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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우리 한시를 읽다 목차 이종묵(李鍾默) 프롤로그. 시를 읽고 즐기는 법 정조 - 綱目講義 湘素雜記 - 推敲 이규보 - 驅詩魔文 이황 - 陶山十二曲跋 이종묵 - 16~17세기 한시사 연구 1. 시를 소리 내어 읽는 맛 을지문덕 - 與隋將于仲文 정법사 - 詠孤石 고운 - 十二乘船渡海來 / 최치원 - 巫峽重峯之歲 최치원 - 秋夜雨中 이백 - 獨坐敬亭山 도연명 - 詠貧士 최치원 - 題伽倻山讀書堂 김종직 - 紅流洞 홍만종 – 소화시평 상권65 황정욱 - 送人赴遂安郡 2. 잘 빚은 항아리와 잘 짜인 시 김지장 - 送童子下山 정법사 - 詠孤石 박인량 - 使宋過泗州龜山寺 박인범 - 徑州龍朔寺 정지상 - 開聖寺 八尺房 정지상 - 題邊山蘇來寺 최치원 - 登潤州慈和寺 김부식 - 觀瀾寺樓 惠文 - 普賢院 3. 시 속에 울려 ..
에필로그. 우리 한시의 특질 ① 조선의 풍물과 풍속을 담은 조선시 1. 한국 한시는 중국 한시를 닮으려 했다. 1) 중국 한시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누추하다 비난을 퍼부음. 2) 어떤 이들은 시가 뛰어나다는 뜻으로 ‘압록강 동쪽의 구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였음. 2. 우리 시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다 1) 조선 후기에 우리 시에 대한 인식이 생김. 2) 박지원(朴趾源)은 「영처고서(嬰處稿序)」에서 조선풍으로 불러야 될 것이라 함. 3. 정약용(丁若鏞)의 「노인일쾌사육수효향산체 기오(老人一快事六首效香山體 其五)」 老人一快事 縱筆寫狂詞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붓 가는 대로 미친 말을 쓰는 것이다. 競病不必拘 推敲不必遲 험운(險韻)하는 것에 굳이 구애될 게 없고 퇴고로 굳이 더딜 게 없다. 興到卽運..
24. 목민관이 시로 그린 유민도 ① 유민도와 정약용 1. 유민도(流民圖) 1)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대학가에는 고통 받는 민중을 그린 걸개그림이 걸려 있곤 했다. 2) 유민도의 연원은 송나라 정협(鄭俠)에서 찾는다. 정협은 여러 차례 왕안석에게 서찰을 보내어 신법이 백성들에게 해를 입힌다고 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얼마 후 안상문의 수문장이 되는데 이때 큰 가뭄이 들어 유리걸식하는 백성들이 많았음. 정협은 이들 모습을 그려 상소문을 바치자 신종은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혁파함. 3) 조선에선 임진왜란 발발한 지 1년이 된 1593년 5월 9일 『선조실록』에는 죽은 어미의 젖을 물고 있는 아이,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자, 구걸하는 남녀, 자식을 버려 나무뿌리에 묶어 놓은 어미 등이 그..
23. 생활의 발견과 일상의 시 ① 일상을 담은 한시 1. 한시의 역할 1) 시는 교양이며 생활이 일부임. 2) 좋은 일로 축하해줄 때도, 벗이나 친지가 죽는 슬픔을 맞이할 때도, 벗이 찾아오거나 떠나갈 때도 시를 지었음. 3)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을 소재한 시들이 많을 수밖에 없음. 2. 서거정(徐居正)의 일상시 1) 서거정은 쉽게 시를 썼던 사람으로 하루에 10수의 시를 지은 적도 있었음. 2) 늘 함께 시를 주고받는 벗들이 있어 그들이 아들을 낳아도, 만나려다 병으로 만나지 못해도, 꽃이나 약재 등 선물을 받아도 시를 지었음. 3. 서거정의 시 誰識酒腸淺 自知詩料貧 뉘 알랴 술 창자 작은 것을, 절로 아네 시의 재료가 빈천하다는 걸. 大醉逢妻諫 苦吟被僕嗔 만취하여 아내 잔소리 듣고, 괴롭게 읊..
22. 시에 담은 풍속화 ① 조선의 풍경을 담은 시들 1. 산수화(山水畵)의 특징 1) 사람을 잘 그리지 않고, 그린다 해도 신선의 풍모를 지니게 그림. 2) 우리 회화사에서 조선의 산수에 조선 옷과 갓을 쓴 조선 사람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8세기 무렵부터임. 3) 정선(鄭敾)이 조선의 산수를 화폭에 담아내고 또 그 안에 조선에 사는 사람을 그림. 2. 진시(眞詩) 운동이 펼쳐지다 1) 정선(鄭敾)이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김창협(金昌協)과 김창흡(金昌翕) 형제가 진경(眞景)과 진정(眞情)을 드러낸 진시(眞詩)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계승한 것임. 2) 16세기 후반부터 당시를 배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고 그 중 뛰어난 작품은 당나라 시인의 시집에 넣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
21. 눈물과 통곡이 없는 만사 ① 진실을 담은 만사 1. 죽음은 예나 지금이나 슬프지만 지금은 죽음의 풍경이 바뀌었고, 문학사에서는 만사(挽詞)나 제문(祭文)이 사라짐. 1) 만사는 통곡을 하기 위해 지은 게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여 저 세상으로 잘 가라는 인사를 하기 위해 지음. 2) 만사엔 과장이 있어선 안 되며 죽은 자의 생애를 얼마나 압축적으로 표현했는가가 중요함. 2. 노수신(盧守愼)의 「만김대간(挽金大諫)」 珍島通南海 丹陽近始安 진주는 남해와 통하고 단양은 시안에 가깝다. 風霜廿載外 雨露兩朝間 풍상으로 20년을 시달렸으나 은혜를 두 왕조에서 누렸구나. 白首驚時晩 靑雲保歲寒 흰머리 느즈막한 때가 놀라운데 청운에도 세한의 지조 지켰네. 平生壯夫淚 一灑在桐山 평생 함께 한 장부의 눈물, ..
20. 길을 나서는 시인 ① 김시습의 산수벽이 가득한 시 1. 어떤 것에 몰두하는 것을 벽(癖)이라 하며 조선 시인 중엔 산수의 벽이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1) 산과 물에 벽이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산과 물을 찾아 나선다. 2) 조선 전기의 김시습(金時習)이, 후기엔 김창흡(金昌翕)이 대표적임. 김시습(金時習)은 ‘산수에 벽이 있어 시로 늙었다[癖於山水老於詩]’라고 한 대로 평생을 산수에서 노닐면서 지를 지음. 2. 김시습(金時習)의 「산행즉사(山行卽事)」 兒捕蜻蜓翁補籬 아이 잠자리 잡고, 노인 울타리 보수하고 小谿春水浴鷺鶿 작은 시내 봄물엔 가마우지 멱 감네. 春山斷處歸程遠 봄산 끊어진 곳에 귀로 멀기만 하니, 橫擔烏藤一箇枝 등나무 한 가지 어깨에 비껴 매네. 1) 세상이 싫어 산속에 들어갔지만 가..
19. 점철성금(點鐵成金)의 시학 ① 문학을 새롭게 하기 위해 일상어를 쓰다 1. 이속위아(以俗爲雅), 비속어를 잘 사용하여 새로움을 얻는 방법 1) 황정견(黃庭堅)은 문학이 새로워질 수 있는 대안으로 ‘이속위아(以俗爲雅)’와 ‘이고위신(以古爲新)’을 대안으로 내세움. 2) “비속한 것을 이용하여 우아하게 하고 옛것을 사용하여 새롭게 하는 것은 손자와 오기의 병법처럼 백전백승이다.”라고 함. 3) 시를 짓는 사람들은 비속한 단어를 잘 쓰려 하지 않는데 비속한 단어를 잘 구사하면 새로움을 얻을 수 있었음. 4) 18세기 문인 성섭(成涉)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필원산어(筆苑散語)』에서는 “대게 시인들이 용사(用事)한 것이 비록 이어(俚語)라 하더라도 점화(點化)를 잘하면 점철성금(點綴成金)이 될 수 있다..
18. 짧은 노래에 담은 노래 ① 정철의 소리가 있는 오언절구 1. 오언절구는 짧은 시형이기에 좋은 작품을 짓기 어려움. 1) 우리나라 문집엔 칠언절구>칠언율시>오언율시>오언절구 순으로 담겨 있음. 2) 두보(杜甫)나 한유(韓愈)ㆍ소식(蘇軾) 등의 이름을 날리던 시인조차도 오언절구에 뛰어나진 못했다는 평가를 받음. 2. 5언절구의 성행 1) 우리나라에선 16세기 후반 임억령(林億齡), 백광훈(白光勳), 최경창(崔慶昌), 임제(林悌)와 같은 호남의 문인들 중심으로 제작됨. 2) 절구(絶句)에 당시(唐詩)를 읽는 듯한 흥감을 불어넣은 명편을 제작함. 3) 정철(鄭澈)은 절구에 뛰어난 시인인데, 특히 오언절구에 많은 힘을 기울여 30%나 차지할 정도임. 3. 정철(鄭澈)의 「추일작(秋日作)」 山雨夜鳴竹 草虫秋..
17. 당시와 비슷해지기 ① 청신쇄락(淸新灑落)한 시 1. 이이가 중국 한시를 선발하여 이이(李珥)가 지은 『정언묘선서(精言妙選序)』에서 밝힌 시를 선발한 기준 1) 충담소산(沖淡蕭散): 이 기준을 먼저 들고 수식에 힘쓰지 않아야 자연스러움 속에 오묘한 멋이 깊어진다고 함. 2) 한미청적(閑美淸適): 조용한 가운데 유유자적하며 흥겨움에서 시가 나오므로 사색으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시를 읽으면 권세나 이익, 명예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고 함. 3) 청신쇄락(淸新灑落): 매미가 가을바람에 이슬을 맞아 허물을 벗은 것처럼 밥을 지어 먹는 인간의 입에서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위장 속의 비릿한 피를 씻어내어 영혼과 골격이 맑아져 인간세상의 냄새가 마음을 더럽히지 못한다고 함. 2. 이이(李珥)가..
16. 풍경에 담은 감정의 변화 ① 풍경에 시인의 감정이 담겨 1. 한시와 풍경 1) 풍경 속에 감정이 이입되기도 하고 풍경이 감정과 혼융(混融)되기도 함. 2) 창작방법은 선경후정(先景後情)으로 선경은 시인의 감정을 축발하는 흥의 효과가 있음. 3) 또 다른 창작방법으론 부(賦), 비(比), 흥(興)이 있음. 부(賦) 비(比) 흥(興) 시경 있는 사실을 펼쳐내 그대로 말하는 것. 敷陳其事而直言之者也 저 물건을 끌어 이 물건을 비유하는 것. 以彼物比此物也 먼저 다른 물건을 말함으로 읊고자 하는 내용을 끄집어 내는 것. 先言他物以引起所詠之詞也 신경준 부는 알기가 쉽다. 賦知之易. 위 구절엔 비록 저것이 이것과 같다는 등의 말이 있지만, 아래 구절엔 대응하는 말이 없는 것. 上雖有彼如斯矣等語, 而下無對應之語..

