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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기호(Sign)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기호(Sign)

건방진방랑자 2021. 12. 1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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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Sign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을 보고, 출근길에는 라디오나 MP3로 음악을 듣고, 직장에 가서는 서류를 읽는다. 점심시간이 되면 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 식당을 찾고, 오후에는 회사 차를 타고 수많은 도로 표지판을 지나 거래처로 간다. 저녁에 퇴근하면 친구들과 영화를 한 편 보고, 집에 와서는 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든다. 이 과정에서 접하는 것들은 모두 기호(記號).

 

현대 생활은 기호로 가득하다. 신문, 서류, 책 같은 문자와 언어의 기호, 음악 기호, 도로 표지판, 영화와 TV의 영상 기호 등등 우리는 무수한 기호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기호의 일차적인 목적은 소통(疏通)이다. 사회가 단순하면 소통의 과정도 단순하다. 원시사회는 집단의 규모가 작고 삶의 과정이 단순했기 때문에 그다지 많은 기호가 필요 없었다. 대부분의 소통은 구성원들 간의 대화로 가능했다. 간혹 제사를 지낼 때 신의 뜻을 알기 위한 기호 정도가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현대 사회, 특히 도시에서는 면식(面識)도 없는 사람들끼리도 소통이 필요하므로 객관적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기호가 사용된다. 그리고 그 기호 자체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추상화된다.

 

그런데 기호의 시대인 현대에 이르러 기호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기호가 소통을 매개해준다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 일단 이런 의문은 어리석게 들린다. 횡단보도의 표지판은 문명권의 어느 나라 사람이 보든 쉽게 그 의미를 알 수 있으며, 음악은 만국 공용어라는 닉네임처럼 누구나 쉽게 듣고 즐길 수 있다. 기호는 분명히 소통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언어의 장벽마저 해결해주므로 편리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문제시되는 것은 정작 소통의 기능에서 핵심이 되는 언어다. 언어 기호는 과연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는 수단일까? 이런 의문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프랑스의 구조언어학자인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 그는 기호를 의미하는 것(기표, signifiant)과 의미되는 것(기의, signifié)으로 구분하고, 양자의 관계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필연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언어기호가 지시 대상을 가리킨다고 보는 전통적인 관점을 뒤집은 것이다.

 

나무라는 말이 나무를 가리키고 바위라는 말이 바위를 뜻하는 것은 당연한데, 대체 그게 무슨 말일까? 소쉬르는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의 말을 빌려 개는 짖어도 개라는 낱말은 짖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마당에서 뛰노는 실제의 개(기의)를 개라는 이름(기표)으로 불러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개를 소나 닭으로 바꿔 불러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럼 개를 개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뭘까? 그런 이유는 없다. 그것은 순전한 우연이다. 개를 개라고 부르는 것은 개라는 낱말이 지시하는 대상, 즉 실제 개와 관계가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언어 체계에서 정해진 약속일 따름이다. 여기서 소쉬르는 차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끄집어낸다. 개는 소나 말이 아니기 때문에 개다. 목요일은 수요일이나 금요일과 다르기 때문에 목요일일 뿐이다.

 

전통적인 견해에 의하면 개념이나 이름은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과 밀착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소쉬르는 그 생각이 착각이고 실은 차이가 대상을 설명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실체적 사고가 아니라 관계적 사고다. 남극은 북극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며, 중위는 대위와 소위 사이의 계급이라는 의미 이외에 실체적인 정의를 가지지 않는다. 기호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실체(지시 대상)가 아니라 다른 기호들과의 관계(차이).

 

 

이런 의미의 전복은 숨은 것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관계는 실체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우리는 실체적 사고에 익숙하기 때문에 실체의 배후에 숨은 관계를 포착하지 못한다. 기호를 실체로 간주하면 기호와 지시 대상을 무의식적으로 일체화시키기 때문에 그 기호의 본래 의미를 나타내는 맥락을 놓치게 되며, 이른바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그래, 너 잘나서 좋겠다는 친구의 빈정거리는 말을 액면 그대로, 즉 실체적으로 이해하면 기분이 좋을지도 모르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곧바로 왕따가 될 것이다.

 

기호를 해석할 때 기호 자체보다 기호를 둘러싼 맥락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현대 사회에서 기호가 지니는 다양한 의미와 힘을 말해준다. 오늘날에는 과거처럼 권력이 노골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기호를 통해 은밀하게 행사된다. 이런 기호의 권력에 착안한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는 기호가치의 개념으로 현대 사회의 특징을 설명한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치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구분한 것은 생산의 관점에서 가치를 바라본 것이었다. 이것을 소비의 관점으로 바꾸면 기호가치의 의미가 드러난다. 고급 자동차의 대명사인 BMW나 벤츠가 일반 자동차보다 특별히 좋은 것은 아니다. 물론 안전도나 승차감이 더 좋기는 하겠지만 그런 것만으로는 엄청난 가격 차이를 다 설명하지 못한다. 고급 자동차를 선호하는 대다수 소비자의 진정한 의도는 바로 기호가치에 있다.

 

기호가치는 문화권력을 상징한다. BMW나 벤츠는 소유자의 신분과 권력, 부와 지위를 나타낸다. 여기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고급 자동차라는 기호는 실체적 지시 대상 - 성능, 안전도 등 - 과는 무관하며, 다른 기호들과의 관계 - 일반 자동차보다 훨씬 고급이라는 특성 -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보드리야르는 그런 강력한 물질성을 가지는 기호의 억압적 성격에 주목한다. 현대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는 마르크스의 시대처럼 생산 과정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게 아니라 기호로 위장되고 기호를 통해 재생산된다. 따라서 진정한 해방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라 기호로부터 벗어나는 기호 혁명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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