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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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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2014년 1월에 좋은교사운동과 한국평화교육훈련원(KOPI)이 연합하여 25년 넘게 회복적 정의를 실천해온 캐나다 벤쿠버 지역의 회복적 정의 단체들을 방문했다. 이제 막 회복적 실천의 첫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우리로서는, 먼저 시작한 단체와 지역을 방문하여 배우는 것이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캐나다 방문기의 자세한 내용은 좋은교사운동 www.goodleacher.org 또는 회복적생활교육연구회 http:// cale.daum.net/RD-goodteacher를 통해 관련된 자료를 다운받을 수 있다.】 우리가 방문한 단체는 캐나다 벤쿠버에서 활동하고 있는 CJI(Community Justice Initiatives)와 ARJAA(Abb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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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마르크스에게서 20대의 열정을 배우다 우치다 타츠루ㆍ이시카와 야스히로 지음김경원 옮김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는 말 마르크스 수사학의 결정체, 『공산당 선언』편지 1 이시카와가 우치다에게편지 2 우치다가 이시카와에게 청년 마르크스를 만나다, 『유대인 문제』ㆍ『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편지 3 이시카와가 우치다에게편지 4 우치다가 이시카와에게 인간에 대한 연민, 그 위대한 시작, 『경제학-철학 수고』편지 5 이시카와가 우치다에게편지 6 우치다가 이시카와에게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 『독일 이데올로기』편지 7 이시카와가 우치다에게편지 8 우치다가 이시카와에게 나오는 말 인용목차 /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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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한 학급의 작은 도전이 세상을 바꾼다 1. 생생한 변화의 목소리가 들린다 근본적인 변혁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는 위기를 맞아 낡은 옛것을 떼어내는 과정이며, 세 번째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두 번째 그 사이의 국면, 즉 ‘이행의 시간’은 매우 긴장감이 넘친다. 이런 한계 영역에서는 넓은 것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며, 새것은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조안나 메이시 이 시점에서 학교 현장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속한 좋은교사운동에서는 2011년에 생활지도의 새로운 대안으로 ‘회복적 생활교육’을 제안한 뒤, 그간 회원 중심으로 현장 적용과 실험을 해왔다. 특별히 2013년에는 ‘회복적 생활교육 실천가 1년 과정’을 가졌는데. 매달 1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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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교사가 변화할 때 성장하는 아이들 1. “저희가 진정 원하는 건, 게임이 아니에요.” 누구한테 이익이 되길래. 학생들에게 이것은 하도록 또는 저것은 하지 못하도록 요구하는가? 이 질문에서 우리가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학생들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대답이다. - 알피 콘 ‘아이들과의 싸움에서는 밀려서는 안 돼. 아이들과의 기 싸움에서 이 겨야 해. 그렇지 않으면, 두고두고 이 아이에게 휘둘리게 될 거야.’ 내게 떠오르는 이러한 생각은 아이들과 갈등이 분출되어 긴장하고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를 지배해서 아이와 격돌하게 했다. 결국 나는 학생과 처절한 싸움을 시작하고 마침내 승리한다. 하지만, 기쁘지 않고 행복하지 않았다. 잠시 안심은 되지만. 그 학생과의 관계..
3장 회복이 있는 학급 공동체 만들기 1. 아픔을 같이하고 함께 나아가다 열대우림에서는 어느 생명체든 모두 완전히 참여하고, 모두 자기 자원을 전부 재활용하면서 협력하고 일하며, 모든 생산과 서비스는 모든 생명체가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으로 분배한다. 그것이 지속가능성이다. -엘리자벳 사무리스(Elisabet Sahtouris) 중1 민호는 다른 사람을 직접 괴롭히기보다 자신보다 약한 친구들을 시켜서 더 약한 친구들을 괴롭혔다. 티격태격하는 친구들 사이에 껴서싸울 일을 말로 하느냐며, 싸움을 독려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 일로 인해서 혼나는 사람은 민호가 아니었기 때문에 민호의 잘못은 늘 그렇게 가려졌다. 뚜렷하게 증거를 보이지 않는 민호를 지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민호는 많은 사..
2장 아이들을 마음으로 만날 수 있을까 1. 처벌이 아닌, 자발적 책임으로 많은 경우 공감은 연민과 동정의 마음을 키위주고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준다. -로레인 수투츠만 암스투츠(Lorraino Stutzman Amstutz) 우리가 겪고 있는 교육 고통은 한마디로 ‘단절의 고통’이다. 자신의 내면과 분리된 삶을 살고 있는 교사와 학생, 동료나 사제 사이의 관계 단절, 교육적 가치와 단절된 채 경제적 가치에 지배당한 교육…. 이로 인해 교육은 왜곡되고, 학교 현장은 붕괴되고 있다. 단절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법은 ‘연결’이다. 연결이란 분리되지 않은 온전함이다. 내면과 외면이 분리되지 않는 삶을 사는 개인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생기 있게 살아갈 수 있다. 친구와 갖는 유대감과 공동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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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한계에 부딪힌 생활지도 1. 길 잃은 교사 교실은 ‘ 진리의 규칙’이 지배하는 세계의 축소판이 된다. 그 안에서 우리는 그 규칙 아래서 아는 법과 사는 법을 배운다. -파커 파머(Parker J. Palmer) 일상화된 학교의 폭력 문화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서 벌어진 일이다. 바쁜 직장맘을 둔 덕에 아이는 동생을 챙겨야 하는 일이 잦았다. 그날도 아이에게 학교 마치고 동생을 유치원에서 데려오라고 했는데, 그때 딸 아이가 말했다. “짱나!” 딸아이의 ‘짱 나’라는 표현에 나는 깜짝 놀랐다. 평소에 쓰던 말이아 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 짱 나가 뭐야! 그런 말쓸 거야 안 쓸거야?” 다그쳤지만 그 후에도 아이의 입에서 욕설이 새어 나오는 것을 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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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교사가 진정 원하는 것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는 모든 물음들에 대해 인내하라. 물음 그 자체를 사랑하라. 이제 그 물음 속에 살라. 그러면 서서히.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먼 어느 날, 그 답을 살고 있으리라. - 라이너 마리아 릴케(Rene Maria Rilke) 선생님은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종례를 하려고 교실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무겁다. 4~5월이 되면서 아이들은 소란스러워지고 말도 도통 듣지 않는다. 옆에 있던 선생님과 이런 문제에 대해 의논하니, 3월 학기 초에 꽉 잡지 않아서 그렇단다. 3월 한 달은 꼭 잡은 뒤에 서서히 풀어주어야 학생들이 담임교사에게 고마워하면서 말을 잘 들으니까 지금이라도 꽉 잡으라고 조언하신다. 아이들은 조례와 종례 시간에 자리에 잘 앉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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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회복의 교육’을 통한 ‘교육의 회복’을 꿈꾸며… 저는 ‘회복’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최근 교육계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창의성, 새로움, 혁신 등은 저에게 무언가 없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으로 다가오는데, ‘회복’은 우리가 꿈꾸는 좋은 상태가 이미 존재했다고 전제하기에 원래 있던 것을 기억하고 되찾으면 된다는 안도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만든다는 부담 없이 그것은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가능한 것으로 제게 다가와서 단기간에 교육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며 잔뜩 힘주고 긴장하던 저를 조금은 여유롭게 합니다. 지금의 교육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교육이 원래 지닌 본질과 그 소중한 가치를 다시 찾는 것, 곧 ‘회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교육의 가치가 정말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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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생활교육 목차 박숙영 지음 추천사 프롤로그 : 교사가 진정 원하는 것 1장 한계에 부딪힌 생활지도1. 길 잃은 교사2. “나는 올바른 지도법을 배운 적이 없다”3.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4. 폭력을 부르는 감정, 수치심 2장 아이들을 마음으로 만날 수 있을까1. 처벌이 아닌, 자발적 책임으로2. 신뢰와 존중이 깃든 생활교육3. 모두에게 안전한 학급으로 가는 길4. 서로 존중하는 관계일 때 받는 선물 3장 회복이 있는 학급 공동체 만들기1. 아픔을 같이하고 함께 나아가다2. 관계가 우선인 학급3. 있는 그대로 만날 때 비로소 변화한다4. 갈등이 성장과 배움의 기회가 되다5. 동등함이 주는 힘, 서클 회의6. 모두가 동의한 규칙일 때 즐겁다 4장 교사가 변화할 때 성장하는 아이들1. “저..
우리 한시를 읽다 목차 이종묵(李鍾默) 프롤로그. 시를 읽고 즐기는 법 정조 - 綱目講義 湘素雜記 - 推敲 이규보 - 驅詩魔文 이황 - 陶山十二曲跋 이종묵 - 16~17세기 한시사 연구 1. 시를 소리 내어 읽는 맛 을지문덕 - 與隋將于仲文 정법사 - 詠孤石 고운 - 十二乘船渡海來 / 최치원 - 巫峽重峯之歲 최치원 - 秋夜雨中 이백 - 獨坐敬亭山 도연명 - 詠貧士 최치원 - 題伽倻山讀書堂 김종직 - 紅流洞 홍만종 – 소화시평 상권65 황정욱 - 送人赴遂安郡 2. 잘 빚은 항아리와 잘 짜인 시 김지장 - 送童子下山 정법사 - 詠孤石 박인량 - 使宋過泗州龜山寺 박인범 - 徑州龍朔寺 정지상 - 開聖寺 八尺房 정지상 - 題邊山蘇來寺 최치원 - 登潤州慈和寺 김부식 - 觀瀾寺樓 惠文 - 普賢院 3. 시 속에 울려 ..
에필로그. 우리 한시의 특질 ① 조선의 풍물과 풍속을 담은 조선시 1. 한국 한시는 중국 한시를 닮으려 했다. 1) 중국 한시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누추하다 비난을 퍼부음. 2) 어떤 이들은 시가 뛰어나다는 뜻으로 ‘압록강 동쪽의 구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였음. 2. 우리 시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다 1) 조선 후기에 우리 시에 대한 인식이 생김. 2) 박지원(朴趾源)은 「영처고서(嬰處稿序)」에서 조선풍으로 불러야 될 것이라 함. 3. 정약용(丁若鏞)의 「노인일쾌사육수효향산체 기오(老人一快事六首效香山體 其五)」 老人一快事 縱筆寫狂詞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붓 가는 대로 미친 말을 쓰는 것이다. 競病不必拘 推敲不必遲 험운(險韻)하는 것에 굳이 구애될 게 없고 퇴고로 굳이 더딜 게 없다. 興到卽運..
24. 목민관이 시로 그린 유민도 ① 유민도와 정약용 1. 유민도(流民圖) 1)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대학가에는 고통 받는 민중을 그린 걸개그림이 걸려 있곤 했다. 2) 유민도의 연원은 송나라 정협(鄭俠)에서 찾는다. 정협은 여러 차례 왕안석에게 서찰을 보내어 신법이 백성들에게 해를 입힌다고 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얼마 후 안상문의 수문장이 되는데 이때 큰 가뭄이 들어 유리걸식하는 백성들이 많았음. 정협은 이들 모습을 그려 상소문을 바치자 신종은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혁파함. 3) 조선에선 임진왜란 발발한 지 1년이 된 1593년 5월 9일 『선조실록』에는 죽은 어미의 젖을 물고 있는 아이,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자, 구걸하는 남녀, 자식을 버려 나무뿌리에 묶어 놓은 어미 등이 그..
