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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가인박명(佳人薄命) 아름다운 이는 단명하리 한자어 佳 人 薄 命 뜻 아름다울 사람 엷을 목숨 음 가 인 박 명 풀이 아름다운 여인은 운명이 기구하거나 짧다는 말. 유래 아래 시를 지은 작자 소식(蘇軾)이 항주(杭州), 양주(揚州) 등의 지방장관으로 있을 때 우연히 절에서 나이 삼십이 이미 넘었다는 예쁜 여승을 보고 그녀의 아름다웠을 소녀시절을 생각하며 미인은 역사적으로 운명이 기박하였음을 시로 쓴 데서 전하여졌다. 雙頰凝酥髮抹漆 쌍협응소발말칠 두 볼은 엉긴 우유와 같고 머리는 옻칠을 한 것처럼 새까맣고, 眼光入簾珠白樂 안광입렴주백락 눈빛이 발에 들어오니 주옥과 같이 빛난다. 故將白練作仙衣 고장백련작선의 본디 흰 비단으로써 선녀의 옷을 지으니, 不許紅膏汚天質 불허홍고오천질 입술연지는 천연의 바탕을 더럽힌다..
1. 가인박명 / 2. 가화만사성 3. 각골난망 / 4. 각주구검 5. 감언이설 / 6. 감탄고토 7. 갑론을박 / 8. 거두절미 9. 격세지감 / 10. 견물생심 11. 견원지간 / 12. 결자해지 13. 결초보은 / 14. 경거망동 15. 경국지색 / 16. 경천동지 17. 계구우후 / 18. 계란유골 19. 계륵 / 20. 고진감래 21. 골육상잔 / 22. 골육상쟁 23. 공명정대 / 24. 과대망상 25. 과유불급 / 16. 괄목상대 27. 구사일생 / 28. 구우일모 29. 군계일학 / 30. 궁여지책 31. 권모술수 / 32. 권선징악 33. 금상첨화 / 34. 금의환향 35. 금지옥엽 / 36. 기우 37. 난공불락 / 38. 난형난제 39. 내우외환 / 40./ 노심초사 41. 누란지위 ..
교언영색(巧言令色) 말재주를 뽐내고 얼굴빛을 꾸미는 사람을 멀리하라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논어(論語)』 「학이(學而)」 공자(孔子)는 아첨꾼에 대해 “곱게만 말하고 알랑거리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치고 인한 사람은 드물단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통해 공자는 말만 번드르르하게 하고 사람 좋아보이는 척하는 것을 경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로(子路)」에서는 “강직함과 굳셈과 질박함과 어눌함이 인(仁)에 가깝다[剛ㆍ毅ㆍ木ㆍ訥, 近仁]”고 말하며 어눌함을 칭송하기도 했던 것이다. 『논어(論語)』를 읽다보면 공자의 어눌함에 대한 칭송과 겉만 화려한 사람보다 질박할지라도 순수한 사람에 대한 칭송이 곳곳에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공자의 사상이야말로 말만 화려하게 하는 사람, 겉모습..
고복격양(鼓腹擊壤) 나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태평성대 都平陽, 茅茨不剪, 土階三等. 治天下五十年. 不知天下治歟, 不治歟. 乃微服游於康衢. 有老人, 含哺鼓腹, 擊壤而歌曰: “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何有於我哉?” 『십팔사략(十八史略)』 먼 옛날 중국에 이상적인 군주로 이름난 요(堯) 임금이 선정을 베풀어 온 지도 어느덧 50년이 지났다. 하루하루를 태평하게 지내던 어느 날, 요 임금은 정말로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궁금하여 해진 옷[微服]을 입고 민정(民情)을 살펴보러 나갔다. 어느 사거리에 이르자 아이들이 손을 맞잡고 요 임금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立我烝民 莫匪爾極 우리 백성이 자립한 것은 임금의 극진한 덕이 아님이 없네. 不識不知 順帝之則 ..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물을 궁리함으로 앎의 극치에 이른다 致知在格物者, 言欲致吾之知, 在卽物而窮其理也. 『대학(大學)』 보궐장(補闕章)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은 유교의 교의(敎義)를 간결하게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으로서 그 내용은 삼강령(三綱領), 팔조목(八條目)으로 요약된다. 팔조목(八條目) 중 여섯 조목에 대해서는 『대학(大學)』에 해설이 나와 있지만 ‘격물(格物)’과 ‘치지(致知)’의 두 조목에 대해서는 해설이 없다. 그래서 송대(宋代) 이후 유학자들 사이에 그 해석을 둘러싸고 여러 설이 나와 유교 사상의 근본 문제 중의 하나로 논쟁의 표적이 되어 왔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송(宋) 나라 주자(朱子)의 설과 명(明) 나라 왕양명(王陽明)의 설을 들 수 있다. ① 주자(朱子)의 설..
자포자기(自暴自棄) 스스로 헐뜯거나 스스로 내팽겨친 사람 孟子曰: “自暴者, 不可與有言也; 自棄者, 不可與有爲也. 言非禮義, 謂之自暴也; 吾身不能居仁由義, 謂之自棄也. 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 曠安宅而弗居, 舍正路而不由, 哀哉!” 『맹자(孟子)』 「이루(離婁)」 上 전국시대를 살다간 아성(亞聖) 맹자(孟子)는 ‘자포(自暴)’와 ‘자기(自棄)’에 대해 『맹자(孟子)』 「이루편(離婁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를 헐뜯는 ‘자포(自暴)하는 사람’과는 함께 대화를 나눌 수가 없고 스스로를 내버린 ‘자기(自棄)하는 사람’과는 함께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헐뜯고, 스스로를 내버린 사람’이란 뜻으로 무슨 일을 하기도 전에 이미 부정적인 시선에 갇힌 사람을 표현한 말이다. 이런 말..
후생가외(後生可畏) 선배들도 학문적으로 발분하지 않으면 후배들에게 따라 잡힌다 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 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논어(論語)』 「자한(子罕)」 공자가 재주와 덕을 갖추고 학문이 뛰어난 안회(顔回)를 두고 칭찬한 말이다. 공자는 이 말을 함으로 젊은 후배들이 학문에 정진하면 선배들이나 선생님도 놀랄 정도로 학문에 성취가 있을 수 있다고 일깨워줬다. 겉뜻: 뒤에 태어난 후배들이 두려워할 만하다 속뜻: 후배들이 학문에 정진한 결과, 선배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실력이 앞지른 것을 말한다. 유의어: 청출어람(靑出於藍) 인용 목차
절차탁마(切磋琢磨) 학문의 성장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瞻彼淇奧, 緣竹猗猗. 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匪君子, 終不可諼兮. 『시경(詩經)』 위풍(衛風) 「기욱(淇奧)」 / 『대학(大學)』 傳3章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논어(論語)』 「학이(學而)」 骨曰切, 象曰磋, 玉曰琢, 石曰磨. 切磋琢磨, 乃成寶器. 人之學問知能成就, 猶骨象玉切磋琢磨也. 『논형(論衡)』 「양지(量知)」 『논어(論語)』 「학이(學而)」에는 『시경(詩經)』에 실려 있는 시가 인용되고 있다. 자공(子貢): 가난해도 아첨함이 없고, 부유하면..
위편삼절(韋編三絶) 책에 푹 빠져 사는 삶 孔子晩而喜『易』, 序彖ㆍ繋ㆍ象ㆍ說卦ㆍ文言. 讀『易』, 韋編三絶. 曰: “假我數年, 若是, 我於『易』則彬彬矣.”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현대식으로 말하면, 한 권의 책을 몇십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어서 책을 철(綴)한 곳이 닳아 흩어진 것을 다시 고쳐 매어서 애독(愛讀)하는 것을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책이 소위 몇십 장의 죽간(竹簡)을 끈으로 묶어서 만들었다. 그런데 그 끈이 몇 번이나 끊어지도록 책을 계속하여 읽는 것을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고 하는데, ‘삼절(三絶)’이란 딱 세 번에 한정된 수가 아닌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책을 읽느라 끊어진다는 뜻이다. 이 말은 전한(前漢)의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
조선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 한번 시작한 일을 오래 지속하기 어렵네 西厓柳成龍, 爲都體察使, 有列邑移文事. 文旣成, 屬驛吏. 過三日後, 復收其文, 將追改之. 驛吏持文而至, 相國詰之曰: “爾何受書三日, 尙不頒列邑?” 吏對之曰: “俗談朝鮮公事三日, 小人知三日後復推之, 故延至今日矣.” 相國欲罪之, 仍思之曰: “是言可以警世, 吾過矣.” 遂改其文而使之頒. 『어우야담(於于野談)』 이 속담은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 유래했다. 명상(名相) 서애(西涯) 유성룡(柳成龍)이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있을 때, 각 고을에 발송할 공문이 있어서 역리(驛吏)에게 주었다. 보낸 후 사흘 뒤에 그 공문을 다시 고칠 필요가 있어서 회수시켰더니 그 역리가 돌리지도 않고 있다가 고스란히 그대로 갖고 오더라는 것이다. 서애..
등용문(登龍門) 출세하다 河津一名龍門, 水險不通, 魚鼈之屬, 莫能上. 江海大魚, 薄集龍門下數千, 不得上, 上則爲龍也. 『후한서(後漢書)』 「이응전(李應傳)」 후한(後漢) 때 관리인 이응(李膺)은 퇴폐한 환관들과 맞서 싸우며 기강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한 정의파 관료였다. 당시 환관의 무리들은 이응의 이야기만 들어도 벌벌 떨었고, 청년 관리들은 그와 만나는 것을 등용문이라 하여 큰 영광으로 여겼다. 「이응전(李應傳)」의 주해(註解)에서 ‘용문(龍門)’이란 단어가 유래하는데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출세의 문턱에 서는 것을 말한다. ‘용문(龍門)’은 황하 상류의 산서성(山西省)과 섬서성(陝西省)의 경계에 있는 협곡이다. 겉뜻: 용문에 오르다 속뜻: 입신출세(立身出..
안도(安堵) 걱정이 사라져 맘이 편안해라 田單又收民金, 得千溢, 令卽墨富豪遺燕將, 曰: “卽墨卽降, 願無虜掠吾族家妻妾, 令安堵.” 燕將大喜, 許之, 燕軍由此益懈. 『사기(史記)』 「전단열전(田單列傳)」 召諸縣父老豪桀曰: “父老苦秦苛法久矣, 誹謗者族, 偶語者棄巿. 吾與諸侯約, 先入關者王之, 吾當王關中. 與父老約, 法三章耳. 殺人者死, 傷人及盜抵罪, 餘悉除去秦法, 諸吏人皆案堵如故.”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 전국시대, 제(齊)나라 민왕(涽王)이 남으로 초(楚)나라를 쳐 승리하고, 서로는 삼진(三晉)을 깨트리고, 송(宋)나라를 멸망시켜 천여 리나 되는 땅을 넓히는 등 세력이 강해지자 제후들이 제나라에 복종하기 시작했다. 민왕은 교만해졌고, 백성들은 그의 정치를 견디기 힘들어했다. 연(燕)나라 소..
일모도원(日暮途遠) 시간은 촉박한데 할 일은 많다 伍子胥者, 楚人也, 名員. 員父曰伍奢, 員兄曰伍尙, 其先曰伍擧, 以直諫事楚莊王, 有顯, 故其後世有名於楚. 始伍員與申包胥爲交, 員之亡也, 謂包胥曰: “我必覆楚.” 包胥曰: “我必存之.” 及吳兵入郢, 伍子胥求昭王, 旣不得, 乃掘楚平王墓, 出其屍, 鞭之三百, 然後已. 申包胥亡於山中, 使人謂子胥曰: “子之報讎, 其以甚乎! 吾聞之, 人衆者勝天, 天定亦能破人. 今子故平王之臣, 親北面而事之, 今至於僇死人, 此豈其無天道之極乎!” 伍子胥曰: “爲我謝申包胥曰: ‘吾日莫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 於是申包胥走秦告急, 求救於秦. 秦不許. 包胥立於秦廷, 晝夜哭, 七日七夜不絶其聲. 秦哀公憐之曰: “楚雖無道, 有臣若是, 可無存乎!” 乃遣車五百乘救楚擊吳. 『사기(史記)』 「오자서열전..
순망치한(脣亡齒寒) 한 나라가 망하면 이웃나라도 망하게 된다 晉侯復假道於虞, 以伐虢. 宮之奇諫曰: “虢, 虞之表也, 虢亡, 虞必從之. 晉不可啓, 寇不可翫. 一之謂甚, 其可再乎? 諺所謂輔車相依, 脣亡齒寒者. 其虞ㆍ虢之謂也.” 公曰: “晉, 吾宗也, 豈害我哉?” … (중략) … 弗聽, 許晉使. 宮之奇以其族行曰: “虞不臘. 在此行也, 晉不更擧矣.” … (중략) … 冬十二月丙子朔, 晉滅虢, 虢公醜奔京師. 師還, 館于虞, 遂襲虞, 滅之.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5년 춘추시대 말엽(BC 655), 오패(五覇)의 한 사람인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아버지 헌공(獻公)이 괵(虢)·우(虞) 두 나라를 공략할 때의 일이다. 괵나라를 치기로 결심한 헌공은 진나라와 괵나라의 중간에 위치한 우(虞)나라의 ..
