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연재/만남에 깃든 이야기 (82)
건빵이랑 놀자
1. 수단으로서의 글 읽기와 본질로서의 글 읽기 글이란 한 사람이 지닌 문사철(文史哲)이 얽히고설켜 하나의 정제된 양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읽으면 지은이가 살았던 사회상을 엿볼 수 있고, 그에게 영향을 준 사상을 맛볼 수 있으며, 현실을 살아내며 구성된 그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글을 읽는다는 게 단순히 글자를 읽어나가는 행위가 아닌 지은이의 생각과 철학을 받아들이는 행위이기에, 조선시대 학자들은 자세를 바로 잡고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워 몸과 마음을 가다듬은 후에야 글을 읽었던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글 읽기’ 하지만 인쇄문화가 발달하여 무수히 많은 책이 쏟아지게 되면서 글을 대하는 진중한 자세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글이나..
단재학교와 광진Iwill 콜라보 목차 1. 기지에 투항 말고, 미지에 투신하라 사전적 지성으로 배워왔다 그렇다면 이제부턴 사후적 지성으로 배우라 2. 모르기에 갈 뿐 광진iwill센터와의 인연을 통해 사후적 지성을 느끼다 2016년 꿈틀이 축제, 그 현장으로 3. 제2회 꿈틀이 축제의 추억 제2회 꿈틀이 축제와 영화팀의 활약 영화팀의 활약에도 영화팀 교사가 참석하지 못하다 4. 제3회 꿈틀이 축제에 가보자 마침내 건빵이 꿈틀이 축제에 참석하다 아이디어 발표회 현장 스케치 현모양처 단재팀, 최우수상을 수상하다 5. ‘좀비어택’ 카드게임을 만들다 ‘좀비어택’은 시작은 어땠나요? ‘좀비어택’ 이렇게 탄생했다 6. ‘좀비어택’이란 게임을 발표하기까지의 우여곡절 발표한다는 부담이 앞을 가로막네 아이디어 발표대회에..
11. 돈 앞에서도 배려심을 발휘한 단재학교의 대중지성들 그래서 상금은 토요일에 받았지만, 상금 배분을 위한 회의는 그 다음 주 목요일에 진행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그냥 얘기하게 하면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고 비아냥댈 수도 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나도 여러 방안을 생각해봤다. 그때 만든 방안은 크게 세 가지였다. ▲ 드디어 5일 만에 상금 배분 위원회가 열렸다. 아이들도 맘을 단디 먹은 게 보인다. 상금 배분 위원회를 위한 기본 전제 마련하기 첫째, 상대방을 비난하지 말며 자기 이야기만 해야 한다. 자칫 상대방의 기여도 정도를 평가하기 시작하면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고, 그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우리가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막장 스토리’처럼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상대방을..
10. 돈 돈 돈, 그것이 문제로다 의기투합하여 게임을 만들었고 멋지게 발표하여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사실까지는 정말 좋았다. 게임을 만들 때도, 그리고 발표 자료를 만들 때도, 카드를 직접 제작할 때도 서로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함께 해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단결력을 옆에서 지켜보는 맛도 쏠쏠했고 교사가 된 보람을 느끼기에도 충분했다. 그런 상황에서 결국 최우수상이란 벅찬 상까지 받았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 2차 발표 전에 리허설을 하고 최종발표를 하는 모습. 함께 의기투합하여 여기까지 왔다. 상금 배분의 문제로 골머리 썩다 하지만 상금을 배분하는 것이 문제였다. 서로 축하해주는 그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이제 상금을 나눠볼까요?”라고 불씨를 당겼다. 막상 ..
9. 멋지게 발표하여 상금은 받았지만... 살다 보면 굽이굽이에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도 못했지만 어마한 일이 숨어 있기도 하고, 하나의 작은 일들이 계기가 되어 엄청난 일로 비약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이 일어나기 전엔 절대로 알 수 없고, 이미 일어난 후에만 그렇게 정리할 수 있을 뿐이다. ▲ 앞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채 나가고,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지만 가야 한다. 모르기에 우리는 우연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간다 영화와 드라마를 보다 보면, 오프닝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멘트가 있다. 이 멘트는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뜻을 담고 있고, 여태껏 한 번도 생각해보거나 예측한 적이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 2007년에 방영된 『얼렁뚱땅 흥신소』에선..
8. 단재학교 영화팀 5번째 작품, ‘DREAM’ 제작기 ‘지켜볼 수 있는 마음’이 어찌 보면 단재학교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도 광진센터와 협업을 하게 되면서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미경쌤은 매주 아이들과 모여 영화의 컨셉,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미경썜과 단재 아이들의 콜라보. 마치 가족 같다. 『DREAM』은 김민석 감독 작품이 아닌 오현세 감독 작품이었다? 이때 가장 전면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 사람은 현세와 규빈이였다. 현세는 여러 영화를 봐왔고, 평소에 창의적인 스토리(『아이덴티티』란 영화의 내용을 듣고 거기에 착안하여 만든 영화가 『Fakebook』임)를 많이 생각해왔기에 거침없이 스토리를 이야기해줬고, 거기에 규빈이가 살을 덧붙여주면서 신선한 시나리오가 금세 ..
7. 비전문가가 영화팀을 꾸리다 단재학교는 영화팀과 연극팀으로 나누어져 있다. 2009년에 개교한 이래 2012년에 크나큰 변화를 겪었다. 외부적으론 서울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의 네트워크 학교가 되었고, 비영리민간단체가 되었으며, 내부적으론 영화팀과 연극팀으로 나누어져 영화팀은 각종 영화제에 참석하고 영화 후기를 쓰며 영화를 제작하고, 연극팀은 연극을 관람하고 대본을 각색하여 관중 앞에서 연극을 한다. ▲ 2012년에 단재학교는 영화팀과 연극팀이 생기면서, 좀 더 특색있는 활동들을 하게 됐다. 전문가만이, 교원자격증을 지녀야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엔 단재학교만의 비밀이 숨어 있다. 연극팀을 맡게 된 교사도, 영화팀을 맡게 된 나도 그와 같은 과목을 전공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
6. ‘좀비어택’이란 게임을 발표하기까지의 우여곡절 처음 이 게임을 만들 때만 해도 우리끼리 만들어서 함께 재밌게 해볼 생각만 있었지, 다른 곳에 알리거나 소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 막상 미경쌤이 좋은 정보를 주긴 했지만, 과연 하게 될지? 아닐지?는 나도 모른다. 발표한다는 부담이 앞을 가로막네 하지만 뭐든 이루어지려 하면 큰 지장 없이 이루어지곤 한다. 이럴 때 사람은 ‘필연’이란 딱지를 붙여, ‘그건 애초에 될 일이었어’라고 생각하려 한다. 애초에 될 일이었는지, 그렇지 않은 일이었는지는 각자의 판단마다 다를 테니 놔두기로 하고, 잠시 영화 『타짜』에 나오는 내레이션을 들어보도록 하자. 곤이가 스물여섯 살 때 목숨을 못 끊었죠. 생각해보면 다 우연이예요. 그날 곤이는 박무석이를 만났고 곤이 누..
5. ‘좀비어택’ 카드게임을 만들다 그럼 이제부터 ‘좀비어택’이란 게임의 탄생 비화를 들어보도록 하자. 어찌 보면 이건 첫 번째 후기에서도 밝혔다시피 ‘우연하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냥 하고 싶어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래서 단재학교에서 유행어가 된 ‘밑도 끝도 없이’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 15년 9월 2일. 우리끼리 프로젝트 중 단재웹툰 그리기를 하는 아이들. ‘좀비어택’은 시작은 어땠나요? 작년부터 일주일 중 3시간을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시간인 ‘우리끼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 수업은 ‘학생들의, 학생들을 위한, 학생들에 의한 수업시간’이라 할 수 있다.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끼리 회의를 하여 한 학기 동안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했으면 하는..
4. 제3회 꿈틀이 축제에 가보자 작년의 그런 아픔을 곱씹으며 이번엔 꼭 참석하리라 맘먹었다. 더욱이 이번 축제의 경우 단재학교 아이들이 ‘아이디어 발표대회’에도 참여하여 좀비어택이란 카드 게임을 발표하고, 그 다음엔 민석이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영화를 상영하기에 무조건 참석해야만 한다. ▲ 우중충한 날씨. 그래도 춥진 않고 포근해서 다행이다. 마침내 건빵이 꿈틀이 축제에 참석하다 꿈틀이 축제는 3시부터 시작되지만, 발표를 하는 팀들은 리허설을 해야 했기에 1시까지 수련관으로 모이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린 광나루역에서 12시 30분에 모이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은근히 긴장되더라. 나는 그저 교사의 입장으로 참석하고 아이들이 잘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역할만 하면 되지만, 그래도 발표를 한다..