15. 진정한 벗을 위한 노래 ① 이행과 박은의 사귐 1. 벗에 대한 정의 1) 박지원(朴趾源)은 「회성원집발(繪聲園集跋)」에서 ‘두 번째의 나[第二吾]’라 하기도 하고, ‘일이 잘 되도록 주선하는 사람[周旋人]’이라고도 함. 2) 이덕무(李德懋)는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서 “若得一知己, 我當十年種桑. 一年飼蠶, 手染五絲, 十日成一色, 五十日成五色. 曬之以陽春之煦, 使弱妻, 持百鍊金針, 繡我知己面. 裝以異錦, 軸以古玉. 高山峨峨, 流水洋洋, 張于其間, 相對無言, 薄暮懷而歸也.” 3) 맹자는 ‘상우천고(尙友千古)’라 말함. 2. 이행(李荇)과 박은(朴誾)의 인연 1) 두 사람은 우리 역사에서 내세울 만한 진정한 우정을 나눔. 2) 정조(正祖)는 박은(朴誾)의 시집을 편찬케 하며 「어제제증정읍취헌집권수..
14. 시로 읽는 소설 ① 양반이 사랑을 시로 표현하는 법 1. 시의 정의 1) 음풍농월(吟風弄月)로 아름다운 자연물을 담아낸 것이 많음. 2) 사람 사는 모든 일(벗을 만남, 잔치, 죽은 영혼을 달램, 실의에 빠짐)에 시가 따라다님. 3) 점잖은 양반이기에 조심스러웠던 주제가 바로 사랑에 관한 시를 쓰는 것이었음. 2. 양반이 체통을 구기지 않으면서 사랑을 노래하는 방법 1) 고대 민간의 노래인 악부(樂府)를 본뜨는 것임. 한(漢) 때 민간의 가요를 채집하던 관청이름이며, 그 관청에서 수집된 민간가요를 말함. 당(唐) 때부터 악부 스타일을 흉내낸 의고악부(擬古樂府)가 지어졌고 양반들은 이 악부체를 빌어 사랑을 노래함. 2) 악부는 하나의 정황만 주어져 잇고 또 정황 자체가 구체적이지 않기에 사랑을 노래..
13. 춘흥과 가진 자의 여유 ① 상황에 따라 봄의 느낌은 달라라 1. 구양수(歐陽脩): 산림(山林)의 문학은 그 기운이 고고(枯槁)하고 관각의 문학은 그 기운이 온윤(溫潤)하다고 함. 2. 서거정(徐居正): 「계정집서(桂庭集序)」에서 기상은 관각과 산림과 불교의 세 가지로 나뉘며 뒤로 갈수록 좋지 않다는 인식을 반영함. 「월산대군시집서(月山大君詩集序)」의 내용과 진배없이 관각문학을 우위에 둠. ② 여유로우니 봄이 좋아라 1. 이규보(李奎報)의 「춘망부(春望賦)」 羯鼓聲高 둥둥 북소리에 紅杏齊綻 살구꽃이 활짝 필 때 望神州之麗景 서울의 고운 봄빛을 바라보면서 宸歡洽兮玉觴滿 임금이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此則春望之富貴也 부귀한 자의 봄 구경이요. 彼王孫與公子 왕손과 귀공자가 結豪友以尋芳 벗들과 봄놀이..
12. 금강산을 시에 담는 두 방식 ① 금강산에 대한 이야기 1. 금강산에 긍부정의 평가 1) 강세황(姜世晃): “산에 다니는 것은 인간으로서 첫째가는 고상한 일이다. 그러나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은 가장 저속한 일이다.” 2) 김정희(金正喜)의 「여권이재(與權彛齋)」 21에서 “매양 금강산에서 노닐고 돌아온 사람 가운데 본 것이 들은 것만 못하다고도 하는데, 이 말도 괴이할 것이 없소. 옛날 제갈량 밑에 있던 한 늙은 군졸이 晉 나라 때까지 생존했는데, 혹자가 제갈량에 대해서 묻자, 그는 ‘제갈량이 살았을 때는 보기에 특이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제갈량이 죽은 뒤에는 다시 이와 같은 사람을 보지 못했소’[每遊此山而歸者, 或以爲見不如聞, 亦無恠也. 昔武侯一老卒, 至於晉時尙存, 或有問武侯者, 對云: ‘見武侯生..
11. 풍경 속의 시인 ① 시인이 시속으로 들어가거나 풍경만 묘사하거나 1. 서경시(敍景詩) 1) 감정은 배제하고 맑은 산과 나무만 포치(布置)한 시. 2) 서경시엔 인간세상의 티끌이 없어 이런 시를 읽으면 한여름 시원한 우물물을 마신 것처럼 시원해짐. 2. 이숭인(李崇仁)의 「제승사(題僧舍)」 山北山南細路分 산은 여기저기에 있고 오솔길 나눠지는데 松花含雨落繽粉 송홧가루 비에 젖어 하늘하늘 진다. 道人汲井歸茅舍 스님 우물에서 물 길어 절로 돌아가고 一帶靑烟染白雲 한 줄기 푸른 안개 흰 구름을 물들이네. 1) 이 시는 그림을 보고 지은 것으로, 『지봉유설(芝峯類說)』 『문장부(文章部)』엔 이 시를 보고 스승 이색이 칭찬하여 명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음. 2) 검은 옷을 입은 승려가 시에 등장하지만..
10. 시의 뜻을 호방하게 하는 법 ① 부귀영화해야 호방한 시를 쓸 수 있다? 1. 호방한 스케일의 시를 쓸 수 있는 방법 1) 『맹자(孟子)』 「만장(萬章)」 하8의 얘길 통해 ‘詩格=人格’이란 생각이 퍼짐. 2) 성현(成俔)은 「월산대군시집서(月山大君詩集序)」에서 “보통 사람으로 배우려는 이는 힘쓰고 애써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생각을 두렵게 하여 우환에 젖어들고 공부에 힘을 쓴다. 그런 후에야 쓸 만한 것을 얻어 문장을 짓는데 조탁한 것이 기이함에 힘쓰지만 그 기상은 얇고도 비근한 병폐를 면하지 못한다. 그러나 왕족과 양반은 그렇지가 않다. 사는 곳이 기를 움직이게 하고 기른 것이 몸을 움직이게 하여 거처하는 곳이 높고 보는 것이 원대하여 배움에 힘쓰질 않아도 스스로 유유자적하며, 업을 다듬으려 하지..
9. 시 속의 그림, 그림 속의 시 ① 시 속에 그림이 있다[詩中有畵] 1. 시중유화(詩中有畵): 소식(蘇軾)이 왕유(王維)의 시를 칭찬할 때 했던 말로, 그 이후로 여러 시평에서 쓰임 1) 『소화시평(小華詩評)』 권상 51에서 정도전(鄭道傳)의 「방김거사(訪金居士)」에 대한 평가. 2) 『소화시평(小華詩評)』 권상 62에서 김종직(金宗直)의 「장현촌가(長峴村家)」에 대한 평가. 3) 『동인시화(東人詩話)』 권하 20의 평가 2. 김득신(金得臣)의 「용호(龍湖)/ 용산(龍山)」 古木寒雲裏 秋山白雨邊 흰 눈 속의 고목, 소나기 곁의 가을 산. 暮江風浪起 漁子急回船 저물녘 강에서 풍랑 일어 어부가 급히 배를 돌리는 구나. 1) 정선흥(鄭善興)이란 문신이 이 시가 적힌 부채를 자주 보자 효종이 칭찬을 하고 어..
8. 대동강 부벽루의 한시 기행 ① 대동강과 유적지 1. 옛 노래에 담긴 대동강 1) 손인호의 「한 많은 대동강」: “한 많은 대동강아 대동강 부벽루야 뱃노래가 그립구나. 귀에 익은 수심가를 다시 한 번 불러본다. 편지 한 장 전할 길이 이다지도 없을쏘냐. 아아아, 썼다가 찢어버린 한 많은 대동강아” 2) 나훈아의 「대동강 편지」: “대동강아 내가 왔다, 부벽루야 내가 왔다. 주소 없는 겉봉투에 너의 얼굴 그리다가 눈보라 치던 밤 달도 없던 밤 울면서 떠난 길을 돌아왔다고. 못 본 체하네, 못 본 체하네. 반겨주려마, 한 많은 대동강” 3) 이처럼 대동강은 분단 이래 실향민의 눈물이 어린 장소였음. 2. 대동강의 구조 및 이름 1) 구조: 남강ㆍ무진천ㆍ보통강ㆍ순화강 등과 평양에서 합쳐져 대천을 이룸. 2..
