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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감사의 말 먼저 서문을 써주신 법정 스님께 감사드린다. 맑고 깨끗한 스님의 음성에 감사드린다. 내가 이 『금강경』을 강해하는데 가장 크게 참고했던 책은 다음의 두 책이다. 1. 中村元ㆍ紀野一義 譯註. 『般若心經ㆍ金剛般若經』. 東京: 岩波書店, 1997. 2. Edward Conze. Buddhist Wisdom Books. New York: Harper Torchbooks, 1972. 이 두 책은 동양과 서양에서 가장 대표적인 『금강경』의 역서이자 연구서이다. 동경대학(東京大學) 학창시절에 나카무라 선생님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 나카무라 선생님의 한문에 대한 정확한 해독은 나의 작업에 선구적 모범이 되었다. 오히려 콘체는 별로 크게 도움이 되질 않았다. 이 두 분께 감사한다. 이 외로도 참고한 일본 책이..
경후설(經後說) 나는 어려서부터 궁금한 게 많았다. 모르는 게 너무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머리가 나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너무도 쉬운 이야기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누가 농담을 던져도 같이 따라 웃지를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아둔하다고 생각했고 나 역시 동감이었다. 어머님 말씀이 서너 살 때부터 길거리를 지나다가도 풀한 포기가 궁금하면 거기에 덥쑥 주저앉아 떠날 줄을 몰랐다 했다. 그런데 날이 가면 갈수록 궁금증들은 깊어져만 갔다. 그러나 아무도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사람들이 없었다. 선생도, 책도, 나뭇잎도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바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성장하였다.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 불교강의를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그런데 도무지 불교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진언(眞言) 那謨婆伽跋帝 鉢喇壤 나모바가바떼 쁘라갸 波羅弭多曳 빠라미따예 唵 伊利底 伊室利 輸盧馱 옴 이리띠 이실리 슈로다 毗舍耶 毗舍耶 莎婆訶 비샤야 비샤야 스바하 진언은 진언일 뿐이다. 그것은 인간의 의미로 헤아려서는 아니 된다. 진언은 나의 신(神)과의 대화다. 그때 나는 바로 다름 아닌 신(神)이다. 진언은 그 자체로서 신성한 힘을 갖는 것이다. 진언, 그 자체가 브라만인 것이다. 삼라만상 이 우주가 모두 진언이다. 이 진언에 의하여 곧바로 성불한다고 믿는 것이 진언종(眞言宗)의 신념이다. 그러나 이 진언에 참으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 기나긴 금강의 지혜의 여행을 했어야만 했다는 것을 마음에 되새기자! 『금강경』을 못 외우더라도, 이 마지막 진언이라도, 어려울 때나 괴로울 때 나 기쁠 때나..
3. 어째서 그러한가? 모든 지은 법이여!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네. 이슬과 같고 또 번개와 같아라. 그대들이여 이 같이 볼지니.” 何以故?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하이고?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4.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심을 마치시었다. 장로 수보리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색과 우바이, 그리고 일체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여, 금강반야바라밀경을 믿고 받아 들이고, 받들어 행하더라. 佛說是經已. 長老須菩堤及諸比丘比丘尼優婆色優婆夷, 一切世間天人阿修羅, 聞佛所說, 皆大歡喜, 信受奉行金剛般若波羅密經. 불설시경이. 장로수보리급제비구비구니우바색우바이, ..
32. 색신은 모습이 없어라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32-1.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수로 헤아릴 수 없는 무량한 세계에 가득찬 칠보를 가져다가 보시를 한다 해도, 여기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보살의 마음을 발하고, 이 경 내지 그 사구게라도 받아 지녀 읽고 외워, 다른 사람을 위해 연설한다면, 이 복이 저 칠보의 복을 뛰어 넘으리라.” “須菩堤! 若有人以滿無量阿僧祈世界七寶持用布施. 若有善男子善女人發菩薩心者, 持於此經乃至四句偈等, 受持讀誦爲人演說, 其福勝彼. “수보리! 약유인이만무량아승기세계칠보지용보시. 약유선남자선여인발보살심자, 지어차경내지사구게등, 수지독송위인연설, 기복승피. 32-2. 그리하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연설한단 말인가? 상을 취하지 말라. 있는 그대로 움직이지 말라. 云..
31. 앎을 갖지 말지어다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 31-1. “수보리야! 누가 부처가 아견ㆍ인견 ㆍ중생견ㆍ수자견을 설했다고 말한다면,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이 사람이 내가 설한 바의 뜻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느냐?” “須菩堤! 若人言佛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須菩堤! 於意云何? 是人解我所說義不?” “수보리! 약인언불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수보리! 어의운하? 시인해아소설의불?” 31-2.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여래께서 설하신 바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나이다.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신 아견ㆍ인견ㆍ중생견ㆍ수자견은 곧 아견 인견 ㆍ중생견ㆍ수자견이 아니오이다. 그래서 비로소 아견ㆍ인견ㆍ중생견ㆍ수자견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오니이다.” “世尊! 是人不解如來所說義. 何以故? 世尊說我見人見衆生見..
30-4. “수보리야! 하나의 큰 전체상이라 하는 것은 곧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범용한 사람들이 그것에 탐착할 뿐이다.” “須菩堤! 一合相者, 則是不可說. 但凡夫之人貪著其事.” “수보리! 일합상자, 즉시불가설. 단범부지인탐착기사.” 내가 대만대학(臺灣大學) 방동미 선생(方東美先生)의 불교강의를 들었을 때, 내 귀에 가장 많이 남은 한마디가 바로 이것이다. “뿌수어, 뿌커쓰이(不可說, 不可思議)”. 그대들이여! 모든 것을 말하려 들지말라. 말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것, 그것이 곧 우주요 인간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침묵도 말할 수 없는 것의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침묵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쓸데없이 떠드는 것에 대한 경고인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분석주의자가 아니..
30-2. “정말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만약 그 티끌들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부처님께서는 티끌들이라 설하지 아니하셨을 것이오니이다. 그 까닭이 무엇이오니이까? 부처님께서 설하신 티끌들이란 티끌들이 아니기 때문이오이다. 그래서 비로소 티끌들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오니이다. “甚多. 世尊! 何以故? 若是微塵衆實有者, 佛則不說是微塵衆. 所以者何? 佛說微塵衆, 則非微塵衆. 是名微塵衆. “심다. 세존! 하이고? 약시미진중실유자, 불즉불설시미진중. 소이자하? 불설미진중, 즉비미진중. 시명미진중. 30-3.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삼천대천세계는 곧 세계가 아니오니이다. 그러므로 세계라 이름하오니이다. 어째서이오니이까? 만약 세계가 실제로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하나의 큰 ..
30. 모으나 흩어지나 한 모습 일합리상분(一合理相分) 30-1. “수보리야! 만약 여기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힘껏 부숴 티끌로 만든다면, 네 뜻에 어떠하뇨, 그 티끌들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須菩堤! 若善男子善女人, 以三千大千世界碎爲微塵. 於意云何? 是微塵衆寧爲多不?” “수보리! 약선남자선여인, 이삼천대천세계쇄위미진. 어의운하? 시미진중녕위다불?” 우선 분명(分名)에 텍스트의 문제가 있다. 세조언해본에 보면 분명이 ‘일합상리분(一合相理分)’으로 되어 있고(김운학본本, 석진오본本) 또 기타 통용본에는 ‘일합리상분(一合理相分)’(무비本, 이기영本)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모두 전사(轉寫)과정에서 생겨난 동음이자(同音異字)의 오류에 속하는 것이다. 그 원명은 나카무라가 제시하는 바대로 ‘일..
29. 위엄 있는 그 모습 고요하기도 하다 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 29-1.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를 일컬어, 오는 듯 가는 듯, 앉는 듯 눕는 듯하다 하면, 이 사람은 내가 말한 바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須菩堤! 若有人言如來若來若去, 若坐若臥, 是人不解我所說義. “수보리! 약유인언여래약래약거, 약좌약와, 시인불해아소설의. 29-2. 어째서 그러한가? 여래는 어디로부터 온 바도 없으며 어디론가 가는 바도 없다. 그래서 여래라 이름하는 것이다.” 何以故? 如來者, 無所從來, 亦无所去, 故名如來.” 하이고? 여래자, 무소종래, 역무소거, 고명여래.” 나는 인간적으로 이 분을 매우 좋아한다. 그 언어가 극히 평이하고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자체의 뜻을 아주 시적(詩的)으로 리드믹하게 표현..
28. 받을 생각도 말고 탐하지도 말라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28-1. “수보리야! 만약 어떤 보살이 갠지스강의 모래만큼의 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한다고 하자. 또 어떤 사람이 있어 일체의 법이 아가 없음을 알고, 인을 얻어 이루면, 이 보살의 공덕이 앞의 보살이 얻은 바의 공덕을 뛰어 넘으리라. “須菩堤! 若菩薩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布施. 若復有人知一切法無我, 得成於人, 此菩薩, 勝前菩薩所得功德. “수보리! 약보살이만항하사등세계칠보보시. 약복유인지일체법무아, 득성어인, 차보살, 승전보살소득공덕. 28-2. 수보리야! 뭇 보살들은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이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나이까?” “수보리야! 보살은 자기가 지은 복덕에..