3. 제2회 꿈틀이 축제의 추억 광진Iwill센터에서 한 해에 한 번씩 진행되는 ‘꿈틀이 축제’라는 게 있다. 센터에서 했던 활동들을 발표회 형식으로 꾸며 발표도 하고 공연도 하며 한 해를 정리하는 축제다. 이제 3회째를 맞이하는 행사이니 만치 조금씩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다. ▲ 꿈틀이 축제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제2회 꿈틀이 축제와 영화팀의 활약 단재학교 아이들이 이 축제에 참여하게 된 건 작년이 처음이었다. 작년 2학기부터 광진Iwill센터와 협업을 하게 되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한 내용은 이미 두 번째 후기에서 썼기 때문에 여기서는 ‘꿈틀이 축제’에 대한 내용만을 이야기하기로 하자. 작년엔 영화팀 아이들만 참여하여 영화 두 편을 꿈틀이 축제에 출품했었다. 아무래도 2012년에 영화를 만들어본 ..
2. 모르기에 갈 뿐 길고도 길게 ‘사후적 지성’에 대해 이야기를 한 이유는 바로 광진Iwill센터(이하 광진센터)와의 인연을 말하기 위해서다. 이미 작년에 썼던 글을 통해 광진센터와의 인연에 대해 짧게 말한 적이 있다. 어찌 보면 이 글은 그 글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다. ▲ 작년 찬혁쌤과 아이들의 호흡은 최고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두 편의 영화를 남겼다. 광진iwill센터와의 인연을 통해 사후적 지성을 느끼다 그때는 한 학기동안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여러 부분에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돈독한 우정을 쌓았었다. 그렇기에 그런 내용을 풀어내본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이 올해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져 더욱 스파크가 팍팍 튀고, 앎의 희열..
1. 기지에 투항 말고, 미지에 투신하라 요즘 천착하고 있는 주제가 ‘사후적 지성事後的 知性’이라는 말이다. 그 말은 곧 지금까진 매우 ‘사전적事前的 지성’으로 살아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 작년에 아이들과 일주일 동안 함께 떠난 자전거 여행은 일반적으로 '미친 짓'이다. 하지만 해보기 전엔 모르는 것도 있다. 사전적 지성으로 배워왔다 ‘사전적 지성’이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계획을 하고, 그 계획대로 실천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 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계획을 하고 실천해야 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도 그와 같은 방식만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그건 무언가를 하기 전부터 ‘이걸 하고 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는 상황’을 말한다. 하기도 전에 이걸 하고 나면..
목차 1. 한 여름에 눈덩이를 굴리겠다고? 한 여름의 밀짚모자, 꼬마 눈덩이 프로젝트 모여라, 그러면 어떤 이야기든 흘러 나온다 2. 교육의 논리를 넘어 교사들끼리 한바탕 수다떨기 교육은 교육의 논리로,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눈덩이 굴릴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衆口鑠金 - 함께 떠들면 쇠마저 녹일 수 있다 ‘눈덩이프로젝트’라는 배치 인용 교사란 책을 읽다 만남
2. 교육의 논리를 넘어 교사들끼리 한바탕 수다떨기 돈가스집엔 사람들이 가득 차서 시끄럽기에 8명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과만 이야기를 나눴다. 이 때 섬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 얘기 중 가장 놀라웠던 것 “북유럽의 선생님들이라 해서 한국과 다르지 않아요. 어찌 보면 수업방식이나 태도는 거의 똑같다고도 할 수 있죠. 그런데도 사회적으로 미묘하게 다른 것들이 있다 보니, 그게 차이를 만드는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였다. ▲ 우린 이야기를 하며 어떤 눈덩이를 굴렸을까? 교육은 교육의 논리로,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그러면서 “북유럽에선 인건비가 가장 비싸다 보니 사람을 통해 하는 일들이 가장 돈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되도록 외식을 하지 않고, 밤이 되면 거의 불이..
1. 한 여름에 눈덩이를 굴리겠다고? 때는 바야흐로 2015년 8월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이었다. 얼마나 더우면 개도 땅바닥과 합체하여 세상에 대한 관심을 거둔 지 오래고, 나 또한 방학의 무료함에 장판과 일체가 된 지 오래였던 그 때, 섬쌤은 ‘한 여름에 눈덩이를 굴리겠다’는 화끈하고도 야릇한 발상(?)을 전해주었다. 당연히 귀 쫑긋, 눈엔 힘 팍팍 들어갈 수밖에. 아마도 한 여름의 무더위로 무생물처럼 더위와 동화되어 있던 때라, 그런 제안은 오랜만에 내가 생물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할 정도로 짜릿했다. ▲ 더운 여름에 눈을 굴려보겠다는 제안. 아싸라비용~ 한 여름의 밀짚모자, 꼬마 눈덩이 프로젝트 섬쌤은 ‘민들레 읽기 모임’에서 몇 번 본 것 외에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 얼핏 알기로는 ..
목차 1. 영화팀과 광진IWILL 센터와의 우연 같은 마주침 천지창조에 관한 두 가지, 우연이냐? 필연이냐? 우연이 필연이 되기까지 우연처럼 찾아온 광진청소년수련관 간사들 2. 영화팀 두 편의 영화를 만들며 의기투합하다 광진청소년센터와 공동 프로젝트를 하게 되다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자신감도 상승한다 3. 교사는 전문가여야만 할까? 교육 전문가란 따로 있다? 교사는 비전문가여야 한다 교사는 반보 앞서 가는 존재가 아닌, 반보 뒤에서 따라가는 존재다 김민석 감독의 영화, 『Game Over』 오현세 감독의 영화, 『FakeBook!』 제작진과의 대화 인용 만남
3. 교사는 전문가여야만 할까? 또 달랐던 부분이 있다. 2013년 당시엔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가 현장을 지도했다. 나는 영화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제작에 대해서도 기초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늘 ‘전문가의 좀 더 체계적인 도움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고민했었다. ▲ 광진청소년수련관과의 인연으로 아웃리치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배움은 바로 이런 곳에서도 이루어진다. 교육 전문가란 따로 있다? 아무래도 나의 부족한 부분이 도드라져 보였고, 그게 아이들에겐 ‘좀 더 체계적인 교육에 대한 갈급함이 있지 않을까’라는 부분이 미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가 지도하는 ‘영화 만들기 수업’은 영화팀 아이들에게 그런 갈급함을 채워주는 기회임과 동시에,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
2. 영화팀 두 편의 영화를 만들며 의기투합하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보니, 전찬혁 간사님(이하 푸쌤)은 단재학교 영화팀 아이들과 ‘컴퓨터, 스마트폰 중독에 관한 영화를 찍어보고 상영회를 하고 싶다’고 얘기하더라. 자세한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시나리오를 짜고, 찍고 편집까지 할 것이라는 대략적인 그림을 말해주셨다. 광진청소년센터와 공동 프로젝트를 하게 되다 그 말을 들으니 귀가 번쩍 열릴 지경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영화팀 아이들은 영화를 찍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그걸 선뜻 하기엔 부담스러워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차였는데, 이런 식으로 정식적인 제안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얘기 중 가장 맘에 들었던 부분은 간사님이 주도적인 입장이 되어 아이들을 이끌고 활동을 진행해 나..
1. 영화팀과 광진IWILL 센터와의 우연 같은 마주침 하나의 선분과 다른 하나의 선분이 어떤 계기를 통해 마주친다. 우린 그런 마주침에 대해 ‘필연’이란 딱지를 붙여 설명하기도, ‘우연’이란 딱지를 붙여 설명하기도 한다. ▲ 그 인연 덕에 3년 만에 다시 남양주종합촬영소를 체험할 수 있었다. 천지창조에 관한 두 가지, 우연이냐? 필연이냐? 에피쿠로스Epicurus(BC 341~271)는 그런 마주침에 대해 ‘우연’이란 딱지를 붙여 설명한다. 일직선으로 떨어지던 원자 하나가 아주 미세하게 어긋나며 약간 사선으로 떨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옆에 있는 원자와 부딪히고, 그 부딪힘은 또 다른 원자와의 연쇄적인 부딪힘으로 이어진다. 원자들이 부딪히며 점차 커지더니, 결국 지구가 되었다는 얘기다. 지구는 이..
