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어휘놀이터 (1296)
건빵이랑 놀자
예문유취(藝文類聚) 목차 구양순(歐陽詢) 등 천부(天部) 천(天)일(日)월(月)성(星)운(雲)풍(風)설(雪)우(雨)제(霽)뢰(雷)전(電)무(霧)홍(虹) 세시부(歲時部) 춘(春)하(夏)추(秋)동(冬)원정(元正)인일(人日)정월십오일(正月十五日) 월회(月晦)한식(寒食)삼월삼일(三月三日)오월오일(五月五日)칠월칠일(七月七日)칠월십오(七月十五)구월구일(九月九日)사(社)복(伏)열(熱)한(寒)납(臘)율(律)력(曆) 지부(地部) 지(地)야(野)관(關)강(岡)암(巖)협(峽)석(石)진(塵) 주부(州部) 기주(冀州)양주(楊州)형주(荊州)청주(靑州)서주(徐州)연주(兗州)예주(豫州)옹주(雍州)익주(益州)유주(幽州)병주(幷州)교주(交州) 군부(郡部) 하남군(河南郡)경조군(京兆郡)선성군(宣城郡)회계군(會稽郡) 산부(山部) 총재산(總..
어휘 사전 목차 ㄱ 가각간갈감갑강개객갱거건걸검겁게격견결겸경계 고곡곤골공과곽관괄광괘괴괵굉교 구국군굴궁권궐궤귀규균귤 극근금급긍 기길김 ㄴ 나낙난남납낭내냉 노녹논농뇌 누눈눌늑늠능 니 ㄷ 다단달담답당대 덕도독돈돌동 두둔 득등 ㄹ ㅁ 마막만말망매맥맹 멱면멸명 모목몰몽묘무묵문물 미민밀 ㅂ 바박반발방배백 번벌범법벽변별병 보복본봉 부북분불붕비빈빙 ㅅ 사삭산살삼삽상새색생서석선설섬섭성세 소속손솔송쇠쇄 수숙순술숭 슬습승시식신실심십 쌍씨 ㅇ 아악안알암압앙애액앵야약양 어억언얼엄업여역연열염엽영예 오옥온올옹와완왈왕왜외 요욕용우욱운울웅원월위유육윤율융 은을음읍응의이익인일임입잉 ㅈ 자작잔잠잡장재쟁 저적전절점접정제 조족존졸종좌 주죽준줄중 즉즐즙증 지직진질짐집징 ㅊ 차착찬찰참창채책 처척천철첨첩청체 초촉촌총최 추축춘출충췌취 측층 치친칠침칩칭..
개념어 사전 목차 ㄱ 책 머리에가상현실가치감각감정개념경험계급계급의식계몽주의고독한 군중공동체공리주의관념론관료제관용관음증교양구조주의국가권력귀납/연역그리스도교근본주의근친상간기시감기호 ㄴ 농업혁명노동 ㄷ 달력담론데우스 엑스 마키나도도가동일자/타자디아스포라 ㄹ 레세페르리비도 ㅁ 마녀사냥마르크스주의모노가미/폴리가미모더니즘모순목적론뫼비우스의 띠무의식묵가문화권력문화상대주의문화제국주의물신성물자체미네르바의 부엉이미디어미메시스미장센민족주의 ㅂ 법가변증법보이지 않는 손불교불확정성 원리빅뱅빅브라더빨치산 ㅅ 사관사서사실주의사차원사회계약사회구성체사회주의/공산주의삼위일체상대성상품상호주관성생산생체권력성서소수자소외식민사관신신분신자유주의신화실존심포지엄 ㅇ 아니마/아니무스아비튀스아폴론형/디오니소스형아프리오리/아포르테리오리앙시앵레짐약한 고리..
환경 Environment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인간을 신이 창조한 세계의 주인으로 규정했다. 인간은 지상에서 신을 대리하는 역할이었으므로 신이 부여한 권리를 바탕으로 자연을 지배할 수 있었다. 자연환경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 탄생한 도가 사상은 인간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의 순리에 따라 ..
홀로코스트 Holocaust 일제강점기에서 1970년대까지 교회 운동과 민족 운동을 이끌었던 함석헌(咸錫憲, 1901~1989)은 일찍이 베트남과 우리 민족을 ‘수난의 여왕’이라 부르며 역사적으로 크나큰 고통을 받은 대표적인 민족으로 꼽았다. 그러나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큰 수난을 당한 민족은 역시 유대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고향을 잃고 세계 각지로 흩어진 이후 유대인은 가는 곳마다 차별과 학대에 시달렸다(→ 디아스포라). 더욱이 유대인은 그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은 나라의 정부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서도 탄압과 배척을 받았다. 그 두 가지가 합쳐진 결과로 일어난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은 원래 번제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홀로코스트라는 용어를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뜻의 고유명사로 만들었다. 히틀러..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노는 것이 직업이라면 언뜻 부러워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로 먹고 사는 연예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노는 날에 일해야 한다. 직업적 운동선수는 휴일에 더욱 열심히 경기를 해야 한다. 경마의 기수나 프로게이머는 남들이 즐기는 경주나 컴퓨터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대부분 일과 놀이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놀 여유가 전혀 없이 일만 해야 하는 사람도 안됐지만 반대로 할 일이 전혀 없어 놀아야만 하는 사람도 딱하다.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의 소설 『구토』의 주인공인 로캉탱은 놀면서 살 수 있는 연금 생활자다. 그는 남아도는 시간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롤르봉 후작이라는 프랑스..
형이상학 Metaphysics 과학의 탐구 방식과 철학의 탐구 방식은 다르다. 과학은 관찰에 의거하는 반면 철학은 사유의 힘으로 진리를 찾는다. 철학의 분야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사유에 의존하는 분야, 그런 의미에서 가장 철학적인 분야가 형이상학이다. 형이상학은 두 가지 어원을 가지는데, 어원이 개념의 의미를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에게서 비롯된 개념이지만 원래대로였다면 ‘제1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순서를 정할 때 먼저 존재자에 관한 학문인 자연학, 즉 피지카(physika)를 공부한 뒤 존재 일반에 관한 근본 원리를 다루는 제1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지카는 물리학의 어원이니까 지..
현존재 Dasein 나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이 잠시 정지되어 있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SF 영화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지만 생각만 해도 신난다. 이를 테면 은행에서 돈을 마음껏 가져올 수도 있고, 평소에 미워하던 사람의 머리통을 한 대 갈겨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 상상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이외에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어야 하는데, 은행에서 돈을 가져오거나 미워하는 사람의 머리통을 때리려면 나의 바깥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세계의 일부(돈이나 머리통)를 반드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세계’일까? 움직일 수 있으면 ‘나’이고 고정되어 있으면 ‘세계’..
혁명 Revolution “내 팔자에 무슨 난리야.” 우리 속담에 이런 게 있다. “한심한 내 처지를 보면 차라리 난리라도 났으면 좋겠는데 내 팔자에 난리가 날 운수라도 있겠느냐”는 뜻이다. 난리가 나면 세상이 뒤집어져 위가 아래로 되고 아래가 위로 될 테니 없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다. 혁명이란 바로 그런 난리를 뜻하는 개념이다. 난리가 말해주는 혁명의 이미지는 두 가지다. 첫째, 혁명은 작은 변화가 아니라 사회의 질서가 뒤집힐 만큼 큰 폭의 변화다(혁명보다 작은 변화를 개혁이라고 말한다). 둘째, 사회의 기득권층은 난리가 나서 좋을 일이 없을 테니 당연히 혁명을 바라지 않는다. 따라서 혁명은 피지배계급이 체제를 전복시켜 지배계급이 되는 급격한 사회 변화를 가리킨다. 역사에서 그런 혁명의 예로..
헤게모니 Hegemony 지난 20세기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것은 사회주의다. 세기 초에 러시아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했으나 세기 말에 사회주의권은 일제히 붕괴했다. 한때 전 세계 식민지ㆍ종속국들을 흥분과 기대감에 떨게 했던 사회주의가 한 세기도 버티지 못하고 이렇듯 허망하게 몰락한 이유는 뭘까?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낡은 사회에서 물질적 조건이 충분히 성숙해야만 새로운 사회 질서가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곧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현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진 것은 마르크스의 주장을 거스른 탓일까? 그러나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인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의 생각은 달랐다. 그..
해체 Deconstruction 책은 저자가 쓰고 독자가 읽는다. 독자는 책의 저자가 무엇을 말했는가를 염두에 두고 그 내용을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교과서든 소설이든 철학서든 만화책이든 다 마찬가지다. 책을 통해 저자와 독자는 대화를 나눈다. 저자가 말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했을 때 독자는 그 책을 잘 읽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상식적인 책읽기다. 그런데 당연해 보이는 이 상식에도 문제점이 있다. 저자가 어떤 주제에 관해서 글을 쓰고 독자는 저자가 설정한 주제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다고 가정할 때, 독서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책의 논리(저자의 논리) 속에 뛰어들어 그것에 따라 책을 읽을 것인가, 아니면 독자가 자신의 논리에 따라 그 책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할 것인가? 앞의 것이 ..
하이브리드 Hybrid “눈매가 치켜 올라간 여자가 있었소. 그녀는 눈매가 내려간 남자와 결혼하면 정상적인 눈매를 가진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그런 남자를 찾아 결혼했다오. 그런데 그녀는 한쪽 눈이 올라가고 다른 쪽 눈이 내려간 아이를 낳았소.”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에게 자신의 외모와 당신의 두뇌가 합쳐지면 완벽한 아이가 태어나지 않겠느냐고 말했을 때 버나드 쇼가 했다는 대답이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70세나 되고 쇼가 죽을 무렵 먼로는 신인이었으니 아마 누가 꾸며낸 이야기겠지만, 두 개체를 합칠 경우 반드시 양측의 장점만 취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유전적으로 볼..