23. 생활의 발견과 일상의 시 ① 일상을 담은 한시 1. 한시의 역할 1) 시는 교양이며 생활이 일부임. 2) 좋은 일로 축하해줄 때도, 벗이나 친지가 죽는 슬픔을 맞이할 때도, 벗이 찾아오거나 떠나갈 때도 시를 지었음. 3)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을 소재한 시들이 많을 수밖에 없음. 2. 서거정(徐居正)의 일상시 1) 서거정은 쉽게 시를 썼던 사람으로 하루에 10수의 시를 지은 적도 있었음. 2) 늘 함께 시를 주고받는 벗들이 있어 그들이 아들을 낳아도, 만나려다 병으로 만나지 못해도, 꽃이나 약재 등 선물을 받아도 시를 지었음. 3. 서거정의 시 誰識酒腸淺 自知詩料貧 뉘 알랴 술 창자 작은 것을, 절로 아네 시의 재료가 빈천하다는 걸. 大醉逢妻諫 苦吟被僕嗔 만취하여 아내 잔소리 듣고, 괴롭게 읊..
22. 시에 담은 풍속화 ① 조선의 풍경을 담은 시들 1. 산수화(山水畵)의 특징 1) 사람을 잘 그리지 않고, 그린다 해도 신선의 풍모를 지니게 그림. 2) 우리 회화사에서 조선의 산수에 조선 옷과 갓을 쓴 조선 사람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8세기 무렵부터임. 3) 정선(鄭敾)이 조선의 산수를 화폭에 담아내고 또 그 안에 조선에 사는 사람을 그림. 2. 진시(眞詩) 운동이 펼쳐지다 1) 정선(鄭敾)이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김창협(金昌協)과 김창흡(金昌翕) 형제가 진경(眞景)과 진정(眞情)을 드러낸 진시(眞詩)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계승한 것임. 2) 16세기 후반부터 당시를 배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고 그 중 뛰어난 작품은 당나라 시인의 시집에 넣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
21. 눈물과 통곡이 없는 만사 ① 진실을 담은 만사 1. 죽음은 예나 지금이나 슬프지만 지금은 죽음의 풍경이 바뀌었고, 문학사에서는 만사(挽詞)나 제문(祭文)이 사라짐. 1) 만사는 통곡을 하기 위해 지은 게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여 저 세상으로 잘 가라는 인사를 하기 위해 지음. 2) 만사엔 과장이 있어선 안 되며 죽은 자의 생애를 얼마나 압축적으로 표현했는가가 중요함. 2. 노수신(盧守愼)의 「만김대간(挽金大諫)」 珍島通南海 丹陽近始安 진주는 남해와 통하고 단양은 시안에 가깝다. 風霜廿載外 雨露兩朝間 풍상으로 20년을 시달렸으나 은혜를 두 왕조에서 누렸구나. 白首驚時晩 靑雲保歲寒 흰머리 느즈막한 때가 놀라운데 청운에도 세한의 지조 지켰네. 平生壯夫淚 一灑在桐山 평생 함께 한 장부의 눈물, ..
20. 길을 나서는 시인 ① 김시습의 산수벽이 가득한 시 1. 어떤 것에 몰두하는 것을 벽(癖)이라 하며 조선 시인 중엔 산수의 벽이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1) 산과 물에 벽이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산과 물을 찾아 나선다. 2) 조선 전기의 김시습(金時習)이, 후기엔 김창흡(金昌翕)이 대표적임. 김시습(金時習)은 ‘산수에 벽이 있어 시로 늙었다[癖於山水老於詩]’라고 한 대로 평생을 산수에서 노닐면서 지를 지음. 2. 김시습(金時習)의 「산행즉사(山行卽事)」 兒捕蜻蜓翁補籬 아이 잠자리 잡고, 노인 울타리 보수하고 小谿春水浴鷺鶿 작은 시내 봄물엔 가마우지 멱 감네. 春山斷處歸程遠 봄산 끊어진 곳에 귀로 멀기만 하니, 橫擔烏藤一箇枝 등나무 한 가지 어깨에 비껴 매네. 1) 세상이 싫어 산속에 들어갔지만 가..
19. 점철성금(點鐵成金)의 시학 ① 문학을 새롭게 하기 위해 일상어를 쓰다 1. 이속위아(以俗爲雅), 비속어를 잘 사용하여 새로움을 얻는 방법 1) 황정견(黃庭堅)은 문학이 새로워질 수 있는 대안으로 ‘이속위아(以俗爲雅)’와 ‘이고위신(以古爲新)’을 대안으로 내세움. 2) “비속한 것을 이용하여 우아하게 하고 옛것을 사용하여 새롭게 하는 것은 손자와 오기의 병법처럼 백전백승이다.”라고 함. 3) 시를 짓는 사람들은 비속한 단어를 잘 쓰려 하지 않는데 비속한 단어를 잘 구사하면 새로움을 얻을 수 있었음. 4) 18세기 문인 성섭(成涉)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필원산어(筆苑散語)』에서는 “대게 시인들이 용사(用事)한 것이 비록 이어(俚語)라 하더라도 점화(點化)를 잘하면 점철성금(點綴成金)이 될 수 있다..
18. 짧은 노래에 담은 노래 ① 정철의 소리가 있는 오언절구 1. 오언절구는 짧은 시형이기에 좋은 작품을 짓기 어려움. 1) 우리나라 문집엔 칠언절구>칠언율시>오언율시>오언절구 순으로 담겨 있음. 2) 두보(杜甫)나 한유(韓愈)ㆍ소식(蘇軾) 등의 이름을 날리던 시인조차도 오언절구에 뛰어나진 못했다는 평가를 받음. 2. 5언절구의 성행 1) 우리나라에선 16세기 후반 임억령(林億齡), 백광훈(白光勳), 최경창(崔慶昌), 임제(林悌)와 같은 호남의 문인들 중심으로 제작됨. 2) 절구(絶句)에 당시(唐詩)를 읽는 듯한 흥감을 불어넣은 명편을 제작함. 3) 정철(鄭澈)은 절구에 뛰어난 시인인데, 특히 오언절구에 많은 힘을 기울여 30%나 차지할 정도임. 3. 정철(鄭澈)의 「추일작(秋日作)」 山雨夜鳴竹 草虫秋..
17. 당시와 비슷해지기 ① 청신쇄락(淸新灑落)한 시 1. 이이가 중국 한시를 선발하여 이이(李珥)가 지은 『정언묘선서(精言妙選序)』에서 밝힌 시를 선발한 기준 1) 충담소산(沖淡蕭散): 이 기준을 먼저 들고 수식에 힘쓰지 않아야 자연스러움 속에 오묘한 멋이 깊어진다고 함. 2) 한미청적(閑美淸適): 조용한 가운데 유유자적하며 흥겨움에서 시가 나오므로 사색으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시를 읽으면 권세나 이익, 명예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고 함. 3) 청신쇄락(淸新灑落): 매미가 가을바람에 이슬을 맞아 허물을 벗은 것처럼 밥을 지어 먹는 인간의 입에서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위장 속의 비릿한 피를 씻어내어 영혼과 골격이 맑아져 인간세상의 냄새가 마음을 더럽히지 못한다고 함. 2. 이이(李珥)가..
16. 풍경에 담은 감정의 변화 ① 풍경에 시인의 감정이 담겨 1. 한시와 풍경 1) 풍경 속에 감정이 이입되기도 하고 풍경이 감정과 혼융(混融)되기도 함. 2) 창작방법은 선경후정(先景後情)으로 선경은 시인의 감정을 축발하는 흥의 효과가 있음. 3) 또 다른 창작방법으론 부(賦), 비(比), 흥(興)이 있음. 부(賦) 비(比) 흥(興) 시경 있는 사실을 펼쳐내 그대로 말하는 것. 敷陳其事而直言之者也 저 물건을 끌어 이 물건을 비유하는 것. 以彼物比此物也 먼저 다른 물건을 말함으로 읊고자 하는 내용을 끄집어 내는 것. 先言他物以引起所詠之詞也 신경준 부는 알기가 쉽다. 賦知之易. 위 구절엔 비록 저것이 이것과 같다는 등의 말이 있지만, 아래 구절엔 대응하는 말이 없는 것. 上雖有彼如斯矣等語, 而下無對應之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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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진정한 벗을 위한 노래 ① 이행과 박은의 사귐 1. 벗에 대한 정의 1) 박지원(朴趾源)은 「회성원집발(繪聲園集跋)」에서 ‘두 번째의 나[第二吾]’라 하기도 하고, ‘일이 잘 되도록 주선하는 사람[周旋人]’이라고도 함. 2) 이덕무(李德懋)는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서 “若得一知己, 我當十年種桑. 一年飼蠶, 手染五絲, 十日成一色, 五十日成五色. 曬之以陽春之煦, 使弱妻, 持百鍊金針, 繡我知己面. 裝以異錦, 軸以古玉. 高山峨峨, 流水洋洋, 張于其間, 相對無言, 薄暮懷而歸也.” 3) 맹자는 ‘상우천고(尙友千古)’라 말함. 2. 이행(李荇)과 박은(朴誾)의 인연 1) 두 사람은 우리 역사에서 내세울 만한 진정한 우정을 나눔. 2) 정조(正祖)는 박은(朴誾)의 시집을 편찬케 하며 「어제제증정읍취헌집권수..
14. 시로 읽는 소설 ① 양반이 사랑을 시로 표현하는 법 1. 시의 정의 1) 음풍농월(吟風弄月)로 아름다운 자연물을 담아낸 것이 많음. 2) 사람 사는 모든 일(벗을 만남, 잔치, 죽은 영혼을 달램, 실의에 빠짐)에 시가 따라다님. 3) 점잖은 양반이기에 조심스러웠던 주제가 바로 사랑에 관한 시를 쓰는 것이었음. 2. 양반이 체통을 구기지 않으면서 사랑을 노래하는 방법 1) 고대 민간의 노래인 악부(樂府)를 본뜨는 것임. 한(漢) 때 민간의 가요를 채집하던 관청이름이며, 그 관청에서 수집된 민간가요를 말함. 당(唐) 때부터 악부 스타일을 흉내낸 의고악부(擬古樂府)가 지어졌고 양반들은 이 악부체를 빌어 사랑을 노래함. 2) 악부는 하나의 정황만 주어져 잇고 또 정황 자체가 구체적이지 않기에 사랑을 노래..
13. 춘흥과 가진 자의 여유 ① 상황에 따라 봄의 느낌은 달라라 1. 구양수(歐陽脩): 산림(山林)의 문학은 그 기운이 고고(枯槁)하고 관각의 문학은 그 기운이 온윤(溫潤)하다고 함. 2. 서거정(徐居正): 「계정집서(桂庭集序)」에서 기상은 관각과 산림과 불교의 세 가지로 나뉘며 뒤로 갈수록 좋지 않다는 인식을 반영함. 「월산대군시집서(月山大君詩集序)」의 내용과 진배없이 관각문학을 우위에 둠. ② 여유로우니 봄이 좋아라 1. 이규보(李奎報)의 「춘망부(春望賦)」 羯鼓聲高 둥둥 북소리에 紅杏齊綻 살구꽃이 활짝 필 때 望神州之麗景 서울의 고운 봄빛을 바라보면서 宸歡洽兮玉觴滿 임금이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此則春望之富貴也 부귀한 자의 봄 구경이요. 彼王孫與公子 왕손과 귀공자가 結豪友以尋芳 벗들과 봄놀이..