만남에 깃든 이야기 목차 ㄱ 김진숙을 만나다교육과 소통, 그리고 인간(이왕주)광진IWILL 센터와 콜라보꿈틀이 축제, DREAM곤란한 결혼 ㄴ 눈덩이 프로젝트눈덩이 교사란 책을 읽다 ㄷ THE 앵두 탐방기 ㅂ 박준규를 읽다 ㅅ 성장이 멈췄다 우리 모두 춤추자(여름1박2일) ㅇ 여유 있는 공간에서 맘껏 유영하라(민들레81호)아이여서 불행해요(겨울 1박2일)옛 이야기 전문가 김환희양평 슈타이너 학교를 가다연암 박지원을 만나다 ㅋ 클리나멘 같은 인연 ㅍ 판에 박힌 교육, 그 너머(민들레58호) ㅎ 홍세화를 만나다 인용지도
목차 1. 수단으로서의 글 읽기와 본질로서의 글 읽기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글 읽기’ 맛난 마주침을 위한 ‘본질로서 글 읽기’ 2. 연암의 글에 반하다 잘 안다고 착각했다 문이재도론, 조선시대의 미디어법 연암의 글 속엔 연암이 살아 있다 3. 작품 탄생에 대한 두 가지 관점 작가의 천부적 재능으로 작품은 탄생한다 여러 웅성거림이 작품을 짓도록 한다 4. 글은 불협화음 속에서 움튼다 불협화음 속에 문학은 생기를 얻고, 철학은 생명을 얻는다 힘든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 좋은 작품을 만든다 5. 나의 길을 간다. 그 길에서 나의 글을 쓴다 나의 길을 간다 6. 좋은 글의 첫 조건, 호기심 자기 성찰의 기본 요소, 호기심 호기심은 유머와 만나 더욱 빛난다 7. 좋은 글의 둘째 조건, 고정관념 넘어서기..
천부적인 자질에 의해 글을 짓게 된다거나 여러 상황에 휩쓸리며 짓게 된다는 논의 중에 나는 당연히 전자보다는 후자의 관점에 매력을 느낀다. 모든 사람에겐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며 그건 어떤 상황과 마주쳐 공명할 때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협화음 속에 문학은 생기를 얻고, 철학은 생명을 얻는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을 보더라도 정조(1776∼1800)가 집권하던 시기엔 동분서주하며 관리로서의 임무에만 충실했다. 규장각 일원으로 책을 교정보거나 수원화성의 실질적인 설계자로 공사를 총지휘하며 바쁘게 지냈다. 아마 그렇게 관리로서 승승장구했다면 현재 우리가 ‘다산학’이라는 칭호까지 붙이며 기리는 다산은 없었을 것이다. 삶이 엇나가 신유박해辛酉迫害(1801)로 일..
연암의 문학 작품을 살펴보기에 앞서 ‘작품은 어떻게 탄생하는가?’라는 주제로 세 번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왜 연암의 글을 소개하는 이 글에서 연암의 글은 살펴보지는 않고 뜬금없이 작품 탄생론으로 들어가느냐고 볼멘소리를 할 법하지만, 실상 어떤 식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지 고민해본 만큼 작품의 해석도 달라지기 때문에 짚고 가야 한다. 예술작품이나 문학작품, 또는 철학적 관점이 만들어지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이 글에선 단순화하여 두 가지 관점의 차이만 살펴보고 그 관점에 따라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 연암의 작품을 들여다 보려면 작품이란 어떻게 지어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가의 천부적 재능으로 작품은 탄생한다 작품이나 ..
지금껏 길게 말했던 ‘본질로서 글 읽기’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준 사람이 바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이다. 잘 안다고 착각했다 웃긴 것은 이때까지 연암의 글을 여러 번 읽어왔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땐 시험을 보기 위해 뜻을 해석하기에 바쁘다고 생각한 나머지 막상 속뜻을 알려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호질虎叱』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허위의식을 여지없이 비판하는 내용이었을 뿐이었고, 『허생전許生傳』은 조선 경제의 빈약함을 드러내는 내용이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정해진 정답만을 찾아가는 식으로 글을 읽었으니, 연암과 마주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과정을 지나 다시금 글로 만난 연암은 상상을 초월하는 깊이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니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정도전, 송시열)이 내세..
목차 1. 맘껏 흔들리는 청춘들의 이야기, 앵두 그리고 건빵 흔들리는 청년들의 흔들리는 대화 4개월 만에 각자의 길에서 설렘을 만들어내다 마침내 임용이란 족쇄가 풀리다 2. 계획대로 안 되기에 아름다운 여행, 그리고 성인영어 엇갈림, 틀어짐의 행복 맑은 국물 해장국의 안성맞춤 ‘성인영어’에 대한 야릇한 상상 3. THE 앵두에서 어느 최고의 날에 오늘이 나의 최고의 날 THE 앵두엔 앵두의 삶이 담겨 있다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존재들이 수놓을 THE 앵두라는 공간을 상상하며 인용 만남
재밌게도 이 공간엔 아직 간판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간판은 세우지 않고 저런 간단한 입간판들로만 이 공간을 알릴 생각인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전혀 뜻밖이었다. 간판을 달고는 싶은데 지금은 용기가 나지 않고 부끄러운 나머지 못 달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 사실을 통해 공간을 열 수 있는 용기와 간판을 달 수 있는 용기 사이엔 어마무시한 간극이 존재한단 사실을 알게 되었고, 덩달아 간판이 달리던 날엔 더 격렬히 축하해줘야겠다는 생각도 스쳤다. 어찌 되었든 자신만의 붉은 장막을 당당히 넘어선 날이기 때문이다. ▲ 아직 이곳엔 간판이 없다. 오늘이 나의 최고의 날 두 개로 세워진 입간판엔 아기자기한 앵두만의 생각들이 요소요소에 담겨 있다. 공간에 대한 소개를 길게..
청주로 가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상행선 버스를 탔다. 올해 3월에 전주에 내려왔으니, 8개월 만에 상행선 버스를 타는 셈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늘 타던 상행선 버스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특별한 경우에나 탈 수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청주는 지금껏 두 번 갔었다. 한 번은 목포에서 고성까지 도보여행을 하는 중에 지나간 곳이었고, 그 여행으로 진천에서 고추를 심게 되는 체험을 해보면서 그 다음 해에도 고추를 심기 위해 청주터미널에 갔었다. 이처럼 스쳐가던 도시에서 오늘은 찾아가는 도시로 변모한 셈이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 2009년에 처음 왔을 땐 청주와 청원은 나눠 있었는데 지금은 통합되며 통합청주시가 되었다. 청주야 반갑다. 엇갈림, 틀어짐의 행복 청주로 향하는 버스는 터미널..
젊음이 좋은 이유는 나이가 어리기 때문도, 수많은 가능성이 어리기 때문도 아니다. 그보단 막 저지르고 볼 수 있고 충분히 그걸 뒤처리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꿈도 한 가득 꿔볼 수 있고 어떤 결말이 날지라도 맘껏 달려들어 해볼 수 있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 또는 미래의 모습이 어쨌든 그런 건 전혀 상관없이 해보려 맘먹었던 것은 모두 해보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어른들이 흔히 얘기하는 ‘젊어서 좋겠다’라는 심정에는 하고 싶은 게 있고 그걸 맘껏 해볼 수 있는 도전정신이 있어서일 것이다. ▲ 청춘이기에 하얗게 불태우는 모습을 유쾌상쾌통쾌하게 다룬 [족구왕]. 이 영화를 보면 청춘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흔들리는 청년들의 흔들리는 대화 앵두와는 올해 두 번을 만났었다. 1월에 종로..
양평 슈타이니 학교 목차 1. 대안학교란 무엇인가? ‘대안학교’라는 큰 틀에 묶기엔 수많은 스펙트럼을 지닌 대안학교 어떤 의문 2.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의 모습이 숨어 있다 나에겐 너가, 너에겐 나가 시선의 변화만으로도 많은 것이 변한다 교사의 힘이란 무엇인가? 3. 방문 후기와 옥천냉면 후기 학교의 성장은 교사진의 자리지킴으로부터 여행의 기쁨은 맛집 탐방 인용 지도 만남
3. 방문 후기와 옥천냉면 후기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니 해는 서서히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깊은 산골에 위치한 양평 슈타이너 학교는 단재학교보다 6개월 정도 일찍 출범했다. 그렇기에 학교가 시작된 지 3년째가 된 것이다. ▲ 다양한 공간들이 눈에 띈다. 학교의 성장은 교사진의 자리지킴으로부터 그 시간동안 학교의 규모가 어느 정도 갖춰졌고 선생님들의 진영도 어느 정도 갖춰졌다. 학생 수가 많지 않아 아직도 어려운 편이지만, 선생님들 얼굴에선 자부심과 여유가 느껴졌다. 이건 현실에만 치우치지 않고 내면 깊숙한 곳에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힘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캠프힐’이란 마을공동체를 조직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한단다. 처음은 미약하나 끝은..