27-2. 수보리야! 너는 혹 이와 같이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하는 자는 모든 법을 단멸해버린 상을 설한다고,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을 짓지 말라. 어째서 그러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한 자는 법에 있어 단멸한다고 하는 상을 설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須菩堤! 汝若作是念, 發阿耨多羅三藐三菩堤心者, 說諸法斷滅相. 莫作是念. 何以故? 發阿耨多羅三藐三菩堤心者, 於法不說斷滅相.” 수보리! 여약작시념,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설제법단멸상. 막작시념. 하이고?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법불설단멸상.” 앞 절의 내용을 한층 심층적으로 분석한 것인데, 우리의 마음은 본시 단멸(斷滅)한다고 하는 행위의 대상으로서 존립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27. 끊음도 없고 멸함도 없나니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27-1. “수보리야! 네가 만약 여래가 상을 구족한 까닭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수보리야! 간곡히 부탁하노니, 이와 같은 생각을 짓지 말라, 여래가 상을 구족한 까닭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은 아니다라고. “須菩堤! 汝若作是念, 如來不以具足相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 須菩堤! 莫作是念, 如來不以具足相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 “수보리! 여약작시념, 여래불이구족상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막작시념, 여래불이구족상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여기 쓰인 ‘구족(具足)’의 원어는 ‘saṃpad’인데, 이는 모든 것을 구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20분에서 논의되었다. 무엇인가를 빠뜨리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26-4.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제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의 뜻을 깨달아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보아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알겠나이다.” 須菩堤白佛言: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不應以三十二相觀如來.” 수보리백불언: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불응이삼십이상관여래.” 26-5. 이 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시었다. “형체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지 말라 이는 사도를 행함이니 결단코 여래를 보지 못하리.” 爾時, 世尊而說偈言: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이시, 세존이설게언: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대화의 다이내미즘이 살아있고, 또 마지막 끝마무리도 아름다운 게송으로 재치있게 표현되고 있다. 형체로 나를 보거..
26-3.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수보리야! 만약 네 말대로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전륜성왕도 곧 여래라고 해야 될 것인가?” 佛言: “須菩堤! 若以三十二相觀如來者, 轉輪聖王則是如來.” 불언: “수보리! 약이삼십이상관여래자, 전륜성왕즉시여래.” 나의 번역은 라집(羅什) 말 그대로의 직역은 아니지만, 그 내면의 흐름을 표출시킨 의역이다. ‘전륜성왕(轉輪聖王)’이란 ‘cakravarti-rāja’를 일컫는 것인데 그 뜻은 ‘바퀴를 굴리는 왕’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바퀴라는 것은 인도 고대의 성왕이 가지고 있었던 무기를 상징화하는 것으로, 적진에 자유자재로 굴러다니면서 적을 분쇄하는 무기인 것이다. 흔히 불교에서 법륜(法輪)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설법을 이렇게 우리의 무명..
26. 법신은 모습이 없다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26-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느뇨?” “須菩堤!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觀如來不?”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이상관여래불?” 26-2. 수보리가 사뢰어 말하였다: “그러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가 있습니다.” 須菩堤言: “如是如是. 以三十二相觀如來.” 수보리언: “여시여시. 이삼십이상관여래.” 여기 수보리의 대답이 우리의 상식적 기대를 벗어나 있다. 분명히 여태까지의 일관된 논리구조 속에서 이를 논하면 분명히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보아서는 아니 되고, 또 그렇게는 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바로 이것이 방편(方便) 설법이라는 것이다. 수보리는 그 자리에서..
25. 교화는 교화하는 바가 없다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25-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너희는 여래가 ‘나는 마땅히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이 같은 생각을 지었다고 말하지 말라. 수보리야! 이 같은 생각을 지어서는 아니 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실로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만약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여래가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을 가지고 있음이라. “須菩堤! 於意云何? 汝等勿爲如來作是念, 我當度衆生. 須菩堤! 莫作是念. 何以故? 實無有衆生如來度者. 若有衆生如來度者, 如來則有我人衆生壽者. “수보리! 어의운하? 여등물위여래작시념, 아당도중생. 수보리! 막작시념. 하이고? 실무유중생여래도자. 약유중생여래도자, 여래즉유아인중생수자. 25-2. 수보리야!..
24. 복덕과 지혜는 비교될 수 없다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수미산들만큼 쌓인 칠보더미를 가져다가 보시를 한다 해도, 또 어떤 이가 있어 반야바라밀경 내지 그 사구게 하나를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타인에게 설한다면, 앞의 칠보복덕은 이에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백천만억분의 일 내지 어떠한 숫자의 비유로도 이에 미치지 못하리라.” “須菩堤! 若三千大千世界中所有諸須彌山王, 如是等七寶聚, 有人持用布施. 若人以此般若波羅蜜經乃至四句偈等, 受持讀誦爲他人說, 於前福德百分不及一, 百千萬億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수보리! 약삼천대천세계중소유제수미산왕, 여시등칠보취, 유인지용보시. 약인이차반약바라밀경내지사구게등, 수지독송위타인설, 어전복덕백분불급일, ..
23. 깨끗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시오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23-1.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있지 아니하니, 그래서 이를 이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한 것이다. “復次須菩堤! 是法平等無有高下,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堤. “복차수보리! 시법평등무유고하, 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23-2. 아도 없고, 인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는 것으로써 일체의 선한 법을 닦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以无我無人無衆生无壽者, 修一切善法, 則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 이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 수일체선법,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23-3. 수보리야! 이른바 선한 법이라 하는 것은 선한 법이 아니라고 여래가 설하였으니 이를 이름하여 선한 법이라 한 것이다.” 須菩堤! 所言善法者, ..
22. 얻을 법이 없어라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22-1.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심은 곧 얻음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오니이까?” 須菩堤白佛言: “世尊! 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 爲無所得耶?” 수보리백불언: “세존! 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위무소득야?” 22-2. “그렇다! 그렇다! 수보리야!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에, 조그만큼의 법이라도 얻을 바가 있지 아니함에 이르렀으므로 비로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如是如是. 須菩堤! 我於阿耨多羅三藐三菩堤, 乃至無有少法可得,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堤.” “여시여시. 수보리! 아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 내지무유소법가득, 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제1절은 7분, 17분 등지에서 나..
21-2. 이 때에,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퍽으나 많은 중생들이 미래의 세상에서 이 법이 설하여지는 것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아니 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수보리야! 그들을 중생이라 해서도 아니 되고 중생이 아니라 해서도 아니 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중생, 중생이라 하는 것은 곧 중생이 중생이 아님을 여래가 설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중생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爾時, 慧明須菩堤白佛言: “世尊! 頗有衆生於未來世, 聞說是法, 生信心不?” 佛言: “須菩堤! 彼非衆生, 非不衆生. 何以故? 須菩堤! 衆生衆生者, 如來說非衆生. 是名衆生.” 이시, 혜명수보리백불언: “세존! 파유중생어미래세, 문설시법, 생신심불?” 불언: “수보리!..
21. 설하는 자도 없고 설되어지는 자도 없다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21-1. “수보리야! 너는 여래가 ‘나는 마땅히 설할 법을 가지고 있노라’고, 이 같은 생각을 지었다고 말하지 말라. 이 같은 생각을 지어서는 아니 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가 설할 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곧 부처를 비방하는 자라. 내가 설한 바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 수보리야! 법을 설한다 해도, 설할 법이 아무것도 없나니, 그래서 비로소 법을 설한다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須菩堤! 汝勿謂如來作是念, 我當有所說法. 莫作是念. 何以故? 若人言如來有所說法, 卽爲謗佛. 不能解我所說故. 須菩堤! 說法者, 無法可說. 是名說法.” “수보리! 여물위여래작시념, 아당유소설법. 막작시념. 하이고? 약인언여래..
20. 색을 떠나시오, 상을 떠나시오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20-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부처가 색신을 구족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색신을 구족하신 것으로 보아서는 아니 되옵니다.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여래께서는 ‘색신을 구족했다하는 것은 곧 색신을 구족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색신을 구족했다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이오니 이다.” “須菩堤! 於意云何? 佛可以具足色身見不?” “不也. 世尊! 如來不應以具足色身見. 何以故? 如來說具足色身, 卽非具足色身. 是名具足色身.” “수보리! 어의운하? 불가이구족색신견불?” “불야. 세존! 여래불응이구족색신견. 하이고? 여래설구족색신, 즉비구족색신. 시명구족색신.” 20-2. “수..
19. 모든 법계를 다 교화하시오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19-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는 칠보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얻는 복이 많다 하겠느냐? 많지 않다 하겠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얻는 복은 정말 많습니다.” “須菩堤! 於意云何? 若有人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 以是因緣得福多不?” “如是. 世尊! 此人以是因緣得福甚多.” “수보리! 어의운하? 약유인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是人 이시인연득복다불?” “여시. 세존! 차인이시인연득복심다.” 19-2. “수보리야! 만약 복덕이라고 하는 실제 모습이 있다고 한다면, 여래는 결코 복덕을 얻음이 많다고 설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복덕이 없는 까닭..
18-9. 그 까닭이 무엇이뇨? 수보리야!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所以者何? 須菩堤!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소이자하? 수보리!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여기에 이르면 누구든지, 선가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의 한 주인공 덕산선감(德山宣鑑, 780~865)의 그 유명한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덕산(德山)은 청원행사(靑原行思)에서 석두희천(石頭希遷)으로 이어지는 법통에서 나온 『금강경』의 대가(大家)였다. 아주 어려서 출가(出家)하였고, 율장(律藏)을 정구(精究)하고 성상(性相)의 제경(諸經)의 지취(旨趣)를 관통하였는데, 그..
18-8.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그 많은 부처님 나라에 살고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을 여래는 다 아느니, 어째서 그러한가? 여래가 설한 갖가지 마음이 모두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로소 마음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佛告須菩堤: “爾所國土中所有衆生若干種心, 如來悉知. 何以故? 如來說諸心, 皆爲非心, 是名爲心. 불고수보리: “이소국토중소유중생약간종심, 여래실지. 하이고? 여래설제심, 개위비심, 시명위심.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이라는 표현에 내가 윗절에서 말한 ‘삶의 세계’의 의미가 잘 드러나고 있다. ‘갖가지’라는 우리말 속에는 ‘온갖 종류의’라는 ‘종(種)’의 뜻이 포함되어 있어 ‘약간종(若干種)’의 번역으로 썼다. 여기서 말하는 ‘심(心)’이란 원어로 ‘citta-dhār..