7. 꽃그늘에 어린 미련 ① 울주ㆍ양산ㆍ동래에 시인들의 발길이 머물다 1. 황산강과 시인 1) 울주ㆍ양산ㆍ동래 부근은 천성산 자락을 뒤로 하고 황산강이 흐름. 2)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 권상 33엔 ‘이 일대에 백성들의 집이 대나무 숲 사이에 가물가물 보이는데, 집집마다 남녀가 대나무로 그릇을 만들어 세금과 의식을 해결하는 가난한 마을이었다’고 적혀 있음. 3) 아름다운 황산강 일대에 누정이 일찍부터 발달했기에 시인이 이곳을 찾아 시를 많이 남김. 2. 황산강과 최치원, 김극기 1) 송담서원(松潭書院) 강 쪽에 있던 임경대(臨鏡臺)에서 최치원(崔致遠)이 시를 지었기에 최공대(崔公臺)라고도 불리게 됨. 2) 훗날 정중부의 난을 피해 이십대의 김극기(金克己)는 산천을 떠돌며 임경대에 이르렀고 최..
6. 가난한 시인의 말 ①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하는가? 궁한 사람이 시를 잘 쓰는가? 1.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 1) 시인은 가난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옛 사람은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한다[詩能窮人]”고 생각함. 2) 이규보(李奎報)는 『구시마문(驅詩魔文)』을 지어 시마의 다섯 가지 병폐 중 마지막에 “네가 사람에게 붙으면 염병에 걸린 듯 몸이 더러워지고 머리가 봉두난발이 되며 수염이 빠지고 외모가 초췌해진다. 너는 사람의 소리를 괴롭게 하고 사람의 이마를 찌푸리게 하며 사람의 정신을 소모시키고 사람의 가슴을 여위게 하니, 환란의 매개요 평화의 도적이다[汝著於人, 如病如疫, 體垢頭蓬, 鬚童形腊, 苦人之聲, 矉人之額, 耗人之精神, 剝人之胸膈, 惟患之媒, 惟和之賊].”라고 썼다. 2. 가난한 사람이 ..
5. 원숙과 참신의 시학 ① 역사 속의 라이벌 1. 정지상↔김부식의 문학적 자질 대결(비교: 한시미학산책) 侍中金富軾, 學士鄭知常, 文章齊名一時 兩人爭軋不相能. 世傳知常有, ‘琳宮梵語罷, 天色淨琉璃’之句, 富軾喜而索之, 欲作己詩, 終不許. 後知常爲富軾所誅, 作陰鬼. 富軾一日詠春詩, 曰: ‘柳色千絲綠, 桃花萬點紅.’ 忽於空中鄭鬼批富軾頰曰: “千絲萬點, 有孰數之也? 何不曰 ‘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 富軾頗惡之. 後往一寺, 偶登厠, 鄭鬼從後握陰卵, 問曰: “不飮酒何面紅?” 富軾徐曰: “隔岸丹楓照面紅.” 鄭鬼緊握陰卵曰: “何物皮卵子?” 富軾曰: “汝父卵, 鐵乎?” 色不變. 鄭鬼握卵尤力, 富軾竟死於厠中. -『백운소설(白雲小說)』 7 2. 이인로↔이규보의 한시 창작법 대결 1) 이규보(李奎報)는 「답전리지논문서(..
4. 재창조의 시학 ① 김부식(金富軾)의 「감로사차혜소운(甘露寺次惠素韻)」을 통해 김부식의 말년의 꿈을 들여다 보다 俗客不到處 登臨意思淸 속세의 손님 이르지 못하는 곳에, 오르니 마음이 맑구나. 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 산 모습은 가을에 더욱 좋고, 강빛은 밤에 오히려 분명하네. 白鳥高飛盡 孤帆獨去輕 흰 새는 높이 날아 사라지고, 외로운 배 홀로 감이 가볍다. 自慙蝸角上 半世覓功名 스스로 부끄러워하노라, 달팽이 뿔 위에서 반백 년 동안 공명 찾았으니, 1. 배경지식 1)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엔 김부식을 ‘살이 찌고 체구가 크며, 검은 얼굴에 눈이 튀어나옴’이라 표현함. 2) 노년에 접어든 김부식이 공문(空門)의 벗 혜소(惠素)와 자주 만나 시를 수창(酬唱)함 3) 감로사는 예성..
3. 시 속에 울려 퍼지는 노랫가락 ①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 민가(民歌)를 끌어와 절창이 되다 雨歇長堤草色多 비 그친 긴 둑에 풀빛 짙은데 送君南浦動悲歌 그대 보낸 남포엔 슬픈 노래 흐르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의 물은 언제나 마를꼬 別淚年年添綠波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해지는 걸. 1. 평양 부벽루에 당당히 걸려 있는 작품으로 중국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는 자부심을 지님(성수시화). 2. 이별은 봄이 가장 극적인 효과를 냄(죽었던 만물의 소생↔멀쩡히 있던 이의 사라짐): 2구에서 봄날 남포의 이별은 더욱 서러움. 3. 강엄(江淹)이 지은 「별부(別賦)」의 ‘봄풀 푸른색이고 봄물 푸른 물결인데 그대 보낸 남포에서 속상하는 걸 어찌할꼬[春草碧色 春水綠波 送君南浦 傷如之何]’를 보고 ..
2. 잘 빚은 항아리와 잘 짜인 시 ① 법에 맞는 한시, 율시의 정착 1. 한시의 시체 고시(古詩) 율시(律詩) 비교적 자유롭게 쓰는 시 절구처럼 압운을 함 평측을 고름 2연과 3연엔 반드시 대(對)를 해야 함. 2. 율시의 정비 1) 중국에선 당나라 초엽에 율시가 정비됨. 2) 최초로 등장한 작품은 8세기에 쓴 김지장의 「송동자하산(送童子下山)」임. 하지만 6세기의 고구려 승려 정법사의 시가 율시에 근접해 있음. ② 잘 다듬어진 시를 보다 [정법사(定法師)의 「영고석(詠孤石)」] 逈石直生空 平湖四望通 먼 바위 곧장 하늘을 향해 솟아있고 평평한 호수 네 방향으로 통하였네. 巖根恒灑浪 樹杪鎭搖風 바위 뿌리 항상 물결에 씻기고 나뭇가지 항상 바람에 흔들리지. 偃流還漬影 侵霞更上紅 물결에 누우니 도리어 그림자..
1. 시를 소리 내어 읽는 맛 ① 최치원 이전의 명작과 최치원의 명작 감상 1. 최치원 이전(以前)엔 두 작품이 명품으로 뽑힘. 1)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여수장우중문(與隨將于仲文詩)」: 우중문에게 이 시를 보내 화를 돋워 살수로 유인하여 대군을 물리쳤다는 기사가 『삼국사기』에 실려 있음. 2) 정법사(定法師)의 「영고석(詠孤石)」: 중국의 어떤 시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기에 삼국시대에도 뛰어난 시인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음. 2. 최치원(崔致遠): 857~?, 신라의 학자ㆍ경세가. 호는 고운(孤雲)ㆍ해운(海雲)임. 12살에 당으로 건너가 18살에 급제했고, 28살에 귀국했고, 38살에 『시무책(時務策)』을 지었으나 채택되지 못해, 40살에 가야산(伽倻山)에 은둔함. 한시 문집을 남겼기에 문학의 비조..
프롤로그. 시를 읽고 즐기는 법 ① 시의 본령은 아름다움이며 음풍농월이다 (정조의 『강목강의(綱目講義)』) 정조가 주자(朱子)의 『자치통감절목(資治通鑑綱目)』을 열람하고 그 가운데 의문스러운 것들을 뽑아 문목(問目)을 만들었는데, 모두 695개 항목이었다. 그것을 성균관과 사학의 유생들에게 나누어 주어 한 사람이 각기 한 항목씩 조목별로 답을 짓도록 하고, 다시 초계문신(抄啟文臣) 심진현(沈晉賢) 등에게 답한 말을 산삭(산삭)하고 요약하여 문목 밑에 붙여 책자로 만들게 한 것이다. 『정조실록(正祖實錄)』 15年 5月 3日 해와 달과 별은 하늘의 무늬가 되고, 산과 천과 풀과 나무는 땅의 무늬가 되니, 글에도 무늬가 있음이 또한 그러하다. 반드시 씻어내고 닦아 윤택하게 하며 환하게 노출시키며, 찬란하게 드..