2.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의 모습이 숨어 있다 깊은 산골로 굽이굽이 들어간다. 양평의 깊고 깊은 산골엔 이미 수많은 전원주택이 지어져 있었다. 도시 사람들은 귀농의 꿈을 펼치기 위해 저와 같은 흉물스런 광경을 연출했을 것이다. 도시근교에 살면서 도시적 혜택도 맛보며 시골의 한적한 기운도 느끼고픈 욕망의 극치를 보는 듯했다. 슈타이너 학교는 그와 같이 이미 지어진 전원주택을 빌려 학교 건물로 사용하고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쾌적한 환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학교건물이면서 삶의 터전인 학교 부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기자기한 건물들과 아이들이 손수 만들었다는 놀이터는 학교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부지 한 켠엔 그들이 강당으로 사용하는 비닐하우스도 설치되어 있다. 그곳에는 입학식을 한 흔적이..
1. 대안학교란 무엇인가? 대안학교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해도 진정 학생 개개인을 위한 교육을 하는 곳이라 생각한다던지, 일반학교의 문제아들만 모아놓은 곳이라 생각한다던지, 공부가 하기 싫은 학생들만 모인 곳이라 생각한다던지, 강압적으로 국가‧사회 이념에 의해 짜인 촘촘하지만 삶과 괴리된 죽은 앎뿐인 커리큘럼을 넘어서 진정 한 개인의 성장에 맞추어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곳이라 생각한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건 대안교육이 제도교육의 한계에서 탄생한 것이기에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할 만하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런 선입견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선입견은 있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선입견이 문제는 없는지, 사실과 다른 ..
목차 1. 교보문고의 5만 년된 나무 테이블 알아? 알아, 교보문고의 탁자? 숨겨진 이야기는 사물을 달리 보이게 만든다 나무가 던진 메시지, ‘너 혼자 잘났니?’ 2. ‘눈물 시리즈’는 준규식 호곡장론 책! 책! 책! 사람 책을 읽읍시다! 울어재낄 수 있는, 그 마음 3. 글을 쓴다는 것, 그리고 그 글에 대한 평가를 듣는다는 것 서마가 강림하사, 눈물 시리즈를 쓰게 하셨네~ 할렐루야! 1부의 흡입력, 2부의 가슴뭉클함 내 글에 대한 평가를 듣다 조회수, 좋아요가 뭐길래 완벽한 글이 아닌, 나의 글을 쓸 수 있나? 남자에게 관대한 풍토, 그걸 잊지 마 4. 교사는 학생에게 빌미를 주는 존재다 한 학생을 오롯이 지켜볼 수 있다는 장점 쇼를 하는 아이들 행동을 바꿀 만한 빌미를 주는 교사여야 한다 『박준규』..
준규쌤은 2009년에 단재학교를 열어 4년 동안 중고생들과 생활하다가 2013년에 단재학교를 떠나 지지학교를 개교하면서 초등생들과 생활하고 있다. 공교육 교사로 19년을 근무하고 대안학교 교사로 6년을 근무한 것이다. ▲ 지지학교는 1월 24일에 발표회를 마치고 3주 간에 방학에 들어갔다. 그 덕에 이 날엔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한 학생을 오롯이 지켜볼 수 있다는 장점 여기서 만나는 아이들은 공교육에서 나온 아이들이기에 획일성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아이들이라 할 만하다. 그 아이들 중 몇 명은 발작적인 증상을 보이기도 한단다. 화가 나서 격렬하게 화를 내며 위협적인 행동을 하거나, 어떤 것을 하기 싫으면 눈이 뒤집어져 생떼를 쓰거나 학교에 나오지 않고 버틴다거나 한다는 것이다. 공교육에..
준규쌤의 눈물 시리즈를 읽고 나서 그에 대해 말했다. “이번에 쓴 글은 저번에 썼던 ‘야매 이야기’에 버금가는 흡입력이 엄청난 글이던데요. 그리고 1부와 2부로 나누어 쓴 것은 오히려 신의 한 수였어요” 그러자 준규쌤은 한달음에 완성하고 싶었지만, 그때 하필 약속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두 편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 2차로 인사동의 여자만을 찾았으나, 1년 전에 문을 닫았단다. 이곳에서도 꼬막을 먹었는데, 금요일 밤임에도 우리 밖에 없었다. 서마가 강림하사, 눈물 시리즈를 쓰게 하셨네~ 할렐루야! 물론 쓰는 사람 입장에선 글이 써질 때 마무리 짓는 게 좋다. 글이란 게 내 맘대로 써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무언가 내 안에 웅성거림이 있을 때 쓰면 1시간 만에도 몇 페이지를 쓸 수도 있지만, 그..
본격적으로 교보문고에서 자리를 옮겨 이야기 한마당이 펼쳐졌다. 대화는 두서없이 진행되었지만, 동섭쌤과 초등학교 교사 3명이 던져준 숙제로 혼란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던 나에게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줬다. ▲ 사람이 온다는 건 그의 역사와 함께 온다. 그러니 만나고 얘기 나누자. 책! 책! 책! 사람 책을 읽읍시다! 내가 단재학교로 들어오기 이전에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라는 프로그램을 2회에 걸쳐 진행했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본 적이 없으니 알 수는 없지만, 몇 명을 섭외하여 도서관에 온 사람은 책을 빌리는 대신, 섭외된 사람을 빌린다. 그리고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얼핏 보면 ‘그건 그냥 수다 떠는 거 아냐?’라고 의아해할 법 하지만, 일반적인 대화가 아니라 그..
목차 1. 수업의 재건을 말하는 교사들 니가 번개팅의 묘미를 알아? 제대로 된 교육은 교사의 열정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잘 돌아가는 시스템에 의지한다 너를 만나 나는 사라졌다 2. 수업의 해체라는 말이 던진 고민들 제3의 길을 모색하다 수업의 재건이냐, 수업의 해체냐? 오해가 관계를 더 돈독히 한다 인용 눈덩이 프로젝트 만남
열띤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흐르고 있다. 민쌤이 이야기를 주도하고, 그에 따라 섬쌤이 자기의 견해를 덧붙이며 이쌤이 궁금한 것들을 물으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제3의 길을 모색하다 섬쌤은 지금 교원대에서 교육사회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이제 논문을 써야 한단다. 학자적인 기풍이 강하게 느껴졌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이쌤이 “연구하고 싶은 게 있어서 교원대 석사 과정에 들어간 거예요? 아니면 어떤 이유 때문에 석사 과정에 들어간 거예요?”라고 물었다. 저번 8월 모임 때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는데, 그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하느라 하지 못했던 질문이다. 이에 섬쌤은 “처음엔 교직에서 꿈틀거리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긴 했는데, 그러면 더 시간만 지..
땡볕이 작렬하던 한 여름에 눈덩이를 굴리겠다는 발칙한 제안으로 시작된 ‘눈덩이 프로젝트’는 8월에 갑자기 시작되었고, 그 달 26일에 밑도 끝도 없는 모임제안으로 8명(초등교사 5명, 대안학교교사 2명, 학부모 1명)이 모이게 되었다. 이 모든 게 새로운 이야기장을 만들고 싶던 섬쌤의 주도로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었다. ▲ 작은 눈덩이는 목적의식 없이 그냥 구른다. 그러나 그 작은 움직임이 커진다. 니가 번개팅의 묘미를 알아? 그러고 나서 어느덧 5개월이 지나며 2016년의 새해가 밝았고 흥에 겨워 있던 그때 모이자는 제안이 온 것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저번에는 여름방학의 끝 무렵이었고, 이번에는 겨울방학의 끝 무렵이다. 이렇게 두 번의 경우가 어떤 일정한 패턴을 가질 경우, 호사가들은 ‘섬쌤은 방학 끝 ..
준규쌤은 단재학교를 2013년에 떠나 지지학교를 열었다. 단재학교에 있을 때 영향을 많이 주었던 분이고, 여전히 여러 생각을 한 아름 안겨주는 분이기에 한 번씩 만나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젠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기에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올해가 시작되며 맘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라 준규쌤의 말을 듣고 어떤 단서라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최근에 준규쌤은 지지학교 연말 발표회를 함으로 7명의 학생들을 떠나보내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계획이 있는지도 듣고도 싶었다. ▲ 지지학교 발표회의 하이라이트, 난타공연. 지민이는 최고의 공연이었다고 했다. 알아, 교보문고의 탁자? 5시에 교보문고에서 만나니, “여기에 5만 년이 된 나무 탁자가 있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봤는데, ..