하위문화 Subculture 문화를 놓고 수준을 논하거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문화상대주의), 특정한 문화를 생산하고 향유하는 집단 또는 특정한 문화가 영향력을 미치는 범위에 관한 논의는 충분히 가능하다. 사회적 엘리트에게는 그들 나름의 문화가 있고, 노동자에게는 노동자 특유의 문화가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한 사회의 전반적이고 지배적인 문화와 별도로 소집단만이 지닌 문화를 하위문화라고 부른다. 사회의 주류 문화로부터 거리를 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하위문화는 원래 일탈적인 집단의 문화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생겨났다. 1950년대에 미국에서 청소년 비행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하위문화의 개념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런 부정적인 뜻은 사라지고 특정한 직업 집단, 연령층, 지역, 취향 등과..
플라토닉 러브 Platonic Love 플라톤(Platon, BC 427~347)은 철학자가 다스리는 나라를 이상국가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 국가는 재산만이 아니라 아내와 자식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공유하는 철저한 공산주의 사회였다. 그러므로 플라토닉 러브는 플라톤의 사랑이라는 뜻이지만 플라톤이 말한 개념은 아니다. 플라토닉 러브를 우리말로 옮기면 플라톤식의 사랑이 되겠는데, 그 뜻은 관능적이고 육체적인 사랑과 대비되는 정신적이고 이성적인 사랑을 가리킨다. 실제로 그 말이 유행한 때는 플라톤의 시대로부터 2천 년 가까이 지난 르네상스 시대다. 플라톤이 운영했던 학교인 아카데메이아(Acadēmeia)를 본받아 15세기 중반에 이탈리아의 학자들은 피렌체에 플라톤 아카데미라는 학교를 설립했다. 스물아홉 살의 ..
포스트 모더니즘 Post modernism 모더니즘은 이성과 합리주의에 반대하는 기치를 높이 치켜들었으나 전통과의 확고한 결별을 이루지는 못했다. 혁신적이면서도 보수성을 크게 탈피하지 못해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모더니즘이 주로 문학과 예술 분야에 국한된 탓이 크다. 수백 년에 걸쳐 이력이 쌓이면서 튼튼해진 합리주의의 벽을 뚫으려면 그에 못지않은 강력한 논리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역시 철학적 사유가 뒷받침 되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지 말뜻처럼 ‘모더니즘 이후’에 그치지 않고 근대 이성에 대한 체계적인 공략을 의미한다. 이 개념을 처음 제기한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 1924~1998)는 원래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니..
페미니즘 Feminism 의회민주주의가 등장한 지는 상당히 오래 되었지만 여성이 참정권을 가지게 된 시기는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현대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로 꼽히는 미국을 비롯해 서구 대부분의 나라들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부여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48년 헌법이 제정될 때 처음으로 여성에게도 정치ㆍ교육ㆍ노동 등 각 분야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가 인정되었다. 모든 권리는 그 배경에 이해 당사자들의 투쟁이 숨어 있다. 세계 최초로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參政權)을 허용한 것도 당시 여성 운동가들이 열렬히 투쟁한 결과였다. 이때 생겨 난 개념이 페미니즘이다. 여성을 가리키는 femina라는 라틴어(영어 단어 female의 어원)에서 나온 페..
페르소나 Persona 누구나 자기에 관해서는 자기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자신의 신체, 성격, 취향, 버릇은 자기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지나치게 고집하면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기 쉽다. 세상을 혼자 살아간다고 착각하는 독불장군(獨不將軍)이 아니라면 그것은 옳지 않을뿐더러 위험한 견해다. 영어의 person, 프랑스어의 personne, 독일어의 Person, ‘사람’을 뜻하는 이 말들은 형태에서 보듯이 같은 어원을 가진다. 모두 페르소나라는 라틴어에서 파생되었다. 그런데 페르소나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참 모습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자신의 모습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나의 ‘사람됨(personality)’은 남들이 판단하는 걸까? ..
패러디 Parody 창작이란 어떤 작품을 처음으로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어떤 작품을 창작하기 전에는 그 작품이 존재하지 않았어야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구분은 말처럼 그리 명확한 게 아니다.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기 전에 그것과 비슷한 다른 작품이 있었다면 어떨까? 더구나 창작자가 그 작품을 알고 자신의 창작에 이용했다면? 문학이나 음악에서 특정한 작품을 의도적으로 모방해 변형시킨 작품을 패러디라고 말한다. 패러디란 원래 음악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다른 노래와 병행하는 노래’라는 뜻의 그리스어인 파로데이아(parodeia)에 유래를 두고 있다. 특히 음악에서는 같은 음률에 다른 노랫말을 붙이는 것을 패러디라고 부른다. 재미 삼아 흔히 하는 놀이인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도 일종의 패러디인 셈이다...
패러다임 Paradigm 옛 것의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발견한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은 학문의 상식이다. 실제로 역사를 살펴보면 그 점을 실감케 하는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Renaissance)는 2천 년 전의 그리스 고전 문화를 새로이 발견하고 해석함으로써 학문과 예술의 부흥을 일으킨 운동이었다.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주장한 정전법(井田法)은 4천 년 전 중국 주나라 시대의 토지제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뿐인가?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가 근대 철학의 토대를 만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칸트(Immanuel Kant,1724~1804)와 헤겔(Hegel, 1770~1831)이 있겠으며..
파시즘 Fascism 대동단결(大同團結)은 좋은 말이지만 같은 뜻의 파쇼는 나쁜 말이다. 파시즘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뜻은 같은데도 응도(凝度)가 엇갈린 이유는 그 개념을 둘러싼 역사적인 맥락 때문이다. 파시즘이라는 용어는 고대 로마의 개선식(凱旋式)에서 사용하던 권력의 상징물인 파스케스(Fasces)에서 비롯되었다. 화려한 개선식이 벌어지면 릭토르 경관의 수행원들은 월계수로 장식된 막대기들을 묶은 다발을 들고 행진했는데, 이것을 파스케스(Fasces)라고 불렀다. 막대기들을 묶었다는 이미지와 권력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대동단결을 나타내기에 적합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파스케스의 ‘현대적 용도’에 처음으로 착안한 사람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권력자로 떠오른 무솔리니(Benito Mu..
트라우마 Trauma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용어들 가운데는 인접 학문에 두루 원용되는 것도 있고 거의 일상적인 용어처럼 널리 사용되는 것도 있다. 무의식이나 원형이 전자에 속한다면 트라우마는 후자에 속하는 용어의 예다. 일상용어로 전용되는 과정에서 트라우마의 의미도 약간 바뀌었다. 그리스어의 트라우마트(traumat)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는 원래 ‘상처’라는 뜻이며, 일반 의학에서도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상처라면 신체적인 현상인데 어떻게 정신의학과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이 되었을까? 신체적인 현상에서 심리적인 상처가 생겨난다는 사실이 현대 정신의학에 의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트라우마의 정식 병명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라고 부른다. 여느 ..
타불라 라사 Tabula Rasa 사람의 체질이나 성격을 결정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타고난 것, 즉 유전적 요소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 개인마다 편차가 있을지도 모른다. 유럽 대륙에서 합리론이 발달하고 영국에서 경험론이 발달할 무렵에도 그와 비슷한 쟁점이 있었다. 인식 과정에는 주체와 대상이 관여된다. 주체를 강조하면 인간 내부의 인식 기능을 부각시키게 되고, 대상을 강조하면 외적인 경험을 중시하게 된다. 둘 중에서 어느 것이 인식에서 더 중요한 기능을 할까? 근대 철학의 포문을 연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인간에게는 타고난【구체적으로 말하면 신이 부여한】 본유관념(本有觀..
키치 Kitsch ‘싸구려’라는 뜻의 이 독일어가 싸구려의 처지를 면하게 된 것은 현대 문화의 한 풍조를 반영한다. 지금은 이 싸구려를 의도적인 조악함이나 복고적 성향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사용하기 때문이다. 키치란 원래 19세기 말 독일에서 저급한 미술 작품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된 용어다. 그 이전까지 미술 작품은 주로 교회나 귀족 등의 의뢰인에게서 주문을 받아 제작되었으나, 19세기 후반부터는 화상(畵商)들이 화가들의 작품을 화랑에 전시하고,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예술), 이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미술 작품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19세기는 적어도 서유럽에 관한 한 풍요의 세기였다.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절정에 달했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토대로 하는 자유주의..
클리셰 Cliché 글은 의미를 담고 표현하는 수단이지만 글의 모든 부분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것은 아니다. 한 문장에도 실사(實辭)와 허사(虛辭)가 있듯이 문장들이 모여 이루는 글에도 내용과 관련이 없고 사실상 아무런 뜻도 없는 부분이 있다. 왜 이런 부분이 있을까? 편지를 쓰든 책을 쓰든 글을 쓰든 사람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자 한다. 하지만 메시지를 올바르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문법을 준수해야 하고 표현과 수식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렇게 메시지 자체와 관계가 먼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글은 항상 지은이의 의도를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아무리 긴급한 용건이 있다 해도 그 용건만으로 글의 전부를 구성할 수는 없다. 글에는 드러난 것과 숨은 것이 있다. 드러난 것이 메시지라면,..
