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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1. 수단으로서의 글 읽기와 본질로서의 글 읽기 글이란 한 사람이 지닌 문사철(文史哲)이 얽히고설켜 하나의 정제된 양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읽으면 지은이가 살았던 사회상을 엿볼 수 있고, 그에게 영향을 준 사상을 맛볼 수 있으며, 현실을 살아내며 구성된 그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글을 읽는다는 게 단순히 글자를 읽어나가는 행위가 아닌 지은이의 생각과 철학을 받아들이는 행위이기에, 조선시대 학자들은 자세를 바로 잡고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워 몸과 마음을 가다듬은 후에야 글을 읽었던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글 읽기’ 하지만 인쇄문화가 발달하여 무수히 많은 책이 쏟아지게 되면서 글을 대하는 진중한 자세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글이나..
격포 내소사에서내소사(來蘓寺) 이윤영(李胤永) 名區隨處我行催 不害人間老草萊翠嶽將頹龍瀑瀉 春雲欲變蜃樓開壯觀滄海眸雙拭 悵望靑齊首獨擡十載塵愁輕似羽 可憐前夜月明㙜 『丹陵遺稿』 卷之六 해석名區隨處我行催명구수처아행최명승지 가는 곳마다 나의 발길을 재촉하고不害人間老草萊불해인간로초래인간세상의 재야에서 늙음을 나무라지 않네.翠嶽將頹龍瀑瀉취악장퇴룡폭사비취색 언덕이 약간 무너져 내려 용처럼 폭포가 쏟아지고春雲欲變蜃樓開춘운욕변신루개봄 구름이 변하여 신기루가 열리려 하는 듯.壯觀滄海眸雙拭춘운욕변신루개씩씩하게 푸른 바다를 보려 두 눈을 부벼보고悵望靑齊首獨擡창망청제수독대서글프게 청제(山東)【청제(靑齊): 청(靑)은 중국 고대의 구획을 말한 구주(九州)의 하나로서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요동 등의 각지를 말하고 齊는 전국 시대의 국..

19년 만에 수양록을 정리하다 군생활을 2001년 2월 27일(火)에 입대해서 26개월을 꼬박 채운 후 2003년 4월 26일(土)에 마쳤다. 그후로 무려 19년이 흘러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어느새 40대 초반이 되었다.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의 시기별 특징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잊어도 되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가도 됨에도 왜 과거로 회귀하려 하는 것이며, 뜬금없이 지옥이라는 이미지로 남아 있는 군시절을 정리하려 한 것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갑작스레 하는 정리가 아니라고 말이다. 26개월의 발자취가 빼곡하게 담겨 있기에 언제든 꼭 한 번은 정리를 하고 싶었다. 맘은 원이로되 실천하긴 쉽지 않았다. 수양록을 적을 당시엔 한정된 페이지..

군대 수양록(修養錄) 목차2001년 2월 27일(火) ~ 2003년 4월 26일(土) 26개월의 군생활 소속: 6XX 2R 1BN 3CO 2P 1S군번: 01-73010754 신병교육01.02.27~04.13(7주) 03.04~10 신교대 둘째 주06(화) 나는 누구인가08(목) 군생활의 비감(悲感)09(금) 행복(幸福)이란 것03.11~17 신교대 셋째 주11(일) 종교와 초코파이13(화) 작은 감사15(목) 건강의 소중함16(금) 어이없는 벌에 대해03.18~24 신교대 넷째 주19(월) 억눌린 영혼들의 주먹다짐20(화) 사격과 놀이기구의 유사점23(금) 유격과 참호전투 / 봄 경치(화창한 날에) / 미래의 자화상과 전우들03.25~31 신교대 다섯째 주25(일) 사람의 한계(특공대를 보고서)26..

격동의 2002년 정리 03년 1월 1일(수) 매우 맑음 2003년을 분대장으로 시작한다. 입대할 때만 해도 2003년이 올까 하는 그런 답답한 마음도 있었고 고참들한테 “내후년 제댑니다”라고 말할 때의 그 무너지는 암울함을 느꼈었는데, 어느덧 ‘올해!’라고 벅찬 감격으로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오고야 말았다. 행복한가? 정말 행복하다! 군에서 제대로 보낸 02년이 이렇게 갔다. 솔직히 아쉬움 없는 한 해였지만 시간이 이렇게 흘렸다는 게 무척이나 아쉽기까지 하다. 2002년은 정말이지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1월엔 있었던 사진기와 수하문제 인해 소대의 미운 오리 새끼로 찍혀 최악의 군 생활을 경험하며 지냈다. 2월엔 철수 준비로 인해 소대 분위기가 너무나 어수선 했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3월엔 철수..

‘내 탓이오’와 ‘참기’의 문제점 02년 11월 10일(일) 매우 흐림 11월 1일, CO ATT를 뛰면서 참고 참았던 일이 드디어 터지고야 말았다. 바로 꼬바에게 개긴 일이다. 그건 예전 이등병 시기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감정이 그때 드디어 터진 것이다.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별로 좋은 감정이 아닌데, 어쨌든 그 일 때문에 느낀 게 있어 여기에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어떤 일이든 내 탓으로 돌린다. 그건 비단 나 혼자만의 일에서 뿐 아니다. 단체의 일에서도 그러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 탓이라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되게 괜찮은 방법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적절히만 할 수 있다면, 아주 괜찮은 일일 테지만 그걸 벗어났기에 심각한 문제라 하는 거다. 예를 들어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그 운동 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의 시비 02년 10월 14일(월) 전형적인 가을날씨인데 좀 추움 오늘부터 동계 작전 준비에 들어간다. 그래서 지뢰인 막걸리통, 철항공 그런 것들을 만들어야 한다. 일과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시작했는데 나는 운 좋게도 사리비 작업을 가게 되었다. 오후에도 열심히 싸라비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부소대장님이 3분인 홍원기와 HQ분인 김영주가 직업을 하는 황목 작업에 나를 넣은 것이다. 솔직님 걔네들하고 같이 작업하는 게 부담되었고 오전에 했던 싸리비 직업이 오히려 좋았던 터였기에 싫기만 했다. 하지만 부papa가 능력을 인정해 준 것이기에 하려던 찰나 3분이 “개종환. 너 되게 빠꼼하잖아. 그리고 작업도 못하고, 그니깐 싸리비 작업해”하고 나의 입장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첫날 유격 체험기 02년 9월 16일(월) 원래 15일(日) 점심에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바뀌어서 16일(月) 7시에 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다. 예정대로 갔다면 분반 복귀 후 조금의 휴식도 없이 바로 가는 강행군을 했을 터이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렇게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출발 준비를 했다. 출발 전 심정은 좀 착잡하기 했지만 그래도 3박 4일이라는 짧은 시간만 유격을 뛴다는 것과 복귀 행군이 없기에 좀 가벼운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군 생활 가운데 유적을 한 번 정도는 뛰어봐야지.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차라리 즐기리라!’라고 맘을 먹고 정신없이 유격 채비를 갖춘 다음에 바로 출발하게 되었다. 바로 독서당리를 거쳐서 유격장으로 향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뻘짓을 좋아하..

분대장교육대 일주일 생활기 02년 8월 24일(토)~30(금) 무지 더움 어제 드디어 분반에 왔다. 분대장들의 그 강압적인 억압과 중대 생활 (태권도 단증이 목표가 되어 모든 통제가 이루어짐)의 빡셈 때문에, 그리고 모처럼만에 훈련병들의 생활을 엿보면서 훈련병시절을 추억하고도 싶어 그렇게 오고 싶어 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오자마자 얼차려 부여로 시작되었다. 군장을 메고서 선착순을 시키질 않나, 오리걸음을 시키질 않나. 특히 오리걸음을 할 때는 어찌나 힘든지 쓰러져 죽는 줄 알았다. 내 군 생활 얼차려 중 최악의 일차려였다. 그렇게 한번 호되게 당하고 났더니 대답 소리도 커졌고 행동도 즉각적이 되었다. 역시 우린 어쩔 수 없는 군인인가 보다. 여기 와서 신교대 아이들을 보았더니, 솔직히 불쌍한 맘..

두 가지 하극상 02년 7월 4일(목) 몹시 더움 이번 달의 가장 큰 화두는 대대 ATT이다. 페바에 와서 처음 하게 되는 훈련이고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1년 5개월이란 군 생활 가운데 처음 받아보는 훈련이다. 그래서 걱정이 태산이지만 지금껏 해왔던 소규모 훈련들로 내실을 다져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잘하리라 은근히 기대해본다. 그래서 오늘은 예비 훈련 겸 전투모형훈련을 시작했다. 준비태세, 거점 이동, 전투 휴식 및 지형 정찰, 공격 후 복귀, 이게 바로 내일 00시까지 있을 훈련의 일과표지만 조금 어긋나기 시작했다. 화학전 하 준비태세는 08시에 예정대로 했으나 바로 거점으로 이동하지 않고 ‘재해 예방 공사’ 때문에 주둔지에서 배수로를 파야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소대 전원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진지 공사와 진심 없는 말 02년 4월 6일(토) 폭우 이번 주부터 다음 주까진 진지 공사 기간이다. 폐바 첫 진지 공사이기에 대단히 걱정했던 게 사실이다. 여기 FEBA는 GOP와는 달리 빡세다는 진지 공사였기에 걱정이 절로 들더라. 지금에서야 느끼는 거지만 GOP 진지 공사는 진지 개척이 아니라 진지 청소 정도의 작업이니 그만큼 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FEBA의 진지공사는 진지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고 밤까지 진행되기에 그만큼 힘들 수밖에 없다. 역시 우리들의 예상대로 빡센 일주일이었다. 5시에 일어나 8시정도부터 작업에 들어가서 저녁 6시에 접어 들어서야 끝나는 일정이다. 내리쬐는 뜨뜻한 햇살을 등지고서, 또는 앞대고서 그 무수한 땀방울들을 흘려가며 대지의 끊임 없는 생명력에 맞서 새로운 방벽을..

5분대기조 02년 3월 24일(일) 맑고도 바람 붐 3월도 이제 끝을 항해 치닫고 있어. 이제 얼마 안 있으면 4월이라는 전혀 다른 시간으로 접어든다. 분명 그다지 시기 상으로 다를 게 없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 좀 다른 시간에 치닫게 된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하고 내 꿈을 새롭게 모으기에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언제나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되어지는데, 그렇게 시간마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그 시간에 나의 희망과 꿈을 투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반가울 뿐이다. 시간이란 걸 만들어 놓고 그 절기 절기로 나누어 놓은 최초의 아무개에게 경의를 표할 뿐이다. 지금은 5대기(5분대기조) 기간이다. 그래서 오늘은 주일인데도 교회에 가지도 못하고 계속 내무실에 대..

페바의 첫 일주일 적응기 02년 3월 11일(월)~17일(일) 타임라인 오전오후03.11(월)시범식 교육(위병소, 탄약고, 근무요령, 5대기 요령, 매복요령)중대 뒷산으로 부엽토(腐葉土) 모으러 감. 03.12(화)299고지, 거점 지형 방문(7R 1BN)Co 앞 뜰 족구장 정비(능력에 비해 의욕만 앞서서 암구호판 만들다 욕 먹음)03.13(수)국지도발FTX 진지 방문 축조(2Co 옆 도로 뒤)2P 대청소, 간부 축구로 인한 자율시간(생일 PX 파티, 늦게 상남가 편지와 빵을 줌)03.14(목)우발 직계 지역 방문(동송고지, 아이스고지 후방)도보로 2차 지연 진지 방문(19BN 후방 → 77포대 → C3 오르기 전 진지)의욕이 인정 받지 못함(식기, 임무 숙지 안 함, 암구호 카드)03.15(금)지..