한국한시사(韓國漢詩史) 목차 민병수(閔丙秀) 1. 서설(序說)1) 한시연구의 과제2) 자료의 선택 문제⑴ 『청구풍아(靑丘風雅)』와 송시학(宋詩學)의 극복⑵ 『국조시산(國朝詩刪)』과 격조론⑶ 『기아(箕雅)』와 절충론⑷ 풍요(風謠)와 위항시인(委巷詩人)의 의지⑸ 『대동시선(大東詩選)』과 민족의식(民族意識)3) 작품의 평가 문제⑴ 고려의 시화집⑵ 조선의 시화집 2. 한시의 초기 모습1) 대륙(大陸)의 노래⑴ 공후인(箜篌引)⑵ 황조가(黃鳥歌)⑶ 인삼찬(人蔘讚)2) 북방(北方)의 기개(氣槪)⑴ 을지문덕의 여수장우중문(與隋將于仲文)⑵ 정법사의 영고석(詠孤石)3) 남방(南方)의 서정(抒情)⑴ 진덕여왕의 직금헌당고종(織錦獻唐高宗)⑵ 김지장의 송동자하산(送童子下山)⑶ 설요의 반속요(返俗謠)⑷ 왕거인의 분원시(憤怨詩)..

5) 이규보(李奎報)의 후예들 최자(崔滋, 1188 명종18~1260 원종1, 호 東山叟)는 이규보(李奎報)를 뒤이어 일시에 문병(文炳)을 잡았다. 당시 국정(國政)을 전담한 최이(崔怡)가 이규보(李奎報)로 하여금 그 후계를 천거(薦擧)케 하였을 때 이규보(李奎報)는 최자(崔滋)를 첫째로 천거(薦擧)하고 다음으로 김구(金坵)를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각각 『동문선(東文選)』 등에 10여편의 시작(詩作)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시작(詩作)은 이규보(李奎報)를 따르지 못했으며 알려진 명편(名篇)도 남긴 것이 별로 없다. 최자(崔滋)의 『속파한집(續破閑集)』【즉 『보한집(補閑集)』】과 김구(金坵)의 『지포집(止浦集)』이 지금까지도 유전하고 있다. 먼저 최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남제유(南堤柳)」..

9. 한시(漢詩) 문학(文學)의 종장(終章) 1. 한말(韓末)의 사대가(四大家) 구한말(舊韓末)은 1800년대 후반부터 1910년대에 이르는 4,50년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전의 전통시대와 그 이후의 일제 식민지 시대와의 불연속상에 놓인 불행한 시기였으며 또한 전통질서의 극복과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침탈을 부정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이 주어진 시기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 과정에서 지성인들의 대응 방식은 크게 개화(開化), 위정척사(衛正斥邪), 동학(東學) 등의 상이한 활동을 통해 민족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했다. 문학의 영역에서도 이러한 시대적 당위는 그대로 표출되었다. 1890년대의 「독립신문(獨立新聞)」(1896)이나 「황성신문(皇城新聞)」(1898)에 ..

7. 추사(秋史)와 자하(紫霞)의 변조(變調) 당시(唐詩)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시인들의 기본 성향은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인들이 실제로 제작한 한시작품의 대부분은 시의 뜻이 넓고 깊은 개념(槪念)의 시(詩)를 써 왔으며, 특히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성향의 시작(詩作)으로 독자적인 시세계를 이룩하여 우리나라 한시의 높은 수준을 과시한 시인이 배출되기도 했다. 그 사람이 곧 신위(申緯)이며, 이 시인에게 직접ㆍ간접으로 영향을 준 또다른 시인이 김정희(金正喜)다. 김정희(金正喜)는 신위(申緯)보다 17년 연하이지만, 신위 시의 창작에 직접 조언(助言)을 하는 등 크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위의 시적 성향은 율조(律調)를 중요시하는 당..

4. 위항인(委巷人)의 선명(善鳴) 서울의 서대문 밖 인왕산 옥계 기슭에 천수경(千壽慶)ㆍ차좌일(車佐一)ㆍ최북(崔北)ㆍ장혼(張混)ㆍ왕태(王太) 등이 모여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글씨로 송석원(松石園)이란 편액을 걸고 시회를 결성하였다. 이 시사에서 삼사십명 때로는 백여명 씩 모여서 시를 읊었다고 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실로 위항문학의 전성기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송석원시사는 1786년 여름부터 1820년 무렵까지 30여년 존속하면서 당시의 사대부 문단 못지 않은 시문활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이들은 자연을 벗삼아 세속에 물들지 않음을 자부하면서 자신들의 문학을 사대부의 문학과 구별하여 ‘경외(境外)의 사림(詞林)’이라 자존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위항시인으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8. 조선후기(朝鮮後期)의 황량(荒凉)과 조선시(朝鮮詩)의 자각(自覺) 임진왜란(壬辰倭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은 시단까지도 황량하게 하였다. 흔히 천하가 어지러울 때 인물이 배출된다고 하지만, 목릉성세(穆陵盛世)의 풍요는 오로지 전 시대의 안정에 힘입은 결과이며 병란 때문에 인물이 쏟아져 나온 것은 결코 아니다. 이후 숙종(肅宗)대에 이르는 70여년간의 시단은 문자 그대로 황량과 적막만이 있을 뿐이다. 다만 정두경(鄭斗卿)과 이민구(李敏求)가 적막에서 일어나 우뚝하게 시단을 돋보이게 하였다. 숙종대에 이르러 모처럼 태평성세를 구가하는 안정을 되찾았지만 정치 내부에서 불붙기 시작한 당론(黨論)의 가열로 사림(士林)은 빛을 잃고 소단(騷壇)은 다시 산림(山林) 속으로 자복(雌伏)하게 된다. 그러나 조선..

5. 문필가(文筆家)의 시세계 소단(騷壇)에서도 목릉성세(穆陵盛世)의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각방면에서 뛰어난 시인이 나와 각각 제 몫을 다해준 결과라 할 것이다. 『어우야담(於于野譚)』을 저작한 유몽인(柳夢寅)과 『지봉유설(芝峰類說)』의 저자 이수광(李睟光), 그리고 『국조시산(國朝詩刪)』의 찬자(撰者)인 허균(許筠) 등은 그들이 제작한 시작(詩作)으로도 일정하게 시사(詩史)에 기여하고 있지만, 특히 이수광(李睟光)과 허균(許筠)은 뛰어난 조감(藻鑑)으로 후세의 기림을 받았다. 유몽인(柳夢寅, 1559 명종14~1623 인조1, 자 應文, 호 於于堂)은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문장가로 당대문학의 새로운 기풍을 불러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상투적인 표현을 거부하..

7. 목릉성세(穆陵盛世)의 풍요(豊饒)와 화미(華美) 조선 초기의 안정에 힘입어 풍요로운 목릉성세(穆陵盛世)를 이룩한 선조인조년간(宣祖仁祖年間)은 시단에 있어서도 또한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어 성시를 이룬다. 호소지(湖蘇芝) 삼가(三家) 중에서도 풍격(風格)과 기상이 가장 뛰어난 노수신(盧守愼)은 선조(宣祖) 초기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노두(老杜)의 격력(格力)을 깊이 얻은 학두자(學杜者)로 알려져 있다. 호소지(湖蘇芝) 삼가(三家) 중 가장 후배인 황정욱(黃廷彧)은 많은 시를 쓰기보다 힘들여 시를 썼기 때문에 시인으로서의 명성에 비하여 시작(詩作)이 적은 편이다. 노수신(盧守愼)도 그의 시작(詩作)에서 강서시파(江西詩派)의 기상기구(奇想奇句)를 시험한 부분들이 보이지만, 특히 황정욱(黃..

4. 해동(海東)의 강서시파(江西詩派) 우리나라에도 강서시파(江西詩派)가 있음을 드러내어 말한 사람은 신위(申緯)가 아닌가 한다. 김창협(金昌協)도 일찍이 박은(朴誾)의 시(詩)를 말하는 가운데서 그가 황진(黃陳)을 배웠다고 하였지만, 우리나라 시인의 구체적인 작품을 통하여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시풍(詩風)을 확인한 것은 신위(申緯)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서시파(江西詩派)란 중국 송대(宋代) 시단(詩壇)의 한 유파로 황정견(黃庭堅)을 시종(詩宗)으로 삼는 진사도(陳師道) 이하 일군의 시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황정견(黃庭堅)의 고향이 강서(江西)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긴 하지만 그밖의 시인들이 모두 강서(江西)지방 출신인 것은 아니다. 송시(宋詩)는 구양수(歐陽修)ㆍ소식(蘇軾)에 의하여 크게..

6. 조선전기(朝鮮前期)의 다양한 전개(展開) 조선(朝鮮)은 그 창업과 동시에 성리학(性理學)을 통치이념으로 채택함으로써 문학관념에 있어서도 주자학(朱子學, 思想儒敎)이 문학 위에 군림하는 재도관(載道觀)이 성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효용적인 문학관은 결코 문학의 생산을 방해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며 도리어 문학의 내질(內質)에 있어서는 김창협(金昌協)의 말과 같이 시를 보면 그 사람까지도 알게 하는 다양한 전개를 보인다. 다만 국초(國初)에는 문(文)은 고명(誥命)ㆍ장주(章奏)와 같은 관각문자(館閣文字)를 필요로 했으며 시(詩)에 있어서도 새 왕조의 위업과 서울의 새 풍물을 읊조린 가영(歌詠)ㆍ송도(頌禱)의 사(辭)가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지 모른다. 권근(權近)ㆍ정도전(鄭道傳)ㆍ..