12. 금강산을 시에 담는 두 방식 ① 금강산에 대한 이야기 1. 금강산에 긍부정의 평가 1) 강세황(姜世晃): “산에 다니는 것은 인간으로서 첫째가는 고상한 일이다. 그러나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은 가장 저속한 일이다.” 2) 김정희(金正喜)의 「여권이재(與權彛齋)」 21에서 “매양 금강산에서 노닐고 돌아온 사람 가운데 본 것이 들은 것만 못하다고도 하는데, 이 말도 괴이할 것이 없소. 옛날 제갈량 밑에 있던 한 늙은 군졸이 晉 나라 때까지 생존했는데, 혹자가 제갈량에 대해서 묻자, 그는 ‘제갈량이 살았을 때는 보기에 특이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제갈량이 죽은 뒤에는 다시 이와 같은 사람을 보지 못했소’[每遊此山而歸者, 或以爲見不如聞, 亦無恠也. 昔武侯一老卒, 至於晉時尙存, 或有問武侯者, 對云: ‘見武侯生..
11. 풍경 속의 시인 ① 시인이 시속으로 들어가거나 풍경만 묘사하거나 1. 서경시(敍景詩) 1) 감정은 배제하고 맑은 산과 나무만 포치(布置)한 시. 2) 서경시엔 인간세상의 티끌이 없어 이런 시를 읽으면 한여름 시원한 우물물을 마신 것처럼 시원해짐. 2. 이숭인(李崇仁)의 「제승사(題僧舍)」 山北山南細路分 산은 여기저기에 있고 오솔길 나눠지는데 松花含雨落繽粉 송홧가루 비에 젖어 하늘하늘 진다. 道人汲井歸茅舍 스님 우물에서 물 길어 절로 돌아가고 一帶靑烟染白雲 한 줄기 푸른 안개 흰 구름을 물들이네. 1) 이 시는 그림을 보고 지은 것으로, 『지봉유설(芝峯類說)』 『문장부(文章部)』엔 이 시를 보고 스승 이색이 칭찬하여 명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음. 2) 검은 옷을 입은 승려가 시에 등장하지만..
10. 시의 뜻을 호방하게 하는 법 ① 부귀영화해야 호방한 시를 쓸 수 있다? 1. 호방한 스케일의 시를 쓸 수 있는 방법 1) 『맹자(孟子)』 「만장(萬章)」 하8의 얘길 통해 ‘詩格=人格’이란 생각이 퍼짐. 2) 성현(成俔)은 「월산대군시집서(月山大君詩集序)」에서 “보통 사람으로 배우려는 이는 힘쓰고 애써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생각을 두렵게 하여 우환에 젖어들고 공부에 힘을 쓴다. 그런 후에야 쓸 만한 것을 얻어 문장을 짓는데 조탁한 것이 기이함에 힘쓰지만 그 기상은 얇고도 비근한 병폐를 면하지 못한다. 그러나 왕족과 양반은 그렇지가 않다. 사는 곳이 기를 움직이게 하고 기른 것이 몸을 움직이게 하여 거처하는 곳이 높고 보는 것이 원대하여 배움에 힘쓰질 않아도 스스로 유유자적하며, 업을 다듬으려 하지..
9. 시 속의 그림, 그림 속의 시 ① 시 속에 그림이 있다[詩中有畵] 1. 시중유화(詩中有畵): 소식(蘇軾)이 왕유(王維)의 시를 칭찬할 때 했던 말로, 그 이후로 여러 시평에서 쓰임 1) 『소화시평(小華詩評)』 권상 51에서 정도전(鄭道傳)의 「방김거사(訪金居士)」에 대한 평가. 2) 『소화시평(小華詩評)』 권상 62에서 김종직(金宗直)의 「장현촌가(長峴村家)」에 대한 평가. 3) 『동인시화(東人詩話)』 권하 20의 평가 2. 김득신(金得臣)의 「용호(龍湖)/ 용산(龍山)」 古木寒雲裏 秋山白雨邊 흰 눈 속의 고목, 소나기 곁의 가을 산. 暮江風浪起 漁子急回船 저물녘 강에서 풍랑 일어 어부가 급히 배를 돌리는 구나. 1) 정선흥(鄭善興)이란 문신이 이 시가 적힌 부채를 자주 보자 효종이 칭찬을 하고 어..
8. 대동강 부벽루의 한시 기행 ① 대동강과 유적지 1. 옛 노래에 담긴 대동강 1) 손인호의 「한 많은 대동강」: “한 많은 대동강아 대동강 부벽루야 뱃노래가 그립구나. 귀에 익은 수심가를 다시 한 번 불러본다. 편지 한 장 전할 길이 이다지도 없을쏘냐. 아아아, 썼다가 찢어버린 한 많은 대동강아” 2) 나훈아의 「대동강 편지」: “대동강아 내가 왔다, 부벽루야 내가 왔다. 주소 없는 겉봉투에 너의 얼굴 그리다가 눈보라 치던 밤 달도 없던 밤 울면서 떠난 길을 돌아왔다고. 못 본 체하네, 못 본 체하네. 반겨주려마, 한 많은 대동강” 3) 이처럼 대동강은 분단 이래 실향민의 눈물이 어린 장소였음. 2. 대동강의 구조 및 이름 1) 구조: 남강ㆍ무진천ㆍ보통강ㆍ순화강 등과 평양에서 합쳐져 대천을 이룸. 2..
7. 꽃그늘에 어린 미련 ① 울주ㆍ양산ㆍ동래에 시인들의 발길이 머물다 1. 황산강과 시인 1) 울주ㆍ양산ㆍ동래 부근은 천성산 자락을 뒤로 하고 황산강이 흐름. 2)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 권상 33엔 ‘이 일대에 백성들의 집이 대나무 숲 사이에 가물가물 보이는데, 집집마다 남녀가 대나무로 그릇을 만들어 세금과 의식을 해결하는 가난한 마을이었다’고 적혀 있음. 3) 아름다운 황산강 일대에 누정이 일찍부터 발달했기에 시인이 이곳을 찾아 시를 많이 남김. 2. 황산강과 최치원, 김극기 1) 송담서원(松潭書院) 강 쪽에 있던 임경대(臨鏡臺)에서 최치원(崔致遠)이 시를 지었기에 최공대(崔公臺)라고도 불리게 됨. 2) 훗날 정중부의 난을 피해 이십대의 김극기(金克己)는 산천을 떠돌며 임경대에 이르렀고 최..
6. 가난한 시인의 말 ①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하는가? 궁한 사람이 시를 잘 쓰는가? 1.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 1) 시인은 가난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옛 사람은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한다[詩能窮人]”고 생각함. 2) 이규보(李奎報)는 『구시마문(驅詩魔文)』을 지어 시마의 다섯 가지 병폐 중 마지막에 “네가 사람에게 붙으면 염병에 걸린 듯 몸이 더러워지고 머리가 봉두난발이 되며 수염이 빠지고 외모가 초췌해진다. 너는 사람의 소리를 괴롭게 하고 사람의 이마를 찌푸리게 하며 사람의 정신을 소모시키고 사람의 가슴을 여위게 하니, 환란의 매개요 평화의 도적이다[汝著於人, 如病如疫, 體垢頭蓬, 鬚童形腊, 苦人之聲, 矉人之額, 耗人之精神, 剝人之胸膈, 惟患之媒, 惟和之賊].”라고 썼다. 2. 가난한 사람이 ..
5. 원숙과 참신의 시학 ① 역사 속의 라이벌 1. 정지상↔김부식의 문학적 자질 대결(비교: 한시미학산책) 侍中金富軾, 學士鄭知常, 文章齊名一時 兩人爭軋不相能. 世傳知常有, ‘琳宮梵語罷, 天色淨琉璃’之句, 富軾喜而索之, 欲作己詩, 終不許. 後知常爲富軾所誅, 作陰鬼. 富軾一日詠春詩, 曰: ‘柳色千絲綠, 桃花萬點紅.’ 忽於空中鄭鬼批富軾頰曰: “千絲萬點, 有孰數之也? 何不曰 ‘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 富軾頗惡之. 後往一寺, 偶登厠, 鄭鬼從後握陰卵, 問曰: “不飮酒何面紅?” 富軾徐曰: “隔岸丹楓照面紅.” 鄭鬼緊握陰卵曰: “何物皮卵子?” 富軾曰: “汝父卵, 鐵乎?” 色不變. 鄭鬼握卵尤力, 富軾竟死於厠中. -『백운소설(白雲小說)』 7 2. 이인로↔이규보의 한시 창작법 대결 1) 이규보(李奎報)는 「답전리지논문서(..
4. 재창조의 시학 ① 김부식(金富軾)의 「감로사차혜소운(甘露寺次惠素韻)」을 통해 김부식의 말년의 꿈을 들여다 보다 俗客不到處 登臨意思淸 속세의 손님 이르지 못하는 곳에, 오르니 마음이 맑구나. 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 산 모습은 가을에 더욱 좋고, 강빛은 밤에 오히려 분명하네. 白鳥高飛盡 孤帆獨去輕 흰 새는 높이 날아 사라지고, 외로운 배 홀로 감이 가볍다. 自慙蝸角上 半世覓功名 스스로 부끄러워하노라, 달팽이 뿔 위에서 반백 년 동안 공명 찾았으니, 1. 배경지식 1)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엔 김부식을 ‘살이 찌고 체구가 크며, 검은 얼굴에 눈이 튀어나옴’이라 표현함. 2) 노년에 접어든 김부식이 공문(空門)의 벗 혜소(惠素)와 자주 만나 시를 수창(酬唱)함 3) 감로사는 예성..
3. 시 속에 울려 퍼지는 노랫가락 ①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 민가(民歌)를 끌어와 절창이 되다 雨歇長堤草色多 비 그친 긴 둑에 풀빛 짙은데 送君南浦動悲歌 그대 보낸 남포엔 슬픈 노래 흐르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의 물은 언제나 마를꼬 別淚年年添綠波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해지는 걸. 1. 평양 부벽루에 당당히 걸려 있는 작품으로 중국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는 자부심을 지님(성수시화). 2. 이별은 봄이 가장 극적인 효과를 냄(죽었던 만물의 소생↔멀쩡히 있던 이의 사라짐): 2구에서 봄날 남포의 이별은 더욱 서러움. 3. 강엄(江淹)이 지은 「별부(別賦)」의 ‘봄풀 푸른색이고 봄물 푸른 물결인데 그대 보낸 남포에서 속상하는 걸 어찌할꼬[春草碧色 春水綠波 送君南浦 傷如之何]’를 보고 ..