두려움에 대한 두 가지 반응 02년 3월 5일(화) 구름 많음 요즘은 겨울이 아니라 봄인 것만 같다. 분명 시기상으로 틀림없이 꽃 피는 봄이 왔지만, 작년 3월의 스산하고 매서운 바람이 불고 희뿌연 눈이 흩날리던 때와 비교해보면 너무 생판 다르기에 작년의 철원이 꿈인양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 요즘 새벽의 온도라 봐야 영하 5도 밖에 안 내려갈 뿐더러 날씨가 흐려지더라도 눈 내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춥디 추운 겨울이 다 지나고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이렇게 선뜻 찾아와서 한 편으로, 기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 철원의 겨울다운 겨울을 나지 못했음이 못내 섭섭하기도 하다. 이렇게 변화된 날씨에 맞추어 우리의 생활도 변했다. GOP에서 FEBA로의 철수가 그것인데, 사실 저번 주까진 그다지 실감..

사단장님과 설날을 보낸 사연 02년 2월 12일(화) 맑음 2월 12일은 민족 대명절 설날이었다. 이 날은 보통 설에 비해 아주 특이한 날이었는데 기본적으로 군에서 보내는 첫 번째로 보내는 설이란 게 그것이며 특히 사단장님하고 동석 식사를 하며 새해를 열었다는 게 그것이다. 새해 첫날에 전망대에서 해돋이를 본다며 사단장은 1월 1일에 우리 부대에 오신다는 거다. 그래서 아침 식사를 우리 중대 대기 막사에서 하신다는 것이었는데, 그걸로 인해 우리들은 동석 식사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단장님을 맞이한다는 건 그렇게 그저 친구를 맞이하듯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사단장이 지나가는 곳에서 지적을 받아선 안 되기 때문에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청소하고 또 청소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린 며칠간 대기..

첫 폭설에 바뀐 감정 01년 12월 1일(토) 폭설 그렇게 눈이 많이 내린다던 철원에 눈이 내리지 않고 있었다. 작년엔 11월 초순에 첫 눈이 왔다던데 여긴, 아니 올해는 이상하게도 눈이 내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작업이란 의미 밖에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은근히 군에서 맞이하는 첫눈이니만치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사실 신교대에 도착하던 날에 눈이 엄청 내리긴 했다). 그렇게 나름의 조바심을 느끼게 하던 눈이 지금 밖에 엄청 내리고 있다. 그것도 화려한 신고식이라도 하려는 듯 진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내리고 있다. 싸리눈이었기에 쌓이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그렇게 작은 눈들도 계속적으로 많이 내리다 보니 어느덧 보지 못하던 사이에 쌓이기 시작했다..

연탄 갈이 01년 11월 5일(월) 어둡고 비내림 11월 1일(목)엔 비가 부슬부슬 온 터라 춥지도 않아서 근무를 서기에 정말 좋았다. 영상 8℃에서 그날의 근무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11월 2일의 근무는 무엇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11월 2일(금)은 후반야 근무였다. 전원투입 때도 왠지 어제완 다른 차디찬, 아니 매서운 추위가 느껴졌지만 말이다. 전반야 말대기였던 민호가 “영하입니다.”라는 말을 되뇌이며 있었던 건 암담한 현실을 직시해줬던 것이리라. 그 말에 이어 부소대장님은 모든 동계용품을 다 갖춰입으라고 말씀하셨다. ‘그 정도로 춥단 말이던가!’라는 생각을 하며 처음 입어보는 방상내피(깔깔이와 조끼), 방상외피(스컷파카)와 방하내피(깔깔이 바지), 방하외피(건빵바지..

일체유심조 01년 9월 16일(일) 매우 더움 오늘 교회에 가서 잠언 4장 20~23절 말씀으로 설교를 들었다. 내 아들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주의 깊게 들어라. 그것을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네 마음에 깊이 간직하라. 내 말은 깨닫는 자에게 생명이 되고 온 몸에 건강이 된다. 그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여기서부터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 현대인의 성경 이 구절의 핵심은 ‘모든 관념적 생각은 다 마음에서 나온다’라는 거였다. 원효대사의 명언, 그건 당연하다는 생각에 기반한 이야기다. 해골 바가지에 담겨진 물(썩은 육수)과 바가지에 담겨진 물(이슬), 둘 사이엔 엄청난 괴리가 숨어 있다. 썩은 육수는 감히 먹으려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이슬은 감히 안 먹으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

빗방울에 담긴 추억담 01년 8월 4일(토) 매우 더움 저번 주 토요일부터 그렇게 무덥게 내리쬐던 하늘에서, 빗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지금까지 주말이면 늘 내렸던 비와는 달리 어두우리만치 아련한 추억을 던져줄 전주곡일 뿐이었다. 그렇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쉽사리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긴 태풍의 영향에 의한 비였으니 쉽게 그치는 게 이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날이 아니었다. 주일 저녁, 전반야(前半夜)였다. 다행히도 비는 내렸다 말았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근무는 꽤나 수월한 편이었다. 하지만 합동 근무 시간 몇 분 전부터 감히 맞설 수 없을 정도의 비가 들입다 퍼붓기 시작했다. 그 비로 인해 우의를 입었음에도 전투복은 다 젖었고 전투화는 신은 게 더 불편할 정도로 물바다가 되어..

휴가 후에 달라진 것 01년 6월 31일(토) 어두움 백일휴가를 갔다가 소대에 도착하고 나서 놀라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휴가를 가기 전에 분대장님께서 “칠월 초나 유월 말에 신병을 받을 거니깐. 그때까지 적응 잘 해둬라”라고 말씀하셨기에 난 정말 그런 줄만 알고 휴가 복귀하였지만, 막상 도착했을 땐, 이미 우리 분대에 신병, 내 막내표를 떼게 해줄 아이가 들어와 있었으니까. 기분은 무지 좋았다. 내 후임인 용준이는 부산에 사는 아이란다. 박형국 일병님하고 같은 곳에 사는 아이이니만치 내가 휴가 가 있는 동안 들어온 용준이에게 참 잘해줬을 것이다. 19일에 홍민석씨가 나갔다. 나랑 싫으나 좋으나 같이 근무 서면서 애증을 모두 겪어온 사이이다. 사실 그분이 나갈 땐, 아쉬운 마음이 꽤 많이 들었..

Lee 박사 Live concert 1집 01년 6월 소초의 날 행사 때 [디스크 자키 모션을 취하며] 디비디비딥~ 딥딥딥! 아싸 가리가리 고추 가리> 해 저문 소양강에 우씌~ 우씌~ 우씌~> 황혼이 지면 아싸 가리 가리 고추가리> 외로운 갈대밭에 우씌~ 우씌~ 우씌~> 슬피우는 두견새야! 새야~ 새야~ 새야새야~ 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디비디비딥~ 딥딥딥!> FM Morning Date 명사의 한 마디 시간입니다. 오늘은 전주대 한문학과 교수 건빵 교수를 모셔놓고 명사의 한 마디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삼보다 산삼이 좋고 산삼보다는 중삼이 좋고 중삼보다는 고삼이 좋다더라~ 아~ 아!” 지나가던 여고생을 붙잡아 놓고 달콤한 사랑 얘기 들려줬더니, 아 글씨 그 년이 하는 말이~(느..

3주 만의 종교활동과 깨달음 01년 5월 6일(일) 구름 낌 오후 4시 9분 자대에 온 지 3주 만에 교회에 갔다. 아주 일상에 찌들어서 그저 주일이기에 교회에 찾아갔던 나의 신앙심은, 무려 3주나 교회에 가지 못하게 되자, 대단한 변혁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역시 가끔씩은 일상성을 벗어나 본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는 크나큰 깨달음을 안겨주곤 한다. 그렇게 교회에 가지 못하다 보니,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강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 강렬해진 신앙심을 가지고 찬양할 수 있고,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목소리 높여 기도할 수 있었다. 그동안 못해왔기 때문인지 대단한 기뻤고 그 순간만으로도 좋았다. 오늘 설교 말씀은 ‘가정 안의 행복은 물질적인 이상으로 충족될 수 없으며, 오로지 사랑, 격려 속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01년 4월 22일(일) 화창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去言美, 來言美]’는 속담은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말이다. 이 말이 속담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생각으로도 쉽게 납득될 말이다. 좋은 말을 해줬는데도, 거기다 대고 욕을 바가지로 해댈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이런 일반적인 원칙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난 두 가지 말실수를 하였다. 그 첫째는 강정명 병장님께서 옷을 꿰매고 있는 나를 보고서 “아직까지 바느질 하냐?”라고 물었을 때, 난 장난을 치고 싶어 “전역하는 그 날까지 할 것입니다.”라고 농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에 대한 반응은 참으로 상반되는 것이었다. 강정명 병장님에겐 ‘다른 일을 다 하기 싫고, 오로지 바느질만 하겠습니다.’라..

두 가지 지켜야 할 것 01년 4월 11일(수) 비 오고 추움 군생활 한 달 만에 얼마나 느낀 게 많겠느냐만은, 그래도 훈련병 생활을 마칠 정도의 짬밥을 먹어가는 가운데 깨달은 것이 있기에 이곳에 적어보고자 한다. 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군기(軍氣)일 것이다. 군기를 확립하기 위해선 무엇 무엇이 필요할까? 그 첫째는 마음가짐이다. 한 순간, 한 순간 ‘열심히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가운데 그렇게 자기를 움직여 가는 것이다. 늘 한 가지 관념을 지속해나간다는 건 지루함으로 인해 불가능해질 뿐 아니라, 적응과 그에 대한 더 큰 시련을 이겨 나가려는 다잡음의 되풀이 형식 사이에서, 더 큰 시련이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면 저절로 해이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든 것이기에..

소리엘 찬양에 위로받다 01년 4월 1일(일) 화창 드디어 군에 온 지도 두 달이 지났다. 물론 달수로만 그렇다는 것이고 2월 마지막 주에 입대했으니 6주째에 접어든다. 오늘은 주일이기에 교회에 갔다. 벌써 3주째 교회에 나가는 것이지만 오늘은 좀 특별한 주일이었다. 입대하기 전에 열심히 들었던 ‘주께 맡기는 자♬’라는 노래가 교회 스피커를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너무나 듣고 싶었던 그 곡을 들으니, 평소엔 느끼지 못했던 만족감을 느꼈고 행복과 함께 감사를 느꼈다. 주를 찬양하므로 주를 따르리라 주와 함께 가는 것자기를 부인하므로 삶을 드림으로 거듭난 모습주를 영접하므로 주께 맡기는 것 주께서 인도해자기의 십자가 지고 주를 따라 가리라 세상의 그 어떤 부와 명예도 주보다 귀할 수 없어이전에 나 몰..