콤플렉스 Complex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생각이 있다. 또 마음속으로 상상은 해도 입 밖에 내지는 못하는 생각이 있다. 그러나 말하기는커녕 마음대로 상상하지도 못하는 생각도 있다. 첫째 것은 일반적인 생각이고, 둘째 것은 상식이나 윤리에 어긋나는 생각이다. 그럼 셋째 것은 뭘까? 자기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생각이다. 콤플렉스는 바로 셋째 것에 해당한다. 콤플렉스란 원래는 복합체라는 뜻으로, 아파트 단지나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건물 ‘덩어리’를 가리키는 용어다.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에서 나타내는 의미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여기서는 물체의 덩어리가 아니라 생각의 덩어리다. 여러 가지 관념들이 마음속에 복합적으로 응어리진 것을 가리켜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너, 외모에 ..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Copernican Revolution 사물은 변하지 않는데 사물을 둘러싼 담론은 계속 변한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이 이론을 무엇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는 지동설이다. 16세기에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가 지동설(地動說)을 발표하기까지 태양계라는 ‘사물’에 관한 담론은 1500년 전에 확립된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os)의 천동설(天動說)이었다. 태양계가 생겨난 50억 년 전부터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매년 한 바퀴씩 돌았으나 천동설은 그 반대로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돈다고 설명했다. 천동설의 우주관에서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그 바깥에 행성들과 태양..
코기토 Cogito Cogito ergo sum(코기토 에르고 숨,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가 철학의 제1원리, 즉 출발점으로 삼은 이 말은 철학의 전 역사를 통해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큰 문장이다. 여기서 비롯된 코기토란 원래 동사의 형태지만 철학적 인식을 가리키는 명사처럼 사용된다. 코기토란 cogitare(생각하다)라는 라틴어 동사의 1인칭이며, (re)cognize나 (re)cognition 같은 영어 단어의 어원이기도 하다. 데카르트는 원래 프랑스어로 “Je pense, donc je suis”라고 썼다가 나중에 라틴어 문구로 고쳤다. 영어로는 “I think, therefore I am”이라고 번역하는데 뜻은 다 마찬..
카오스 Chaos 과학의 주요 기능은 예측에 있다. 물 분자는 수소원자와 산소 원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분해하면 기체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며, 실제로 전기분해를 통해 기체로 만들 수 있다. 인체는 면역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병원균의 일부를 투입하면 스스로 항체를 만들 것이라는 예측에서 의사는 예방주사를 놓는다. 18세기 말에 천왕성이 발견된 이후 천왕성의 운동에서 미약한 섭동이 관측되자 천문학자들은 그 바깥 궤도에 행성이 있으리라고 예측했고, 그 결과 해왕성과 명왕성이 예측된 위치에서 발견되었다【명왕성은 안타깝게도 2006년에 소행성으로 재분류되었다】 이렇게 과학적 예측이 가능한 이유는 자연계에 인과율이 관철되기 때문이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으므로 원인을 찾으면 얼마든지 결과를 예..
창조론 Doctrine of Creation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의 초고를 완성한 것은 1830년대 말이었다. 그러나 책이 출판된 것은 20여 년이 지난 1859년이다. 이렇게 출판이 늦어진 데는 그동안 수집한 수많은 사례들을 체계화할 이론적 근거를 보강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당시는 창조론이 지배적이었으므로 어설프게 진화론을 발표했다가는 엄중한 종교적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창조론은 세상 만물이 신의 의지와 기획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 신이란 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교의 신을 가리킨다. “태초에 하나..
착취 Exploitation 원래는 좋은 의미를 가진 말이지만 개념이 되면 나쁘게 쓰이는 용어가 있다. 그 반대로 일상적으로는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진 말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게 있다. 원래 단결이라는 뜻이었던 파시즘이나 어의 자체는 덩어리라는 뜻에 불과한 콤플렉스가 전자의 예라면 착취라는 개념은 후자의 예다. 일반적으로 착취라면 고용주가 부당한 방법으로 이득을 수 취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경제학 개념으로서의 착취는 법에 어긋나는 행위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정당한 방식으로 이윤을 수취하는 행위다. 착취를 뜻하는 exploit라는 영어 단어도 원래는 자원을 개발하고 이용한다는 의미다. 자본주의 이전 단계인 고대 노예제 사회와 중세 봉건사회에서도 지배계급이 이익을 얻는 방법은 노예와..
차이 Difference ‘개념’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기 위해 국어사전을 찾아보자.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된 요소를 뽑아내어 종합하여서 얻은 하나의 보편적인 관념”이라는 뜻이 나온다. 그런데 이 뜻풀이에도 모르는 단어들이 많다. 그 정의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관념, 공통, 요소, 종합, 보편적 같은 단어들을 또 찾아봐야 한다. 그래서 ‘관념’을 찾아보면 “어떤 대상에 관한 인식이나 의식 내용”이라는 뜻이 나온다. 이 뜻을 이해하려면 또다시 대상, 인식, 의식, 내용 같은 단어들을 찾아봐야 한다. 이런 식으로 찾다 보면 사전을 다 뒤져도 결국 원하는 단어의 확실한 정의는 얻지 못할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사전 바깥의 뭔가가 필요하다. 그 뭔가를 단어의 지시대상이라고 부른다. 전통적인 사고에 따..
질풍노도 Sturm und Drang 예술이 시대를 선도하는 이유는 이성보다 감성의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냉철한 분석보다는 예리한 직관을 바탕으로 하므로 철학이나 사회과학보다 현실과 연관되는 정도가 약하다. 역사적으로도 예술은 이성에 반대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런 예술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가 18세기 말 독일에서 일어난 질풍노도 운동이다. 독일어의 Sturm은 ‘폭풍’이고, Drang은 ‘압박’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storm and stress로 번역되지만 거의 고유명사화되어 있기 때문에 영어권에서도 독일어 원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괴테와 실러 등의 작가들이 주도한 질풍노도 운동은 그때까지 유럽의 지성계를 지배하던 계몽주의의 합리성을 거부하고 자연, 감성, 인간의 개성 등..
진화론 Evolution Theory 현대 유전공학의 성과는 눈부시다. 인간은 체세포를 이용한 동물 복제에도 성공했다. 이제 공룡의 세포 한 조각만 있으면 공룡 전체를 복원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쥐라기 공원'이 실제로 개장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문제는 인간의 복제도 이론적으로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윤리적인 쟁점이 제기될 소지가 크다.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도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새로운 종의 생물을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침몰한 유조선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을 먹어치우는 박테리아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생물 특허’를 받았다. 닭다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리가 넷인 닭을 만드는 것도 지금 기술로는 가능하다. 다만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그런 생물을 생산하지 않을 뿐이다. 진화론에 따르..
주체사상 主體思想 한국전쟁은 한반도 전역을 황폐화시켰다. 그러나 북한의 사정은 남한보다 더욱 심했다. 전쟁 기간 내내 제공권(制空權)을 장악한 미국 공군의 맹렬한 폭격으로 산업 시설이 모조리 파괴된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더 큰 문제는 전후에 복구를 도와주는 나라가 없었다는 점이다. 남한은 미국의 잉여 농산물을 받아 급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으나 당시 사회주의권에는 북한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만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없었다. 소련은 잘못된 전쟁의 명분에서 발을 빼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고 사회주의 신생국인 중국은 전쟁에 병력을 지원해준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 형편이었다.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도 북한의 수많은 전쟁고아들을 받아준 게 고작이었다. 이런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에서 나온 게 주체사상이..
주관 & 객관 Subject & Object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가 코기토의 개념으로 근대 철학, 특히 인식론의 토대를 놓은 것은 간단하면서도 유용했으나, 동시에 무모하고 위험했다. 의심할 수 없는 인식의 주체를 확립한 것은 훌륭한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생각하는 자아’를 유일하게 자명한 주체라고 인정하면 그것 이외에 나머지는 모조리 불명확한 대상이 된다. 따라서 인식 과정은 하나의 확실한 주체가 수많은 불확실한 대상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정체를 규명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인식 과정을 그렇게 보는 것은 데카르트의 발명품이 아니라 전통적인 인식론의 입장이었다. 주관을 뜻하는 라틴어(subjectum)은 원래 ‘아래에 있는 것’이라는 뜻이고, 객관..
좌익 & 우익 Left Wing & Right Wing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부터는 한반도만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게 되었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생겨나면서 분단을 맞았던 한반도가 이제 그 이데올로기가 수명을 다했는데도 아직 분단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지금 북한은 세계적으로 가장 폐쇄적이고 철저한 공산주의 이념의 수호자가 되어 있고, 남한은 상대적으로 가장 철저한 반공(反共) 이념의 수호자가 되어 있다. 세계를 갈라놓았던 이념의 구분이 약해졌는데도 한반도는 여전히 좌익/우익이 대립하는 특수한 지역이다. 흔히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이념을 가리켜 우익(右翼)이라고 부르고,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이념을 가리켜 좌익(左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좌익/우익이라는 개..
종말론 Eschatology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서 고대 문명을 일구었던 마야인들의 달력에 따르면 우리는 곧 이 세상의 종말을 준비해야 한다. 종말의 날은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달력으로 2012년 6월 5일에 해당한다. 그것은 마야인들의 독특한 날짜 계산법에 따른 결론이지 종교적 의미는 없다. 그런데 종교의 종말론에서 말하는 세상의 종말은 사뭇 비감하다. 종말론이라는 개념은 ‘최후’를 뜻하는 ‘에스카토스(eschatos)’라는 그리스어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유래는 멀리 유대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성서에 의하면 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의 율법에 따르지 않을 때 그들을 파멸하리라는 위협을 가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이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선택한 도구이므로 신의 뜻을..