배수지진(背水之陣) 목숨을 걸고 도전하다 諸將效首虜, 畢賀, 因問信曰: “兵法右倍山陵, 前左水澤, 今者將軍令臣等反背水陳, 曰破趙會食, 臣等不服. 然竟以勝, 此何術也?” 信曰: “此在兵法, 顧諸君不察耳. 兵法不曰: ‘陷之死地而後生, 置之亡地而後存?’ 且信非得素拊循士大夫也, 此所謂驅市人而戰之, 其勢非置之死地, 使人人自爲戰; 今予之生地, 皆走, 寧尚可得而用之乎!” 諸將皆服曰: “善. 非臣所及也.”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諸將問信曰: “兵法, 右倍山陵, 前左水澤, 今者將軍令臣等, 反背水陣以勝, 何也?” 信曰: “此在兵法, 顧諸君不察耳, 『兵法』不曰: ‘陷之死地而後生, 置之亡地而後存乎.’ 且信非得素拊循士大夫也, 此所謂驅市人而戰. 予之生地, 皆走, 寧得而用之乎.” 諸將皆服. 『통감절요(通鑑節要)..
구상유취(口尙乳臭) 유치한 사람 漢王, 使酈食其, 緩頰往說魏王豹, 且召之, 豹不聽. 於是, 漢王以韓信ㆍ灌嬰ㆍ曹參, 俱擊魏, 漢王問食其, “魏大將誰也?” 對曰: “柏直.” 王曰: “是口尙乳臭, 安能當韓信, 騎將誰也?” 曰: “馮敬.” 曰: “是秦將馮無擇子也, 雖賢, 不能當灌嬰. 步卒將誰也?” 曰: “項它.” 曰: “不能當曹參, 吾無患矣.” 『통감절요(通鑑節要)』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죽은 후, 도처에서 진나라의 포악한 정치에 항거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초(楚)나라의 귀족 출신인 항량(項梁, 항우의 숙부)과 항우(項羽)도 반란을 일으켜 초나라를 재건하고 진나라를 공격했다. 항우가 최종적으로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접수하자 진나라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지 16년 만에 완전히 막을 내렸고, ..
국사무쌍(國士無雙) 매우 뛰어난 인재 及項梁渡淮, 信杖劍從之, 居戲下, 無所知名. 項梁敗, 又屬項羽, 羽以爲郎中. 數以策干項羽, 羽不用. 漢王之入蜀, 信亡楚歸漢, 未得知名, 爲連敖. 坐法當斬, 其輩十三人皆已斬, 次至信, 信乃仰視, 適見滕公曰: “上不欲就天下乎? 何爲斬壯士!” 滕公奇其言, 壯其貌, 釋而不斬. 與語, 大說之. 言於上, 上拜以爲治粟都尉, 上未之奇也. 信數與蕭何語, 何奇之. 至南鄭, 諸將行道亡者數十人. 信度何等已數言上, 上不我用, 卽亡. 何聞信亡, 不及以聞, 自追之. 人有言上曰: “丞相何亡.” 上大怒, 如失左右手. 居一二日, 何來謁上, 上且怒且喜, 罵何曰: “若亡, 何也?” 何曰: “臣不敢亡也, 臣追亡者.” 上曰: “若所追者誰何?” 曰: “韓信也.” 上復罵曰: “諸將亡者以十數, 公無所追; 追信,..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은 것이 어느 경우라도 좋다 上常從容與信言諸將能不, 各有差. 上問曰: “如我能將幾何?” 信曰: “陛下不過能將十萬.” 上曰: “於君何如?” 曰: “臣多多而益善耳.” 上笑曰: “多多益善, 何爲爲我禽?” 信曰: “陛下不能將兵, 而善將將, 此乃信之所以爲陛下禽也. 且陛下所謂天授, 非人力也.”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上嘗從容問韓信, 諸將能將兵多少. 上曰: “如我能將幾何?” 信曰: “陛下不過將十萬.” 上曰: “於君何如?” 信曰: “臣多多益辨” 上笑曰: “多多益辨, 何以爲我禽?” 曰: “陛下不能將兵而善將將. 此信所以爲陛下禽. 且陛下所謂天授, 非人力也.” 『십팔사략(十八史略)』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은 명장으로서 천하 통일의 일등 공신인 초왕(楚王) 한신(韓信)을 위험한 ..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나라와 친하고 가까운 나라는 공격하는 외교정책 秦昭襄王立. 有魏人范睢者, 嘗從須賈使齊, 齊王聞其辯口, 乃賜之金及牛酒. 賈疑睢以國陰事告齊, 歸告魏相魏齊. 魏齊怒笞擊睢, 折脅拉齒. 睢佯死. 秦使者至魏, 潛載, 睢與歸. 薦于昭襄王, 以爲客卿, 敎以遠交近政之策, 爲丞相, 號應侯. 睢旣得志于秦, 一飯之德必償, 睚眦之怨必報. 『십팔사략(十八史略)』 魏人范雎亡入秦, 說秦王曰: “以秦國之大, 士卒之勇, 以治諸侯, 譬如走韓廬而搏蹇兎也, 而閉關十五年, 不敢窺兵於山東者, 是穰侯爲秦謀不忠, 而大王之計, 亦有所失也.” 王跽曰: “願聞失計.” 雎曰: “夫穰侯越韓ㆍ魏而攻齊, 非計也. 今王不如遠交而近攻, 得寸, 則王之寸也; 得尺, 則王之尺也. 今夫韓ㆍ魏, 中國之處而天下之樞也. 王若欲霸, 必親中國, 以爲天下樞,..
사면초가(四面楚歌)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힘든 상황 項王軍壁垓下, 兵少食盡, 漢軍及諸侯兵圍之數重. 夜聞漢軍四面皆楚歌, 項王乃大驚曰: “漢皆已得楚乎? 是何楚人之多也!” 項王則夜起, 飮帳中. 有美人名虞, 常幸從; 駿馬名騅, 常騎之. 於是項王乃悲歌慷慨, 自爲詩曰: “力拔山兮氣蓋世, 時不利兮騅不逝. 騅不逝兮可奈何, 虞兮虞兮奈若何!” 歌數闋, 美人和之. 項王泣數行下, 左右皆泣, 莫能仰視.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 張良ㆍ陳平謂漢王曰: “漢有天下大半, 楚兵饑疲, 今釋不擊, 此養虎自遺患也.” 王從之. 五年, 王追羽至固陵, 韓信ㆍ彭越皆引兵來, 黥布亦會. 項羽至垓下, 兵少食盡. 信等乘之, 羽敗入壁, 圍之數重. 羽夜聞漢軍四面皆楚歌, 大驚曰: “漢已得楚乎? 何楚人多也.” 起飮帳中, 命虞美人起舞, 悲歌..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큰 차이가 없다 梁惠王曰: “寡人之於國也, 盡心焉耳矣. 河內凶, 則移其民於河東, 移其粟於河內. 河東凶亦然. 察鄰國之政, 無如寡人之用心者. 鄰國之民不加少, 寡人之民不加多, 何也?” 孟子對曰: “王好戰, 請以戰喩. 塡然鼓之, 兵刃旣接, 棄甲曳兵而走. 或百步而後止, 或五十步而後止, 以五十步笑百步, 則何如?” 曰: “不可, 直不百步耳, 是亦走也.”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맹자(孟子)가 양혜왕(梁惠王)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양혜왕: 과인은 나랏일에 온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내에 흉년이 들면 그 백성들을 하동으로 이주시키고 식량을 하내로 옮기며, 하동에 흉년이 들면 역시 그렇게 합니다. 이웃 나라의 정사를 살펴보면 과인만큼 마음을 쓰는 사람이 없는데, 이웃나라의 백성이 ..
기화가거(奇貨可居) 진기한 재물을 보관해두면 훗날 큰 이익을 본다 呂不韋者, 陽翟大賈人也. 往來販賤賣貴, 家累千金. 秦昭王四十年, 太子死. 其四十二年, 以其次子安國君爲太子. 安國君有子二十餘人, 安國君有所甚愛姫, 立以爲正夫人, 號曰華陽夫人., 華陽夫人無子. 安國君中男名子楚, 子楚母曰夏姫, 毋愛. 子楚爲秦質子於趙, 秦數攻趙, 趙不甚禮子楚. 『사기(史記)』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子楚, 秦諸庶孽孫, 質於諸侯, 車乘進用不饒, 居處困, 不得意. 呂不韋賈邯鄲, 見而憐之, 曰: “此奇貨可居”. 乃往見子楚, 說曰: “吾能大子之門.” 子楚笑曰: “且自大君之門, 而乃大吾門!” 呂不韋曰: “子不知也, 吾門待子門而大.” 子楚心知所謂, 乃引與坐, 深語. 呂不韋曰: “秦王老矣, 安國君得爲太子. 竊聞安國君愛幸華陽夫人, 華陽夫人..
오월동주(吳越同舟) 어려움에 몰리면 원수와도 힘을 합친다 故善用兵, 譬如率然. 率然者, 常山之蛇也, 擊其首則尾至, 擊其尾則首至, 擊其中則首尾俱至. 敢問: “兵可使如率然乎?” 曰: “可.” 夫吳人與越人相惡也, 當其同舟而濟遇風, 其相救也, 如左右手. 『손자병법(孫子兵法)』 「구지편(九地篇)」 『손자(孫子)』라는 책은 중국의 유명한 병서(兵書)로서 춘추시대 오나라의 손무(孫武)가 쓴 것이다. 손무(孫武)는 오왕(吳王) 합려(闔閭) 때, 서쪽으로는 초(楚)나라의 도읍을 공략하고 북방의 제(齊)나라와 진(晉)나라를 격파한 명장이기도 했다. 병(兵)을 쓰는 법에는 아홉 가지의 지(地)가 있다. 그 구지(九地) 중 최후의 것을 사지(死地)라 한다. 주저 없이 일어서 싸우면 살길이 있고, 기가 꺾이어 망설이면 패망하고..
강궁지말(强弩之末) 강성한 것일지라도 쇠퇴하고 만다 禦史大夫韓安國者, 梁成安人也, 後徙睢陽. 嘗受韓子ㆍ雜家說於騶田生所, 事梁孝王爲中大夫. 吳ㆍ楚反時, 孝王使安國及張羽爲將, 扞吳兵於東界. 張羽力戰, 安國持重, 以故吳不能過梁. 吳ㆍ楚已破, 安國ㆍ張羽名由此顯. 『사기(史記)』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 匈奴來請和親, 天子下議. 大行王恢, 燕人也, 數爲邊吏, 習知胡事. 議曰: “漢與匈奴和親, 率不過數歲卽複倍約. 不如勿許, 興兵擊之.” 安國曰: “千里而戰, 兵不獲利. 今匈奴負戎馬之足, 懷禽獸之心, 遷徙鳥擧, 難得而制也. 得其地不足以爲廣, 有其衆不足以爲彊, 自上古不屬爲人. 漢數千里爭利, 則人馬罷, 虜以全制其敝. 且彊弩之極, 矢不能穿魯縞: 衝風之末, 力不能漂鴻毛. 非初不勁, 末力衰也. 擊之不便, 不如和親.” 群臣議者..
토포악발(吐哺握髮) 어진 인재를 맞이하기 위해 손님을 극진히 대우하다 武王崩, 周公相成王. 使其子伯禽, 代就封於魯, 戒之曰: “我文王之子, 武王之弟, 成王之叔父, 我於天下亦不賤矣. 然我一沐三握髮, 一飯三吐哺, 起以待士, 猶恐失天下之賢人. 子之魯, 愼無以國驕人.” 『몽구(蒙求)』 魯周公子伯禽之所封也. 周公誨成王, 王有過則撻伯禽. 伯禽就封, 公戒之曰: “我文王之子, 武王之弟, 今王之叔父. 然我一沐三握髮, 一飯三吐哺, 起以待士, 猶恐失天下賢人. 汝之魯, 愼無以國驕人.” 『십팔사략(十八史略)』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멸하고 주(周)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이 죽자 아들 송(誦)이 그 뒤를 이었는데, 그가 성왕(成王)이다. 성왕은 나이가 너무 어렸으므로 무왕의 동생 주공(周公)이 무왕의 유지를 받들어 섭정을 했..
붕정만리(鵬程萬里) 머나먼 여정 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是鳥也, 海運則將徙于南冥. 南冥者, 天池也. 『齊諧』者, 志怪者也. 『諧』之言曰: “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搏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북쪽 바다에 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鯤)이라 한다. 곤의 큰 것은 그 길이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화(化)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붕새의 등은 그 길이가 몇 천리인지 알지 못한다. 성내어 날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의 기운으로 장차 남쪽 바다로 옮기는데, 남쪽 바다는 하늘의 연못이다. 제해(齊諧)라는 사..
양상군자(梁上君子) 도둑과 생쥐 陳寔, 字仲弓, 潁川許人也. … (중략) … 寔在鄕閭, 平心率物. 其有爭訟, 輒求判正, 曉譬曲直, 退無怨者. 至乃歎曰: “寧爲刑罰所加, 不爲陳君所短.” 時歲荒民儉. 有盜夜入其室, 止於梁上, 寔陰見, 乃起自整拂, 呼命子孫, 正色訓之曰: “夫人不可不自勉. 不善之人, 未必本惡, 習以性成, 遂至於此, 梁上君子者是矣.” 盜大驚, 自投於地, 稽顙歸罪. 寔徐譬之曰: “視君狀貌, 不似惡人. 宜深剋己反善, 然此當由貧困.” 令遺絹二匹, 自是一縣無復盜竊. 『후한서(後漢書)』 「진식열전(陳寔列傳)」 후한 말엽, 진식(陳寔)이란 사람이 하남성(河南省) 소재(所在) 태구현(太丘縣) 현령(縣令)으로 있을 때, 그는 늘 겸손한 자세로 현민(縣民)의 고충을 헤아리고 매사를 공정하게 처리함으로써 현민으로..