18-7.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하나의 갠지스강에 있는 모든 모래, 그만큼의 갠지스강들이 있고, 이 갠지스강들에 가득 찬 모래 수만큼의 부처님세계가 있다면, 이는 많다고 하겠느냐? 많지 않다고 하겠느냐?” “너무도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須菩堤! 於意云何? 如一恒河中所有沙, 有如是沙等恒河, 是諸恒河所有沙數佛說世界, 如是寧爲多不?” “甚多. 世尊!” “수보리! 어의운하? 여일항하중소유사, 유여시사등항하, 시제항하소유사수불설세계, 여시녕위다불?” “심다. 세존!” 여기 ‘불세계(佛世界)’는 ‘불안(佛眼)’으로 보이는 세계일 것이다. 여기 갠지스강의 모래에 대한 과장된 형용을 많은 사람들이 문학적 상상력에 의한 과장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 도올은 생각한다. 그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불교에..
18-3.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혜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혜안이 있사옵니다.” “須菩堤! 於意云何? 如來有慧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慧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혜안불?” “여시. 세존! 여래유혜안.” 18-4.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법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법안이 있사옵니다.” “須菩堤! 於意云何? 如來有法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法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법안불?” “여시. 세존! 여래유법안.” 18-5.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불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불안이 있사옵니다.” “須菩堤! 於意云何? 如來有佛眼不?” ..
18. 모든 것을 한몸으로 보아라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18-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육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육안이 있사옵니다.” “須菩堤! 於意云何? 如來有肉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肉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육안불?” “여시. 세존! 여래유육안.” 18-2.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천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천안이 있사옵니다.” “須菩堤! 於意云何? 如來有天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天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천안불?” “여시. 세존! 여래유천안.” 앞 절에서 말한 ‘육안(肉眼)’은 그냥 우리말대로 육안이며, 우리의 평상적 몸을 구성하는 감각기관으로서의 육안이다...
17-12. “수보리야! 보살 또한 이와 같다. 보살이 만약 ‘나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중생을 멸도하리라’하고, 이와 같은 말을 지었다하면 그를 보살이라 이름할 수 없느니라.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진실로 이름하여 보살이라 할 수 있는 법이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須菩堤! 菩薩亦如是. 若作是言, “我當滅度無量衆生, 則不名菩薩. 何以故? 須菩堤! 實无有法名爲菩薩. “수보리! 보살역여시. 약작시언, “아당멸도무량중생, 즉불명보살. 하이고? 수보리! 실무유법명위보살. 17-13. 그러므로 부처는 말하느니라. 일체의 법이 아도 없고, 인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다라고.” 是故佛說一切法, 無我, 無人, 無衆生, 無壽者.” 시고불설일체법, 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 17-14. “수보리야..
17-10. 수보리야! 내가 말한 바 일체의 법이라 하는 것도 곧 일체의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일체의 법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須菩堤! 所言一切法者, 卽非一切法. 是故名一切法.” 수보리! 소언일체법자, 즉비일체법. 시고명일체법.” 17-11. “수보리야! 비유컨대 사람의 몸이 장대한 것과도 같다.” 수보리가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곧, 그 장대한 몸이 장대한 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장대한 몸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須菩堤! 譬如人身長大.” 須菩堤言: “世尊! 如來說人身長大, 則爲非大身. 是名大身.” “수보리! 비여인신장대.” 수보리언: “세존! 여래설인신장대, 즉위비대신. 시명대신.” 10분(分)에서 이미 언급되었던 내..
17-8.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말한다면, 수보리야! 실로 깨달은 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그러한 법이 있지 아니한 것이다. 若有人言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 須菩堤! 實無有法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 약유인언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실무유법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17-9. 수보리야! 여래가 깨달은 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바로 그 속에는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나니, 그러하므로 여래는 설하기를, 일체의 법이 모두 부처님 법일 뿐이라 한 것이다. 須菩堤! 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 於是中無實无虛. 是故如來說, 一切法皆是佛法. 수보리! 여래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어시중무실무허. 시고여래설, 일체법개시불법. 어째서 이 분(分)이 여췌(餘贅)라 말..
17-7. 어째서 그러한가? 여래라고 하는 것은 모든 법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일 뿐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何以故? 如來者, 卽諸法如義. 하이고? 여래자, 즉제법여의. 이것은 여래가 자신을 여래라 부르는 것에 대한 최종적 선포이다. ‘bhūta-tathatā’를 라집(羅什)은 ‘여(如)’라는 단 한마디로 번역하였다. 모든 존재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일 뿐(여如)이라면 사실 ‘깨달음’이라는 것이 따로 설정될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모든 존재가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이라면 ‘구원(Salvation)’이라는 개념이 성립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如)’는 문자 그대로 ‘같다’이다. ‘여여(如如)’는 ‘같고 같다’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불교에서 이 여자(如字)만큼 혼란스러운 글자가 없다. 사실..
17-6. 수보리야! 만약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그런 법이 있다고 한다면,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를 내리시면서, 너는 내세에 반드시 석가모니라 이름하는 훌륭한 부처가 되리라고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진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를 내리시면서, 너는 내세에 반드시 석가모니라 이름하는 훌륭한 부처가 되리라고, 이런 귀한 말씀을 해주신 것이다. 須菩堤! 若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者, 然燈佛則不與我受記, 汝於來世當得作佛, 號釋迦牟尼. 以實无有法得阿耨多羅三藐 三菩堤, 是故然燈佛與我受記作是言, 汝於來世當得作佛, 號釋迦牟尼. 수보리! 약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연등불즉불여아수기, 여어래세당득작불, 호석가모니. 이실무유법득아뇩다라삼..
17-3.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이나 인상이나 중생상이나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까닭이 무엇이뇨?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한다고 하는 법이 실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何以故? 須菩堤! 若菩薩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則非菩薩. 所以者何? 須菩堤! 實無有法發阿耨多羅三藐三菩堤者.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즉비보살. 소이자하? 수보리! 실무유법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17-4.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가 연등부처님의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만한 법이 있었느냐? 있지 아니하였느냐?” “있지 아니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의 뜻을 이해하기로는, 부처님께서 연등부처님의 곳에서 아뇩다라삼..
17. 지혜의 궁극은 나가 없음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17-1. 이 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냈으면, 어떻게 마땅히 살아야 할 것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오리까?” 爾時, 須菩堤百佛言: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堤心, 云何應住? 云何降伏其心?” 이시, 수보리백불언: “세존!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운하응주? 운하항복기심?” 17-2.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선남자 선여인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하는 자는 반드시 이와 같은 마음을 낼지어다: ‘나는 일체중생을 멸도한다 하였으나 일체중생을 다 멸도하고 보니 실로 멸도를 한 중생이 아무도 없었다’라고. 佛告須菩堤: “若善男子善女人,..
16-4.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법이 쇠퇴한 먼 훗날에도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울지니, 그 때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공덕을 내가 만약 자세히 다 말한다면,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듣고 마음이 미쳐 흐트러지거나, 반신반의하여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수보리야! 마땅히 알지라! 이 경의 뜻은 불가사의하며 그 과보 또한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須菩堤! 若善男子善女人, 於後末世, 有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我若具說者, 或有人聞, 心則狂亂狐疑不信. 須菩堤! 當知是經義不可思議, 果報亦不可思議.” 수보리! 약선남자선여인, 어후말세, 유수지독송차경, 소득공덕, 아약구설자, 혹유인문, 심즉광란호의불신. 수보리! 당지시경의불가사의, 과보역불가사의.” 이 절의 마지막 한마디는 마이스터 엑카르트(Meister E..
16-3. 여기 또 한 사람이 있어, 오는 말세에 이 경을 잘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공덕을 쌓는다면, 그 공덕에는 내가 과거세에서 그 많은 부처님들을 공양했던 그런 공덕이 그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천만억분의 일 내지 어떠한 숫자의 비유로도 그에 미치지 못하리라. 若復有人, 於後末世, 能受持讀誦此經所得功德, 於我所供養諸佛功德, 百分不及一, 千萬億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약복유인, 어후말세, 능수지독송차경소득공덕, 어아소공양제불공덕, 백분불급일, 천만억분내지산수비유소불능급. 이것은 부처님의 겸손의 말이 아니다.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한다. 어떠한 종교적 행위의 축적도 단 한 순간의 깨달음의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는 이 래디칼한 『금강경』의 멧세지야말로 모든 관습의 루틴에 빠진 종교인들에..
16-2. 수보리야! 내 돌이켜 생각해보니, 과거의 헤아릴 수도 없는 아승기의 겁의 기나긴 시간 동안에, 연등부처님을 뵈옵기 전에도 이미 팔백사천만억 나유타 수의 많은 부처님을 뵈올 수 있었고, 또 이 분들을 공양하고 섬김에 조금도 헛된 세월이 없었어라. 須菩堤! 我念過去無量阿僧祈劫, 於然燈佛前,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 悉皆供養承事無空過者. 수보리! 아념과거무량아승기겁, 어연등불전, 득치팔백사천만억나유타제불, 실개공양승사무공과자. ‘아승기(阿僧祇)’는 ‘asaṃkhya(아삼카)’의 음역이며, 그 뜻은 ‘셀 수 없음’의 의미다. ‘무수(無數)’, ‘무앙수(無央數)’로 한역(漢譯)된다. 일정한 수치로서는 10의 59승 혹은 56승으로 알려져 있다. 너무 거대한 수들이기 때문에 때로 정확한 규정이 없다. ..