젠더 Gender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은 평소에 조선의 아낙이 해방되는 날이 곧 전 인류가 해방되는 날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모순이 집적되어 있는 장소가 20세기 초의 조선이고 조선의 모든 모순을 끌어안은 것이 여성이라는 견해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제자가 물었다. “그 말씀은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까?” 강일순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예끼, 그렇기야 하겠는가? 남녀가 똑같아져야 한다는 말이지.” 강일순의 말은, 일찍이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은 프롤레타리아만이 아니라 부르주아지, 나아가 전 인류의 해방을 의미한다는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의 견해와 닮은꼴이다. 궁극적인 해방은 피억압자를 억압..
제3의 물결 Third Wave 보통 혁명이라 하면 프랑스혁명,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같은 근대의 정치적인 대사건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정작으로 중요한 혁명은 문명사적인 혁명이다. 인류 문명을 통틀어 그런 혁명은 두 차례 있었다. 하나는 1만 년 전 신석기 시대에 일어난 농업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19세기 초반의 산업혁명이다. 농업혁명은 인간이 지구상에 태어나 살아왔던 500만 년 동안의 변화보다 더욱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산업혁명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 지금은? 지금도 역시 혁명의 와중에 있다. 이 세 번째 혁명을 미래학자 토플러(Alvin Toffler, 1928~2016)는 제3의 물결이라고 부른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은 각각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에 해당한다. 제1의 물결은 1..
제로섬 Zero-sum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실생활에서 이런 상황은 예상외로 많다. 대학입시 날에는 수많은 어머니들이 대학 문 앞에서 자식의 합격을 기원한다. 그 중에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많지만, 이 순간만큼은 모두 하나같이 자기 자식만을 위해 기도한다. 자기 자식이 합격하면 누군가 남의 자식이 떨어진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남의 자식’의 부모님도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 그 종교의 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입은 많은데 ‘파이’는 제한되어 있다. 이렇게 전체의 양이 늘어날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전체 안에서 부분들 간의 제 몫 찾기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의 이런 특성을 포착한 용어가 바로 제로섬이라는 개념인데, 1..
제국주의 Imperialism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사회적 생산과 사적 소유의 모순이 심화되어 결국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혁명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필연이므로 자신의 시대가 아니더라도 조만간 혁명이 성공하리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의 낙관은 자본주의가 자유경쟁 속에서 진행되리라는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언제나 자유경쟁이 보장된다면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의 통제 하에서 자본주의적 생산력이 순조롭게 성장할 것이고 그에 따라 자본주의의 모순도 심화될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유경쟁이 마냥 가능하려면 시장에 제한이..
절대정신 absoluter Geist 칸트(Immanuel Kant,1724~1804)는 철학사적 대전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통해 그 전까지 인식론적 난제였던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의 관계를 깔끔하게 해명했다. 주체와 대상은 그냥 밋밋한 실체가 아니라 수나사와 암나사처럼 처음부터 서로 들어맞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인식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의 방법으로도 대상과 관련된 해묵은 난점은 해결하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인식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외부 사물 자체를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다. 그런데 이 관점은 인간이 과연 사물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느냐는 문제와 연관되어 끝없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고대에 플라톤(Platon, BC 427~347)과 아리스토텔레스(..
장기지속 Longue Durée 지구상의 전 지역이 알려졌고 자연을 거의 완전히 정복한 현대에는 문명이 지리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다고 믿기 쉽다. 실제로 오늘날에는 극지에도 도로를 낼 수 있고, 사막에도 도시를 건설할 수 있으며, 심지어 달에도 기지를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지리적 요인이 문명의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그 속도가 너무 느린 탓에 인간이 제대로 감지하지 못할 뿐이다. 지리가 역사에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가리켜 구조주의 역사가인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은 장기지속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역사라고 하면 흔히 역사적 사건들을 연상한다. 예를 들면 기원전 3세기에 진 시황제(秦 始皇帝, B..
자유 Freedom 일상생활에서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다. 범죄를 저질러 구속되든 사랑의 포로가 되어 구속되든 구속은 자유와 대립된다. 그러나 철학에서 자유의 반대는 필연이다. 자유를 뜻하는 영어(free), 프랑스어(libre), 독일어(frei)의 형용사들은 모두 “…… 이 없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근거가 없음, 즉 우연을 뜻한다. 자신을 얽매는 것이 없으니까 자유롭다. 한자어[自由]도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뜻이니까 자신이 자신의 근거가 된다는 의미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는 항상 “……이 없어야만 도달하는 상태”, 즉 “…… 으로부터의 자유”였다. 플라톤(Platon, BC 427~347)은 편견과 억측이 없어야 자유롭다고 보았으며, 스토아 학파는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야 자유를 누..
자본주의 Capitalism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의 구분이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일단 본능은 자연적인 것이지만 제도는 인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배고플 때 느끼는 식욕은 자연스러운 본능이지만 음악회에서 마음대로 음식을 먹는 것은 제도로 금지되어 있다. 문제는 본능과 제도의 구분이 모호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도덕은 본능일까, 제도일까? 사회를 존속시키기 위해 도덕이 필요하다고 보면 본능에 가깝지만, 도덕이 체계화되어 일상적 행위를 통제하는 예절로 바뀐 것은 제도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본능일까, 제도일까? 흔히 말하는 자본주의의 특성은 사유재산과 이윤 추구가 인정되고 시장의 메커니즘에 의해 생산과 분배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런 특성은 인간의 본능에 속할까, 아..
인터넷 Internet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들인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와 가타리(Félix Guattari, 1930~1992)는 욕망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에 따라 사회 체제를 셋으로 구분한다. 첫째 원시사회는 다양한 욕망이 다양한 코드로 통제되는 사회다. 사회를 성립할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통제 메커니즘 이외에는 욕망의 흐름이 차단되지 않는다. 이 시기에는 모든 욕망이 대지에 고착되어 있다. 둘째 고대사회는 모든 욕망이 전제군주(혹은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통합된다. 그 통제력은 대단히 강하지만 본래 흐르도록 되어 있는 욕망을 그것으로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욕망이 대지에서 벗어나는 탈영토화(奪領土化)가 서서히 일어난다. 셋째 단계인 자본주의 사회가 욕망을 통제..
인식론 & 존재론 Epistemology & Ontology 철학이라면 일단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생각이 앞서지만 간단하게 이해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수천 년에 이르는 서양 철학의 역사에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철학 사상은 저마다 독특하고 심오한 듯 보인다. 그러나 모든 사상은 그 시대의 사상일 뿐이므로 시대를 알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철학 사상에는 현실적 맥락과 지적 맥락이 있다. 현실적 맥락은 그 사상이 생겨난 시대의 현실을 가리키며, 지적 맥락은 그 사상에 영향을 준 사상적 흐름을 가리킨다. 사상과 이론은 그 시대의 현실과 상당성(correspondence)의 관계를 가지고, 그 시대의 지적 흐름과 일관성(coherence)의 관계를 가진다. 즉 모든 ..
익명성 Anonymity 실이 끊어진 연은 자유를 얻지만 동시에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 오늘 점심으로 뭘 먹을까를 선택하는 것은 언제나 내 마음이지만 때로는 차라리 내 의지와 상관없이 메뉴가 늘 고정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자유는 선택인데 선택은 늘 부담스럽다. 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의 그늘을 떠나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해방감과 동시에 이제부터 모든 일을 홀로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초창기에 이중의 자유【토지로부터의 자유와 신분상의 자유】를 얻은 농민들의 심정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법적인 자유를 얻고 농노의 신분에서 풀려났으나 그 대신 생계의 터전이 된 토지를 빼앗겼다. 그들의 무거운 발걸음이 향하는 도시에는 임금노동자로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자본가..
이원론 Dualism 모든 것을 구분하는 데 가장 편리한 방법은 둘로 가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세상 만물은 ‘나’와 ‘내가 아닌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실제로 18세기 독일의 철학자인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는 칸트(Immanuel Kant,1724~1804) 철학의 한계(→ 물자체)를 극복하기 위해 절대적 자아의 개념을 도입하면서 이 세계를 자아와 비아(非我)로 구분했으며, 일제강점기 초기의 민족사학자인 신채호(申采浩, 1880~1936)도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으로 보았다.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심적 활동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요, ..
이성 Reason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특징은 뭘까? 언어도 있고 노동도 있지만 인간을 인간이도록 해주는 것은 역시 이성이다.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을 지배하고 문명을 일굴 수 있었다. 언어와 노동도 이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요소다. 이성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와 같다. 흔히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 탄생했을 때 인간의 이성이 개화된 것으로 말하지만 그것은 철학적 이성과 과학적 이성에 한해서만 통용되는 주장이다. 그 이전에 종교와 주술이 지배하던 시대에도 이성은 존재했고 활동했다. 종교와 주술 자체가 이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신학의 시대인 중세를 이성의 암흑기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다. 중세에는 모든 사고의 중심이 신에게 있었고 신을 세상 만물의 궁극..
이드 Id 자아(自我)란 자신의 정신적 측면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누구에게나 익숙한 말이다. 나는 주체지만 때로는 나를 대상화 시켜야 할 때도 있는데, 이럴 때 자아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자아를 자기 자신이라는 뜻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은연중에 자신의 정신이 언제나 단일하고 동일하다는 것을 전제한다. 만약 정신이 그렇지 않다면 어떨까? 정신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면 어느 것이 진짜 자아라고 해야 할까?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정신의 영역을 자아(ego), 초자아(super ego), 이드(id)의 셋으로 구분한다. 흔히 정신 전체와 동일시하는 자아는 그중 한 부분에 불과하다. 의식에 속하는 자아와 달리 무의식에 속하는 부분을 이드라고 부른다. 이드는 ..