2. 잘 빚은 항아리와 잘 짜인 시 ① 법에 맞는 한시, 율시의 정착 1. 한시의 시체 고시(古詩) 율시(律詩) 비교적 자유롭게 쓰는 시 절구처럼 압운을 함 평측을 고름 2연과 3연엔 반드시 대(對)를 해야 함. 2. 율시의 정비 1) 중국에선 당나라 초엽에 율시가 정비됨. 2) 최초로 등장한 작품은 8세기에 쓴 김지장의 「송동자하산(送童子下山)」임. 하지만 6세기의 고구려 승려 정법사의 시가 율시에 근접해 있음. ② 잘 다듬어진 시를 보다 [정법사(定法師)의 「영고석(詠孤石)」] 逈石直生空 平湖四望通 먼 바위 곧장 하늘을 향해 솟아있고 평평한 호수 네 방향으로 통하였네. 巖根恒灑浪 樹杪鎭搖風 바위 뿌리 항상 물결에 씻기고 나뭇가지 항상 바람에 흔들리지. 偃流還漬影 侵霞更上紅 물결에 누우니 도리어 그림자..
1. 시를 소리 내어 읽는 맛 ① 최치원 이전의 명작과 최치원의 명작 감상 1. 최치원 이전(以前)엔 두 작품이 명품으로 뽑힘. 1)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여수장우중문(與隨將于仲文詩)」: 우중문에게 이 시를 보내 화를 돋워 살수로 유인하여 대군을 물리쳤다는 기사가 『삼국사기』에 실려 있음. 2) 정법사(定法師)의 「영고석(詠孤石)」: 중국의 어떤 시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기에 삼국시대에도 뛰어난 시인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음. 2. 최치원(崔致遠): 857~?, 신라의 학자ㆍ경세가. 호는 고운(孤雲)ㆍ해운(海雲)임. 12살에 당으로 건너가 18살에 급제했고, 28살에 귀국했고, 38살에 『시무책(時務策)』을 지었으나 채택되지 못해, 40살에 가야산(伽倻山)에 은둔함. 한시 문집을 남겼기에 문학의 비조..
프롤로그. 시를 읽고 즐기는 법 ① 시의 본령은 아름다움이며 음풍농월이다 (정조의 『강목강의(綱目講義)』) 정조가 주자(朱子)의 『자치통감절목(資治通鑑綱目)』을 열람하고 그 가운데 의문스러운 것들을 뽑아 문목(問目)을 만들었는데, 모두 695개 항목이었다. 그것을 성균관과 사학의 유생들에게 나누어 주어 한 사람이 각기 한 항목씩 조목별로 답을 짓도록 하고, 다시 초계문신(抄啟文臣) 심진현(沈晉賢) 등에게 답한 말을 산삭(산삭)하고 요약하여 문목 밑에 붙여 책자로 만들게 한 것이다. 『정조실록(正祖實錄)』 15年 5月 3日 해와 달과 별은 하늘의 무늬가 되고, 산과 천과 풀과 나무는 땅의 무늬가 되니, 글에도 무늬가 있음이 또한 그러하다. 반드시 씻어내고 닦아 윤택하게 하며 환하게 노출시키며, 찬란하게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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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PACHINKO, パチンコ) 이민진 저자소개 / 감사의 말 / 작품 해설 / 옮긴이의 말 / 매체 찬사 1. 고향(HOMETOWN, 1910~1933) 부산의 작은 섬, 영도한겨울의 방문자(1932년 11월)젊은 목사, 이삭운명의 남자(1932년 6월)몰래한 사랑한수의 고백신이 주신 선물신의 계시우동 두 그릇속죄와 용서떠날 채비 2. 오사카(OSAKA, 1933~1949) 재회 그리고 새로운 생활(오사카, 1933년 4월)첫날밤고난의 길경희의 꿈213엔의 빚엄마가 된 소녀혹독한 시련(오사카, 1939년)김치 아줌마새로운 일자리(1940년 4월)좋은 소식(1942년 5월)낯익은 사람12년 만의 재회(1944년 12월)농장 생활(1945년)노아의 아버지사랑의 고통(오사카, 1949년) 3. 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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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굴뚝청소부 목차 이진경 책 머리에 / 제2증보판에 부쳐 서론포스트모던 ‘시대정신’철학의 경계경계읽기와 ‘문제설정’ 제1부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1. 데카르트 : 근대철학의 출발점중세의 철학은폐된 공세중세 너머의 철학두 개의 코기토데카르트의 문제설정주체의 분리와 진리의 인식데카르트가 가정한 두 가지 실체이성은 완전성을 타고 난다과학을 통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이성의 통제를 위해 육체를 억제하라근대철학의 문제설정근대철학의 딜레마 2. 스피노자 : 근대 너머의 ‘근대’ 철학자데카르트와 스피노자스피노자의 ‘자연주의’주체를 자연에 돌려주다스피노자의 진리무한히 소급되는 보증인의 문제점진리와 공리코나투스‘무의식’의 윤리학스피노자의 탈근대적 ‘이탈’ 제2부 유명론과 경험주의 : 근대철학의 동요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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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근대철학의 경계들 근대철학을 정점에 올린 헤겔 지금까지의 논의를 간략하게 요약합시다. 주체와 진리라는 두 개념으로 요약했던 데카르트의 문제설정은 신학과 교회의 지배 아래 있던 철학을, 그 중심을 ‘나’라는 주체로 전환함으로써 중세 전체와 구별되는 하나의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철학적 ‘시대’를 여는 새로운 사고방식의 출발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철학적 근대가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철학적 근대를 특징짓는 근대적 문제설정은, 주체의 통일성과 중심성을 가정하며 그것을 개념적 연역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었다는 점에서 주체철학’이란 특징, 모든 지식을 오직 ‘참된 지식’ ‘과학’이란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정당화하는 점에서 ‘과학주의’란 특징을 갖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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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푸코 : ‘경계허물기’의 철학 세 명의 푸코 푸코는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대부 중 한사람으로 간주됩니다. 혹은 적어도 근대적 합리주의에 반대한 반합리주의자, 계몽적 이성의 독재에 항의한 반계몽주의자로 간주됩니다. 이런 사정은 우리의 경우에 더욱 단순화되고 있지만, 서구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 대해 ‘구조주의자’라고 평하는 것 만큼이나 ‘포스트모더니스트’란 평가에 반감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사정은 그의 친한 친구였던 들뢰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텐데, 들뢰즈의 경우에는 포스트모더니스트란 평가에 대해서 매우 적대걱 입장을 명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입장 가운데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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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의 대상 라캉은 직업적인 철학자가 아니라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는 미국식 정신분석학에 커다란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국식 정신분석학은 일종의 자아심리학적인 경향이 있는데, 그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자아의 형성과정에 대한 이론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즉 정신분석학을 구순기, 항문기, 성기기 등을 거쳐 하나의 표준적인 자아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 대한 일종의 임상심리학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라캉은 이것을 한편에선 생물학주의에 의해, 다른 한편에선 행태주의에 의해 프로이트 이론의 고유한 정신이 훼손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러한 나름의 비판적 입지점을 설정한 라캉은 프로이트 이론에서 생물학주의적 요소를 제거하고, 나아가 프로이트 이론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새로이 부각시키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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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트겐슈타인 : 언어게임과 언어적 실천 구조언어학의 난점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은 언어와 인간에 대한, 그리고 구조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즉 새로운 사고영역을 개척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또 언어학으로서 설명해야 할, 그러나 구조주의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언어와 대상(지시체) 사이에 어떤 실제적 연관을 상정하는 실증주의적 입장과 비교해 구조언어학의 난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컨대 논리실증주의와 유사한 언어관을 가지고 있던 러셀은, 만약 치즈에 대한 비언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떤 사람도 ‘치즈’라는 낱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시체 즉 대상과 기호 사이의 관계는 자의적이며, 기호는 서로 긴밀하게 엮인 하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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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쉬르의 언어학적 ‘혁명’ 소쉬르 언어학의 기본명제 언어나 기호가 갖는 가장 일반적인 특징은 그것이 어떤 사물이나 기호 사용자의 의도를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기호를 통해서 어떤 사물을 지시하거나 어떤 의도를 표현한다는 거지요. 예컨대 ‘송아지’라는 기호는 실제 송아지의 ‘이름’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먹는다’는 말은 먹는 행위를 가리키고, 그 기호를 사용하는 것은 먹는 것과 관계된 어떤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하지요. 여기서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예를 들면 실제 송아지)을 흔히 ‘지시체’(referent)라고 합니다. 기호나 언어에 대해 흔히 갖고 있는 생각은 ‘송아지’라는 기호와 실제 송아지(지시체) 간에 상응, 일치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호는 지시체를 반영한다는 거지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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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발견 아시다시피 프로이트는 철학자가 아닙니다. 그를 철학자로 다루는 철학사 책을 만나기도 그다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는 철학에, 특히 근대철학에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어찌보면 매우 간단한 단 하나의 개념 때문입니다. ‘무의식’이라는, 너무도 유명한 개념 말입니다. 이 개념은 근대철학의 기초였던 ‘주체’를 그리하여 주체철학 전체를 해체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프로이트가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한 파괴 효과는 사실 무의식이란 개념 하나만으론 이루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건 어쩌면 다양한 증거와 임상적 사례들, 그리고 정신분석학이란 독자적인 학문을 창출해낸 체계적이고 강력한 개념들과 이론들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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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맑스 : 역사유물론과 근대철학 맑스의 ‘유물론 비판’ 맑스가 관념론을 비판했다는 사실은, 그가 유물론자였다는 사실만큼이나 유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유물론자’ 맑스가 사실은 유물론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비판을 수행했다는 주장을 한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맑스가 근대철학과 근본적인 구획선을 그으면서 달라지는 출발점이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맑스는 ‘실천’이란 개념을 철학에 끌어들인 장본인입니다. 또한 근대 철학을 해체하는 데 맑스가 사용하는 결정적인 개념 역시 ‘실천’입니다. 다시 말해 실천이란 개념을 통해 맑스는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을 넘어섭니다. ▲ 빈약한 부엌브뤼겔(Brueghel/Bruegel)의 그림 「빈약한 부엌」(Die magere Kiche)이다. 브뤼겔은 장애인이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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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헤겔 : 정점에 선 근대철학 비판철학과 헤겔 헤겔은 ‘변증법’이란 이름이 살아 있는 한 그 이름을 잊기는 어려울 정도로 변증법적 사고를 체계화한 철학자로 유명합니다. 특히 헤겔의 제자임을 자처했던 맑스를 통해서, 그리고 맑스주의 내의 유수한 철학자들을 통해서 헤겔은 헤겔철학의 영역 밖으로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해 왔습니다. 20세기의 중반기까지, 그리고 일부 지역에선 지금까지도 헤겔은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헤겔의 사상은 매우 복잡하고 난해하며 걸쳐 있는 범위가 방대해서, 지금과 같은 자리에서 제대로 요약하는 것은 능력을 떠나 어려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저 역시 이런 무리한 욕심은 애초부터 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와 관련해서 헤겔의 입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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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피히테 : 근대철학과 자아 ‘자아’의 복권 피히테는 오직 12개의 범주만을 가지고 있는 칸트의 선험적 주체가 확실한 만큼이나 공허하다고 생각하며, 주체(피히테 용어로는 자아)의 활동과 무관하게 정의되어 있다고 비판합니다. 오히려 판단의 범주나 원리는 자아(주체)의 활동과정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특히 그가 주목하는 지점은 칸트철학의 인식론적 문제점입니다. 그것은 ‘사물 자체’와 ‘선험적 주체’라는 칸트의 개념에 관련된 것입니다. 피히테는 일단 ‘사물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고 봅니다. 칸트에 따르면 사물 자체는 ‘있기는 있으되 인식되지 않는 무엇’입니다. 그러나 사물 자체가 인식되지 않는 무엇이라면 사물 자체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인식했는가 하고 피히테는 반문합니다. 