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797)
건빵이랑 놀자
19년 만에 수양록을 정리하다 군생활을 2001년 2월 27일(火)에 입대해서 26개월을 꼬박 채운 후 2003년 4월 26일(土)에 마쳤다. 그후로 무려 19년이 흘러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어느새 40대 초반이 되었다.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의 시기별 특징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잊어도 되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가도 됨에도 왜 과거로 회귀하려 하는 것이며, 뜬금없이 지옥이라는 이미지로 남아 있는 군시절을 정리하려 한 것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갑작스레 하는 정리가 아니라고 말이다. 26개월의 발자취가 빼곡하게 담겨 있기에 언제든 꼭 한 번은 정리를 하고 싶었다. 맘은 원이로되 실천하긴 쉽지 않았다. 수양록을 적을 당시엔 한정된 페이지에 많은 내..
군대 수양록(修養錄) 목차2001년 2월 27일(火) ~ 2003년 4월 26일(土) 26개월의 군생활 소속: 6XX 2R 1BN 3CO 2P 1S군번: 01-73010754 신병교육01.02.27~04.13(7주) 나는 누구인가03.08 군생활의 비감(悲感)03.09 행복(幸福)이란 것03.11 종교와 초코파이03.13 작은 감사03.15 건강의 소중함03.16 어이없는 벌에 대해03.19 억눌린 영혼들의 주먹다짐03.20 사격과 놀이기구의 유사점03.23 유격과 참호전투03.23 봄 경치(화창한 날에)미래의 자화상과 전우들03.25 사람의 한계(특공대를 보고서)03.26 날씨변화와 군대적응03.27 밥 정량만 먹기와 주님의 개입03.28 땅바닥과 친해지다03.29 설사는 괴로워03.29 기록 사격..
청춘! 신고합니다 관람기 03년 4월 16일(수) 맑음 어제 사단 사령부 연병장에서 KBS ‘청춘! 신고합니다.’라는 프로그램을 녹화했다. 그것 때문에 저번 주에 덜덜 썰어가며 진달래를 심은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게 어디냐? 군 생활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니 전역 선물이려니 생각하고 냅다 받아야지. 사실 처음에 가지 말아야겠거니 했다. 사단까지 가는 게 번거롭기도 하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갑자기 마음이 바꾸기로 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걸 볼까’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밖에 나가선 큰 맘 먹지 않으면 절대 이런 대형 무대를 볼 수 없잖으니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개복을 입고서 60에 몸을 실었어. ..
괜한 걱정에 대해 03년 4월 14일(월) 오늘 MS 장대용, 유준희가 전역하기에 상남이와 내가 중대의 왕고가 되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저번처럼 2월초 군번 애들이 나갈 때와는 달리 별 부럽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아무래도 군 생활이 이제 12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이번 주엔 인터넷 교육을 받고 다음 주엔 말년휴가까지 있어 그 시간은 더 적기에 그런 거겠지. 그러다 복귀해봐야 하루 정도만 지나면 되기에 군 생활이 끝난 거나 진배없다 할 것이다. 저번에 쓴 ‘한숨 쉴 틈이 없는 빡빡한 군대일정’라는 글을 보니 겪어보지도 않고 그냥 작계 시행 훈련에, 자상합동훈련까지 내 군 생활은 전역하는 그 날까지 되게 빡셀거라 생각하며 모든 걱정을 혼자서 다 하고 있더라. 근데 막상 지금에 이르러보니까 그런 모든 걱..
사단작업에 투입되다 03.04.12(토) 구름 낌 D-14 글쎄 10일(목) 오전 사격을 끝내고 오후 사격을 준비하고 있는데, 명철이가 들어오더니, 오후에 사단에 다 들어가야 한다고 사격을 안 할 수도 있다지 뭔가. 자초지종도 모르고서 사격을 안 한다는 말에 쾌재를 불렀다. 근데 자초지종을 듣고 나선 하도 어이가 없어 뒤로 자빠지는 줄 알았어. 이유인 즉은, 다음 주 월요일에 사단사령부에서 촬영을 하게 되는데, 그것 때문에 연병장 외곽에 진달래를 심는다는 거다. 그래서 연대별로 책임량을 주었고 그건 곧 그 연대, 그걸 맡게 된 대대, 그걸 직접하게 되는 중대를 평가하는 지표가 되기 때문에 모든 일과를 취소하면서까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목요일엔 사격도 하지 않고 감자고지로 진달래를 채취..
『Tuesdays With Morrie』를 읽고 (죽는다는 건?) 03년 4월 10일(목) 구름낌 D-16 이번 주말에 갑자기 현일이가 책 하나를 주더니 읽으라는 것이었다. 바로 그 책이 오늘 또 한바탕 글잔치를 펼치게 할 장본인인 것이다. 요즘 전역할 때가 가까와선지 독서에 시들했었는데 이 책은 권해주자마자 아무 부담 없이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었다. 한 단락별로 짤막짤막한 글줄기가 읽기 편했고 심오한 주제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두서없이 해가며 책을 순식간에 읽어버린 것이다. 미치 앨범이 쓴 책으로, 대학 스승인 모리 슈워츠의 마지막 강의 내용을 써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 강의는 보통 강의와는 달리 전혀 필기 시험도 없고 오로지 구술시험만이 있으며 그 강의에 참여한 사람은 단 한명 미치 앨범 ..
종교의 본질Ⅱ 03년 4월 7일(월) 구름 낌 대대장이 바뀐 후로 우리 기드온 교회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있다. 첫째 인원이 눈에 띄게 불었다는 것. 예전엔 적게 나오면 40명 정도이고 많이 나와봐야 60명 정도였는데 이제 적어봐야 90명이고 많으면 120명 가량이 오니, 엄청난 장족의 발전이 아닌가! 이렇게 인원이 채워지기까진 대대장의 뒷입김이 엄청났다. ‘종교행사 별로 인원이 별로 안 왔던데 얘들 많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해’라고 지휘통제실에서 한마디 던지면, 이 말이 와전되고 와전되어 간부들은 금세 보일 수 있는 교회 안의 인원 경쟁을 통해 그나마 충성하고 있다는 얼토당토 않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과도한 인원 경쟁은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바로 어제 일이 그렇다. 일ㆍ이등병은 종교 여하를 불문..
견장을 결국 떼다 03년 4월 5일(토) 맑음 오늘 13시부로 견장을 떼었다. 얼마나 견장 떼기를 갈구하며 하루 하루를 살았던가~ 이제부터 진짜 말년이다. 벌써부터 어떻게 3주를 보내게 될지 기대가 된다. 더더욱이 운이 좋아 내가 갈 때까지 훈련이란 게 없다. 바로 전역을 한 다음 주에야 지상협동 훈련을 뛰고 사단 작계 시행 훈련을 뛰기 때문이다. 더더욱이 원래의 희망대로 내가 가는 주엔 군대에서 그나마 월이라 생각하는 정신교육을 하게 됐다. 비록 그때 말년 휴가를 가지만 어쨌든 이런저런 상황에 휩쓸리지 않아도 되니 기분이 절로 좋기만 하다. 정말 운이 좋고 이렇게 편히 생활하다가 나갈 수 있으니 그저 행복하다. 2주 동안 잘 지내보드라고~ 견장을 뗀 기쁨에 기드온 교회와 3중대 막사를 배경으로 한 컷...
이지선씨가 알려준 깨달음 03년 4월 4일(금) 전역 D-22 요즘 KBS ‘인간 극장’에 이지선씨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전에 목사님 설교 시간에 주바라기 이지선 씨 얘기를 어렴풋이 해줘 들은 적이 있기에 자연히 이 프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지선씨는 현재 나이 26살로, 이화여자대학교 출신이며 하나님을 절실히 믿는 기독교 신자인데다가 의모는 보통 이상의 참한 아가씨이다. 그 당시, 그러니까 사고가 나지 2년 전인 24살 때에 그만한 배경에 그만한 아가씨였기에 한 콧대 했고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 했었단다. 하지마 그런 그녀에게 불운의 재앙이 닥쳤다. 그녀의 오빠와 함께 차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앞에서 달려오던 음주운전하는 차와 정면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 사고로 오빠는 차에서 튕겨나가 불행..
흔들린 마음 다잡기 03년 3월 27일(목) 구름 마음이란 참으로 이상한 동물이다. 아무리 자기의 현실 기반 하에서 자기의 명확하게 할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마음이 동하거나, 뭔가에 이끌리게 되면 그것에 따라 자기 할 일도 제대로 못할 뿐더러, 여러 환상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난 최대한 되도록 늦게 견장을 떼고 싶다는 생각을 평소부터 많이 해왔지만(솔직히 견장 달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나쁠 것도 없을 뿐더러, 일직을 서지 않는 날에 푹 잘 수도 있고 일직부관 서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으니까) 동기들도 이미 저번 금요일에 다 견장을 떼었고 훈련 기간 중에 부소대장으로부터 빠른 시일 내에 견강을 떼어준다는 말을 들으니깐 그럴 바에야 오래 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드니깐...