비육지탄(髀肉之嘆) 때를 만나지 못하고 허송세월하다 起兵討操. 操擊之, 備先奔冀州, 領兵至汝南. 自汝南奔荊州, 歸劉表. 嘗於表坐, 起至厠, 還慨然流涕. 表怪問之, 備曰: “常時身不離鞍, 髀肉皆消, 今不復騎, 髀裏肉生. 日月如流, 老將至, 功業不建, 是以悲耳.” 『십팔사략(十八史略)』 「동한(東漢)」 효헌황제(孝獻皇帝) 유비(劉備)가 군사를 일으킨 후 여남(汝南)에서 조조(曹操)와 싸워 크게 패하고 말았다. 남은 병력은 천 명도 안 되었고 딱히 갈 곳도 없었던 유비는 잠시 형주(荊州) 자사 유표(劉表)에게 의지하기로 하였다. 유표는 유비에게 병사를 더해 주어 신야(新野)에 주둔하도록 했다. 그런데 형주 지역의 많은 인재들이 유비에게 귀복하자 유표는 유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유비가 유표의 초대를 ..
마부작침(磨斧作針) 끝내 이루리라 世傳, 李太白讀書山中, 未成棄去. 過是溪, 逢老媼方磨鐵杵, 問之, 曰: “欲作針.” 太白感其意, 還卒業. 『방여승람(方輿勝覽)』 「마침계(磨針溪)」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이백(李白)은 무역상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촉(蜀)에서 보냈다. 젊은 시절 도교에 심취했던 이백은 유협(遊俠)의 무리들과 어울려 사천성(四川省) 각지의 산을 떠돌기도 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때 공부를 하기 위해 팽산(彭山)의 상이산(象耳山)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이루지 못하고 포기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 골짜기를 지나가다가 한 노파가 냇가에서 쇠공이를 갈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았다. 그 후로 돌아가 공부를 마쳤다. 그 노파는 자신의 성이 무(武)씨라고 했는데, 오늘날 그 내 옆에는..
백년하청(百年河淸) 전혀 이루어질 희망이 없다 冬, 楚子囊伐鄭, 討其侵蔡也. 子駟ㆍ子國ㆍ子耳, 欲從楚, 子孔ㆍ子蟜ㆍ子展, 欲待晉. 子駟曰: “周詩有之曰: ‘俟河之淸, 人壽幾何. 兆云詢多, 職競作羅.’ 謀之多族, 民之多違, 事滋無成. 民急矣, 姑從楚, 以紓吾民, 晉師至, 吾又從之. 敬共幣帛, 以待來者, 小國之道也. 犧牲玉帛, 待於二竟, 以待彊者, 而庇民焉. 寇不爲害, 民不罷病, 不亦可乎.”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8년 정(鄭)나라가 초(楚)나라의 속국 격인 채(蔡)나라를 공격하자 초나라도 정나라를 공격할 채비를 하게 되었다. 이에 정나라에서는 대책을 숙의하는 회의를 열게 되었다. 회의는 진(晉)나라에 구원병을 청하자는 측과 초나라와 강화(講和)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송양지인(宋襄之仁) 자신의 주제를 넘어서 베푸는 인정 冬十一月己巳朔, 宋公及楚人戰于泓. 宋人旣成列, 楚人未旣濟. 司馬曰: “彼衆我寡, 及其未旣濟也, 請擊之.” 公曰: “不可.” 旣濟而未成列, 又以告, 公曰: “未可.” 旣陳而後擊之, 宋師敗績, 公傷股, 門官殲焉. 國人皆咎公, 公曰: “君子不重傷, 不禽二毛. 古之爲軍也, 不以阻隘也. 寡人雖亡國之餘, 不鼓不成列.”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22년 宋子姓, 商紂庶兄微子啓之所封也. 後世至春秋, 有襄公玆父者, 欲覇諸侯, 與楚戰. 公子目夷請及其未陳擊之, 公曰: “君子不困人於阨.” 遂爲楚所敗, 世笑以爲‘宋襄之仁’. 『십팔사략(十八史略)』 춘추시대인 주(周)나라 양왕(襄王) 2년(BC 650), 송(宋)나라 환공(桓公)이 세상을 떠났다. 환공이 병석에 있..
금의야행(錦衣夜行) 아무런 보람이 없는 행동 居數日, 項羽引兵西屠咸陽, 殺秦降王子嬰, 燒秦宮室, 火三月不滅. 收其貨寶婦女而東. 人或說項王曰: “關中阻山河四塞, 地肥饒, 可都以霸.” 項王見秦宮皆以燒殘破, 又心懷思欲東歸, 曰: “富貴不歸故鄕, 如衣繡夜行, 誰知之者!” 說者曰: “人言楚人沐猴而冠耳, 果然.” 項王聞之, 烹說者.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 居數日, 羽引兵西, 屠咸陽, 殺降王子嬰. 燒秦宮室, 火三月不絶. 掘始皇冢, 收寶貨婦女而東, 秦民大失望. 韓生說羽曰: “關中阻山帶河, 四塞之地肥饒, 可都以覇.” 羽見秦殘破, 且思東歸曰: “富貴不歸故鄕, 如衣繡夜行耳.” 韓生退曰: “人言, 楚人沐猴而冠, 果然.” 羽聞之, 烹韓生. 『십팔사략(十八史略)』 後數日, 羽乃屠咸陽, 殺秦降王子嬰, 燒其宮室, 火..
수주대토(守株待兎) 우연한 행운만을 기대하는, 맹목적 복고주의의 어리석음 上古之世, 人民少而禽獸衆, 人民不勝禽獸蟲蛇. 有聖人作, 搆木爲巢以避群害, 而民悅之, 使王天下, 號之曰: ‘有巢氏.’ 民食果蓏蚌蛤, 腥臊惡臭而傷害腹胃, 民多疾病. 有聖人作, 鑽燧取火以化腥臊, 而民說之, 使王天下, 號之曰: ‘燧人氏.’ 中古之世, 天下大水, 而鯀ㆍ禹決瀆. 近古之世, 桀ㆍ紂暴亂, 而湯ㆍ武征伐. 今有搆木鑽燧於夏後氏之世者, 必爲鯀ㆍ禹笑矣; 有決瀆於殷ㆍ周之世者, 必爲湯ㆍ武笑矣. 然則今有美堯ㆍ舜ㆍ湯ㆍ武ㆍ禹之道於當今之世者, 必爲新聖笑矣. 是以聖人不期修古, 不法常可, 論世之事, 因爲之備. 宋人有耕田者, 田中有株, 兎走觸株, 折頸而死, 因釋其耒而守株, 冀復得兎, 兎不可復得, 而身爲宋國笑. 今欲以先王之政, 治當世之民, 皆守株之類也. 『..
기인지우(杞人之憂) 씨잘데기 없는 걱정 杞國有人, 憂天地崩墜, 身亡所寄, 廢寢食者. 又有憂彼之所憂者, 因往曉之曰: “天積氣耳, 亡處亡氣. 若屈伸呼吸, 終日在天中行止, 奈何憂崩墜乎?” 其人曰: “天果積氣, 日月星宿不當墜邪?” 曉之者曰: “日月星宿, 亦積氣中之有光耀者, 只使墜亦不能有中傷.” 其人曰: “奈地壞何?” 曉者曰: “地積塊耳, 充塞四虛, 亡處亡塊. 若躇步跐蹈, 終日在地上行止, 奈何憂其壞?” 其人舍然大喜, 曉之者亦舍然大喜. 長廬子聞而笑曰: “虹蜺也ㆍ云霧也ㆍ風雨也ㆍ四時也, 此積氣之成乎天者也; 山岳也ㆍ河海也ㆍ金石也ㆍ火木也, 此積形之成乎地者也. 知積氣也, 知積塊也, 奚謂不壞? 夫天地空中之一細物有中之最巨者. 難終難窮, 此固然矣; 難測難識, 此固然矣. 憂其壞者, 誠爲大遠; 言其不壞者, 亦爲未是. 天地不得不壞, ..
양포지구(楊布之狗) 겉모습이 변한 것만 보고 속도 변했으리라 오판하다 楊朱之弟楊布, 衣素衣而出. 天雨, 解素衣, 衣緇衣而反, 其狗不知而吠之. 楊布怒, 將擊之, 楊朱曰: “子毋擊也, 子亦猶是. 曩者使女狗白而往, 黑而來, 子豈能毋怪哉?”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 楊朱之弟曰布, 衣素衣而出. 天雨, 解素衣, 衣緇衣而反, 其狗不知, 迎而吠之. 楊布怒將扑之, 楊朱曰: “子無扑矣! 子亦猶是也. 嚮者使汝狗白而往黑而來, 豈能無怪哉?” 『열자(列子)』 「설부(說符)」 양주(楊朱)의 동생 양포(楊布)가 흰옷을 입고 외출했다가 비를 만나서 흰옷을 벗고 검은 옷으로 바꿔 입고 돌아왔다. 양포의 집에서 기르는 개가 주인인 줄도 모르고 마구 짖어댔다. 양포가 화가 나서 개를 때리려 하자 양주가 타일렀다. “때리지 마라...
조삼모사(朝三暮四) 간사한 꾀를 써서 남을 속이다 宋有狙公者, 愛狙, 養之成羣. 能解狙之意, 狙亦得公之心. 損其家口, 充狙之欲. 俄而匱焉, 將限其食. 恐衆狙之不馴於己也, 先誑之曰: “與若茅, 朝三而暮四, 足乎?” 괜찮을까?” 衆狙皆起而怒. 俄而曰: “與若茅, 朝四而暮三, 足乎?” 衆狙皆伏而喜. 物之以能鄙相籠, 皆猶此也, 聖人以智籠羣愚, 亦猶狙公之以智籠衆狙也. 名實不虧, 使其喜怒哉. 『열자(列子)』 「황제(黃帝)」 勞神明爲一而不知其同也, 謂之朝三. 何謂朝三? 狙公賦芧曰: “朝三而暮四.” 衆狙皆怒; 曰: “然則朝四而暮三.” 衆狙皆悅. 名實未虧而喜怒爲用, 亦因是也. 是以聖人和之以是非而休乎天鈞, 是之謂兩行.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송(宋)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이 말해 주듯..
정저지와(井底之蛙) 식견이 좁다 北海若曰: “井蛙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夏蟲不可以語於冰者, 篤於時也; 曲士不可以語於道者, 束於敎也. 今爾出於崖涘, 觀於大海, 乃知爾丑, 爾將可與語大理矣. 『장자(莊子)』 「추수(秋水)」 子獨不聞夫埳井之䵷乎? 謂東海之鱉曰: ‘吾樂與! 出跳梁乎井干之上, 入休乎缺甃之崖. 赴水則接腋持頤, 蹶泥則沒足滅跗. 還虷蟹與科斗, 莫吾能若也. 且夫擅一壑之水, 而跨跱埳井之樂, 此亦至矣. 夫子奚不時來入觀乎?’ 東海之鱉左足未入, 而右膝已縶矣. 於是逡巡而卻, 告之海曰: ‘夫千里之遠, 不足以擧其大; 千仞之高, 不足以極其深. 禹之時, 十年九潦, 而水弗爲加益; 湯之時, 八年七旱, 而崖不爲加損. 夫不爲頃久推移, 不以多少進退者, 此亦東海之大樂也.’ 於是埳井之蛙聞之, 適適然驚, 規規然自失也. 『장자(莊子)..
연목구어(緣木求魚) 잘못된 방법으로 노력하기에 결과를 이룰 수 없다 曰:“爲肥甘不足於口與? 輕煖不足於體與? 抑爲采色不足視於目與? 聲音不足聽於耳與? 便嬖不足使令於前與? 王之諸臣皆足以供之, 而王豈爲是哉?” 曰:“否. 吾不爲是也.” 曰:“然則王之所大欲可知已. 欲辟土地, 朝秦楚, 莅中國而撫四夷也. 以若所爲求若所欲, 猶緣木而求魚也.” 王曰:“若是其甚與?” 曰:“殆有甚焉. 緣木求魚, 雖不得魚, 無後災. 以若所爲, 求若所欲, 盡心力而爲之, 後必有災.” 曰:“可得聞與?” 曰:“鄒人與楚人戰, 則王以爲孰勝?” 曰:“楚人勝.” 曰:“然則小固不可以敵大, 寡固不可以敵衆, 弱固不可以敵彊. 海內之地方千里者九, 齊集有其一. 以一服八, 何以異於鄒敵楚哉? 蓋亦反其本矣.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전국시대인 주(周)나라 신정왕(..
조장(助長) 조급함에 서두르다가 일 자체를 망치다 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 無若宋人然: 宋人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 芒芒然歸. 謂其人曰: ‘今日病矣, 予助苗長矣.’ 其子趨而往視之, 苗則槁矣. 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以爲無益而舍之者, 不耘苗者也; 助之長者, 揠苗者也. 非徒無益, 而又害之.”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그러므로 반드시 의를 쌓는 것을 일삼고 그 효과를 미리 예기하지 말며, 혹 가득 차지 않을 경우에는 다만 마땅히 자기가 할 일이 있음을 잊지 말 일이지, 일을 꾸며서 그것이 자라나도록 도와서는 안 된다. 송(宋)나라 사람이 한 것처럼 하지 말아야 한다. 송나라 사람 중에 자기가 심은 곡식의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걱정하여 싹을 뽑아 올린 이가 있었다. 그는 지쳐 돌아와 집안사람..