이데올로기 Ideology “나라라는 게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어려운 일도 아니죠. 누굴 죽일 필요도 없고 무엇을 위해 죽을 필요도 없어요(Imagine there's no countries / It isn't hard to do / Nothing to kill or die for / And no religion too).” 비틀스 출신의 존 레넌이 부른 〈이매진(Imagine)>이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노랫말 전체가 ‘상상’이니까 현실은 그 반대다. 즉 현실에서는 나라가 존재하며, 개인이 서로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바칠 만한 일도 있다. 인간은 생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념을 위해서도 싸운다. 그런 신념이 체계화된 것을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이데올로기는 ‘아이디어(idea)’와 같은 어원이니까 ..
이기적 유전자 Selfish Gene 하나의 생명체라고 말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인간 개인은 한 개체를 이루지만 엄밀히 말해서 하나의 생명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리의 피부에는 작은 벌레들이 상존하고, 우리의 몸속에는 무수한 세균들이 서식하며, 때로는 각종 바이러스와 기생충도 산다. 개중에는 해로운 것도 있으나 무해하거나 유익한 것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신체는 개체라기보다는 하나의 생태계와 같은 환경을 이룬다. 거꾸로 군집 자체가 하나의 개체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개미집 하나에는 여왕개미 한 마리에 수백만 마리의 일개미들이 살지만, 개미 한 마리가 개체라기보다는 개미집 전체가 하나의 개체라고 볼 수도 있다. 분업의 원칙으로 움직이는 개미집에서는 적들이 침략할 경우 어떤 개미는..
유토피아 & 디스토피아 Utopia & Dystopia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 1980년대에 크게 유행했던 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경쾌한 멜로디와 아기자기한 노랫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불렀고, 국가 대항 운동 경기 같은 데서는 응원가로도 자주 쓰였다. 그러나 당시는 서슬 퍼런 군사독재의 시절, 그 노래가 그렇게 큰 인기를 끈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 노랫말에 나오는 대한민국이 현실의 대한민국과 너무도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은 사람은 아주 드물었으니까. 현실이 어려울수록 꿈은 더욱 아름다워지게 마련이다. 모어(Sir Thomas More, 1478~1535)가 유토피아라는 말을 ..
유물론 Materialism 기원전 6~4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문명의 빛이 밝았던 유럽의 그리스와 아시아의 중국은 상당히 닮은꼴이었다. 그리스에서는 여러 폴리스들이 서로 경쟁을 벌이며 고대 그리스 문명을 일구었고, 중국에서는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이합집산(離合集散)하면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이끌었다. 현실의 역사보다 더 비슷한 것은 지성사의 측면이다. 그리스에서는 최초의 철학자로 알려진 탈레스(Θαλής, BC 640~546)를 비롯해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399), 플라톤(Platon, BC 427~347),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 등이 서양 철학의 뿌리를 형성했으며, 중국에서는 공자(孔子, BC 551~479), 맹자(孟子, BC 371~..
원형 Archetype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도 비슷한 구조를 가졌다. 구약성서에는 노아가 겪은 홍수가 나오고, 수메르 신화에는 홍수에서 살아남은 우트나피시팀이 등장하며, 중국의 신화에도 대홍수가 지난 뒤에 여와(女媧)라는 여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朱蒙)과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동북아시아의 공통적인 신화라지만 그리스 신화에도 아이테르와 카오스가 알을 낳았고 거기서 광명의 신 파네스(Phanes)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는 건 무슨 연관일까? 오이디푸스 신화로 대표되는 근친상간의 신화가 그리스만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와 유럽 게르만족에게서 두루 발견되는 이유는 뭘까? 신화나 전설의 내용이 사실인가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공..
욕망 Desire 이성적 사유를 중심으로 했던 고대 철학에서도, 신학이 철학과 거의 동일시된 중세에도,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나뉘어 인식론적 논쟁이 활발했던 근대에도 욕망은 항상 철학의 초점이 되지 못했다. 심지어 쾌락주의로 유명한 그리스의 에피쿠로스(Epicouros, BC 341~270)가 말하는 쾌락도 욕망과는 거리가 먼 정신적 행복이며 고통을 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소극적인 쾌락이었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 같은 유물론자는 인간의 행동이 욕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했지만, 욕망을 그렇게 솔직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예외적이었고 대개는 욕망은커녕 감정도 철학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특히 합리론자들은 욕망을 부정적으로 여겼으며,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마..
와스프 WASP 미국은 흔히 ‘인종의 도가니(melting pot)’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현재 미국의 인구 구성을 보면 백인이 2/3가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왜 이런 별명이 붙었을까? 그 이유는 백인의 구성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얼굴이 희다고 해서 다 같은 백인이 아니다.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백인들은 특별히 와스프라는 명칭으로 분류된다. 와스프는 White-Anglo-Saxon-Protestant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로, ‘앵글로색슨계의 신교도 백인종’이라는 의미다. 1620년에 영국의 청교도 102명이 메이플라워(Mayflower) 호를 타고 북아메리카로 이주한 이래 1860년대까지 200여 년 동안 미국의 인종 구성은 단순했다. 청교도 이주민인 와스프와 약 2~3만년 전에 베링 해가 육지였을..
오컴의 면도날 Ockham's Razor 오컴(William of Ockham, 1285~1349)은 면도기 회사가 아니라 14세기 중세 철학자의 이름이다【정확히는 지명인데, 옛 사람들의 성은 땅 이름에서 나온 게 많다】. 그래도 면도날이라면 뭔가를 베거나 자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칼날이 아니라 면도날이니까 아주 예리하게 베어내야 한다. “Entia non multiplicanda sunt praeter necessitatem.” 읽기도 어려운 이 라틴어 문구는 윌리엄 오컴이 면도날을 정의하는 대목이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실체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뭔가 심오한 의미 같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근본원리는 필수불가결한 것에 국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 서양의 유명 음악가나 연예인이 방한하면 TV에서 인터뷰를 한다. 그때 거의 빠지지 않고 묻는 질문이 “한국의 첫 인상이 어떻습니까?”하는 것이다. 그럼 대개들 날씨가 뷰티풀(beautiful)하고 사람들이 원더풀(wonderful)하다는 둥 오는 비행기 안에서 즉석으로 배운 틀에 박힌 찬사를 늘어놓게 마련이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습관적으로 과장된 표현을 남발하는 성향이 있으므로 그들이 말하는 원더풀이나 뷰티풀을 소박하게 믿었다간 그대로 ‘풀(fool)’이 되기 십상이다. 외국인이 본 한국의 첫 인상은 물론 중요하지만 굳이 칭찬을 유도해서 만족하려는 심리는 대체 뭘까? 미국 대학생들이 ‘Zen’ 또는 선(禪)이라고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든가, 비틀스의 한 멤버가 인도..
예술 Art 문자는 항상 인간을 짓누른다. 어떤 메시지는 문자로 포착되면 즉각 고형화(固形化)되고, 고체 특유의 경직성과 ‘권위’를 가지게 된다. 그에 비해 예술은 부드러운 액체처럼 매끄러워 특정한 형태가 없다. 그래서 문자의 교훈적 특성과 계몽성에 질린 인간은 예술을 통해 일체의 권위로부터 해방된 느낌을 만끽한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은 늘 문자와 대립하는 동시에, 문자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을 긁어주면서 문자의 여집합과 같은 노릇을 했다. 또한 예술은 문자의 경직성이 고조되어 스스로의 굴레에 갇혀버렸을 경우 선도적으로 치고 나감으로써 문자의 질곡을 풀어주는 역할도 했다. 15세기 인문주의의 물꼬를 튼 르네상스 예술이 그랬고, 20세기 초 과도한 이성 중심주의에 허덕이던 철학을 해..
연금술 Alchemy 알코올, 알칼리, 알고리즘, 대수(algebra), 이 용어들의 공통점은 아라비아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다. 앞에 붙은 ‘알(al)’은 아랍어에서 영어의 정관사와 같은 역할이다. 연금술 역시 같은 유래를 가진 개념이므로 아라비아에서 특히 성행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라비아에서 연금술은 알키미아(alkimia)라고 불렸는데, 정관사를 제외한 키미아는 ‘검은 땅의 나라’, 즉 이집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연금술은 일반 금속을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으로 변환시키고자 했던 기술로,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비록 한 번도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그 과정에서 과학(특히 화학)이 발달했으니 부산물의 성과는 적지 않다. 서양 문명의 요람인 고대 그리스에서는 눈에 보이는 수많은 세상 만물의..
역설 Paradox 둥근 사각형, 하얀 까마귀, 고독한 군중, 소리 없는 아우성…… 이런 문구들은 역설적인 표현의 사례다. 사각형이라면 그 정의상 모가 나야 하고, 까마귀는 하얄 수 없으며, 군중은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고독할 수 없고, 아우성은 시끄러운 소리를 뜻하므로 소리가 없을 수 없다. 이처럼 역설이란 그 자체로 모순을 빚을 수밖에 없는 진술을 가리킨다. 논리적으로 말하면 역설은 고전 논리학의 세 원리 가운데 배중률(排中律)에 위배되는 명제다【나머지 두 원리는 모순율과 동일률이다】. 배중률이란 어떤 명제가 성립하든가 하지 않든가 둘 중 하나일 뿐 그 중간은 없다는 원리인데, 이에 따르면 둥글거나 사각형이거나 둘 중 하나만 성립할 뿐 둘 다 성립할 수는 없다. 명백히 모순적인 명제를 폐기 처분하..