목차 1. 민들레란 타임머신에 올라타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비되어 가다 마비되지 않는 방법 다시 한 번 민들레란 타임머신에 올라타다 2. 시우 같은 사람들을 만나다 언제 만나도 좋은 이들 비빔국수, 모임을 아름다움으로 물들이다 우리 주변엔 수많은 원더우먼들이 산다 3. 하나의 책엔 수많은 해석이 있다 말하고 싶은 사람 여기 여기 모여라 책의 세계, 신비하고 놀라워 책을 읽고 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이유 4. 책 제목부터 곤란하다 곤란해 『곤란한 결혼』을 이야기하며 한발 떼어보기 곤란하다, 곤란해 우리를 뜨겁게 만든 바로 그 책 5. 곤란한 결혼 NO! 선물인 결혼 YES! 결혼과 ‘설국열차’ 길리엄과의 공통점 결혼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다? 결혼이 선물이 되는 조건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
아홉 번째 후기에서 인용한 영화 『터널』의 대사는 건설사 관계자의 발언이다. 그 발언을 듣고 있던 구조 책임자는 울분을 토하듯 다음의 대사를 뱉는다. ▲ 묘하게 세월호의 단상이 떠오르는 영화다. 나 외의 존재들을 짐으로 여기다 “저기요. 이정수씨는 도롱뇽이 아니라 사람인데요. 지금 저기 터널에 계신 분은 파충류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사람! 그런데 자꾸 까먹는 것 같아서. 지금 저기 사람이 갇혀 있습니다. 사람이~” ▲ 우리는 자꾸 잊어버린다. 나만 생각하느라 내 주위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들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걸. 그렇다 우린 지금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아 살아가고 있다. 결코 나 혼자만은 살 수가 없고 살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자꾸 함께 살아가는 뭇 사람들을 까먹는다. 혼자..
어린아이는 티 없이 맑고 밝다. 별 것 아닌 것에도 까르르 웃고 자그마한 일에도 눈물을 터뜨린다. 그래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서 인간을 낙타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 세 유형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며 어린아이를 칭송한 것이다. ▲ 낙타는 묵묵히 순응하는 존재, 사자는 맞서는 존재, 하지만 어린아이는 인생을 즐기는 존재다. 돈이 모든 가치를 집어삼키다 그런데 점차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어린아이가 지닌 삶에 대해 무한히 긍정하는 마음을 망각하게 하고, 세상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을 고정관념으로 덮어가게 한다. 더 이상 웃을 일도, 더 이상 울 일도 없이 표정은 사라지고, 감정은 가문 땅처럼 굳어지다 못해 쫙쫙 갈라진다. 살아 있기에 따뜻한 피는 흐르지만, 감정은 메말라 다른 존재에 대..
우치다 타츠루가 쓴 여러 책들을 읽다 보면 소통의 철학자인 ‘장자莊子’가 떠오른다. 우리는 속세를 멀리하고 자연에 은둔하여 살던 ‘피세주의 철학자’로 장자를 떠올린다. ▲ 명대 화가 육치의 호접지몽 묘사도. 장자하면 이런 식의 은둔지사가 떠오른다. 우치다는 장자다 어느 임금이 장자를 (총리로) 초빙하려 하자, 이에 장자가 말했다. 자네는 제사에 쓰이는 소를 보았겠지. 비단옷을 입고 풀과 콩을 먹지만 끌려가 태묘에 들어갈 때에 이르러 비록 외로운 송아지(희생제물)가 된다한들 (그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或聘於莊子. 莊子應其使曰子見夫犧牛乎? 衣以文繡, 食以芻菽, 及其牽而入於大廟, 雖欲爲孤犢, 其可得乎! -『莊子』「列禦寇」 11 이 구절을 읽을 때면 권력을 싫어하고 체제에 포섭되는 것을 극도로 혐..
이런 역자의 우여곡절과 출판사 내부의 치열한 논쟁을 뚫고 마침내 『곤란한 결혼』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곤란한 결혼』의 불편한 부분 이 책은 누군가가 던진 질문에 우치다쌤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책으로 옮겨놓은 구성이라 보면 된다. 그런 구성이다 보니 즉문즉설에서 느껴지는 한계가 이 책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여 ‘모든 게 다 네 탓’이라 느껴지게 한달지, ‘~해야 한다’는 투의 대답으로 어른이면 으레 할 법한 얘기를 한달지, 그가 싱글파파가 되어 딸을 양육할 수 있었던 여건과 지금 한국 사회의 싱글맘이 자식을 키우는 여건이 현격히 다름에도 자신의 이야길 보편화시켜 얘기한달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결혼..
세 번째 후기에서도 밝혔다시피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진 저자와 역자, 편집자의 생각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나오고 난 후엔 독자들의 생각이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 권의 책을 둘러싼 여러 요인들이 부딪히고 합력하며 한 권의 책에 대한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자들끼리 읽은 소감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책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모임엔 역자와 편집자가 함께 참석했으니, 책에 대한 주변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 생활 자체가 철학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충분히 공감한다. 『곤란한 결혼』의 곤란한 출간 과정 역자인 박솔바로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 지지학교를 운영하고 계신 준규쌤의 아들이다. 준규쌤과는 함께 일을 했던 적이 있어 역자와도 자..
『곤란한 결혼』이란 책이 드디어 손에 들어왔다. 저번 후기에서도 밝혔다시피 책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아 눈길을 잡아끌지만, 그것 이상으로 막상 책을 받아보면 사이즈가 작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마력까지 갖추고 있다. 책은 사륙판으로 만들어져 한 손에 쏙 하니 들어오는데다가 245쪽 밖에 되지 않아 모처럼 ‘스마트폰에 치여 흔적조차 사라진 독서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우치다쌤은 전문적인 용어를 섞어 쓰며 어렵게 글을 쓰는 타입이 아닌, 옆에서 얘기해주듯 편안하게 풀어쓰는 타입이니 읽는 부담까지 적다. 그러니 책을 받고 어찌 가만히 있을쏘냐. ▲ 한 손에 들어오는 사이즈. 그리고 두껍지 않은 볼륨. 아주 좋다. 결혼과 ‘설국열차’ 길리엄과의 공통점 결혼에 대한 관념은 청소년 시기엔 ‘백마 탄 왕..
최근에 뉴스타파에서 제작한 ‘불쌈꾼 백기완’이란 다큐를 봤다. 백기완, 그는 한국전쟁에서 학도병으로 참전을 했었고 늘 반정부세력으로 낙인찍혀 모진 고문과 오해를 당해왔다. 그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이라 할 만하다. ▲ 80세가 넘으셨지만, 어느 자리에 가도 가장 전면에 앉아 계시던 백기완 선생님. 『곤란한 결혼』을 이야기하며 한발 떼어보기 이 영상에서 버럭 눈물이 났던 부분은 마지막 「묏비나리」라는 시를 읊조리던 장면에서였다. 이 시는 훗날 광주 민주항쟁의 주제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만들어져 불리기도 했다. 맨 첫발 딱 한발 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 없는 춤꾼이라도 해도 중심이 안 잡히나니 그 한발 띠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라. 아니 그 한발 띠기에 언 땅을 들어 올리고..
비빔국수를 정말 맛있게 먹고 잠시 별나들이님과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제비꽃님과 장희숙님이 오시더라. 이로써 오늘 모이기로 한 멤버들이 다 모였고, 우리들의 얘기꽃은 본격적으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 거실에 앉아 밖을 내다 봤다. 한 여름이지만, 구름이 껴서 선선해 보이는 날씨다. 말하고 싶은 사람 여기 여기 모여라 지금까지 1박 2일 모임에서 격월간지 『민들레』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호모쿵푸스』와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와 같은 단행본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면 누군가는 ‘전 공부라면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해서 아는 게 없어요. 그래서 별로 할 얘기가 없거든요’라고 생각하여 참여하는 걸 꺼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건 다른 누군가의 ..
올해 8월은 예년 8월과는 사뭇 달랐다. 비가 제법 내려 더위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쾌적했기 때문이다. 장마가 끝나 불볕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에 더위를 식혀줄 비가 내린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더욱이 지독한 가뭄으로 식수난까지 겪고 있던 때였으니, 축복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비를 중국 고전에선 ‘시우時雨’라 표현하고 그걸 우리말론 ‘단비’라 해석한다. 가물대로 가물어 땅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쫙쫙 갈라져 있을 때 내리는 비, 산불이 심하게 번져 미처 손 쓸 수 없을 때 내리는 비, 태양이 작열하여 사대강에 녹조가 창궐할 때 내리는 비가 바로 ‘시우’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화둥님 집엔 ‘春陽時雨(봄볕같이, 단비같이)’라는 글귀가 벽에 걸려 있다. 2년 전에 그 글귀를 보고 출처까지..