사람의 한계(특공대를 보고서)人間之限界(視於特攻隊) 01년 3월 25일(일) 오늘 인간극장> ‘특공대’편을 보았다. 今日에 視於人間劇場之特攻隊하다 혹한의 겨울 훈련 중에 인간의 한계를 생각해보다.惑寒之冬季之訓練中에 想人間之限界하다 인간의 한계는 없는가? 한계와 한계 없음의 차이는 무엇인가?與人間之限界乎아 何差限界和非限界아 그 차이는 체력에서 비롯된 한계가 아니요, 의식에서 비롯된 한계이다. 其之差는 非於體限이오 差於意限이라 만약 의식이 바르고 견고하다면 아무리 육체가 되게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걸 이겨낼 수 있고若猶意之正而堅이오 深苦之肉이라도 可以克己오 의식이 바르지 못하고 얄팍하다면 몸이 편하고 즐거울지라도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한다. 若猶意之不正而薄이면 安樂之體라도 不可以克己라 그렇기에, 하물며 핑계댈..

억눌린 영혼들의 주먹다짐 01년 3월 19일(월) 주일이었던 어제 처음으로 더위를 느낄 정도로 무더웠다. 하지만 어제와는 생판 달리 안개 낀 새벽을 빌미로 어둑어둑한 하루가 계속 전개되었다. 그에 맞추어, 3주차의 주된 훈련은 K-2 소총 교육과 실전 사격 훈련이다. 이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이 맞물려 오늘 하루, 아니 이번 한 주에 대해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현실은 사실일 뿐이었다. 사실 오늘 훈련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 그저 저번 주에 했던 K-2 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똑같은 훈련을 반복했기에, 힘들었다면 여전히 PRI(Preliminary Rifle Instruction, 무의탁사격)가 가장 힘들었을 뿐이었다. 다만, 날씨의 저조증이 우리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했으며, 자기의 의지가 전혀 관여..

종교와 초코파이 01년 3월 11일(日) 화창한 날 입대 후, 처음으로 교회에 간 날이다. 어제 우리의 조교인 손병장님께서 “군에서 하는 게 어디 종교 활동이냐? 그저 먹을 것을 먹기 위해서 가는 것이지”라고 말했다. 그건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말이었으며, 종교의 본질성이 훼손된 예였다. 예배를 9시가 좀 넘은 시간에 드렸다. 찬양 시간일 때만 해도, 나도 그랬지만 아이들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하지만 설교시간이 다가오자, 아이들의 눈뿐 아니라, 나의 눈까지도 썩은 동태마냥 게슴츠레해졌다. 눈이 스르르 감기며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며 연거푸 인사를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오늘 새벽에 2시간 불침번을 서고 30분을 빨래하고 목욕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제야 현식이가 그럴 수밖에 ..
‘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과 주자학: 진시(眞詩)’ 후기 목차 1. 형술쌤이 초대한 한시의 세계에서 한바탕 춤을 추다 한문과 마주 보고, 한문과 한바탕 어우러지다 형술쌤 한시의 세계로 들입다 초대하다 2. 건빵이 한시특강을 듣는 이유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건빵은 한시특강을 듣네 한시특강을 들으러 온 사람들 전공자가 들으니 더욱 유익한 한시 특강 3. 훅하고 들어가 좌중을 압도한 16세기 한시 이야기 나도 모르는 새에 한시의 세계로 빠져들다 당나라 시풍이 우세를 떨치며 개성이 사라진 한시들 4. 복고파가 문단을 휩쓸다 복고파의 의의와 한계 복고파의 억눌림을 뚫고 분출한 생기발랄한 목소리 5. 천기를 문학에 담으려던 사람들 공안파를 비판한 김창협 공안파의 천기와 백악시단 천기는 다르다 6. 천기가 가득 ..
6. 천기가 가득 담긴 한시를 맛보다 한 시간 정도 만에 16세기 조선 문단의 시풍(詩風) 변화를 훑어봤다. 이게 바로 우리가 전문가에게 강의를 들어야 할 이유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런 주제의 내용을 알기 위해선 여러 자료를 뒤적이며 몇 달을 끙끙 앓을 정도로 공부해야지만 겨우 윤곽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을 두 시간 정도의 강의만으로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16세기 시단에선 당풍이 유행하며 천부적인 자질을 지녀야만 시를 지을 수 있다는 논리가 전개되었고 이런 논의에 반감을 지닌 사람들은 ‘문장은 전한 시대의 것을 따르고, 시는 성당 시대의 것을 따른다[文必秦漢, 詩必盛唐]’이란 구호를 외치며 성당(盛唐)의 시만을 읽고 본받으려 노력하면 충분히 좋은 시를 지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5. 천기를 문학에 담으려던 사람들 조선에 이렇게 생기발랄하게 시를 쓰고 문장을 쓰자는 논의가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 공안파(公安派)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공안파의 대표주자인 원굉도와 이지 같은 인물은 억눌려 있던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래서 원굉도는 아예 “본성에 맡기고 발하면 오히려 사람의 희노애락과 기호정욕에 통할 수 있으니, 이것이 기쁠 만하다[任性而發, 尚能通於人之喜怒哀樂, 嗜好情欲, 是可喜也].”라는 충격적인 말까지 했으며, 이지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곧 진짜 마음이다[夫童心者, 眞心也].”라는 말까지 했다. 유학에선 억눌러야 했던 기(氣), 리(理)에 방해만 된다고 보았던 기(氣)를 그들은 한없이 긍정하며 ‘심즉리(心卽理)【성리학의 ‘성즉리(性卽理)’와 완전히 반대되는 얘기..
4. 복고파가 문단을 휩쓸다 당나라 시를 무작정 모방하는 풍조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 복고파다. 복고파는 제대로 시를 지으려면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목청껏 외쳤던 사람들이다. 복고파의 의의와 한계 이들은 두 가지 부분에서 그전 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 이들은 “문장은 전한 시대의 것을 따르고, 시는 성당 시대의 것을 따른다[文必秦漢, 詩必盛唐]”라는 구호를 만들어 외쳤다. 이 말을 통해 전 시대와는 두 가지 부분에서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첫째는 시든 문장이든 천부적인 재능에 따라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에 따라 잘 쓰고 못 쓰고가 나누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니 좋은 시를 짓고 싶거든 명편들을 열심히 읽고 따라 써보며 노력한다면 그만한 시를 쓸 수 있다고 보았다. 둘째는 모범이 될..
3. 훅하고 들어가 좌중을 압도한 16세기 한시 이야기 나에게 만약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시 특강을 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한시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한 후에 내가 하고 싶은 얘길 풀어가겠다’고 말할 것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니 만큼, 알지 못하는 세계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 이번 강의는 전주대에서 전주시민 대상으로 마련하여 진행되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한시의 세계로 빠져들다 그런데 형술쌤은 훅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16세기부터 중국에서 유행한 복고파 시와 전후칠자(前後七子)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이런 부분에서 도입부는 16년 1월에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됐..
2. 건빵이 한시특강을 듣는 이유 최근에 ‘킹덤’이란 드라마가 방영되었는데 거기서 김은희 작가는 ‘넷플릭스 측에서는 어느 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뭘 하든, 뭘 얼마만큼 죽이든 가만히 내버려 두더라’라는 내용으로 인터뷰를 했었다. ▲ 외국자본을 투자 받아 한국형 좀비 드라마를 만들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건빵은 한시특강을 듣네 거기엔 ‘우리가 이미 당신의 실력을 알고 모신 만큼 맘껏 기량을 펼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처럼 자신의 기량이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할 수 있는 용기’, ‘실패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나온다. 해리포터의 작가 j.k 롤링은 아예 하버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실패를 많이 해보라. 그게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말할 정도이니, 무작정 해보는 도전정신이 있다면 우린 크게..
1. 형술쌤이 초대한 한시의 세계에서 한바탕 춤을 추다 긴 시간 돌고 돌아 다시 한문 임용을 준비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는 걸 느끼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단재학교에서 교사로서의 경험과 무수한 얘기들을 썼던 글쓰기가 한문공부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교사 경험이나 글쓰기 경험은 학문을 하는 진정성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사태를 제대로 보려는 진지한 마음이 있는 것이고, 그걸 그 누구의 말이 아닌 나의 말과 나만의 이해방식으로 흡수하는 것이니 말이다. ▲ 웰 컴 투 더 월드 오브 한시 ~ 그 매력에 빠져보실까요^^ 한문과 마주 보고, 한문과 한바탕 어우러지다 예전엔 무언가를 고민하기도 전에, 뭘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모든 게 나에게 닥쳐 있었다...

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과 주자학: 진시(眞詩) 목차 김형술(전주대 한문교육과) 1. 16C~17C 동아시아 문예론의 전개 ① 명나라 전후칠자(前後七子)의 복고론 ② 명대 복고파 이론의 영향력 1) 17세기 조선의 정두경(鄭斗卿, 1597-1673) 2) 18세기 에도 문단의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1666-1728) 3) 명말청초 공안파(公安派)의 명대 복고파 비판 4) 조선후기 백악시단(白嶽詩壇)의 명대 복고파 비판 2. 백악시단이 주창한 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 3. 진시(眞詩) 창작의 핵심 이론: 천기론(天機論) 4. 시(詩)의 실상 ① 산수에의 밀착과 형신(形神)을 통한 진면목의 묘파(描破) ② 민생의 핍진한 사생 ③ 물아교감(物我交感)의 이지적(理智的) 일상 ④ 情의 울림 上 / 下 인용 ..

9. 시(詩)의 실상: 情의 울림② ⑥ 김시보(金時保) 『모주집(茅洲集)』 권8 「우중만장여행(雨中挽長女行)」 不有田家雨 行人得久淹 농가에 비가 내리지 않았던들 갈 사람을 오래도록 붙잡아 두었겠나. 喜逢子孫醉 睡過卯時甘 딸아이 만나서 기뻐 취하고 묘시가 넘도록 달게 잤더니 川漾萍樓埭 風廻花撲簾 냇물 불어 개구리밥 보에까지 붙고 바람 불어 꽃잎은 주렴을 치는구나. 吾詩殊未就 莫謾整歸驂 내 시가 아직 안 되었다 자꾸만 타고 갈 말 챙기지 말렴. ⑦ 이하곤(李夏坤) 『두타초(頭陀草)』 책8 「사가(思家)」 風急天將黑 山寒路自斜 바람 거세고 날도 어둑해지려는데 산은 춥고 길은 자꾸만 오르막이라. 來時愁雪片 歸日對梅花 올 적엔 눈송이를 걱정했는데 돌아가면 매화를 마주하겠네. 臘盡還爲客 年衰漸戀家 섣달이 다 되도록..

8. 시(詩)의 실상: 情의 울림① ① 홍세태(洪世泰) 『유하집(柳下集)』 권2 「술애(述哀)」 1 自我罹窮阨 生趣若枯木 나는 궁액(窮阨)에 빠진 뒤로 생의 흥취는 말라 죽은 나무 같았지만 賴爾得開口 聊以慰心曲 그래도 네가 있어 입을 열었고 늘 서글픈 마음을 위로 받았다. 嗟汝今已矣 令我日幽獨 아! 네가 떠나간 지금 나의 하루하루는 더욱 고독해져 入室如有聞 出門如有矚 집에 들면 어디선가 네 목소리 들리는 듯 문 나서면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너를 찾게 된다. 觸物每抽思,如繭絲在腹 무엇을 마주해도 늘 뽑혀 나오는 네 생각 마치 뱃속 가득 채워진 고치실 같은데 哀彼一抔士 魂骨寄山足 서글퍼라! 저 한 줌의 흙으로 네 넋과 뼈를 산발치에 묻었구나. 平生不我遠 今夜與誰宿 평생에 나를 멀리 떠난 적 없었는데 오늘 ..