무언가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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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독일의 고전철학 : 근대철학의 재건과 ‘발전’ 1. 칸트 : 근대철학의 재건 근대철학의 위기와 칸트철학 앞서 말했듯이 ‘근대철학의 비조’라는, 지금까지도 데카르트가 누리고 있는 영광은 신학의 지배 아래 있던 철학, 신의 지배 아래 있던 인간을 신학과 신으로부터 독립시킴으로써 근대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근대적 문제 설정을 기초지우고 방향지웠다는 공적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데카르트로선 자명하고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생각하는 나’ 즉 인식주체가 매우 불확실하며, 진리 역시 극히 취약한 기초를 갖고 있음이 흄으로 인해 드러났습니다. 진리는커녕 인과법칙조차도 있다고 할 수 없으며, 주체가 있는 게 아니라 다만 지각의 묶음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데카르트가 마련한 근대철학의 전제가, 그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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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흄 : 근대철학의 극한 과학주의에서 회의주의로 근대철학을 그 극한으로까지 몰고 갔던 사람은 누구보다 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하 알다시피 흄의 철학은 ‘회의주의‘로 불려지는데, 대개는 회의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그의 사상에 대한 평가를 일축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한 근대철학에서 그러한 회의주의가 나타난 것은 무엇 때문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근대철학 전반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매우 역설적인 중요성을 갖습니다. 흄의 출발점은 로크와 비슷합니다. 그 역시 엄격한 과학적 지식을 추구합니다. 그에 따르면 “자연과학의 성과를 빌려 인간학을 구성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는 과학의 일종으로 간주되던 심리학에 기초해서 ‘경험적 인간학’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경험과 관찰이 일차적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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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버클리 : 유명론에서 관념론으로 로크에 대한 두 가지 비판 버클리는 로크 비판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입론을 세웁니다. 그의 로크 비판은 일단 두 가지로 나누어 얘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실체의 개념에 대한 비판입니다. 로크는 모든 복합관념은 오성(정신)이 결합한 것이고 명목적인 것일 뿐이라고 하면서, ‘실체’에 대해서만은 예외로 한다고 합니다. 즉 물질과 정신이라는 실체는 ‘예외적으로’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겁니다. 버클리는 이런 예외조항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둘째, ‘제1성질’에 관한 비판입니다. 로크는 대상의 성질이란 모두 인식주체가 경험한 것이요 주관적이라고 하면서, 오직 제1성질만은 예외로 둡니다. 그러나 버클리는 제1성질만 유독 물질 그 자체에 속하는 객관적 성질이라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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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로크 : 유명론과 근대철학 로크의 입지점 알다시피 로크는 경험주의를 하나의 사조로, 흐름으로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이러한 로크의 철학을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지반이 있습니다. 하나는 데카르트가 새로운 장을 열었던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입니다. 신에게서 독립한 주체, 그래서 존재ㆍ인식ㆍ가치의 새로운 중심이 되었던 근대적 주체가 로크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지반이 됩니다. 진리라는 인식의 목표 역시 마찬가지지요. 다른 한편 그는 갈릴레이, 뉴턴, 호이겐스 등이 이룩한 과학혁명의 획기적 효과 속에서 사고했습니다. 즉 근대 초의 과학혁명이 로크의 사상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제 과학은 진리에 이르는 가장 커다란 길, 어쩌면 암묵적으로는 유일한 길로 간주됩니다. 데카르트가 기초를 닦아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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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유명론과 경험주의: 근대철학의 동요와 위기 1. 유명론과 경험주의 실재론과 유명론 근대철학의 다음 장은 경험주의라고 불리는 철학적 흐름입니다. 이는 주로 영국에서 발달했고, 지금까지도 영국의 미국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식주체의 경험이 지식의 연원이자 진리의 근거”라는 것입니다. 철학사에서 이런 경험주의의 중요한 사상가로 꼽히는 사람은 아시다시피 베이컨과 로크, 버클리와 흠입니다. 그러나 경험의 중요성을 얘기한 것으로 경험주의 사상가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베이컨은 흔히 알고 있는 이 사상가들의 반열에 오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러셀조차도 “베이컨은 자신이 과학에 대해 그토록 강조했으나 사실은 당시의 가장 중요하고 일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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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피노자 : 근대 너머의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스피노자는 근대철학을 통틀어서 가장 독특하고 변종 같은 철학을 세웠습니다. 그는 데카르트의 영향 아래 철학을 연구했고, 데카르트 철학에 대한 나름의 근본적인 비판을 수행했습니다. 나중에 보겠지만, 대부분의 근대철학자가 데카르트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비판의 근본성에서 가장 두드러진 게 바로 데카르트와 거의 동시대에 살았던 스피노자였음은 상당히 역설적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데카르트의 철학이 갖는 특징, 나아가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이 갖는 중요한 특징에 대해 좀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피노자에 대해 다소 상세하게 얘기하는 것은 그런대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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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1. 데카르트 : 근대철학의 출발점 중세의 철학 이제 근대철학의 출발점이라는 주제로 들어가 봅시다. 근대철학에 대해 얘기하려면 가장 먼저 ‘근대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적 근대 전체에 대해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생각해야 할 범위를 철학으로 제한해서 문제를 다시 제기한다면, ‘철학에서 근대란 무엇인가?’ 혹은 ‘철학적 근대란 무엇인가?’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기대에 못 미친다면 미안한 일이지만, 저는 지금 근대에 대한 어떤 심오한 이야기를 하려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에서 출발하고자 합니다. 근대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중세와의 대비 속에서 중세와 구분선을 그음으로써 정의되는 그런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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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포스트모던 ‘시대정신’ 하나의 사상, 하나의 시대정신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이젠 너무도 분명한 듯 보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이런 선언을 아직 들어보지 못한 분이 있다면 시대의 조류에 매우 둔감한 분임에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어디서나 거론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조는 하나의 사상이나 시대정신이 더 이상 세상을 지배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했습니다. 나아가 최근의 다양한 사회현상들을 ‘포스트모던하다’라는 형용사로 특징짓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아직도 이런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사조들, 예를 들면 맑스주의 같은 것들은 시대착오적이고 낡은 ‘옛이야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는 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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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데리다는 ‘텍스트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모든 텍스트는 그 외부의 주름이다.’ 물론 여기서 ‘외부’란 단지 통상적 유물론에서 말하듯이 사회경제적 조건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실천적 유물론에서 말하듯이 실천적 맥락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사유 안에 들어와 있는 비-사유고, 각각의 철학이 그 위로 펼쳐지며 나름의 사유의 선들을 그리는 그런 지반이다. 아니, 사유가 그것의 소재로 삼는 모든 것이다. 어느 날 사유에게 다가온 것, 그런 식으로 사유가 만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사유하면서 사용한 모든 것(책이나 언어를 포함하여), 그것이 바로 사유의 ‘외부’다. 공장이나 병원도, 감옥이나 형법도, ..
도올의 교육입국론 목차 Ⅰ. 총론 1. 호학 민족에게 도래한 혁신교육감 시대충절과 반역, 수구와 혁명호학의 민족사, 『팔만대장경』을 보라! 2. 진보교육감 시대의 의의교육감만 장악하면 역사의 대세를 장악하는 대승대학생들의 아파티세월호 참변에 대한 안타까움 3.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관점 차이교육혁명 없는 정치혁명은 권좌의 교체일 뿐교육은 철학의 목적진보와 보수의 교육에 관한 철학적 담론의 차이: 인간론인식론과 진리론진보세력의 통렬한 반성이 요구되는 시대 Ⅱ. 공부론 1. 공부란 단어의 어원과 용례공부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공부의 어원, 한·중·일 단어의 비교공부라는 말의 역사적 용례 2. 공부와 시간공부의 원의와 희랍인의 아레떼도와 덕공부와 시간공부는 관념상의 변화가 아닌 몸의 단련 3. 공부와 ..
5. 회고와 전망 1. 공자가 말하는 교학의 방법 교학상장의 실천론, 관계론, 생성론 내 글을 진지하게 읽는 사람들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이 한마디가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의미맥락으로부터 충격에 가까운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요리가 앞에 있어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길이 없다[雖有嘉肴, 弗食不知其旨]”라는 것은 교육에 있어서의 모든 실천주의, 과정론적 참여주의, 그리고 요즈음 말하는 체험학습의 의미를 압축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주체성과 그 존엄을 말하면서도, 교사라는 주체가 일방적인 주체가 아니며 반드시 학생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쌍방적ㆍ상감적(相感的)ㆍ융합적 주체라는 것, 다시 말해서 선생과 학생은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관계..
4. 교사론 1. 자유가 대중교육의 목표여선 안 되는 이유 전남대학교 철학과의 경우 인문학 르네상스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전남대학교 철학과에서는 1학년 정원 35명 중에서 6개의 자리를 특별히 대안학교 출신의 학생들에게 수능점수에 관계없이 배당한다고 한다. 처음에 3명만 받았다가 그들의 성적이 너무 우수하고 또 인간적으로 성숙되어 있어 6명으로 늘렸는데, 이들의 존재는 과의 면학 분위기를 놀랍게 향상시키고 있다고 한다. 자유로운 사색과 억압받지 않는 삶, 그리고 목전의 당면한 성취 스트레스에 오염되지 않은 여유로움을 지닌 어린 생령의 정신능력이 철학을 공부하는 데 훨씬 더 적합한 토양을 보유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입학 내규가 국립대학과 교수들 자체의 합의에 ..
3. 제도론 1. 새로움의 창출만이 퇴몰을 막는다 교육에는 진보ㆍ보수가 없다 교육에는 진보ㆍ보수가 없다. 내가 이 글의 제목을 ‘혁신교육감시대’로 규정한 것도, 교육감을 사소한 몇몇의 방법론적 기준에 의하여 진보와 보수라는 카테고리로써 분류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나는 매사에 보수를 싫어하지만 진보주의자는 아니다. 나는 역사의 진보(the Progress of history)를 신봉하지 않는다. 나는 헤겔의 역사철학적 사관이나 칼 맑스의 경제발전단계설적 유물사관류의 필연주의적 역사주의(historicism)를 거부한다.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 역사 그 자체는 인간의 언어행위나 가치관의 소산인 ‘진보’라는 개념에 의하여 규정될 수 없다. 역사는 진보하지도 퇴보하지도 ..
2. 공부론 1. 공부란 단어의 어원과 용례 공부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말에 ‘공부’라는 말이 있다. 이 ‘공부’라는 말은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육을 생각할 때, 그 함의의 99%를 차지한다. 나의 자녀를 ‘교육시킨다’는 말은 ‘공부시킨다’는 말과 거의 같다. 나의 자녀에 대한 자랑도 ‘우리 아이는 공부를 잘해요’라는 명제로 표현된다. ‘공부를 잘한다’는 뜻은 과연 무엇일까?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를 복잡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우리 일상언어의 가장 평범한 의미체계를 정직하게 밝히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것은 ‘학교 시험 점수가 높다’는 뜻이다. 우리 아이 공부 잘한다는 의미에 실제로 딴 뜻이 없다. ‘학교 시험 점수가 높다’는 것은 대학입시에 유리하다는 뜻이고, 대학입시에 유리하다는..