당랑거철(螳螂拒轍) 제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덤벼든다 齊莊公出獵, 有一蟲, 擧足將搏其輪. 問其御曰: “此何蟲也?” 對曰: “此所爲螳螂者也, 其爲蟲也, 知進而不知却, 不量力, 而輕敵.” 莊公曰: “此爲人而必爲天下勇武矣.” 廻車而避之. 勇武聞之, 知所盡死矣. 『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 춘추시대 제나라 장공(莊公 : BC 794-731)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장공이 수레를 타고 사냥터로 가던 도중 웬 벌레 한 마리가 앞발을 ‘도끼처럼 휘두르며[蟷螂之斧]’ 수레바퀴를 칠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보고 “허, 맹랑한 놈이로군. 저건 무슨 벌레인고?”라고 말했다. 장공이 묻자 수레를 모는 어자(御者)가 “사마귀[蟷螂]라는 벌레이옵니다.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물러설 줄을 모르는 놈이온데, 제 힘도 생각..
오리무중(五里霧中) 갈피가 잡히지 않아 혼란스럽다 張楷字公超, 通『嚴氏春秋』ㆍ『古文尙書』, 門徒常百人. 性好道術, 能作五里霧. 時關西人裴優, 亦能爲三里霧, 自以不如楷, 從學之, 楷避不肯見. 桓帝卽位, 優遂行霧作賊, 事覺被考, 引楷, 言從學術. 楷坐繫廷尉詔獄, 積二年, 恒諷誦經籍, 作『尙書』注. 後以事無驗, 見原還家. 建和三年, 下詔, 安車備禮聘之, 辭以篤疾, 不行. 年七十, 終於家. 『후한서(後漢書)』 「장해열전(張楷列傳)」 후한(後漢) 때의 학자 장패(張覇)의 아들 장해(張楷)는 『춘추(春秋)』ㆍ『고문상서(古文常書)』 등에 정통한 학자로, 제자가 백여 명에 이르렀다. 그의 명성을 듣고 이름 있는 학자, 환관과 외척 등 세도가들이 모두 그와 가까이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때 묻은 ..
죽마고우(竹馬故友) 불알친구 諸葛靚後入晉, 除大司馬, 召不起. 以與晉室有讐, 常背洛水而坐. 與武帝有舊, 帝欲見之, 而無由, 乃請諸葛妃呼靚. 旣來, 帝就太妃間相見. 禮畢, 酒酣, 帝曰: “卿故復憶竹馬之好不?” 靚曰: “臣不能呑炭漆身, 今日復睹聖顔.” 因涕泗百行, 帝於是慚悔而出. 『세설신어(世說新語)』 「방정(方正)」 殷浩少與桓溫齊名, 而每心競. 溫嘗問浩: “君何如我?” 浩曰: “我與君周旋久, 寧作我也” 溫旣以雄豪自許, 每輕浩, 浩不之憚也. 至是, 溫語人曰: “少時, 吾與浩共騎竹馬, 我棄去, 浩輒取之, 故當出我下也.” 『진서(晋書)』 「은호전(殷浩傳)」 진동(東晉)의 12대 황제인 간문제(簡文帝: 371-372) 때의 일이다. 촉(蜀) 땅을 평정하고 돌아온 환온(桓溫)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간문제는 환온을 ..
치인설몽(癡人說夢)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함 僧伽龍朔中, 游江淮間, 其跡甚異. 有問之曰: “汝何姓?” 答曰: “姓何?” 又問: “何國人?” 答曰: “何國人.” 唐李邕作碑 不曉其言, 乃書傳曰: “大師姓何, 何國人.” 此正所謂對癡人說夢耳. 李邕遂以夢爲眞, 眞癡絶也. 『냉재야화(冷齋夜話)』 당나라 때 서역(西域)의 고승인 승가(僧伽)가 지금의 안후이성 근처를 여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승가의 행동을 보고 어떤 사람이 이상히 여겨 “당신의 성이 무엇인가?”라고 묻자, 승가가 “성이란 게 무엇인가.”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어느 나라 사람인가?”라고 다시 묻기에 “어느 나라 사람이다.”라고 승가가 대답했다. 뒤에 승가가 죽은 뒤 당나라의 서도가 이옹(李邕)이 승가를 위하여 비문을 썼는데, 그는 승가가 장난삼아 한..
묘항현령(猫項懸鈴) 실행될 수 없는 탁상공론 群鼠會話曰: “穿庾捿廩, 生活可潤, 但所怕, 獨猫而已.” 有一鼠言曰: “猫項, 若懸鈴子, 庶得聞聲而遁死矣.” 群鼠喜躍曰: “子言是矣, 吾何所怕耶.” 有大鼠徐言曰: “是則是矣. 然猫項, 誰能爲我懸鈴耶?” 群鼠愕然. 『순오지(旬五志)』 고양이에게 시달려 온 쥐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쥐 한 마리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매달아 두면 그 방울 소리를 듣고 고양이가 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어서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을 했다. 쥐들은 모두 좋은 의견이라고 기뻐했다. 그러자 늙은 쥐가 “누가 고양이의 목에다 방울을 달 수 있겠는가?”라고 묻자, 쥐들이 모두 어쩔 줄 몰라했다. 겉뜻: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다. 속뜻: 실행하지 못할 일을 공연히 의논만 한다..
문일지십(聞一知十) 지혜롭고 총명하다 子謂子貢曰:“女與回也孰愈?” 對曰:“賜也何敢望回. 回也聞一以知十, 賜也聞一以知二.” 子曰:“弗如也! 吾與女弗如也.”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공자의 제자는 삼천 명이나 되었고, 후세에 이름을 남긴 제자가 72명이나 되었으며 철인(哲人)으로 꼽힌 사람도 10명이나 되었다. 제자 중에 자공(子貢)은 재산을 모으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어 공자가 주유천하(周遊天下)할 때의 경비 대부분을 대었고 학문의 재주와 재치도 뛰어났다. 그러나 말없이 묵묵히 스승의 뒤를 따르는 안회(顔回)는 매우 가난했으나 삼 개월 동안 어질었다고 인(仁)을 허여(許與)받은 유일한 제자였다. 안회와 자공의 학문적 성과에 대하여 공자가 자공에게 물었다. 자공은 “사(賜)가 어찌 감히 회(回)를..
남귤북지(南橘北枳) 환경의 중요성 晏子將使楚, 楚王聞之, 謂左右曰: “晏嬰, 齊之習辭者也. 今方來, 吾欲辱之, 何以也?” 左右對曰: “爲其來也, 臣請縛一人, 過王而行, 王曰: ‘何爲者也?’ 對曰: ‘齊人也.’ 王曰: ‘何坐?’ 曰: ‘坐盜.’” 晏子至, 楚王賜晏子酒, 酒酣, 吏二縛一人詣王. 王曰: “縛者曷爲者也?” 對曰: “齊人也, 坐盜.” 王視晏子曰: “齊人固善盜乎?” 晏子避席對曰: “聞之 橘生淮南則爲橘, 生于淮北則爲枳, 葉徒相似, 其實味不同. 所以然者何? 水土異也, 今民生長于齊, 不盜, 入楚則盜, 得無楚之水土, 使民善盜耶?” 王笑曰: “聖人非所與熙也, 寡人反取病焉.” 『안자춘추(晏子春秋)』 「내편(內篇)」 잡하(雜下) 춘추시대 말기, 제(齊)나라에 안영(晏嬰)이란 유명한 재상이 있었다. 어느 해, 초..
선종외시(先從隗始) 가깝고 지근한 일부터 시작하라 燕子之爲王三年, 國內大亂, 齊王伐燕取子之, 醢之, 遂殺燕王噲. 燕人共立太子平, 是爲昭王. 昭王於破燕之後, 卽位, 弔死問孤, 與百姓同甘苦, 卑身厚幣, 以招賢者. 謂郭隗曰: “齊因孤之國亂, 而襲破燕, 孤極知燕小力少, 不足以報, 然誠得賢士, 與共國, 以雪先王之恥, 孤之願也. 先生視可者, 得身事之.” 郭隗曰: “古之人君, 有以千金使涓人, 求千里馬者. 馬已死, 買其骨五百金而返, 君大怒. 涓人曰: ‘死馬, 且買之, 况生者乎. 馬今至矣.’ 不期年, 千里之馬至者三. 今王必欲致士, 先從隗始. 况賢於隗者, 豈遠千里哉.” 於是昭王爲隗, 改築宮而師事之, 於是士爭趣燕, 樂毅自魏往, 劇辛自趙往, 昭王以樂毅, 爲亞卿, 任以國政. 『통감절요(通鑑節要)』 「주기(周紀)」 난왕(赧王) ..
69. 일자천금(一字千金) 가치가 있는 글 莊襄王即位三年, 薨, 太子政立爲王, 尊呂不韋爲相國, 號稱仲父. 秦王年少, 太後時時竊私通呂不韋, 不韋家僮萬人. 當是時, 魏有信陵君, 楚有春申君, 趙有平原君, 齊有孟嘗君, 皆下士喜賓客以相傾. 呂不韋以秦之彊, 羞不如, 亦招致士, 厚遇之, 至食客三千人. 是時諸侯多辯士, 如荀卿之徒, 著書布天下. 呂不韋乃使其客人人著所聞, 集論以爲「八覽」ㆍ「六論」ㆍ「十二紀」, 二十餘萬言. 以爲備天地萬物古今之事, 號曰『呂氏春秋』. 布鹹陽市門, 懸千金其上, 延諸侯遊士賓客, 有能增損一字者, 予千金. 『사기(史記)』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末期)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과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은 각 수천 명,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과 위(魏)나라 신릉군..
두주불사(斗酒不辭) 주량이 매우 세다 張良出, 告樊噲以事急. 噲擁盾直入, 嗔目視羽, 頭髮上指, 目眥盡裂. 羽曰: “壯士, 賜之巵酒.” 則與斗巵酒, “賜之彘肩” 則生彘肩. 噲立飮, 拔劍切肉啗之. 羽曰: “能復飮乎?” 噲曰: “臣死且不避, 巵酒安足辭. 沛公先破秦入咸陽, 勞苦而功高如此. 未有封爵之賞, 而將軍聽細人說, 欲誅有功人, 此亡秦之續耳, 竊爲將軍不取也.” 羽曰: “坐!” 噲從良坐, 須臾沛公起如厠, 因招噲出, 間行趨覇上. 留良謝羽曰: “沛公不勝杯杓, 不能辭. 使臣良奉白璧一雙, 再拜獻將軍足下, 玉斗一雙, 再拜奉亞父足下.” 羽曰: “沛公安在?” 良曰: “聞將軍有意督過之, 脫身獨去, 已至軍矣.” 亞父拔劍, 撞玉斗而破之曰: “唉! 豎子不足謀. 奪將軍天下者, 必沛公也.” 『십팔사략(十八史略)』 項羽在戲下, 欲攻沛公..
과하지욕(袴下之辱)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작은 치욕을 견뎌내다 淮陰侯韓信者, 淮陰人也. 始爲布衣時, 貧無行, 不得推擇爲吏, 又不能治生商賈, 常從人寄食飲, 人多厭之者. 常數從其下鄕南昌亭長寄食, 數月, 亭長妻患之, 乃晨炊蓐食, 食時信往, 不爲具食. 信亦知其意, 怒, 竟絕去. 信釣於城下, 諸母漂, 有一母見信飢, 飯信, 竟漂數十日, 信喜, 謂漂母曰: “吾必有以重報母.” 母怒曰: “大丈夫不能自食, 吾哀王孫而進食, 豈望報乎!” 淮陰屠中少年有侮信者, 曰: “若雖長大, 好帶刀劍, 中情怯耳.” 衆辱之曰: “信能死, 刺我; 不能死, 出我袴下.” 於是信孰視之, 俛出袴下蒲伏. 一市人皆笑信, 以爲怯.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회음후의 백정 소년 중에 한신을 모욕주려는 사람이 있어서 “니가 비록 키가 커서 칼을..
학철부어(涸轍鮒魚) 몹시 곤궁한 처지에 놓이다 莊周家貧, 故往貸粟於監河侯. 監河侯曰: “諾. 我將得邑金, 將貸子三百金, 可乎?” 莊周忿然作色曰: “周昨來, 有中道而呼者, 周顧視車轍, 中有鮒魚焉. 周問之曰: ‘鮒魚來, 子何爲者耶?’ 對曰: ‘我, 東海之波臣也. 君豈有斗升之水而活我哉!’ 周曰: ‘諾! 我且南游吳越之王, 激西江之水而迎子, 可乎?’ 鮒魚忿然作色曰: ‘吾失我常與, 我無所處. 我得斗升之水, 然活耳. 君乃言此, 曾不如早索我於枯魚之肆.’” 『장자(莊子)』 「외물(外物)」 장주(莊周)는 집이 매우 가난해서 위(魏)나라 문후(文侯) 감하후(監河侯)에게 식량을 빌리러 갔다. 감하후: 그렇게 함세. 앞으로 내 식읍에서 세금을 받아서 그것으로 그대에게 300금을 꾸어 주겠네. 그러면 되겠는가? 장주: (화난 얼..
난형난제(難兄難弟) 두 사물의 낫고 못함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등하다 陳元方子長文, 有英才. 與季方子孝先, 各論其父功德, 爭之, 不能決. 咨於太丘, 太丘曰: “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 “양상군자(梁上君子)”로 유명한 후한(後漢)의 진태구(陳太丘)가 낭능후(郎陵候)를 지낸 순숙(筍淑)의 집을 아들 진기(陳紀: 元方)와 진심(陳諶: 季方), 진군(陳群: 長方)을 데리고 찾아갔다. 순숙은 빈약하고 검소하여 노복도 없었다. 그들이 도착하자 순숙은 어린 막내만 방에 두고 나머지 일곱 명은 전부 심부름을 시켰다. 이때 태사(太史)가 임금께 “덕성(德星)이 동쪽 순숙의 집에 다 모여 있다.”라고 아뢰었다. 한번은, 진식(陳太丘)이 친구와 어디를 가기로 약속하고 기다렸으나..
