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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참고도서목록(參考圖書目錄) 내가 본 서를 쓰기 위하여 참고한 책은 실로 한우충동(汗牛充棟)이라 할 만큼 많다. 그 책들을 다 나열하는 것은 너무 번거로운 일일 뿐, 독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 내가 실제로 인용하고, 또 소장하면서 애독하는 책에 한정하여 간결하게 소개하겠다. 【일반사서류】 1. 諸橋轍次 著. 『大漢和辭典』 全十三卷. 東京: 大修館書店, 1966. 縮寫版, 2. 羅竹風 主編. 漢語大詞典編輯委員會, 『漢語大詞典』. 全十三册, 香港: 三聯書店香港分店 上海辭書 出版社聯合出版, 1987~1995. 3. 徐中舒 主編. 漢語大字典編輯委員會, 『漢語大字典』, 全八册, 武漢: 湖北辭書出版社ㆍ四川辭書出版, 1986-1990. 4. 辭海編輯委員會, 『辭海』, 縮印本, 上海: 上海辭書出版社, 1979...
탈고(脫苦) 수년간의 치열한 준비과정이 있었지만 8천매를 넘는 원고지를 긁어댄 것은 불과 5개월 동안이었다(제5편까지는 『도올논어』라는 기초원고가 마련되어 있었다).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책상머리에 앉아 만권(萬卷)의 서향(書香) 속에서 씨름하며 푸른 하늘도 쳐다보지 못했다. 어두운 독방에 갇힌 죄수의 삶처럼. 다시 반복될 수 없는, 이토록 처절한 스케쥴은 나의 삶의 업보라 해야할 것이다. 나는 본시 자비(自卑)를 싫어하고 불필요한 겸사(謙辭)를 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심으로 나의 학문의 부족함을 절감했다.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만이 앞선다. 보다 풍요로운 지식으로 내가 이 작업에 임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자랑할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나의 곤지(困知)의 역정이라고만 생각해주었으면 좋..
3. 명(命)과 예(禮)와 말을 알아야 한다 20-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명(命)을 알지 못하면 군자(君子)가 될 수 없으며, 예(禮)를 알지 못하면 설 수가 없으며, 언(言)을 분변(分辨)하지 못하면 타인들의 사람됨을 알아볼 수가 없다.” 20-3. 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천만근의 무게가 느껴지는 종언(終焉)의 언사이나 구구한 주석은 그 무게를 가벼이 할 뿐이다. 명(命)과 예(禮)와 언(言)으로 『논어』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 ▲ 개성 성균관(成均館). 우리는 성균관하면, 서울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만을 생각하지만, 그것은 기실 조선왕 조가 건국된 후 태조 7년(1398) 숭교방(崇敎坊)에 새 건물을 지은 후부터 개성의 성균관 전통을 계승하여..
2. 오미(五美)와 사악(四惡) 20-2. 자장이 공자께 여쭈어 말하였다: “어떻게 하여야 정치에 종사할 수 있습니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다섯 가지 아름다운 일을 존중하고, 네 가지 추악한 일을 물리치라! 그리하면 정치에 종사할 수 있으리라.” 20-2. 子張問於孔子曰: “何如斯可以從政矣?” 子曰: “尊五美, 屛四惡, 斯可以從政矣.” 자장이 말하였다: “무엇이 다섯 가지 아름다운 일이오니이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은혜를 베풀어도 허비하지 아니 하며, 백성에게 노역을 시켜도 그들이 원망치 아니하며, 욕심을 내어도 인(仁)한 욕심만 내기 때문에 탐(貪)하지 아니 하며, 생활이 유족하면서도 교만하지 아니 하며,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아니 하다.” 子張曰: “何謂五美?” 子..
1. 요임금으로부터 유유히 흘러온 유학의 흐름 20-1A.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선양할 때 순에게 말씀하시었다: “아아! 너 순(舜)아! 하늘의 역수(曆數)가 네 몸에 있다!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아라! 사해(四海)가 곤궁(困窮)해지면 천록(天祿)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 그리고 순임금 또 한 우임금에게 선양할 때 비슷한 말씀으로 우에게 명하시었다. 20-1A. 堯曰: “咨! 爾舜! 天之曆數在爾躬. 允執其中. 四海困窮, 天祿永終.” 舜亦以命禹. 요임금은 고대의 이상적 성왕의 모델 순임금에게 왕위를 선양함으로써 이상적 정치모델을 실현하였다. 이상의 말은 요임금이 왕위를 순임금에게 넘겨 줄적에 한 말이다. ‘하늘의 역수[天之曆數]’는 구체적으로 선양의 법칙을 의미한다. 누가 왕이 되고 하는 것은 다 하늘에 ..
요왈 제이십(堯曰 第二十) 편해(篇解) 우리는 『논어』를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공자의 어록에 해당되는 두서없는 파편들이 시대를 거치면서 축적되었고 보완ㆍ수정ㆍ창작ㆍ첨삭 등의 여러 과정에 의하여 어느 시점에 우발적으로 정리된 것처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마지막 「요왈(堯曰)」편은 좀 이질적인 엉성한 자투리가 엉거주춤 말미에 붙은 것인 양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우리가 각 편의 편해를 통하여 보았듯이 『논어』의 각 편은 그 나름대로 치밀한 의도성을 가지고 구성된, 그 나름대로 유기적인 의미를 지니는 편집이었으며, 또한 20편의 명칭이나 배열도 결코 우발적인 요소가 드물다는 것을 보아왔다. 따라서 이 『논어』의 종착역인, 3장으로 구성된 「요왈(堯曰)」편도 치열한 의도를 지니는 작품으로서 일절 그러한 ..
25. 자공이 공자보다 낫다는 진항 19-25. 자공(貢)의 제자, 진자금(陳子禽)이 자공에게 말하였다: “선생님은 너무 겸손하십니다. 중니(仲尼)가 어찌 선생님보다 더 나을 수 있겠습니까?” 19-25. 陳子禽謂子貢曰: “子爲恭也, 仲尼豈賢於子乎?” 이에 자공이 말하였다: “군자는 말 한마디로써 지혜롭게도 여겨지며, 말 한마디로써 어리석게도 여겨지는 것이니, 그 말 한마디를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부자(夫子)를 우리가 미칠 수 없음은 마치 하늘을 사다리 놓고 올라갈 수 없는 것과 같다. 부자(夫子)께서 만약 한 나라를 얻었거나 했다면, 이른바 그 나라를 세우면 곧 섰을 것이요, 바른 방향으로 이끌었으면 이끌리었을 것이요, 평화롭게 다스리면 이웃의 나라들이 다 귀순했을 것이요, 인민들을 고무시켜..
24. 공손무숙이 비난한 공자를 자공이 변호하다 19-24. 숙손무숙(叔孫武叔)이 노골적으로 공자를 헐뜯었다. 19-24. 叔孫武叔毁仲尼. 이에 자공이 말하였다: “아서라! 부질없는 짓이로다. 중니(仲尼)는 그대에 의하여 근본적으로 훼상(毁傷)될 수 없는 분이다. 보통 우리가 위대하다 하는 자들은 구릉(丘陵)에 비유할 수 있다. 구릉이란 아무리 높아도 밟고 넘을 수 있다. 그러나 중니는 해와 달이다. 우리로부터 격절되어 있는 높이이니 인간이 도저히 밟고 넘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해와 달과의 관계를 끊고자 한다 해보자! 그것이 해와 달에 무슨 손상을 줄까보냐! 그것은 단지 그런 바보짓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낼 뿐이로다!” 子貢曰: “無以爲也, 仲尼不可毁也. 他人之賢者..
23. 공자의 담장은 몇 인이나 된다 19-23. 노나라의 실권자인 대부 숙손무(叔孫武)이 조정에서 대부들에게 말하였다: “자공(子貢)이 중니(仲尼)보다 낫다” 19-23. 叔孫武叔語大夫於朝, 曰: “子貢賢於仲尼.” 공문에 호감을 지닌 중신(重臣) 자복경백(子服景伯)이 이 말을 자공에게 일러 주었다. 이에 자공이 말하였다: “비유컨대 부자(夫子)와 나의 경지는 건물의 담장과도 같다. 나 사(賜 자공의 이름)의 담장은 어깨 높이 정도이다. 그래서 그 담 안의 건물들의 좋은 모습들을 힐끗힐끗 들여다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부자(夫子)의 담장은 여러 길이나 된다. 정식으로 그 대문을 찾아 들어가 보지 않는 이상, 그 안에 있는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들이 일하는 건물들의 풍요로운 모습을 도저히 볼 수가 없다. ..
22. 공손조가 공자를 비난하자, 자공이 공자를 방어하다 19-22. 위(衛)나라의 대부 공손조(公孫朝)가 자공(子貢)에게 좀 삐딱하게 물었다. “그대의 선생 중니(仲尼)는 누구에게서 무엇을 배웠는가?” 19-22. 衛公孫朝問於子貢曰: “仲尼焉學?” 이에 자공이 확실하게 대답하였다: “주나라 문명을 창시한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도(道)는 아직도 땅에 떨어지지 않아, 사람들 속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다. 현명한 사람들은 그 흐름의 큰 것을 파악할 수 있고, 현명치 못한 자라도 그 흐름의 작은 것들은 파악할 수가 있다. 문무의 도를 가지고 있지 아니 한 사람이 없다. 보라! 부자께서 어디에서든 공부하지 아니 하실 수 있겠으며, 또한 어찌 정해진 선생이 있을 수 있겠는가!” 子貢曰: “文ㆍ武之道, 未墜於..
21. 군자의 허물은 일식과 월식과 같다 19-21. 자공이 말하였다: “군자의 허물은 일식ㆍ월식과 같도다. 허물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쳐다볼 수가 있고, 그 허물을 고쳤을 때에는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보나니라.” 19-21. 子貢曰: “君子之過也, 如日月之食焉: 過也, 人皆見之; 更也, 人皆仰之.” 제8장의 자하의 말과 대비를 이루는 너무도 지당하고 아름다운 말이다. ‘공직’에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해와 달을 쳐다보는 것과도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공직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행동할 때가 너무도 많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짓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이토록 정보가 발달된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눈가림이 통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대..
20. 하류에 살아선 안 되는 이유 19-20. 자공이 말하였다: “은(殷)나라의 마지막 왕 주(紂)의 불선(不善)이 세평처럼 그토록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신을 하류(下流)에 거(居)하도록 처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천하의 악이란 악은 다 하류로 흘러 들어오기 때문이다.” 19-20. 子貢曰: “紂之不善, 不如是之甚也. 是以君子惡居下流, 天下之惡皆歸焉.” 항상 한 조대의 마지막 임금은 ‘나쁜 놈’으로 역사에 기술된다. 그러나 그 실상은 잘 모른다. 공민왕이나 공양왕은 ‘나쁜 놈’이고 이성계는 ‘좋은 놈’인가? 최영 장군은 바보고, 위화도회군을 단행한 이성계는 현명했는가? 하여튼 이런 문제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은왕조 30대왕주(村)에 대한 평가도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악이란 악..