사단통제 작계시행훈련 03년 3월 24일(월)~26일(수) 맑음 오늘부터 모레(26일, 수)까지 사단통제 작계시행훈련을 뛴다. 사단장이 바뀐 후로 어이 없이 생긴 훈련으로 12월부터 시작해서 한달에 꼭 한번씩은 뛰며 한 달에 꼭 30km 이상의 행군을 한다. 이번 훈련은 연대RCT 때를 방불케할 만큼 복귀행군도 장난이 아니었고, 거기다 2박 3일의 훈련이기에 텐트까지 친단다. 연대RCT 이후 영영 텐트를 안 칠 줄 알았는데ㅠㅠ 지금은 상황이 걸리기 30분 것이다. 지금까진 6시에 꼬박 상황이 걸렸기에 그 조바심에 기상하자마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번엔 7시에 걸린다고 하니 여유가 있어서 좋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훈련을 뛴다는 사실이 무지 짜증난다. 그것도 지금까지 했던 어떠한 작계시행훈련보다도 ..
한숨 쉴 틈이 없는 빡빡한 군대일정 03년 3월 20일(목) 드디어 그 길고도 지리하던 3월도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렇게 지나고 나면 꿈의 4월이 펼쳐지겠지. 솔직히 어제저녁 때 만해도 중대 분위기는 별로 시끌법적하진 않았다. 공용화기 집체 교육이란 일과를 진행 중이었기에, 다들 힘들었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4월에 특별히 정해진 훈련이 없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 저녁부터 괴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4월 21일(그러니까 바로 전역주간)부터 26일까지 지상합동훈련을 한다’라는 것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고 역시 여기 6XX이구나 한다. 그렇다면 14일에 올렸던 말년 휴가를 뒤로 연장해야 하겠지만, 갔다가 오면 바로 전역하넹. 휴가 갔다가 복귀하면 바로 전역 상담하고 그 다음 날 한숨 ..
기타를 배우다 03년 3월 16일(일) 비 오다가 밤엔 눈으로 바뀜 고등학교 시절 소망교회에서 찬양의 밤을 기획하면서 최초로 합창이란 그 정열에 직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대해온 그런 게 아닌, 회원들이 모여 웅장한 메아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거 말 그대로 나에게 온 충격이었다. 그런 충격 속에 옹기장이ㆍ주찬양의 천상의 화음을 들으며 감탄을 마지 않았고, 속으로 나도 저들과 같이 되어야 겠거니 하면서 그때 이후로 맹연습을 했다. 그 결과 지금은 노래를 들으며 삘(feel)에 따라 베이스 음을 부를 수 있을 뿐아니라, 악보를 보며 노래 속에서 베이스음을 부르는 게 가능해졌다. 장족의 발전이란 느낌이 들지만 지금은 이러한 내가 으레 당연히 느껴지니, 좀 배불렀다고나 할까? 이런 과정에 이르기까지 ..
대구지하철참사에 대해 03년 2월 20일(목) 화창 엊그제 그러니깐 2월 18일에 대구에서 지하철 방화 참사가 발생했다. 내용인 즉은 장애를 비관한 2급 지체 장애인이 물고 늘어지기 심보로 병에 챙겨간 휘발유를 지하철 객실에 뿌리고서 중앙로역의 도착하자마자 불을 붙인 것이다. 그러던 중 실수로 그 용의자 온 몸에 불이 붙어 역으로 하차한 것이다. 밖에 있던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붙은 불을 끄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객실에 피어오른 불꽃은 활활 타올라 객실 전체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때 상행선 쪽에서 중앙로역으로 진입하는 지하철이 있었으니, 그건 이 참사가 더 재앙이 될 증조였다. 그 차가 중앙로에 진입했는데도 전력 공급이 차단되므로 불구덩이를 벗어나지 못했고 문까지 차단되므로 모든 사람들이 문 앞에 뒤..
정임이와의 설렘 가득한 데이트 2003년 2월 4일(火) 복귀하기 전날, 짜증이 물밀듯이~ 죽겠다. 이런 뭐 같은 기분 늘 있어 왔지만 이번엔 다른 때보다 오히려 더 심했다. 얼마 남지 않음을 알지만 군의 현실을 너무 잘 알기에 돌아가는 건 꼭 지옥길을 제 발로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번 휴가는 다른 정기휴가와는 다른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마지막 날에 홀로 방황하다 들어간 여느 휴가와는 달리 오늘은 만날 사람이 있다는 거. 바로 정임이다. 내가 군에 가기 전에 좋아했던 아이. 하지만 지금은 정임이가 더 나에게 열심이다. 편지도 자주 보내주고 휴가 나왔다고 하니깐 만날 기회를 혼자서 제공해주기도 하고 먼저 만나자고 말하는 아이니깐. 이번에 휴가 나와서도 전화를 했더니, “내일보자!”라고 당당하게..
의복이와 영웅을 보다 2003년 1월 30일(木) 의복이도 나보다 한 주 정도 늦게 휴가를 나온 터라 오늘 만났다. 저번에 하도 재밌게 놀아서 이번에도 그 그리움에 만났다. 5시에 만나 곧바로 시내까지 걸어가서 뭐 볼까 하다가 ‘영웅’을 보기로 했다. ‘영웅’을 보고 나서, 정말 보길 잘했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영웅은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칭호일 것이다. 가장 멋진 언사 ‘황제(皇帝) : 여러 소국으로 나눠져 혼란스러울 바엔 한 명이 통일하여 안정됨이 낫다’라는 말을 쓰고서 죽일 수 있는 순간에도 진시황을 죽이지 않은 양조위나 이연걸, 결국은 자기의 희생까지 각오하면서 그를 도왔다. 영웅이란 그런 것이다. 자기의 의견이 틀렸음을 아는 순간, 자기를 바꿀 수도 있어야 하며, 대의를 위해선 사사로움을 버릴..
행군과 도보의 차이 03년 1월 19일(일) 맑음 지난 17일 저녁 7시에 시작한 행군이 18일 새벽 4시 30분이 되어서야 끝을 맺고 말았다. ‘작계시행훈련’과 ‘매달 30km 행군’이라는 사단장 지시 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원래 훈련이 없는 달임에도 우린 어쩔 수 없이 훈련을 뛰게 된 것이다. 아침부터 시작된 눈은 점심이 되어선 아예 함박눈으로 변해서 펄펄 내리고 있었다. 원래 군에서의 눈이라 하면 치를 떨며 짜증이 나야 맞는데 이번 눈은 왠지 나를 기쁘게 있다. 그 이유인 즉은 폭설로 인해 훈련이 중단될 수도 있고 30km 행군이 취소될 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훈련이 급해도 실질적으로 중요하 건 제설작업이었기에 나는 그걸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런 불행으로 조기철수 행군을 하게 되었다. ..
군에 대한 사색과 고찰 03년 1월 11일(토) 맑음 군에서 생활한 지 어느덧 23개월째다. 26개월의 군 생활 중 겨우 3개월 밖에 남겨 놓지 않은 이 시기에 이르렀다. 이쯤 군 생활을 하고 보니, 군대란 어떤 곳인지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그건 머리로 늘 생각하여 받아들이게 된 관념이 아니라, 몸으로 겪으면서 몸소 체득하게 된 실제인 것이다. 군에 대한 특징은 여러 개 있겠지만 난 크게 두가지를 논의하고 싶다. 이 두 가지로 ‘토요 난상토론(土曜 爛商討論)’을 펼쳐보도록 하자. 첫째, 결과성이다. 군에선 여러 검열과 사열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통해 한 부대를 평가하게 되는 거고, 얼마나 상급부대의 지침에 잘 순응 하는가를 판단하는 거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한 가지가 있..
융통성 있는 삶에 대하여 03년 1월 4일(토) 눈 온 후 한파 지금까지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살아왔다. 내 성격 탓에 그랬던 거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것은 선함(착한사람 컴플렉스)이란 가치에 눌려 살아온 나의 무능함 때문이다. 과연 착하다 또는 선하다 하는 게 뭔지를 생각해본다. 예전부터 착하다는 건, 남에게 좋은 모습으로 남는 것, 그렇기에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는 것, 덩달아 싫은 행동을 하나도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주 유아적인 방식의 개념이지만 그걸 착함의 본질인 양 개념화한 체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그런 개념을 늘 머릿속에 주입하고 실천해왔기에 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좀 어이없는 처사를 당하더라도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하나 손해봐서 ..