5. 성리학(性理學)의 수입과 한국시(韓國詩)의 정착(定着) 1. 성리학의 수입과 문학관념(文學觀念)의 대두(對頭) 고려는 국초부터 유교치국(儒敎治國)을 표방하였지마는 충렬왕(忠烈王) 대에 이르기까지 기본유학(基本儒學),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문학유교(文學儒敎)로 일관하였다. 충렬왕(忠烈王)은 일찍이, 당시의 유사(儒士)들이 과거(科擧)의 문장(文章)만 익히고 경사(經史)에 박통(博通)한 자가 없는 것을 개탄하여, 일경일사(一經一史)에 통한 사람을 국자감(國子監)에 교수(敎授)케 하라고 한 사실을 보면 이때까지도 국자감(國子監)에 경사(經史)에 통한 교수(敎授)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충렬왕(忠烈王) 30년에 안향(安珦)이 양현고(養賢庫)가 탄갈(彈渴)하여 선비를 기를 수 없는 것을 걱정하..

4. 송시학(宋詩學)의 수용과 한국시의 발견 1. 송시학(宋詩學)의 수용 한 시대(時代)에 한 문장(文章)이란 말은, 문장(文章)의 소상(所尙)이 시대(時代)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말여초(羅末麗初)의 200년(年) 동안 문학유교(文學儒敎)에 힘입어 사장학(詞章學)이 크게 떨쳤으며 소단(騷壇)은 유미(柔靡) 경조(輕佻)한 만당풍(晩唐風)이 속상(俗尙)이 되어 버렸지만, 고려중기에 이르러 이러한 풍상(風尙)은 시대(時代)의 추이(趨移)에 따라 커다란 변혁(變革)의 국면(局面)을 맞이하게 된다. 산문(散文)에 있어서는, 표전장주(表箋章奏) 등이 이때까지도 사대문자(事大文字)로서 중요시(重要視)되고 있었으므로 변려문(騈儷文)의 전통(傳統)이 그대로 지속되었지만 운문(韻文)에 있어서는 전시대(前時..

3. 라말려초시(羅末麗初詩)의 성격과 만당(晚唐)의 영향 1. 라말려초시(羅末麗初詩)의 일반적 성격 나말여초는 왕조사(王朝史)에서도 서로 겹치는 기간이 18년이나 되지만, 문학사의 현실에 있어서도 상당한 부분 그 성격을 같이 하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 한시문학(漢詩文學)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배운 역사 단계라는 점에서 한 데 묶여질 수 있는 공통성을 가진다. 신라말에 당(唐)에 들어가 직접 중국시를 체험하게 되는 고려 초기 일군의 시인들이 당시의 풍상(風尙)인 만당(晩唐)을 배운 것이 이 시기 한시의 특징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김종직(金宗直)이 그의 「동문선서(東文選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어 사실을 확인케 해주며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詩)를 읽어보면 그..

2. 한시의 초기 모습 한자(漢字)가 우리나라에 유입(流入)된 시기를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적어도 기원전 2세기에는 한자(漢字)가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어 왔지만, 이는 연(燕) 위만(衛滿)의 동침(東侵)이나 한사군(漢四郡)의 설치에 근거한 것이므로 이 역시 추정일 뿐이다. 더욱이 이러한 사실은 우리 조상들이 언제부터 한시(漢詩)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는지 그 시기를 따지는 문제와는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한다. 설사 문자(文字)의 유입은 있었다 하더라도 그 그릇에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아 한시(漢詩)와 같은 고급 예술 문화를 양성하는 데에는 일정한 시간과 거쳐야 할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외래문화를 수용할 때에는 서책에 의존하는 순서를 거치게 된다. 이것을 광범위하..

1. 서설(序說) 1. 한시(漢詩) 연구(硏究)의 과제(課題) 한시를 연구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를 검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시에서의 자연은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인간들의 삶을 있게 해주는 원천으로 소중한 것이 되고 있으며, 한시에서 인간들은 삶의 의미를 확인하는 해법(解法)조차도 이 자연을 통하여 구하려 한다. 그러나 한시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들과 자연이 가까운 거리에서 만날 때, 물아(物我)가 한데 어우러져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르게 되며 조화미(調和美)의 극치(極致)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시(漢詩)를 모르면서도 한시(漢詩)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될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더욱이 우리 학계의 현실은 지금까지도 ..
한시미학산책(漢詩美學散策) 목차 정민 지은이의 말 1) 허공 속으로 난 길1. 푸른 하늘과 까마귀의 날개빛박지원 - 答蒼厓之三박지원 - 菱洋詩集序박지원 - 答京之之二2. 영양(羚羊)이 뿔을 걸듯엄우 - 시란 말이나 이치에 천착치 않는다3. 허공 속으로 난 길이옥 - 俚諺引 一難고조기 - 山莊雨夜이달 - 撲棗謠백광훈 - 弘慶寺4. 눈과 귀가 있다 말하지 말라홍양호 - 疾雷이규보 - 論詩5. 이명(耳鳴)과 코골기박지원 - 孔雀館文稿 自序 2) 그림과 시1. 그리지 않고 그리기노자 - 45번2. 말하지 않고 말하기정곡 - 落葉두보 - 春望두보 - 江南逢李龜年서거정 - 獨坐3. 장수는 목이 없고, 미인은 어깨가 없다박지원 - 菱洋詩集序어우야담 - 그대의 좋아하는 마음 잘 싣고 갑니다신광수 - 峽口所見4. 정..
30. 그때의 지금인 옛날, 통변론(通變論)한시(漢詩) 전통의 미학의의 1. 지팡이 자국마다 고이는 봄비 자료를 찾으러 대학 도서관에 들렀다. 고서 영인본 서가를 둘러보는데 「송산하(頌山河)」란 시집이 한 권 꽂혀 있다. 옛 책 매듯 제본하였기에 잘못 고서로 분류한 것이다. 산기슭/ 물굽이/ 도는 나그네/ 지팡이/ 자국마다/ 고이는 봄비 (春 2) 소나무/ 가지 끝에/ 달랑/ 앉아/ 봄맞이 노래로/ 해 지는 멧새 (春 25) 갈매기/ 흰 나래/ 타는 저녁놀/ 기다림에/ 지쳐서/ 조는 나룻배 (夏 37) 청개구리/ 버들 타고/ 울면/ 파초 잎에/ 후두둑/ 소나기 (夏 64) 못 잊어/ 찾는 이 길/ 하도 덧없어/ 허랑해/ 잊잔 길이/ 이리 삼삼해 (秋 97) 긁어 모은/ 낙엽에/ 불을 붙이면/ 외줄..

29. 시화(詩話), ‘행복한 시읽기’ 1. 한시 비평과 시화(詩話) 어느 시대고 많은 작품이 생산되면 으례 이의 옥석을 구분하려는 비평의 욕구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범람하는 작가와 작품의 홍수 속에서 악화와 양화를 구별해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문학이 펼쳐질 수 있게 하기 위해 비평 활동이 전개된다. 그런데 이 악화니 양화니 하는 개념이나 문학의 바람직한 전개 방향이란 것이 고정불변일 수 없다는 데서 시대마다, 또 평자마다 개성이 드러나고 견해가 갈리게 된다. 오늘날 시단에 비평이 존재하듯, 과거에도 한시를 중심으로 한 비평활동은 꾸준히 펼쳐져 왔다. 과거의 비평활동은 크게 선집류(選集類)의 간행을 통한 방법과, 시화(詩話)의 저술을 통한 방법이 있었다. 전자가 규모가 크고 간접적이라면, 후자는 ..

28. 한시와 현대시, 같고도 다르게 1. 동서양의 수법 차이 조지훈은 「또 하나의 시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낮은 소리 가만히 그리웠냐 물어보니, 금비녀 매만지며 고개만 까닥까닥[低聲暗問相思否, 手整金𨥁少點頭].’ 여기에 동양의 수법이 있다. 서양의 시인은 이렇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도 당신을 사랑했어요, 한 시도 잊을 수 없어요 하고 빨간 입술을 내밀었을 것이다. 어느 것이 낫다는 것은 별문제로 하고라도 표현 방법에서도 동양의 수법은 신비롭다. 이 동양의 수법이란 곧 한시의 수법이다. 직접 말하지 않는다. 다 보여주지 않는다. 입상진의(立象盡意), 이미지를 세워 할 말을 대신한다. 현대시도 한 가지다. 현대시와 한시는 여러 모로 참 닮았다. 한시와 현대시의 관련을 찾는 가장 쉽고..
27. 시적 진술의 논리적 진실 1. 시에 담긴 과장과 함축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은 단지 망상으로 억탁한 것일 뿐이니, 마치 다른 사람의 꿈을 말하는 격이다. 설령 형용이 아주 비슷하다 해도 어찌 터럭만큼이라도 마음을 끌겠는가? 그런 줄 아는 것은 ‘퇴(推)’와 ‘고(敲)’ 두 글자를 침음한 것이 바로 그가 지어낸 생각이기 때문이다. 만약 경(景)과 마주해 마음으로 느꼈다면, ‘퇴(推)’든 ‘고(敲)’든 반드시 어느 하나였을 터이다. 경(景)과 정(情)에 따르면 절로 영묘(靈妙)해지니, 어찌 수고로이 따져 의논하랴? ‘장하락일원(長河落日圓)’은 애초에 정해진 경이 없었고, ‘격수문초부(隔水問樵夫)’는 처음부터 생각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으니, 선가(禪家)에서 이른바 ‘현량(現量)’이라는 것이다.僧..