가슴 뛰게 하는 순간들이 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때의 긴장과 설렘이, 날 가로막던 금기의 벽을 넘어설 때의 걱정과 불안이, 생판 모르던 사람들과 만날 때의 두근거림과 어색함이 가슴을 뛰게 한다. 그럴 땐 마치 ‘쇼생크 탈출’의 앤디가 비를 흠뻑 맞아가며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희를 온 몸으로 표현하듯 온갖 감정들을 맘껏 표현하고 싶어지며, ‘김씨표류기’의 김씨가 직접 밀을 재배하여 짜장을 만든 후 한 입 베어 물며 환희를 맛보듯 작은 행복이라도 흠뻑 맛들이고 싶어진다. ▲ 그 어떤 장면보다 뭉클한 두 장면. 가슴 뛴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시간이 흐를수록 마비되어 가다 그 얘기는 곧 너무도 익숙하여 어떤 고민도 안겨주지 않는 사람들만 만나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척척 진행되는 일만 반복할 때, 더..
목차 1. 선과 선은 마주쳐야 한다 어긋남은 축복이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만 일어설 수 있다 2. 미니멀하지 않은 거대한 마음을 선물 받다 엇나감이 만든 고마운 인연 5월은 행복이었네 3. 건빵이란 선과 앵두란 선의 마주침 남과 북이란 선이 마주치다 굳어버린 신념이 아닌, 탱탱볼 같은 열린 귀가 필요하다 궁금하던 앵두님을 알게 되다 4. 앵두 그늘 아래에선 민들레 피고 앵두나무 밑엔 민들레가 피어오른다 이야기란 만병통치약? 소통이란 설렘? 인용 만남
종로 한복판에서 정말 오랜만에 만났을 땐 약간 다른 것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크루즈 선원이나 다른 게 아닌, 한국어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앵두나무 밑엔 민들레가 피어오른다 그래서 대학원에 가는 것과 코이카에 지원하여 해외자원봉사를 2년 정도 하는 것, 여러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하더라. 대학원 3년에, 코이카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면 5년이란 시간이 후딱 흐르게 된다. 함부로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사람이야말로 자기 좋아하는 것을 따라 잘도 다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 순간 왠지 모를 한파 때문인지, 인생의 서글픔 때문인지, 막막함 때문인지 비애감에 젖어 있던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하는 약간은 신선..
지금 한반도엔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다음 주면 북미정상회담을 할 것이고, 그 다음 날엔 지방선거도 할 것이다. 어쩌면 국내외적으로 많은 변화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역동적이며 모든 희망을 한 아름 품고 있는 가능성의 시기이기도 하다. 남과 북이란 선이 마주치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런 분위기가 되기까지 무수한 과정들을 지나왔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12월까지만 해도 이런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남북의 대결모드는 계속 진행 중이었고, 머지않아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름하야 일촉즉발의 상황, 북한은 핵실험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였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로켓맨’이란 비하발언과 함께 격앙된 반응을 여지없이 보이고 있었..
발표준비를 위해 자료를 찾다 보니 원문파일이 없는 게 무척이나 아쉽더라. 공부 자료를 만들려면 어떻게든 여러 자료들을 참고하고 종횡무진 누비며 이해해야만 좀 더 원 자료가 쉽게 이해가 됐으니 말이다. 엇나감이 만든 고마운 인연 그런데 이때 생각난 사람이 바로 고전번역원에 있는 후배였다. 나야 2010년 이후로 한문은 놨지만, 그 녀석은 그 후로도 더욱 발분하여 여러 번역작업에도 참여했고 꾸준히 공부를 해왔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 기간 동안 이미 나와는 넘사벽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아주 간절하면서도, 아주 간곡한 목소리로 SOS를 외쳤던 것이다. 이럴 때 연락할 수 있는, 편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나 왜 이리 인복이 좋은 거냐^^). 바로 이 녀석과의 인..
리쌍의 오래된 노래 중에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가 나왔을 때 처절한 내용임에 비해 흥겨워 엄청 자주 들었고, 오죽했으면 2010년에 마지막 임용을 준비하면서 만든 자료집의 이름에 이 노래 제목으로 쓸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노래에 푹 빠져 있던 때에 난 ‘사람은 선線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선은 어떤 것도 아니다. 그저 점과 점을 연결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어떤 지향점도, 어떤 사건도, 어떤 변화도 있지 않다. 하지만 선과 선이 마주치면 접점이 생기고, 거기에 또 다른 선까지 마주치면 삼각형이 되어 완전히 형질이 변화하게 된다. 그걸 도약이라 할 수 있고, 나라는 인간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계기로 들어서는 가능성이라 할 수 ..
목차 1. 여는 글: 당신이 지금껏 본 옛이야기는 엉터리다 같은 뿌리, 다른 이야기 원전을 알아야 옛이야기가 보인다 2. 전공과 생활 사이, 이상과 현실 사이 수많은 뿌리는 하나의 줄기로 자란다 예술인은 경계인이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사람에 의한, 평범한 사람을 위한 민담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 결핍을 채워주고 보편의 가치를 담은 옛이야기의 힘 결핍을 채워주는 예술의 가치 예술이 지닌 가치를 보여준 명작, 『수호의 하얀말』 넓이는 깊이를 포괄한다 세계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옛이야기 4. 같은 내용의 옛 이야기가 여러 나라에 있는 이유 유럽에도 있는 ‘쥐의 혼인’ 설화 세계에 두루 퍼져 있는 동일한 이야기의 비밀 5.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로 본 흐름의 중요성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건호와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을 공부하려 할 때만 해도, 이렇게 일이 커질 거라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여는 글에서도 밝혔다시피 ‘동화책’이란 관점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공부하며 그러한 관점이 ‘옛이야기’란 관점으로 바뀌어, 그 가치를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이야기를 전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지도 알게 되었다. 이래저래 모르지만 걸어갔던 길이 나에겐 엄청난 의미로 다가온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안 해도 될 이유는 지천에 널렸다 공길: “양반으로 나면 좋으련?” / 장생: “아니, 싫다!” / 공길: “그럼 왕으로 나면 좋으련?” / 장생: “그것도 싫다! 난 광대로 다시 태어날란다.” / 공길: “이 놈아. 광대짓에 목숨을 팔고도 또 광대냐.” / 장생: “그러는 니년은..
‘놀부가 박을 여니, 도깨비들이 나와 놀부를 벌준다.’ 『흥부놀부』에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을 보고 이상한 부분이 있다는 걸 눈치 챘는가? 아마 한 명도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나오는 책에도 이런 내용은 들어있기 때문이다. 『흥부놀부』를 통해본 도깨비의 원래 모습 이런 내용을 읽는 사람들은 도깨비는 ‘징벌자(벌주는 존재)’라고만 생각하게 되고 우리의 의식 속에 있는 도깨비라는 이미지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도깨비는 잘한 사람에겐 상을 주고 못한 사람에겐 벌을 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도깨비를 징벌자로만 받아들이게 된 데에는 일본의 귀신인 ‘오니おに’의 영향이 컸다. 그건 곧 일제시대 당시 일본이 우리의 민족정기를 ..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해석하면서 이야기한 것처럼 옛이야기의 흐름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아무리 현대적인 의미로 보아 좋은 장면이 있다고 할지라도 함부로 삽입할 수 없으며 반대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건 이상적인 눈, 코, 입, 얼굴 골격을 합친다 해서 최고의 미남, 미녀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사람의 인상이란 조화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부분적인 요소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은 이야기의 유기적인 속성을 먼저 파악한 후에 흐름을 깨지 않는 선상에서 고쳐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옛이야기를 보는 사람들도 그 유기적인 흐름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옛이야기의 깊은 맛이 살아난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두 가지 흐름 『..
단재학교에서 카자흐스탄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준규쌤은 “‘쥐의 혼인 설화’는 카자흐스탄에도 똑같이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비슷한 민담이 있다는 것은 어떤 공통의 정서가 있음을 뜻하는 것이고, 그건 좀 더 비약을 하면 민족의 뿌리가 같다는 말까지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환희 선생님에게 ‘쥐의 혼인’이란 민담이 카자흐스탄에도 있는 걸 알고 계시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카자흐스탄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유럽 쪽에도 그와 유사한 민담이 있다고 대답해주시더라. 유럽에도 있는 ‘쥐의 혼인’ 설화 ‘쥐의 혼인 설화’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테니, 그 이야기를 잠시 읽어보도록 하자. 두더지가 새끼를 위해 좋은 혼처를 구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오직 하늘이라 가장 높다고 여겨서 하늘에 청혼을 하였다. ..