16. 더러운 업을 항상 깨끗이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16-1.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울 때에 이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경시당하고 핍박을 받는다면 이는 전생에 지은, 지옥에 떨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죄업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지금 세상의 사람들이 이 사람을 경시하고 핍박하기 때문에 곧 전생의 죄업이 소멸할 것이요. 그래서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復次須菩堤! 善男子善女人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是人先世罪業應墮惡道. 以今世人輕賤故, 先世罪業則爲消滅,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 “복차수보리! 선남자선여인수지독송차경, 약위인경천, 시인선세죄업응타악도. 이금세인경천고, 선세죄업즉위소멸, 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그 내면적 뜻의 정확한..
15-5. 수보리야! 어느 곳에든지 이 경이 있게 되면 바로 그곳이 일체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가 기꺼이 공양하는 곳이라. 마땅히 알지니라! 이곳이 곧 탑이라는 것을! 모두가 기꺼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을 드리고 주위를 돌면서 온갖 꽃의 향기로써 그곳에 흩으리라.” 須菩堤! 在在處處若有此經, 一切世間天人阿修羅所應供養. 當知此處則爲是塔, 皆應恭敬作禮圍繞以諸華香而散其處.” 수보리! 재재처처약유차경, 일체세간천인아수라소응공양. 당지차처즉위시탑, 개응공경작례위요이제화향이산기처.” 앞서 말했듯이, 이 마지막 절의 멧세지는 ‘교회론’의 궁극적 해결이다. 교회라는 조직에 집착하는 자들은, 교회는 지상에 이미 도래한 천국(天國)이며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의 길이 없다고 말하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
15-4.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작은 법에 만족하는 자들은 아견 인견 ㆍ중생견ㆍ수자견에 집착하게 되므로, 이 경을 들어 자기 것으로 하지도 못하고, 읽고 외워 남을 위하여 해설하지도 못하게 되느니라. 何以故? 須菩堤! 若樂小法者, 著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則於此經不能聽受讀誦爲人解說. 하이고? 수보리! 약낙소법자, 착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즉어차경불능청수독송위인해설. ‘낙소법자(樂小法者)’는 소승을 간접적으로 지칭한 말이다. 즉 당대의 아라한을 추구하는 부파불교의 비구들을 가리킨 말이다. 산스크리트 원문에는 소법(小法)의 법(法)에 해당되는 말이 없다. 한역의 ‘낙소법자(樂小法者)’는 ‘작은 법을 즐기는 자들’로 직역되지만, ‘작은 법에 만족하는 자들’로 표현을 달리하였다. ‘아상(我相)’이 ‘아견(我..
15-3. 여기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이를 설한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나니,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고 가없는 불가사의 공덕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 이와 같은 사람들은 여래가 깨달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스스로 깨닫게 되리라. 若有人能受持讀誦, 廣爲人說, 如來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無有邊不可思議功德. 如是人等, 則爲荷擔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 약유인능수지독송, 광위인설, 여래실지시인, 실견시인, 개득성취불가량불가칭무유변불가사의공덕. 여시인등, 즉위하담여래아뇩다라삼먁삼보리. ‘광위인설(廣爲人說)’의 ‘광(廣)’ 자 같은 표현은 좀 후대의 전도주의적 성격(evangelistic tone)이 강화된 ..
15-2. 수보리야! 요약하여 말하건대, 이 경은 가히 생각할 수도 없고 가히 헤아릴 수도 없는가 없는 공덕을 지니고 있으니, 여래는 이를 큰 수레에 발심한 자를 위하여 설하고, 가장 좋은 수레에 발심한 자를 위하여 설하느니라. 須菩堤! 以要言之, 是經有不可思議不可稱量無邊功德. 如來爲發大乘者說, 爲發最上乘者說. 수보리! 이요언지, 시경유불가사의불가칭량무변공덕. 여래위발대승자설, 위발최상승자설. 최상의 지혜는 최상의 지혜를 추구하는 자들을 위하여 설하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요, 깨달음의 지혜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들을 위하여 설하여질 수밖에 없다. 여기 ‘대승(大乘)’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으나 산스크리트 원문에는 ‘mahāyāna’라는 표현은 없다. 즉 그런 식으로 개념화되고 있질 않다. ‘이것 위로는 아..
15. 경을 외우는 공덕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15-1. “수보리야! 여기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아침 나절에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바쳐 보시하고, 또 점심 때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바쳐 보시하고, 다시 또 저녁 때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바쳐 보시한다 하자! 그리고 또 이와 같이 매일 매일 헤아릴 수 없는 백천만억 겁의 시간 동안을 몸바쳐 보시한다 하더라도,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이 우러나와 거슬리지 않는다면, 바로 이 사람의 복이 저 사람의 복을 이기리니, 하물며 이 경을 베껴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남에게 해설해주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랴! “須菩堤! 若有善男子善女人, 初日分以恒河沙等身布施, 中日分復以恒河沙等身布施, 後日分亦以恒河..
14-11. 수보리야! 나는 또 과거 오백세 동안에 인욕선인이었던 것을 또렷이 기억하노니, 그 때의 세상에서도 나는 아상도 없었고, 인상도 없었고, 중생상도 없었고,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須菩堤! 又念過去於五百世作忍辱仙人, 於爾所世, 無我相, 无人相, 無衆生相, 无壽者相. 수보리! 우념과거어오백세작인욕선인, 어이소세,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14-12.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상을 떠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할지어다.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지며, 또한 성ㆍ향ㆍ미ㆍ촉ㆍ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지어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는 그 마음을 낼지어다. 是故須菩堤! 菩薩應離一切相, 發阿耨多羅三藐三菩堤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生無所住心. 시고수보리! 보살응리일체상..
14-10.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그것은 내가 옛날에 가리왕에게 신체가 낱낱이 버힘을 당한 것과도 같다. 나는 그 때 아상이 없었고, 인상이 없었고, 중생상도 없었고, 수자상도 없었다. 어째서인가? 그 옛날에 마디 마디 잘림을 당했던 그 때에, 내가 만약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있었더라면, 나는 분명코 분노와 미움을 냈으리라. 何以故? 須菩堤! 如我昔爲歌利王割截身體. 於我爾時, 無我相, 无人相, 无衆生相, 無壽者相. 何以故? 我於往昔節節支解時, 若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應生瞋恨. 하이고? 수보리! 여아석위가리왕할절신체. 어아이시,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하이고? 아어왕석절절지해시, 약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응생진한. 이러한 끔찍한 가리왕의 이야기는 결코 설화가 아니다. 보스니아..
14-4.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와 같은 경전을 얻어 듣고, 믿어 깨닫고 이를 받아지니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없지만, 만약 먼 훗날 후 오백세에 어떤 중생이 있어 이 경을 얻어듣고, 믿어 깨달아 이를 받아지닌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제일 희유한 사람이라 하겠나이다. 世尊! 我今得聞如是經典, 信解受持, 不足爲難. 若當來世後五百歲, 其有衆生得聞是經, 信解受持, 是人則爲第一希有. 세존! 아금득문여시경전, 신해수지, 부족위난. 약당래세후오백세, 기유중생득문시경, 신해수지, 시인즉위제일희유. 14-5.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이 사람은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은 무엇이오니이까? 아상은 곧 상이 아니며, 따라서 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도 곧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그러..
14-2. 세존이시여! 만약 여기 다시 한 사람이 있어 이 경을 얻어 듣고, 그 믿는 마음이 깨끗하면 곧 참된 모습을 깨달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제일의 희유한 공덕을 성취할 것임을 알겠나이다. 世尊, 若復有人得聞是經, 信心淸淨, 則生實相. 當知是人成就第一希有功德. 세존, 약복유인득문시경, 신심청정, 즉생실상. 당지시인성취제일희유공덕. 14-3. 세존이시여! 이 참된 모습이라고 하는 것은 곧 어떤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참된 모습이라 이름할 수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世尊! 是實相者, 則是非相, 是故如來說名實相. 세존! 시실상자, 즉시비상, 시고여래설명실상. 여기 ‘참된 모습’은 집역(什譯)의 실상(實相)인데, 이 실상(實相)이 산스크리트 원문에서 정확하게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명확하..
14. 상을 떠나 영원으로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14-1. 이 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 의취를 깊게 깨달아 눈물 흘려 흐느끼며,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정말 드문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깊고 깊은 경전을 설하신다는 것은! 저는 예로부터 얻은 바의 혜안으로도 이와 같은 경을 얻어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爾時, 須菩堤聞說是經, 深解義趣, 涕淚悲泣而白佛言: ”希有世尊! 佛說如是甚深經典. 我從昔來所得慧眼, 未曾得聞如是之經. 이시, 수보리문설시경, 심해의취, 체루비읍이백불언: ”희유세존! 불설여시심심경전. 아종석래소득혜안, 미증득문여시지경. 이 제14분은 『금강경』 전체에서 가장 긴 분이다. 콘체의 말대로 주된 암송이 제13분에서 끝났다고 한다면,..
13-8.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뇨?” “須菩堤!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見如來不?”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이상견여래불?” 13-9. “볼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삼십이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가 없나이다.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여래께서 말씀하신 삼십이상은 곧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삼십 이상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오니이다.” “不也. 世尊! 不可以三十二相得見如來. 何以故? 如來說三十二相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 “불야. 세존! 불가이삼십이상득견여래. 하이고? 여래설삼십이상즉시비상, 시명삼십이상.” 13-10. “수보리야! 만약 여기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갠지스강의 모래 수와 같은 많은 목숨을 다 바쳐 보시를 했다 하더라도, 또한 다..