7. 시(詩)의 실상: 물아교감(物我交感)의 이지적(理智的) 일상 ① 김창흡(金昌翕) 『삼연집(三淵集)』 권4 「십구일(十九日)」 荏苒芳華事 猶殘小圃春 고운 꽃 핀 봄날 풍경 사라지는데 작은 밭에 봄이 아직 남아있구나. 愁中紅日駐 睡起綠陰新 시름할 땐 붉은 태양 꼼짝 안더니 자고 나니 녹음이 싱그럽구나. 樊竹通雞逕 蔬花化蝶身 대밭엔 닭이 다녀 길이 생겼고 배추꽃엔 나비가 알을 붙였네. 靜看機出入 忘却我爲人 고요 속에 천기(天機)의 출입을 보다가 내 자신이 사람인 줄도 잊게 되었네. ② 김시보(金時保) 『모주집(茅洲集) 』 권7 「월야금운(月夜琴韻)」 夜冷霜生竹 樓虗月上琴 밤이 차서 서리가 대나무에 엉기고 누대는 비어 달만 거문고 위로 떠오르는데 泠然廣灘水 流入大餘音 차가운 광탄의 물 대여음(大餘音)으로 ..

6. 시(詩)의 실상: 민생의 핍진한 사생 ① 김창흡(金昌翕) 『삼연집(三淵集)』 권8의 「작천무량(鵲川無梁)」 我過淸州境 觀風一喟然 내가 청주의 경계를 지나며 풍속을 살펴보니 탄식만 나오네. 誰爲懶明府 民病涉寒川 누가 관가의 부름에 늑장피우랴? 백성은 병든 채로 찬 냇물을 건너네. 斫脛傷仁酷 乘輿用惠偏 정강이 깨졌으니 인을 해침이 가혹하고 수레를 타는 일도 그 혜택이 치우쳤구나. 行人能殿最 可畏豈非天 행인들도 행적을 평가할 줄 아니 어찌 하늘이 두렵지 않은가! ② 권섭(權燮) 『옥소고(玉所稿)』 「시(詩) 1」의 「동면민가(東面民歌)」 (前略) (전략) 松脂杻骨杻皮令 송진 싸릿대 싸리껍질 채취 명령 白蠟五味山葡賦 밀랍 오미자 산포도 채취 부역 生鮮日次白土掘 하루걸러 생선 잡고 백토도 파야하는데 種種難酬..

5. 시(詩)의 실상: 산수에의 밀착과 형신(形神)을 통한 진면목의 묘파(描破) ① 김창흡(金昌翕)의 「구룡연(九龍淵)」을 통해 본 특징 다음은 김창흡(金昌翕) 『삼연집(三淵集)』 권2의 「구룡연(九龍淵)」이란 연작시 몇 편을 보자. 2 二淵懸瓢似 瀑流喧吐呑 둘째 못은 달아 맨 바가지던가 멍멍하게 폭포 물을 삼켰다 뱉네. 誰知呀然小 逈洞搏桑根 누가 알랴? 우묵하게 고인 작은 물이 멀리 통해 부상의 뿌리에까지 맺힐 줄. 5 五淵急回軋 南岸側成釜 다섯째 못 급히 돌며 콸콸 대는데 남쪽 언덕 비스듬하여 솥이 되었네. 馳波迭後先 赴隘徘徊舞 앞서거니 뒤서거니 치달리다가 좁은 곳에선 빙빙 돌며 춤추는 듯. 6 六淵美如璧 清涵石紋粹 여섯째 못 아름답기 구슬 같은데 맑게 씻긴 바위 무늬 티도 없구나. 竦髮注眸深 高雲正..

4. 진시 창작의 핵심 이론: 천기론(天機論) 의고파의 가짜 복고를 벗어나 고인의 정신을 자득하고, 관습화되고 형해화된 정과 경을 진실하게 표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시인은 부단한 학문과 수양을 거쳐야 하며 이를 통해 민멸(泯滅)된 시도(詩道)를 진작해야 한다. 1)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편의 “기욕(嗜慾)이 깊은 사람은 천기가 얕다[其嗜慾深者, 天機淺也].”라는 말이 있다. 2) 『주자어류(朱子語類)』 권62 「중용(中庸) 1」에서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솔개는 솔개의 성(性)이 있고 물고기는 물고기의 성(性)이 있어 그 날고 뜀에 천기(天機)가 절로 완전하니 곧 천리(天理)의 유행이 발현되는 오묘한 곳입니다. 그래서 자사께서 우선 이 한두 가지로 도(道)가 없는 곳이 없음을 밝히신 ..

3. 백악시단이 주창한 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 김창협(金昌協)은 『농암집(農巖集)』 권34 「잡지 외편(雜識 外篇)」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에서는 우리 조선의 시가 선조(宣祖) 때보다 성한 때가 없었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시도(詩道)가 쇠한 것이 실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선조 이전에는 시를 짓는 이들이 대체로 다 송(宋) 나라의 시를 배웠기 때문에 격조가 대부분 전아하지 못하였으며 음률도 간혹 조화롭지 못하였지만 요컨대 또한 질박하고 진실하며 중후하고 노련하면서도 힘이 있었기에 겉치장을 하거나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서 각자 일가(一家)의 언(言)을 이루었다. 世稱‘本朝詩, 莫盛於穆廟之世.’ 余謂詩道之衰, 實自此始. 蓋穆廟以前, 爲詩者, 大抵皆學宋, 故格調多不雅馴, 音律或未諧適. 而要亦..

2. 16C~17C 동아시아 문예론의 전개② 3) 명말청초 공안파(公安派)의 명대 복고파 비판 원굉도(袁宏道)는 『해탈집(解脫集)』 권4 「척독(尺牘)」의 「구장유(丘長孺)」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저 물(物)은 참되면 귀합니다. 참되면 내 얼굴이 그대의 얼굴과 같을 수 없으니 하물며 고인의 모습이겠습니까? 당(唐)에는 당의 시가 있으니 반드시 『문선(文選)』의 체(體)일 필요는 없습니다. 초당(初唐)ㆍ성당(盛唐)ㆍ중당(中唐)ㆍ만당(晩唐)에는 각자의 시가 있으니 반드시 초당, 성당일 필요가 없습니다. …(중략)… 大抵物眞則貴, 貴則我面不能同君面, 而況古人之面貌乎? 唐自有詩也, 不必選體也; 初ㆍ盛ㆍ中ㆍ晚自有詩也, 不必初盛也; 李ㆍ杜ㆍ王ㆍ岑ㆍ錢ㆍ劉, 下迨元ㆍ白ㆍ盧ㆍ鄭, 各自有詩也. 不必李ㆍ杜也. (中略)..