26. 한시의 용사(用事) 1. 이곤의 부벽루시와 용사 한시의 표현 방식 가운데 용사법(用事法)이 있다. 여기서는 이에 대해 살펴 표현방식의 한 양상을 검토하기로 한다. 한시에서 운자를 사용하여 여러 시인이 반복적으로 시를 짓다 보면 나중에는 표현 방식이 유형화 되게 마련이었다. 한시에서 앞선 시인이 사용한 것과 비슷한 표현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적 관점에서 보면 명백한 표절인 표현이 한시에 있어서는 별 문제되지 않고, 오히려 옛 사람의 표현을 얼마나 적절하게 자기화 하느냐에 시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까지 생각되었다. 다음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 실려 있는 이혼(李混)의 「부벽루(浮碧樓)」란 작품이다. 永明寺中僧不見영명사 가운데 스님은 뵈지 않고 永明寺前江自流영명사..
25. 허균 시론, 깨달음의 시학 1. 조선의 문제아 당대 최고의 비평가 허균, 그의 이름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그는 국문소설 「홍길동전」의 작가이면서, 『성수시화(惺叟詩話)』ㆍ『학산초담(鶴山樵談)』 등의 시화를 엮은 당대 최고의 비평가였다. 그를 ‘천지간(天地間)의 일괴물(一怪物)’이라고 폄하하던 사람조차도 시를 보는 그의 안목만은 높이 인정하였다. 역대로 가장 훌륭한 엔솔로지(anthology)라는 평가를 들은 『국조시산(國朝詩刪)』을 엮은 것도 바로 그였다. 그는 다채로운 지적 편력을 거쳐, 당대에 성행했던 도교와 내단 수련 방면에도 정심한 이론과 실천을 보였다. 남궁두와 송천옹, 그리고 유형진 등 당대에 이름난 도류(道流)들과 교유하였고, 단학(丹學) 이론에도 밝았다. 스스로 100상자가..
24. 사랑이 어떻더냐 1. 담장가의 발자국 사랑은 아름답다. 슬퍼서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슬프다. 평소 한시를 고리타분하게만 생각하다가 막상 가슴 저미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노래한 정시(情詩)를 대하고는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많다. 흔히 염정시(艶情詩) 또는 향렴체(香匳體)라고도 불리는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정시(情詩)를 감상해보기로 하자. 凌波羅襪去翩翩 비단 버선 사뿐 사뿐 가더니만은一入重門便杳然 중문을 들어서곤 아득히 사라졌네.惟有多情殘雪在 다정할 사 그래도 잔설이 있어屐痕留印短墻邊 그녀의 발자욱이 담장 가에 찍혀 있네. 강세황(姜世晃)의 「노상소견(路上所見)」이란 작품이다. 길을 가다 앞서 가는 어여쁜 아가씨의 뒷모습에 넋을 놓고 만 연모의 노래다. 사뿐사뿐 걸어가는 아..
23. 시(詩)와 역사(歷史): 시사(詩史)와 사시(史詩) 1. 할아버지와 손자 白犬前行黃犬隨 흰둥이 앞서 가고 누렁이 따라가는野田草際塚纍纍 들밭 풀가에는 무덤들 늘어섰네.老翁祭罷田間道 제사 마친 늙은이는 두둑 길에서日暮醉歸扶小兒 손주의 부축 받고 취하여 돌아오네. 이달(李達)의 「제총요(祭塚謠)」란 작품이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광경이다. 흰둥이가 컹컹 짖으며 저만치 앞서 가자 누렁이도 뒤질세라 뒤쫓아 간다. 잠시 두 놈의 장난질에 시선이 집중되는 동안 카메라는 그 뒤에 즐비하게 늘어선 무덤으로 초점을 당긴다. 다시 무덤들이 원경으로 처리되면서 개 짖는 소리 사이로 두 사람이 나타난다. 해질 무렵의 양광(陽光)이 빗기는 가운데 술에 까부룩 취한 할아버지와 그 옆에서 할아버지를 부축하고 있는 손주..

22. 실낙원의 비가(悲歌) 1. 풀잎 끝에 맺힌 이슬 인간에 낙원은 있는가? 낙원은 없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절망과 비탄의 연속일 뿐이다. 믿었던 것들로부터 배반당하고, 사랑하던 사람마저 하나 둘 떠나보낸 후 빈 들녘을 혼자 헤매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뒤돌아보면 뜻대로 된 일은 하나도 없다. 한나라 때 악부시 「해로(薤露)」는 풀잎 끝에 맺힌 이슬만도 못한 인생을 이렇게 노래한다. 薤上露풀잎 위에 이슬何易晞너무 쉽게 마르네露晞明朝更復落내일아침 이슬은 다시 내리겠지만人死一去何時歸한 번 떠난 사람은 돌아올 줄 모르누나 고대 중국인들이 상여 메고 나갈 때 덧없는 인생을 슬퍼하며 불렀다는 노래다. 중국 위진 시대의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들과 마주하게 된다. 人生奇一世 奄..
21. 산수(山水)의 미학(美學), 산수시(山水詩) 1. 가어옹(假漁翁)과 뻐꾸기 은사 天翁尙不貰漁翁천옹(天翁)은 어옹(漁翁)을 받지 않으려는지故遣江湖少順風 일부러 강호에 순풍 적게 보내네.人世險巇君莫笑 인간 세상 험하다 그대여 웃지 마오自家還在急流中 그대 외려 급류의 한가운데 있는 것을. 고려 김극기(金克己)의 「어옹(漁翁)」이다. 어옹(漁翁)은 순풍을 기대하고 강호에 들어왔다. 그런데 뜻밖에 강호에서조차 순풍은 좀체 불 생각을 않는다. 순풍을 잔뜩 기대하고 강호를 찾은 어옹(漁翁)은 강호행(江湖行) 이전 순풍은커녕 역풍에 온갖 고초와 신산(辛酸)을 겪었음에 틀림없다. 현실의 거센 풍파를 피해 강호의 순풍 속에 안기려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강호에서 조차 순풍은 잘 불어주질 ..

20. 선시(禪詩), 깨달음의 표정 1. 선사들이 깨달음의 순간 시를 선택하는 이유 언어란 본래 부질없는 도구다. 말로 무언가를 설명하고 남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간다. 툭하면 오해를 낳고, 곁길로 샌다. 옛 시인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고 노래한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다. 언불진의(言不盡意), 말은 뜻을 다 전달할 수 없다. 이 생각은 옛 사람들을 늘 절망케 했다. 말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뜻, 말의 범위를 넘어서는 의미는 어떻게 전달되는가? 오묘한 깨달음의 세계는 늘 언어를 저만치 벗어나 있다. 수레 깎던 윤편(輪扁)은 제 자식에게조차 그 기술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주역(周易)』의 대답은 ‘입상진의(立象盡意)’다. 말로 하려들지 말고, 이미지를..
19. 선시(禪詩), 깨달음의 바다 1. 산은 산, 물은 물 노승(老僧)이 30년 전 참선(參禪)하러 왔을 때는 산을 보면 산이었고 물을 보면 물이었다. 뒤에 와서 선지식(善知識)을 친견(親見)하고 깨달아 들어간 곳이 있게 되자,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몸뚱이 쉴 곳을 얻으매 예전처럼 산을 보면 산이요 물을 보면 물일뿐이로다. 성철(性澈) 스님의 법어(法語)로 해서 유명해진 청원유신(靑源惟信) 선사의 공안(公案)이다. 선사(禪師)는 30년간의 수행 끝에 처음 본래 자리로 돌아와 앉아 있다. 그러고 보면 30년의 공력은 본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고초일뿐이었다. 한때 눈앞이 번쩍 열리는 깨달음의 빛 속에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때도 있었다. ..

18. 관물론(觀物論), 바라봄의 시학(詩學) 1. 지렁이의 머리는 어느 쪽인가 지렁이를 두고 사람들은 수미(首尾)도 없고 배도 등도 없다고들 말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실지로는 수미(首尾)와 복배(腹背)가 있어 해를 피하고 리(利)에 나아가며, 정욕(情欲)을 모두 갖추고 있다. 옹(翁)은 말한다. 물건의 어리석고 굼뜬 것도 오히려 이와 같으니, 하물며 사람과 같이 칠규(七竅)와 오장(五臟)을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고 있는 것에게 있어서이겠는가? 말을 듣고 빛깔을 보아 지각함이 어둡지 않은데도, 사람 가운데는 간혹 방향을 잃어 길을 잃는 자가 있으니 슬프다. 지렁이의 머리는 어느 쪽인가? 해를 피해 나아가는 쪽이다. 배는 어느 쪽인가? 바닥에 닿는 쪽이다. 앞에 소금을 뿌려두면 지렁이는 고개를 돌..

17. 해체의 시학(詩學): 파격시의 세계 1. 요로원(要路院)의 두 선비 절대적 진리도, 선도 없다는 해체주의는 세상 일에 집착하지 않는 일종의 허무주의다. 왜곡된 현실을 왜곡되게 표현하는 해체시에서 온갖 비속어, 욕설 등이 서슴없이 구사되는 언어의 테러리즘을 보게 된다. 해체시의 어조는 진지하지 않고 너무나 유희적이고 거칠다. - 김준오 『도시시와 해체시』 중에서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는 숙종(肅宗)조의 한 시골 선비가 서울서 과거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충남 아산 어름의 요로원에 잠자리를 찾아 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병든 말에 초췌 남루한 행색의 나그네는 가는 곳마다 홀대와 업신여김을 받았다. 그가 여관방에서 서울의 행세하는 집안의 끌끌한 선비와 함께 묵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이 ..

