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도로 눈을 감아라②
이 책의 맨 처음을 연암(燕巖)으로 시작했으니, 이제 연암으로 끝맺겠다.
본분으로 돌아가라 함이 어찌 문장만이리요? 일체의 모든 일이 모두 그렇지요. 화담(花潭) 선생이 길을 가다가 집을 잃고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더랍니다. “너는 왜 우는가?” 대답하기를, “저는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이제 스무 해나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와 길을 가는데 갑자기 천지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는지라 기뻐 돌아가려 하니, 골목길은 갈림도 많고 대문은 서로 같아 제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웁니다.” 선생이 말하기를, “내가 네게 돌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수 있으리라.” 이에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려 걸음을 믿고 도달할 수 있었더랍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빛깔과 형상이 전도되고, 슬픔과 기쁨이 작용이 되어 망상이 된 것이지요. 지팡이를 두드리며 걸음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분수를 지키는 관건이 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보증이 됩니다.
還他本分, 豈惟文章. 一切種種萬事摠然. 花潭出, 遇失家而泣於塗者曰: “爾奚泣?” 對曰: “我五歲而瞽, 今二十年矣. 朝日出往, 忽見天地萬物淸明, 喜而欲歸, 阡陌多歧, 門戶相同, 不辨我家, 是以泣耳.” 先生曰: “我誨若歸. 還閉汝眼, 卽便爾家.” 於是, 閉眼扣相, 信步卽到. 此無他. 色相顚倒, 悲喜爲用, 是爲妄想. 扣相信步, 乃爲吾輩守分之詮諦, 歸家之證印.
「답창애(答蒼厓) 2」이다. 20년 만에 눈이 열린 장님에게 다시 눈을 감으라니, 이것이 무슨 말인가? 기적 같이 열린 광명한 세상을 거부하란 말인가? 연암이 던지는 이 새로운 화두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될 수 없을진대, 내 집을 찾아가지 못할진대 열린 눈은 망상이 될 뿐이다. 소화하지 못하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우리야말로 ‘눈뜬 장님’이 아니었던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서구의 빛깔과 형상에 망상을 일으켜, 어느 골목이 바른 골목인지, 어느 집 대문이 제 집인지도 모르고 길가에서 망연자실 울고 있는 눈뜬 장님이 아니었던가. 아니 우리는 지금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울고 서 있는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설명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 눈뜬 장님은 아니었던가.
연암은 간명하게 일러준다. 도로 눈을 감아라. 그러면 네 집을 찾으리라. 나는 그의 이 말을 외래의 것을 버려 자신의 소아(小我) 속에 안주하라는 말로 듣지 않는다. 주체의 자각이 없는 현상의 투시는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내가 본래 있던 그 자리, 미분화된 원형질의 상태로 돌아가라. 눈에 현혹되지 말라. 네 튼튼한 발을, 네 듬직한 지팡이를 믿어라. 갑자기 눈이 열리기 전 내 앞에 놓여 있던 세계, 익숙해져 있던 세계, 나와 사물 사이에 아무런 간극도 없던 세계로 돌아가라. 그 세계가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래의 제 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다음 차차 새롭게 열리는 빛의 세계를 바라볼 일이다. 문학은 발전하는가. 다만 변화해 왔을 뿐이다. 다시 눈을 감아라. 먼저 네가 들어가야 할 대문부터 찾아라.
인용
2. 거미가 줄을 치듯①
3. 거미가 줄을 치듯②
4. 그때의 지금인 옛날①
5. 그때의 지금인 옛날②
8. 도로 눈을 감아라①
9. 도로 눈을 감아라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