19.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되새겨야 할 말 19-19. 삼환(三桓)의 하나인 맹손씨가 증자의 제자인 양부(陽膚)를 사사(士師: 법무장관)로 임명하였다. 양부가 증자에게 형옥(刑獄)에 관하여 물었다. 19-19. 孟氏使陽膚爲士師, 問於曾子. 이에 증자가 말하였다: “법무를 담당한 윗 관리들이 도(道)를 잃어버려 민심이 이반된 지가 오래되었다. 범죄의 정황을 취조하여 그 실정을 파악했으면, 우선 그들을 긍휼히 여겨야지, 사실을 알아냈다고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曾子曰: “上失其道, 民散久矣. 如得其情, 則哀矜而勿喜.” 참으로 위대한 말이다. 요즈음의 사법공무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명언이다. ‘맹씨(孟氏)’는 유보남의 고증에 의하면 2-5의 맹의자(孟懿子)로 사료되고 있다. 유보남은 『예기』소에 인용된 ..
18. 맹장자를 칭찬한 공자 19-18. 증자가 말하였다: “내가 부자(夫子)께 들은 이야기가 있다. ‘노나라의 대부 맹장자(孟莊子)의 효행에 관해 말하자면, 그가 한 다른 일은 능히 실천할 수 있겠지만, 아버지의 신하와 아버지의 정치방식을 바꾸지 아니 하고 잘 계승한 측면은 참으로 능히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19-18. 曾子曰: “吾聞諸夫子: 孟莊子之孝也, 其他可能也; 其不改父之臣, 與父之政, 是難能也.” 맹자(孟子)는 노나라의 대부로서 중손속(仲孫速)이라는 사람이다. 아버지 맹헌자(孟獻子: 仲孫)를 계승하였고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이들은 공자가 태어날 때쯤의 사람들이었다. 공자는 양공 22년에 태어났는데, 이들의 기사는 양공 16년, 19년에 나오고 있다(맹헌자는 양공 19년에 죽는다)...
17. 어버이 상례엔 누구나 정성을 다한다 19-17. 증자(曾子)가 말하였다: “내가 부자(夫子)께 들은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자력으로 궁극에 도달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부모의 상(喪)을 당해서는 반드시 그 궁극에 도달하는 정성을 다한다.’” 19-17. 曾子曰: “吾聞諸夫子: ‘人未有自致者也, 必也親喪乎!’” 증자의 말은 항상 감동이 없다. 부모의 상에 극진하게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아마도 증자가 이 말씀을 참말로 공자에게 들었다고 한다면, 17-21에 나오는 재아와의 논쟁선상에서 이루어진 한 논리적 파편일 것이다. 물론 대체로 인간이라면 부모의 상을 당해서는 진실한 슬픔을 다 표현하리라고 본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16. 자장을 폄하한 증자 19-16. 증자가 말하였다: “나의 친구 자장(子張)은 당당(堂堂)한 사람이로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함께 인(仁)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19-16. 曾子曰: “堂堂乎張也, 難與並爲仁矣.” 제15장과 동일한 취지의 말이다. 자장(子張)이 나이가 가장 어렸으면서 도 공자 말년에 가장 튄 활발한 인물이었다. 그만큼 질시도 많았을 것이다. 고주의 정현이 다음과 같이 평한다. 자장의 용모나 의궤는 매우 성대히 갖추었으나 그 내면의 인도(仁道)에 있어서는 매우 박(薄)한 인물임을 말한 것이다. 言子張容儀盛, 而於仁道薄也. 그러나 한 사람이 한 사람을 폄하하는 이야기는 나는 귀담고 싶지를 않다. 증자가 자장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15. 자장을 폄하한 자유 19-15. 자유(子游)가 말하였다: “나의 벗 자장(子張)은 어려운 일들을 잘 극복해 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인(仁)하다고까지는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19-15. 子游曰: “吾友張也, 爲難能也. 然而未仁.” 제자들끼리 서로 평론하는 것을 내가 지금 주석할 계제는 아닌 것 같다. 공자의 흉내를 낸 말 같다. 자유학파와 자장학간에 모종의 긴장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14. 초상은 슬픔이 지극한 데서 그쳐야 한다 19-14. 자유(子游)가 말하였다: “상(喪)을 당해서는 슬픔을 극진히 하는 데서 그쳐야 한다.” 19-14. 子游曰: “喪致乎哀而止.” 신주는 이것을 ‘슬픔을 극진히 할 뿐이다’, 즉 ‘이지(而止)’를 ‘이이(而已)’로 훈하여 해석했다. 그것은 명백히 잘못된 해석이다. ‘지(止)’는 ‘그쳐야 한다’는 본동사이다. 고주에도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공안국이 말하였다: “슬퍼서 훼상하여도 그 본성을 멸하는 데까지 이를 수는 없는 것이다.” 孔安國曰: “毁不滅性.”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13. 벼슬하다 여유로워지면 배워라 19-13. 자하가 말하였다: “벼슬하고도 여가가 생기면 틈틈이 학문을 하라! 학문을 이루고서 남음이 있다고 생각되면 벼슬길에 올라도 좋다.” 19-13. 子夏曰: “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 『천자문』에 여기서 따온 말로서 ‘학우등사(學優登仕)’라는 네 글자 구문이 들어가 있어 조선유자들에게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여기서는 사실 벼슬과 학문의 상호교섭을 말한 느슨한 언급일 뿐이나, 이 말 때문에 단장취의하여 많은 사람이 학문을 하고 벼슬길로 나아가는 것을 당연한 도리로 여겼다. 지금도 우리나라 일반식자들의 멘탈리티는 대체로 그러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학문과 벼슬이 분리되기 어려운 사(士)라는 계급의 특수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 사(士)는 문사(文..
12.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고원한 경지에까지 이른다 19-12. 자유(子游)가 말하였다: “자하(子夏)의 문인소자(門人小子)들은 물 뿌리고 청소하고, 손님을 응대(應對)하고, 집안을 들락날락하는 예절 정도는 잘 배운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말엽적인 것이다. 근본으로 들어가면 아무 것도 없으니 어찌할 것인가?” 19-12. 子游曰: “子夏之門人小子, 當洒掃, 應對, 進退, 則可矣. 抑末也, 本之則無. 如之何?” 자하(夏)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어허! 언유(言游: 자유의 성과 자)의 말이 지나치다! 군자의 도인즉, 어느 것이 먼저라 하여 전하고, 어느 것이 후라 하여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초목에 비유해도 용도에 따라 구역을 나누어 심고 수확에도 단계적 절차가 있는 법이니, 어찌 군자..
11. 자잘한 것에 얽매지 말라 19-11. 자하가 말하였다: “큰 도덕의 울타리를 넘어가지만 않는다면, 작은 도덕의 소절(小節)은 출입(出入)이 있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19-11. 子夏曰: “大德不踰閑, 小德出入可也.” 너무도 지당한 말이다. 인간이 큰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작은 도덕의 소절(小節)에 얽매여 사는 것은 한심한 것이다. 오역(吳棫)이 이것이 공자의 말이 아님을 들어 소덕(小德)을 무시해도 된다는 이 말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말하고 있고, 또 그것을 주희가 인용한 것은 참으로 쩨쩨하고 구질구질한 송유들의 도덕엄격주의(moral rigorism)을 나타내는 한 측면이다. 이 따위 송유들의 멘탈리티는 자하의 판단력에도 한참 한참 못 미치는 것이다. 그 편협한 송유들의 유학을..
10. 군자가 백성을 부리고 임금께 간쟁할 수 있으려면 19-10. 자하가 말하였다. “군자는 백성으로부터 믿음을 얻은 후에 그 백성을 부린다. 그들에게 믿음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자신들을 괴롭힐 뿐이라고 생각한다. 군자는 임금으로부터 신임을 얻은 후에 임금에게 간한다. 신임을 얻지 못하면 임금은 자기를 비방한다고만 여길 뿐이다.” 19-10. 子夏曰: “君子信而後勞其民, 未信則以爲厲己也; 信而後諫, 未信則以爲謗己也.” 전반은 군자와 백성과의 관계, 후반은 군자와 임금과의 관계를 논한 것이다. 군자(君子) 즉 사(士)는 이미 그 기능이 명료하게 규정되어 있다. 윗 사람에게는 간(諫해야 하고 아랫 사람은 부려야 한다. 군(君) ⬆ 간(諫) 사(士) ⬇ 노(勞) 민(民) 그러한 중간자적인 존재가 군자(君子)..
9. 군자의 모습 19-9. 자하가 말하였다: “군자에게는 항상 세 가지 다양한 모습이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하고 단정하게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면 따사로움이 느껴진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칼날같이 명철하다.” 19-9. 子夏曰: “君子有三變: 望之儼然, 卽之也溫, 聽其言也厲.” 거대한 인격은 항상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 일양적(一樣的) 모습으로 규정할 수가 없다. 그 인격의 다면성을 여기 ‘삼변(三變)’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7-37에서 이미 공자의 인격을 표현하는데 상반되는 양면성의 공재(共在)를 논한 바 있다. 엄연(儼然)하고 따사롭고[溫], 명철한[厲] 모습은 모든 인격자가 동시에 구비하고 있는 미덕일 뿐이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8. 소인은 허물에 반드시 문식한다 19-8. 자하가 말하였다: “소인(小人)들은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문식(文飾)하려 한다.” 19-8. 子夏曰: “小人之過也必文.” 정말 멋있는 말이다. 자하의 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명언이다. 본 편 21장의 ‘군자의 허물’과 대비를 이룬다. 잘못이 있을 때 그것을 그럴듯하게 문식하여 꾸미려는 자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놈들이다. 그런데 대개 그런 놈들이 정치를 한다. 그런데 더더욱 한심한 것은 항상 그런 놈들한테 민중은 표를 찍는 것이다. 그런 놈들을 지도자라고 떠받들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한심한 일이 계속 발생하는가? 이것은 우리의 민주주의 체험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는 시대가 와야만 의회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는 그 나름대..