격동의 2002년 정리 03년 1월 1일(수) 매우 맑음 2003년을 분대장으로 시작한다. 입대할 때만 해도 2003년이 올까 하는 그런 답답한 마음도 있었고 고참들한테 “내후년 제댑니다”라고 말할 때의 그 무너지는 암울함을 느꼈었는데, 어느덧 ‘올해!’라고 벅찬 감격으로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오고야 말았다. 행복한가? 정말 행복하다! 군에서 제대로 보낸 02년이 이렇게 갔다. 솔직히 아쉬움 없는 한 해였지만 시간이 이렇게 흘렸다는 게 무척이나 아쉽기까지 하다. 2002년은 정말이지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1월엔 있었던 사진기와 수하문제 인해 소대의 미운 오리 새끼로 찍혀 최악의 군 생활을 경험하며 지냈다. 2월엔 철수 준비로 인해 소대 분위기가 너무나 어수선 했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3월엔 철수를..
분대장 잡던 날이 다짐 02년 12월 30일(월) 매우 밝음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21일로 계획되어 있던 견장수여식이 연기된 이후, 아무 기약도 없었는데, 결국은 오늘 하고야 말았다. 이렇게라도 잡게 되니 포부가 대단하다. 혹, 과대가 되었을 때처럼 말이다. 정말 잘할 자신도 있고, 여느 분대에 안 꿀리는 분대를 만들 자신도 있고 이등병 못지 않게 정말 빡시게 군 생활할 자신도 있다. 물론 이런 자신감은 이제 막 시작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늘 처음처럼’이란 말만 떠올릴 수만 있다면 그리 문제될 것도 없을 것 같다. 혹, 아이들이 “병장님은 성격이 몰려 터져서 문제입니다”라고 말한다. 내 스스로 인정하는 바이기에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도,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도 없을 것이..
지겹도록 눈과 함께한 크리스마스 02.12.23(월)~25(수) 폭설 후 흐림 안 올 것만 같던 2002년의 크리스마스, 솔직히 하루하루가 힘들었기에 기다릴 겨를도 없었지만, 8일에 교회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크리스마스를 느끼던 터였다. 과연 ‘크리스마스는 뭐지?’라고 묻는다면, 단순히 아기 예수 나신 날이라 대답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회적 통념상 축제화되어 있고 우리의 의식 속에서도 축제와 즐김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대답의 전부라 할 것이다. 아무리 기독교인이라 해도 그렇게 은연 중에 의식은 이 시기에 우리를 들뜨게 만들고 기다리게 한 요인이겠지. 그리고 더더욱이 이번 크리스마스를 지내야만 집에 가는 거니깐 더욱 의미가 있는 거겠지. 그렇지만 이번 크리스마스도 우리에게 실망을 ..
두 번의 일요일 02년 12월 8일(일) 15일(일) 폭설 / 맑고 따스함 어제부터 날씨가 흐려지고 추워지더니 오늘 하루종일 많은 눈이 왔다. 하지만 난 성탄 장식을 교회에서 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나 보다. 15(일) 주일임에도 화요일에 있을 사열 때문에 하루종일 총검술 및 집총 16개 동작을 했다. 연무 17개 동작을 저녁 늦게까지 연습했다. 죽는 줄 알았다. 12월 8일 성탄장식을 마치고 나왔더니 눈이 내린다. 군종들의 유쾌한 놀이 인용 목차 사진
감기를 앓고 나서 깨달은 것 02년 12월 4일(수) 따뜻함 집중 정신 교육 기간이다. 월 때리는 시간이기에 아무 부담 없이 맞이 했던 월요일에 목이 컬컬해짐을 느꼈다. 그게 감기 기운이었다. 그래서 어젠 더 심해질 것을 대비해서 의무대에 가서 약을 받아왔다. 그렇게 먹었더니 괜찮아지는 듯해서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몸은 추위를 느끼고 있었고 온몸은 불덩이처럼 뜨끈뜨끈하기만 했다. 작년 5월 말에 그랬듯 편도선염과 같은 증상이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잠 한숨 제대로 못 잤다. 수요일엔 입맛이 없어 빵 하나도 먹지 못했고 바로 의무대로 달려갔더니, 글쎄 체온이 39.7도나 되더라. 그래서 군의관님이 링거를 맞으라는 것이었다. 쾌재를 외치며 바로 의무대에 누웠다. 그래서 링거를 맞으며 가픈 숨을 쉬며 오후 ..
사단장 교체가 부른 악영향 02년 12월 01일(일) 몹시 추움 사단장이 바뀐 지 어언 한 달 정도가 된 것 같다. 저번 포천 사건이 결국 6사단 간부의 소행임이 밝혀짐과 동시에 사단장 교체로 마무리 됐다. 그렇게 바뀐 사단장은 군기강 해이를 그 이유로 들었고 그건 곧 우리들을 옭아매는 여러 지시 강조사항으로 이어졌다. 첫째, 점호의 규정 준수이다. 형식적 점호로 편했던 우리들에게 규정에 의거한 점호(알통구보, 스트레칭, 명상)는 짜증 그 자체였다. 둘째, 더욱 엽기적인 것은 제식 교육 강조로 지금 내 운명에 없었던 도수제식, 총검제식 등을 신교대처럼 하고 있다. 과연 언제까지 할까나? 셋째, 더더욱이 한 달에 한번씩 30km 행군을 하라며 군기불량으로 걸릴 경우, 부대는 완전 군장 50km 행군을 실시..
3일간의 포대 경계지원근무 02년 11월 27일(수) 눈 내리고 추움 25일(월)에서 오늘까지 27FA HQ α포대에 경계 지원을 나갔다. 경계 지원 자체는 환영할 만하지만 1분대만 따로 떨어져 포반과 함께 가기에 덩달아 중대장과 같이 가야 한다는 게 짜증이 난달까. 난 재현이와 함께 B2조로 위병소에선 사수를 서야 했고 탄약고에선 가만히 있어도 되었기에 위병소 근무는 짜증 그 자체였다. 역시 경험이 적다 보니 빵구도 참 많이 내서 중대장에게 갈굼 좀 당했다. B2조는 새벽에 말대기였기에 빛이 났다. 6시간씩 그렇게 꼬박꼬박 자다 보니 나중에는 더 이상 잠을 자지 못하고 깨어나는 사태까지 날 정도였다. 나름대로 심신을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근데 2박 3일의 RCT인 것이 아쉬웠다고나 할까. 한 일..
첫 눈에 그린 꿈 02년 11월 14일(목) 눈 내리고 추움 오늘 드디어 철원 땅에 첫눈이 왔다. 첫눈이 왔다는 게 밖이었다면 대단한 일인 양 기술되었을 것이고 서로 축하하기에 여념이 없었을 테지만, 여긴 군대이기에 그렇게 원하지 않은 일이 터진 것에 대해 담담한 심정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 내리는 듯, 말듯 눈이 내렸었는데 이번엔 대지를 살짝 덮을 정도의 눈이 쌓였기에 이걸 첫 눈으로 보는 것이다. 새벽에 눈이 왔기에 근무자들이 주둔지 주변만 눈을 치워놨다. 그래서 우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알몸구보도 하지 않고 바로 도피안사로 싸리비를 들고 이동했다. 그렇게 도피안사부터 연대장 관사를 거쳐 수색 중대까지 눈을 치우면 되었다. 눈이 별도 오지 않았기에 대충 쓸어도 깨끗하게 보였다. 그렇게 눈을 ..
‘내 탓이오’와 ‘참기’의 문제점 02년 11월 10일(일) 매우 흐림 11월 1일, CO ATT를 뛰면서 참고 참았던 일이 드디어 터지고야 말았다. 바로 꼬바에게 개긴 일이다. 그건 예전 이등병 시기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감정이 그때 드디어 터진 것이다.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별로 좋은 감정이 아닌데, 어쨌든 그 일 때문에 느낀 게 있어 여기에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어떤 일이든 내 탓으로 돌린다. 그건 비단 나 혼자만의 일에서 뿐 아니다. 단체의 일에서도 그러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 탓이라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되게 괜찮은 방법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적절히만 할 수 있다면, 아주 괜찮은 일일 테지만 그걸 벗어났기에 심각한 문제라 하는 거다. 예를 들어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그 운동 도중..
대대ATT 중 일어난 일 02년 11월 6일(수) 비가 내리는 스산한 겨울 날씨 대종(대대 종합전술훈련)이 오늘부터 시작이다. 6시 30분에 가상하자마자 일제히 상황이 발령되었고 우린 정신 없이 준비태세를 하였다. 그렇게 여느 때와 똑같이 소산지를 점령했지만, 이상하게도 부대 이동을 하지 않더라. 지뢰도 치지 않고 이동도 하지 않았기에 군장을 지키는 인원 2명 외에는 내무실에 앉아 대기해야 했다. 내가 지금까지 훈련이란 이름으로 받았던 어떤 훈련 중, 이번 훈련은 월 중의 월이었다. 부대 이동도 한 시가 되어서야 하게 되었으며 월요일과 화요일은 탄피회수작전 때문에, 수요일과 목요일은 방어만 하면 끝난다는 게 생각지도 못한 행복이었는데 거기다 실질적으로 CⅢ를 넘지도 않고, 바로 대위리에서 지연전을 잠시 ..