13-4. 수보리는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말씀하신 바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須菩堤白佛言: “世尊! 如來無所說.” 수보리백불언: “세존! 여래무소설.” 13-5.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삼천대천 세계의 모든 티끌이 많다 하겠느뇨?” “須菩堤! 於意云何? 三千大千世界所有微塵, 是爲多不?” “수보리! 어의운하? 삼천대천세계소유미진, 시위다불?” 13-6.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須菩堤言: “甚多. 世尊!” 수보리언: “심다. 세존!” 13-7. “수보리야! 그 모든 티끌을 여래는 설하기를, 티끌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비로소 티끌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여래는 이 세계가 세계가 아니라고 설파한다. 그래서 비로소 세계라 이름할 수 있는..
13-3. “그 까닭이 무엇이뇨? 수보리야! 부처가 설한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가 설한 법이 과연 있다고 생각하느냐?” “所以者何? 須菩堤! 佛說般若波羅蜜, 則非般若波羅蜜. 須菩堤! 於意云何? 如來有所說法不?” “소이자하? 수보리! 불설반야바라밀, 칙비반야바라밀.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소설법불?” ‘여당봉지(汝當奉持)’에서 멋있게 끝난 피날레를 억지로 논리를 붙여내어 끌어간 느낌이 역력하다. 그러나 퍽으나 자연스럽게 논지를 펼쳐가고 있다. 그런데 여기 중요한 판본의 문제가 하나 있다. 우리나라 시중에서 통용되고 있는 많은 『금강경』이 라집역본(羅什譯本)임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그 잘못된 의취(義趣)에 따라 제멋대로 가감(加減)한 비선본(非善本..
13. 법에 따라 받아지녀라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13-1. 이 때에, 수보리는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경을 마땅히 무어라 이름하오며, 우리들은 어떻게 이 경을 받들어 지녀야 하오리까?” 爾時, 須菩堤白佛言: “世尊! 當何名此經, 我等云何奉持?” 이시, 수보리백불언: “세존! 당하명차경, 아등운하봉지?” 13-2.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이 경을 이름하여 금강반야바라밀이라 하라. 이 이름으로써 그대는 이를 마땅히 받들어 지닐지라.” 佛告須菩堤: “是經名爲金剛般若波羅蜜, 以是名字, 汝當奉持.” 불고수보리: “시경명위금강반야바라밀, 이시명자, 여당봉지.” 콘체는 『금강경』이 바로 여기서 끝난다고 보고 있다. 사실 콘체의 이와 같은 분석은 공부를 깊게 한 사람의 통찰력 있는 ..
12-2. 수보리야! 마땅히 알지니, 이 사람은 최상이며 제일인 희유의 법을 성취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 경전이 있는 곳이 바로 부처님과 그의 존경스러운 제자들이 계신 곳이 된다는 것을.” 須菩堤! 當知是人,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 若是經典所在之處, 則爲有佛若尊重弟子.” 수보리! 당지시인, 성취최상제일희유지법. 약시경전소재지처, 즉위유불약존중제자.” 이것은 ‘교회론’의 최종적 해석이다. 내가 이 『금강경』을 내 방에 꽂아두면(그 말씀을 내 방과 내 마음에 모시면) 곧 내 방이 부처님의 사리탑이 되고 법당이 되는 것이다. 『신약성경』을 내 책상에 꽂아두면 바로 그 책상이 베드로의 성전이 되는 것이요, 예수님이 살아계신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 얼마나 참신하고 과격하고 진실한 사상인가? 동포들이여! 앞으로 ..
12. 존중해야 할 바른 가르침 존중정교분(尊重正敎分) 12-1.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어디서나 이 경을 설하되, 사구게 하나라도 설하는데 이른다면, 마땅히 알라, 바로 그곳이 일체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가 모두 기꺼이 공양하는 부처님의 탑묘와도 같은 곳이 되리라는 것을, 하물며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 전체를 수지하고 독송함에 있어서랴! “復次須菩堤! 隨說是經乃至四句偈等, 當知此處一切世間天人阿修羅, 皆應供養如佛塔廟. 何況有人盡能受持讀誦! “복차수보리! 수설시경내지사구게등, 당지차처일체세간천인아수라, 개응공양여불탑묘. 하황유인진능수지독송! 이 분 역시 대승불교운동의 역사적 상황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금강경』의 성립이, 부처님의 탑묘와 같은 것이 많이 지어진 시대를 배경..
11-4. 수보리가 사뢰었다: “정말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須菩堤言: “甚多. 世尊!” 수보리언: “심다. 세존!” 11-5.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 등을 받아 지니게 되어, 그것을 딴 사람들에게 잘 설명해 준다면, 이 복덕은 앞서 칠보의 복덕보다 더 크리라.” 佛告須菩堤: “若善男子善女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而此福德勝前福德.” 불고수보리: “약선남자선녀인, 어차경중, 내지수지사구게등, 위타인설, 이차복덕승전복덕.” 인도인들의 과장법의 표현과 그 진실한 내용이 잘 조화되어 있다. 과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돈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금강경』은 칠보의 공덕을 결코 천시하거나 낮잡아보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그것도 ‘..
11-2. 수보리가 사뢰었다: “참으로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모든 갠지스강만이라도 너무 많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거늘, 하물며 그 모래 수이겠습니까?” 須菩堤言: “甚多. 世尊! 但諸恒河尙多無數, 何況其沙?” 수보리언: “심다. 세존! 단제항하상다무수, 하황기사?” 11-3. “수보리야! 내 지금 너에게 진실한 말로 이르노니,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여기 있어, 칠보로써 그 모든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삼천대천세계를 채워 보시한다고 한다면, 복을 얻음이 많겠느냐?” “須菩堤! 我今實言告汝. 若有善男子善女人, 以七寶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 利用布施, 得福多不?” “수보리! 아금실언고여. 약유선남자선녀인, 이칠보만이소항하사수삼천대천세계, 이용보시, 득복다불?” ‘아금실언고여(我今實言告汝)’는 여태까..
11. 함이 없음의 복이여, 위대하여라!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 11-1. “수보리야! 갠지스강에 가득찬 모래알의 수만큼, 이 모래만큼의 갠지스강들이 또 있다고 하자! 네 뜻에 어떠하뇨? 이 모든 갠지강들에 가득찬 모래는 참으로 많다 하지 않겠느냐?” “須菩堤! 如恒河中所有沙數, 如是沙等恒河! 於意云何? 是諸恒河沙寧爲多不?” “수보리! 여항하중소유사수, 여시사등항하! 어의운하? 시제항하사녕위다불?”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분(分)이다. 인도인들의 프라이드와 시적 정취가 너무도 잘 표현된 아름다운 분이다. 인도의 고문명(古文明)은 하라파(Harappa), 모헨죠다로(Mohenjodaro) 등의 유적지에서 보여지는 하라판문명(Harappan Civilization)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것을 포함하여 인더스강..
10-7. 수보리가 사뢰었다: “정말 큽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부처님께서 그 몸은 몸이 아니라 말씀하시기 때문에 비로소 이를 큰 몸이라 이름할 수 있습니다.” 須菩堤言: “甚大. 世尊! 何以故? 佛說非身, 是名大身.” 수보리언: “심대. 세존! 하이고? 불설비신, 시명대신.” ‘비신(非身), 시명대신(是名大身)’과 ‘비장엄(非莊嚴), 시명장엄(是名莊嚴)’은 동일한 논리적 구조로 되어 있다. 부정이 아닌 대긍정의 논리다. 그러나 그 대긍정의 전제는 신(身)이 신(身)이 아니라고 하는 ‘무아(無我)’(실체의 부정)인 것이다. 『금강경』은 긍정의 논리이지, 부정의 논리가 아니라는 것을 특히 유념해주기 바란다. 인용 목차 금강경
10-6. 수보리야! 비유컨대, 그 몸이 수미산처럼 큰 사람이 여기 있다고 하자. 네 뜻에 어떠하뇨? 이 몸이 크다 할 것이냐? 크지 않다 할 것이냐?” 須菩堤! 譬如有人身如須彌山王. 於意云何? 是身爲大不?” 수보리! 비여유인신여수미산왕. 어의운하? 시신위대불?” 논의는 불국토(佛國土)의 정화행위로부터 법신(法身)의 인식문제로 옮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동일한 문제의식의 패턴 속에서 논구하고 있다. 여기 역시 수미산(須彌山)만큼 큰 법신의 부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긍정인 것이다. ‘수미산왕(須彌山王)’이라는 표현은 수미산이 산 중의 왕이라 해서 붙인 이름일 수도 있지만(Suppose, Subhuti, there were a man endowed with a body, a huge bo..
10-5. “그러므로, 수보리야! 뭇 보살과 마하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내어야 한다. 마땅히 색에 머물러 그 마음을 내지 말 것이며, 또한 마땅히 성ㆍ향ㆍ미ㆍ촉ㆍ법에 머물러 그 마음을 내지 말 것이다. 반드시 머무는 곳이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是故須菩堤! 諸菩薩摩訶薩應如是生淸淨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而生其心. “시고수보리! 제보살마하살응여시생청정심.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이생기심. 앞의 ‘시명장엄(是名莊嚴)’의 인식론적 내용을 설파하고 있다. 나의 마음이 불토(佛土)를 구성하는 육경(六境)에 머물러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불토라고 하는 인식작용의 대상이 근원적으로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 색을 말하고 나중에 성(..