7. 명장(名匠)과 군자의 공통점 19-7. 자하가 말하였다: “백공(工)이 자기의 공방(工房)에 거(居)하면서 그 물건을 만들어낸다. 마찬가지로 군자는 자기의 배움의 세계에서 그 도(道)를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19-7. 子夏曰: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이것은 기술직과 군자의 도를 이원적으로 말했던 앞의 4장과 상치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으나, 그것은 가치론상의 서열이요 이 장에서 말하는 것은 방법론상의 공통점을 말한 것으로 차원이 다르다. 기술자들이 공방에서 완벽한 공예품을 만들어내듯이, 군자도 배움의 추상적 공방 속에서 도라는 지고의 차원의 공예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논어』 중에서 내가 자장 사랑하는 장 중의 하나이다. 군자랍시고 무형의 추상적 세계에서 무위도식하는 쓰레기 ..
6. 절실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라 19-6. 자하가 말하였다: “널리 배우고 그 뜻을 돈독히 하라.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데서 생각하라. 그리하면 인(仁)이 그 속에 있나니라.” 19-6. 子夏曰: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논어 중에서 잘 회자가 되는 유명한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라는 말을 좋아한다. 절실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항상 의문을 품고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삶의 태도, 그것이 인이다. 절실한 문제의식이 있을 때만 탐구가 이루어진다. 절실하게 물을 줄 모르는 사람들은 인생을 멍청하게 보낸다. ‘근사(近思)’도 매우 중요한 말이다. 생각은 항상 비근한 데서 해야 한다. 형이상학적 문제는 결국 허망한 것이며, 아무리 형이상학적 우주론을 완성했다 할지 라도 우리..
5. 자하가 생각하는 호학 19-5. 자하(子夏)가 말하였다. “날마다 그 모르는 것을 알게 되며, 달마다 자기가 이미 능(能)한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 19-5. 子夏曰: “日知其所亡, 月無忘其所能, 可謂好學也已矣.” 마지막의 ‘가위호학야이의(可謂好學也已矣)’는 마지막 ‘의(矣)’만 없는 형태가 1-14에 기출. ‘일지기소무(日知其所亡)’란 자기가 몰랐던 것을 배워 알게 된다는 뜻으로 매일매일 쉬지 않고 새롭게 배워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윤언명(尹彦明)이 말한다. 배움을 좋아하는 자는 매일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하고, 그러므로 자신의 지닌 바를 잃지 않는다. 好學者, 日新而不失. 존경스러운 명말청초의 유로(遺老) 고염무(顧炎武, 꾸 옌우Gu Yan-wu, ..
4. 작은 기술에 함몰되지 마라 19-4. 자하(子夏)가 말하였다: “비록 작은 지엽적 도술(道術)이라도 반드시 볼 만한 것은 있다. 그러나 원대한 이상을 실현하는 데는 이러한 소도(道)에 니착(泥着)함이 장애가 될까 두렵다. 그러므로 군자는 소도(小道)에는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19-4. 子夏曰: “雖小道, 必有可觀者焉; 致遠恐泥, 是以君子不爲也.” 일리가 있는 말이다. 주희가 ‘소도(小道)’를 주석하여 ‘농포의복지속(農圃醫ㅏ之屬)’이라고 했는데, 결국 농사, 원예, 의술, 점복과 같은 당시로서는 ‘테크놀로지(technology)’에 해당되는 지엽적 기술들을 의미했다. 군자는 치국평천하를 지향하는 사람들로서 전체적 안목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국부적 기술직의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봐서는 안 된..
3. 벗의 사귐에 대해 자장이 자하를 비판하다 19-3. 자하(夏)의 문인(門人)이 벗 사귐에 관하여 자장(子張)에게 물었다. 자장이 말하였다: “자하는 무어라 말하던가?” 자하의 문인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우리 자하(子夏)께서 이르시기를, ‘벗할 만한 자와는 더불어하고, 벗할 만하지 못한 자는 거절해버려라’하고 잘라 말씀하시었습니다.” 19-3. 子夏之門人問交於子張. 子張曰: “子夏云何?” 對曰: “子夏曰: 可者與之, 其不可者拒之.” 이에 자장(子張)이 말하였다: “내가 부자(夫子)로부터 들은 바와는 다르구나! 군자는 소수의 현인을 존중하되 동시에 대중을 포용해야 하며, 선(善)한 자를 아름답게 여기지만 동시에 능력없는 자를 불쌍히 여겨야 한다. 내가 크게 어질다면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누구인들 포..
2.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19-2. 자장이 말하였다: “덕(德)을 손에 쥘이 넓지 못하며, 도(道)를 신험함이 독실하지 못하면, 그러한 인간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뿐이다.” 19-2. 子張曰: “執德不弘, 信道不篤, 焉能爲有? 焉能爲亡?” ‘언능위유(焉能爲有), 언능위무(焉能爲無)’는 실로 난해한 문구이다. 고주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亡’은 ‘무’로 읽는다】. 공안국이 말하였다: “경중을 따질 가치조차 없는 것을 말한 것이다.” 孔安國曰: “言無所輕重也.” 직역하면 ‘어찌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어찌 없다고 할 수 있으리오?’의 뜻이나, 나의 번역대로 그런 인간은 존재의 유무를 논할 가치조차 없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1. 자장이 생각하는 선비란? 19-1. 자장이 말하였다: “선비는 모름지기 나라가 위태로울 시기에는 목숨을 바치며, 이득을 볼 때에는 의로움을 생각한다. 제사에 임해서는 공경함을 생각하며, 상을 당하면 슬픔을 생각한다. 이러하면 좋은 선비라 할 만하다.” 19-1. 子張曰: “士見危致命, 見得思義, 祭思敬, 喪思哀, 其可已矣.” 여기서 ‘선비’라는 것은 공직에 있는 공무원을 말하는 것으로, 단순한 지식인의 의미가 아니다. 공무원은 반드시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목숨을 바쳐야 한다. 그들은 나라의 녹을 먹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자장 제십구(子張 第十九) 편해(篇解) 「자장」편이야말로 ‘자왈’이나 ‘공자왈’이 전혀 없는 모두가 공자의 제자들의 말과 문답으로만 이루어진 특이한 성격의 편이며, 그 성립과정이나 연대가 정확히 추정될 수 있는 확실한 문헌이다. 그러니까 공자 사후의 공문의 활약상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매우 소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공자의 어록이라 말할 수 있는 『논어』의 뒤 끝에 그 제자들만의 어록을 첨가한 것은, 실제로 신약성서라고 하지만 예수의 언행록에 해당되는 것은 사복음서뿐이고 그 뒤는 대부분이 사도 바울이라는 이방 전도사의 편지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너무도 당연한 사태에 속하는 것이다. 사복음서의 반복되는 내용에 비한다면 「미자(微子)」편까지의 18편에 해당되는 공자복음서(Good News about Conf..
11. 주나라의 8명의 선비 18-11. 주나라에 여덟 선비가 있었다: 백달(伯達)과 백괄(伯适), 중돌(仲突)과 중홀(仲忽), 숙야(叔夜)와 숙하(叔夏), 계수(季隨)와 계와(季騧)이다. 18-11. 周有八士: 伯達ㆍ伯适ㆍ仲突ㆍ仲忽ㆍ叔夜ㆍ叔夏ㆍ季隨ㆍ季騧. 여기 백(伯)ㆍ중(仲)ㆍ숙(叔)ㆍ계(季)라는 이름의 돌림 때문에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한다. 한 어머니가 네 번 쌍둥이를 출산하여 여덟 아들을 낳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한배에서 나온 쌍둥이 아들 여덟 명이 다 훌륭하게 되었으므로 특기할 만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신주에 의하면 주나라 성왕(成王) 때, 혹은 선왕(宣王) 때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쌍둥이 여부는 알 길이 없으나, 하여튼 한 집안에서 여덟 명의 훌륭한 선비가 나온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
10. 주공이 아들 백금에게 해준 훈계 18-10. 주공(周公)이 노공(魯公)으로 부임해가는 자기 아들 백금(伯禽)에게 타일러 말하였다: “군자는 그 가까운 친족을 버리지 아니 한다. 그리고 대신(大臣)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생각이 채용되지 않는다고 원망치 않도록 그들에게 관심을 보여라. 오랜 친구는 큰 사고가 없는 한 함부로 버리지 말라. 그리고 한 사람에게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라.” 18-10. 周公謂魯公曰: “君子不施其親, 不使大臣怨乎不以. 故舊無大故, 則不棄也. 無求備於一人.” 원래 노나라는 주공(周公) 단(旦)이 분봉된 나라였으나, 주공은 주나라 중앙정권의 정무가 너무 바빴기 때문에 노나라에 부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아들 백금(伯禽)을 보내었으니, 백금이 곧 노공(魯公)이다. ‘군자불시..
9. 음악 명인들이 노나라를 떠났다 18-9, 태사(大師) 지(摯)는 제(齊)나라로 가고, 아반(亞飮) 간(干)은 초(楚)나라로 가고, 삼반(三飮) 료(繚)는 채(蔡)나라로 가고, 사반(四飯) 결(缺)은 진(秦)나라로 가고, 고(鼓) 방숙(叔)은 하내(河內)로 들어갔고, 파도(播鼗) 무(武)는 한중(漢中)으로 들어갔고, 소사(少師) 양(陽)과 격경(擊磬) 양(襄)은 황해의 섬으로 들어갔다. 18-9. 大師摯適齊, 亞飯干適楚, 三飯繚適蔡, 四飯缺適秦. 鼓方叔入於河, 播鼗武入於漢, 少師陽ㆍ擊磬襄入於海. 공자의 삶이 얼마나 음악과 밀착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가 음악의 전파 경로나 계보에 얼마나 구체적 관심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파편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분명 공자의 진술일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8. 공자의 은둔했던 현자들에 대한 평가 18-8. 일민(逸民)으로서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와 우중(虞仲)과 이일(夷逸)과 주장(朱張)과 유하혜(柳下惠)와 소련(少連)을 들 수 있다. 18-8. 逸民: 伯夷ㆍ叔齊ㆍ虞仲ㆍ夷逸ㆍ朱張ㆍ柳下惠ㆍ少連.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자신의 생각을 비굴하게 낮추지 아니 하고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자는 백이와 숙제일 것이다.” 子曰: “不降其志, 不辱其身, 伯夷ㆍ叔齊與!” 또 유하혜(柳下惠)와 소련(少連)을 평하시어 말씀하시었다: “자신의 생각을 낮추기도 하고 몸을 욕되게도 하였으나, 그 말이 윤리에 들어맞고 행동이 사려에 합치하였으니, 이것만으로도 훌륭하다 할 것이다.” 謂: “柳下惠ㆍ少連, 降志辱身矣. 言中倫, 行中慮, 其斯而已矣.” 또 우중(處仲)과 이일(夷逸..