중대ATT의 시작일에 02년 10월 31일(목) 가을이 오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겨울이 오고야 말았다. 이 겨울의 날카로운 칼바람을 뚫고서 훈련을 하게 되었다. 겨울이 되면 훈련이라곤 혹한기 밖에 없다고 들었기에 별 걱정을 안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 일인가? 10월 31일(목)~11월 2일(토) 중대 ATT, 그리고 11월 4일부터 11월 7일까지 대대ATT가 계획되어 있지 않은가ㅠㅠ 정말 싫었다. 군장을 메고 이동할 땐 더울 것이고 가만히 있을 땐 추울 것인데, 그 온도차에 의한 짜증을 어떻게 감당할까? 뭐 이런 걱정이 맴돌았지. 오늘 새벽 6시에 기상하자마자 상황이 걸렸다. 잠이 덜 깬 우리는 정신 없이 군장을 꾸리고 준비태세를 했다. 6월 25일에 6ㆍ25 상기 준비태세를 가상과 함께 한 이후, 처음..
좋은 선임이 된다는 거 02년 10월 25일(금) 서늘하지만 맑음 사병 최고의 계급인 병장을 단 지도 어느덧 25일이 지났다. 이제 6일 후면 물병장을 떼고 진짜 병장으로 거듭난다. 오늘 새벽 2시 30분 근무였는데, 글쎄 포반장에게 근무자 신고할 때 “상병 이종환 외 2명 근무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역시 물병장이라 나도 아직은 내 계급에 적용이 덜 된 모양이다. 선임의 위치에 놓이게 된 지는 벌써 6개월 정도가 흘렀다. 중간 밑 선에서부터 중간을 달고, 그러다 중간 선임이 된 후, 중간을 놓고 지금에 이른 거다. 분대장을 잡기 전까진 말 그대로 말년이다. 선임이 되고 보니, 예전의 선임들과 다를 게 없다. 선임의 입장이 이해가 되어서라기보다 솔직히 조금이라도 군기를 잡기 위해 악역을 자..
태권도에 살고 태권도에 죽고 10월 25일(금) 요새 태권도 절정의 시간이다. 유단자가 적은 소대는 경고까지 먹는다고 하니까 그것 때문에 소대장들의 신경전이 하늘을 찌른다. 오늘은 사단 심사가 있었다. 난 이미 대대심사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쉽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도 중대장이 떨어진 인원들도 다 나와서 볼 수 있도록 하라고 노발대발한 덕에 나도 아침부터 나가 연습을 하게 되었다. 활동화까지 벗고 맹연습을 펼쳤는데, 아직도 실력이 미흡한 터라 앞차기, 옆차기, 뒷차기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끝까지 했다. 오후엔 김진민 중사(5소대 소대장, 신교)가 와서 승급 심사를 보게 되었는데 대대 심사에서 떨어진 우리는 옆에서 정심사원들이 심사를 마칠 때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몸을..
태권도 단증 따기 광풍이 불다 02년 10월 24일(목) 여전한 영하권 날씨에 엄청 춥다 나중이 되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의 사건이겠지만, 지금 현 상황에서 그 어떤 훈련보다도 더 긴박감을 주고 짜증을 유발케 하는 사건이 요즘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바로 태권도가 바로 그것인데, 이번에 적은 사람이 단증을 딴다면 바로 경고장을 먹일 것이고 그건 우리 소대 안에 태풍이 불게 될 것이란 걸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돌아보며, 긴장하고 있는 것이며 태권도, 태권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 않은가. 나도 이번 단증에 참여했으나 여지없이 대대 심사관한테 떨어지고 말았다. 별로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정말 맘만 먹고 한다면 될 것도 같은데 왜 이리 맘처럼 안 될까. 과연 사단 심사를..
성큼 다가온 철원의 겨울 02년 10월 22일(화) 올해 처음으로 영하로 떨어짐 드디어 찾아오는가 철원의 겨울이여! 그 매섭고 날카로운 칼바람의 전운을 온몸 가득 맞서며 이겨내야 하는 겨울이 어느덧 성큼 다가왔다. 점오를 받으러 나갔을 때 쌩하니 불어오는 바람은 지금까지 느껴오는 것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들었다. 이번이 철원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겨울이란 사실이 좀 행복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왠지 걱정스럽고 암담한 것도 사실이다. 여긴 왜 가을이 오는가 했더니, 그걸 인지하는 순간에 바로 겨울이 시작되는 거다. 나 따뜻한 남쪽으로 돌아갈래! 10월 10일 1중대 대항군 출발 전 인용 목차 사진
진규 면회를 가다 10월 3일(목) 3시에 날카로운 기계음을 듣고서 일어났다. 일어나기 너무 싫어서 잠시 뒤척였다. 하지만 어느덧 일어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렇게 새벽바람을 가르며 진규네 집까지 뛰어갔다. 오늘 진규 면회를 간다기에 나까지 끼여서 가는 건데, 걸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뛰어가고 있었다. 30분 만에 주파한 그 거리~ 새벽바람 너무 상쾌해서 좋았다. 새벽에 그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유롭고 좋은가? 그렇게 4시 30분에 진규네 집에 도착해서 들어갔으나 좀 늦게 간다며 쉬라고 했다. 그래서 진규방에서 컴퓨터 좀 하다가 6시 정도 되어서 외삼촌, 엄니, 압지, 할머니 이렇게 다섯하고 같이 머나먼 여정의 길에 올랐다. 잠이 모자랐던 차에 좀 불편했지만 편히 갈 수 있..
문을 부순 사연 02년 9월 24일(화) 요샌 아침저녁으로 스산함이 느껴진다. 낮에 엄청 높은 새파란 하늘과 따스하게 내리쬐는 태양이 있어 가만히 있어도 가을임이 느껴진다. 그래서 기분은 무지 좋아진다. 더더욱이 내일 모레면 상병휴가를 간다는 것 때문에 더욱 그런 거겠지. 만약 휴가 기분 없이 그런 더 없는 가을 정취를 대했다면 기분은 씁쓸했을 것이다. 밖에서 이런 날씨를 즐기며 흥겨운 정취에 취해볼 수 있지만, 여기선 취하긴커녕 그런 정취를 원망하며 다른 작업에 몰두해야하는 나 자신의 현실을 짜증스러워 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요즘은 정말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런 날씨 가운데 있다는 게 행복하기까지 하다. 이번 주는 너무 빡시다. 공용화기 집체 교육 기간임에도 다음 주..
진을 빼놓을 대로 빼놓던 유격을 마치다 02년 9월 19일(목) 목요일 오전에는 화생방이 있었다. 솔직히 끔찍했다. 저번 주 분반에서의 그 악몽이 어렴풋이 떠올랐기에 정말이지 너무 하기 싫었다. 하지만 교육 자체는 월이었다. 방독면 쓰기, KD-1 제독 방법, 보호의 작용, 가스실 이렇게 순서로 진행했는데 PT도 하지 않고 이 과정만을 하면 되니 지난 삼일 동안의 시간에 비하면 수월했다. 하지만 공포는 가스실에서 였다. 방독면을 쓰고 들어가 정화통만 바꾸고 나온다는 걸 익히 들었기에 좀 안심하고 있던 터에 조교에게 소리를 내지 않은 게 걸려서 맨 몸으로 가스실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동주하고 3P장을 따라 들어갔는데 가스실에 하얀 연기가 보이지 않아서 그나마 안심하고 있었는데 구석에 보니 C/S 캡슐이 ..
도무지 알 수 없는 조교의 감정 02년 9월 17일(화) 새벽에 지긋지긋한 무기고 근무를 서고서 침낭 안에 파묻혀 행복하게 잠에 들었다. 그런 은밀한 행복감에 날카로운 “기상!”이란 비명소리를 들으며 기상하고 있으니 비극적인 현실을 새삼 되새기게 되더라. 일어나기 정말 싫었지만, 이러한 현실을 맞이하기 싫었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걸 어쩌랴? 아침 점오와 식사를 마치고서 또 다시 연병장에 모였다. 어제와 똑같이 교관의 지휘 아래 맹렬히 PT를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게 정말 힘들게 지탱하며 몸을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부터 코스를 이동하며 코스를 탄다. 하지만 코스만을 탈 리는 없다. 코스로 이동하면 5분간 휴식을 하도록 한 다음에 코스 설명을 듣고 몸풀기 PT에 들..
첫날 유격 체험기 02년 9월 16일(월) 원래 15일(日) 점심에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바뀌어서 16일(月) 7시에 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다. 예정대로 갔다면 분반 복귀 후 조금의 휴식도 없이 바로 가는 강행군을 했을 터이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렇게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출발 준비를 했다. 출발 전 심정은 좀 착잡하기 했지만 그래도 3박 4일이라는 짧은 시간만 유격을 뛴다는 것과 복귀 행군이 없기에 좀 가벼운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군 생활 가운데 유적을 한 번 정도는 뛰어봐야지.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차라리 즐기리라!’라고 맘을 먹고 정신없이 유격 채비를 갖춘 다음에 바로 출발하게 되었다. 바로 독서당리를 거쳐서 유격장으로 향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뻘짓을 좋아하는 ..
