 백로의 흰 것을 보고 새까만 까마귀를 비웃고
以鳧危鶴.
오리의 안정감 있는 다리를 보고 학의 길쭉한 다리를 위태롭게 여긴다.
物自無恠己, 廼生嗔一事不同,
사물은 절로 괴이함이 없는데도 자기가 곧바로 화내고 하나의 사물이라도 같지 않으면
都誣萬物.
모든 만물을 비방한다.
까마귀의 검은색 속에 감춰진 여러 색
噫! 瞻彼烏矣, 莫黑其羽.
아! 저 까마귀를 보면 깃털보다 검은 건 없다.
忽暈乳金, 復耀石綠.
그러다 홀연히 유금색(乳金色)으로 빛나고 다시 석록색(石綠色)으로 반짝인다.
日映之而騰紫, 目閃閃而轉翠.
해가 그곳에 비치면 붉은색을 띠고, 눈이 번쩍번쩍하면 비취색으로 바뀐다.
然則吾雖謂之蒼烏可也,
그러니 내가 비록 ‘푸른 까마귀[蒼烏]’라고 말하더라도 괜찮은 것이고,
復謂之赤烏, 亦可也.
다시 ‘붉은 까마귀[赤烏]’라고 말하더라도 또한 괜찮다.
彼旣本無定色, 而我乃以目先定.
저것은 이미 본래 정해진 색 따위는 없는데도 내가 곧바로 시각으로 먼저 정한 것이다.
奚特定於其目?
그렇다면 어찌 다만 보는 것으로 정한 것만 있겠는가?
不覩而先定於其心.
보지 않고 먼저 마음으로 정한 것도 있는데 말이다.
검기 때문에 거울이 된다
噫! 錮烏於黑足矣,
아! 까마귀를 검은색에 가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廼復以烏錮天下之衆色.
다시 까마귀로 천하의 모든 색을 가둬버렸다.
烏果黑矣,
까마귀는 과연 검긴 하나
誰復知所謂蒼赤乃色中之光耶?
누가 다시 앞에서 말했던 푸른색과 붉은색이 곧 색 가운데에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겠는가?
謂黑爲闇者,
검은 것을 어둡다고 말하는 사람은
非但不識烏, 並黑而不知也.
까마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아울러 검은 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何則? 水玄故能照, 漆黑故能鑑.
왜인가? 물은 검기 때문에 비출 수 있고 색칠은 검기 때문에 거울역할을 할 수 있다.
是故有色者, 莫不有光,
이런 이유로 색이 있는 것 중에 빛이 있지 않음이 없고
有形者莫不有態.
형체가 있는 것 중에 모습이 있지 않은 게 없다.
정형화된 아름다움은 없다
觀乎美人, 可以知詩矣.
미인을 보면 시를 알 수 있다.
彼低頭, 見其羞也;
미인이 머리를 숙이면 부끄러워함을 볼 수 있고
支頤, 見其恨也;
뺨을 받치면 한스러워함을 볼 수 있으며,
獨立, 見其思也;
홀로 서 있으면 그리워함을 볼 수 있고,
顰眉, 見其愁也.
눈썹을 찡그리면 근심스러워함을 볼 수 있다.
有所待也, 見其立欄干下;
기다린다는 것은 난간 아래에 서 있는 데서 볼 수 있고
有所望也, 見其立芭蕉下.
바라는 게 있다는 것은 파초잎 아래 서 있는 데서 볼 수 있다.