7. 자로가 장인(丈人)의 집에서 하루 밤 묵다 18-7. 자로가 공자 일행을 따라가다가 뒤쳐지고 말았는데, 지팡이로 대바구니를 멘 노인을 길거리에서 만났다. 자로가 그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장께서는 우리 선생[夫子]이 지나가는 것을 보셨습니까?” 18-7. 子路從而後, 遇丈人, 以杖荷蓧. 子路問曰: “子見夫子乎?” 그 노인이 대답하였다: “팔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지도 않고 오곡(五穀)도 제대로 분간 못하는 그 자를, 누가 선생[夫子]이라고 일컫는가?” 지팡이를 꽂아놓고 계속 김을 맬 뿐이었다. 자로(子路)가 공경하는 마음이 들어 공수(拱手)하고 서 있었다. 丈人曰: “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植其杖而芸. 子路拱而立. 그러자 그 노인은 자로를 머물게 하여 자기 집에서 자게 하였다. 닭을 잡고 ..
6. 나루터 가는 길을 묻다 18-6.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이 나란히 밭을 갈고 있는데, 공자가 그들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에 수레를 세우고 자로(子路)로 하여금 그들에게 나루터가 어디 있는지를 묻게 하였다. 18-6. 長沮ㆍ桀溺耦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 장저가 말하였다: “저기 저 수레 고삐를 잡고 있는 사람이 뉘시오?” 자로가 말하였다: “공구(孔丘)라 하는 분이외다.” 長沮曰: “夫執輿者爲誰?” 子路曰: “爲孔丘.” 장저가 말하였다: “저 사람이 바로 노나 라의 공구(孔丘)인가?” 자로가 말하였다: “그렇소.” 장저가 말하였다: “세상을 쏴다니는 사람인데 나루터라면 나보다는 그가 더 잘 알 것이오.” 曰: “是魯孔丘與?” 曰: “是也.” 曰: “是知津矣.” 그래서 자로가 걸닉(桀溺)..
5. 초나라 미치광이 접여가 노래하며 공자의 수레를 지나다 18-5. 초(楚)나라의 광인(狂人) 접여(接輿)가 노래를 부르며 공자의 수레 앞을 지나갔다: “봉황과도 같이 고고한 그대여! 봉황과도 같이 고고한 그대여! 나타나지 않아야 할 세상에 나타나서 돌아다니는 네 모습이 초라하다. 여태까지 나돌아다닌 것은 탓할 수 없겠으나, 지금부터라도 너의 본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다! 그만둘지어다! 그만둘지어다! 지금 정치에 참여함은 오직 위험만이 기다릴 뿐!” 18-5. 楚狂接輿歌而過孔子曰: “鳳兮! 鳳兮! 何德之衰?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 已而, 已而! 今之從政者殆而!” 공자는 수레에서 내려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공자는 끝내 그와 말할 수 없었다. 孔子..
4. 계환자가 여악(女樂)에 빠져들다 18-4. 제(齊)나라 사람들이 노나라를 어지럽히기 위하여 미녀들과 악사들을 노나라로 보내었다. 당대 노나라의 실권자 계환자(季桓子)가 이를 거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삼 일 동안이나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공자는 노나라를 떠났다. 18-4. 齊人歸女樂, 季桓子受之. 三日不朝, 孔子行. 공자의 거로(去魯)의 결정적 계기를 만든 사건처럼 「공자세가(孔子世家)」에 기술되어 있다. 정공 14년(BC 496) 공자의 나이 56세 때, 그는 당시 노나라의 대사구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삼도무장해제라든가 소정묘주살 사건이라든가 하는 매우 복잡한 정변들의 복선이 깔려있다. 탁월한 공자의 전략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정공(定公), 결국 공자는 계씨(季氏)에..
3. 계씨와 맹씨의 중간 정도로는 공자를 대우하겠다 18-3. 제(齊)나라의 경공(景公)이 공자를 대우하려고 하면서 말하였다: “노나라의 대부 계씨(季氏)의 지위만큼은 내가 대우할 수 없지마는, 계씨와 맹씨(孟氏)의 중간 수준으로는 그대를 대우할 수 있겠소.” 18-3. 齊景公待孔子, 曰: “若季氏則吾不能, 以季ㆍ孟之閒待之.” 신하들의 반대가 일고 얼마 지나 다시 말하기를, “내가 늙었구료. 당신을 제대로 기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소.” 공자는 떠났다. 曰: “吾老矣, 不能用也.” 孔子行. 사마천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의하면 이 사건은 공자의 생애의 전반부에 속하는 일로서 30대의 공자에게 일어났던 사건으로 기술되고 있다. 16-12에서도 언급했듯이 제나라의 경공(景公)은 BC 547년부터 BC 49..
2. 유하혜, 세 번 사사가 되었다가 세 번 쫓겨나다 18-2, 노나라의 현인(賢人) 유하혜(柳下惠)가 세 번 사사(士師: 법무장관)직에 임명 되었으나 세 번 다 파면되었다. 18-2. 柳下惠爲士師, 三黜. 그러자 흑자가 이르기를, “그대는 무슨 미련이 남아 아직도 이 나라를 떠나지 않고 있는가?”하니, 유하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도(道)를 곧게 하여 사람을 섬기면 어디 간들 세 번 내침을 당하지 않으리오? 도(道)를 구부리어 사람에게 아첨하고 살 것이라면 어찌 굳이 부모의 나라[父母之邦]를 떠날 필요가 있겠는가?” 人曰: “子未可以去乎?” 曰: “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 유하혜에 관해서는 15-13에 기출. 올곧기 그지없는 유하혜의 말이다. 그는 공자보다 한 10..
1. 은나라 세 명의 인자(仁者) 18-1. 미자는 떠나갔고, 기자(箕子)는 종이 되었고, 비간(比干)은 간(諫)하다가 죽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은(殷)나라에 인(仁)한 사람이 셋 있었다” 18-1. 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 미자는 은나라 최후의 왕인 주(紂)의 형. 나중에 송(宋) 나라에 분봉됨. 기자(箕子)는 주의 숙부(叔父), 나중에 『서경』의 「홍범(洪範)」을 전수한 후 조선(朝鮮)에 분봉됨. 비간(比干) 역시 주의 숙부(叔父). 이들에 관해서는 독자들이 조사해볼 문헌은 많다. 『상서(尙書)』와 『사기(史記)』에 잘 나와있다. 당시 『사기』는 없었으니까, 이장은 『상서(尙書)』의 지식에 기초했을 것이다. 모두 주(紂)의 폭정에 항거한 현신(賢臣) 들인데..
미자 제십팔(微子 第十八) 편해(篇解) 아주 래디칼한 생각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시라카와(白川靜)는 『논어』의 최종 편집자는 「미자편(微子篇)」의 편찬자일 것이라고 말한다. 「미자」편이 『논어』 중에서 가장 늦은 층대에 속하는 편 중의 하나임이 확실하기 때문에 『논어』의 많은 편들이 기존해 있었다 해도 최종편집은「미자」편이 성립하면서, 「미자」편을 편찬한 사람들이 『논어』라는 서물을 완성시켰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논어』는 실제로 「미자」편에서 끝난다. 「미자」편 이후의 2편은 「미자」편에서 완성된 『논어』에 대한 사족(蛇足)적인 첨가일 수가 있다. 「미자」편의 편찬자들에 의해서 『논어』가 마무리되었다는 것이 왜 중요한 의미를 지닐까? 세계의 사대성인으로 꼽히는 예수, 싯달타, 소크라테스, 공자를 ..
26. 마흔 살이면 성취해야 할 것 17-2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이 사십이 되어서도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면 그것으로 끝장일 뿐이다.” 17-26. 子曰: “年四十而見惡焉, 其終也已.” 시시한 말 같지만, 새겨들을 만하다. 나이 40이 되어도 싹수가 없으면 더 이상 별 볼일 없다는 말인데, 그만큼 젊은 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격려의 말씀일 것이다. 나이 40이면 그래도 가치있는 인생의 대강의 청사진은 그려져야 할 것 아닐까? 비슷한 이야기가 9-22에 있었다. ▲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민족의 시조를 단군이라고 생각하듯이, 중국사람들은 그들의 시조를 황제(黃帝)라고 생각한다. 누루 황자가 붙은 것은 중원 제부족의 공통 선조라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황제의 성은 공손(公孫), 또는 희(姫), 이름..
25. 사람 관계의 어려움 17-2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오직 여자(女子)와 소인(小人)은 기르기가 어려우니, 가까이 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17-25. 子曰: “唯女子與小人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공자의 말일 수 없다. 공자의 시대에 여자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런 사소한 문제를 구태여 어록자료로 남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후대의 번쇄한 윤리체계나 경직화된 학단의 권위주의적 하이어라키(hierarchy, 위계질서)에서 발생한 파편임에 틀림이 없다. 「자한」편의 마지막을 보면 ‘진실로 사랑한다 한번 말해보지도 아니 하고 어찌 멀리 있다고만 하느뇨[未之思也, 夫何遠之有]?’라는 구절이 있는가 하면, 호색(好色)하듯이 호덕(好德)하는 자를 보지 못하겠다고..
24. 공자의 미워함과 자공의 미워함 17-24 자공이 여쭈었다: “군자도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암~ 있구 말구. 남의 단점을 들추는 자를 미워하며, 아래에 처하면서 윗사람을 하릴없이 비방하는 자를 미워하며, 용기만 있고 예의가 없는 자를 미워하며, 과감키만 하고 융통성이 없는 자를 미워한다.” 17-24. 子貢曰: “君子亦有惡乎?” 子曰: “有惡: 惡稱人之惡者, 惡居下流而訕上者, 惡勇而無禮者, 惡果敢而窒者.” 그리곤 말씀하시었다: “사(賜: 지공)야! 너 또한 미워하는 것이 있느냐?” 이에 자공이 답하였다: “네, 있습니다. 남의 지식을 훔쳐내는 것을 지혜로 여기는 자를 미워하며, 불손한 것을 용기로 여기는 자를 미워하며, 남의 비밀을 까발리는 것을 정직으 로 여기는..