낯설지만 설레는 자대의 분위기 02년 9월 15일(일) 구름 낌 분반 퇴소식을 어제 마치고 자대에 왔다. 8월 24일(토)부터 시작된 분대장 교육은 3주간의 시간을 빼곡하게 채우고 9월 14일(토)에 끝난 것이다. 올 때 황당하게도 K-2 가스마개가 없어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잘 찾았고 전투화도 어떻게든 잘 처리되어 지금은 걱정이 별로 없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자대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고 정말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풀린 군번에 상병 말호봉이 되고 보니 밑의 아이들이 많아져 엄청 편하기도 하고, 교회에 가선 오래도록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다 해도 3주란 시간은 역시 짧은 시간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여기에 와서 무엇을 하려니깐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를 모를 정도로 감을 잃어버렸다. ..
분반에서 느낀 나의 한계 02년 9월 12일(목) 비옴 드디어 분반 끝을 향해 다가간다. 오늘은 짜증 나서 죽을 뻔했다. 오전은 특별한 일정이 없이 정비시간이기에 삭발할 시간과 보고서를 작성할 시간을 준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시험을 보질 않나 퇴소식 예행 연습을 하지 않나. 정말 화가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뭘 시켰으면 그걸 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니다. 분반에 와서 오랜만에 머리를 써가며 공부를 했더니 사회에 있을 때의 느낌이 들었다. 여기 올 때, 그리고 일주차 때 일등을 해야겠다고 목표를 세우긴 했는데 지금에 이르러선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했다. 대학교에 갔을 때도 이와 비슷했다. 1등을 목표로 갔지만 1등은커녕 3~4등에 그칠 뿐이었으..
분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다 02년 9월 10일(화) 따스함 분반에 오면 소대의 빡센 일정 한 두개 정도는 열외되도록 있는 게 기정 사실이다. 3주간의 교육 일정이다 보니 그 기간 중에 훈련이든 뭐든 끼어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박상호 병장 때는 그 힘겹던 전투지휘검열 준비기간을 다 하지 않았으며 은석이 때는 대대ATT와 그 준비기간을 넘길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또한 그런 희망에 부풀어 있게 되었다. 원랜 우리 분반 기간동안 유격이 있었고 중대 ATT도 있었으니까 그걸 알게 됐을 때 엄청 좋아하기도 했다. 근데 그 모든 게 다 수포로 돌아갔다. 유격이 한 주 뒤로 밀리므로 우리가 분반에서 복귀하면 바로 뛰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더더욱이 어제 최악의 소식을 들었는데 일요일부터 유격을 뛰어야..
독도법 교육과 싸늘한 날씨 02년 9월 5일(목) 서늘함 평이한 날이다. 오늘은 독도법(讀圖法) 실습이 있던 날이다. 하지만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하늘은 아침부터 매우 흐렸는데 비가 오지 않아서 오후엔 실습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열심히 산에 올라 보물 찾기하듯 찾고 있는데 온몸을 타고 쌀쌀함이 감도는 것이다. 그렇게 네 개를 다 찾고 부대에 복귀해서 샤위를 했는데, 그때 다른 때와는 다르게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는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평가가 있다기에 밖에 잠시 나왔더니, 글쎄 부는 바람도 장난이 아니라서 그 추위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9월로 달이 바뀐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이 모양이 걸 보면, 여름에서 가을로의 계절 변화는 이렇게 뚜렷한 변화를 안겨주나 보다. ‘앞으로 이렇듯 온 몸..
교수법 실기를 죽 쓰다 02년 9월 2일(월) 맑음 요즘 들어 이렇게 기분이 최악인 상황은 처음이다. 오늘 운명과도 같은 공포를 느끼며 ‘교수법’ 실기를 보게 되었다. 난 장차 선생님이 될 꿈을 가지고 있기에 이번 과목은 내 미래를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난 어제부터 만전을 다해서 준비를 했다. 그렇게 실전을 기다리는 시간은 흡사 수능을 기다리는 마음과 같았기 때문에 짜증이 밀려왔다. 그 시간에도 우린 목소리 높여 가며 연습을 했던 것이다. 오전엔 기다리다 못 보고 오후에 보게 되었는데 먼저 들어간 병환이가 나올 때 물어보니, ‘졸고 있어’라고 하는 거였다. 내가 들어갔을 때에도 조교는 졸고 있었다. 그래서 난 맘 편히 내가 연습한 그대로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고 나서 흡족한 표정으로 교..
분대장교육대에서 맞이한 태풍 루사 02년 8월 31일(토)~9월 1일(일) 태풍의 간접 영향권 ‘루사’라는 15호 대풍이 한반도 전역을 휩쓸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부터 비가 서서히 내리며 바람이 마구 불어대기 시작했다. 그냥 조금씩 올 거라 생각해서 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오후가 되어서 뉴스를 보게 되니 이미 전역이 태풍의 피해권에 있으며, 앞으로 많은 피해가 있을 거란다. 많이 온 곳은 이미 350mm의 강우량을 넘어선 데도 있었다. 저녁이 되니 이곳도 태풍의 간접 영향권에 들어서인지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산들이 엄청나게 요동을 치고 있다. 벼들이 흔들흔들 거리듯 나무들이 그렇게 흔들흔들 거리듯 분다. 바람이 상상을 뛰어넘어 불고 있다. 과연 오늘 밤 엄청난 짜증의 역사는 이뤄질 것인가?..
위문 찬양 예배 참석기 02년 8월 21일(수) 구름 많음 페바에서의 첫 위문 찬양 예배가 있는 날이며, 내 자대 생활 가운데 첫 찬양 예배에 참석하게 되는 날이다. 원래 작년 GOP에서도 딱 한번의 위문 예배가 있었지만, 그날 우리 소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까닭에 가지 못한 비운의 사건이 있었다. 아무튼 오늘은 일과를 하지 않고 각 중대 군종병들은 BN장 지시로 교회로 모여야 했다. 그래서 가벼운 맘가짐으로 교회에 갔지만 절대 만만한 준비 작업은 아니었다. ‘신광 파이팅’, ‘신광 교회 위문 예배’를 잘라 놓는 것을 비롯해서 좌석 재배치, 예배당 대청소 그 모든 것을 두서없이 해야만 했다. 그러던 찰나 목사님의 정신 교육까지 교회에서 있었기에 잠시 준비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컨셉은 ..
폐타이어 수송계획 02년 8월 14일(수) 어둠 ‘폐타이어 수송 계획’에 의해 나와 8명은 착출되어 아침 일찍부터 모든 일과에서 열외되었고 60을 올라타게 되었다. 오늘은 의정부까지 간단다. 왠지 두근두근 가슴이 뛴다. 10대의 60이 이어지는 긴 행렬은 장관 중 장관이었고, 10개월 만에 들어서는 철원 외 지방들은 나의 가슴을 심하게 방망이질하고 있었다. 충격이었고 대단히 벅찬 감격의 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때도 전주까지만 갈 수 있길 바라게 되더라ㅠㅠ. 쾌쾌한 매연을 코로 감지하며 들어선 곳은 인간 사는 맛이 물씬 넘실거리는 서울로 바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비록 팍팍한 삶의 여정이 자리하고 있는 그곳일지라도 난 그곳을 너무나 동경하고 사랑한다.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의..
중대단결의 날 행사를 하다 02년 8월 12일(월) 맑음 중대단결의 날 행사가 있던 날인데, 딴 중대는 저번 주에 모두 끝냈지만 우린 전차대대 합동 훈련이 있어서 일주일이 지난 오늘에서야 하게 되었다(비로 인해 훈련이 연기 되었으니까 행복하다고나 할까). 축구ㆍ족구ㆍ계주에서 우리 소대는 모두 다 참패하고야 말았다. 전후반 교체 투입만 아니었으면 이겼을 수도 있을 텐데,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체육대회가 모두 끝나고 회식을 하게 되었다. 어제 재현이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가져온 과자들을 시켜놓은 족발과 함께 먹었다. 오랜만에 한 회식이었고 처음으로 한 캠프파이어였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아무래도 양만 있고 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모든 걸 치워야 하는 건 우리 몫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
부분대장이 되며 변한 것 두 가지 02년 8월 7일(수) 연일 비 내림 드디어 말복이 끼어 있는 8월이 다가왔다. 그렇게 무더웠지만 그래도 GOP가 아닌 FEBA에 있는 게 그나마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짜증의 계절이 벌써 끝자락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끝이라는 건 매우 기쁜 일이며 기대되는 일임에 틀림 없지만 또 다른 시작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에 여전히 답답하기도 한다. 그렇게 보낸 올해 8월은 나에게 있어 특별한 일이 많이 있다. 첫째 8월 5일(월), 박형국 병장이 분대장이 되므로 당연히 난 부분대장을 달게 되었고 1년이 넘도록 매고 다녀 정이 들대로 들었던 K-3를 떼었다. K-2를 잡은 건 좋은 일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K-3를 보고 있으면 여전히 내 것으로만 느껴진다. 얻은 게 있으면 잃는 것..