엔트로피 Entropy 시간을 거슬러가는 장치, 즉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을까? SF 영화에서 보듯이 상상에서는 물론 가능하지만 과학적으로는 어떨까? 아직 최종적인 해답을 말할 수는 없으나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그것도 기술적으로가 아니라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상대성이론이 지배하던 시대, 그러니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타임머신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논리는 얼추 이렇다. 모든 것의 한계 속도는 빛의 속도, 즉 광속이다. 광속과 같거나 그에 준하는 속도(준광속)를 낼 수만 있다면 시간이 정지된 상황, 나아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어떤 엔진으로 그런 속도를 낼 수 있는가, 또 그런 초고속에도 견딜만한 합금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가 문제다. 따라서 타임머신은 현재의 기..
에로티시즘 Eroticism 사랑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강아지나 조국에 대한 사랑도 있다. 그 사랑들은 대부분 감정과 관련된다. 그와 달리 성적인 사랑(이성애와 동성애)은 감정과 감각이 함께 관련되는 현상이다. 감정과 감각, 정신과 신체의 두 측면이 모두 작용하는 성적인 사랑을 에로티시즘이라고 부른다. 에로티시즘은 사랑의 신 에로스에게서 비롯된 개념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에로스가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으나 이들은 후대에 모자로 맺어졌을 뿐이고 원래 에로스는 혼돈의 공허를 뜻하는 카오스(Chaos)의 아들이었다. 이렇게 사랑의 신이 상당히 초기의 신에 속한다는 것은 고대인들에게도 사랑의 관념이 중시되었음을 말해준다. 에로스는 ..
에로스 & 타나토스 Eros & Thanatos goat는 원래 염소를 뜻하지만 scapegoat는 희생양으로 번역한다. 염소가 졸지에 양으로 둔갑한 이유는 염소를 한자어로 산양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염소를 불에 태워 번제(燔祭)를 지냈다고 한다. 염소는 인간의 삶을 위한 제물이었던 셈이다. 나중에는 염소만이 아니라 소나 새 같은 다른 동물, 심지어 사람까지 제물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희생되는 것들을 총칭하여 희생양이라 했다. 그리스도가 다른 사람들의 희생양이 되어 십자가에 매달린 사실은 당시의 사상과 풍습으로 보면 전혀 문제될 게 없는 일이었다. 고대의 종교에서 비롯된 이 희생양을 통한 정죄 방식은 지금도 남아 있..
엄숙주의 Rigorism 원칙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원칙은 사고와 행동의 객관적인 기준으로 기능한다.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사회의 표준형 인간으로 간주되며, 다른 사람들의 모범으로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원칙에는 부작용도 있다. 원칙을 지나치게 고수하는 사람은 사고와 행동이 경직되기 쉬우며,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원칙에서 벗어난 사람을 좀처럼 용납하지 못하고, 차이에 대해 관용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엄격하고 완고하게 원칙에 집착하는 태도를 가리켜 엄숙주의라고 말한다. 엄숙주의는 원래 도덕적 법칙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근엄하고 진지한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엄숙주의는 18세기에 교회의 법과 도덕을 문자 그대로 엄격하게 해석하려 했던 신학..
약한 고리 Weak Link 사슬은 많은 고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똑같은 모양의 고리들이 이어져 사슬을 이루지만 고리가 하나라도 끊어지면 사슬 전체가 무력해진다. 자전거를 묶어놓은 사슬의 열쇠를 잃어버렸을 경우 단 하나의 고리만 풀면 자전거를 사용할 수 있다. 어떤 고리를 풀어야 할까? 당연히 많은 고리들 중에서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 풀어야 한다. 녹이 슬었다거나, 이음새가 다른 고리보다 더 벌어져 있다거나……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인 사슬과 고리를 이론적 비유로 삼아 약한 고리라는 말을 개념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1924)이다. 이 단순한 용어에는 탁월한 전략가인 레닌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숨어 있다. 마..
앙시엥레짐 Ancien Régime ‘낡은 체제’라는 뜻의 평범한 두 단어로된 프랑스어 문구가 구체제를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널리 사용되는 이유는 프랑스혁명이라는 역사적 대사건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앙시앵레짐은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혁명까지 약 200년간 지속된 절대주의 시대를 가리킨다. 이렇게 구체제라는 간단한 개념으로 두 세기를 뭉뚱그리는 데는 근거가 있다. 이 시기의 전반기, 즉 17세기 내내 프랑스는 겉으로 보기에 사회의 전 부문이 통합적이었고 갈등의 요소가 거의 없었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프랑스를 강력한 중앙집권형 왕국으로 만들었으며, 대외적으로도 유럽 최강국으로 끌어올렸다. 이는 끊임없는 긴장 상태 속에서 권력 변동도 몇 차례 있었던 혼란스런 영국의 상황과 좋은 대조를 이..
아프리오리 & 아포스테리오리 a priori & a posteriori “5+7=12”를 아는 것과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서로 다르다. 둘 다 지식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앞의 수학적 지식은 원리를 통해 알 수 있고, 뒤의 과학적 지식은 경험과 관찰을 통해 알 수 있다. 철학적 용어로 앞의 것은 아프리오리한 지식이며, 뒤의 것은 아포스테리오리한 지식이다. 어떤 면에서는 연역법과 귀납법의 관계와 비슷하지만, 그것들은 논증을 위한 논리학적 추론 방법이고 아프리오리/아포스테리오리는 인식론의 개념이라는 차이가 있다. 문구 자체의 의미를 보면, 아프리오리는 ‘앞선 것으로부터’라는 뜻이고 아포스테리오리는 ‘뒤의 것으로부터’라는 뜻이다. 보통 아프리오리는 ‘선천적’, 아포스테리오리는 ..
아폴론형 & 디오니소스형 Apollinisch & Dionysisch 미술과 음악은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예술의 가장 주요한 두 가지 장르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른 모든 예술 분야, 이를테면 문학, 연극, 영화 등은 메시지나 스토리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기 때문에 문자로부터 떨어질 수 없지만, 미술과 음악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감각인 시각과 청각에 의존하는 만큼 늘 변함없이 전통적인 예술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문자를 바탕으로 하는 지식과 정보는 인터넷으로 검색이 가능해도 미술과 음악은 불가능하다.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낯익은 풍경이나 멜로디는 작품의 제목이나 작가의 이름(문자 정보)을 알지 못하면 어느 작품의 일부분인지 인터넷으로도 검색할 수 없다. 검색이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문자..
아비튀스 Habitus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한 가지 있다. 우리 사회에서만 유독 장학금은 주로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에게 배당된다. 특히 학교 외에서 제공되는 장학금, 이를테면 이따금 신문에 미담으로 보도되는 것처럼 한 할머니가 냉면집을 운영해 평생 모은 10억원을 대학교에 기탁했을 때 그 돈이 누구에게 돌아갈지는 뻔하다. 실제로 그 할머니도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등학교라면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대학교 같은 고등교육 기관이라면 집안 형편을 기준 삼기보다는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을 지원하는 게 정상이다. 굳이 형편을 따진다면 공부에 뜻을 둔 학생들 중에서 가난한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발하는 게 원칙이 되어야 한다. 초등학교는 ..
아니마 & 아니무스 Anima & Animus 어떤 면에서 남성과 여성은 신체적 차이 이외에 다른 점이 없는 듯하다. 일부 극단적인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성의 차이란 단지 사회적 역할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이론을 입증하려면 그 사회적 역할의 차이가 왜 생겨났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 기원이 반드시 생물학적 차이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겠지만 성적 차이가 신체적 차이와 큰 관련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성적 차이가 성적 차별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또 다른 잘못이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는 외양 이외에 염색체와 호르몬의 종류에서도 나타난다. 남성을 결정하는 염색체는 XY이고 여성을 결정하는 염색체는 XX다. 또 남성을 남성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
심포지엄 Symposium 고대 그리스 사회가 학문과 예술, 민주주의의 요람이 된 데는 노예들이 생산력을 도맡아준 덕택이 컸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학문의 근본인 철학,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가 노예들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랐다는 것은 아이러니지만 노예제가 당연시되던 시대였으므로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만약 노예제가 아니었다면 그리스 문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리스 문화의 한 단면을 말해주는 개념이 심포지엄이다. 오늘날 심포지엄이라면 정해진 주제를 놓고 서로 견해나 분야가 다른 전문가들이 나와 전문적 지식과 연구 분석을 바탕으로 토론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개념은 원래 고대 그리스의 지식인들이 잔치를 즐기며 대화와 토론을 나눈 데서 생겨났다. 노예들이 음식과 서빙을 담당했을 ..
실존 Existence “인간이란 무엇인가?” 언뜻 심오한 철학적 질문처럼 보이는 이 물음은 실상 심오하지도 않고 철학적이지도 않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마치 책상 위의 볼펜이나 정원의 나무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볼펜과 나무는 철학이 아니라 과학의 대상이므로, 과학적으로 간단히 정의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정의를 내리는 존재이지 정의되는 존재가 아니다. 17세기부터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난 인간 이성은 이후 200여 년 동안 눈부신 활약을 보이면서 세상의 모든 것을 밝히고 규정했다. 이성으로 알아내지 못한 게 없었다. 철학적 이성은 인식의 과정을 해명했고, 정치적 이성은 근대 민주주의를 확립했고, 경제적 이성은 자본주의를 발전시켰고, 과학적 이성은 만물의 이치를 규명했다. 자신의 능력에 압도된 ..