1. 총론 1. 호학 민족에게 도래한 혁신교육감 시대 충절과 반역, 수구와 혁명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파랑을 격파하며 나아간다[讀萬卷書, 破萬里浪].” 진리 탐구를 위해 눈물겨운 여정을 감행하였던 신라의 구법승(求法僧)들이 유학 장도에서 읊었던 장쾌한 절구의 한 소절! 어찌 만 리의 파랑이 서해바다의 파랑일 뿐이리오? 그것은 기구한 우리 인생의 파랑이요, 기나긴 반만년 역사의 격랑이요, 충절과 반역, 수구와 혁명, 억압과 자유의 기복으로 점철된 우리 정치사의 풍랑이리라! 공자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열 가호쯤 되는 조그만 마을에도 나처럼 충직하고 신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그러나 나만큼 배우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論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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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노희락의 심리학 목차 사상체질 / 책을 읽기 전에 프롤로그: ‘다르다’는 ‘틀리다’가 아니다1. 갈등의 원인2. ‘다르다’와 ‘틀리다’3. 살림의 문화와 죽임의 문화4. 출발점에 대한 이해 제1부 사상인의 기본 성정 제1장 사상체질에 관한 개요1. 체질의 차이가 갈등의 원인이 되는 이유2. 사상체질이란 무엇인가3. 사상인의 마음 씀의 개요 제2장 사상인의 성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1. 기본적인 기능들2. 직관, 감성, 감각, 사고 기능이 나타나는 구체적인 사례3. 정보 처리의 문제 제3장 애노희락과 사상인의 성정1. 애성과 천시 / 태양인의 태양 기운애성(哀性)은 천시(天時)를 듣는 것이다사기(詐欺)란 무엇인가애성(哀性)이 실생활에서 나타나는 모습 2. 노성과 세회 / 소양인의 소양 기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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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삼국지 이야기 책이 좀 어려워도 마지막이 재미있으면 재미있는 책으로 기억된다고 한다. ‘사상인의 심리연구’라는 만만치 않은 주제를 끝까지 잘 따라와 준 독자분들에 대한 보답으로 마지막에는 재미있는 삼국지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하자.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의 진짜 성격이 어땠는지는 알 방법이 없고, 또 안다고 해도 공부에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보다 소설을 통해 가공된 인물 쪽이 오히려 공부거리가 된다. 소설가들이 마구 인물을 만드는 것 같아도 인물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일관성을 유지하려다보면 사상인 중의 한 모습을 묘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실존 인물보다는 소설 속에서 약간 가공되어 나오는 인물들을 관찰하는 것이 사상기운을 느끼기에 더 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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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노력하는 만큼 좋아진다 1. 일반 독자들에게 이로써 사상인의 마음 돌아가는 것에 대해 필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얼추 다 한 것 같다. 사상인의 기본적인 성정(性情), 그 기본적인 성정(性情)이 드러나는 모습, 약점을 극복하는 과정과 잘못되어 빗나가는 모습, 마지막으로 가장 타락했을 때 나오는 모습까지 다 짚어보았으니, 꼭 해야할 이야기는 다 끝난 듯하다. 뒤에 부록으로 붙인 삼국지 이야기가 남았지만, 그것은 이론적인 이야기는 아니니까, 이 정도에서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도록 하자.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으로 남길 만한 것은 몇 가지 안 된다. 세상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대처하는 주된 기능은 사람마다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1. 사람을 하나의 기준으로 우열을 매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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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인의예지와 체질 앞에서 각 체질별로 가장 타락한 모습에 대해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박정희의 변신을 이야기할 때였다. 그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이 부분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이 내용은 인의예지라는 유교의 기본 덕목과 관련된다. 동양적인 가치관에 중점을 두는 독자에게는 인의예지와의 관련 부분을 언급하는 것이 체질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1. 인(仁)과 예(禮)의 충돌 유교에서는 인간의 덕목으로 인의예지를 꼽는다. 이 모두가 어느 정도 이상의 경지에 가면 서로 부딪히는 일이 없겠지만, 낮은 경지에서는 좀 다르다. 인(仁)과 예(禮)가, 의(義)와 지(智)가 서로 부딪히는 경향이 있다. 인(仁)은 직관적으로 작용한다. 또 인은 나와 가깝고 멀고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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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보수성과 개혁성 보수성과 개혁성은 기본 성정(性情)과 사심(邪心), 태행(怠行), 박통(博通), 독행(獨行) 등이 모두 어울려서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태도다. 체질에 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서 한 번쯤 다뤄볼 만한 주제다. 개요를 먼저 이야기하자면, 기본 성정(性情)은 개인적 성향의 보수성/개혁성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사회적 성향의 보수성/개혁성은 굳이 체질에 따른 경향을 보이지는 않는다. 1. 개인적 성향과 사회적 성향의 차이 체질에 대해 설명한 시중의 책들을 보면, ‘태음인은 보수적이다’ ‘태양인은 급진적이다’라는 식의 표현들이 종종 나온다. 그런데 ‘보수’ ‘진보’라는 용어가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른 용어들 중 하나라서 문제다. 말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듣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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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태행(怠行)과 독행(獨行) 태행(怠行)이란, 글자 그대로 게으른 행동이다. 독행(獨行)이란, 지조를 지키며 꿋꿋이 나아간다는 뜻이다. 사심(邪心)과 박통(博通)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자신이 약한 영역에 요구되는 능력을 얻고자 할 때 남을 흉내 내어 잘못 가는 경우와, 제대로 도달하여 뛰어난 능력을 얻게 되는 경우를 각각 가리키는 말이다. 사심(邪心)은 다른 체질의 마음 씀을 배우려 할 때 어설피 흉내 냄으로써 마음 씀이 잘못되는 것이고, 박통(博通)은 어설피 흉내 내지 않고 자신의 장점을 꾸준히 늘려감으로써 자신이 약하던 영역에서 바르게 마음을 쓰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사심(邪心)과 박통(博通)이 마음의 문제라면, 태행(怠行)과 독행(獨行)은 행동의 문제다. 타인의 행동을 잘못 흉내 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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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정보의 왜곡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 이 과정이 왜곡되면 세상에 대한 인식 역시 왜곡된다. 따라서 사회적으로는 언론의 문제와 관련된다. 또한 정보의 문제는 사람들 사이의 교류의 문제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관계에서의 정보 왜곡은 사람들 사이의 논쟁이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앞에서 천시(天時)와 사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철새 정치인들에 대해 잠깐 언급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철새 행각이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진짜로 믿고 있는 경우가 꽤 많다는 내용이었다. 정보 왜곡 문제도 마찬가지다. 물론 ‘어차피 누구나 자기 이익을 위해서 적당히 왜곡하며 사는 것 아니냐’는 뻔뻔스런 논리를 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명백한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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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사심(邪心)과 박통(博通) 1. 교심(驕心)과 주책(籌策) / 태음인의 태양 기운 직관과 감각의 차이 그냥 ‘사심(邪心)’ ‘태행(怠行)’ ‘박통(博通)’ ‘독행(獨行)’ 하니까 좀 딱딱해 보이지만, 각 체질별로 이야기하게 되면 그렇게 딱딱한 이야기는 아니다. 계속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의 순서로 다루었으니, 이번에도 그 순서대로 하자. 즉 태양 기운과 관련된 이야기부터, 그러니까 사람을 기준으로 보면 태음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태양인을 설명할 때, ‘태양인의 귀가 천시(天時)에 밝아 사람들이 서로 사기 치는 것을 잘 듣는 것이 태양인의 애성(哀性)의 근본이다’라고 했다. 또 ‘태양인은 직관이 강하다’는 말과, ‘양인(陽人)은 부정적 요소를 줄이는 것에, 음인은 긍정적 요소를 늘리는 것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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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체질에 따른 약점과 극복 제6장 약점 극복의 개요 1. 왜 약점에 도전하는가 이 정도면 기본적인 성정(性情)에 대한 부분은 거의 다뤄진 것 같다. 앞으로는 자신이 약한 영역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가 나온다. 사심(邪心)과 이의 극복, 태행(怠行)과 이의 극복의 순서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다. 체질별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제까지의 이야기 흐름을 한번 정리해보자. 이 책의 처음에 가장 강조했던 것이, ‘같다/다르다’ ‘옳다/그르다’를 구분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야 다른 것끼리 맞을 수 있는 방법이 찾아지고, 다른 것이 틀린 것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다른 것을 그른 것으로 보니까 맞출 생각을 못하고, ‘틀렸다’라고 주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좋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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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법과 질서의 존중 1. 법을 대할 체질에 따라 받는 느낌 질서의 존중과 경시 앞장의 설명으로 사상인의 성정(性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도구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처음에는 직관, 감성, 감각, 사고가 각각 잘 발달된 사람이라는 내용에서 출발했고, 이어서 애노희락(哀怒喜樂)의 성(性)과 정(情)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했다. 이제 주관, 보편, 특수, 객관을 각각 중요시하는 사람들이라는 새로운 설명 방법을 하나 더 얻었다. 이 각각은 서로 동떨어진 특성들이 아니라, 서로 다 연결되어 나오는 내용들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 중에서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용어를 사용하면 될 것이다. 융이제마주장을 내세울 때직관태양주관, 자신 있게 주장감성소양보편, 강하게 주장감각태음특수, 끈질기게 주장사고소음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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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보편 / 특수, 주관 / 객관 체질에 대한 기본 설명에서는 벗어나지만 묶어서 하나의 주제로 다루는 편이 체질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는 주제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 보편 / 특수, 주관 / 객관의 문제를 먼저 다루도록 하자. 이 각각을 어느 정도 중시하는가의 문제가 각 체질에 따른 기본 특성에 가까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다뤘던 직관, 감성, 감각, 사고만큼이나 기본 성정(性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런 치우침은 사심(邪心)이 강해졌을 때 더 강화되는 면도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을 여기서 한 번쯤 다루고 나면 뒤의 이야기가 여러 가지로 쉬워진다. 각 체질에 대해 분석할 기본 도구를 하나 더 가지는 셈이기도 하고, 뒤에서 설명할 사심(邪心)에 대한 예비 정보도 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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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애노희락과 사상인의 성정 직관, 감각, 감정, 사고라는 네 가지 단어만 가지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지만, 이 정도에서 정리하기로 하자.