함흥차사(咸興差使) 심부름 간 사람이 오질 않는다 芳碩變後, 太祖棄位, 奔于咸興. 太宗屢遣中使, 問安, 太祖輒彎弓而待之, 前後相望之使, 未敢道達其情. 時問安使, 無一得還者. 太宗問: “群臣誰可遣?” 莫有應之者, 判承樞府事朴淳, 挺身請行. 『축수편(逐睡篇)』 太祖晩年, 有豐沛之戀, 禪位世子, 行北闕, 不肯回鑾. 朝廷每請奉還, 而不得請. 前後使者十輩, 皆不得還, 此所謂咸興差使也. 判承樞朴淳, 慷慨請行, 至咸興. 遙望行宮, 故以子馬繫于樹, 騎母馬而行, 馬回顧躑躅不能進. 及上謁, 淳上王布衣交也, 懽然道故款待. 仍問曰: “繫子馬于樹, 何也?” 對曰“ ”妨於行路, 故繫之, 則母子不忍相離. 雖微物, 亦至情也.” 固涕淚嗚咽, 上王亦汪然感涕. 一日與淳局戱, 適有鼠啣子, 墮屋至死, 不相捨. 淳復推局, 伏地而泣, 上王戚然,..
불언장단(不言長短) 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심 昔, 黃相國喜, 微時, 行役, 憩于路上. 見田夫架二牛而耕者, 問曰: “二牛何者爲勝?” 田夫不對, 輟耕而至, 附耳細語曰: “此牛勝.” 公怪之曰: “何以附耳相語?” 田夫曰: “雖畜物, 其心, 與人同也. 此勝則彼劣, 使牛聞之, 寧無不平之心乎.” 公大悟, 遂不復言人之長短云. 『지봉유설(芝峯類說)』 어느 날 정승 황희가 말 타고 시골길을 가고 있었다. 밭에선 농부가 소 두 마리로 밭을 갈고 있었다. 황희가 “여보시오. 그 두 마리 소 중에서 어떤 소가 더 힘이 셉니까?”라고 물으니, 농부는 밭 가로 나와 황희의 귀에 대고 “실은 이쪽 소가 힘이 더 셉니다.”라고 속삭였다. 놀란 황희가 “그런데 노인장은 듣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귓속말을 하십니까?”라고 되묻자, 노인은 “..
차계기환(借鷄騎還) 푸대접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다 金先生者, 善談笑. 嘗訪友人家, 主人設酌, 只佐蔬菜. 先謝曰: “家貧市遠絶無兼味, 惟淡泊, 是愧耳.” 適有群鷄, 亂啄庭除. 金曰: “大丈夫不惜千金, 當斬吾馬, 佐酒.” 主人曰: “斬一馬, 騎何物而還?” 金曰: “借鷄騎還.” 主人大笑, 殺鷄餉之, 仍與大噱.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김 선생은 우스갯소리를 잘 했다. 일찍이 친구의 집을 방문하이 주인이 술자리를 베푸는데 채소만 내놓고는 먼저 사과하며 “집이 가난하고 시장이 멀어서 맛있는 음식이 없고 그저 싱거울 뿐이니 부끄러울 따름이네.”라고 말했다. 마침 한 무리의 닭들이 뜰에서 어지럽게 모이를 쪼아대는 걸 보고 서로 대화를 하게 됐다. 김 선생: 대장부는 천금을 아끼지 않는 법. 마땅히 내 말을 잡..
절영지회(絶纓之會) 타인에 덕을 베푸는 너그러운 아량 楚莊王賜群臣酒. 日暮酒酣, 燈燭滅, 乃有人引美人之衣者. 美人援絶其冠纓, 告王曰: “今者燭滅, 有引妾衣者, 妾援得其冠纓, 持之, 趣火來上, 視絶纓者.” 王曰: “賜人酒, 使醉失禮, 奈何欲顯婦人之節而辱士乎?” 乃命左右曰: “今日與寡人飮, 不絶冠纓者, 不歡.” 群臣百有餘人, 皆絶去其冠纓, 而上火, 卒盡歡而罷. 居三年, 晉與楚戰, 有一臣常在前, 五合五奮, 首却敵, 卒得勝之. 莊王怪而問曰: “寡人德薄, 又未嘗異子, 子何故出死不疑如是?” 對曰: “臣當死. 往者醉失禮, 王隱忍不加誅也. 臣終不敢以蔭蔽之德, 而不顯報王也. 常願肝腦塗地, 用頸血湔敵, 久矣. 臣乃夜絶纓者也.” 遂敗晉軍, 楚得以强, 此有陰德者必有陽報也. 『설원(說苑)』 「복은(復恩)」 초나라의 장왕은 여러..
예양보주(豫讓報主) 자신을 신뢰하는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다 豫讓, 晉人. 嘗事范ㆍ中行氏, 去而事智伯, 智伯尊寵之. 趙襄子與韓ㆍ魏, 合謀滅智伯, 三分其地. 襄子怨智伯, 漆其頭, 爲飮器. 讓曰: “士爲知己者死, 女爲說己者容, 我必爲智伯報讐.” 乃變名姓, 爲刑人, 入宮, 塗厠中, 挾匕首, 欲以刺襄子. 襄子如厠心動, 搜之, 則豫讓也, 襄子義而釋之. 又漆身爲癩, 呑炭爲啞, 使形狀不可知. 伏於橋下, 襄子至橋, 馬驚曰: “此必豫讓.” 問曰: “子事范ㆍ中行氏, 智伯滅之, 不爲報讐, 而反臣智伯, 智伯已死, 獨何報讐之深?” 對曰: “臣事范ㆍ中行氏, 衆人遇我, 我故衆人報之, 智伯國士遇我, 我故國士報之.” 襄子曰: “寡人赦子亦足矣, 子自爲計.” 讓曰: “臣固伏誅. 然願請君之衣, 而擊之, 以致報讐之意.” 襄子持衣與之, 乃拔劒,..
계찰괘검(季札掛劍) 신의를 중요하게 여기다 吳季札, 吳王壽夢季子也. 初使北, 過徐, 徐君好季札劍, 口不敢言. 季札心知之, 爲使上國, 未獻. 還至徐, 徐君已死, 乃解其寶劍, 懸徐君墓木而去. 從者曰: “徐君已死, 尙誰予乎?” 季子曰: “不然. 始吾心已許之, 豈以死倍吾心哉.” 札封於延陵, 故號延陵季子. 『新序』曰: “徐人嘉而歌之曰: ‘延陵季札兮, 不忘, 故脫千金之劒兮, 帶丘墓.’” 『몽구(蒙求)』 延陵季子將西聘晉, 帶寶劍以過徐君, 徐君觀劍, 不言而色欲之. 延陵季子爲有上國之使, 未獻也. 然其心許之矣. 使於晉, 顧反, 則徐君死於楚, 於是脫劍致之嗣君. 從者止之曰: “此吳國之寶, 非所以贈也.” 延陵季子曰: “吾非贈之也. 先日吾來, 徐君觀吾劍, 不言而其色欲之. 吾爲上國之使, 未獻也. 雖然, 吾心許之矣. 今死而不進, 是..
계포일락(季布一諾) 약속은 철두철미하게 지킨다 楚人曹丘生, 辯士, 數招權, 顧金錢. 事貴人趙同等, 與竇長君善. 季布聞之, 寄書諫竇長君曰: “吾聞曹丘生非長者, 勿與通.” 及曹丘生歸, 欲得書請季布. 竇長君曰: “季將軍不說足下, 足下無往.” 固請書, 遂行. 使人先發書, 季布果大怒, 待曹丘. 曹丘至, 即揖季布曰: “楚人諺曰: ‘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 足下何以得此聲於梁ㆍ楚間哉? 且僕楚人, 足下亦楚人也. 僕遊揚足下之名於天下, 顧不重邪? 何足下距僕之深也!” 季布迺大說, 引入, 留數月, 爲上客, 厚送之. 季布名所以益聞者, 曹丘揚之也. 『사기(史記)』 「계포난포열전(季布欒布列傳)」 초(楚)나라 사람 계포(季布)는 젊었을 때부터 의협심(義俠心)이 강해 한번 ‘좋다!’라고 약속한 이상에는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
증삼살인(曾參殺人) 거짓말일지라도 여러 사람이 하면 진실처럼 변한다 昔曾參之處費, 魯人有與曾參同姓名者殺人, 人告其母曰: ‘曾參殺人’, 其母織自若也. 頃之, 一人又告之曰: ‘曾參殺人’, 其母尙織自若也. 頃又一人告之曰: ‘曾參殺人’, 其母投杼下機, 踰牆而走. 夫以曾參之賢與其母信之也, 三人疑之, 其母懼焉. 『사기(史記)』 「저리자감무열전(樗里子甘茂列傳)」 昔者, 曾子處費, 費人有與曾子同名族者而殺人. 人告曾子母曰: ‘曾參殺人.’ 曾子之母曰: ‘吾子不殺人.’ 織自若. 有頃焉, 人又曰: ‘曾參殺人.’ 其母尙織自若也. 頃之, 一人又告之曰: ‘曾參殺人.’ 其母懼, 投杼踰牆而走. 夫以曾參之賢與母之信也, 而三人疑之, 則慈母不能信也.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옛날 증자(曾子)가 노(魯)나라의 비읍(費邑)에 있을 ..
주지육림(酒池肉林) 매우 호화스러운 술잔치와 방탕한 생활 帝紂資辨捷疾, 聞見甚敏. 材力過人, 手格猛獸. 知足以距諫, 言足以飾非, 矜人臣以能, 高天下以聲, 以爲皆出己之下. 好酒淫樂, 嬖於婦人, 愛妲己, 妲己之言是從. 於是使師涓作新淫聲, 「北里之舞」ㆍ「靡靡之樂」. 厚賦稅以實鹿臺之錢, 而盈鉅橋之粟, 益收狗馬奇物, 充仞宮室. 益廣沙丘苑臺, 多取野獸蜚鳥置其中, 慢於鬼神. 大聚樂戱於沙丘, 以酒爲池, 縣肉爲林, 使男女裸相逐其閒, 爲長夜之飮. 百姓怨望而諸侯有畔者, 於是紂乃重刑辟, 有炮烙之法.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 後至帝辛, 號爲紂. 資辯捷疾, 手格猛獸. 智足以拒諫, 言足以飾非. 紂伐有蘇氏, 有蘇以妲己女焉. 有寵. 厚賦稅以實鹿臺之財, 盈鋸橋之粟. 廣沙丘苑臺, 以酒爲池, 懸肉爲林, 爲長夜之飮, 百姓怨望, 諸..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의 무서움 孔子過泰山側, 有婦人哭於墓者而哀. 夫子式而聽之, 使子路問之曰: “子之哭也, 壹似重有憂者.” 而曰: “然. 昔者, 吾舅死於虎, 吾夫又死焉, 今吾子又死焉.” 夫子曰: “何爲不去也?” 曰: “無苛政.” 夫子曰: “小子, 識之, 苛政猛於虎也.” 『예기(禮記)』 「단궁(檀弓)」 下 孔子適齊, 過泰山之側, 有婦人哭於野者而哀, 夫子式而聽之曰: “此哀一似重有憂者” 使子貢往問之而曰: “昔舅死於虎, 吾夫又死焉, 今吾子又死焉” 子貢曰: “何不去乎?” 婦人曰: “無苛政” 子貢以告孔子, 子曰: “小子識之, 苛政猛於暴虎” 『공자가어(孔子家語)』 「정론해(正論解)」 공자(孔子)가 태산 옆을 지나가는데 어떤 부인 하나가 무덤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공자는 수레 앞턱의 가로나무를 잡고 듣고..
조강지처(糟糠之妻) 아무 것도 없을 때조차 함께 한 아내 上於臟罪, 無所貸. 大司徒歐陽歙, 嘗犯臟, 歙所授『尙書』弟子千餘人, 守闕求哀, 竟不免死於獄. 所用群臣, 如宋弘等, 皆重厚正直. 上姊湖陽公主嘗寡居, 意在弘. 弘入見, 主坐屛後. 上曰: “諺言, ‘貴易交, 富易妻’ 人情乎?” 弘曰: “貧賤之交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 上顧主曰: “事不諧矣.” 主有蒼頭, 殺人匿主家, 吏不能得. 洛陽令董宣, 候主出行奴驂乘, 叱下車格殺之. 主入訴, 上大怒, 召宣欲捶殺之. 宣曰: “縱奴殺人, 何以治天下? 臣不須捶, 請自殺.” 卽以頭叩楹, 流血被面. 上令小黃門持之, 使叩頭謝主, 宣兩手據地, 終不肯. 上勅, “强項令出” 賜錢三十萬. 當時州牧郡守縣令, 皆良吏. 『십팔사략(十八史略)』 後漢宋弘, 字仲子, 京兆長安人. 光武卽位, 爲大..