若復責其立不如齋坐不如塑,
만약 다시 서 있되 재계한 듯하지 않다고 하며 앉아 있되 인형처럼 하지 않는다고 꾸짖는다면,
則是罵楊妃之病齒,
이것은 양귀비가 치통으로 찡그리는 것【양귀비가 이빨이 아파 손을 뺨에 대고 얼굴을 찌푸리니 그 자태가 더욱 고혹적이었다. 이 일을 두고 풍진(馮振)의 「양비병치도(楊妃病齒圖)」에는 “화청궁에서는 이빨만 아팠으나, 마외파에서는 한 몸이 아팠고, 어양땅서 북소리 울려오더니만 천하가 아팠도다[華淸宮一齒痛, 馬嵬坡一身痛, 漁陽鼙鼓動地來, 天下痛. -明 陶宗儀, 『輟耕錄』「題跋」].”라 하였다】을 욕하는 것이고,
而禁樊姬之擁髻也,
번희가 상투를 잡고 울지【한나라 영현(伶玄)의 첩 번통덕(樊通德)이 재색(才色)이 있었는데, 조비연(趙飛燕) 자매의 슬픈 운명을 이야기하다가 촛불을 돌아보고 손으로 쪽진 머리를 감싸 쥐며 구슬피 눈물을 흘렸다.(『趙飛燕外傳』, 「伶玄自序」). “번통덕의 처량히 여김 심함을 알겠거니, 쪽진 머리 만지며 말없이 돌아가지 못함 원망했네[遙知通德凄凉甚, 擁髻無言怨未歸. -蘇東坡, 「九日舟中望見有美堂上魯少卿飮處以詩戱之」].”라 하였고, “지난번 몇 줄기 눈물은 쪽진 머리 감싸쥠을 인함이니, 그때에 한 번 돌아봄 나라를 위태롭게 했었지[昨淚幾行因擁髻, 當年一顧本傾城. -明 徐渭, 「燕子樓」].”이라 했다】 못하도록 하는 것이며,
譏蓮步之妖妙,
미인 걸음걸이가 아리땁고 오묘한 것【폐제(廢帝) 동혼후(東昏侯)가 금으로 연꽃을 만들어 땅에 붙여두고 애첩 반비(潘妃)로 하여금 그 위를 걷게 하고는 걸음걸음 마다 연꽃이 피어난다고 했다. 연보(蓮步)는 ‘사뿐사뿐 걷는 미인의 걸음걸이(『南史』 「齊紀」下)’를 말한다. “흐트러진 자태도 마음 어지럽히긴 부족하건만, 풍류는 그때에 아낄만 했네. 가는 허리 어여쁘게 금련(金蓮) 위를 걷더니만, 임금 그르치고 나라 위태롭게 한 일, 오히려 지금까지 전해온다네[縱態迷心不足, 風流可惜當年. 纖腰婉約步金蓮. 妖君傾國, 猶自至今傳. -後蜀 毛熙震, 「臨江仙」].”이라 하였는데, 그 아름다운 자태로 결국 임금을 그르치고 말았다】을 비난하는 것이고,
而叱掌舞之輕儇也.
손뼉 치며 추는 춤의 경쾌하고 빠름【장무(掌舞)는 한(漢) 때 북방에서 수입된 춤사위로, 손뼉을 치며 빠른 템포로 추는 호선무(胡旋舞)를 가리킴. 재래의 아무(雅舞)가 장엄 엄숙했던데 반해, 옷자락을 땅에 끌며 경쾌한 스텝과 빠른 박자로 빙빙 돌며 추는 호무(胡舞)는 당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백거이(白居易)의 「호선녀(胡旋女)」는 그 춤사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이다】을 질타하는 것이다.
계자의 시는 까마귀의 검은색이다
余侄宗善字繼之. 工於詩,
나의 조카 종선(宗善)의 자는 계지(繼之)니, 시를 잘 지어
不纏一法, 百體俱該,
하나의 시법에 얽매이지 않았고 온갖 시체(詩體)에 모두 해박했으니,
蔚然爲東方大家.
울창하게 동방의 대가가 되었다.
視爲盛唐, 則忽焉漢ㆍ魏,
보면 성당의 시풍을 보이다가 홀연히 한나라와 위나라의 시풍이고,
而忽焉宋ㆍ明.
그러다 홀연히 송나라와 명나라의 시풍이 된다.
纔謂宋明, 復有盛唐.
겨우 ‘송나라와 명나라의 시풍’이라고 단정 지어 말하면 다시 성당풍이 있다.
嗚呼! 世人之嗤烏危鶴, 亦已甚矣.
아! 세상 사람들이 까마귀를 비웃고 학을 위태롭게 여기는 게 또한 이미 심하다.
而繼之之園烏忽紫忽翠.
그러나 계지의 동산에선 까마귀가 홀연히 붉은색을 띠었다가 홀연히 비취색을 띤다.
世人之欲齋塑美人,
세상 사람들이 미인을 재계한 듯하려 하고 인형 같도록 하려 하지만
而掌舞蓮步, 日益輕妙,
손뼉 치며 추는 춤과 미인의 걸음걸이는 날로 더욱 경쾌하고 오묘해지며
擁髻病齒, 俱各有態,
상투를 잡고 우는 것과 치통으로 찡그리는 것은 모두 각각 모습이 있으니
無惑乎其嗔怒之日滋也.
화내고 성질내는 날이 늘어나리란 건 의심할 게 없으리라.
世之達士少而俗人衆, 則默而不言可也.
세상에 달사(達士)는 적고 속인(俗人)은 많으니 침묵하고서 말하지 않는 것이 괜찮겠다.
然言之不休何也?
그러나 말을 쉬지 않은 것은 왜인가?
噫! 燕岩老人, 書于烟湘閣. -『燕巖集』 卷之七
아! 연암 노인이 연상각에서 쓴다.
인용
1. 달사와 속인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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