신화 Myth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철학적 사유가 발생하기 전까지 인간은 미토스(mythos)【여기서 신화(myth)라는 말이 나왔다】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의 원인과 결과, 시작과 끝은 신이었으므로 인간은 신을 믿고 숭배하면 될 뿐 자연과 자신의 존재에 관해 일체의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초기 철학자들은 미토스를 부정하고 로고스(logos)를 앞세웠다. 이치와 이성을 뜻하는 로고스는 마법과 주술을 강조하는 미토스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인간의 지적 세계가 로고스를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미토스는 점점 영향력을 잃었고 문명적 사유의 대열에서 물러났다. 미토스, 즉 신화는 완전히 무의미해진 걸까? 신화와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현대 사회에도 신화는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종교다..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자본주의 초기인 18세기에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한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은 예상보다 약했으나 그 수명은 예상보다 길었다. 스미스가 예찬한 자유주의 시장경제는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자본주의가 독점화되고 제국주의로 변모하면서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다시 한 세기가 지난 20세기 말에 보이지 않는 손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전형적인 제국주의 전쟁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경제는 곧바로 급전직하했다. 1929년 미국에서 터진 대공황(大恐慌)은 인류 역사상 최대규모의 참극을 겪고도 자본주의의 모순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가장 큰 문제는 전 세계가..
신분 Status 기원전 1세기에 고대 로마의 스파르타쿠스는 검투사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고, 16세기에 조선의 임꺽정(林巪正, ?~1562)은 산적 두목이 되어 지주와 부호들의 재산을 빼앗고 의적 활동을 벌였다. 당대에 그들은 능지처참할 반역자였으나 후대에는 신분 해방을 꿈꾼 선각자로 찬양을 받았다. 실제로 그들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믿음에서 봉기한 것인지, 아니면 무질서가 판치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틈타 들고 일어난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과거의 신분제도는 과연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억압적이었을까? 당연시된 것은 언제나 익숙하다. 진짜 편안한 옷은 마치 입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신분제도는 아마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굴레와 속박이라기..
신 God 지배적인 특정 종교가 없는 우리 사회에서는 종교가 생활에 특별히 큰 영향을 준다는 느낌이 없다. 그러나 종교의 의미를 넓혀 생활양식이나 세계관으로 이해하면 어느 사회든 종교적 심성이 없는 곳은 없다. 추석과 설에 차례를 지내는 우리 사회의 풍습도 조상을 숭배하는 일종의 종교로 볼 수 있다. 종교를 좁은 의미로 해석하면 아직도 세계의 주요 분쟁 지역으로 남아 있는 중동이나 발칸의 쟁점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20세기에 유럽의 화약고로 불렸던 발칸의 경우 역사적으로 형성된 세 가지 종교【동방정교, 이슬람교, 로마 가톨릭교】가 혼재되어 있고 민족 갈등에도 종교적 요소가 깊이 작용하고 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낡은 종교를 가지고 싸우느냐고 조롱한다면, 외세가 우리나라를 정복하고 추석이나 ..
식민사관 植民史觀 한 나라를 정복하려면 총칼의 힘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정복한 나라를 계속 지배하기 위해서는 무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식민지 지배는 언제나 물리력만이 아닌 정신적인 측면의 공작이 병행되었다. 고려 말 120년간의 몽골 지배 시기보다도 훨씬 짧은 기간이지만 훨씬 더 혹독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지배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한반도를 완전히 복속시키려면 무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력에만 의존하는 통치는 장기화될 수도 없고 정당화될 수도 없다. 그래서 일제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측면을 지배하고자 했는데, 그 일환으로 실행된 계획이 바로 식민사관의 날조였다. 민족의 정신을 짓밟고 정기를 빼놓으려면 그 민족의 역사를 조작하고 그..
소외 Alienation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봉건적 신분질서는 인간을 억압하고 자유를 빼앗는 부도덕한 체제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조선시대 양반집에서 부림을 당하던 머슴이나 관청의 관노는 과연 자신의 처지를 불우하게 여기고 신분질서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었을까? 고려 말 노비의 난을 주도한 만적(萬積)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다[王侯將相, 寧有種乎]”고 말했지만, 그것은 무신정권(武臣政權, 1170~1270)이 지배하는 하극상의 시대였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누구나 나면서부터 신분과 사회적 역할이 정해진 과거 사회에는 오히려 소외가 없었다. 소외는 근대의 산물이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질서정연하고 명백한 사회 체제 안에서 정해진 위치를 가졌던 중세의 봉건 체제와..
소수자 Minority 현대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세기 공리주의에서 비롯된 이 원칙은 언뜻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므로 질적인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가급적 많은 사람의 뜻대로 모든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이 말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바로 이런 뜻이다. 하지만 질적인 측면을 도외시하고 ‘다수’라는 양적인 기준만 앞세우는 게 최선은 아니다. 그래서 벤담의 공리주의를 계승한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행복의 질적인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다수결의 원칙을 수정하고자 했다. 비록 현재까지도 그 원칙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골간을 이루지만, 현대..
성서 Bible 성서라면 어의상으로는 ‘성스러운 책’이니까 종교문헌을 전반적으로 가리키는 뜻이어야 하지만, 보통은 그리스도교에서 경전으로 여기는 책을 가리킨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의 경전(經典)인 만큼 성서는 함부로 의미를 왜곡할 수 없고 심지어 일부분을 다른 책에 인용할 경우에도 자구 하나 바꾸지 않는 게 관례화되어 있다. 하지만 신의 말씀을 기록했다는 성서는 과연 그렇듯 엄밀하게 구성된 문헌일까? 고대의 문헌들이 그렇듯이 성서 역시 한 사람의 작품은 아니다. 39권으로 된 구약성서(舊約聖書, old testament Bible)는 특별한 저자가 없이 전승된 문헌이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기록되고 보태진 게 확실하고, 27권으로 이루어진 신약성서(新約聖書, new testament Bible..
생체권력 Biopower 인간을 정신과 신체로 나누는 것이 반드시 올바른 구분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일단 그렇게 나눌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둘 중 인간의 진정한 면모는 어느 것일까? 정신과 신체 가운데 ‘참된 나’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뭘까? 교과서적 해답은 정신이다. 인간은 이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이성을 관장하는 정신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다. 그러나 교과서가 대개 그렇듯이 그것은 비현실적 사고다. 신체는 일종의 무의식이다. 의식이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듯이 정신은 신체를 경멸하고 억압한다. 그러나 의식이 무의식에 포위되어 있듯이 정신은 신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심정적으로는 누구나 먹고 입고 싸는 활동을 수행하는 신체를 참된 나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에..
생산 Production 생산과 창조는 둘 다 뭔가를 만든다는 뜻이지만 내용은 상당히 다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는 말이 있듯이 창조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만드는 것을 가리키는 데 반해, 생산은 재료를 가공해 뭔가를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생산은 일종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생산과 창조는 둘 다 뭔가를 만든다는 뜻이지만 경제적 생산은 전형적인 변형을 의미한다. 경제활동으로서의 생산은 자연에서 얻은 재료에 노동 같은 작용을 가해 재화를 만드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 결과 생산은 가치를 낳게 된다. 그냥 돌멩이라면 가치가 없지만 돌멩이를 가지고 석공이 끌로 작용을 가하면 인형이라는 가치를 지닌 재화가 생산된다. 즉 경제적 생산은 노동자가 노동대상에 노동수단과 노동력을 가..
상호주관성 Intersubjectivity 철학자란 원래 쉬운 말을 어렵게 하는 데 익숙하다. “나는 강아지를 보고 있다”는 평범한 상황도 철학자는 “주체인 나는 대상인 강아지를 주변 세계와 함께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별것 아닌 일도 철학자에게 가면 마치 대단히 중대한 문제인 양 포장되고 과장된다. 수 세기 동안 인식론의 테마가 되어왔던 주체와 대상, 주관과 객관의 문제도 그렇다. 철학자들은 주관/객관의 분리가 엄청나게 심각한 위기라도 초래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물론 주관/객관의 확연한 분리를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실증주의 인식론에는 허점이 있다. 실증주의는 사물만이 아니라 인간마저도 조잡한 방식으로 대상화시킴으로써 살아 있는 인간을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
상품 Commodity 경제적으로 보면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뭔가를 소비하는 과정이다. 의식주의 기본 생활, 나아가 각종 문화생활과 사회 활동도 소비를 떼어놓고는 진행될 수 없다. 소비되는 것을 흔히 상품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재화(財貨)라고 해야 한다. 재화는 소비를 목적으로 하고 상품은 시장에서의 판매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그래서 재화는 인류 역사상 언제나 있었던 것이지만 상품은 자본주의 시대에 출현한 것이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자본론』을 상품의 분석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장사꾼이 최고이고, 사회주의에서는 공직자가 최고다.” 지나간 냉전 시대에 이런 말이 있었다. 자본주의는 자유경쟁을 기본으로 하므로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
상대성 Relativity 북극성은 지구에서 약 800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눈에 와 닿는 별빛은 800년 전인 고려 시대에 북극성을 출발한 빛이다. 만약 북극성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600년쯤 전에 갑자기 폭발을 일으켜 백색왜성이 되어버렸다면 어떨까? 그래도 우리는 앞으로 200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그런 사실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사건은 일어났다고 해야 할까,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일상생활에서는 사건의 동시성이 당연시된다. 내가 건너려던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가 났다면 나는 거의 동시적으로 그 사건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지면 동시성의 개념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번개와 천둥은 동시에 치지만 천둥소리는 번개보다 몇 초 늦게 전달된다. 그래도 음..