1. 16C~17C 동아시아 문예론의 전개① ① 명나라 전후칠자(前後七子)【전칠자(前七子): 이몽양(李夢陽), 하경명(何景明), 서정경(徐積卿), 변공(貢), 강해(康海), 왕구사(王九思), 왕정상(王廷相) / 후칠자(後七子): 이반룡(李擊龍), 왕세정(王世貞), 사진(謝秦), 종신(宗臣), 양유예(梁有譽), 서중행(徐中行), 오국륜(吳國倫)】의 복고론 이몽양(李夢陽, 1472-1529)은 홀로 전대의 위약(萎弱)함을 비판하고, “문장은 반드시 진한(秦漢)시대의 것이어야 하고, 시는 반드시 성당(盛唐)의 것이어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이것이 아닌 것은 말하지 않았다[夢陽獨護其萎, 倡言文必奏漢, 詩必盛唐, 非是者弗道. -『명사(明史)』 권286 「이몽양전(李夢陽傳)」]. 이반룡(李攀龍, 1514-1570)..
유방의 역사에 담은 인생 철학 『소화시평』 권하 92번에서 이원진은 한고조 유방을 주제로 해서 초한쟁패 초반기에 함곡관에 항우보다 먼저 들어갔음에도 샴페인을 일찍 터뜨리지 않고 약법삼장을 선언하며 항우를 기다리던 순간을 배경으로 시를 쓰고 있다. 잠시 삼천포를 좀 빠지자면 소화시평을 공부하면서 유방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첫 발표였던 권상 39번에서도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를 다뤘었고 권상 47번도 발표를 맡았었는데 여기서도 전횡장군 이야기가 나오며 간접적으로 유방과 밀접한 이야기를 다뤘으니 말이다. 이렇게 유방의 이야기를 두 군데서 다루고 나니 초한쟁패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지더라. 이래서 발표를 준비하며 역사적 상황이나 인물에 대해 다방면으로 함께 공부하는 건 여러모로 좋은 일이라..
명성과 편견에 갇히지 않고 시를 봐야 하는 이유 길고 길었던 『소화시평』 선독(選讀)의 대망의 마지막 편이다. 작년 1학기부터 시작하여 지금에서야 끝장에 이른 것이다. 권상에선 55편의 시화를 읽었고 권하에선 48편의 시화를 읽었다. 물론 아직 64번과 66번 글을 빠뜨리고 오는 바람에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하권의 마지막 편의 글을 정리하는 이 순간의 기분은 매우 좋다. 어쨌든 한문을 오랜만에 다시 공부하며 뭣도 모른 상태로 달려들었던 것이 이런 과정을 통해 마무리 지어지게 됐으니 말이다. 물론 소화시평을 마친 소회는 64번과 66번 글까지 마친 후에 본격적으로 적어보기로 하고 여기선 마지막 글을 쓰는 느낌을 이렇게 간단히 남겨본다. 『소화시평』 권하 92번에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원..
피상적인 이해와 적극적인 이해의 차이 弊屣堯天下 淸風有許由 요임금의 천하를 헌신짝처럼 버렸으니 맑은 풍도는 허유에게 남았지만 分中無棄物 獨挈自家牛 분에 맞으면 버리는 물건이 없어서 다만 자기 집 소를 끌고 갔다네. 『소화시평』 권하 91번을 얘기하기 전에 ‘소통과 이해’에 대해 길게 얘기한 이유는 윤정이 쓴 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윤정이 쓴 시를 그저 피상적으로, 시에서 보여지는 느낌으로만 평가할 경우 분명히 홍만종처럼 비판하는 게 당연하다. 우선 이 시의 1~2구에선 요임금이 천하를 허유에게 선양하려 하자 허유는 듣지 못할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귀를 냇가에서 씻었다. 이런 태도에선 마치 알렉산더와 디오게네스의 대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만큼 ‘요임금-허유’, ‘알렉산더-디오..
이해의 어려움에 대해 『소화시평』 권하 91번에서 우린 ‘이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배우게 된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든, 어떤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든 이해라는 측면에서 보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학교에서 주구장창 작품의 이해에 대해서 배웠는데 그게 뭐가 어렵나요?’라고 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12년 간을 작품의 이해나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배워왔고 대학교나 대학원까지 들어가면 더 긴 시간을 할애하여 배우게 된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배웠다면 당연히 ‘이해라는 것은 어느 정도 할 줄 안다’고 자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학교에서 배운 이해의 방법은 결코 제대로 된 이해의 방법이 아니다. 작품을 볼 때..
조선시대 문인들의 우정을 엿보다 相離千里遠 相憶幾時休 서로의 거리 천 리나 머니 그리워하는 마음 언제나 그칠까? 以我虛漂梗 憐君誤決疣 나는 부질없이 떠도는 신세로 그대가 잘못 혹을 째버림을 가엾게 여기네. 靑春愁已過 碧海暮長流 푸르른 봄날은 시름 속에 지나버렸고 푸른 바다는 저물도록 길게 흐르는 구나. 夢裏還携手 同登明月樓 꿈에서나 도리어 손을 잡고서 함께 명월루에 올라보세. 世故殊難了 離愁苦未休 세상일 매우 이해하기 어려우니 이별시름 기어이 그치지 않네. 緣詩君太瘦 隨事我生疣 시 때문에 그대는 너무 야위었고 일 때문에 나는 혹이 났구려. 夜月誰同酌 春天獨泛流 달밤에 그 누가 술자리 함께 하랴. 봄날에 홀로 배를 띄웠다네. 還朝知不遠 匹馬候江樓 돌아올 날 멀지 않다는 걸 알겠으니, 필마로 강의 누각에서 ..
홍만종이 잘난 체를 하는 방법 『소화시평』 권하 90번은 김석주와 자신이 친한 관계였으며 김석주의 문장을 짓는 자질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에 관해선 자신을 칭찬했었다는 말로 서두를 열고 있다. 그러면서 홍만종은 “아마도 사백은 사와 부에는 뛰어나지만 느지막이 시를 썼기 때문에 이런 지나친 허여함이 있었던 것이리라[蓋斯伯工於詞賦, 晩業於詩, 故有此過許].”라고 김석주가 자신을 칭찬한 이유를 대고 있다. 이런 구절에서 드러나는 심성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이 시를 잘 짓는다는 것을 자부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나는 꼼수다’라는 팟케스트를 통해 유명해진 말 중에 ‘깔때기’라는 말이 있다. 그건 어떤 주제의 말을 하던지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 자신의 잘난 척할 수 있는 주제로 빨아..
새벽에 출발하며 쓴 시를 비교하다 『소화시평』 권하 87번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쓰인 시를 얘기하고서 그 두 시를 비교하며 평가하고 있다. 이런 비슷한 구절을 권상 101번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그땐 ‘뜻은 일치하지만 각각 운치가 있다[意則一串, 而各有風致].’라고 평가했었던 것과 비교가 된다. 우선 두 시는 똑같은 상황에서 쓰인 시다. 어디를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막에 머물다가 새벽에 출발하며 그 소회를 적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연 두 시엔 어떤 느낌이 담겨 있는지 보기로 하자. 鷄聲來野店 鬼火渡溪橋 닭울음은 들판 주막에서 들려오고 도깨비불은 시내의 다리를 건너오네. 백곡의 시는 새벽에 출발하는 장면을 읊은 것이 아니라 이미 출발하여 주막이 어렴풋이 멀어진 상황의 장면을 읊은 것이다. 그러니 아침을..
2분이란 시간에 왕소군과 의순공주를 담아내다 순발력 테스트식으로 2분 만의 시간 동안에 홍석기가 짓게 된 시가 바로 『소화시평』 권하 85번에 실려 있는 시다. 이 시는 기승전결의 일반적인 흐름을 따라 가지 않는다. 일반적인 흐름에서 전구(轉句)는 기구와 승구에서 전개한 시상을 완전히 뒤바꾸며 환기를 시키고 결구의 의미를 강조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는 결구의 내용을 강화하기에 위해 1~3구까지 감정을 켜켜이 쌓아간다. 그래서 한 구 한 구 읽을 때마다 깊은 울분과 회한이 짙게 느껴지며 결구에 이르고 보면 그 감정이 제대로 폭발되는 것이다. 千秋哀怨不堪聞 천추토록 애절한 원망 차마 듣질 못하겠는데, 落月蒼蒼萬壑雲 지는 달이 희끄무레한데다 온 골짜기엔 구름까지 꼈네. 莫向樽前彈一曲 술잔 앞을 향하여 한 곡..
한시로 순발력테스트를 하다 『소화시평』 권하 85번은 시가 지어진 배경을 담고 있다. 아무래도 이전의 시들은 이미 시들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보기 때문에 시가 지어진 배경을 얘기하지 못하고(예외적으로 시가 지어진 배경이 문집에 실린 경우엔 그 배경과 함께 시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저 인상 비평을 가할 수밖에 없는 반면, 비교적 최근의 시이고 더욱이 자기 형의 시이기에 이 시에 대해선 배경 설명과 함께 그 당시의 분위기를 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편을 읽고 있으면 그 당시에 왜 이런 시를 짓게 됐는지 상황을 이해하게 되며 홍만종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인 ‘형은 천부적 자질이 민첩하여 붓을 잡고 시를 지을 적엔 샘물이 솟구치는 듯 큰 강물이 매달린 듯했다[天才敏捷. 操筆賦詩, 泉湧河懸].’는..
김득신의 귀정문적(龜亭聞笛)시가 좋은 이유 斷橋平楚夕陽低 끊어진 다리, 저편 평평한 들판에 석양이 내려앉고 政是前山宿鳥棲 앞 숲으론 잠 잘 새가 깃드네. 隔水何人三弄笛 건너편 강에서 어떤 사람이 「매화삼롱(梅花三弄)」 부는데, 梅花落盡故城西 매화는 고성 저편 모두 다 저버렸네. 『소화시평』 권하 84번의 두 번째 시는 읽고 있으면 그 상황이 절로 그려지는 시다. 1구에선 귀정에 올라 보인 광경을 서술하고 있다. 귀정이 어느 곳에 있는 정자인 줄은 모르겠지만 1구에 묘사된 정황을 통해 평평한 들판의 우뚝 솟은 곳에 있는 정자라는 걸 알 수가 있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면 끊어진 다리가 보이고 그곳 근처엔 평평한 들판이 보인다. 그런데 바로 그때가 석양이 질 때라 들판엔 석양빛이 내려앉아 있는 것이다. 이 광경..
김득신이 지은 용산시 감상하기 古木寒雲裏 秋山白雨邊 고목은 찬 구름 속에 서 있고 가을산에 하얀 비 내리더니, 暮江風浪起 漁子急回船 저물녘 강에서 풍랑 일어나자 어부가 황급히 배를 돌리네. 위에서 쭉 얘기했다시피 김득신은 노둔했기 때문에 예리해진 사람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쓴 시는 어떨까? 그걸 『소화시평』 권하 84번에선 두 편이나 볼 수 있으니 이번 편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시는 1구와 2구는 시적 화자가 놓인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찬 구름 속에 서 있는 고목, 하얀 비가 내리는 가을산이라고 명사만을 쭉 나열하고 있다. 이건 마치 백광훈의 「홍경사(弘慶寺)」를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다. 이 배경을 통해 조금은 스산한, 그러면서도 왠지 외로운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 배경 속..
노둔함의 저력 『소화시평』 권하 84번의 주인공은 백곡 김득신이다. 김득신하면 「글을 읽은 횟수를 기록하다[讀數記]」란 글을 지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이 글에도 나타나다시피 진득하게, 어찌 보면 매우 바보처럼 앉아 하나의 글을 여러 번 읽는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를 표현할 때 ‘노둔하다[魯]’는 표현은 빠지질 않는다. 실제로 84번에도 ‘천부적 자질이 매우 노둔했다[才稟甚魯]’고 홍만종도 서술하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홍만종은 노둔함이야말로 학자로서 최고의 자질이란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노둔하기 때문에 예리해졌다[由鈍而銳]’는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황당해할 것이다. 노둔함과 예리함은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소리..