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이 네 가지로 말할 수 있는 것은 기본 성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본 성정만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결국은 이 체질은 이렇다는 식의 단정론에 빠지게 될 뿐이다. 기본 성정들이 어떻게 변해가며, 장점을 어떻게 넓히고 약점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이르기까지 할 이야기가 많다. 이제부터 『동의수세보원』에 나오는 용어들을 하나씩 익혀나가도록 하자. 『동의수세보원』은 애노희락의 성정(性情)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즉 애성(哀性), 애정(哀情), 노성(怒性), 노정(怒情), 희성(喜性), 희정(喜情), 락성(樂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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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사상인의 성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1. 기본적인 기능들 사상기운(四象氣運) 사상의학의 가장 기본적인 책은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가 쓴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이라는 책이다. 하지만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면서 바로 『동의수세보원』의 내용을 설명하면 대부분은 상당히 어려워한다. 일단 용어가 문제다.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이라는 용어부터가 그렇다. 동무 시절에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람에게는 태소음양(太少陰陽)이라는 말은 낯선 용어가 아니었다. 들으면서 무언가 감이 잡히는 말에 속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음양이라는 표현을 익숙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제일 좋기로는 독자 여러분들의 음양에 대한 이해를 그 당시 지식인들의 일반 수준까지 끌어올려 놓고 이야기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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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사상인의 기본 성정 제1장 사상체질에 관한 개요 1. 체질의 차이가 갈등의 원인이 되는 이유 ‘다름’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면, 이제 비로소 중요한 ‘다름’의 내용들을 배울 준비가 된 셈이다. “왜 하필이면 체질의 문제를 중요한 다름의 하나로 취급하는가?” “체질의 문제가 중요한 갈등의 원인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자. 오래 전에 읽어서 어디에서 보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집단적으로 조난(遭難)을 당했을 경우의 생환율(生還率)에 대한 연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연령, 성별 등이 비슷한 집단의 경우보다 남녀가 섞여 있고, 아이, 어른, 노인이 섞여 있는 다양한 구성원을 가지는 집단 쪽이 살아 돌아오는 경우가 더 많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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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다르다’는 ‘틀리다’가 아니다 1. 갈등의 원인 인간 사이의 갈등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다. 하지만 다른 것 자체가 갈등의 원인은 아니다. 남/여, 부모/자식, 스승/제자와 같이 확연히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끼리 별 갈등 없이 원만하게 잘 지내는 경우도 많이 있다. 다름이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은 ‘다르다’는 상황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가지다. 우선, 다른 것을 무리하게 같게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다르게 놓아둔 채로 조화를 이루려고 하지 않고 한 가지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려고 하는 방식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두 번째는, 나와 다른 사람을 보았을 때 그 다름의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즉 다른 것을 같다고 생각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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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체질(四象體質) 태양(太陽)기운소양(少陽)기운태음(太陰)기운소음(少陰)기운성(性)애성(哀性)노성(怒性)희성(喜性)락성(樂性)천기(天機)천시(天時)세회(世會)인륜(人倫)지방(地方)정(情)애정(哀情)노정(怒情)희정(喜情)락정(樂情)인사(人事)사무(事務)교우(交遇)당여(黨與)거처(居處)박통(博通)주책(籌策)경륜(經綸)행검(行檢)도량(度量)사심(邪心)교심(驕心)긍심(矜心)벌심(伐心)과심(誇心)독행(獨行)식견(識見)위의(威義)재간(才幹)방략(方略)태행(怠行)탈심(奪心)치심(侈心)나심(懶心)절심(竊心) 태양인소양인태음인소음인 책을 읽기 전에 사람이 살다보면 주변 사람들과 이런저런 갈등 상황에 부딪힌다. 손해와 이익이 누가 봐도 뚜렷한 상황은 오히려 쉽다.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욕심쟁이거나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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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사(韓國漢詩史) 목차 민병수(閔丙秀) 1. 서설(序說)1) 한시연구의 과제2) 자료의 선택 문제⑴ 『청구풍아(靑丘風雅)』와 송시학(宋詩學)의 극복⑵ 『국조시산(國朝詩刪)』과 격조론⑶ 『기아(箕雅)』와 절충론⑷ 풍요(風謠)와 위항시인(委巷詩人)의 의지⑸ 『대동시선(大東詩選)』과 민족의식(民族意識)3) 작품의 평가 문제⑴ 고려의 시화집⑵ 조선의 시화집 2. 한시의 초기 모습1) 대륙(大陸)의 노래⑴ 공후인(箜篌引)⑵ 황조가(黃鳥歌)⑶ 인삼찬(人蔘讚)2) 북방(北方)의 기개(氣槪)⑴ 을지문덕의 여수장우중문(與隋將于仲文)⑵ 정법사의 영고석(詠孤石)3) 남방(南方)의 서정(抒情)⑴ 진덕여왕의 직금헌당고종(織錦獻唐高宗)⑵ 김지장의 송동자하산(送童子下山)⑶ 설요의 반속요(返俗謠)⑷ 왕거인의 분원시(憤怨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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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규보(李奎報)의 후예들 최자(崔滋, 1188 명종18~1260 원종1, 호 東山叟)는 이규보(李奎報)를 뒤이어 일시에 문병(文炳)을 잡았다. 당시 국정(國政)을 전담한 최이(崔怡)가 이규보(李奎報)로 하여금 그 후계를 천거(薦擧)케 하였을 때 이규보(李奎報)는 최자(崔滋)를 첫째로 천거(薦擧)하고 다음으로 김구(金坵)를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각각 『동문선(東文選)』 등에 10여편의 시작(詩作)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시작(詩作)은 이규보(李奎報)를 따르지 못했으며 알려진 명편(名篇)도 남긴 것이 별로 없다. 최자(崔滋)의 『속파한집(續破閑集)』【즉 『보한집(補閑集)』】과 김구(金坵)의 『지포집(止浦集)』이 지금까지도 유전하고 있다. 먼저 최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남제유(南堤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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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한시(漢詩) 문학(文學)의 종장(終章) 1. 한말(韓末)의 사대가(四大家) 구한말(舊韓末)은 1800년대 후반부터 1910년대에 이르는 4,50년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전의 전통시대와 그 이후의 일제 식민지 시대와의 불연속상에 놓인 불행한 시기였으며 또한 전통질서의 극복과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침탈을 부정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이 주어진 시기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 과정에서 지성인들의 대응 방식은 크게 개화(開化), 위정척사(衛正斥邪), 동학(東學) 등의 상이한 활동을 통해 민족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했다. 문학의 영역에서도 이러한 시대적 당위는 그대로 표출되었다. 1890년대의 「독립신문(獨立新聞)」(1896)이나 「황성신문(皇城新聞)」(1898)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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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추사(秋史)와 자하(紫霞)의 변조(變調) 당시(唐詩)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시인들의 기본 성향은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인들이 실제로 제작한 한시작품의 대부분은 시의 뜻이 넓고 깊은 개념(槪念)의 시(詩)를 써 왔으며, 특히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성향의 시작(詩作)으로 독자적인 시세계를 이룩하여 우리나라 한시의 높은 수준을 과시한 시인이 배출되기도 했다. 그 사람이 곧 신위(申緯)이며, 이 시인에게 직접ㆍ간접으로 영향을 준 또다른 시인이 김정희(金正喜)다. 김정희(金正喜)는 신위(申緯)보다 17년 연하이지만, 신위 시의 창작에 직접 조언(助言)을 하는 등 크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위의 시적 성향은 율조(律調)를 중요시하는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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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위항인(委巷人)의 선명(善鳴) 서울의 서대문 밖 인왕산 옥계 기슭에 천수경(千壽慶)ㆍ차좌일(車佐一)ㆍ최북(崔北)ㆍ장혼(張混)ㆍ왕태(王太) 등이 모여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글씨로 송석원(松石園)이란 편액을 걸고 시회를 결성하였다. 이 시사에서 삼사십명 때로는 백여명 씩 모여서 시를 읊었다고 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실로 위항문학의 전성기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송석원시사는 1786년 여름부터 1820년 무렵까지 30여년 존속하면서 당시의 사대부 문단 못지 않은 시문활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이들은 자연을 벗삼아 세속에 물들지 않음을 자부하면서 자신들의 문학을 사대부의 문학과 구별하여 ‘경외(境外)의 사림(詞林)’이라 자존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위항시인으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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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조선후기(朝鮮後期)의 황량(荒凉)과 조선시(朝鮮詩)의 자각(自覺) 임진왜란(壬辰倭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은 시단까지도 황량하게 하였다. 흔히 천하가 어지러울 때 인물이 배출된다고 하지만, 목릉성세(穆陵盛世)의 풍요는 오로지 전 시대의 안정에 힘입은 결과이며 병란 때문에 인물이 쏟아져 나온 것은 결코 아니다. 이후 숙종(肅宗)대에 이르는 70여년간의 시단은 문자 그대로 황량과 적막만이 있을 뿐이다. 다만 정두경(鄭斗卿)과 이민구(李敏求)가 적막에서 일어나 우뚝하게 시단을 돋보이게 하였다. 숙종대에 이르러 모처럼 태평성세를 구가하는 안정을 되찾았지만 정치 내부에서 불붙기 시작한 당론(黨論)의 가열로 사림(士林)은 빛을 잃고 소단(騷壇)은 다시 산림(山林) 속으로 자복(雌伏)하게 된다. 그러나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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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문필가(文筆家)의 시세계 소단(騷壇)에서도 목릉성세(穆陵盛世)의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각방면에서 뛰어난 시인이 나와 각각 제 몫을 다해준 결과라 할 것이다. 『어우야담(於于野譚)』을 저작한 유몽인(柳夢寅)과 『지봉유설(芝峰類說)』의 저자 이수광(李睟光), 그리고 『국조시산(國朝詩刪)』의 찬자(撰者)인 허균(許筠) 등은 그들이 제작한 시작(詩作)으로도 일정하게 시사(詩史)에 기여하고 있지만, 특히 이수광(李睟光)과 허균(許筠)은 뛰어난 조감(藻鑑)으로 후세의 기림을 받았다. 유몽인(柳夢寅, 1559 명종14~1623 인조1, 자 應文, 호 於于堂)은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문장가로 당대문학의 새로운 기풍을 불러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상투적인 표현을 거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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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목릉성세(穆陵盛世)의 풍요(豊饒)와 화미(華美) 조선 초기의 안정에 힘입어 풍요로운 목릉성세(穆陵盛世)를 이룩한 선조인조년간(宣祖仁祖年間)은 시단에 있어서도 또한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어 성시를 이룬다. 