욕망이나 욕심을 버리면서까지 예술에 빠져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게 궁금했는데 선생님은 “예술은 우리 삶에서 결핍된 부분을 채워준다.”라는 말로 그런 물음에 대답해주셨다. 결핍을 채워주는 예술의 가치 결핍, 그건 어느 순간이고 내면의 깊은 곳에서 고개를 내밀려 하는 원초적인 두려움이다. 내면 깊은 곳에 감춰져 있을 때는 모든 사람이 크게 문제될 것 없이 살지만, 조금이라도 머리를 내밀라치면 누구든 괴로워하며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결핍은 박노해 시인이 말했듯 ‘건너뛴 삶’의 한 단면이어서 ‘건너뛴 시간만큼 장성하여 돌아와 어느 날 내 앞에 무서운 얼굴로 서서 성공한 자에겐 성공의 복수로, 패배한 자에겐 붉은 빛 회한을 남겨주는 것’일 수도 있고, 심리학자들이 말하듯 ‘유아기의 트라우마’일 수..
춘천교대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가볍고도 무거웠다. 이런 식으로 저자를 찾아간다는 것이 김환희 선생님에게든 우리에게든 신나면서도 그 반면에 어색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춘천교대 홍익관 305호의 문을 노크하자마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김환희 선생님의 첫 인상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옆집 아주머니 같은 편안한 인상이었다. ▲ 김환희 선생님을 만나러, 춘천교대에 왔다. 수많은 뿌리는 하나의 줄기로 자란다 선생님은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을 자주 그리곤 했지만 그 그림이 그렇게 맘에 들진 않았단다. 그런 사정 때문에 미술은 관두고 문학 작품을 정신없이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교에 가서는 불어를 전공하였고 대학원에선 ‘비교문학’으로 전공을 ..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을 공부 교재로 선정할 때만 해도, 이 책을 통한 작은 만남이 큰 인연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때만 해도 옛 이야기책은 ‘아이들만 읽는 책’이라는 편견이 있었고, 문자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게 그림과 글을 유기적으로 배치하여 읽기 편하도록 만든 ‘유아용 교재’라는 일반적인 생각만 있었다. 그랬기에 건호와 함께 이 책을 공부하기로 하면서 정한 목표는 ‘문자에 익숙해지고 그림을 통해 책이란 사물에 친숙해진다’였을 정도로, 옛 이야기책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런 목표와는 상관없이 충격적인 것이었다. “지금까지 당신이 본 동화책은 동화책이 아니무니다.”라는 갸루상의 말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동화책을 보고서 동화책을 봤다고 말..
목차 1. 민들레 읽기 모임엔 따뜻함이 있다 말을 잘 못해도, 아는 게 없어도 그대 그대로 오시오 민들레 읽기모임에 오면 제삼자가 말하는 순간을 느낄 수 있다 따스한 사람들이 나눈 수다 속으로 2. 노인들은 어린이들을 품어주고 안아주는 존재이지 않나요? 민들레 모임에서 대화만큼 중요한 건, 바로 먹는 것 나를 정말로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가? 방과 후 학교가 혐오시설이 되다 교육은 모두를 위한 것, 하지만 현실의 교육은 일부를 위한 것 3. 아이여서 서글퍼요 아이여서 행복하니? 아이여서 불행하지 어른 아이가 되라고 해서 미안하다 니가 서글프면 나도 서글프단다 4. 아이들을 병자로 만드는 세상에서 외치다 우리는 ‘아이를 약자로 만드는 세상’을 모르는 새에 지탱하고 있다 사람이 어떤 식으로 성장할지..
‘별이 되어 빛나는 널 기억해’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 작품을 보다가 눈을 돌리니 ‘春陽時雨(봄볕과 단비)’라는 초서체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쇠귀’ 선생님께서 낙관을 써주셨단다. 쇠귀 선생님의 글은 유명하여 충분히 자랑할 만하기에 어화둥님은 ‘족보’로 남길 생각이라고 하신다(민들레 여름 모임은 15년 8월 21일~22일에 있었는데, 신영복쌤은 16년 1월 15일에 돌아가셨다). ▲ 모임할 땐 살아계셨지만, 짧은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지금은 계시지 않다. 봄볕 같은, 단비 같은 사람이 되길 꿈꾸다 ‘춘양시우’라는 글을 봤을 때, ‘춘양’에선 『논어』의 구절 중 ‘늦은 봄을 만끽하는 유유자적함(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선진」25)’이 떠올랐고 ‘시우’에..
자본주의 사회에선 태어나자마자 어쩔 수 없이 ‘소비주체’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할 수밖에 없다. 어딜 가든 돈만 있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대우를 받으며, 돈을 지불함과 동시에 물건을 받는 ‘무시간 모델’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교육과 멀어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태어난 사회가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 소비주체로 산다는 건, 언제든 교체가능한 대상으로 산다는 말이기도 하다. 교육은 소비주체를 노동주체로 만드는 것이다 교육은 이미 ‘소비주체’로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하여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즉각적인 필요에 의해서만 공부를 하고(그렇지 않은 것엔 “저걸 왜 공부해야 해요?”라고 묻는다), 당장 이익이 될 사람만 사귀려는 아이들을 ..
장자는 흔히 노자와 묶어져 ‘노장사상老莊思想’이라 불리며 자연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 노자는 국가를 중시하여 국가의 운용방침이나 군주의 처세를 이야기한 반면, 장자는 공동체에 포섭되지 않은 개인을 중시하여 개인과 개인 간의 소통을 이야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라는 책을 읽다 보면, 소통의 원리와 함께 타자성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게 된다. 저번 후기에서 살펴본 장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린 타자성을 지켜주는 게 얼마나 힘들고도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됐다. 자식은 부모와 가장 친밀한 관계고, 많은 것을 공유하다보니 전혀 타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식이 자라면 자랄수록 서로의 생각이 달라져 의견 대립이 일어나고 갈등이 빚어져, 그제야 비로소 타자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그..
사람은 신기하게도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그게 혹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아니, 단순히 생각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세상이 원래 그러니, 이걸 문제라 할 수는 없어’라고 합리화까지 하게 된다. ▲ 교육을 할 때 고민해봐야 하는 건 나의 교육이 폭력이진 않나 하는 점이다. 일상에서 ㄹ을 뺄 수 있는 용기와 생각할 수 있는 저력 사회의 온갖 부조리한 일들엔 이와 같은 사고패턴이 작용하고 있다. ‘부조리하다→그런데도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사회 자체가 원래 그렇다→그러니 누군가 ‘부조리하다’고 말할 경우라도 그걸 말한 사람만 이상한 사람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패턴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나 아렌트는 ‘생각없음’이란 말로, 강풀은 『26년』에서 전두환을 경호하는 마상열이란 실장의..
난독증이었던 사람이 글자로 작품을 만들고 책의 표지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는 어화둥님의 이야기는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교육이란 이름으로 섣불리 상황을 규정짓고 개인을 한계지어 즉각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기 전에 얼마만큼 지켜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 우리의 이야기는 한참이나 깊이 있게 진행되고 있다. 해답이 아닌 문제에 머물 수 있는 용기 이걸 동섭쌤은 ‘지적 폐활량’이라 표현한 적이 있다. ‘폐활량’은 흔히 산에 오르거나, 수영을 하거나 할 때 필요한 것이다. 그때 얼마나 숨을 참아야 하는 상황을 버텨낼 수 있느냐, 그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느냐를 통해 바로 폐활량이 얼마나 되느냐를 판가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쓰는 폐활량이 아닌, 지적 폐..
놀이터가 안전을 중시하며 만들어지고, 키즈카페에서 노는 아이들이 늘어나며, 방과 후 돌봄교실이 8시까지 확대되는 세상은 ‘아이를 위한 세상’이 아니라, ‘아이를 약자로 만드는 세상’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이를 위한 교육업체는 늘어만 가고, ‘아이의 건강은 태아 때 결정된다’느니, ‘평생 영어실력 초등학교 때 결정된다’느니 말들이 많지만, 그런 세상에 내 아이를 맡기기엔 ‘어쩔 수 없다’는 마음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김규항씨는 『B급 좌파』란 책에서 ‘보수적인 부모는 당당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으로 내몰고 진보적인 부모는 불편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몰아넣는다. 보수적인 부모는 아이가 일류대 학생이 되길 소망하고, 진보적인 부모는 아이가 진보적인 일류대 학생이 되길 소망한..