이름 새기는 사람의 심리를 비판한 한시 鏟石題名姓 山僧笑不休 돌 깎아 성명을 써놨더니 산 스님이 웃음을 그치질 않네. 乾坤一泡幻 能得幾時留 천지도 하나의 물거품이거늘 얼마나 그 이름 남길 수 있겠소. 임유후의 두 번째 시도 전혀 어렵지 않다. 그건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사를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게 어느 유적지에 사람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는 기사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신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 있는 듯하다. 그러니 종족번식을 통해 자신의 증표를 남기려고도 하며, 그도 아니라면 의미 있는 것(문학작품, 한 시대를 풍미한 유행품들)을 남기려고도 하고, 그도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 남기려 하니 ..
사찰시의 특징을 깨버린 시 시를 볼 때 당시풍이라느니, 송시풍이라느니 하는 표현들을 쓴다. 그때 두 시풍을 확실하게 나눌 수 있는 기준은 당시풍은 있는 사실을 핍진하게 그려내어 머리로도 그 상황이나 환경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묘사하는 반면, 송시풍은 성리학이 발달한 송나라답게 시에도 그저 환경이나 묘사하는 시를 쓰지 않고 철학적인 함의를 담은 시를 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시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송시풍보단 당시풍을 더 좋은 시로 쳤다. 이런 정도로만 나뉜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고 분간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풍 내에서도 초당ㆍ성당ㆍ중당ㆍ만당으로 시풍을 나누며 성당풍의 시를 최고로 치는 상황에 이르고 보면 이건 마치 어려운 수학기호를 보듯 난해함에 저절로 혀가 내둘러질 정도가 되고 만..
유교 속의 불교, 불교 속의 유교 방편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선악을 확연히 구분하여 한 개체 내에 이미 그런 속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던지, 능력 여부 또한 한 개체 내에 선천적으로 내재되어 있어 능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본다던지, 조선은 유교의 나라로 불교는 아예 배척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편적인 사고는 복잡다단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은 있을지언정, 실제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우린 티비에 범죄자로 나오는 사람을 보며 우리와는 다른 ‘악이 화신’이라도 된 양 생각하며 모든 걸 까발리고 사회에서 완벽하게 배제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여대며, 조선을 생각하면 모든 사회의 악이 가득 찬 시대로 그리며 그런 부조리한 사회가 ..
은자의 세 가지 유형과 고정관념을 넘어 偶入城中數月淹 우연히 성중에 들어와 몇 개월을 머물다가 忽驚秋色着山尖 가을빛이 산 정상에 들러붙은 걸 보고 깜짝 놀랐네. 行裝理去孤舟在 떠날 짐 꾸려서 가니 외로운 배 남아 있고, 急影侵來素髮添 빠른 세월이 쳐들어와 흰 머리가 불어났구나. 早謝朝班誰道勇 일찌감치 조정을 떠난 들 누가 용맹하다 말하겠으며 晩饞丘壑不稱廉 느지막이 은거지를 탐한 들 청렴하다 할 이 없구나. 且愁未免天公怪 또한 하느님이 괴이하게 여길까 걱정되니 欲向成都問姓嚴 성도를 향해 가서 엄준한테 물어보려네. 『소화시평』 권하 80번의 시는 내가 맡은 분량이기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부끄럽게도 전혀 그러질 못했다. 완전히 시적화자가 처한 환경을 다르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걸 시에서 간파해내지 ..
1년 동안 함께 한 스터디, 그리고 변화 『소화시평』 권하 80번은 오랜만에 발표하게 된 내용이다. 작년 4월 초에 소화시평 스터디에 합류하게 됐고, 운 좋게도 바로 그 다음 주에 발표를 맡게 되어 권상 39번을 발표하게 됐다. 여기서 ‘운 좋게’라고 표현한 이유는 반어법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오랜만에 임용공부를 하는지라 공부의 방향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고 밀려오던 불안감에 과거 낙방 때의 씁쓸함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발표를 계기로 한문공부의 맛을 오랜만에 맛볼 수 있었고 공부의 방향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권상 39번을 시작으로, 권상 47번, 권상 62번, 권상 75번, 권상 92번까지 총 다섯 편을 맡게 됐고 그걸 준비하고 발표하는 과정..
역사를 한시에 담아내다 睥睨平臨薩水湄 성가퀴 살수가를 굽어보는데 高風獵獵動旌旗 높은 바람에 펄럭펄럭 정기가 나부끼네. 路通遼瀋三千里 길은 요동과 심양 삼천리로 통하고 城敵隋唐百萬師 성은 수나라와 당나라 백만 군사를 대적했지 天地未曾忘戰伐 천지는 일찍이 전쟁을 잊은 적이 없으니 山河何必繫安危 산하에 하필 안위가 달렸으랴. 悽然欲下新亭淚 처연히 신정의 눈물 떨구려 하니 樓上胡笳莫謾吹 누각 위에서 호가 쓸데없이 불지 마라 . 『소화시평』 권하 79번에 나오는 이계의 시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긴 해도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얼핏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내가 이해했던 것은 잘못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새삼 느끼게 되는 건 어느 작품이든 좀 더 깊숙이 살펴보면, 내밀하게 궁리해보면, 알쏭달..
알아가는 즐거움, 알게 되는 기쁨 『소화시평』 권하 79번에서 나오는 이계(李烓)는 한문임용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한 인물이다. 그래서 작품집을 읽는다는 건 이런 부분에서 좋다. 늘 관심 갖던, 여러 사람에게 회자된 인물 외에 저자가 관심 갖던 인물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학생들과 같이 생활하다보면 학생들은 누군가를 알아야만 할 때 “이 사람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이런 건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하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학창시절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알고자 해서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알아야 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그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려 있단 이유만으로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건 한문학사 상의 인물을 대할 때도 똑같이 적..
계곡과 택당이 담지 못한 것을 담은 동명의 시 『소화시평』 권하 77번에서 ‘계곡ㆍ택당ㆍ동명 세 사람의 문학적 재능을 우열로 나누어볼 게 아니라 각자가 장점을 지니고 있다’라고 홍만종이 평가한 것에 대해서 저번 후기에서 그게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에 홍만종은 각자 시인들의 장점을 네 글자로 얘기한 다음에 그걸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어떤 느낌인지 선명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계곡 장유의 문장에 대해선 ‘혼후류창(渾厚流鬯)’하다고 평가했는데 그건 거대하고 거침이 없으며, 확 트였다는 뉘앙스다. 스케일 자체가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홍만종은 끝없는 호수에 바람이 불어봤자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과 같다고 비유했다. 택당 이식의 문장에 대해선 ‘정묘투철(精妙透徹)’하다고 평가했는..
문학의 우열을 나누는 것에 대해 『소화시평』 권하 77번에선 계곡과 택당, 동명 세 사람의 시풍에 대해 홍만종이 평가를 하고 있다. 우선 평가에 들어가기 전에 평가를 하는 풍토에 대한 비판부터 시작한다. 세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의 좋아하는 것, 또는 좋다고 여기는 것에 따라 우열을 가르고 경중을 나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만종은 ‘매우 쓸데없는 이야기[甚無謂也]’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면서 ‘문장엔 각각의 가치가 담겨 있다[凡文章之美, 各有定價]’라고 말한다. 그건 곧 자신의 좋아하고 싫어함에 따라 함부로 재단하고 함부로 등급을 나누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물론 이 말 자체가 개인적인 비평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누구나 어떤 작품에 대해 개인적인 호불호를 얘기할 수 있으며..
동명의 웅장함이 가득 시 감상하기 統軍亭前江作池 통군정 앞의 강물은 연못이 되고 統軍亭上角聲悲 통군정 위로 나팔소리 비장하다. 使君五馬靑絲絡 부윤의 오마의 머리는 푸른 실로 장식했고 都督千夫赤羽旗 도독의 천 명 군사들 적우기 들었네. 塞垣兒童盡華語 변방성의 아이들은 중국어를 할 줄 알고 遼東山川非昔時 요동의 산천은 옛날이 아니로구나. 自是單于事田獵 그저 선우는 사냥을 일삼는 것뿐이니, 城頭夜火不須疑 성머리의 밤 횃불 의심하지 말라. 『소화시평』 권하 76번의 「휴용만이부윤등통군정(携龍灣李府尹登統軍亭)」이라는 시는 딱 읽는 순간에 절로 삼연이 했던 ‘매번 지을 적마다 이렇게 웅대한 말이로구나[每作此雄大語].’라는 평어가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삼연은 비판적인 어조로 너무나 천편일률적인 웅장한 말로만..
의주 통군정과 변새시의 종류 『소화시평』 권하 76번은 권하 75번에 이어 정두경의 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단순히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77번까지 네 편이나 정두경을 다루기 있기 때문에 홍만종이 정두경에게 얼마나 매료(魅了)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왜 홍만종이 후기 학자들은 비판 일색으로 정두경을 묘사한데 반해 홍만종만은 칭찬일색으로 정두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왜 이렇게 경도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저번 후기에서 밝힌 그대로다. 그러니 여기선 그런 기본적인 사항에 대한 논의는 재론하지 않겠고 바로 그의 시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지금은 북한 땅에 있어 가볼 수 없는 곳, 의주. 지금은 중국과 접경지역이며 압록강이 펼쳐져 있..
정두경이 흰 갈매기를 사랑한 이유 白鷗在江海 泛泛無冬夏 백구가 강과 바다에 있어 떠다니며 겨울 여름이 없으니 羽族非不多 吾憐是鳥也 새의 족속들이 많지 않은 건 아니나, 나는 이 새를 사랑한다네. 年年不與雁南北 해마다 남과 북으로 오가는 기러기와 같이 하지 않고 日日常隨波上下 날마다 항상 파도 따라 오르락내리락. 寄語白鷗莫相疑 “백구야 말 붙여도 서로 의심하지 말자꾸나. 余亦海上忘機者 나 또한 바다 위에서 기심을 잃은 사람이니까.” 『소화시평』 권하 75번에서 갈매기를 노래한 시는 정두경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갈매기와 기러기를 비교하며 자신은 기러기보단 갈매기와 같은 사람이라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정치권에서 쓰는 철새라는 말은 결코 좋은 말은 아니다. 그건 자신의 유불리에 따..
정두경을 보는 두 가지 시선 『소화시평』 권하 75번에서 홍만종은 정두경의 문학적 자질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만약 이 글만 먼저 읽게 됐다면 홍만종의 시선에 따라 정두경을 엄청 대단한 인물로 기억하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 11월에 했던 김형술 교수의 한시 특강에서 정두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었다. 홍만종 이후에 나오는 김창협, 김창흡 형제를 위시한 백악시단의 천기(天機)를 중시하는 학자들에겐 비판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김창흡은 아예 정두경의 시는 한결 같이 웅장하기만 하다고 비판한다. 즉 기존에 중국학자들이 썼던 풍을 그대로 흉내내어 모작을 하는 정도이지, 직접적인 실상을 담아내진 않는다는 뜻이다. 그건 마치 지리산에 가보지 않고서도 시를 지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보지 않아도..
한 사람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소화시평』 권하 75번에선 재밌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바로 정두경을 대단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홍만종의 기록을 통해 우린 ‘한 개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니 말이다. 작년 1월엔 홀로 제주도 여행을 떠났었다. 불현듯 떠나고 싶었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갔지만 해온 게 자전거 여행이라고 습관적으로 자전거를 빌려 제주도를 무작정 한 바퀴 돌았다. 그렇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작정 떠날 수 있었던 데엔 현실에 지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무언가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 무작정 떠난 제주도. 그곳엔 역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 여행 중에 건진 게 참으로 많지만 마지막 날에 김만덕 기념관에 간 건 신의 한수였다. 거기서 인물..