10-3.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보살이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아니 되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菩薩莊嚴佛土不?” “수보리! 어의운하? 보살장엄불토불?” 10-4. “아니 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 하는 것은 장엄하게 함이 없기 때문에, 비로소 장엄하다 이름하는 것이오니이다.” “不也. 世尊! 何以故? 莊嚴佛土者, 則非莊嚴, 是名莊嚴.” “불야. 세존! 하이고? 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여기에 나오는 ‘장엄(莊嚴)’이라는 말은 ‘vyūha’에 해당되는 말인데 그 원의는 ‘건립(formation)’, ‘보기 좋은 배열, 배치(distribution, arrangement)’, ‘수식, 장식’, ‘구조물(structure)’, ..
10-2.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연등부처님의 곳에서 법에 얻은 바가 실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世尊! 如來在然燈佛所, 於法實无所得.” “세존! 여래재연등불소, 어법실무소득.” 산스크리트 원문에는 앞의 질문이 ‘여래가 연등불(디빵까라따타가따) 아래서 얻은 그 무엇이 있단 말인가?’의 뉴앙스로 되어 있다. 여기 ‘소득(所得)’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즉 ‘얻은 그 무엇’, 바로 그 무엇이 실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보리의 대답은 실로 그 무엇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무화(無化)시키고 공화(空化)시켜 버리는 것이다. 여래가 전생에서 샤캬의 성자(샤캬무니=석가모니)가 됨을 확약 받았기에 성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참으로 소승적(小乘的) 발상이요, 대승적 발상이 아니다. 예수가 오직 다윗왕의 자손이..
10. 깨끗한 땅을 장엄케 하라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10-1.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가 옛날에 연등부처님의 곳에서, 법에 얻은 바가 있느냐? 있지 아니하냐?” 佛告須菩堤: “於意云何? 如來昔在然燈佛所, 於法有所得不?” 불고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석재연등불소, 어법유소득불?” 여기 ‘정토(淨土)’란 이름이 분명(分名)으로 나오고 있는데 본문(本文) 속의 ‘불토(佛土)’와 동일한 뜻이다. 정토(淨土)란 말은 한역(漢譯) 『무량수경(無量壽經)』에 나오는 ‘청정국토(淸淨國土)’라는 말을 두 글자로 압축시킨 것이다. 정토(淨土)란 ‘부처님의 나라’ 즉 깨달은 자들의 나라며 정복(淨福)의 영원한 이상향이다. 불계(佛界), 불국(佛國), 불찰(佛刹)로도 쓰이는데, 이는 우리가..
9-10.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라는 생각을 했다면, 세존께서는 수보리야말로 아란나의 행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수보리는 실제로 행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곧 수보리야말로 아란나의 행을 즐긴다고 이르신 것입니다.” 世尊! 我若作是念我得阿羅漢道, 世尊則佛說須菩堤是樂阿蘭那行者. 以須菩堤實無所行, 而名須菩堤是樂阿蘭那行.” 세존! 아약작시념아득아라한도, 세존즉불설수보리시낙아란나행자. 이수보리실무소행, 이명수보리시낙아란나행.” 여기 ‘아란나(阿蘭那)의 행(行)을 즐기는 자’(araṇā-vihārin)라는 표현은 앞의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은 사람’과 같은 표현이다. ‘득무쟁삼매인(得無諍三昧人)’이라는 것은 의역이고 ‘낙아란나행자(樂阿蘭那行者)’는 음역이다. ..
9-9.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제가 무쟁삼매의 사람 중에서 가장 으뜸됨을 얻었다고 말씀하시니, 이는 욕심을 떠난 제일의 아라한이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욕심을 떠난 아라한이다라는 이 같은 생각을 짓지 않습니다. 世尊! 佛說我得無諍三昧人中最爲第一, 是第一離欲阿羅漢. 我不作是念, 我是離欲阿羅漢. 세존! 불설아득무쟁삼매인중최위제일, 시제일리욕아라한. 아불작시념, 아시리욕아라한. ‘무쟁삼매인중최위제일(無靜三昧人中最爲第一)’의 원문은 ‘araṇā-vihāriṇām agryaḥ’이며 그 뜻을 직역하면, ‘다툼이 없는 상태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최고의 사람’이다. ‘다툼이 없다’는 것은 나 이외의 인간들로부터의 온갖 모욕과 박해와 비난, 그리고 외도(外道)로부터의 비판에 대해 더불어 싸우지 않는..
9-8.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 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실제로 아라한이라고 이름할 수 있는 법이 도무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곧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須菩堤言: “不也. 世尊! 何以故? 實無有法名阿羅漢. 世尊! 阿羅漢作是念, 我得阿羅漢道, 卽爲著我人衆生壽者.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실무유법명아라한. 세존! 아라한작시념, 아득아라한도, 즉위착아인중생수자. 번역이 실제적 의미에 따라 조금씩 변주되면서 읽기 쉽게 되어 있으므로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 의미는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 나는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었다라고 ..
9-7.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노라’하는 생각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阿羅漢能作是念, 我得阿羅漢道不?” “수보리! 어의운하? 아라한능작시념, 아득아라한도불?” 제1위(第一位)로부터 제4위(第四位)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같은 패턴으로 나열되어 있다. 그런데 앞의 3위는 모두 ‘과(果)’로 되어있었는데 최후의 제4위는 그것이 ‘도(道)’로 되어 있다. 아라한의 증득(證得)의 상태가 이전의 3단계의 상태와는 다르다고 하는 차별성을 살리는 표현으로, 범문(梵文)에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라집(羅什)이 그에 맞추어 번역한 것이다. 앞의 세 경우는 ‘phalaṃ’이라하여 ‘열매(fruit)’라는 표현을 썼지만, 아라한의 경우는 ‘arhat..
9-5.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아나함이 ‘나는 아나함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阿那含能作是念, 我得阿那含果不?” “수보리! 어의운하? 아나함능작시념, 아득아나함과불?” 9-6.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 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아나함을 이름하여 ‘이제 다시 아니 올 자’라 하지만, 실제로 온다 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만 아나함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須菩堤言: “不也. 世尊! 何以故? 阿那含名爲不來, 而實无來. 是故名阿那含.”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아나함명위불래, 이실무래. 시고명아나함.” 우리 해인사본(本)에 ‘실무래(實无來)’로 되어 있는 부분이 명본(明本)에는 ‘실무불래(..
9-3.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사다함이 ‘나는 사다함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斯陀含能作是念, 我得斯陀含果不?” “수보리! 어의운하? 사디함능작시념, 아득사다함과불?” 9-4.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 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사다함을 이름하여 ‘한 번 왔다갔다 할 자’라 하지만, 그는 실제로 왔다갔다 함이 없기 때문에 바로 사다함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須菩堤言: “不也. 世尊! 何以故? 斯陀含名一往來, 是名斯陀含.”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사다함명일왕래, 시명사다함.” 라집(羅什)이 음역과 의역을 이용하여 기나긴 산스크리트 원문을 간결하게 처리해버리는 한역방식이 참으로 돋보인다. 사다함? 하늘..
9-2.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 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이오니이까? 수다원을 이름하여 ‘들어간 자’라 하지만, 그는 들어감이 없습니다. 그는 형체에도, 소리에도, 내음새에도, 맛에도, 만져지는 것에도, 마음의 대상에도 들어간 적이 없기 때문에만 수다원이라 이름할 수 있습니다.” 須菩堤言: “不也. 世尊! 何以故? 須陀洹名爲入流, 而無所入. 不入色聲香味觸法. 是名須陀洹.”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수다원명위입류, 이무소입. 불입색성향미촉법. 시명수다원.” 수다원이 수다원일 수 있는 것은 평화로운 수도의 생활에 들어갔기 때문에가 아니다. 어느 곳에도 들어감이 없기 때문에 수다원인 것이다. 이 분(分)에서 깨고자 하는 것은 모든 수도인들의 자의식이다. 수행의 모든 단계에서 생겨나는 자의식..
9. 어느 한 상도 상이 아니어라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 9-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수다원이 ‘나는 수다원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須陀洹能作是念, 我得須陀洹果不?” “수보리! 어의운하? 수다원능작시념, 아득수다원과불?” 이 제9분은 역사적으로 『금강경』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매우 중요한 분이다. 『금강경』은 소승과 대승이라는 구분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당대에 성립한 부파불교에 대한 통렬한 반성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바로 이 분(分)은 『금강경』이 쓰여진 당대의 부파불교의 통념에 대한 매우 통렬한 비판의 어조를 깔고 있다. 불교의 언어는 매우 밋밋하고 두리뭉실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배면에 숨어..
8-5. 수보리야! 이른바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닌 것이다.” 須菩堤! 所謂佛法者, 卽非佛法.” 수보리! 소위불법자, 즉비불법.” 참으로 충격적인 최후의 일언(一言)이다. 불법은 곧 불법이 아니다. 여기서의 불(佛)은 곧 ‘깨달음’이다. 불법(佛法)은 곧 깨달음의 법이다. 이 최후의 충격적 일언(一言)은 바로 대승불교의 마지막 선포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깨달음’ 그 자체의 부정인 것이다. 번뇌가 곧 보리다! 최후의 만찬에서의 대승예수의 최후의 일언은 이런 것이었다: “나 예수의 말은 예수의 말이 아니다.” 인용 목차 금강경
8-4.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일체의 모든 부처님, 그리고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이, 모두 이 경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何以故? 須菩堤! 一切諸佛及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 皆從此經出. 하이고? 수보리! 일체제불급제불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 개종차경출. 바로 이 『금강경』이 설(說)하고 있는 대승의 지혜야말로 일체의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의 깨달음의 원천인 것이다. 이 『금강경』의 설법을 떠나서 우리는 반야를 논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 붓다의 최후의 도약이 이루어진다.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최후의 심판,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다음을 보라! 인용 목차 금강경
8-3. “만약 또한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곧 이 경 중에서 사구게라도 하나 타인을 위하여 설파하는데 이른다면, 이 사람의 복이 칠보공덕의 사람의 복을 뛰어 넘으리라. “若復有人, 於此經中, 受持乃至四句偈等爲他人說, 其福勝彼. “약복유인, 어차경중, 수지내지사구게등위타인설, 기복승피. 혹자가 나에게 묻기를, 문 중에 경(經)이라 하니 이는 불타의 한나절 설법인데 어찌 경(經)이라 할손가? 이미 『금강경』이라는 책이 설법자의 손에 쥐어져 있기라도 하단 말가? 재미있는 지적이기는 하나,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질문이다. 인도문화는 본시 오디오문화다. 입에서 귀로 전달되는 것이 일차적인 중요성을 갖는 문화다. 그런데 이 질문은 비디오를 중시하는 중국문화전통의 사람에게서 나온 질문일 뿐이다..