ATT의 나날과 군에서 배운 것 02년 7월 18일(목)~19일(금) 덥다가 소나기 내림 드디어 하루의 휴식 끝에 오늘 또 훈련이다. 오늘부터 공격 훈련이 시작된다. 원랜 4시간 거리가 되는 동막리까지 단독군장으로 걸어가기도 했으나 갑자기 예정이 바뀌는 바람에 완전군장을 메고 가야 했다. 바뀐 일정에 절로 짜증이 난 데다가 물집까지 생기니 아무래도 버거울 수밖에 없는 행군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걸어 동막리에 도착해선 최초로 텐트를 치고서 전투 휴식에 들어갔다. 그렇게 푹 쉬고서 야간 공격을 가려던 찰나에 우리 소대가 우리 중대 대항군 임무를 수행하는 바람에 방어를 하게 되었다. 진지에 투입해서 모기와의 사투를 벌이며 잠을 청했지만 역시 밖에서 잠을 자야 하는 건 고초였다. 역시 안에서 자는 게 제일 좋은..
대대 ATT의 본격적인 시작 02년 7월 15일(월)~16일(화) 오전 8시에 상황이 걸려 12시까지 국지도발을 했다. 그리고 1시부터 준비(회학전 하) 태세를 실시하여 저번 금요일에 했던 것처럼 지뢰를 설치했다. 그 후에 대위리로 이동하여 후방 통제소 방벽에서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방어를 했다. 재현이와 난 추진 매복조가 되어 26M 다리 밑에서 매복을 서며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철수 명령과 함께 돌아왔다. 그 후엔 1s원들이 동송고지에 올라갔는데 하필 지연전을 한단다. 그래서 잠이 옴에도 불구하고 걷고 또 걸어 77포대까지 갔고 CⅢ 넘으려던 찰나, 상황이 종료되어 독서당으로 해서 대대에 복귀했다. 더럽게 짜증나고 힘들었다. 인용 목차 사진
대대 ATT 전 예행연습 02년 7월 12일(금) 오전 준비 태세가 있었다. 정신 없이 준비태세를 하고 2중대 축구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선 지뢰를 설치하여 차단 진지를 형성했다. 오후엔 완전 군장을 메고서 대위리까지 가서 후방 통제소 방벽에 투입했다. 투입한 지 20분이 지나 철수를 시작하여 걷고 또 걸어 대대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정신없는 일정을 소화해야 했고 쉼 없이 이동해야했기에 정말 힘이 들었다. 인용 목차 사진
더위를 벗삼아 02년 7월 9일(화) 오늘 지뢰 설치 훈련이 있기에 난 경계를 서면서 월을 때렸지만 예전과 같은 완전한 월은 아니었다. 가만히 그렇게 땅바닥을 벗삼아 엎드려 있어도 맹렬히 내리쬐는 햇볕에 즉사로 노출된 나의 몸둥이엔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땀들이 쏟아내렸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그렇게 미치도록 짜증 나는 날에 우린 자연스럽게 그러한 짜증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으니 정말로 너무도 대단한 지경이다. 더위가 정말 싫지만 이번 여름만은 이렇듯 더위를 벗삼아 함께 어우러지며 살아가고 있다. 더위가 한껏 내린 철원들판에서 어느덧 두 번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인용 목차 사진
현일씨의 대대군종으로서의 고민을 듣다 02년 7월 8일(월) 오늘도 어김 없이 차방문이 있는 날이기에 근무가 끝나자마자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서 교회로 향했다. 현일씨는 군종방에 있었다. 퍼붓는 빗줄기를 보며 좀 가늘어지면 그때 가자고 입을 맞추며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 와중에 현일씬 이제 교회에 일과 끝나고 오게 생겼다는 푸념으로 우리들의 얘기는 시작되었다. 군종이 되고부터 달라진 건 뭘까? 대대 군종과 중대 군종의 차이는 뭘까? 군종이 우선 되기 전보다 기도도 줄었고 하나님께 대한 갈급함도 줄었다. 멀리 있을 땐 오히려 더욱 열정적으로 그걸 갈망하게 되는데, 막상 가까이 있으면 그 애틋함이 떨어지기에, 언제라도 보고 싶으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 감정들이 무뎌져 가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렇게 ..
아쉽게 4위로 남은 터키전 02년 6월 29일(토) 저녁 8시에 대구에서 터키와의 3ㆍ4위전이 있다. 이 경기가 있기 전에 인터뷰에서 충분히 즐기며 볼 수 있는 경기를 만든다고 해서 이 경기에 대해 편안한 마음으로 TV 앞에 모였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전반 26초만에 수비 불안으로 한 골을 먹었으며 8분엔 이을용이 프리킥으로 한 골을 넣음으로 따라 잡긴 했었다. 그런데 전반전 내내 2골을 더 먹으므로 구렁덩이에 빠졌다. 수비 불안이 원인이었다. 몇 년전 일본에게 5:0으로 졌던 때가 절로 생각날 정도였다. 과연 이렇게 무너지는가? 무너졌다. 수십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볼운이 없었다. 이로써 대망의 월드컵 정말로 끝났다. 아깝다 3위가 눈앞이었는데 이렇게 물러서야 하니 말이다. 이번 월드컵은 눈..
2박 3일의 구국기도회 참가기 02년 6월 27일(목)~29일(토) 맑음 2박 3일간의 625 회상 구국 기도회가 오산리 최자실 금식 기도원에서 있었다. 예전부터 현일씨가 중대 군종들까지 참여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난 회의적인 생각만을 가지고 기도도 하지 않은 채, 자포자기(自暴自棄)하고 있었다. 더더욱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 기간은 총기사열도 있었고 병공통 검열과 체력 측정도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빠지지 못할 거라는 게 일반론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도록 허락하셨다. 저번 주 토요일에 탈영 사건을 비롯해 구타자를 신고하는 등 중대 전체가 사고 예방 차원에서 들썩들썩 거리고 있었기에 중대장님은 나의 그런 얘길 듣자마자 선뜻 승낙해 주시며 군종으로서 내가 할 일이 많다며 앞으론 그렇게 활동해..
그대들로 행복했던 이 순간 02년 6월 25일(화) 맑음 오늘 대망의 4강 경기가 전차군단인 ‘독일’과 있다. 오늘은 축복이나 받은 날처럼 장마임에도 쾌창하고 맑고도 선선한 날씨다. 좋은 결과가 나올 것만 같아 기대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과연 우린 요코하마로 향할 수 있을까? 과연 이런 기대가 오늘은 무너지고 말 것인가?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기대는 꺾이고 말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너무 아쉽고 덩달아 울적하며 분하다. 너무도 대등한 경기를 펼쳤기에 그 아쉬움은 더욱 큰 것이며 결승 문턱에서 떨어져서 좀 찝찝하기만 한다. 초반엔 한국팀이 밀어 붙였기에 헤딩슛에 강한 독일이 헤딩슛의 기회를 차단당하고 있었다. 그건 당연히 한국팀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것 또한 생각처럼 쉽게 되진 않았다. 그렇게 아쉬운..
승부차기까지 간 격전의 스페인전 02년 6월 22일(토) 역사적인 BIG 게임이 있던 토요일이다. 오후 3시 반에 8강전이 진행되기에 벌써부터 기대 반 두려움 반인 상황이다. 4강 진출을 위한 한국과 스페인의 숙명적인 경기가 무등벌 빛고을에서 열리는 것이다. 벌써부터 붉은 물결들은 여기저기 일렁이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5천만의 힘! 그건 절대적인 우위였으며 절대적인 승리의 열쇠였다. 아무래도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혼자라는 고독감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자기에게 천만금이 있고 그에 따른 엄청난 힘이 있을지라도 자기 혼자라는 걸 알게 되면 그 삶은 무의미로 치닫게 된다. 그런 현실에선 결국 자기의 장점은 덮어두고 결점만을 확대시켜 자기 비하로 나가게 된..
ATT 대항군 중 두 가지 어려움 02년 6월 20일(목) 3BN ATT에 대항군을 우리 중대가 맡게 되었는데 분대장님의 휴가와 부분대장님은 분반 때문에 내가 분대장 입장으로 훈련을 뛰어야 한단다. 처음으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니 부담이 되기만 한다. 그런데 ATT는 별로 힘들지 않았고 그만큼 후딱 지나갔다. 단지 화나는 게 있다면, 월요일 저녁에 밤을 새며 방어를 하고서 오는 도중에 공포탄 탄피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밤을 꼬박 새워가며 찾았는데 그렇게 지칠 대로 지친 우리들 따위는 상관도 없이 더 가혹한 명령이 아무렇지도 않게 떨어진 것이다. 그건 바로 동막리 사격장에 서부터 중대까지 3시간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 짜증이 속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왔고 비몽사몽인 상태..