이민구의 시에 차운한 홍만종의 강서시풍 한시 『소화시평』 권하 72번엔 직접적으로 이민구의 시를 관어대에서 본 홍만종은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나 보다. 최근에 ‘어머! 저건! 사야 돼!’라고 풍자하듯이 홍만종도 이민구의 시를 보고 나선 ‘어머! 이건 차운해야 돼!’라는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정감이 일었던 듯싶다. 이번 편엔 ‘왜 차운하게 됐는지?’, ‘누군가가 부탁해서 짓게 됐는지?’라는 정황들은 나오지 않지만, 자신도 알 수 없는 끌림이 있었다는 건 확실히 알 수가 있다. 홍만종이 차운한 시도, 결코 이민구의 시에 뒤지지 않는 전고(典故) 파티를 보여준다. 아마도 자신이 잘 짓는 시풍으로 이민구 옹께서 먼저 시를 지었기에 홍만종도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배신감..
실론티의 꿈을 그린 난삽한 이민구의 관어대시 『소화시평』 권하 72번은 다른 편에서 그저 시만을 평가하는 정도에 그친 것과는 다르게 홍만종이 이민구 어르신과 겪었던 에피소드가 아주 생생한 필치로 담아내고 있다. 그러니 다른 글에 비해 양이 꽤나 길었고, 더욱이 여기에 인용된 시들이 꽤나 어렵다보니 스터디 시간 내내 초집중 상태여야 했다. 권상 102번에 인용된 지천의 「차기윤자앙(次寄尹子仰)」이라는 시를 통해 그렇지 않아도 강서시파의 시는 정말 어렵다 못해 너무도 머리를 잔뜩 써서 글자 안배에 신경 쓴 지은 나머지 마치 퍼즐을 맞추듯 해석해나가야 한다고 손발을 다 들었었는데 이번 편에서 나오는 이민구의 시나, 그걸 차운한 홍만종의 시도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얼핏 봐서는 도무지 해석할 엄두조차 안 ..
갑자기 72번이라고요? 64번이 아니고!! 『소화시평』 권하 72번에 대해서는 에피소드가 있다. 하나는 권하 63번의 해석을 맡았던 학생이 권상 63번을 해석해오는 바람에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잘못 판단한 덕에 권상 63번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땐 속으로 은근히 좋아하긴 했었다. 이렇게 되면 막상 오늘 4개를 하는 것으로 잡혀 있는데 3개만 하게 될 거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소화시평 스터디 하던 초반에 감상을 적던 것에 비하면 분량 자체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현격하게 늘어났다. 그건 그만큼 심혈을 기울여 한 편 한 편을 다시 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고,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하다 할지라도 지금의 느낌과 알게 된 것들을 빠짐없이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기 ..
새벽에 출발하며 울적한 심사를 표현한 장유의 한시 晨發板橋官路脩 새벽에 판교를 출발하니 관로는 아득하네. 客子弊衣風露秋 나그네의 해진 옷이 가을바람 맞고 이슬에 젖는다네. 寒蟲切切草間語 추위벌레들은 절절하게 풀 사이에서 울어대고 缺月輝輝天際流 조각만 환하게 하늘가로 흐르네. 馬上瞌睡不成夢 말 위의 말뚝잠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眼中景物添却愁 눈에 들어온 경물들은 도리어 시름만 더하네. 人生百年各形役 우리네 한 평생 각자 육신의 부림받기 마련이나 南去北來何日休 남북으로 오가는 일, 어느 때나 그치려나. 『谿谷先生集』 卷之三十 수련에선 새벽에 출발하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다. 어찌 보면 수련에선 감정이 드러난다기보다 사실 그대로를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새벽에 출발했지만 아직 대로에 접어들기까진..
새벽에 출발하며 시를 짓는 이유와 소화시평 후기를 마무리 지으며 『소화시평』 권하 64번의 마지막에 초대된 사람은 장유다. 작년 4월 11일에 소화시평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해서 드디어 맨 마지막 후기를 쓰게 됐다. 더욱이 소화시평 하권64는 다른 편들에선 발췌된 시만 있을 경우 발췌된 시들만 보며 홍만종의 시평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반면에 이번 편에선 모두 한 번씩은 봐야 하는 좋은 시들만 수록되어 있다며 전문을 함께 공부했고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에 발맞춰 나도 64번에 나온 시들은 한 편 한 편에 대한 기록을 남겨 모두 15편을 썼고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기록을 남기게 된 것이다. 이 기록은 소화시평 후기를 마무리 짓는 기록이자 하권64번에 기록된 15편 중 마지막을 ..
‘나 이제 시 안 쓸래요’라는 의미를 담아 시를 쓴 최립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초대된 인물은 최립이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최립이 왜 중국으로 사신을 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시대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 중요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신 가는 일은 국가적인 대사를 처리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박지원이 지은 『열하일기』라는 책은 청나라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의 일부로 함께 청나라로 가게 되며 겪게 된 일들을 써놓은 책이다. 축하사절단이니 가는 길이 무겁지 않고 마치 여행을 하듯 그 상황들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축하해주기 위해, 또는 중국과 조선의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오고 가는 사절단의 경우엔 무겁지 않게 가벼운 마음으로 그 ..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황정욱의 한시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초대된 사람은 황정욱이다. 이 시 또한 황정욱의 삶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황정욱도 호소지의 한 명인 노수신과 마찬가지로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고 손녀가 선조의 아들인 순화군과 결혼하며 외척의 지위까지 누리며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에 왜적과 내통했다는 모함을 받게 되어 유배를 가게 됐고 거기서부터 인생은 180도 꼬이게 된다. 노수신은 해배된 후에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간 반면, 황정욱은 재기하지 못하고 울분을 안은 채 살다가 죽게 된다. 午憩東樓缷馬鞍 오후에 동루에서 쉬려 말안장을 푸니 窮陰忽作暮天寒 섣달이라 홀연 저녁 기운 차갑구나. 紅塵謾說歸田好 세상살이할 땐 공연히 ‘전원으로 돌아가길 좋아한다’..
노수신의 ‘친구야 보고 싶다’를 한시로 표현하는 법 由來嶺海能死人 고개와 바다 거쳐 오려고 하면 사람이 죽을 수 있으니, 不必驅馳也喪眞 힘들게 말달려 죽을 필욘 없네. 日暮林烏啼有血 석양에 숲의 까마귀 울음에 피가 있고 天寒沙雁影無隣 날씨 차가운 모래사장 기러기 그림자 짝이 없네. 政逢蘧伯知非歲 정이 거백옥이 49년의 삶이 잘못됨을 안 50살이 되었고 空逼蘇卿返國春 부질없이 소무가 귀국하던 때가 닥쳐왔네. 災疾難消老形具 질병은 없애기 힘든 늙은 형구(刑具)이니, 此生良覿更何因 다시 어느 인연으로 이 생애에 즐겁게 만날 수 있을까. 『穌齋先生文集』 卷之四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초대된 사람은 노수신이다. 이 시를 해석하기 이전에 노수신이 어떤 상황에서 이 시를 지었는지 안다고 좀 더 이해하기 쉽다. 노..
정사룡이 한시로 쓴 용비어천가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초대된 작가는 정사룡이다. 이 글은 권하 64번에서 최치원의 「등윤주자화사(登潤州慈和寺)」를 발표한 이후 두 번째로 하는 발표다. 그래서 열심히 준비했지만 아쉽게도 완전히 포인트가 엇나갔고 해석도 많은 부분이 틀렸다. 아직도 한시를 보는 게 많이 서툴다는 게 느껴진다. 이번 시는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려 말에 왜구가 금강으로 진출해서 몰리고 몰리다 남원지방까지 내려갔고 이성계가 출진하여 황산에서 왜구의 적장인 아지발도를 죽이고 왜구를 섬멸했다. 이번 시는 바로 이런 사실을 담고 있는 영사시(詠史詩)라고 할 수 있다. 이성계가 나오면 당연히 한나라 고조인 유방과 매칭시키곤 한다. 유방은 농민출신으로 이미 엄청난 세력을 유지하..
기심을 잊은 이행이 여행하며 쓴 한시 그렇다면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인용된 이행의 「대흥동도중(大興洞途中)」이라는 시는 여행시의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한 것 중에 어디에 포함되는지를 보는 것도 재밌는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선 전편을 본 후에 어디에 들어갈지 각자 생각해보며 정리해보도록 하자. 芒鞋藜杖木綿衣 짚신 신고 명아주 지팡이 짚고 목면 입고 나니까, 未覺吾生與願違 나의 삶이 원하는 것과 어긋나지 않는구나. 塵土十年寧有是 속세에 10년 동안 어찌 이것이 있었겠나. 溪山終日便忘機 산수 속에서 종일토록 문득 기심마저 잊었네. 多情谷鳥勸歸去 다정한 골짜기의 새는 돌아가길 권하고 一笑野僧無是非 한바탕 웃는 들의 스님은 시비를 안 따지네. 更着詩翁哦妙句 다시 시옹이 붙어서 묘한 시구 읊조리..
여행을 담은 한시의 유형들, 그리고 여행을 기록할 수 있는 정신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초대된 인물은 이행이다. 이 시는 대흥동으로 가는 도중에 쓴 시다. 이런 식의 여행 도중에 써낸 몇 편의 시의 내용을 살펴보자. 유몽인이 쓴 「양양도중(襄陽途中)」이란 한시에선 유종원이 쓴 「포사자설(捕蛇者說)」처럼 현장에서 직접 본 그대로 세금문제로 핍박받는 민심을 드러냈으며, 성간이 쓴 「도중(途中)」이라는 한시에선 마치 내가 같이 여행을 하는 듯이 핍진하게 여행 도중의 풍경을 그려냈으며, 이곡이 쓴 「도중피우유감(途中避雨有感)」이라는 한시에선 길에서 만난 비를 피하러 큰 저택에 들어갔다가 뜻밖의 인생무상을 맛본 경험담을 서술했으며, 권필이 쓴 「도중(途中)」이라는 한시에선 당시풍의 대가답게 여행 도중의 한 상..
속세를 벗어나 사찰에 들어가야만 보이는 것을 노래한 박은 『소화시평』 권하 64번에서 네 번째로 초대된 인물은 박은이다. 이번 시에서 박은 복령사라는 사찰을 노래하고 있다. 재밌는 점은 조선시대를 생각하면 ‘억불숭유(抑佛崇儒)’가 떠오르며 스님이나 사찰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있을 것 같고 배제하려는 마음이 있을 것 같지만 그러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조선이 건국되기 이전에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엔 국교가 불교였을 정도였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심상에 불교는 깊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마치 지금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고 합리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그 안엔 유교관이 자리하고 있는 것과 같다. 600년 이상을 유교국가의 이상 속에서 살았으니 그게 다른 사상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순..
영사시에 담긴 서글픈 마음을 담아낸 성현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세 번째로 초대된 사람은 성현이다. 조선 초기에 서거정과 마찬가지로 세조의 왕위 찬탈과 같은 여러 사건들이 발생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일신을 잘 보전하여 부침도 없이 벼슬살이를 했던 관각문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살아 있을 땐 부침이 없었다 해도 죽고 나선 무오사화에 휘말리며 그의 시체에 매질을 가하게 되는 ‘부관참시’를 당하게 되었으니 이걸 다행이라 할까, 불행이라 할까. 鵠嶺凌空紫翠浮 송악산이 하늘을 침범해서 붉고 푸른 기운이 서려있고, 龍蟠虎踞擁神州 용 앉고 범이 앉아 도성을 끌어안았네. 康安殿上松千夫 강안전 위에 소나무 천 그루. 威鳳樓前土一丘 위봉루 앞에 흙 만한 언덕이네. 羅綺香消春獨在 여인 향기 사라진 채 봄만 홀로 있고 ..
도인을 칭송하는 품격 있는 김시습의 한시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초대된 사람은 김시습이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하여 산지를 떠돌았던 시인이자 문인인 김시습은 유교일색으로 변해가는 조선사회에 유불도를 망라하는 사상세계를 구축한 반항아이기도 했다. 김시습이 쓴 시를 해석했었는데 스터디를 하면서 완전히 포커스가 엇나갔다는 걸 느꼈다. 그건 애초에 전제해둔 방향이 잘못된 데서 비롯된 거였다. 나는 이 시를 해석할 때 ‘이 시는 김시습이 지은 것이니 당연히 김시습의 얘기를 담은 거겠지’라는 점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해석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내용 자체가 도통한 스님과 같은 시였기에 김시습의 사상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증준상인(贈峻上人)」이란 시처럼 명약관화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문학이 그렇듯 시를 ..