아이들을 위해 방과 후 학교를 열려다, 주민들이 ‘방과후학교 입주결사반대’라는 현수막을 걸고 막아서는 바람에 설립이 지연됐다는 얘기는 엄청 충격적인 얘기였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극도로 부족한 현실이기에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돈을 모아 공간을 마련하려 한 것임에도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출산율이 저조하다, 고령화 사회로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다 등등의 암울한 이야기만 판을 치는데, 여기에 어른들이 아이들을 기피하는 세상일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 많이 낳아라’라고 백날 말한 들, 과연 누가 낳고 싶을까. 그렇기에 지금은 ‘아이여서 행복해요’라는 말보다 ‘아이여서 서글퍼요’라는 말이 더 맞다고 할 수 있다. ▲ 행복지수가..
민들레 1박2일 모임은 편안한 대화의 장이며, 먹을거리가 풍성한 파티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모임이 시작되기 전엔 함께 저녁을 먹으며 사람들을 기다리고, 웬만큼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싶으면 드디어 모임이 시작된다. 애초에 정형화된 틀이 없다 보니 상황에 맞춰 함께 모이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말을 하면 시작되는 것이다. ▲ 겨울모임 때도 밥을 먹고 시작했고, 여름모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진은 겨울모임 때 사진. 민들레 모임에서 대화만큼 중요한 건, 바로 먹는 것 바로 이때 우리는 가운데를 비우고 삥 둘러앉는다. 바로 이 가운데 자리가 모임의 하이라이트이자, 중요한 것들이 놓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엔 집안 곳곳에 숨어 있던 주전부리들이 놓이기 시작하고 맥주까지 놓이면, 모든 세팅이 완료된다. 어찌..
겨울에 했던 1박2일 모임은 무려 3년 만에 찾아간 것임에도, 늘 연락하며 지내오던 사람들이 모인 것처럼 포근했고, 정겨웠다. 밤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한바탕 이어진 수다 삼매경은 흘러가는 시간을 아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흘러가는 시간이 이토록 아깝게 느껴진 건,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아마도 겨울 모임에 이어 자연스럽게 여름 모임까지 참여하게 된 데엔 겨울모임의 여운이 길게 남아서 였으리라. 말과 말이 섞이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며 시간을 메워간다. 그렇지만 여기엔 ‘말을 조리 있게 해야 한다’거나,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부담 같은 것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저 어떤 말들이 흘러 다니며 그게 어떤 감상을 자아내는지, 그리고 그 말엔 어떤 정감이 담겨 있는지 느끼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마음을 편..
목차 1.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져 다시 만나도 반가운 사람들 『민들레』를 만나, 인연이 되다 이론이 아닌, 현실로 현실을 보라 변화의 순간에 다시 민들레를 만나다 ‘아이들은 가라’에서 ‘아이들은 오라’로 2. 안 하던 짓을 하라 변화를 꿈꾸되 현실이란 벽에 절망하다 변하고 싶거든 틀부터 바꾸라 안 하던 짓을 해야 하는 이유 3. 청소년을 중2병에 가두다 안 하던 짓을 해야 삶의 지도가 바뀐다 어린이 여러분, 죽음은 나쁜 것이니 멀리하세요? 지혜가 살아 있는 옛 이야기를 맘껏 읽자 ‘중2병’이란 단어가 그리는 청소년의 자화상 단어는 이해를 돕지만, 대상을 가두기도 한다 4. 민들레 읽기모임은 호빵이다 한계 짓는 게 무에 문제요 ‘선을 긋는 자’라고 자신을 인정하기 호빵과 민들레 읽기 모임 삶이 지랄 맞을 ..
단어는 세상을 이해하게 하는 하나의 안경이다. 하지만 그 안경은 색안경이어서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닌 왜곡된 세상을 보게 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빨간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은 온통 빨갛게 덧칠되어 보인다. 하지만 그 안경을 낀 사람에겐 그렇게만 보이니, 어느 순간엔 ‘세상은 원래 빨갛다’라고 인식하게 되고 그때 “세상은 노래”, “세상은 검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며 노발대발하게 된다. ▲ 단어로 세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과 같다. 한계 짓는 게 무에 문제요 이것이야말로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단어의 힘에 짓눌려 ‘빨간 세상’만을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롤랑 바르트는 무지를 “지식이 꽉 차서 더 이상 들어갈 것..
제비꽃님이 김영민 선생의 말을 인용하며 던진 ‘틀이 바뀌면 꼴이 바뀐다’는 말이 시작점이 되어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고, 별나들이님이 그 얘길 받아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는 말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변화를 위한 행동을 촉구했다. ▲ 트루먼은 안 하던 짓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 하던 짓을 해야 삶의 지도가 바뀐다 그렇지 않아도 반복되는 일상과 어느덧 익숙해진 학교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었기에, 번개를 기다리다 마침내 내리친 번개를 흡수한 피뢰침처럼 그 말은 나에게 번개와도 같이 깊이 흡수되었다. ▲ 장례식장이 들어서려 하니, 반대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렸다. 장례식장은 혐오시설이라 인식하기 때문이다. 별나들이님은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에서..
3년 만에 불쑥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아무렇지 않게 찾아왔지만 어화둥님과 별나들이님, 풍경님은 늘 보아오던 사람처럼 반갑게 맞이해주더라. 그러고 보면 ‘민들레 읽기 모임’이란 한창 때엔 수요일마다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모임에서, 지금은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이 오랜 친구를 만나 자연스럽게 썰을 풀 듯 편안하게 모이는 모임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이날도 나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얼굴을 내비치는 앵두님이나 석혜영님 같은 분들이 있다 보니,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묻고 들으며 이야기는 시작됐다. 그래서 저녁 8시에 시작된 이야기는 새벽 4시가 넘도록 끊임없이 이어졌던 것이고,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한지 “피곤해서 잠이 오긴 하는데 그래도 잠은 자기 싫으네요”라는 말이 여기저기 나오기도 했던 것이다. ▲ 우리의..
열 명의 인원이 어화둥님 집에 모였다. 친숙한 어화둥님, 별나들이님, 제비꽃님, 세 가지 손님, 안녕님과 처음 뵙는 풍경님, 앵두님, 석혜영님, 온자님까지 둘러앉았다. 거기에 집주인인 영민이(어화둥님 둘째 아들)를 포함해 아이들까지 함께 모이니, 이건 70년대에 텔레비전이 마을에 한 대만 있던 시절에 남녀노소할 것 없이 함께 모여 ‘전설의 고향’을 보는 것만 같은 화기애애한 느낌이 들더라. ▲ 예전엔 티비가 많지 않으니, 마을 사람들이 함께 둘러 앉아 티비를 보던 때도 있었나 보다.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민들레』를 만나, 인연이 되다 ‘민들레 읽기’ 모임에 참여하게 된 건 순전히 단재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어서다. 단재학교에선 격월마다 발행하는 『민들레』 잡지를 구독하며, 제도권 학교에 매몰된 교육..
문제: 안젤리나 졸리, 헬로키티, 쵸코파이의 공통점은? 여백이 있는 공간 문제부터 들이미는 뻔뻔한 후기를 보면서 깜짝 놀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심심풀이땅콩 같은 것이니 놀라지 마시라. 답이 무엇인지 짐작은 되시나. 답은 ‘1974년생’이다. 이런 문제는 답을 알고 나면 허무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문제 또한 그렇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어떨까? 문제: 콩나물, 날으는 그네, 크랙, 삐삐, 어화둥, 제비꽃, 건빵, 민혁, 민유의 공통점은? 이 문제를 처음 본 사람은 이게 무슨 ‘잡동사니’들을 모아놓은 건가, 의아할 것이다. 답도 ,아리송하겠지. 이것이야말로 ‘대략난감’이다. 하지만 그 대략난감 속에 정답이 있다. 이들은 『81호』 읽기 모임에 나온 사람들의 닉네임이니 말이다. 이날은 과천모..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다. “어떤 날씨를 좋아 하세요?” 뭐 ‘도를 아십니까?’ 이런 류의 황당한 질문만 아니면 환영하는 편이지만 날씨를 물어보는 것도 ‘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날씨든 다 좋아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이야기 흐름이 깨지기 때문이다. 의도가 있는 질문엔, 의도에 맞는 대답을 해줄 필요가 있다. ▲ 처음으로 민들레 모임에 왔다. 어떨지 기대 반 걱정 반. 빨간 장미가 떠오르던 날에 그런데 『민들레』 58호 읽기 모임 후기를 쓴다면서, 뜬금없이 ‘날씨이야기’를 하고 있냐고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모임에 와본 사람은 ‘날씨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오늘이 바로 ‘비 오는 수요일’이었기 때문이다. 바람이 심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