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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그때의 지금인 옛날, 통변론(通變論) - 9. 도로 눈을 감아라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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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그때의 지금인 옛날, 통변론(通變論) - 9. 도로 눈을 감아라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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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도로 눈을 감아라

 

 

이 책의 맨 처음연암(燕巖)으로 시작했으니, 이제 연암으로 끝맺겠다.

 

 

본분으로 돌아가라 함이 어찌 문장만이리요? 일체의 모든 일이 모두 그렇지요. 화담(花潭) 선생이 길을 가다가 집을 잃고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더랍니다. “너는 왜 우는가?” 대답하기를, “저는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이제 스무 해나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와 길을 가는데 갑자기 천지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는지라 기뻐 돌아가려 하니, 골목길은 갈림도 많고 대문은 서로 같아 제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웁니다.” 선생이 말하기를, “내가 네게 돌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수 있으리라.” 이에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려 걸음을 믿고 도달할 수 있었더랍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빛깔과 형상이 전도되고, 슬픔과 기쁨이 작용이 되어 망상이 된 것이지요. 지팡이를 두드리며 걸음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분수를 지키는 관건이 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보증이 됩니다.

還他本分, 豈惟文章. 一切種種萬事摠然. 花潭出, 遇失家而泣於塗者曰: “爾奚泣?” 對曰: “我五歲而瞽, 今二十年矣. 朝日出往, 忽見天地萬物淸明, 喜而欲歸, 阡陌多歧, 門戶相同, 不辨我家, 是以泣耳.” 先生曰: “我誨若歸. 還閉汝眼, 卽便爾家.” 於是, 閉眼扣相, 信步卽到. 此無他. 色相顚倒, 悲喜爲用, 是爲妄想. 扣相信步, 乃爲吾輩守分之詮諦, 歸家之證印.

 

 

답창애(答蒼厓) 2이다. 20년 만에 눈이 열린 장님에게 다시 눈을 감으라니, 이것이 무슨 말인가? 기적 같이 열린 광명한 세상을 거부하란 말인가? 연암이 던지는 이 새로운 화두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될 수 없을진대, 내 집을 찾아가지 못할진대 열린 눈은 망상이 될 뿐이다. 소화하지 못하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우리야말로 눈뜬 장님이 아니었던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서구의 빛깔과 형상에 망상을 일으켜, 어느 골목이 바른 골목인지, 어느 집 대문이 제 집인지도 모르고 길가에서 망연자실 울고 있는 눈뜬 장님이 아니었던가. 아니 우리는 지금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울고 서 있는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설명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 눈뜬 장님은 아니었던가.

 

연암은 간명하게 일러준다. 도로 눈을 감아라. 그러면 네 집을 찾으리라. 나는 그의 이 말을 외래의 것을 버려 자신의 소아(小我) 속에 안주하라는 말로 듣지 않는다. 주체의 자각이 없는 현상의 투시는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내가 본래 있던 그 자리, 미분화된 원형질의 상태로 돌아가라. 눈에 현혹되지 말라. 네 튼튼한 발을, 네 듬직한 지팡이를 믿어라. 갑자기 눈이 열리기 전 내 앞에 놓여 있던 세계, 익숙해져 있던 세계, 나와 사물 사이에 아무런 간극도 없던 세계로 돌아가라. 그 세계가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래의 제 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다음 차차 새롭게 열리는 빛의 세계를 바라볼 일이다. 문학은 발전하는가. 다만 변화해 왔을 뿐이다. 다시 눈을 감아라. 먼저 네가 들어가야 할 대문부터 찾아라.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지팡이 자국마다 고이는 봄비

2. 거미가 줄을 치듯

3. 거미가 줄을 치듯

4. 그때의 지금인 옛날

5. 그때의 지금인 옛날

6.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

7.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

8. 도로 눈을 감아라

9. 도로 눈을 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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