슬픈 정감으로도, 시원한 정감으로도 읽히는 기이한 김종직의 한시 『소화시평』 권하 64번에서 두 번째로 초대된 사람은 김종직이다. 이미 권상 62번에서 그의 시 세계와 왜 그런 시를 쓰게 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본 적이 있으니, 그 내용과 함께 이번 편에 소개된 시를 본다면 그를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차청심루운(次淸心樓韻)」이라는 시를 이해하기 위해선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청심루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여주에 있는 누각으로 한양에서 머물던 그가 선산부사로 가기 위해 한양을 떠나며 여주 청심루에 들러 그곳 누각의 주인을 만나려 했지만 만나지 못했고 그때의 누각에 오른 소감을 적은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를 쓰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관수루 제영시(觀水樓 題詠詩)」를 보면..
늙음의 여유로움이 담긴 서거정의 한시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처음으로 초대받은 사람은 서거정이다. 서거정은 조선시대의 뭇 학자들과는 달리 흔한 유배조차 가지 않았으며 임금의 총애를 받아 외직조차 맡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는 언제나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고 그 권력에서 밀려나지 않았다. 이렇게만 보면 그가 살았던 시기는 권력이 안정되고 문제가 없던 시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기는 세조의 왕위찬탈과 단종복위가 일어나던 혼란의 시기였다. 그런데도 그런 변화무쌍한 권력의 흐름 속에서도 목숨 부지를 했을 뿐만 아니라 권력의 중심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가 얼마나 처세술이 있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가 있다. 여기에 인용된 시는 아마도 그가 벼슬에서 물러나 지내던 말년 때의 시일 ..
과거를 회상할 이유를 알려준 이색의 시 『소화시평』 권하 64번에서 네 번째로 초대받은 작가는 목은 이색이다. 그의 이력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는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대표적인 작가로 고려 말기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고려 왕들을 위해 한 몸 불살라 최선을 다했고 조선의 건국을 반대했었다. 그는 고려 뿐 아니라 원나라에 들어가 과거에 급제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으며 원나라와 고려를 오가며 눈 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그런 자신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인용된 「억산중(憶山中)」이란 시는 확 와 닿는다. 그건 마치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던 중년 남성이 어느 날 갑자기 “정신없이 살다 보니 막상 젊을 때 꿈꿨던 대로 살고 있는지 회한도 들고, 그때 친구와 밤하..
여행을 담는 한시의 품격 『소화시평』 권하 64번의 작가는 이제현이다. 이제현이 지은 「팔월십칠일 방주향아미산(八月十七日 放舟向峨眉山)」을 보기 위해선 그가 왜 원나라의 아미산에 갔는지 아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는 15살이던 1301년에 과거에 급제했고 당시의 유력자인 권부(權溥)의 사위가 되었다. 그만큼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다는 얘기이다. 그렇게 잘 나가며 여러 벼슬을 맡다가 28살이던 1314년에 충선왕으로 부름을 받아 원나라 연경(燕京)의 만권당(萬卷堂)에 머물게 되었고 원나라 여러 선비들과 교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30살이던 1316년에 충선왕을 대신하여 아미산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3개월 동안 서촉(西蜀) 지방을 다녀오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시의 배경인 아미산은 이때 가게 된 거라는 ..
이규보가 지은 아부시, 화려한데도 씁쓸한 이유 『소화시평』 권하 64번에서 두 번째로 인용된 시의 주인공은 이규보다. 최치원 다음에 이규보가 나온다는 건 물론 홍만종의 개인적인 취향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확 나갔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건 곧 삼국시대엔 최치원을 최고로 치는 것까진 인정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고려 전기엔 괜찮은 시가 없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고려 전기에 활약한 시인 중엔 정지상이나 김부식, 이인로와 같은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의 시는 어떠한 이유에서건 다루지 한 명 정도는 다룰 만한데도 다루지 않았다. 이쯤 되면 홍만종에게 정말 묻고 싶어진다. 이번 편은 좋다는 한시들만을 선별했는데 그 기준이 무언지 궁금하다고, 그리고 고려 전기의 작품을 하나도 들지 않은 건 왜 그런지 궁금하다고 말이..
등윤주자화사(登潤州慈和寺)를 여러 번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이유 『소화시평』 권하 64번의 첫 번째 시는 최치원의 「등윤주자화사(登潤州慈和寺)」라는 시다. 이 시는 워낙 유명해서 문학사를 다루는 책이나 한시를 다루는 책에선 빠짐없이 인용되는 시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금까지 아무리 못해도 10번 이상은 읽었을 것이고 그만큼 내용도 분명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선 기존에 읽던 방식대로 시를 읽게 되어 있고 그 방식대로 발표 준비를 하게 되어 있다. 당연히 그 방식이 옳은 줄만 아니, 지금까지 이해한 방식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스터디를 하면서 기존에 이해한 방식이 얼마나 많은 걸 놓치게 만들고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
작은 차이가 천지의 뒤틀림을 낳는다 『소화시평』 권하 64번에선 홍만종이 생각하는 최고의 시를 선별하여 수록하고 그에 대한 평을 하고 있다. 시평은 ‘일찍이 ~함에 감탄하지 않은 적이 없다[未嘗不歎]’라는 통일된 양식으로 ‘탄(歎)’이란 글자 뒤에 ‘감개(感慨)ㆍ장려(壯麗)ㆍ정치(精緻)’와 같은 두 글자의 단어들이 들어간다. 이쯤에서 잠시 생각하고 넘어갔으면 하는 게 있다. 그건 당신은 최근에 문학작품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나서 감탄해본 적이 있냐는 것이다. 나의 경우를 얘기하자면 예전에 돈도 궁하고 지지리도 궁상 맞게 공부하던 시기엔 꽤나 감명 깊게 본 영화들이 많았었다. 그런데 재밌게도 막상 단재학교에 들어가 영화팀 교사가 되었고 아이들과 매년 전주와 부산의 국제영화제에 다니며 영화를 ..
21자로 표현된 장유의 심리학 보고서 『소화시평』 권하 63번의 주인공은 장유다. 지금의 나에게 계곡 장유는 「회맹후반교석물사연양공신사전(會盟後頒敎錫物賜宴兩功臣謝箋)」이라는 악명 높은 글을 쓴 장본인으로 남아 있다. 한문실력이 좋지도 못하지만 그럼에도 웬만한 글들은 여러 가지를 조합하다보면 해석이 되는 정도다. 하지만 이 글은 길지도 않음에도, 그리고 해석본까지 참고하면서 보는 데도 도무지 해석도 안 되고 이해가 되지 않는 곳 투성이다. 임금께 드리는 글답게 전고(典故)가 가득 차 있어 산 넘어 산이듯 전고를 지나면 또 다시 전고가 나오는 상황이 반복되니 말이다. 도대체 왜 이런 글을 썼냐고 따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막고 품는 수밖에 없다. 이렇듯 나에겐 어려운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데 홍만..
연원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소화시평』 권하 62번에선 연원이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연원이 있다는 건 무엇일까? 그건 다름 아닌 근본이 있다는 얘기이고 기본이 갖춰져 있다는 얘기이다. 정약용이 쓴 「원교(原敎)」라는 글을 통해 얘기해보자면, 다산은 효제충신(孝弟慈忠信)과 같은 것들을 하기 위해선 인의(仁義)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인의(仁義)가 밑바탕에 있는 사람은 어른을 만나면 공경할 것이고, 상사를 만나면 충성할 것이며, 자식을 만나면 사랑할 것이다. 그런데 이건 그때그때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니라 근본에 인의(仁義)만 있다면 저절로 행해질 수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이처럼 시적 재능도 힘차느냐, 부드러우면서도 담백하느냐 하는 것은 그런 자질을 연마하는 것..
빙탄상애(氷炭相愛)의 감성을 담은 소암의 시 儒言實理釋言空 선비는 실리를 말하고 스님은 공(空)을 말하니, 氷炭難盛一器中 얼음과 숯을 한 그릇에 담기 어려워라. 惟有秋山綠蘿月 오직 가을 산의 푸른 넝쿨 사이로 비추는 달빛이 있어야 上人淸興與吾同 스님의 맑은 흥이 나와 같구려. 『소화시평』 권하 61번 맨 마지막에 인용된 시는 임숙영의 시다. 임숙영은 이미 권필이 쓴 「임무숙이 삭과됐다는 걸 듣고[聞任茂叔削科]」라는 시의 주인공을 말했던 인물이다. 그는 과거에 급제했고 광해군과의 대책을 나누는 자리에서 광해군의 비인 유씨의 친족(유희사, 유희분)이 국정을 좌우하며 고혈을 빼먹고 있는 걸 보고 광해군에게 버드나무[柳]에 빗대어 뼈 있는 얘기를 했다가 유희분의 눈 밖에 나서 관직이 삭과되었다가 다시 급제하는 ..
스님이 보고 싶었던 동악의 시 『소화시평』 권하 61번에선 조선시대의 학자들이 스님에게 준 시 네 편을 모아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미 앞선 편에서 호음이 준 시와 동고가 준 시를 보며 어떤 부분이 이색적이었는지를 살펴봤기에, 이젠 그 다음에 나오는 사람인 동악시를 중심으로 살펴볼 차례다. 老來何事喜逢僧 늘그막에 무슨 일로 스님 보길 좋아하나? 欲訪名山病未能 명산을 방문하려 해도 병들어 할 수 없어서지. 花落矮簷春晝永 꽃 지는 낮은 처마엔 봄날이 기나긴데, 夢中皆骨碧層層 꿈속에서 개골산은 층층이 푸르더이다. 동악의 시는 1~2구가 하나로 이어져 의미를 만들어낸다. 마치 이백의 「산중답인(山中答人)」이라는 시처럼 1구에서 스스로 묻고 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자문..
은근히 스님에 대한 마음을 드러낸 동고의 시 白雲涵影古溪寒 흰 구름의 그림자를 담아 놓으니 오래된 시내는 차고 和月時時上石壇 달과 때때로 석단에 오르네. 詩在山中自奇絶 시는 산 속에 있어야 절로 기이해지는데, 枉尋岐路太漫漫 잘못 갈림길을 찾아 너무나 오랫동안 헤매었네. 『소화시평』 권하 61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시는 동고의 시다. 호음의 시는 스님 자체를 중심에 놓고 그를 인정해주는 말들로 가득 찬 반면에 동고의 시엔 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나오지 않는다. 즉 두 사람의 시는 접근부터 완벽히 달랐던 셈이고, 그 말은 곧 이 시를 쓰려했던 이유가 완전히 달랐던 셈이다. 1구와 2구엔 스님에게 준 시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산 속 제단의 모습만 드러나고 있다. 1구 자체는 시내를 매우 환상적으로 묘사하..
산이 된 스님을 담은 호음의 시 『소화시평』 권하 61번은 서두부터 간단명료하게 ‘옛 사람이 스님에게 준 시가 많다[古人贈僧詩, 多矣].’라고 말하며 훅 치고 들어온다. 저번에 김형술 교수의 특강과 박동섭 교수의 특강에 대한 후기를 쓸 때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시키기 위해 세심하게 결을 가다듬으며 서두를 정성껏 전개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두 분의 교수님처럼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분위기 자체를 압도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처럼 이 글에서 홍만종은 말하고 싶은 걸 짧고도 굵게 단번에 내뱉으며 연이어 네 편의 시를 첨부하며 마지막엔 네 편에 시를 단 두 글자의 평가하며 마무리 짓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아주 심플하면서도 말하고..
조선과 불교, 선비와 불교 고려와 조선을 나누는 기준점을 왕씨에서 이씨로 왕조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삼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단순히 왕의 성씨가 바뀐 것만으로는 백성들에게 새 왕조에 대한 인식이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 후반기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이 하나로 모이도록 만든 건 송나라 때 주희에 의해 체계화되어 수입된 주자학(성리학)이라는 것이었고 그건 고려 후기 신진사대부에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져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는 단초가 되었던 것이다. 이중에 일개 신진학자임에도 뭔가 고려라는 사회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한 명의 학자는 맹자의 ‘무도한 임금은 그저 한 명의 외로운 사내(獨夫)에 불과하기에 죽이거나 갈아치우는 것도 가능하..
의고파 시의 특징과 이안눌의 시가 굳센 이유 『소화시평』 권하 54번의 주인공도 앞에서부터 쭉 살펴봤다시피 이안눌(1571~1637)이다. 아무래도 홍만종(1637~1688)의 입장에선 그나마 2세대 위의 선배로 가장 많은 이야기들이 돌고 있고 많은 자료들도 남아 있는 이안눌에 대한 글을 쓰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러니 권하 50번부터는 계속해서 이안눌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며 그의 시적 재능을 평가하고 그와 관련 있었던 양경우 시와의 비교(50번, 51번)를 했었고, 이번 편에선 석주 시와의 비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50번 감상글에서도 썼다시피 이안눌은 의고파다. 의고파는 ‘문장은 반드시 진나라와 한나라 때의 문장으로 짓고 시는 반드시 성당의 시체로 짓는다[文必秦漢, 詩必盛唐].’를 핵심적인 기치로 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