대역전극을 연출한 이탈리아전 02년 6월 18일(화) 맑음 대망의 역사가 대전에서 이루어진 날이다. 16강에 진출한 일본은 터키에게 져서 탈락했고 이제 한국 경기만이 남아 있다. 하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그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늘 3BN ATT 때문에 우리 BN에 와서 축구 경기를 보느라 우리 BN원들은 취사장에 모여 축구 관전을 하라는 것이었고 그에 따라 통배식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투덜투덜대며 통배식을 가야만 했다. 그렇게 힘들게 갔다가 도착했는데, 갑자기 행보관님이 불러 이유도 없이 얼차려를 주는 바람에 땀을 뻘뻘 흘리며 오리걸음으로 두 바퀴를 돌아야 했다. 이유인즉은 빠르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밥을 먹고 온갖 짜증을 느끼며 경기 관람..
포루투갈과의 치열한 싸움 02년 6월 14일(금) 맑음 정신집체교육을 잘 마무리 하고 우린 분대별로 자연스럽게 침상에 모여 앉았다. 중요한 경기가 있는 만큼 우리 또한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드디어 16강이 되기 위한 중요한 경기로 포루투갈 전이 있는 날이다. 인천경기장엔 이미 붉은 악마들이 엄청나게 운집해 있었다. 초반전 우리가 전략적으로 불리한 걸 알지만, 그래도 지금껏 잘했으니 더욱 잘하리라 보는 것이다. 전반적 우리가 너무 유리했다. 먼저 폴란드가 예상외의 결과로 미국을 2:0으로 누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조금 더 경기하다가 포루투갈의 선수 한 명이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을 하므로 완전히 한국팀의 페이스가 되었다. 그래서 월등한 경기 주도율로 경기장을 휘젓고 다니긴 했지만 포루투갈의 ..
청성의 자부심 02년 6월 14일(금) 맑음 정신집체교육 D-1일의 날이다. 오늘 오후엔 ‘청성의 자부심’이란 이름 아래 역사스페셜 ‘북한군은 왜 3일간 서울에서 머물렀나?’라는 걸 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우리 6사단이 얼마나 한국전쟁 당시에 밀물처럼 내려오던 북한군의 다리를 묶으며 애썼는지를 보여주는 프로였다. 북한군이 3일간 지체하므로 결국 한국전쟁의 양상이 바뀔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들이 진격하지 못한 이유는 첫째 서울만 공격하려 했다는 것과 둘째 한강대교의 파괴로 그들의 도하(渡河)는 지연됐다는 것 두 가지로 나뉜다. 하지만 첫째의 경우, 서울만 장악하면 이남에 있던 빨치산 세력들이 서로 봉기하여 자연히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는 것으로 빨치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그 이면에 두는 것이다..
미국전에서 아쉽게 비기다 02년 6월 10일(월) 비옴 오랫동안 기다렸던 미국과의 경기가 있는 날이다. 첫 경기에서 1승의 그 진지하고도 열광적인 기쁨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경기가 더욱 기대되는 것이다. 이번 주 내내 정신집체교육으로 인해 시간이 많이 남았고 당연히 3시에 하는 월드컵 시청까지 일과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못 볼 걸 걱정하지 않고 오후를 기다렸다. 교육 훈련이 끝나자마자 내무실에 다 함께 앉아 축구 경기를 관람하게 되었다. 저번 축구 경기는 근무 때문에 제대로 못 봤기에 이번 경기에 더 많은 기대가 쏠리던 차였는데, 이렇게 앉아서 보게 되니 왜 이리 행복하던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국팀이 주도권을 가지고 축구 경기를 펼쳐 갔지만, 초반에 황선홍 선수가 눈밑 부상을 입어 피..
2002 월드컵 개최와 감격의 폴란드전 첫 승리 02년 6월 4일(화) 맑음 오랜 염원의 월드컵이 드디어 우리 나라와 일본 공동개최로 시작되었다. 5월 31일에 화려한 개막 행사에 이어 개막경기를 ‘세네갈 : 프랑스’가 했다. 그 결과는 프랑스가 이길 줄 알았는데 예상에서 빗나가며 세네갈이 이겼다. 한국, 나의 조국, 내가 생활하는 이곳에서 그런 역사적인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진다는 게 무척이나 감명스럽게 느껴지긴 한다. 그래도 그런 월드컵의 열기가 어느 정도는 차단되는 군대에 있기에 좀 답답할 수밖에 없고 애석하지 않으려야 애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런 역사의 순간을 군대라고 해서 나 몰라라 할 것인가?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No다! 오늘은 한국의 첫 경기인 폴란드전이 있었다. 월드컵 전에 ..
스스로 벼랑으로 몰며 신경적인 내가 되다 02년 5월 24일(금) 맑음 전투지휘검열의 마지막 날이다. 이번 전투지휘검열은 어땠냐고? 한마디로 월을 때리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지뢰지대, 철조망 설치 훈련도 안 했고, 화학전 하의 준비태세도 안 했을뿐더러, 열심히 그 임무를 부여해주었던 전투력 복원 훈련까지 19R 2BN으로 넘어감에 따라 우린 별로 하는 일 없이 모처럼만에 흠뻑 자유를 만끽하며 지냈다. 더더욱이 오대기이긴 했는데 훈련 기간과 겹친 덕에 며칠동안은 상황조차 걸리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역시 모든 훈련은 훈련기간보다 준비기간이 빡센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 기간 동안은 간부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짐에 따라 이래저래 깨지는 상황들이 많다 보니, 우리들도 덩달아 ..
짜증 나는 훈련준비와 군장검사 02년 5월 19일(일) 화창 내일이면 전투지휘검열의 시작이다. 요즘 같아선 차라리 빨리 전투지휘 검열을 했으면 하고 바랄 정도다. 훈련은 차라리 정식훈련을 할 때가 아닌 준비기간 때가 오히려 빡세다고 했는데, 진짜 그 말처럼 훈련 준비 때문에 매일 같이 철조망과 지뢰를 설치하고 임무카드 수정하고 국지도발, 준비태세(화학전 하), 대량전사상자 처리 훈련, 전투력 복원 훈련 등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쉴새 없이 하다 보니 기가 질릴 지경이다. 더더욱이 금요일 저녁엔 토요일에 있을 대대장님 군장 검사 때문에 중대장님 예비 군장 검사가 있었는데, 약식이 아닌 FM으로 하다 보니 모든 걸 다 깔아 놓으라고 하고서 10시 넘도록까지 했다. 짜증 나서 죽는 줄 알았다. 날 차라리 죽이쇼..
중간일을 열심히 하는 세 가지 이유 02년 5월 13일(일) 더움 오늘은 전투지휘 검열 일주일 전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준비태세가 걸린단다. 뭐 준비태세야 하루 이틀 해보는 게 아니기에(사실 FEBA에 나와서 한 화학전하 준비태세만 열댓 번은 한 것 같다) 그다지 문제 될 건 없었지만 누가 뭐래도 제일 짜증 나는 건 그걸 다 치워야 하는 괴로움이 아닐까 싶다(목사님 말씀처럼). 6시에 기상하자마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화학전 하 준비태세가 걸렸다. 부랴부랴 그렇게 신물 나도록 입기 싫던 보호의와 방독면을 착용했다. 그리고 열심히 가쁜 숨을 쉬어가며 물자분류를 했다. 그렇게 다하고 나선 소산지(疏散地)에 가서 앉아 있었는데 처음엔 편했지만 어디 그게 맘처럼 계속 편하기만 할까. 거의 한 시간 정도를 앉아 있..
이틀 간의 대민지원 02년 5월 9일(목)~10(금) 맑다가 구름낌 이틀 간 그렇게 나가고 싶던 대민지원을 나섰다. 사실 어제(8일) 나갈 기회가 충분히 되었고 분대장님까지 나를 찍어서 나가라고 했지만 어제까지 했던 화생방 물자 분류가 끝나지 않은 터라 오늘까지 그걸 하리라 생각하고 거절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물자 분류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무척이나 아쉬워서 나가고 싶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나가게 되니 기분이 무지 좋더라. 더더욱이 신난 좋은 까닭은, 3소대에서 훈련을 뛰기에 우리 소대는 대항군 역할을 해야 하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분대장님 외 한 명씩 분대에서 빠져야 하는데, 우리 분대에선 광화가 뽑혔기에 나는 대민지원을 나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훈련까지 하지 않으며 간다는 게 얼마나 ..
바쁜 소대일과 교회일 02년 5월 5일(일) 맑음 벌써 가정의 달인 5월이 왔다. 어느덧 이렇게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올해도 중순으로 접어든다는 게, 여름이 서서히 다가온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이번 달이면 성민이 형은 드디어 전역을 할 것이고 우리도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열심히 생활해 나가겠지.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껴지는 까닭은 페바의 하루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빡쎄며 바쁘게 돌아간다는 얘기겠지. 빡세고 힘들다는 건, 그 순간순간 참을 수 없을 만큼 짜증이 몰려오긴 하지만, 결국 시간을 빠르게 흘러가게 하기에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눈코 뜰 새 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도 나쁜 건 아니다. 저번 주 내내 5월 말에 있을 ‘군단 전투 지휘 검열’ 때문에, 국지도..