16. 시(詩)와 문자유희(文字遊戱): 한시(漢詩)의 쌍관의(雙關義) 1. 초록 저고리, 국수 한 사발 조선 중기의 학자 김일손(金馹孫)이 젊어 산사(山寺)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그가 띄운 편지 한 통이 장인에게 배달되었는데, 편지의 사연이 야릇하였다. 文王沒 武王出 周公周公 召公召公 太公太公 이를 현대어로 옮기면 이렇게 된다. “문왕(文王)이 돌아가시자, 무왕(武王)이 나오셨네. 주공(周公)이여 주공(周公)이여! 소공(召公)이여 소공(召公)이여! 태공(太公)이여 태공(太公)이여!” 예전 은(殷) 나라가 임금 주(紂)의 포학한 통치로 혼란에 빠지자, 제후였던 문왕(文王)은 어짊으로 백성을 다스려 모든 제후들이 그를 존경하여 따랐다. 그가 세상을 뜬 뒤에도 주(紂)의 포학한 ..

15. 실험정신과 퍼즐 풀기 1.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 부단한 언어의 실험정신, 질곡을 만들어 놓고 그 질곡에서 벗어나기, 언어의 절묘한 직조(織造)가 보여주는 현란한 아름다움, 잡체시는 단순히 이런 것들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오늘의 시단에 던진다. 또한 젊은 시인들에 의해 실험되고 있는 형태시들이 기실은 까맣게 잊고 있던 전통의 재현일 뿐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세상은 이렇듯 돌고 도는 것이며, 우리는 이 모든 현상들 앞에서 수없는 상호 텍스트화를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一生苦沈綿 二月患喉撲 일생동안 병고에 괴로웠는데 이월에도 감기 들어 목이 쉬었네.三夜耿不眠 四大眞是假 삼일 밤을 끙끙대며 잠 못 이루니 사대 등신 멀쩡한 몸 헛것이로다.五旬尙..
14. 놀이하는 인간, 잡체시의 세계 1. 글자로 쌓은 탑 啥豆巴 滿面花 雨打浮沙 蜜蜂錯認家 荔枝核桃苦瓜 滿天星斗打落花 뭐지 콩이야. 얼굴 가득한 꽃 모래밭 빗방울 자국. 꿀벌이 제 집인 줄 알겠네. 여지 열매와 복숭아 씨, 쓴 외 온 하늘의 별들이 지는 꽃잎 때렸나. 이것은 중국 사천 사람들이 곰보를 놀리는 노래이다. 한 글자에서 차례로 한 글자 씩 일곱 자까지 늘여 나갔다. 각 구절의 끝은 같은 운자를 쓰는 면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중국음으로 읽어보면 그 자체로 매우 유쾌한 절주를 형성한다. 처음 무얼까? 하는 의문을 던져 놓고, 바로 콩이지 뭐야 하고 받는다. 다시 그 콩은 얼굴에 핀 꽃을 말하는데, 모래밭에 빗방울이 떨어진 형상과 같다. 벌집 같은 그 모습에 꿀벌도 제 집인양 착각할 ..

13. 씨가 되는 말, 시참론(詩讖論) 1. 머피의 법칙, 되는 일이 없다 人間細事亦參差 인간의 잗단 일들 언제나 들쭉날쭉動輒違心莫適宜 일마다 어그러져 마땅한 구석 없네.盛世家貧妻常侮 젊을 땐 집 가난해 아내 늘 구박하고殘年祿厚妓將追 늙어 녹이 후해지자 기생이 따르누나.雨陰多是出遊日 주룩주룩 비오는 날 놀러 갈 약속 있고天霽皆吾閑坐時 개었을 땐 언제나 할 일 없어 앉아 있다.腹飽輟飡逢美肉 배불러 상 물리면 좋은 고기 생기고喉瘡忌飮遇深巵 목 헐어 못 마실 때 술자리 벌어지네.儲珍賤末市高價 귀한 물건 싸게 팔자 물건 값이 올라가고宿疾方痊隣有醫 묵은 병 낫고 나니 이웃집이 의원이라.碎小不諧猶類此 자질구레 맞지 않음 오히려 이 같으니楊州駕鶴況堪期 양주 땅 학 탄 신선 어이 기약하리오. 이규보(李奎報)의 「..

12. 시인(詩人)과 시(詩): 기상론(氣象論) 1. 이런 맛을 아는가? 정약용(丁若鏞)이 쓴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 중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雲牋闊展醉吟遲활짝 펼친 운전지(雲箋紙)에 취중시(醉中詩)가 더디더니 草樹陰濃雨滴時수풀도 잔뜩 흐려 빗방울이 후두둑. 起把如椽盈握筆서가래 같은 붓을 손에 가득 쥐어 들고 沛然揮洒墨淋漓낚아채듯 휘두르니 먹물이 뚝뚝. 不亦快哉또한 유쾌하지 아니한가. 호탕한 임형수 산에 눈이 하얗게 쌓일 때, 검은 돈피 갖옷을 입고 흰 깃이 달린 기다란 화살을 허리에 차고, 팔뚝에는 백 근짜리 센 활을 걸고, 철총마를 타고 채찍을 휘두르며 골짜기로 들어가면, 긴 바람이 골짜기에서 일어나 초목이 진동하는데, 느닷없이 큰 멧돼지가 놀라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곧 활을..
11. 시인과 궁핍: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론(論) 1. 불평즉명(不平則鳴), 불평(不平)이 있어야 운다 시름이 나를 울게 한다 노래 삼긴 사람 시름도 하도할샤 닐러 못다 닐러 불러나 푸돗던가 진실로 풀릴 것이면 나도 불러보리라 신흠(申欽)의 시조이다. 시는 왜 쓰는가? 말로 해서는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을 시름이 있기 때문이다. 말로 해서는 도무지 풀리지 않던 시름도 노래 앞에서는 눈 녹듯 사라진다. 대저 무릇 물건은 그 평(平)을 얻지 못하면 운다. 초목(草木)이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면 운다. 물이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이를 움직이면 운다. 그 솟구치는 것은 혹 부딪치기 때문이요, 그 달리는 것은 혹 막기 때문이며, 그 끓는 것은 혹 불에 데우는 까닭이다. 금석이 소리가 없으나..
10. 시마(詩魔) 이야기 1. 즐거운 손님, 시마(詩魔) 시를 짓지 않고 배길 수 없게 하는 시마 앞에서 이규보(李奎報)의 「시벽(詩癖)」이란 작품을 소개하면서, 시마(詩魔)에 대해 잠시 말한 바 있다. 여기서는 이 시마(詩魔)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시마(詩魔)란 말 그대로 ‘시 귀신’이다. 이 시마(詩魔)는 어느 순간 시인의 속으로 들어와 시인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시만 생각하고 시만 짓게 하는 귀신이다. 이 귀신이 한 번 붙고 나면 그 사람은 다른 일에는 하등 관심이 없고, 오로지 시에만 몰두하게 되며, 짓는 시마다 절창이 아닌 것이 없게 된다. 실제로 예전 시화(詩話)를 보면 이 시마(詩魔)에 관한 삽화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선조 때 사람 이현욱(李顯..
9. 작시(作詩), 즐거운 괴로움 1. 예술(藝術)과 광기(狂氣) 대상을 향한 미친 듯한 몰두 없이 위대한 예술은 이룩되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하찮은 기교라 할지라도 자신을 온전히 잊는 몰두가 있어야 만이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예로부터 예술의 천재들에게는 스스로도 주체하기 힘든 광기(狂氣)가 있다. 인간의 열정(熱情)이 뿜어내는 거친 호흡과, 다른 사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그들 안에서는 느껴진다. 최흥효(崔興孝)는 조선 초의 유명한 명필(名筆)이다. 일찍이 과거를 보러 갔는데, 답안을 쓰다 보니 우연히 한 글자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와 같게 되었다. 넋을 잃고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뚫어지게 그 글자만을 바라보던 그는, 답안지를 차마 제출하지 못하고 그냥 품에 넣고 돌아오고 말았다. 우연히..

8. 시안론(詩眼論): 일자사(一字師) 이야기 1. 한 글자를 찾아서 서거정(徐居正)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무릇 시는 묘(妙)가 한 글자에 달려 있다. 옛 사람은 한 글자를 가지고 스승으로 삼았다[凡詩妙在一字, 古人以一字爲師].”고 하였고, 호자(胡仔)는 『초계어은총화(苕溪漁隱叢話)』에서 “시구는 한 글자가 공교로우면 자연히 빼어나게 되니, 마치 한 낱의 영단(靈丹)으로 돌을 두드려 금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했다. 원매(袁枚)가 『수원시화(隨園詩話)』에서, “시는 한 글자만 고쳐도 경계가 하늘과 땅 차이로 판이한데, 겪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한 것도 다 한 뜻이다. 한 글자가 시를 죽이고 살린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딘가에 있을 꼭 맞는 딱 한 글자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7. 정경론(情景論) 1. 가장자리가 없다 山沓水迎 樹雜雲合 산은 첩첩 물은 감돌고 나무들 섞여 있고 구름은 합해지네.目旣往還 心亦吐納 눈길이 갔다가 돌아오면은 마음도 따라서 움직인다네.春日遲遲 秋風颯颯 봄날 해는 느릿느릿 가을바람 스산해라.情往似贈 興來如答 정을 줌은 건네듯이 흥이 읾은 답하는 듯.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 「물색(物色)」의 한 절이다. 산첩첩(山疊疊) 수중중(水重重), 강산은 고운데 제각금의 나무들을 구름이 감싸 안는다.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물인가. 저 나무는 무슨 나무며, 어디까지가 구름인가. 그저 눈앞의 경물이건만 눈길이 한 번 갔다가 돌아오는 사이에 어느새 마음에는 느낌이 자리 잡는다. 사실 하루의 물리적 시간이야 봄가을이 다를 바 없고, 부는 바람 또한 차이..