23. 젊은 자로가 공자에게 물은 것 17-23. 자로(子路)가 여쭈었다: “군자는 용맹을 숭상해야 합니까?” 17-23. 子路曰: “君子尙勇乎?”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의(義)를 으뜸으로 삼는다. 군자가 용기만 있고 의로 움이 없으면 반란을 일삼게 되고, 소인이 용기만 있고 의로움이 없으면 도둑놈이 되느니라.” 子曰: “君子義以爲上. 君子有勇而無義爲亂, 小人有勇而無義爲盜.” 젊은 시절의 자로를 향한 공자의 훈계였을 것이다. 여기 ‘군자가 용기만 있고 의로움이 없으면 반란을 일삼게 된다’는 말에 해당되는 인물로서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세조를 꼽을 수 있다. 세조는 용기조차 없었다. 그는 탐욕만 있고 의로움이 없었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22.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라 17-2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하루종일 배부르게 먹으면서도 마음을 쓸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은 참 있기 어려운 상황이다. 장기나 바둑이라도 있지 않겠나? 아무것도 안 하느니 장기나 바둑이라도 두는 것이보다 현명할 것 같다.” 17-22. 子曰: “飽食終日, 無所用心, 難矣哉! 不有博弈者乎, 爲之猶賢乎已.” 배부르게 처먹고 의미 없이 놀고먹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질책하는 말씀일 것이다.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바둑이라도 두는 것이 슬기로운 일이라 말하는 공자는 일상생활에서 쉼이 없이 노력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21. 3년상과 1년상 17-21. 재아(宰我)가 여쭈었다: “삼년상은 만 일 년으로 줄여도 이미 충분히 오라고 할 것입니다. 군자가 삼 년 동안 예(禮)를 행하지 않으면 예가 반드시 무너지고, 삼 년 동안 악(樂)을 익히지 않으면 악이 반드시 망그러질 것입니다. 묵은 곡식이 다 없어지고 새 곡식이 무르익으며, 불씨 만드는 나무도 다 바뀌니, 일 년이면 그칠 만할 것입니다.” 17-21. 宰我問: “三年之喪, 期已久矣. 君子三年不爲禮, 禮必壞; 三年不爲樂, 樂必崩. 舊穀旣沒, 新穀旣升, 鑽燧改火, 期可已矣.”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 기간에 쌀밥 먹고 비단옷 입는 것이 너에게는 편안하냐?” 재아가 대답하였다: “편안하옵니다.” 子曰: “食夫稻, 衣夫錦, 於女安乎?” 曰: “安.” 공자께서 말씀하..
20. 아프다고 하면서 거문고를 타는 이유 17-20. 유비(孺悲)라는 노나라 사람이 공자를 뵙고자 하였다. 공자는 병중이라고 거절하시었다. 명(命)을 전달하는 자가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슬을 꺼내어 노래를 부르시고 밖에 있는 유비로 하여금 듣게 하시었다. 17-20. 孺悲欲見孔子, 孔子辭以疾. 將命者出戶, 取瑟而歌. 使之聞之. 참으로 치열하고도 엄격한 공자의 삶의 절도가 느껴지는 특이한 장면이다. 유비(孺悲)라는 사람은 노나라사람인데 「열전」에는 그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예기』 「잡기(雜記)」 하에 다음과 같은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휼유(恤由)의 상례를 거행할 때에 애공(哀公)은 유비(孺悲)로 하여금 공자에게 가게 하여 사상례(士喪禮)를 배우게 하였..
19. 공자, 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다 17-1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이제 나는 입을 다물려한다.” 17-19. 子曰: “予欲無言.” 자공(貢)이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면 저희 소자(小子)들은 과연 무엇을 후세에 전할 수 있으리이까?” 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저 하느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느냐? 사시(四時)가 운행하고, 온갖 생명이 잉태되고 있질 아니 하느뇨? 저 하느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느냐?”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내가 『논어』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파편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아마도 공자의 이승에서의 최후의 심경의 기록이었을 것이다. 죽기 직전에 자공이 달려왔던 것이다. 아들 백어도 죽었고, ..
18. 자주색이 붉은색을 탈취함을 미워하다 17-1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간색(間色)인 자색(紫色)이 정색(正色)인 주색(朱色)을 빼앗는 것을 미워하며, 정성(鄭聲)이 아악(雅樂)을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하며, 말만 잘하는 자들이 나라[邦家]를 전복시키는 것을 미워하노라.” 17-18. 子曰: “惡紫之奪朱也, 惡鄭聲之亂雅樂也, 惡利口之覆邦家者.” 주석을 요하지 않는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17. 교언영색(巧言令色)한 사람치고 인한 사람은 드물다 17-1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말 잘하고 표정을 꾸미는 사람치고 인한 이가 드물다!” 17-17.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1-3에서 이미 나온 파편이지만 앞뒤 문맥을 볼 때에 들어갈 만한 자리에 들어가 있다. 군자의 덕이 상실된 상태에 대한 개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파편의 존재는 「양화」편의 가치를 높이는 측면이 있다. 오리지날한 전승에 속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화」편과 「학이(學而)」편의 공동편집 가능성을 암시하는 또 하나의 파편이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16. 미친 사람과 긍지 있는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17-1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세 가지 결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에는, 그것마저도 없어져버렸다. 옛날의 광자(狂者)는 작은 예절에 구애되지 않는 호방한 면이 있었는데 지금의 광자는 분수를 모르고 방탕하기만 한다. 옛날의 긍자(矜者)는 행동에 질서가 있고 뼈가 있었는데 지금의 긍지는 쩨쩨하게 화내며 다투기만 한다. 옛날의 우자(愚者)는 우직한 맛이 있었는데 지금의 우자는 비굴하고 간사하기만 하다.” 17-16. 子曰: “古者民有三疾, 今也或是之亡也. 古之狂也肆, 今之狂也蕩; 古之矜也廉, 今之矜也忿戾; 古之愚也直, 今之愚也詐而已矣.” 세월이 지나면서 악인의 질도 타락한다. ‘광자’에 관해서는 8-16, 13-21을 참..
15. 비루한 인간들과는 같이 하지 않겠다 17-1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비루한 녀석들과 어찌 더불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자리를 얻기 전에는 자리를 얻는 것만을 걱정하고, 자리를 얻고 나면 자리를 잃을 것만 걱정한다. 만약 잃을 것만을 걱정하면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17-15. 子曰: “鄙夫可與事君也與哉? 其未得之也, 患得之; 旣得之, 患失之. 苟患失之, 無所不至矣.” 통렬한 비판이다! 첫머리의 말 ‘가여사군야여재(可與事君也與哉)’는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함께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는가’인데, ‘사군(事君)’은 요즈음 별로 가슴에 와닿는 말이 아니므로 ‘정치에 참여하다’는 추상적 말로 표현하였다. 실제로 ‘같이 조정에 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
14. 도청도설(道聽塗說) 17-1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길에서 어설프게 들은 것을 곧 자기의 설인 양 길에서 연설하는 것은 덕(德)을 길에 내버리는 짓이다.” 17-14. 子曰: “道聽而塗說, 德之棄也.” 당시에도 ‘얄팍한 구라꾼’들이 엄청 많았던 모양이다. 진지하게 공부하 고 내면의 깊은 온양(醞釀)의 과정이 없이, 길거리에서 스치는 구라를 듣고, 곧 자기 구라로서 풀어먹는 인간들, 대부분의 말 잘한다 하는 사람들이 그러하지 아니 한가? 하여튼 세속적 가치에 대한 매우 리얼한 통박(痛駁)이다 퇴계(退溪)는 『사서석의(四書釋義)』에서 ‘도청도설(道聽塗說)’을 ‘도(道)를 듣고 흐리 멍텅하게 말한다’ 혹은 ‘도를 듣고 길에서 말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주변사람들의 오류를 통박하고 있다. ‘길에서 ..
13. 사이비 향원(鄕原) 17-1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향원(鄕原)은 덕(德)의 적(賊)이다.” 17-13. 子曰: “鄕原, 德之賊也.” 너무도 유명한 말이기 때문에, 번역을 하면 오히려 뜻이 손상되어 그대로 직역하였다. 역시 위선자들에 대한 공자의 혐오감이 여실하게 표현되어 있다. 고주에 향원의 뜻을 너무 애매하게 풀어서 그 개념을 잘못 잡는 사람들이 많다. ‘향(鄕)’을 ‘향(向)’이라고 풀어 타인의 뜻을 쫓아 해바라기처럼 향하기만 하는 인간의 뜻으로 해석하였고, ‘원(原)’은 ‘관대하다’, ‘용서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그리고 신주는 ‘향(鄕)’을 ‘비속(鄙俗)’의 뜻이라고 하였고, ‘원(原)’은 ‘원(愿)’의 뜻으로 풀어 겉으로는 근후하고 정직한 듯이 보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풀었다. 그..
12. 내실이 없는 사람에 대해 17-1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외관은 위엄있고 품격있는 척 하면서 내면은 원칙없이 물러터진 자는 소인에 비유한다 해도, 그런 놈은 벽을 뚫거나 담을 넘는 좀도둑에나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17-12. 子曰: “色厲而內荏, 譬諸小人, 其猶穿窬之盜也與?” 옛날에도 동ㆍ서를 막론하고 벽을 뚫고 들어오는 도둑놈이 많았던 것 같다. 아마도 벽이 대부분 흙벽이라서 그런 방식이 채택되었을 것이다. 벽을 뚫고 들어오는 도둑놈의 비유는 마태 6:19, 24:43, 눅 12:39에도 있다(큐복음서에 속하는 자료). 복음서에서는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든가, 예수의 재림을 ‘도둑같이 찾아옴’에 비유한 인자담론(人子談論)의 한 형태 속에서 담을 뚫는 도둑놈이 거론되..
11. 형식화된 예악을 일갈하다 17-1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예(禮)다 예(禮)다라고 말하지만, 어찌 그것이 옥백(玉帛)을 말하는 것이겠느뇨? 악(樂)이다, 악(樂)이다라고 말하지만, 어찌 그것이 종고(鐘鼓)를 말하는 것이겠느뇨?” 17-11. 子曰: “禮云禮云, 玉帛云乎哉? 樂云樂云, 鐘鼓云乎哉?”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의 말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기실 상징(symbols)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것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인간은 그 이름을 파악하는 내면의 개념이 없이는 사물을 인식하지 못한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인간이 상징을 창조해낸다는 데 있다. 인간은 언어를 만들었고, 언어에 기초한 문명을 만들었는데..
10. 담장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 같다 17-10. 공자께서 그의 아들 백어(伯魚)에게 이르시었다: “너는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배우고 있느냐? 사람이 되어 주남과 소남을 배우지 아니 하면 마치 담벼락을 마주하고 서있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17-10. 子謂伯魚曰: “女爲「周南」「召南」矣乎? 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牆面而立也與?” 주남ㆍ소남 합하여 25편의 시는 국풍 중에서 매우 중요한 노래이다. 아마도 멜로디가 특별히 아름다웠을지도 모른다.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다스리던 남쪽 지역의 노래들이라고 하는 일설(一說)이 있으나 하여튼 그만큼 주나라의 정통성을 지니는 지역의 아름다운 노래들인 것이다. 혹자는 이것이 백어가 결혼하기 직전에 공자가 하신 말씀이라고 한다. 마지막 구절에 관..