수석침류(漱石枕流) 잘못 행동하고서 그럴 듯한 말로 꾸며대다 孫楚字子荊, 太原中都人. 才藻卓絶, 爽邁不群, 多所陵傲, 缺鄕曲之譽. 年四十餘, 始參鎭東軍事, 終馮翊太守. 初楚少時, 欲隱居, 謂王濟曰: “當欲枕石漱流.” 誤云: “漱石枕流.” 濟曰: “流非可枕, 石非可漱.” 楚曰: “所以枕流, 欲洗其耳; 所以漱石, 欲厲其齒.” 『몽구(蒙求)』 진(晉)나라 초 풍익(馮翊) 태수를 지낸 손자형(孫子荊, 손초(孫楚))은 문재도 뛰어났고 임기응변에 대단히 능한 사람이었다. 그가 활동했던 당시에는 사대부들 사이에서 속세의 도덕이나 문명(文名)을 경시하고 노장(老莊)의 철리를 중히 여겨 담론하는 이른바 청담(淸談)이 유행하던 때였다. 손자형이 어린 시절, 은거하기로 작정하고 왕무자(王武子)에게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
견금여석(見金如石) 욕심 부리지 않겠다는 네 글자의 다짐 崔鐵城瑩少時, 其父常戒之曰: “見金如土[石]” 瑩, 常以四字書諸紳, 終身服膺而勿失. 雖秉國政, 威行中外, 而一毫不取於人家, 纔足食而已. 當時宰樞相邀迓, 以棋局消日, 爭設珍饌, 以務豪侈; 公獨邀客, 過午不設饌, 日暮糅黍稻炊飯, 兼陳雜菜, 諸客枵腸盡啖菜飯曰: “鐵城之飯甚甘也.” 公笑曰: “此亦用兵之謀也.” 太祖爲侍中, 嘗占聯云: ‘三尺釖頭安社稷.’ 一時文士皆未對. 公遽曰: “一條鞭末定乾坤.” 人皆嘆服. 公每憤林廉所爲, 盡誅宗族, 及其臨刑之日, 乃曰: “平生未嘗造惡業, 但誅林廉過當耳. 我若有貪欲之心, 則墓上生草; 不然則草不生矣.” 墓在高陽, 至今禿赭無一把茅, 俗謂之紅墳也. 『용재총화(慵齋叢話)』 3권 어릴 때부터 경계하여 가르쳤으므로 최영(崔瑩) 견금여..
야서구혼(野鼠求婚)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다 野鼠, 欲爲其子擇高婚. 初謂惟天最尊, 遂求之於天. 天曰: “我雖兼包萬有, 非日月, 則無以顯吾德.” 野鼠求之於日月. 日月曰: “我雖普照, 惟雲蔽之, 彼居吾上乎.” 野鼠求之於雲. 雲曰: “我雖使日月, 失明, 惟風吹散, 彼居吾上乎.” 野鼠求之於風. 風曰: “我雖能散雲, 惟田間石佛, 吹之不倒, 彼居吾上.” 野鼠求之於石佛. 石佛曰: “我雖不畏風, 惟野鼠穿我足底, 則傾倒, 彼居吾上乎.” 野鼠於是傲然自得曰: “天下之尊, 莫我若也.” 遂婚於野鼠. 『旬五志』 들쥐가 훌륭한 혼인상대를 찾기 위해 하늘과 해달과 구름과 바람과 석불을 순서대로 찾아가지만 훌륭한 배필이라 생각했던 관념을 깨고 그들은 자신의 약한 부분을 인정하며 다른 존재들을 추천해준다. 그래서 결국 석불이 최종적으로 ..
화룡점정(畵龍點睛) 작은 첨가로 작품의 질을 높이다 張僧繇于金陵安樂寺, 畫四龍于壁, 不點睛. 每曰: “點之, 卽飛去.” 人以爲誑. 因點其一, 須臾雷電破壁, 一龍乘雲上天. 未點睛者, 皆在. 『역명화기(歷代名畫記)』 남북조(南北朝)시대, 남조(南朝)인 양(梁)나라에 장승요(張僧繇)라는 사람이 있었다. 우군장군(右軍將軍)과 오흥태수(吳興太守)를 지냈다고 하니 벼슬길에서도 입신(立身)한 편이지만, 그는 붓 하나로 모든 사물을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화가로도 유명했다. 어느 날, 장승요는 금릉(金陵:南京)에 있는 안락사(安樂寺)의 주지로부터 용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절의 벽에다 검은 구름을 헤치고 이제라도 곧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네 마리의 용을 그렸다. 물결처럼 꿈틀대는 몸통, 갑옷의 비늘처럼 단단..
문전작라(門前雀羅) 권세가 약해져 인적이 끊기다 太史公曰: “夫以汲ㆍ鄭之賢, 有勢則賓客十倍, 無勢則否, 況衆人乎! 下邽翟公有言, 始翟公爲廷尉, 賓客闐門: 及廢, 門外可設雀羅. 翟公複爲廷尉, 賓客欲往, 翟公乃大署其門曰: ‘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 汲ㆍ鄭亦云, 悲夫!”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 전한 시대 무제(武帝)때 급암과 정당시라는 충신이 있었다. 급암은 의협심이 강하고 성품이 대쪽 같아서 황제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다 하는 편이었다. 동료 대신들이 그 점을 나무라면, 급암은 “폐하께서 이 사람이나 공들 같은 신하를 두심은 올바른 보필로 나라를 부강케 하고 백성들을 편안케 하시고자 함인데, 누구나 듣기 좋은 말만 하여 성총이 흐려지기라도..
방약무인(傍若無人) 곁에 아무도 없는 듯 멋대로 행동하다 荊軻者, 衛人也. 其先乃齊人, 徙於衛, 衛人謂之慶卿. 而之燕, 燕人謂之荊卿. 荊卿好讀書擊劍, 以術說衛元君, 衛元君不用. 其後秦伐魏, 置東郡, 徙衛元君之支屬於野王. 荊軻嘗遊過楡次, 與蓋聶論劍, 蓋聶怒而目之. 荊軻出, 人或言複召荊卿. 蓋聶曰: “曩者吾與論劍有不稱者, 吾目之. 試往. 是宜去, 不敢留.” 使使往之主人, 荊卿則已駕而去楡次矣. 使者還報, 蓋聶曰: “固去也, 吾曩者目攝之!” 荊軻遊於邯鄲, 魯句踐與荊軻博, 爭道, 魯句踐怒而叱之, 荊軻嘿而逃去, 遂不複會. 荊軻旣至燕, 愛燕之狗屠及善擊築者高漸離. 荊軻嗜酒, 日與狗屠及高漸離飮於燕市, 酒酣以往, 高漸離擊築, 荊軻和而歌於市中, 相樂也. 已而相泣, 旁若無人者. 荊軻雖遊於酒人乎, 然其爲人沈深好書, 其所遊諸侯,..
여세추이(與世推移) 세상의 흐름에 따라 처신을 달리하다 屈原, 名平, 楚之同姓. 爲懷王左徒, 博聞强志, 明於治亂. 嫺於辭令, 王甚任之. 上官大夫與之同列, 爭寵而心害其能, 因讒之, 王怒而疏平. 後秦昭王欲與懷王會, 平曰: “秦虎狼之國, 不如無行.” 懷王稚子子蘭勸王行, 王死於秦. 長子頃襄王立, 以子蘭爲令尹. 子蘭使上官大夫, 短原於王, 王怒而遷之. 原至江濱, 被髮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 漁父問曰: “子非三閭大夫歟, 何故至此?” 原曰: “擧世混濁, 而我獨淸; 衆人皆醉, 而我獨醒, 是以見放.” 漁父曰: “夫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擧世混濁, 何不隨其流而揚其波; 衆人皆醉, 何不餔其糟而啜其醨? 何故懷瑾握瑜, 而自令見放爲.” 原曰: “吾聞之, 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誰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寧赴湘..
한단학보(邯鄲學步) 함부로 남을 따라하는 것의 위험성 且子獨不聞夫壽陵餘子之學行於邯鄲與? 未得國能, 又失其故行矣, 直匍匐而歸耳. 今子不去, 將忘子之故, 失子之業.” 公孫龍口呿而不合, 舌擧而不下, 乃逸而走. 『장자(莊子)』 「추수(秋水)」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사상가인 공손룡(公孫龍)은 자신의 학문과 변론이 당대 최고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장자(莊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변론과 지혜를 장자와 견주어 보려고 위(魏)나라의 공자 위모(魏牟)에게 장자의 도(道)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했다. 위모는 공손룡의 의중을 알고는 우물 안의 개구리 이야기를 해 주면서 공손룡의 공허한 변론은 가느다란 대롱 구멍을 통하여 하늘을 쳐다보고, 송곳을 꽂아 땅의 깊이를 재려는 꼴이라며 비웃었다. 조나라 한단 사..
지어지앙(池魚之殃) 상관도 없는 제삼자가 피해를 입다 宋桓司馬有寶珠, 抵罪出亡. 王使人問珠之所在, 曰: “投之池中.” 於是竭池而求之, 無得, 魚死焉. 此言禍福之相及也. 『여씨춘추(呂氏春秋)』 「효행람(孝行覽)」 城門失火, 殃及池魚. 『태평광기(太平廣記)』 중국 춘추시대 송(宋)나라에 환사마(桓司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진귀한 보석을 하나 갖고 있었다. 그가 어느 날 왕에게 죄를 짓고 도망가면서 보석을 가지고 갔다. 소식을 들은 왕은 뒤를 쫓아 보석을 가져오라고 신하에게 명령했다. 수소문 끝에 사마환퇴를 잡은 신하는 “보석이 어디 있느냐”고 추궁했다. 사마환퇴는 위기를 모면할 요량으로 “도망칠 때 궁궐 앞 연못 속에 버렸다”고 대답했다. 왕은 연못을 뒤져 보석을 찾으라고 지시하였고 연못의 물을 다 ..
과유불급(過猶不及) 중용적인 삶을 향해 子貢問: “師與商也孰賢?” 子曰: “師也過, 商也不及.” 曰: “然則師愈與?” 子曰: “過猶不及.” 『논어(論語)』 「선진(先進)」 자공이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낫습니까?”라고 여쭈니, 공자께서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질 못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자공이 “그렇다면 자장이 나은 것입니까?”라고 여쭈었다. 공자께서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겉뜻: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속뜻: 사물이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중용(中庸)이 중요하다. 유의어: 과불급(過不及) 인용 목차 아이여서 서글퍼요 사람이 자랄 때 필요한 것 ‘죽은 시인의 사회’ 넘어서기2
효빈(效顰) 분수도 모르고 무작정 따라하다 今取猨狙而衣以周公之服, 彼必齕齧挽裂, 盡去而後慊. 觀古今之異, 猶猨狙之異乎周公也. 故西施病心而顰其里, 其里之醜人見之而美之, 歸亦捧心而顰其里. 其里之富人見之, 堅閉門而不出; 貧人見之, 挈妻子而去之走. 彼知顰美而不知顰之所以美. 『장자(莊子)』 「천운(天運)」 옛날 서시는 가슴앓이 병이 있어서 언제나 손으로 가슴을 지그시 누르고,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다. 마을의 어떤 못생긴 사람이 그게 아름답게 보였는지 자기도 손으로 가슴을 누르고 얼굴을 찡그리고 마을을 돌아다녔다. 마을의 부자들은 문을 굳게 닫아 버렸고, 가난한 자들은 가족을 데리고 떠나 버렸다. 그 사람은 찡그리는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만 알았지, 찡그리는 것이 아름답게 보인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다. 노(魯)나..
호가호위(狐假虎威) 남의 세력을 빌어 위세를 부리다 荊宣王問羣臣曰: “吾聞北方之畏昭奚恤也, 果誠何如?” 羣臣莫對. 江一對曰: “虎求百獸而食之. 得狐, 狐曰: ‘子無敢食我也. 天帝使我長百獸, 今子食我, 是逆天帝命也. 子以我爲不信, 吾爲子先行, 子隨我後, 觀百獸之見我而敢不走乎?” 虎以爲然, 故遂與之行. 獸見之皆走, 虎不知獸畏己而走也, 以爲畏狐也. 今王之地方五千里, 帶甲百萬, 而專屬之昭奚恤. 故北方之畏奚恤也, 其實畏王之甲兵也, 猶百獸之畏虎也.”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초(楚)나라 선왕(宣王) 때 소해휼(昭奚恤)이라는 재상이 있었는데, 한(韓)ㆍ위(魏)ㆍ조(趙)ㆍ제(齊)나라가 한결같이 소해휼을 두려워하였다. 선왕이 신하들에게 “듣자하니 북쪽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소해휼 재상을 두려워한다고 하는데 어..
해옹호구(海翁好鷗) 혹심의 여부에 따라 가까이 오던 동물도 오지 않다 海上之人有好漚鳥者, 每旦之海上, 從漚鳥遊, 漚鳥之至者百住而不止. 其父曰: “吾聞漚鳥皆從汝遊, 汝取來吾玩之.” 明日之海上, 漚鳥舞而不下也. 故曰: “至言去言, 至爲無爲; 齊智之所知, 則淺矣.” 『열자(列子)』 「황제(黃帝)」 바닷가에 갈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바닷가로 나가서 갈매기들과 더불어 놀았는데, 그에게 오는 갈매기들이 백 마리도 넘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말했다. “갈매기들이 너를 따라 논다는 말을 들었다. 그 갈매기를 잡아 오너라. 갈매기를 가지고 놀고 싶구나.” 그는 다음 날 바닷가로 나갔으나 갈매기들이 내려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극한 말이란 말을 떠나는 것이고, 지극한 행위란 작위가 없는 것..
해의반박(解衣槃礴) 옷을 풀어해치고 그림을 그리는 자유로운 경지 宋元君將畵圖, 衆史皆至, 受揖而立. 舐筆和墨, 在外者半. 有一史後至者, 儃儃然不趨, 受揖不立, 因之舍. 公使人視之, 則解衣般礴臝. 君曰: “可矣, 是眞畵者也.” 『장자(莊子)』 「전자방(田子方)」 송원공(宋元公)공은 관리를 시켜 방을 붙이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당일이 되자 봇짐에 화구를 든 사람들이 별관에 모여든다. 화공들은 근엄한 원공 앞에서 낯빛을 공손히 하고 예를 갖춘 뒤 저마다 자리에 앉아 명을 대기하면서 벼루에 붓을 다듬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별관 안으로 다 들어오지 못하고 별관 밖의 마당에도 반은 있었다. 원공은 안에서 설명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 사람들 앞에 섰다. 때마침 늦게 도착한 화공은 지각한 주제에 느릿느릿 거..