8-2. 수보리가 사뢰었다: “정말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이 복덕은 곧 복덕의 본성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오이다. 그러한 까닭에 여래께서는 복덕이 많다고 말씀하신 것이오니이다.” 須菩堤言: “甚多. 世尊! 何以故? 是福德卽非福德性, 是故如來說 福德多.” 수보리언: “심다. 세존! 하이고? 시복덕즉비복덕성, 시고여래설복덕다.” 보화를 하늘에 쌓아둔다는 것은 곧 대승적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다. 대승적 마음가짐이란, 곧 복덕에 복덕이라는 실체성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복덕을 복덕으로 생각하지 않을 때만 복덕은 복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노자(老子)는 말한다: “함이 없음을 행하면 되지 않음이 없다”(위무위爲無爲, 즉무불치則無不治. 제3장). ‘즉비복덕성(卽非福德..
8. 법에 의해 다시 태어나라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8-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만약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얻을 복덕이 많다 하겠느냐? 그렇지 않다 하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若人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所得福德寧爲多不?” “수보리! 어의운하? 약인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시인소득복덕녕위다불?” 이 장에서 우리의 ‘악취공(惡取空)’의 가능성을 경계한다. 법(法)을 버리고 비법(非法)을 떠난다 해서 그럼 우리 인간은 아무 것도 하지 말란 말인가? 무위(無爲)란 정말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의 현실적 도덕적 행위는 결코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행하는 자세가 보살승에 올라타 있어야 한다는 것..
7-3.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여래께서 설하신 바의 법은 모두 취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법도 아니며 법이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이오이다. 何以故? 如來所說法, 皆不可取不可說, 非法非非法. 하이고? 여래소설법, 개불가취불가설, 비법비비법. 7-4. 그 까닭은 무엇이오니이까? 일체의 성현들은 모두 함이 없는 법으로 이루어져 범인들과는 차별이 있기 때문이오이다.” 所以者何?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소이자하? 일체현성, 개이무위법, 이유차별.” 라집(羅什)은 ‘하이고(何以故)’, ‘소이자하(所以者何)’와 같이, 문의의 다양성을 위해 표현을 약간씩 달리하는 구문을 썼다. 같은 문장 안에서도 동일한 주어의 표현을 바꾸는 것도 그러하다. 나도 번역에 있어 그에 맞추어 변주하였다. 마지막 문장의..
7-2. 수보리가 사뢰었다: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의 뜻을 이해하기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할 정해진 법이 없으며, 여래께서 설하실 만한 정해진 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須菩堤言: “如我解佛所說義, 無有定法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亦无有定法如來可說. 수보리언: “여아해불소설의, 무유정법명아뇩다라삼먁삼보제, 역무유정법여래가설. 실재(實在)에 대한 언어적 규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실재는 무상(無常)하여 찰나찰나 변해가고 있는데 그것을 규정하는 언어는 그것과 무관하게 대상세계를 고정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로 구성한 세계는 무상의 세계가 아니라 상(常)의 세계다. 상의 세계는 망상(妄想)인 것이다. 천당의 불변적 삶을 추구하는 소승적 기독교인의 망상이 어떠한 오류에 속하는 것인지 이제 좀 깊게 이해..
7. 얻을 것도 없고 말할 것도 없다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7-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가 과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인가? 여래가 설한 바의 법이 과연 있는 것인가?” “須菩堤! 於意云何?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 如來有所說法耶?”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야? 여래유소설법야?” ‘과연’은 내가 문의를 살리기 위해 첨가한 것이다. 이제 『금강경』이 바로 『금강경』을 설할 것이다. 인용 목차 금강경
6-8. 이러한 뜻의 까닭으로, 여래는 항상 말하였다: ‘너희들 비구들아, 나의 설법이 뗏목의 비유와 같음을 아는 자들은, 법조차 마땅히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님에 있어서랴!’” 以是義故, 如來常說: ‘汝等比丘, 知我說法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이시의고, 여래상설: ‘여등비구, 지아설법여벌유자, 법상응사. 하황비법!’” 여기 비교적 길었던 제6분(第六分)의 총결론이 제출되고 있다. 앞서 이 책의 모두에서 내가 말했듯이 종교는 교설(敎說)이 아니다. 부처님의 설법 그 자체가 종교가 아니요, 그 설법조차도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리 귀한 휴지라도 밑을 담으면 버려야지, 그것이 귀하다고 주머니에 넣어 보관하면 쿠린내만 계속 날 것이다. 기독교 목사님들의 설교가 이런 ..
6-7.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 법이 아니라고 하는 상을 취해도 곧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법을 취하지 말 것이며, 마땅히 법이 아님도 취하지 말 것이다. 何以故? 若取非法相, 卽著我人衆生壽者. 是故不應取法, 不應取非法. 하이고? 약취비법상, 즉착아인중생수자. 시고불응취법, 불응취비법.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이 표방하는 대로 우리 인간의 언어체계는 실재(實在)의 정확한 그림이 될 수가 없다. 실재세계(實在世界)를 긍정적으로 표현해도 부정적으로 표현해도 다 부족한 데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논리의 구사는 논리 그 자체의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지만, 그 논리의 법칙은 실재세계의 모습과는 무관한 또 다른 께임일 뿐이다. 이 양자의 정합성에서 세계를 규명하려는 모든 노..
6-6. 어째서 그러한가? 이 무릇 중생들이 만약 그 마음에 상을 취하면 곧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에 달라붙게 되는 것이다. 만약 법의 상을 취해도 곧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何以故? 是諸衆生, 若心取相, 則爲著我人衆生壽者. 若取法相, 則著我人衆生壽者. 하이고? 시제중생, 약심취상, 즉위착아인중생수자. 약취법상, 즉착아인중생수자. ‘약심취상(若心取相)’은 ‘그 마음에 존재의 상을 갖는다’는 의미인데, 이는 곧 마음의 상을 바로 밖에 있는 대상의 실체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것은 후대 유식(唯識)에서 많이 다루게 되는 문제에 속한다. ‘약취법상(若取法相)’은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가 마치 ‘약법취상(若法取相)’인 것처럼, ‘약심취상(若心取相)’과 대비하여 번역했는데(이기영도 나카무라..
6-5. 어째서 그러한가? 이 뭇 중생들은 다시는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없을 것이며, 법의 상이 없을 뿐 아니라, 법의 상이 없다는 생각조차 없기 때문이다. 何以故? 是諸衆生, 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無法相亦无非法相. 하이고? 시제중생, 무복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무법상역무비법상. 이 글귀의 핵심은 ‘무법상역무비법상(無法相亦無非法相)’에 있다. 박테리아를 쳐부시는데 항생제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렇다고 항생제를 좋아해서 항생제를 계속 먹으면 그것이 더 큰 병을 불러 일으킨다. 공(空) 사상은 존재(存在)를 실체의 존속으로 파악하는 우리의 유병(有病)을 치료하는 데는 더 없는 좋은 약이다. 그러나 공 그 자체에 집착하면 더 큰 병이 생겨난다. 악취공(惡取空, dur-gṛhītā śūnyatā: 공의 ..
6-4. 수보리야! 여래는 다 알고 다 보나니, 이 뭇 중생들은 이와 같이 한량없는 복덕을 얻을 수밖에 없으리라. 須菩堤! 如來悉知悉見, 是諸衆生得如是無量福德. 수보리! 여래실지실견, 시제중생득여시무량복덕. 여래는 각자(覺者)이다. 각자는 전체를 보는 사람이다. 여기 ‘실지실견(悉知悉見)’이라 함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막연한 ‘전지전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는 근본을 꿰뚫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비극적 상황에도 훌륭한 중생들이 한량없는 복덕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동학에서 ‘만사지(萬事知)’라 한 것과도 상통한다.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6-3.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한 부처, 두 부처, 서너다섯 부처님께 선근을 심었을 뿐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 자리에 온갖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 글귀를 듣는 즉시 오직 일념으로 깨끗한 믿음을 내는 자라는 것을, 當知是人, 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而種善根, 已於無量千萬佛所種諸善根, 聞是章句乃至一念生淨信者. 당지시인, 불어일불이불삼사오불이종선근, 이어무량천만불소종제선근, 문시장구내지일념생정신자. 산스크리트 원본과 비교해 보면 라집역은 매우 간결하게 축약되어 있다. 여기 ‘부처’는 ‘깨달음’을 상징하며 역사적인 싯달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 선근을 심었다’는 표현은 이미 오랜 윤회(saṃsāra)의 시간 속에서 훌륭한 행동(good conduct)과 덕성(virtuous quali..