9. 시의 효용 흥관군원(興觀群怨) 17-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찌하여 시(詩)를 배우지 아니 하느냐? 시는 인간의 감정을 흥기시키며[興], 사물과 역사를 통관케 하며[觀], 사람들과 더불어 무리짓게 하며[群], 나의 슬픔을 나타낼 수 있게 한다[怨].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길 수 있게 하며, 멀리는 임금을 섬길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새와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 17-9. 子曰: “小子! 何莫學夫詩? 詩, 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시(詩)에 관한 공자의 언급으로서 직전제자의 전송으로 보여지는 매우 소중한 로기온자료이다. ‘소자(小子)’는 ‘이삼자(二三子)’를 말할 때보다도 더 어린 제자그룹을 상대로 말..
8. 육언(六言)과 육폐(六蔽) 17-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유(由: 자로)야! 너는 여섯 가지 미덕[六言]에 여섯 가지 폐해[六蔽]가 따른다는 것을 들어보았느냐?” 자로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아직 듣지 못하였나이다.” 17-8. 子曰: “由也, 女聞六言六蔽矣乎?” 對曰: “未也.”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게 앉거라! 내 너에게 말해주리라, 인(仁)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리석게 되는 것[愚]이요, 지(知)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엉 터리 지식꾼이 되는 것[蕩]이요, 신(信)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너무 진지하여 융통성이 없어지는 것[賊]이요, 직(直)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사람을 옥죄도록 편..
7. 반역에 성공한 필힐이 공자를 초빙하다 17-7. 진(晋)나라 중모(中牟) 땅을 거점으로 모반한 필힐(佛肹)이 당시 유랑중이었던 공자를 초빙하였다. 공자는 여기에 가담하러 가려하였다. 17-7. 佛肹召, 子欲往. 자로(子路)가 말하였다: “예전에 저 유(由)가 부자(夫子)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사온데, ‘손수 그 몸에 불선(不善)을 행하는 자 밑으로는 군자는 들어가는 법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필힐은 중모읍(中牟邑)을 거점으로 반역을 도모하고 있는데 부자께서 가시려하시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니이까?” 子路曰: “昔者由也聞諸夫子曰: 親於其身爲不善者, 君子不入也. 佛肹以中牟畔, 子之往也, 如之何!”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러하다. 내 일찍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느니라. 단단하다고 말..
6. 다섯 가지[恭寬信敏惠]를 실천하면 인이 된다 17-6. 자장(子張)이 공자에게 인(仁)을 여쭈였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천하(天下)에 능히 다섯 가지를 실현할 수 있으면, 인(仁)하게 될 수 있다.” 17-6. 子張問仁於孔子. 孔子曰: “能行五者於天下, 爲仁矣.” “그 다섯 가지가 무엇이오니이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공경함[恭], 너그러움[寬], 신험이 있음[信], 민첩함[敏], 은혜를 베풂[惠]이다. 공손하면 남을 업신여기지 아니 하고, 너그러우면 대중의 마음을 얻게 되고, 신험이 있으면 사람들이 신임하며, 민첩하면 공로가 있게 되고, 은혜를 베풀면 사람들을 넉넉히 부릴 수 있게 된다.” 請問之. 曰: “恭ㆍ寬ㆍ信ㆍ敏ㆍ惠. 恭則不侮, 寬則得衆, 信則人任焉, 敏則有功, 惠則足..
5. 등용이 된다면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17-5. 계씨의 가신이며 양호의 동조세력이었던 공산불요(公山弗擾)가 비읍(費邑)을 거점으로 또 모반(謀反)하였다. 그는 정식으로 공자를 초빙하였다. 그러자 공자는 공산불요에게 가담하려고 하였다. 17-5. 公山弗擾以費畔, 召, 子欲往. 이때 자로(子路)가 되게 기분나뻐 하면서 말하였다: “가실 곳이 없으면 그만두실 것이지, 하필이면 공산불요 그 녀석에게 가신단 말씀입니까?” 子路不說, 曰: “末之也已, 何必公山氏之之也.”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대저 나를 정식으로 초빙하는 자가 어찌 하릴없이 날 데려가겠느뇨? 누구라도 나를 써주는 자가 있다면 나는 동주(東周)를 새로 창조하리라!” 子曰: “夫召我者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공산..
4. 현가(弦歌)의 소리로 나라를 다스리다 17-4. 공자께서 자유(子游)가 읍재 노릇을 하고 있었던 무성(武城)으로 가시었다. 무성 동리 방방곡곡에서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부자께서는 빙그레 미소지으시며 말씀하시었다: “닭을 잡는데, 어찌하여 소 잡는 칼을 쓰느냐?” 17-4. 子之武城, 聞弦歌之聲. 夫子莞爾而笑, 曰: “割雞焉用牛刀?” 이에 자유(子游)가 대꾸하여 말씀드리었다: “예전에 언(偃: 자유의 이름) 제가 선생님께서, ‘군자는 도(道)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쉬운 교양있는 사람이 되나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나이다.” 子游對曰: “昔者偃也聞諸夫子曰: ‘君子學道則愛人, 小人學道則易使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얘들아!..
3. 상지(上知)자와 하우(下愚)자는 변하질 않는다 17-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오직 상지(上知)와 하우(下愚)는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 17-3. 子曰: “唯上知與下愚不移.” 이 장도 양천여 년 동안 온갖 속유(俗儒)들이 벼라별 추저분한 오석(誤釋)을 다 달아놓고, 지저분한 부연설명을 펼쳐놓은 장으로서 유명하다. 그 천만 언설이 다 무의미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장의 의미는 이 장이 말하고 있는 언어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의 배면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고주는 2ㆍ3장을 합하여 한 장으로 하고 있는데 내 생각으로도 2ㆍ3장은 연속된 하나의 파편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 해석도 2ㆍ3장을 통관하는 논리구조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앞서 내가 16-9를 주해할 때, 나는..
2. 본성은 같았지만 습관에 따라 멀어졌다 17-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태어나면서 사람의 본성은 서로 비슷한 것이지만, 후천적 학습에 의하여 서로 멀어지게 된다.” 17-2. 子曰: “性相近也, 習相遠也.” 이 장이 공자의 정치적 거취문제를 다룬 에피소드 다음에 위치한 것은, 편집자의 시각에서는 정치적 참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간의 교육이며 인간의 교육의 가능성에 관한 인간본성의 탐구야말로 「양화」편의 전체적 주제와 관련된 어떤 포괄적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여튼 이 장은 공자가 인간의 본성과 같은 형이상학적 주제를 말한 적이 없다는 일반론과 관련하여, 공자가 인간 본성(human nature)에 관하여 논한 거의 유일한 언급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과연 공자가 여기서 인..
1. 양화를 피하려다가 길에서 딱 마주친 공자 17-1. 당시 노나라의 전제적 권력의 소유자였던 양화(陽貨)가 공자를 만나려고 하였다. 공자가 만나려 하지를 않자, 양화는 공자에게 삶은 통멧돼지 한 마리를 선물로 예를 갖추어 보내었다. 이제 사례를 아니 할 수 없는지라 공자는 양화가 집에 있지 않은 틈을 타서 예방하려 하였으나, 그만 가는 도중에 그와 맞부딪히고 말았다. 17-1. 陽貨欲見孔子, 孔子不見, 歸孔子豚. 孔子時其亡也, 而往拜之, 遇諸塗. 양화가 공자를 불러 말하기를, “이리 오시오. 내 그대와 더불어 말 좀 하리이다.” 그가 말하였다: “찬란한 보석과도 같은 재능을 가슴에 품고도 나라를 어지러운 채 버려두는 것을 인(仁)이라 일컬을 수 있겠나이까?” 이에 공자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소이다...
양화 제십칠(陽貨 第十七) 편해(篇解) 편명이 ‘양화(陽貨)’라는 사실은 또다시 첫 글자 두 개를 딴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결코 우연일 수 없는 전편의 성격을 암시하고 있다. 이 앞의 편인 「계씨」가 명백하게 노나라의 전승에서 벗어난 후대의 제3자적인 편집이라고 한다면, 본 편은 매우 다양하고 다이내믹하면서도 공자의 삶의 진면목을 알게 해주는 소중한 일차자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양화」의 문장이 『맹자』의 구절 들과 상통되는 것이 많고 상당히 후대의 자료를 부분적으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편집 그 자체는 맹자시대 정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노나라 증자 문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키무라 설). 그리고 노나라에서 편집된 자료가 제나라에 전달되어 제나라에서 약간 ..
14. 임금의 부인을 부르는 명칭에 대한 기록 16-14. 나라 임금(제후)의 처(妻)를 임금이 부를 때는 ‘부인(夫人)’이라 하고, 부인이 자기를 스스로 칭할 때는 ‘소동(小童)’이라 한다. 나라 사람들이 그 여자를 칭할 때에는 ‘군부인(君夫人)’이라고 하나, 딴 나라 사람들에게 그 여자를 칭할 때에는 ‘과소군(寡小君)’이라고 한다. 그러나 딴 나라 사람들이 그 여자를 칭할 때에는 또한 ‘군부인(君夫人)’이라 한다. 16-14. 邦君之妻, 君稱之曰夫人, 夫人自稱曰小童; 邦人稱之曰君夫人, 稱諸異邦曰寡小君; 異邦人稱之亦曰君夫人. 공문 내에 전해내려오는 예의법도에 관한 비망록 같은 것이 끼어든 것이다. 이것 역시 제나라 전승일 확률이 높다. 신주에 있는 오역(吳棫)의 주석을 소개한다. 오역이 말하였다: “무..
13. 공자가 그 자식인 백어를 멀리하다 16-13. 진항(陳亢)이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에게 물어 말하였다: “당신은 아드님이시니 역시 좀 특별한 것을 배우는 것이 있으시겠군요?” 16-13. 陳亢問於伯魚曰: “子亦有異聞乎?” 이에 백어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버지께서 일찍이 홀로 서 계실 때에 내가 빠른 걸음으로 집안 뜰을 지나가는데 말씀하시었다. ‘시(詩)를 배우고 있느냐?’ 그래서 내가, ‘아직 못 배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더니,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느니라’ 말씀하시므로, 나 리(鯉)는 물러나자마자 시(詩)를 배웠노라. 타일(他日)에 또 아버지께서 홀로 서 계실 때에 내가 빠른 걸음으로 집안 뜰을 지나가는데 말씀하시었다. ‘예(禮)를 배우고 ..