토사구팽(兎死狗烹) 필요할 땐 쓰지만 필요 없어지면 가차없이 버려지는 존재 項王亡將鍾離眛家在伊廬. 素與信善, 項王死後, 亡歸信. 漢王怨眛, 聞其在楚, 詔楚捕眛. 信初之國, 行縣邑, 陳兵出入. 漢六年, 人有上書告楚王信反. 高帝以陳平計, 天子巡狩會諸侯. 南方有雲夢, 發使告諸侯“會陳吾將游雲夢.” 實欲襲信, 信弗知. 高祖且至楚, 信欲發兵反. 自度無罪, 欲謁上, 恐見禽. 人或說信曰: “斬眛謁上, 上必喜, 無患.” 信見眛計事. 眛曰: “漢所以不擊取楚, 以眛在公所. 若欲捕我以自媚於漢, 吾今日死, 公亦隨手亡矣.” 乃罵信曰: “公非長者!” 卒自剄. 信持其首, 謁高祖於陳. 上令武士縛信, 載後車. 信曰: “果若人言, “狡兔死, 良狗亨; 高鳥盡, 良弓藏; 敵國破, 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亨!” 上曰: “人告公反.” 遂械繫..
청출어람(靑出於藍) 스승의 실력을 넘어선 제자 君子曰: “學不可以已.” 靑, 取之於藍, 而靑於藍; 冰, 水爲之, 而寒於水. 木直中繩, 輮以爲輪, 其曲中規. 雖有槁暴, 不復挺者, 輮使之然也. 故木受繩則直, 金就礪則利, 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 則智明而行無過矣. 故不登高山, 不知天之高也; 不臨深谿, 不知地之厚也; 不聞先王之遺言, 不知學問之大也. 干越夷貉之子, 生而同聲, 長而異俗, 敎使之然也. 詩曰: “嗟爾君子, 無恆安息. 靖共爾位, 好是正直. 神之聽之, 介爾景福.” 神莫大於化道, 福莫長於無禍. 『순자(荀子)』 「권학(勸學)」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은 끊임없이 발전과 향상을 목표로 하여 노력해야 하고 중도에서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람의 학문은 더욱 깊어지고 순화되어 한 걸음씩 완성에 가까워질..
전화위복(轉禍爲福) 불행이 행복으로 바뀔 수 있다 燕文公時, 秦惠王以其女爲燕太子婦. 文公卒, 易王立. 齊宣王因燕喪攻之, 取十城. 武安君蘇秦爲燕說齊王, 再拜而賀, 因仰而弔. 齊王桉戈而卻, 曰:“此一何慶弔相隨之速也?” 對曰: “人之飢所以不食烏喙者, 以爲雖偸充腹, 而與死同患也. 今燕雖弱小, 强秦之少婿也. 王利其十城, 而深與强秦爲仇. 今使弱燕爲鴈行, 而强秦制其後, 以招天下之精兵, 此食烏喙之類也.” 齊王曰:“然則奈何?” 對曰:“聖人之制事也, 轉禍而爲福, 因敗而爲功. 故桓公負婦人而名益尊, 韓獻開罪而交愈固, 此皆轉禍而爲福, 因敗而爲功者也. 王能聽臣, 莫如歸燕之十城, 卑辭以謝秦. 秦知王以己之故歸燕城也, 秦必德王, 燕無故而得十城, 燕亦德王, 是棄强仇而立厚交也. 且夫燕ㆍ秦之俱事齊, 則大王號令, 天下皆從, 是王以虛辭附秦, ..
절부지의(竊鈇之疑)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니 모든 게 의심스럽다 人有亡鈇者, 意其鄰之子. 視其行步, 竊鈇也; 顔色, 竊鈇也; 言語, 竊鈇也; 動作態度, 無爲而不竊鈇也. 俄而抇其谷而得其鈇, 他日復見其鄰人之子, 動作態度, 無似竊鈇者. 『열자(列子)』 「설부(說符)」 人有亡鈇者, 意其鄰之子. 視其行步, 竊鈇也; 顏色, 竊鈇也; 言語, 竊鈇也; 動作態度, 無爲而不竊鈇也. 相其谷而得其鈇. 他日復見其鄰之子, 動作態度無似竊鈇者. 其鄰之子非變也, 己則變矣. 變也者無他, 有所尤也. 『여씨춘추(呂氏春秋)』 「거우(去尤)」 도끼를 잃은 사람이 그 이웃 사람을 의심하여, 그 걸음걸이, 말씨, 얼굴빛, 모든 동작을 유심히 관찰할수록 틀림없이 그 사람이 훔친 것으로 보였다는 옛일에서, 의심을 가지고 보면 무슨 일이든지 의심스럽게..
와신상담(臥薪嘗膽) 목표를 이루기 위해 힘듦을 참고 견디다 壽夢後, 四君而至闔廬, 擧伍員謀國事. 員字子胥, 楚人伍奢之子, 奢誅而奔吳. 以吳兵入郢, 吳伐楚. 闔廬傷而死.子夫差立, 子胥復事之. 夫差志復讐, 朝夕臥薪中, 出入使人呼曰: “夫差而忘越人之殺而父邪?” 周敬王二十六年, 夫差敗越于夫椒, 越王勾踐, 以餘兵棲會稽山, 請爲臣妻爲妾. 子胥言 “不可” 太宰伯嚭, 受越賂說夫差, “赦越” 越王勾踐反國, 懸膽於坐臥, 卽仰膽嘗之曰: “女忘會稽之恥邪?” 擧國政屬大夫種, 而與范蠡, 治兵事謀吳. 太宰嚭, 譖子胥恥謀不用怨望, 夫差乃賜子胥屬鏤之劍. 子胥告其家人曰: “必樹吾墓檟, 檟可材也. 抉吾目懸東門, 以觀越兵之滅吳.” 乃自剄. 夫差取其尸, 盛以鴟夷, 投之江. 吳人憐之, 立祠江上命曰‘胥山.’ 越十年生聚, 十年敎訓. 周元王四年, ..
완벽(完璧) 결점이 없다 趙王得楚和氏璧, 秦昭王欲之, 請易以十五城. 趙王以問藺相如, 對曰: “秦以城求璧, 而王不許, 曲在我矣, 我與之璧, 而秦不與我城, 則曲在秦. 臣願奉璧而往. 使秦城不入, 請完璧而歸.” 相如至秦, 秦王無意償趙城. 相如乃紿秦王, 復取璧, 遣使者懷歸趙. 而以身待命於秦, 秦王賢而弗誅, 禮而歸之. 趙王以相如爲上大夫. 『통감절요(通鑑節要)』 「주기(周紀)」 난왕(赧王) 32년 趙惠文王, 嘗得楚和氏璧. 秦昭王, 請以十五城易之. 欲不與畏秦强, 欲與恐見欺. 藺相如願奉璧往, 城不入則臣請完璧而歸. 旣至秦, 王無意償城. 相如乃欺取璧, 怒髮指冠, 卻立柱下曰: “臣頭與璧俱碎.” 遣從者, 懷璧間行先歸. 身待命於秦, 秦昭王賢而歸之 『십팔사략(十八史略)』 중국의 조나라에 ‘화씨의 벽[和氏之璧]’이라는 유명한 보물 ..
읍참마속(泣斬馬謖) 사사로운 정을 버리고 공정을 택하다 馬良弟謖. 字幼常. 以荊州從事隨先主入蜀. 除綿竹成都令 越雋太守 才器過人 好論軍計 丞相諸葛亮深加 器異 先主臨薨謂亮曰 馬謖言過其實 不可大用 君其察之 亮猶謂不然 以謖爲參軍 每引見談論 自晝達夜 建興六年 亮出軍向祁山 時有宿將魏廷 吳壹等 論者皆言以爲宜令爲先鋒 而亮違衆拔謖 統大衆在前 與魏將張郃戰于街亭 爲所破 士卒離散 亮進無所據 退軍還漢中 謖下獄物故 亮爲之流涕 良死時年三十六 謖年三十九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마속전(馬謖傳) 孔明變色曰: “汝自幼飽讀兵書熟諳戰法. 吾累次叮嚀告戒街亭是吾根本. 汝以全家之命領此重任, 汝若早聽王平之言豈有此禍? 今敗軍折將失地陷城皆汝之過也. 若不明正軍律何以服衆? 汝今犯法休得怨吾. 汝死之後汝之家小, 吾按月給與祿米汝不必挂心.” 叱左右推..
읍참마속(泣斬馬謖) 사사로운 정을 버리고 공정을 택하다 孔明變色曰: “汝自幼飽讀兵書熟諳戰法. 吾累次叮嚀告戒街亭是吾根本. 汝以全家之命領此重任, 汝若早聽王平之言豈有此禍? 今敗軍折將失地陷城皆汝之過也. 若不明正軍律何以服衆? 汝今犯法休得怨吾. 汝死之後汝之家小, 吾按月給與祿米汝不必挂心.” 叱左右推出斬之. 謖泣曰: “丞相視某如子, 某以丞相爲父, 某之死罪實已難逃. 願丞相思舜帝殛鯀用禹之義, 某雖死亦無恨於九泉.” 言訖大哭. 孔明揮淚曰: “吾與汝義同兄弟, 汝之子即吾之子也不必多囑.” 左右推出馬謖於轅門之外將斬, 參軍蔣琬, 自成都至見武士欲斬馬謖, 大驚高叫留人, 入見孔明曰: “昔楚殺得臣而文公喜. 今天下未定而戮智謀之士, 豈不可惜乎?” 孔明流涕而答曰: “昔孫武所以能制勝於天下者, 用法明也. 今四方分爭兵交, 方始若須廢法, 何以討賊耶? 合..
어부지리(漁父之利) 싸우는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가 이익을 본다 趙且伐燕. 蘇代爲燕謂惠王曰: “今者臣來過易水, 蚌方出曝, 而鷸啄其肉, 蚌合而拑其喙. 鷸曰: ‘今日不雨明日不雨, 卽有死蚌.’ 蚌亦謂鷸曰: ‘今日不出明日不出, 卽有死鷸.’ 兩者不肯相舍, 漁者得而幷禽之. 今趙且伐燕, 燕ㆍ趙久相支, 以弊大衆, 臣恐强秦之爲漁父也. 故願王之熟計之也.” 惠王曰: “善!” 乃止.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 전국시대, 제(齊)나라에 많은 군사를 파병한 연(燕)나라에 기근(饑饉)이 들자 이웃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기다렸다는 듯이 침략 준비를 서둘렀다. 그래서 연나라 소왕(昭王)은 종횡가(縱橫家)로서 그간 연나라를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온 소대(蘇代)에게 혜문왕을 설득하도록 부탁했다. 조(趙)나라에 ..
여도지죄(餘桃之罪) 애증의 변화 예측하기 어려워라 昔者彌子瑕有寵於衛君. 衛國之法, 竊駕君車者罪刖. 彌子瑕母病, 人聞有夜告彌子. 彌子矯駕君車以出. 君聞而賢之, 曰: “孝哉. 爲母之故, 忘其犯刖罪.” 異日, 與君遊於果園, 食桃而甘, 不盡, 以其半啖君. 君曰: “愛我哉. 忘其口味, 以啖寡人.” 及彌子色衰愛弛, 得罪於君, 君曰: “是固嘗矯駕吾車, 又嘗我以餘桃.” 故彌子之行未變於初也, 而以前之所以見賢而後獲罪者, 愛憎之變也. 故有愛於主, 則智當而加親. 有憎於主, 則智不當見罪而加疏. 故諫說談論之士, 不可不察愛憎之主而後說焉. 夫龍之爲蟲也, 柔可狎而騎也. 然其喉下有逆鱗徑尺, 若人有嬰之者, 則必殺人. 人主亦有逆鱗, 說者能無嬰人主之逆鱗, 則幾矣.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 옛날 미자하(彌子瑕)는 위령공(衛靈公)의 ..
삼인성호(三人成虎) 거짓말이 진실로 탈바꿈되다 龐葱與太子質於邯鄲, 謂魏王曰: “今一人言市有虎, 王信之乎?” 王曰: “否.” “二人言市有虎, 王信之乎?” 王曰: “寡人疑之矣.” “三人言市有虎, 王信之乎?” 王曰: “寡人信之矣.” 龐葱曰: “夫市之無虎, 明矣. 然而三人言而成虎. 今邯鄲去大梁也遠于市, 而議臣者過于三人矣. 願王察之矣.” 王曰: “寡人自爲知.” 于是辭行, 而讒言先至. 後太子罷質, 果不得見.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 龐恭與太子質於邯鄲, 謂魏王曰: “今一人言巿有虎, 王信之乎?” 曰: “不信.” “二人言巿有虎, 王信之乎?” 曰: “不信.” “三人言巿有虎, 王信之乎?” 王曰: “寡人信之.” 龐恭曰: “夫巿之無虎也明矣, 然而三人言而成虎. 今邯鄲之去魏也遠於巿, 議臣者過於三人, 願王察之.” 龐恭從邯..