호소지(湖蘇芝) 삼가(三家) 중에서도 풍격(風格)과 기상이 가장 뛰어난 노수신(盧守愼)은 선조(宣祖) 초기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노두(老杜)의 격력(格力)을 깊이 얻은 학두자(學杜者)로 알려져 있다. 호소지(湖蘇芝) 삼가(三家) 중 가장 후배인 황정욱(黃廷彧)은 많은 시를 쓰기보다 힘들여 시를 썼기 때문에 시인으로서의 명성에 비하여 시작(詩作)이 적은 편이다. 노수신(盧守愼)도 그의 시작(詩作)에서 강서시파(江西詩派)의 기상기구(奇想奇句)를 시험한 부분들이 보이지만, 특히 황정욱(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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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해동(海東)의 강서시파(江西詩派) 우리나라에도 강서시파(江西詩派)가 있음을 드러내어 말한 사람은 신위(申緯)가 아닌가 한다. 김창협(金昌協)도 일찍이 박은(朴誾)의 시(詩)를 말하는 가운데서 그가 황진(黃陳)을 배웠다고 하였지만, 우리나라 시인의 구체적인 작품을 통하여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시풍(詩風)을 확인한 것은 신위(申緯)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서시파(江西詩派)란 중국 송대(宋代) 시단(詩壇)의 한 유파로 황정견(黃庭堅)을 시종(詩宗)으로 삼는 진사도(陳師道) 이하 일군의 시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황정견(黃庭堅)의 고향이 강서(江西)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긴 하지만 그밖의 시인들이 모두 강서(江西)지방 출신인 것은 아니다. 송시(宋詩)는 구양수(歐陽修)ㆍ소식(蘇軾)에 의하여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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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조선전기(朝鮮前期)의 다양한 전개(展開) 조선(朝鮮)은 그 창업과 동시에 성리학(性理學)을 통치이념으로 채택함으로써 문학관념에 있어서도 주자학(朱子學, 思想儒敎)이 문학 위에 군림하는 재도관(載道觀)이 성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효용적인 문학관은 결코 문학의 생산을 방해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며 도리어 문학의 내질(內質)에 있어서는 김창협(金昌協)의 말과 같이 시를 보면 그 사람까지도 알게 하는 다양한 전개를 보인다. 다만 국초(國初)에는 문(文)은 고명(誥命)ㆍ장주(章奏)와 같은 관각문자(館閣文字)를 필요로 했으며 시(詩)에 있어서도 새 왕조의 위업과 서울의 새 풍물을 읊조린 가영(歌詠)ㆍ송도(頌禱)의 사(辭)가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지 모른다. 권근(權近)ㆍ정도전(鄭道傳)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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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리학(性理學)의 수입과 한국시(韓國詩)의 정착(定着) 1. 성리학의 수입과 문학관념(文學觀念)의 대두(對頭) 고려는 국초부터 유교치국(儒敎治國)을 표방하였지마는 충렬왕(忠烈王) 대에 이르기까지 기본유학(基本儒學),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문학유교(文學儒敎)로 일관하였다. 충렬왕(忠烈王)은 일찍이, 당시의 유사(儒士)들이 과거(科擧)의 문장(文章)만 익히고 경사(經史)에 박통(博通)한 자가 없는 것을 개탄하여, 일경일사(一經一史)에 통한 사람을 국자감(國子監)에 교수(敎授)케 하라고 한 사실을 보면 이때까지도 국자감(國子監)에 경사(經史)에 통한 교수(敎授)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충렬왕(忠烈王) 30년에 안향(安珦)이 양현고(養賢庫)가 탄갈(彈渴)하여 선비를 기를 수 없는 것을 걱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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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송시학(宋詩學)의 수용과 한국시의 발견 1. 송시학(宋詩學)의 수용 한 시대(時代)에 한 문장(文章)이란 말은, 문장(文章)의 소상(所尙)이 시대(時代)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말여초(羅末麗初)의 200년(年) 동안 문학유교(文學儒敎)에 힘입어 사장학(詞章學)이 크게 떨쳤으며 소단(騷壇)은 유미(柔靡) 경조(輕佻)한 만당풍(晩唐風)이 속상(俗尙)이 되어 버렸지만, 고려중기에 이르러 이러한 풍상(風尙)은 시대(時代)의 추이(趨移)에 따라 커다란 변혁(變革)의 국면(局面)을 맞이하게 된다. 산문(散文)에 있어서는, 표전장주(表箋章奏) 등이 이때까지도 사대문자(事大文字)로서 중요시(重要視)되고 있었으므로 변려문(騈儷文)의 전통(傳統)이 그대로 지속되었지만 운문(韻文)에 있어서는 전시대(前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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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라말려초시(羅末麗初詩)의 성격과 만당(晚唐)의 영향 1. 라말려초시(羅末麗初詩)의 일반적 성격 나말여초는 왕조사(王朝史)에서도 서로 겹치는 기간이 18년이나 되지만, 문학사의 현실에 있어서도 상당한 부분 그 성격을 같이 하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 한시문학(漢詩文學)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배운 역사 단계라는 점에서 한 데 묶여질 수 있는 공통성을 가진다. 신라말에 당(唐)에 들어가 직접 중국시를 체험하게 되는 고려 초기 일군의 시인들이 당시의 풍상(風尙)인 만당(晩唐)을 배운 것이 이 시기 한시의 특징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김종직(金宗直)이 그의 「동문선서(東文選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어 사실을 확인케 해주며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詩)를 읽어보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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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시의 초기 모습 한자(漢字)가 우리나라에 유입(流入)된 시기를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적어도 기원전 2세기에는 한자(漢字)가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어 왔지만, 이는 연(燕) 위만(衛滿)의 동침(東侵)이나 한사군(漢四郡)의 설치에 근거한 것이므로 이 역시 추정일 뿐이다. 더욱이 이러한 사실은 우리 조상들이 언제부터 한시(漢詩)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는지 그 시기를 따지는 문제와는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한다. 설사 문자(文字)의 유입은 있었다 하더라도 그 그릇에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아 한시(漢詩)와 같은 고급 예술 문화를 양성하는 데에는 일정한 시간과 거쳐야 할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외래문화를 수용할 때에는 서책에 의존하는 순서를 거치게 된다. 이것을 광범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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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설(序說) 1. 한시(漢詩) 연구(硏究)의 과제(課題) 한시를 연구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를 검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시에서의 자연은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인간들의 삶을 있게 해주는 원천으로 소중한 것이 되고 있으며, 한시에서 인간들은 삶의 의미를 확인하는 해법(解法)조차도 이 자연을 통하여 구하려 한다. 그러나 한시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들과 자연이 가까운 거리에서 만날 때, 물아(物我)가 한데 어우러져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르게 되며 조화미(調和美)의 극치(極致)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시(漢詩)를 모르면서도 한시(漢詩)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될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더욱이 우리 학계의 현실은 지금까지도 ..
한시미학산책(漢詩美學散策) 목차 정민 지은이의 말 1) 허공 속으로 난 길1. 푸른 하늘과 까마귀의 날개빛박지원 - 答蒼厓之三박지원 - 菱洋詩集序박지원 - 答京之之二2. 영양(羚羊)이 뿔을 걸듯엄우 - 시란 말이나 이치에 천착치 않는다3. 허공 속으로 난 길이옥 - 俚諺引 一難고조기 - 山莊雨夜이달 - 撲棗謠백광훈 - 弘慶寺4. 눈과 귀가 있다 말하지 말라홍양호 - 疾雷이규보 - 論詩5. 이명(耳鳴)과 코골기박지원 - 孔雀館文稿 自序 2) 그림과 시1. 그리지 않고 그리기노자 - 45번2. 말하지 않고 말하기정곡 - 落葉두보 - 春望두보 - 江南逢李龜年서거정 - 獨坐3. 장수는 목이 없고, 미인은 어깨가 없다박지원 - 菱洋詩集序어우야담 - 그대의 좋아하는 마음 잘 싣고 갑니다신광수 - 峽口所見4. 정..
30. 그때의 지금인 옛날, 통변론(通變論)한시(漢詩) 전통의 미학의의 1. 지팡이 자국마다 고이는 봄비 자료를 찾으러 대학 도서관에 들렀다. 고서 영인본 서가를 둘러보는데 「송산하(頌山河)」란 시집이 한 권 꽂혀 있다. 옛 책 매듯 제본하였기에 잘못 고서로 분류한 것이다. 산기슭/ 물굽이/ 도는 나그네/ 지팡이/ 자국마다/ 고이는 봄비 (春 2) 소나무/ 가지 끝에/ 달랑/ 앉아/ 봄맞이 노래로/ 해 지는 멧새 (春 25) 갈매기/ 흰 나래/ 타는 저녁놀/ 기다림에/ 지쳐서/ 조는 나룻배 (夏 37) 청개구리/ 버들 타고/ 울면/ 파초 잎에/ 후두둑/ 소나기 (夏 64) 못 잊어/ 찾는 이 길/ 하도 덧없어/ 허랑해/ 잊잔 길이/ 이리 삼삼해 (秋 97) 긁어 모은/ 낙엽에/ 불을 붙이면/ 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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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시화(詩話), ‘행복한 시읽기’ 1. 한시 비평과 시화(詩話) 어느 시대고 많은 작품이 생산되면 으례 이의 옥석을 구분하려는 비평의 욕구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범람하는 작가와 작품의 홍수 속에서 악화와 양화를 구별해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문학이 펼쳐질 수 있게 하기 위해 비평 활동이 전개된다. 그런데 이 악화니 양화니 하는 개념이나 문학의 바람직한 전개 방향이란 것이 고정불변일 수 없다는 데서 시대마다, 또 평자마다 개성이 드러나고 견해가 갈리게 된다. 오늘날 시단에 비평이 존재하듯, 과거에도 한시를 중심으로 한 비평활동은 꾸준히 펼쳐져 왔다. 과거의 비평활동은 크게 선집류(選集類)의 간행을 통한 방법과, 시화(詩話)의 저술을 통한 방법이 있었다. 전자가 규모가 크고 간접적이라면, 후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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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한시와 현대시, 같고도 다르게 1. 동서양의 수법 차이 조지훈은 「또 하나의 시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낮은 소리 가만히 그리웠냐 물어보니, 금비녀 매만지며 고개만 까닥까닥[低聲暗問相思否, 手整金𨥁少點頭].’ 여기에 동양의 수법이 있다. 서양의 시인은 이렇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도 당신을 사랑했어요, 한 시도 잊을 수 없어요 하고 빨간 입술을 내밀었을 것이다. 어느 것이 낫다는 것은 별문제로 하고라도 표현 방법에서도 동양의 수법은 신비롭다. 이 동양의 수법이란 곧 한시의 수법이다. 직접 말하지 않는다. 다 보여주지 않는다. 입상진의(立象盡意), 이미지를 세워 할 말을 대신한다. 현대시도 한 가지다. 현대시와 한시는 여러 모로 참 닮았다. 한시와 현대시의 관련을 찾는 가장 쉽고..
27. 시적 진술의 논리적 진실 1. 시에 담긴 과장과 함축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은 단지 망상으로 억탁한 것일 뿐이니, 마치 다른 사람의 꿈을 말하는 격이다. 설령 형용이 아주 비슷하다 해도 어찌 터럭만큼이라도 마음을 끌겠는가? 그런 줄 아는 것은 ‘퇴(推)’와 ‘고(敲)’ 두 글자를 침음한 것이 바로 그가 지어낸 생각이기 때문이다. 만약 경(景)과 마주해 마음으로 느꼈다면, ‘퇴(推)’든 ‘고(敲)’든 반드시 어느 하나였을 터이다. 경(景)과 정(情)에 따르면 절로 영묘(靈妙)해지니, 어찌 수고로이 따져 의논하랴? ‘장하락일원(長河落日圓)’은 애초에 정해진 경이 없었고, ‘격수문초부(隔水問樵夫)’는 처음부터 생각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으니, 선가(禪家)에서 이른바 ‘현량(現量)’이라는 것이다.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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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한시의 용사(用事) 1. 이곤의 부벽루시와 용사 한시의 표현 방식 가운데 용사법(用事法)이 있다. 여기서는 이에 대해 살펴 표현방식의 한 양상을 검토하기로 한다. 한시에서 운자를 사용하여 여러 시인이 반복적으로 시를 짓다 보면 나중에는 표현 방식이 유형화 되게 마련이었다. 한시에서 앞선 시인이 사용한 것과 비슷한 표현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적 관점에서 보면 명백한 표절인 표현이 한시에 있어서는 별 문제되지 않고, 오히려 옛 사람의 표현을 얼마나 적절하게 자기화 하느냐에 시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까지 생각되었다. 다음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 실려 있는 이혼(李混)의 「부벽루(浮碧樓)」란 작품이다. 永明寺中僧不見영명사 가운데 스님은 뵈지 않고 永明寺前江自流영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