12. 길이 칭송되는 사람으로 살아라 16-12 제나라 경공(景公)은 천 수레의 말 4천 마리를 소유하였으나 죽는 날에는 사람들이 그 덕(德)을 칭송함이 없었고,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수양산(首陽山) 아래에서 굶어죽었으나 사람들이 지금에 이르도록 칭송하고 있다. 이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16-12. 齊景公有馬千駟, 死之日, 民無德而稱焉. 伯夷叔齊餓於首陽之下, 民到于今稱之. 其斯之謂與? 이것이 공자의 말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제 경공(景公)은 BC 547년에서 BC 490년까지 자그만치 58년을 다스린 암군(暗君)이다. 그의 치세 동안 귀족들이 발호하여 서민들은 착취했으나 그나마 명재상 안영(晏嬰)의 슬기로 유지되었다. 환락을 좀 개차반 스타일로 즐기는 인물이었으나 안영의 말에는 또 곧잘 ..
11. 공자가 규정 지은 두 가지 인간의 경지 16-1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선(善)을 보면 미치지 못함을 애처롭게 생각하면서 달려가고, 불선(不善)을 보면 끓는 물이 손에 닿은 것처럼 손을 빼고 물러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이 내 두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옛말에 기록된 것도 들었다. 그러나 드러내지 않고 살면서도 그 뜻을 구하고, 의로움[義]을 행하면서 꿋꿋이 그 도(道)를 완성시키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옛말에 기록된 것 은 들었으나, 아직 두 눈으로 보지는 못하였노라.” 16-11. 孔子曰: “見善如不及, 見不善如探湯. 吾見其人矣, 吾聞其語矣. 隱居以求其志, 行義以達其道. 吾聞其語矣, 未見其人也.” 여기에 깔려있는 사상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이나 역사에 기록된 사실들은 인간의..
10. 군자의 아홉 가지 생각 16-1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에게는 아홉 가지 생각이 있다. 볼 때에는 밝음[明]을 생각하며, 들을 때에는 귀밝음[聰]을 생각하며, 얼굴빛 가짐에는 온화함[溫]을 생각하며, 행동거지에는 공손함[恭]을 생각하며, 말에는 진심에서 우러나옴[忠]을 생각하며, 일에는 공경 집중함[敬]을 생각하며, 의심에는 물어 풀 것[問]을 생각하며, 분노에는 더 큰 어려움이 결과됨[難]을 생각하며, 득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한다.” 16-10. 孔子曰: “君子有九思: 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 소소한 주석은 다 번역에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이 ‘구사(九思)’는 『상서(尙書)』 「홍범(洪範)」에 나와있는 ‘오사(五事)’와 밀접한..
9. 사람의 네 가지 등급 16-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최상의 인간이며, 배워서 아는 자가 그 다음의 인간이며, 곤요롭게 배워서 아는 자가 또 그 다음의 인간이다. 곤요로운데도 배우지 아니 하는 자는 인간으로서 최하의 인간이 된다.” 16-9. 孔子曰: “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나는 ‘생지(生知)’를 거부한다. 살아가는데 환상만을 심어줄 뿐 전혀 불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직 ‘곤지(困知)’의 인간일 뿐이다. 고주에 ‘곤(困)’을 ‘위유소불통야(謂有所不通也)’라고 했으니 ‘영 이해되지 않는 것, 머리가 돌 아가지 않음이 있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나는 평생 ‘곤(困)’하게만 살아왔다. 그래서 내 호를..
8. 군자와 소인의 차이 16-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외경이 있다. 천명(天命)을 경외하고, 대인(大人)을 경외하고, 성인의 말씀을 경외한다. 소인은 천명을 알지못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인(大人)을 깔보며 성인의 말씀을 모독한다.” 16-8. 孔子曰: “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小人不知天命而不畏也, 狎大人, 侮聖人之言.” 9-5, 11-22에 나오는 ‘외(畏)’외의 용법과 여기의 ‘외(畏)’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양자를 일치시키려는 부질없는 주석은 주목할 가치가 없다. 여기 ‘외(畏)’는 매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심오한 의미를 지니는 ‘두려움’이다. 슈바이쳐 (Albert Schweitzer, 1875~1965)가 자기의 철학을 ‘레버런스 포 라이프(Re..
7. 군자가 경계해야 할 세 가지 16-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경계(警戒)가 있다. 어릴적 에는 혈기(血氣)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경계함이 색(色)에 있고, 커서는 혈기가 한창 강건하니 경계함이 투(鬪)에 있고,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쇠미하니 경계함이 득(得)에 있다.” 16-7. 孔子曰: “君子有三戒: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壯也, 血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在得.” 매우 좋은 말이기는 하나 과연 이런 말이 공자말일까? ‘공자왈’을 빌려 만들어진 후대의 격언들일 것이다. 과거 한국사람들은 이 장의 말씀을 어려서부터 가장 많이 듣고 자라났다. 왜냐? 그 이유는 단순하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정기(正己)」편에 바로 이 글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6. 말을 제때에 하지 못하는 허물에 대해 16-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어른)를 모시는 데 세 가지 허물 있다. 어른의 말씀이 미치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먼저 말하는 것을 덜렁댄다 일컫고, 어른의 말씀이 거기에 미쳤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숨긴다 일컫고, 어른의 안색을 살피지도 않고 마구 지껄이는 것을 막무가내 장님이라 일컫는다.” 16-6. 孔子曰: “侍於君子有三愆: 言未及之而言謂之躁, 言及之而不言謂之隱, 未見顔色而言謂之瞽.” 아마도 한ㆍ중ㆍ일 동양 삼국 중에서도 그래도 이러한 방식의 예의가 밑바닥에 가장 많이 깔려있는 나라가 한국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이러한 에티켓을 격하시키는 것만을 ‘현대화’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순자(荀子)』 「권학」 편에도 이 비슷한 말이..
5. 도움 되는 즐거움과 손해 되는 즐거움 세 가지 16-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를 보태주는 즐거움이 세 가지가 있고, 나를 깎아내리는 즐거움이 세 가지가 있다. 예악(禮樂)을 절도에 맞추어 따르는 것을 즐거워하고, 타인의 선(善)을 말해주는 것을 즐거워하고, 현명한 친구가 많은 것을 즐거워하는 것은 나를 보태주는 것이다. 교만과 방자를 즐거워하고, 안일하고 게으른 것을 즐거워하고, 모여 향락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은 나를 깎아내리는 것이다.” 16-5. 孔子曰: “益者三樂, 損者三樂. 樂節禮樂, 樂道人之善, 樂多賢友, 益矣. 樂驕樂, 樂佚遊, 樂宴樂, 損矣.” 보통 ‘익(益)’과 ‘손(損)’을 ‘유익함’과 ‘손해봄’으로 번역하나, 그 실제 뜻은, ‘손익계산서’와 같은 용법에서 알 수 있듯이 손..
4. 세 종류의 좋은 벗과 나쁜 벗 16-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를 보태주는 친구가 세 종류가 있고, 나를 깎아내리는 친구가 세 종류가 있다. 강직한 자를 벗하고, 성실한 자를 벗하고, 박식한 자를 벗하면 나에게 보탬이 된다. 어려운 것을 피하기만 하는 얌체를 벗하고, 유(柔)하고 좋은 말만 골라하는 호인을 벗하고, 편의에 따라 발림말만 하는 아첨꾼을 벗하면 나를 깎아내린다.” 16-4. 孔子曰: “益者三友, 損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 友便辟, 友善柔, 友便佞, 損矣.” 번역본에 따라 ‘우직(友直)’하면 ‘친구가 직하면’이라는 식으로 ‘우(友)’를 주어로 놓고 있으나, 역시 ‘우(友)’는 ‘벗한다,‘ ‘친구삼다’라는 동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직한 자를 벗하고[友直].’ 고주를 ..
3. 삼환의 자손들이 약해지고 있다 16-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작록(爵祿)이 공실(公室)을 떠난 지가 다섯 세대나 되었다. 정치권력이 대부의 손아귀로 들어간 것이 네 세대나 되었다. 보라! 저 삼환(三桓)의 자손들이 쇠미(衰微)해지고 있지 아니 한가!” 16-3. 孔子曰: “祿之去公室, 五世矣; 政逮於大夫, 四世矣; 故夫三桓之子孫, 微矣.” 제2장과 제3장은 동일한 주제에 관한 동질적 파편이나, 앞장보다는 진솔하고 더 구체적이다. 앞 장에서 ‘예악과 정벌이 대부로부터 나오면 다섯 세대면 붕괴된다’고 했으므로, 여기 네 세대나 되었기에 이미 붕괴를 앞두고 쇠미한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논리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파편을 비교해서 말한다면 제3장이 제2장에 선행했을 것이다. 제3장의 메시..
2. 예악(禮樂)과 정벌(征伐)은 천자만이 할 수 있다 16-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禮樂)과 정벌(征伐)이 천자(天子)로부터 나오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약과 정벌이 제후로부터 나온다. 제후로부터 나오면 대저 열 세대에 붕괴되지 않는 정권이 드물고, 대부로부터 나오면 다섯 세대에 붕괴되지 않는 정권이 드물고, 배신(陪臣)이 나라의 운명을 쥐면 세 세대에 붕괴되지 않는 정권이 드물다. 천하에 도(道)가 있으면 정치권력이 대부(大夫)에게 있지 아니 하고,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서인(庶人)이 의론(議論)치 아니 한다.” 16-2. 孔子曰: “天下有道, 則禮樂征伐自天子出; 天下無道, 則禮樂征伐自諸侯出. 自諸侯出, 蓋十世希不失矣; 自大夫出, 五世希不失矣; 陪臣執國命, 三世希不失矣...
1. 국가를 가진 이는 백성이 적은 것과 재물이 부족한 것을 근심하지 않는다 16-1. 계씨(季氏)가 전유) 땅을 정벌하려 하였다. 염유(有)와 계로(季路)가 공자를 뵈옵고 말씀드렸다: “계씨가 전유에서 장차 일을 벌이려고 합니다.” 16-1. 季氏將伐顓臾. 冉有ㆍ季路見於孔子曰: “季氏將有事於顓臾.”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구(求: 염유)야! 이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냐? 저 전유는 옛적에 선왕(先王: 무왕ㆍ주공)께서 동산(東山)의 제주(祭主)로 삼으셨고, 또한 우리 노나라 방역(邦域) 속에 위치하고 있으니, 이는 우리 사직(社稷)의 신하이다. 어찌 일개 대부인 계씨가 사직의 신하를 사욕 때문에 정벌할 수 있겠는가?” 孔子曰: “求! 無乃爾是過與? 夫顓臾, 昔者先王以爲東蒙主, 且在邦域之中矣, 是社稷..
계씨 제십육(季氏 第十六) 편해(篇解) 「계씨」는 그냥 얼핏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여태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논어』의 편들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일 첫 장에 아주 기다랗고 자세한 사제문답이 나오고 있는데, 이것도 하나의 단편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설화문학으로서 「선진(先進)」편 마지막 제25장 같은 성격의 것이지만, 11-25는 공문 내의 이념적 성격을 다룬 매우 추상적인 주제를 다룬 문답임에 반하여 16-1은 매우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관한 것으로서 꼭 역사소설의 한 꼭지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이 첫 장의 문학은 공자시대에 있었던 사실(史實)의 편린들을 기초로 하여 후 대의 제자들이 소설적으로 각색하여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우선 「계씨」편의 ..