6. 즐거운 오독(誤讀), 모호성에 대하여 1. 그리고 사람을 그리다 꿈보다 해몽 언어는 가끔씩 오해를 일으킨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의 화장실 면전(面前)에 이런 스티커가 붙은 적이 있다. “이단은 당신의 영혼을 노리고 있다.” 그리고는 그 아래 이른바 이단 종파에서 주장하는 상투적 주장을 환기시킨 뒤, 이에 동조하는 여러 교파의 이름을 나열하고, 끝에 가서 ‘김○○ 이단집단대책위원회’라고 써 놓았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이 단체가 이단을 집단으로 대책하는 위원회인지, 이단집단을 대책하는 위원회인지 알 수가 없어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었다. “할머니가죽을드신다”는 “할머니가 죽을 드신다”이냐, 아니면 “할머니, 가죽을 드신다”이냐. “예수가마귀를쫓는다”고 할 때, 예수가 쫓는 것이 마귀인가 까마귀..
5. 버들을 꺾는 뜻은, 한시(漢詩)의 정운미(情韻味) 1. 남포(南浦)의 비밀 사신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던 송인(送人) 雨歇長堤草色多 비 개인 긴 둑에 풀빛 고운데送君南浦動悲歌 남포에서 님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別淚年年添綠波 해마다 이별 눈물 푸른 물을 보태나니. 너무나도 유명한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이란 작품이다. 필자는 이 시만 보면 고등학교 1학년 국어 첫 시간에 배웠던 이수복 시인의 시,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엔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를 외우던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대동강 가 연광정(練光亭)에는 고금의 시인들이 지은 제영시(題詠詩)가 수없이 많이..
4. 보여주는 시(詩)인 당시(唐詩)와 말하는 시(詩)인 송시(宋詩) 1. 꿈에 세운 시(詩)의 나라 대관재몽유록(大觀齋夢遊錄)을 통해 시 나라에 초대된 심의 시인은 캄캄한 밤에 등불을 들고 어둠 속을 헤매이는 영혼들의 갈 길을 일깨워주는 선지자(先知者)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시인은 그 시대를 물끄러미 비춰주는 거울이어야 하는가. 조선 전기의 문인 심의(沈義)가 지은 「기몽(記夢)」은 「대관재몽유록(大觀齋夢遊錄)」이란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은이가 얼풋 잠이 들었다가 홀연 한 곳에 이르렀는데, 금빛으로 번쩍이는 화려한 궁궐에는 천성전(天聖殿)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그곳은 천상(天上) 선계(仙界)에 자리 잡은 시(詩)의 왕국(王國)이었다. 이 나라의 왕은 최치원(崔致遠)이고 수상은 을..
3. 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立象盡意論) 1. 싱거운 편지 열 두자로 보낸 편지 함경도 안변(安邊) 땅에 벼슬 살러 가 있던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서울에 있던 백광훈(白光勳)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반가운 마음에 겉봉을 뜯어보니, 딱 열 두 자 한 줄의 사연이 있었다. 삼천리 밖에서 한 조각구름 사이 밝은 달과 마음으로 친히 지내고 있소.三千里外, 心親一片雲間明月 이만한 사연 전하자고 천리 길에 편지를 띄웠더란 말인가. 그러나 음미할수록 새록새록 정감이 넘나는 뭉클한 사연이다. 한 조각구름 속에 밝은 달이라 했으니, 달은 달이로되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달이다. ‘심친(心親)’이라 하여 그밖에 다른 것에는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음을 보였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랬거니, 달은 ..
2. 그림과 시 1. 그리지 않고 그리기 ‘대교약졸(大巧若拙)’, 정말 큰 기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언제나 졸렬해 보이는 법이다. 시인의 덤덤한 듯, 툭 내뱉듯이 던지는 한 마디가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예리한 비수가 되어 독자의 의식을 헤집는다. 사의전신(寫意傳神)과 입상진의(立象盡意) 전통적으로 시와 그림은 서로 깊은 연관을 맺어 왔다. 옛말에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라 하였다. 특히 한시는 경물의 묘사를 통한 정의(情意)의 포착을 중시하는데, 이는 마치 화가가 화폭 위에 경물을 그리면서 그 속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것과 같다. 경물은 객관적 물상에 지나지 않는데, 여기에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얹을 수 있는가. 화가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경물이 직접 말하게 ..
1. 허공 속으로 난 길 1. 푸른 하늘과 까마귀의 날개빛 표면적 진술에만 집착하는 독자는 시를 읽을 자격이 없다. 행간에 감춰진 함축, 언어와 언어가 만나 부딪치며 속삭이는 순간순간의 스파크, 그런 충전된 에너지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생취(生趣)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고정관념이 아닌 열린 가슴으로 세상을 대하라 조선 후기의 문호 연암 박지원의 「답창애(答蒼厓)」란 글에는 마을의 꼬마가 천자문(千字文)을 배우는 데 게으름을 부리자, 선생이 이를 야단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자 꼬마가 대답하는 말이 걸작이다. “하늘을 보면 푸르기만 한데, 하늘 ‘천(天)’ 자(字)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 싫어요[視天蒼蒼, 天字不碧, 是以厭耳]!” 천자문(千字文)을 펼치면 처음 나오는 말이 천지현황(..
지은이의 말 한시는 전달의 특수성 때문에 오늘날 그 효용가치를 상실했다. 한시는 전문 연구자들의 학술적 관심사가 되고 있을 뿐, 이미 가시덤불로 막혀버린 낡은 길이다. 그렇다고 한시가 추구한 정신의 깊이나 미학의 너비마저 덤불 속에 버려둘 수는 없다. 먼지 쌓인 역사의 뒤편에 방치된 채 날로 그 빛이 바래가고 있는 한시에다 신선한 숨결을 불어넣고, 막힌 길을 새로 뚫어 현대적 의미를 밝히는 일은 우리에게 맡겨진 책무다. 이 책은 시 전문지 『현대시학』에 1994년 2월부터 1996년 5월에 걸쳐 연재한 글을 보태어 손질하고 차례를 가다듬어 정리한 것이다. 고전 시학의 정수를 오늘의 시인과 독자들이 좀 더 가깝게 느끼고 접근하게 할 수는 없을까? 한시는 정말로 골동적 가치만을 지닌 퇴영적 문화유산에 지나지..

책 머리에 우리 한문학 유산의 국문학에로의 계승 문제는, 그동안의 거듭된 논란 끝에, 이제는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거의 긍정쪽으로 정착이 되어 가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너무나 호한(浩汗)하고도 난삽(難澁)함으로 해서, 아직도 많은 국문학도들로부터 은근히 경원(敬遠) 내지 소외되어 오고 있음이 오늘의 실상이다. 유일무이한 표기수단이었던 한자 우리는 그 옛날 우리 선인들의, 그 다정다감한 가슴속에 무시로 피어오르던 문학적 정서와, 무엇에 의해서든 이를 표현하지 않고는 못 견딜, 강한 욕구와 충동으로 애타하던 정황을 상상해 본다. 당시 만일 우리 주변에 보다 편리한 표기 수단이 달리 있기라도 했었더라면, 사정은 사뭇 달라졌으리라만, 그러나 그 당시로서는 한자야말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수단이었던 만큼, ..

조선시대 한시읽기 머리말 한문학(漢文學)의 백미(白眉)는 한시(漢詩)이다. 조선시대의 한시사(漢詩史)에 대해 김만중(金萬重)은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조의 시체(詩體)는 네다섯 번 변했을 뿐만 아니다. 국초에는 고려의 남은 기풍을 이어 오로지 소동파(蘇東坡)를 배워 성종, 중종조에 이르렀으니, 오직 이행(李荇)이 대성하였다. 중간에 황산곡(黃山谷)의 시를 참작하여 시를 지었으니, 나의 재능은 실로 삼백 년 시사(詩史)에서 최고이다. 또 변하여 황산곡과 진사도(陳師道)를 오로지 배웠는데, 정사룡(鄭士龍)ㆍ노수신(盧守愼)ㆍ황정욱(黃廷彧)이 솥발처럼 우뚝 일어났다. 또 변하여 당풍(唐風)의 바름으로 돌아갔으니, 최경창(崔慶昌)ㆍ백광훈(白光勳)ㆍ이달(李達)이 순정한 이들이다 本朝詩體,..

고려시대 한시 읽기 머리말 한문학(漢文學)의 백미(白眉)는 한시(漢詩)이다. 고려시대 역시 용재(慵齋) 성현(成俔)이 『용재총화(慵齋叢話)』 권1에서 “고려시대의 문사들은 대부분 사(詩)를 업으로 삼았다[高麗文士, 皆以詩騷爲業].”라고 언급했듯이, 산문(散文)보다는 시(詩)에 경도(傾倒)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거정(徐居正)은 「목은시정선서(牧隱詩精選序)」에서 조선(朝鮮) 이전의 대표적인 시인(詩人)들을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동방은 예로부터 시서(詩書)의 나라라고 일컬어질 만큼 문장으로 한 세상을 풍미한 이들이 각 시대마다 끊이지 않고 배출되었으니, 을지문덕은 고구려에서 이름을 날렸고, 설총과 최치원은 신라에서 이름을 드날렸다. 그러다가 고려가 새로 나라를 열면서 문치가 크게 일어난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