삼위일체 Trinity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스스로 신이라고 불렀고, 왕조시대 중국의 황제는 신의 아들을 자처했다. 이처럼 지배자가 자신을 신과 연계시킨 경우는 많았어도 종교의 창시자가 그런 경우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독특한 존재였다. 그는 파라오가 아니라 중국의 황제처럼 처신했기 때문에, 즉 신을 자처한 게 아니라 신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 자신도 의도하지 않았던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를 모태로 했으므로 유일신은 이미 그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으로 교도를 제한한 유대교의 테두리를 넘어 그리스도교의 교세가 확장되자 그 문제는 예..
사회주의 & 공산주의 Socialism & Communism 지난 20세기에 가장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라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더불어 사회주의의 등장과 붕괴를 꼽아야 할 것이다.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으로 탄생한 사회주의 국가는 자본주의만을 인류의 미래로 알고 있었던 전 세계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고, 특히 제국주의 열강에게 침탈당하던 수많은 식민지ㆍ종속국에게는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중국을 비롯해 많은 신생국들이 사회주의 체제를 택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진영에 맞서 제2세계를 이루며 한창 뻗어 나가던 사회주의 진영은 냉전시대를 거치며 세력이 위축되었고 결국 한 세기도 못 가 사실상 사회주의의 간판을 내리게 되었다. 착취와 불평등을 조장하고 비인간적..
사회구성체 Social Formation 인간은 정신과 신체의 두 측면을 가지고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는 사람에 따라 견해가 다르겠지만 어느 쪽이 더 기본적인지에 관해서는 누구나 견해가 일치할 것이다. 우선 신체의 생명 활동이 유지되어야만 정신 활동을 도모할 수 있다. 철학을 토론하고 예술을 음미하는 측면이 인간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까울지는 몰라도 그것이 가능하려면 의식주의 기본적인 측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논리를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하면 사회의 경제구조가 가장 기본적이라는 관점으로 이어진다. 사회는 여러 층위의 다양한 부분으로 구성되지만 맨 밑바닥에는 경제의 층위가 있다. 물론 인간이 의식주만으로 인간답게 살 수는 없듯이 경제구조만 가지고 사회가 성립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제구조가 ..
사회계약 Social Contract 서양의 중세를 지탱한 것은 교회와 국가의 양대 축이었다. 양자는 종교와 정치, 신성과 세속의 영역을 분담해 중세 특유의 분권적 질서를 유지했다. 이들은 표면상으로는 갈등을 보였으나 근본적으로는 파트너였기 때문에 한쪽이 쓰러지면 어차피 다른 쪽도 견딜 수 없는 관계였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으로 교회가 무너진 것은 군주 체제의 종말을 예고한 것이다. 중세에 교회는 지상에서 신을 대리하는 역할이었고 국가는 교회의 정치적 표현으로 간주되었다. 신-교회-국가의 질서가 해체되자 국가의 개념을 새로이 해명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실제로 종교개혁 이후에 성립한 근대 국가는 중세 국가와 질적으로 다른 영토국가였다. 중세 유럽의 국가는 영토와 국민을 확정한 선(線, 국경선) 개념의 국가가..
사차원 Fourth Dimension ‘차원’이라는 개념은 대개 넘을 수 없는 간극을 가리킨다. “그것은 차원이 다르다.” 이렇게 일상적으로도 자주 사용하는 말인데, 원래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사차원이라는 개념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부여하는 뭐가 신비스럽고 섬뜩한 이미지와는 전혀 무관하다. 사차원은 수학에서 나온 용어로 명확한 정의가 있다. 사차원은 독일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헤르만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 1864~1909)가 만들어낸 개념이다. 물리적 공간인 세 가지 공간(삼차원)에다 시간을 덧붙인 것이 사차원 공간인데, 용어 창안자의 이름을 따서 ‘민코프스키 공간’이라고도 부른다. 민코프스키는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상대성이론..
사실주의 Realism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 문학과 예술은 전통적으로 귀족이나 부자들의 취미였다. 그들은 시인과 작가들을 식객(食客)으로 거느리고 후원하면서 작품을 쓰게 했고, 기념할 만한 행사가 있으면 미술가에게는 그림이나 조각을, 음악가에게는 축하 음악을 의뢰했다. 미우나 고우나 귀족과 부자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전해지는 고전 예술은 초라하고 빈약했을 것이다. 이런 양상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다. 서적 인쇄가 활성화되면서 문학은 일반 대중도 즐기는 예술이 되었다. 베스트셀러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곧이어 미술에서도 예전처럼 귀족과 부자의 의뢰와 후원을 받지 않고 미술가들이 직접 전시회를 열어 작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대도시에 화랑들이 문을 열면서 미술품 시장이 형성되었..
사서 四書 사물놀이라고 해서 아무 악기나 넷만 모이면 할 수 있는 게 아니듯이 사서도 그냥 네 권의 책이 아니라 『논어(論語)』ㆍ『맹자(孟子)』ㆍ『중용(中庸)』ㆍ『대학(大學)』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 네 권은 유학의 기본 교재이자 중국과 한반도 왕조들의 관리 임용고시인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한 수험서이자 교과서였다. 예나 지금이나 시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의 대학 입시가 책읽기(수학능력시험)와 글쓰기(논술)로 구성된다면 옛날의 과거시험도 읽기(명경, 明經)와 쓰기(제술, 製述)를 기본으로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논술시험에서도 고전의 한 대목을 적절히 인용하면 점수를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과거에서도 유학의 경전을 반드시 인용해야 했다. 사서는 과거를 위한 필수적인 교과서였다. 현재 논..
사관 史觀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과거는 확실하다. 시간의 흐름은 단선적이므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상태이고 과거는 이미 있었던 일이 된다. 미래와 과거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상식에 의하면 그렇다. 하지만 미래는 그렇다 쳐도 과거도 그럴까? 흔히 미래는 알 수 없으나 과거는 다 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게 사실일까? 안다는 것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그 답은 달라진다. 과거에 관한 인식이 누구나 똑같다면 과거를 다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과거는 미래에 못지 않게 미지의 영역이다. 과거를 바라보는 눈, 역사를 보는 관점을 사관이라고 한다. 1909년 10월 26일 만주의 하얼빈 역에서 조선의 안중근(安重根, 1879~1910)이라는 청년이 일본의 거물 정객인 이토 히로부미(..
빨치산 Partizan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역사는 사건들의 객관적인 나열이 아니라 기록자의 사관(史觀)에 의해 해석되고 서술되기 때문에 승자의 관점이 더 반영되게 마련이다. 이를 두고 영국의 역사학자인 E. H. 카는 이렇게 말했다. “흔히 사실(史實)은 스스로 말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다. 사실은 역사가가 사실에게 말을 걸 때에만 말을 하는 것이다. 어떠한 사실에 어떠한 순서, 어떠한 문맥으로 발언을 허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역사가의 몫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이렇게 역사가의 역사 해석이 중요하다면 역사가가 보는 시각에 따라 역사적 사건의 비중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며, 심지어 역사가의 눈에 사소하게 보이는 사건은 얼마든지 생략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 시기에 남한..
빅브라더 Big Brother 파시즘과 사회주의는 원래 상극이다. 이념적으로 파시즘은 극우에 속하고 사회주의를 내놓은 것은 좌익이다.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1945) 등 역사에 잘 알려진 유명 파시스트들은 사회주의라면 이를 갈았고 - 히틀러가 지휘한 나치당의 정식명칭이 독일국가사회주의 노동당인 것은 웃지 못할 코미디였다 – 스탈린(Joseph Stalin, 1879~1953)의 소련은 스페인의 반파시즘 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파시스트까지는 못 되지만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이나 박정희(朴正熙, 1917~1979)도 극단적인 반공주의자였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처럼 상극인 파시즘과 사회주의가 현실적으로 일치하는 접점..
빅뱅 Big Bang 자연과학에서는 실험이 매우 중요하다. 실험은 이론을 검증할 뿐 아니라 새로운 이론을 낳는 산파 역할도 한다. 하지만 물리학은 다르다. 여타의 자연과학 분야와는 달리 현대 물리학에서는 실험이 이론을 쫓아가지 못한다. 소립자를 이루는 쿼크(Quark)의 경우 이론에서는 그 존재가 확인되지만 실험으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초신성이 폭발해 생성되는 블랙홀(black hole)도 역시 이론적으로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실제로 발견되지는 않았다【블랙홀로 추정되는 천체들은 있다】. 이처럼 아주 작은 쿼크나 아주 큰 블랙홀 같은 것을 다루는 현대 물리학에서는 실험이 도저히 이론을 따라잡지 못한다. 그렇다면 상상 속에서는 어떨까? 상상에서는 뭐든지 가능하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 물리학은 과학적으로 ..
불확정성의 원리 Uncertainty Principle 같은 시대라는 동시성(同時性)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을 섞이게 만든다. 철학, 과학, 예술은 원래 전혀 다른 분야에 속하지만 같은 시대의 철학, 과학, 예술은 묘하게도 동질성을 보인다. 물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시대에 따라 그 접점이 클 때도 있고 쉽게 발견되지 않을 만큼 작을 때도 있다. 20세기 초는 접점이 역사적으로 가장 컸던 때에 속한다. 우선 이 시기의 철학은 전통적 형이상학이 해체될 조짐에 처해 있었다. 19세기 후반을 주름잡았던 실증주의(實證主義)를 마지막으로 그 뒤에 등장한 철학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철학적 이성의 위기를 부르짖었다.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을 계승한 하이데거(Martin 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