41. 봉사인 악사와 함께 말하는 공자의 방법 15-41. 공문(孔門)에 강사로 나오는 장님 악사 면(冕)이 뜨락에 나타났다. 그가 계단에 이르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계단입니다.” 15-41. 師冕見, 及階, 子曰: “階也.” 그가 앉을 방석자리에 이르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자리입니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공자께서는 악사 면에게 일일이 고하여 말하였다: “아무개 학생이 여기 앉아있고, 아무개 학생은 저기 앉아있습니다.” 及席, 子曰: “席也.” 皆坐, 子告之曰: “某在斯, 某在斯.” 악사 면이 퇴출하자, 자장(子張)이 여쭈어 말하였다: “악사와 더불어 말씀하시는 도(道)입니까?” 師冕出. 子張問曰: “與師言之道與?”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렇다. 원래 악사 선생님을 도와드리는 ..
40. 말의 본질 15-4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간의 말이란 그 뜻이 통달되는 것을 첫째로 삼을 뿐이다.” 15-40. 子曰: “辭達而已矣.” 소라이(荻生徂徠)는 여기서 ‘사(辭)’가 보통 말이 아니라 외교사절의 말이며, 외교사절의 말이 수식적 번쇄함에 가리여 자국의 입장을 상대방의 군주에게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경고라고 주석하고 있지만 나는 이런 류의 주석을 취하지 아니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금언이며, 인간의 언어에 대한 포괄적 규정이다. 내가 『논어』 속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그리고 마음속에서 새기고 또 새기어보는 명구이다. 나는 평생 철학을 공부해왔으나 평생 품는 불만이 철학책들이 도무지 여기서 말하는 ‘달(辭)’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근원적으로 의사소통이 ..
39. 같은 이상을 품어야만 같이 도모할 수 있다 15-3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도(道)가 같지 않으면, 서로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15-39. 子曰: “道不同, 不相爲謀.” 젊은 공자의 이상은 모든 사람과 같이 도(道)를 도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자의 일생은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간 삶의 과정이었다. 나는 이 공자의 말씀에 깊게 동감하고 공감한다. 도(道)를 달리하는 사람들, 길을 달리하는 사람들, 가치관의 공통분모가 근원적으로 확보되지 않는 사람들과 무리하게 도를 같이 도모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끼리끼리의 구획화(compartmentalization)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보편적 가치를 실현키 위한 방법론으로서 매우 유용한 지혜를 말하고 있는 것이..
38. 배우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가르치다 15-3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오직 가르침만 있을 뿐, 류(類)적 차별은 있을 수 없다.” 15-38. 子曰: “有敎無類.” 보통 ‘교육에는 류가 없다’라고 해석하지만, ‘유(有)’와 ‘무(無)’를 대비적으로 콘트라스트 시키는 번역이 더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결국 뜻은 마찬가지. 공자의 인간평등관(egalitarianism)을 나타내는 대표적 메시지. 인간은 교육 앞에 다 평등하다. 교육에 대한 기회균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인간의 계발가능성에 대하여 차별적 규정을 거부하는 명제이다. 문화의 향유라는 측면에서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든지 교육을 받기만 하면 위대해질 수 있다. 천민과 왕후장상을 가리지 아니 한다. 공자의..
37. 프로페셔널한 직업윤리에 대해 15-3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임금을 섬기는 데 있어서는 그 일(事)을 공경히 하는 것을 첫째로 삼고, 그 밥을 먹는 것은 뒤로 한다.” 15-37. 子曰: “事君, 敬其事而後其食.” 현재 공무원들에게 이러한 정신이 있을지 …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우리 사회의 일반적 노동윤리가 임금(賃金)보다는 일을 어떻게 잘하는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목수가 일을 해도 시간계산에 앞서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데 혼신의 정력을 쏟았다. 칼 맑스의 ‘노동시간수량화’에 의한 잉여가치 착취계산은 한 시대의 그릇된 사회윤리를 정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논리였으나, 이제 그러한 논리는 또다시 극복되어야 할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장에서는 ‘임금[君]’을 말했으나, 현대사회에서도 훌륭한..
36. 군자의 원칙주의 15-3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정도를 따르고 작은 신의에 얽매이지 않는다.” 15-36. 子曰: “君子貞而不諒.” ‘양(諒)’의 용례는 14-18에 있었다. 여기 ‘정(貞)’은 『주역(周易)』에서 말하는 ‘원ㆍ형ㆍ이ㆍ정’의 ‘정(貞)’과 관련있을 것이나, 『논어』를 통틀어서 단 한 번 여기에만 나오는 글자이다. 황간의 소에는 ‘군자는 정도를 곧게 지키기 때문에 사람들의 양해를 얻기 어렵다’는 식의 육조인(六朝人)의 주석이 소개되어 있다[君子道無不正, 不能使人信之也].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35. 스승에게도 인은 양보하지 않는다 15-3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仁)에 당(當)하여서는 선생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15-35. 子曰: “當仁不讓於師.” 공자의 비권위주의! 정의로운 일에 관해서 스승이라고 봐줄 것 없다. 인(仁)에 관해서는 스승도 나의 경쟁자일 뿐!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34. 인도 물과 불만큼이나 절실하고 중요하다 15-3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백성이 인(仁)을 필요로 함은 물과 불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이다. 물ㆍ불을 밟고 죽는 자는 내가 보았으나 인(仁)을 밟고 죽는 자는 내가 본 적이 없다.” 15-34. 子曰: “民之於仁也, 甚於水火. 水火, 吾見蹈而死者矣, 未見蹈仁而死者也.” 주희의 신주를 소개한다. 백성의 물ㆍ불과의 관계는, 사람들이 그것에 의존하여 생활하는 고로, 하루라도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백성의 인(仁)과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단지 물ㆍ불은 외물(外物)이고, 인은 내 속에 있는 것이다. 물ㆍ불이 없으면 단지 사람의 몸을 해치는데 불과하지만, 인이 없으면 그 마음(본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
33. 군자와 소인, 각각의 장점 15-3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의 인격은 작은 일로써는 헤아리기 어렵지만 큰 일에 있어서는 크게 배울 점이 있다. 소인의 인격은 큰 일에 있어서는 배울 점이 없으나 작은 일에 있어서는 그래도 배울 만한 것이 있다.” 15-33. 子曰: “君子不可小知, 而可大受也; 小人不可大受, 而可小知也.” 이 장의 해석은 군자ㆍ소인을 대상화해서 백성들과의 관계로 보느냐, 혹 은 군자ㆍ소인을 각각 따라오는 문장의 주체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엇갈린다. 전자는 고주의 입장이고, 후자는 신주의 입장이다. 나는 고주의 입장이 문법적으로나 의미론적으로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뭇사람은 군자로부터 거대한 영감을 얻어야 하고, 소인으로부터는 작은 일에 관한 작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인용..
32. 백성들이 선해지고 공경하게 되는 방법 15-3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지식으로써 이치를 파악하더라도 인(仁)이 그것을 지켜내지 못하면, 비록 지위를 얻더라도 반드시 잃는다. 지식으로써 이치를 파악하고 인(仁)이 그것을 지켜내더라도, 장엄한 인격으로써 임하지 아니 하면 백성들은 공경하지 아니 한다. 지식으로써 이치를 파악하고, 인(仁)이 그것을 지켜내고, 장엄한 인격으로써 임하더라도, 백성을 예(禮)로써 동원치 아니 하면, 아직 온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15-32. 子曰: “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 知及之, 仁能守之. 不莊以涖之, 則民不敬. 知及之, 仁能守之, 莊以涖之. 動之不以禮, 未善也.” 이것은 개인의 도덕의식을 말한 것이 아니라, 사회윤리(social ethics), ..
31. 밭 갊에 굶주림이 그 가운데 있다 15-3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도(道)를 도모하나 밥을 도모하지는 않는다. 밭을 삶에 굶주림이 그 가운데 있도다. 배움을 사랑함에 녹(祿)이 그 가운데 있도다. 군자는 도(道)를 걱정할지언정 가난함을 걱정하지는 아니 한다.” 15-31. 子曰: “君子謀道不謀食. 耕也, 餒在其中矣; 學也, 祿在其中矣. 君子憂道不憂貧.” 참으로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금언이다. 문장의 구성을 잘 뜯어보면 천재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머리[首]에 ‘모도불모식(謀道不謀食)’을 놓고, 꼬리[尾]에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을 놓아 도(道)를 공통의 주제로 하면서 ‘식(食)과 ‘빈(貧)’이라는 개념을 변주(變奏)시키고 있는 것이다. ‘경야(耕也), 뇌재기중의(餒在其中矣)’..
30. 생각의 늪에 빠지지 마라 15-3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 일찍이 종일토록 밥을 먹지도 아니하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도 아니하고, 생각에만 골몰하여도 보았으나 별 유익함이 없었다. 역시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15-30. 子曰: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논어』 중에서도 내 인생에 너무도 큰 영향을 준 금언이다. 나 역시 초월자에 대한 기도에도 매달려 보았고, 입산수도도 해보았고, 절해고도에서 면벽하고 좌선도 해보았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 독서를 통하여 공부하는 용맹정진을 따라갈 정진(精進)이 없었다. 일찍이 공자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2-15)라고 말했지만, 여기서는 매우 확실하게 공허한 사유만 지속하는 것의 무의미성을 너무도 적확하게 지..
29. 허물이 있는데도 고치지 않다 15-2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허물이다!” 15-29. 子曰: “過而不改, 是謂過矣.” 더 이상 무엇을 말할 수 있으리오? 앞 장의 ‘넓힘[弘]’과 이 장의 ‘고침[改]’은 다 같이 과정론적 콘텍스트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28. 사람이 도를 크게 할 수 있다 15-2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이 도(道)를 넓힐 수 있는 것이요, 도(道)가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 15-28. 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 너무도 유명한 말이지만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인간은 도덕적 존재이 다. 그러나 도덕이란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든 것이다. 도덕이란 어디까지나 ‘가도지도(可道之道)’에 속하는 것이며, ‘불가도(不可道)’의 세계에서는 도덕을 논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은 항상 인간 사이에 존(存)한다. 우리가 인을 보통 인이라 하지 않고 인간(人間)이라고 말하는 것이 시간(時間), 공간(空間)과 함께 항상 간(間, relationship)을 전제로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人)은 시간(時間)ㆍ공간(空間)ㆍ인간(人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