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원래의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이 열린다
▲ 다섯째 날 경로: 장터목 대피소~ 천왕봉 ~ 장터목 대피소 ~ 중산리 탐방안내소
원랜 천왕봉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치밭목 대피소에 가서 점심 겸 저녁을 먹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닥친 것이다.
계획이 변경되다
천왕봉 근처에 다다르자 건호가 부리나케 오더니, 심각한 투로 “올라오는 길에 등산객에게 물어보니, 치밭목 대피소는 난방을 해주지 않는대요. 그래서 거기서 자는 건 엄청 힘들거래요. 그럴 바에야 치밭목에서 묵지 말고 아예 털보농원까지 가서 쉬는 게 어때요?”라고 말하는 거였다. 그 말인 즉은, 이틀에 걸려서 끝날 여행을 하루 만에 마무리하자는 것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끝난다면 환영할 일이지만, 우선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아이들이 반나절 만에 내려갈 수 있는가 하는 거였고, 두 번째로는 내일로 예약되어 있는 것을 오늘로 옮길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내려가는 것은 조금만 서두르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고, 털보농원에 전화를 해보니 오늘 와도 좋다는 대답을 들었다.
계획이 바뀌니,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치밭목까지 가는 거야 쉬엄쉬엄 가도 되지만, 아예 하산하려면 일반적으로 4시간 30분(8.8㎞)이 걸린다고 하니,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왕봉에 올랐다는 흥분을 느낄 새도 없이 바로 하산준비를 해야 했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상황에 대해 알려주니, 오히려 좋다는 반응이 먼저 나오더라. 아무래도 지리산에서 씻을 수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기에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을 테다.
▲ 정상에서 회의를 통해 오늘 바로 하산하기로 했다. 정상엔 운해가 펼쳐져 있더라.
계획한 길이 막혔다고? 아니, 새 길이 열린 거야!
그런데 치밭목으로 향하는 길목에 도착하여 보니, 글쎄 통행로가 막혀 있는 것이다. 오늘부터 산불예방 때문에 종주 코스를 통제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치밭목 구간까지 통제하는지는 몰랐다. 애초의 계획대로 오늘 치밭목에서 묵으려 했어도 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지리산은 봄철(2월~4월)과 겨울철(11월~12월)에 통제한다고 하니, 미리 확인하고 산행계획을 짜야한다.
▲ 탐방로를 통제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잘 알아보고 가야 한다.
원래 가려던 길은 막혔지만, 그 때문에 다른 길을 찾게 되었다. 때론 ‘가려 했던 길이 막히면 얼마나 막막할까?’하는 걱정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길은 어느 곳으로든 열려 있었으며, 가려는 마음만 있다면 길이 막혔다고 못 가는 건 아니다. 길은 막히는 게 아니라, 내가 정해놓은 길만 막혀 있을 뿐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정해놓은 길’을 버릴 수만 있다면, 수많은 다른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건호와 이야기하여 중산리 탐방로쪽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정했다. 여기서부터는 계속 내려가는 구간이니, 건호와 승빈이를 먼저 보내 털보농원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라고 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내려가기로 했다.
과연 반나절 만에 하산하여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시작할 때의 두려움은 온데간데없고 어느덧 마무리라고 생각하니, 꿈만 같았고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것’만 같았다.
▲ 치밭목 대피소로 향하는 길이 막혀 로터리 대피소로 향하는 길을 택했다.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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