화사첨족(畵蛇添足) 쓸데 없는 짓을 하여 일을 그르침 昭陽爲楚伐魏, 覆軍殺將, 得八城, 移兵而攻齊. 陳軫爲齊王使, 見昭陽, 再拜賀戰勝, 起而問: “楚之法, 覆軍殺將, 其官爵何也?” 昭陽曰: “官爲上柱國, 爵爲上執珪.” 陳軫曰: “異貴於此者何也?” 曰: “唯令尹耳.” 陳軫曰: “令尹貴矣, 王非置兩令尹也. 臣竊爲公譬可也? 楚有祠者, 賜其舍人巵酒. 舍人相謂曰: ‘數人飮之不足, 一人飮之有餘. 請畫地爲蛇, 先成者飮酒.’ 一人蛇先成, 引酒且飮之, 乃左手持巵, 右手畫蛇曰: ‘吾能爲之足.’ 未成, 一人之蛇成, 奪其巵曰: ‘蛇固無足, 子安能爲之足?’ 遂飮其酒. 爲蛇足者, 終亡其酒. 今君相楚而攻魏, 破軍殺將得八城, 不弱兵, 欲攻齊. 齊畏公甚, 公以是爲名居足矣, 官之上非可重也. 戰無不勝, 而不知止者, 身且死, 爵且後歸, 猶..
문경지교(刎頸之交) 생사를 같이할 정도의 벗 其後秦伐趙, 拔石城. 明年, 複攻趙, 殺二萬人. 秦王使使者告趙王, 欲與王爲好會於西河外澠池. 趙王畏秦, 欲毋行. 廉頗ㆍ藺相如計曰: “王不行, 示趙弱且怯也.” 趙王遂行, 相如從. 廉頗送至境, 與王訣曰: “王行, 度道里, 會遇之禮畢, 還, 不過三十日. 三十日不還, 則請立太子爲王. 以絶秦望.” 王許之. 遂與秦王會澠池. 秦王飮酒酣曰: “寡人竊聞趙王好音, 請奏瑟.” 趙王鼓瑟. 秦禦史前書曰: “某年月日, 秦王與趙王會飮, 令趙王鼓瑟”. 藺相如前曰: “趙王竊聞秦王善爲秦聲, 請奏盆缻秦王, 以相娛樂.” 秦王怒, 不許. 於是相如前進缻, 因跪請秦王. 秦王不肯擊缻. 相如曰: “五步之內, 相如請得以頸血濺大王矣!” 左右欲刃相如, 相如張目叱之, 左右皆靡. 於是秦王不懌, 爲一擊缻. 相如顧召趙..
9. 모수자천(毛遂自薦) 자기 스스로를 추천하다 秦以王陵, 攻邯鄲. 武安君曰: “邯鄲實, 未易攻也, 且諸侯之救, 日至, 破秦軍必矣.” 辭疾不行. 乃以王齕, 代王陵. 趙王, 使平原君, 求救於楚, 平原君, 約, 其門下食客文武備具者二十人, 與之俱, 得十九人, 餘無可取者. 毛遂自薦於平原君, 平原君曰: “夫賢士之處世也, 譬若錐之處囊中, 其末立見. 今先生處勝之門下三年於此矣, 勝未有所聞, 是先生無所有也.” 毛遂曰: “臣乃今日, 請處囊中爾. 使遂蚤得處囊中, 乃穎脫而出, 非特其末見而已.” 平原君乃與之俱, 十九人相與目笑之. 平原君至楚, 與楚王言合從之利害, 日出而言之, 日中不決. 毛遂按劒歷階而上, 謂平原君曰: “從之利害, 兩言而決爾. 今日出而言, 日中不決, 何也?” 楚王怒叱曰: “胡不下? 吾乃與而君言, 汝何爲者也?” 遂按劒..
문전성시(門前成市) 인기와 권력으로 문 앞이 시장을 이루다 尙書令趙昌佞諂, 素害崇, 知其見疏, 因奏. “崇與宗族通, 疑有姦, 請治.” 上責崇曰: “君門如市人, 何以欲禁切主上?” 崇對曰: “臣門如市, 而臣心如水, 願得考覆.” 上怒, 下崇獄, 窮治, 死獄中. 『자치통감(資治通鑑)』 於是, 入朝見威王曰: “臣誠知不如徐公美, 臣之妻私臣, 臣之妾畏臣, 臣之客欲有求於臣, 皆以美於徐公. 今齊地方千里, 百二十城, 宮婦左右莫不私王, 朝廷之臣莫不畏王, 四境之內莫不有求於王. 由此觀之, 王之蔽甚矣.” 王曰: “善. 乃下令, 群臣吏民能面刺寡人之過者, 受上賞; 上書諫寡人者, 受中賞; 能謗議於市朝, 聞寡人之耳者, 受下賞.” 令初下, 群臣進諫, 門庭若市, 數月之後, 時時而閒進, 期年之後, 雖欲言, 無可進者. 燕ㆍ趙ㆍ韓ㆍ魏聞之, 皆朝..
득롱망촉(得隴望蜀) 만족이 없는 욕심 十二年, 公孫述亡. 述茂陵人, 自更始時, 據蜀稱帝, 國號成. 上旣平隴右曰: “人苦不自足. 旣得隴復望蜀.” 遣大司馬吳漢等, 將兵, 會征南大將軍岑彭, 伐蜀. 彭戰船竝進, 所向無前. 述使盜刺殺彭. 吳漢繼進, 至成都, 擊殺述, 蜀地悉平. 漢在軍或戰不利, 意氣自若, 上歎曰: “吳公差强人意, 隱若一敵國矣.” 『십팔사략(十八史略)』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劉秀)가 처음으로 낙양에 입성하여 이를 도읍으로 삼았을 무렵(A.D 26)의 일이다. 당시 전한의 도읍 장안을 점거한 적미지적(赤眉之賊)의 유분자(劉盆子)를 비롯하여 농서(隴西:감숙성)에 외효(椳囂), 촉(蜀:사천성)에 공손술(公孫述), 수양(睡陽:하남성)에 유영(劉永), 노강(盧江:안휘성)에 이헌(李憲), 임치(臨淄:산동성)..
독서망양(讀書亡羊) 다른 일에 홀려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다 臧與穀二人, 相與牧羊, 而俱亡其羊. 問臧奚事, 則挾筴讀書; 問穀奚事, 則博塞以遊. 伯夷死名於首陽之下, 盜跖死利於東陵之上. 二人者, 所死不同, 其於殘生傷性均也, 奚必伯夷之是而盜跖之非乎. 天下盡殉也, 彼其所殉仁義也, 則俗謂之君子; 其所殉貨財也, 則俗謂之小人. 其殉一也, 則有君子焉, 有小人焉. 若其殘生損性, 則盜跖亦伯夷已, 又惡取君子小人於其間哉. -『장자(莊子)』 「변무(騈拇)」 장(臧)과 곡(穀) 두 사람이 양을 기르다가 다 같이 양을 잃어버렸다. 장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손에 책을 들고 읽었다(책 읽는 일에 몰두했다)고 했다. 곡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박색(博塞) 놀이를 했다고 했다. 이 둘은 각자 한 일은 달랐지만 양을 잃은 것은..
교주고슬(膠柱鼓瑟) 융통성 없는 헛지식이 낳은 참사 後四年, 趙惠文王卒, 子孝成王立. 七年, 秦與趙兵相距長平. 時趙奢已死, 而藺相如病篤, 趙使廉頗將攻秦, 秦數敗趙軍, 趙軍固壁不戰. 秦數挑戰, 廉頗不肯. 趙王信秦之閒, 秦之閒言曰: “秦之所惡, 獨畏馬服君趙奢之子趙括爲將耳.” 趙王因以括爲將, 代廉頗. 藺相如曰: “王以名使括, 若膠柱而鼓瑟耳. 括徒能讀其父書傳, 不知合變也.” 趙王不聽, 遂將之.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趙惠文王子, 孝成王立. 秦伐韓, 韓上黨, 降於趙. 秦攻趙, 廉頗軍長平, 堅壁不出. 秦人行千金, 爲反間曰: “秦獨畏馬服君趙奢之子括爲將耳.” 王使括代頗, 相如曰: “王以名使括, 若膠柱鼓瑟耳. 括徒能讀其父書, 不知合變也.” 王不聽. 括少學兵法, 以天下莫能當, 與父奢言, 不能難...
계명구도(鷄鳴狗盜) 하잘 것 없어 보이지만 요긴한 재주 秦王聞孟嘗君之賢, 使涇陽君, 爲質於齊以請, 孟嘗君來入秦. 秦王以爲丞相, 或謂秦王曰: “孟嘗君相秦, 必先齊而後秦, 秦其危哉.” 秦王乃以樓緩爲相, 囚孟嘗君, 欲殺之. 孟嘗君, 使人, 求解於秦王幸姬. 姬曰: “願得君狐白裘.” 孟嘗君有狐白裘, 已獻之秦王, 無以應姬求. 客有善爲狗盜者, 入秦藏中, 盜狐白裘以獻姬, 姬乃爲之言於王而遣之. 王後悔, 使追之. 孟嘗君至關, 關法, 鷄鳴, 而出客. 時尙早, 追者將至, 客有善爲鷄鳴者, 野鷄聞之, 皆鳴. 孟嘗君乃得脫歸. 『통감절요(通鑑節要)』 「주기(周紀)」 난왕(赧王) 17년 田嬰封於薛, 有子曰文, 食客數千人, 名聲聞於諸侯, 號爲孟嘗君, 秦昭王聞其賢, 乃先納質於齊以求見, 至則止囚, 欲殺之. 孟嘗君使人, 扺昭王幸姬求解. 姬曰..
괄목상대(刮目相對) 눈을 비비고 볼 정도로 훨씬 나아진 상대방 劉備徇荊州ㆍ江南諸郡. 周瑜上疏於權曰: “備有梟雄之姿, 而有關羽ㆍ張飛熊虎之將. 聚此三人在彊場, 恐蛟龍得雲雨, 終非池中物也. 宜徙備置吳” 權不從. 瑜方議圖北方, 會病卒. 魯肅代領其兵, 肅勸權荊州借劉備, 權從之. 權將呂蒙, 初不學, 權勸蒙讀書. 魯肅後與蒙論議, 大驚曰: “卿非復吳下阿蒙” 蒙曰: “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 『십팔사략(十八史略)』 삼국시대(三國時代) 때 오(吳) 나라에 유명한 장수가 있었는데 이름이 여몽(旅夢)이었다. 여몽은 어려서부터 고아로 자랐기 때문에 공부는 하지 못하고 대신 무술만 열심히 익혔다. 그래서 무예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지만 그 밖의 분야에는 여간 어두운 게 아니었다. 손권(孫權)은 그를 무척 총애하면서도 늘 ..
관포지교(管鮑之交) 날 빛나게 만들어준 우정에 관한 이야기 管仲夷吾者, 穎上人也. 少時, 常與鮑叔牙游, 鮑叔知其賢, 管仲貧困, 常欺鮑叔, 鮑叔終善遇之, 不以爲言已而. 鮑叔事齊公子小白, 管仲事公子糾, 及小白立爲桓公, 公子糾死, 管仲囚焉. 鮑叔遂進管仲, 管仲旣用, 任政於齊, 齊桓公以覇九合諸侯, 一匡天下, 管仲之謀也. 管仲曰: “吾始困時, 嘗與鮑叔賈, 分財利, 多自與, 鮑叔不以我爲貪, 知我貧也. 吾嘗爲鮑叔謀事, 而更窮困, 鮑叔不以我爲愚, 知時有利不利也. 吾嘗三仕, 三見逐於君, 鮑叔不以我爲不肖, 知我不遭時也. 吾嘗三戰三走, 鮑叔不以我爲怯, 知我有老母也. 公子糾敗, 召忽死之, 吾幽囚受辱, 鮑叔不以我爲無恥, 知我不羞小節, 而恥功名不顯于天下也. 生我者, 父母; 知我者, 叔子也.”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
형제투금(兄弟投金) 돈을 던져 우애를 되찾다 高麗恭愍王時, 有民兄弟. 偕行, 弟得黃金二錠, 以其一, 與兄. 至孔巖津, 同舟而濟, 弟忽投金於水. 兄怪而問之, 答曰: “吾平日, 愛兄篤, 今而分金, 忽萌忌兄之心. 此乃不祥之物也, 不若投諸江而忘之.” 兄曰: “汝之言, 誠是矣.” 亦投金於水. -『신증동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고려 공민왕 때 형제가 길을 가다가 황금 두 덩어리를 얻어서 나누어 가졌다. 지금의 경기도 김포시 공암진 근처인 양천강(陽川江)에 이르러 형제가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별안간 아우가 금 덩어리를 강물에 던졌다. 형이 그 이유를 물으니 아우는 “내가 평소에는 형을 사랑하였으나, 지금 금 덩어리를 나누고 보니 형이 미워 보입니다. 따라서 이 물건은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 차라리 이것을 강물에..
형설지공(螢雪之功)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부에 전심하여 얻은 보람 康家貧無油, 常映雪讀書. 少小淸介, 交遊不雜, 後至御史大夫. 晉車胤字武子, 南平人. 恭勤不倦, 博覽多通. 家貧, 不常得油. 夏月以練囊, 盛數十螢火, 以照書, 以夜繼日焉. 桓溫在荊州, 辟爲從事, 以辯識義理, 深重之. 稍遷征西長史, 遂顯於朝廷. 時武子與吳隱之, 以寒素博學, 知名于世, 又善於賞會, 當時每有盛坐, 而武子不在, 皆云: “無車公, 不樂.” 終吏部尙書. 『몽구(蒙求)』 車胤囊螢讀書, 孫康映雪讀書, 其貧不輟學可知. 一日, 康往拜胤, 不遇, 問家人: “主人何在?” 答曰: “到外邊捉螢火蟲去了.” 已而胤往拜康, 見康立於庭下, 問: “何不讀書?” 答曰: “我看今日這天色, 不償要下雪的光景.” -『소림광기(笑林廣記)』 개똥벌레의 불빛으로 공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