6-2.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그런 말 하지말라. 여래가 멸한 뒤 후오백세에도 계율을 지키며 복을 닦는 사람이 있어, 이 글귀에 잘 믿는 마음을 낼 것이며, 이를 진실한 것으로 삼으리라.” 佛告須菩堤: “莫作是說. 如來滅後後五百歲, 有持戒修福者, 於此 章句能生信心, 以此爲實.” 수보리의 비관론에 대하여 불타의 낙관론이 설파되고 있다. 여기의 핵심되는 구절은 ‘후오백세(後五百歲)’인데, 사실 이 말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범문(梵文) 원본에도 한역본에도 완벽하게 명료하지는 않다. 범문에는 ‘후(後)의 오백년대(五百年代)에’라고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삼시(三時)사상 중에서 가운데 시대인 ‘상법(像法)’ 의 시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삼시(三時)란 불타의 멸적 후의..
6. 바른 믿음은 드물다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6-1.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퍽으나 많은 중생들이 이와 같은 말씀이나 글귀를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낼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須菩堤白佛言: “世尊! 頗有衆生得聞如是言說章句, 生實信不?” 수보리백불언: “세존! 파유중생득문여시언설장구, 생실신불?” ‘정신(正信)’은 ‘바른 믿음’이다. 문중(文中)의 ‘실신(實信)’과 상통한다. 선진문헌(先秦文獻)에서는 ‘신(信)’이란 글자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적 의미에서의 ‘믿음(faith)’이라는 용례에로 쓰인 적이 없다. 그것은 ‘실증한다’라는 ‘verification’의 의미에 가까운 내포를 지녔을 뿐이다. 이미 라집(羅什)의 시대에는 신(信)이라는 글자가 종교적 ‘믿음’의 ..
5-3.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무릇 있는 바의 형상이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佛告須菩堤: “凡所有相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불고수보리: “범소유상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아론(無我論)’이 강한 어조로 노출되어 있다. 여기 처음 ‘허망(虛妄)’ 하다는 말이 나오는데, 허망이라는 말은 곧 인간의 인식과 관련된 말이다. 존재 그 자체의 허망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존재를 인식하는 방법ㆍ수단이 모두 허망하다는 뜻이다. 콘체는 이 허망을 ‘fraud’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은 우리 인식의 기만성을 내포한 말이다. ‘견제상비상(見諸相非相)’의 ‘견(見)’은 ‘깨닫다’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제상(諸相)이 비상(非相)임을..
5-2.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몸의 형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여래께서 이르신 몸의 형상이 곧 몸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不也. 世尊! 不可以身相得見如來. 何以故? 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 “불야. 세존! 불가이신상득견여래. 하이고? 여래소설신상, 즉비신상.” ‘신상(身相)’을 나는 ‘몸의 형상’으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붓다의 색신(色身)을 구성하는 특징에 관한 것이다. 상에 해당되는 산스크리트어는 ‘lakṣaṇa’인데 ‘nimitta’와 대응하여 물체의 외면적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것은 표시(mark), 싸인(sign), 심볼(symbol), 증거(token), 성격(characteristic), 속성(attribute), 성질(quality) 등의 의..
5. 진리대로 참 모습을 보라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5-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몸의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須菩堤! 於意云何? 可以身相見如來不?”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견여래불?” ‘여리(如理)’는 ‘리와 같이’ ‘리대로’라는 뜻이다. 그런데 불교에서, 그리고 물론 이것은 한역불교에서 더 뚜렷이 발전된 개념이지만, ‘리(理)’라고 하는 것은 ‘사(事)’와 대비되어 나타난다. 사(事)는 인연의 사실들이다. 리(理)는 그 인연의 사실들을 일으키고 있는 연기 그 자체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서양철학의 본체론과는 다르지만 본체론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리(理)는 진여(眞如)의 세계며 그것은 생멸(生滅)의 세계가 아닌 생멸을 일으키고 있는 그 자체의 세계다. 엄밀..
4-7. 수보리야! 보살은 오직 가르친 바 대로 머물지니라.” 須菩堤! 菩薩但應如所敎住.” 수보리! 보살단응여소교주.” ‘단(但)’을 ‘오직’으로 한 것은 세조본의 우리말을 따랐다. 여기서 ‘가르친 바 대로’라는 것은 본분(本分)에서 말한 내용을 가리킨다. 보살은 부처님의 이와 같은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노자(老子)』 제2장에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란 말이 있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이루어진 공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자(老子)의 ‘불거(弗居)’는 여기서 말하는 ‘불주어상(不住於相)’과 크게 차이가 없다. 중국인들은 오히려 불교의 ‘불주(不住)’의 논리를 노자적(老子的)인 불거(弗居)로서 이해했음에 틀림이 없다. 중국인들에게서는 『노자(老子)」가 분명 선행되었던 지혜의 경전이다...
4-6. “수보리야!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것의 복덕도, 또한 이와 같이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느니라. “須菩堤! 菩薩無住相布施福德, 亦復如是不可思量. “수보리! 보살무주상보시복덕, 역부여시불가사량. 『반야심경』의 ‘수상행식(受想行識), 역부여시(亦復如是)’를 연상하면 같은 패턴의 문장구성방법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용 목차 금강경
4-5. “수보리야! 남ㆍ서ㆍ북방과 사유ㆍ상ㆍ하의 허공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須菩堤! 南西北方四維上下虛空可思量不?” “不也. 世尊!” “수보리! 남서북방사유상하허공가사량불?” “불야. 세존!” 우리가 보통 시방(十方)이라고 하는 것은 가능한 온갖 방위를 가리키는 인도인의 개념화방식에서 비롯된 말이다. 우리 동방인들은 주로 4방ㆍ8방은 잘 말해도 ‘시방’을 말하지는 않았다. ‘시방’에는 상(上)과 하(下)의 2방이 더 들어가는데 이것은 인도인들의 공간감각이 중국인들보다 훨씬 입체적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방(四方)은 동서남북(東西南北)의 네 방위다. 사유(四維)라는 것은 그 사이 사이에 끼어들어 가는, 동북ㆍ동남ㆍ서남ㆍ서북을 말한다. 여기에 상(..
4-4.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동쪽의 허공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須菩堤! 於意云何? 東方虛空可思量不?” “不也, 世尊!” 수보리! 어의운하? 동방허공가사량불?” “불야, 세존!” ‘어의운하(於意云何)’는 계속 나오는 관용구다. ‘뜻에 있어서 어떠한가?’인데, 세조본의 아름다운 우리말에 따라 ‘네 뜻에 어떠하뇨?’로 일관되게 번역하겠다. 우리가 동쪽하늘의 양이나 크기를 개념적으로 수량화해서 잴 수가 없는 것이다. 무아(無我)의 보시가 결과적으로 가져오는 무량(無量)한 복덕(福德)이 이와 같이 엄청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무아(無我)의 도덕을 실천한다 하는 것은 외면적으로 도덕을 초월하는 것(trans-ethical)처럼 보인다. 그러나 초도덕성..
4-3.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다면, 그 복덕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으리라. 何以故? 若菩薩不住相布施, 其福德不可思量. 하이고? 약보살불주상포시, 기복덕불가사량.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기 전, 이미 선진시대(先秦時代)에 불교와 무관하게 성립한 중국의 지혜의 서(書)인 『노자(老子)』 제7장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러하므로 성스러운 사람은 몸을 뒤로 하기에 그 몸이 앞서고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시이성인후기신이신선 몸을 내던지기에 그 몸이 존한다. 外其身而身存 외기신이신존 이것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非以其無私邪? 비이기무사야 그러므로 능히 그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니. 故能成其私 고능성기사 여기서 말하는 ‘무사(無私)’는 곧 불교의 ‘무아(無我)’로..
4-2. 이른바 색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고, 성ㆍ향ㆍ미ㆍ촉ㆍ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다는 것이다.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보시할 것이며, 상에 머물러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所謂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堤! 菩薩應如是布施, 不住於相. 소위불주색보시, 불주성향미촉법보시. 수보리! 보살응여시보시, 불주어상. 종교의 사회적 기능으로서 우리는 반드시 ‘구제’, ‘보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가 실제적으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측면이 심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세에서 끊임없이 그 조직이 유지되는 이유는 아마도 이 보시의 기능 때문일 것이다. 보시는 ‘dāna’의 번역인데 ‘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보시는 크게 ‘삼시(三施)’로 나뉜다. 그 첫째가 ‘재시(財施)’인데, 의식(衣食..
4. 아름다운 행동은 집착이 없다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4-1.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보살은 법에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여야 한다. 復次須菩堤! 菩薩於法應無所住, 行於布施. 복차수보리! 보살어법응무소주, 행어포시. ‘묘행(妙行)’이란 ‘아름다운 행동’이라 번역했지만, 실제로 여기서의 ‘행(行)’은 ‘보시’를 가리킨다. 대승불교에서의 ‘묘(妙)’라는 글자는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할 때의 묘와 항상 의미적으로 상통해 있는 글자며, 그것은 통속적 인식을 벗어난, 즉 지혜의 인식을 거친 후에 획득되는 상식의 세계를 의미한다. ‘무주(無住)’라는 말은 ‘부주열반(不住涅槃)’ 혹은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이라는 대승의 개념에서 도출되는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생사(生死)가 곧 열반(涅槃, nirv..
3-4.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이나 인상이나 중생상이나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何以故? 須菩堤! 若菩薩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즉비보살. 바로 이 절에서 정종분(正宗分)은 피크를 이룬다. 이것은 불타의 무아론(無我論)의 본의로 회귀하자는 보살운동의 캣치프레이즈이기도 한 것이다. ‘Return to Buddha!’ 역사적으로 보살의 의미규정은 이 한 절에 완료되고 완성된다. 바로 보살됨의 내용이 이 한 절을 벗어남이 없다. 역사적으로 대승의 규정은 이 한 절을 떠나서 따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승의 종지(宗旨)인 것이다. 이 사상(四相)이라고 하는 ‘아(我)ㆍ인(人)ㆍ중생(衆生)ㆍ수자(壽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