아버지 군번의 전역을 축하하며 02년 4월 26일(금) 서늘하지만 맑음 오늘 아버지 군번이었던 이규희씨와 임대호 씨가 집에 갔다. 두 분 다 나의 군생일에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었기에 왠지 섭섭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규희 씨는 우리 부대 선임으로서 분대장을 거의 10개월 정도 잡았기에 그런 면에서 좋은 모습, 그렇지 않은 모습을 다 마주하며 군 생활의 모범을 제시하는 아버지였고, 임대호씨는 우리 소대 출신이지만 대대군종이었기에 신앙적인 면에서 모범을 제시하는 아버지였다. 특히 이규희씨에게 미안한 게 많은데, 이등병 시절에 갑자기 아파서 근무를 설 수 없을 때, 비번임에도 그걸 포기하면서 근무를 서줬고, 백일휴가 즈음해선 일개복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옷을 다려줬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미안..
19연대 근무지원이 끝나는 마당에 02년 4월 26일(금) 서늘하지만 맑음 군에 와서 벌써 1년 2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 1년이란 시간을 남겨둔 시기에 이르렀다. 예전에 생각할 땐 군 생활이 1년만 남아도 되게 행복하고 생활은 엄청 편해질 줄만 알았는데, 막상 이렇게 그 시기에 도달하고 나니깐 그다지 아니올시다 라는 거다. 역시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가 보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과연 병장이 되고 전역을 한다 해도 기쁠지 미지수일 정도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군 생활을 1년 2개월이나 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는 거다. 거기에 덧붙여 아직도 1년이나 남은 것을 되짚어 보노라면 여전히 막막하고 답답하여 미칠 것 같다는 점이다. 과연 이 긍부정이 교차하는 혼란의 시기를 또 어떻게 보낼 것인가? 지금..
진지공사를 끝내며 02년 4월 13일(토) 진지공사가 이주째에 접어 들었다. 몸 쓰는 일을 이주째 하고 있으니 이제는 힘이 팽긴다. 역시 몸을 써야 하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힘든 것 같다. 진지 공사가 이렇게 힘이 들 줄은 여러 얘길 통해 익히 듣긴 했지만 실제로 대하고 보니 무엇을 생각했든 그 이상이긴 하더라. 이럴 때만은 GOP가 너무나 그립다. 하지만 나름대로 이 생활에 적응되다 보니, 할 만하고 나름대로 재밌긴 했다(물론 끝났기에 이런 소리를 해보는 거겠지만^^). 그러고 보니 군종이 된 지가 어언 한 달째가 되어간다. 하지만 그동안 교회에 나가지 못하는 바람에 신고식 한 번 못해봤으며 군종으로서의 역할도 못해봤다. 그동안 오대기와 진지공사와 이것저것으로 바쁘다 보니 당연히 교회에 나갈 시간도 없..
진지화와 군인의 땀방울 02년 4월 7일(일) 흐림 오늘은 흐린 주일이었다. 그런데도 평일과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건 아마도 어젠 토요일임에도 비가 온 덕에 쉬었기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오늘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날조였기 때문에 재밌기만 하고 별로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은 주일이기에 네 시가 조금 넘어서 끝났다. 어찌 보면 쉬어야 할 날에 일한 것이라 짜증이 날 만도 하지만 이처럼 조그만 기쁨의 요소라도 있다면 행복이 느껴지는 게 또 군대의 묘미이기도 하다. 예전에 ‘철원의 모든 산이 진지화되어 있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진지 공사 기간에 ‘모든 산이 진지화 되어 있다면 그 모든 산엔 군인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베여 있다’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끝나는 그 순간까지 너무 짜증 ..
진지 공사와 진심 없는 말 02년 4월 6일(토) 폭우 이번 주부터 다음 주까진 진지 공사 기간이다. 폐바 첫 진지 공사이기에 대단히 걱정했던 게 사실이다. 여기 FEBA는 GOP와는 달리 빡세다는 진지 공사였기에 걱정이 절로 들더라. 지금에서야 느끼는 거지만 GOP 진지 공사는 진지 개척이 아니라 진지 청소 정도의 작업이니 그만큼 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FEBA의 진지공사는 진지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고 밤까지 진행되기에 그만큼 힘들 수밖에 없다. 역시 우리들의 예상대로 빡센 일주일이었다. 5시에 일어나 8시정도부터 작업에 들어가서 저녁 6시에 접어 들어서야 끝나는 일정이다. 내리쬐는 뜨뜻한 햇살을 등지고서, 또는 앞대고서 그 무수한 땀방울들을 흘려가며 대지의 끊임 없는 생명력에 맞서 새로운 방벽을 ..
등산과 군 생활의 공통점 02년 3월 28일(목) 맑음 뻗대기를 통해 인체샤워를 하지 않는 경상자 역할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잘 마무리 되어지는 듯했는데, 이번엔 ‘아무 것도 아닌 환자’가 문제였다. ‘아무 것도 아닌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거기서도 쫓겨나 최초의 상황을 하는 데로 가야 했던 것이다. 도대체 몇 번을 옮겨다녀야 하는 거야? 아무리 군대라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감내하고 있는 내 성격도 참 많이 좋아졌다. 역시 환자역을 하면서 그곳이 제일 월 때리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가서 해보니 정말 월중의 월인 곳이었다. 나는 하헌태 상병을 업고서 내려와 배수구로 짱박히면 되는 일이었기에 처음만 빡시게 하면 그 다음부터 쭉 쉬어도 되는 그런 역할이었다. 이쯤 되니 돌고 돌아 이 역할을 맡게..
군에서 배운 한 가지, 뻗대기 02년 3월 28일(목) 맑음 수요일엔 역시 환자역을 했는데 최대한 첫 60에 안 타려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타서 인체제독소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군수 장교님이 어제 연습 안 한 놈이 누구냐며 그 인원들은 빠지랬다. 그런데 최초 환자들은 인체 샤워를 다 하는 쪽으로 몰아가더라. 그래서 최대한 버티며 아닌 척을 했다. 군에서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어떤 일도 그런 척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무산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정의만이 옳은 것인 양 취급되어지고 그것만이 떳떳한 일인 양 취급되어져야 한다고 말해지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최대의 선(善)이며 최대의 의(義)라고 생각되어지는 법률이 정말로 제대로 작동하는가? 떳떳함 위에 서서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
화생방 전사상자 처리 훈련 중 K-3로 인한 고초 02년 3월 28일(목) 맑음 이번 일주일 내내 M.O.P.P 4단계를 다 적용한 상태로 하루하루의 나날을 보냈다. 무슨 말이냐면, 금요일에 사단장님 앞에서 화생방 전사상자 처리 훈련이 아니라 시범식 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보호의ㆍ전투화 덮개ㆍ방독면ㆍ보호수갑을 하고서 짜여져 있는 각본대로 움직여야만 했던 것이야. 말이 쉽지 방독면을 쓰고서 움직여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대는 감히 알라나? 상황이라면 화생방 탄이 떨어져 진지에 투입되어 있던 대다수 병력들이 부상 당했고 그로 인해 그 인원들을 처리하는 과정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어쩐지 갑자기 주일에 방독면 쓰는 연습을 시키고 월요일엔 하루종일 화생방 물자를 착용하는 연습을 시키더니, 화요일부턴 ..
우여곡절 끝에 군종이 되다 02년 3월 24일(일) 맑고도 바람 붐 소대의 군종이 되던 때가 생각난다. 작년 8월 9일에 소대의 군종이었던 한솔씨가 나가면서 “네가 이제부터 소대 군종이다”라고 했기에 그게 진실인 걸 알면서도 내심 믿지 못했다. 너무 갑작스럽기도 했고 의사를 묻는다거나 투표를 했다거나 하는 게 없었기에 믿을 수 없었던 거다. 몇 주간 소대 군종 현황을 보니 빈칸으로 계속 비어 있을 뿐, 내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몇 주 더 지나니 기어코 내 이름이 소대 군종란에 당당히 올라가 기입되어 있더라. 그걸 보고 있으니 되게 흡족하기까지 하더라. 단순히 생각해보면 쉽게 군종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생각 이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다. 그 몇 주의 시간이 긴가민가하는 얼렁뚱땅함을 안겨 ..
헐었던 잇몸이 나으며 깨달은 것 02년 3월 24일(일) 맑고도 바람 붐 며칠 전만 해도 입속의 잇몸이 헐었기에 좀 자극적인 음식을 먹게 되면 쓰리고 예리고 아팠다. 그땐 그게 영겁의 짐을 계속하여 짊어지고 있었던 것마냥 힘들고 빨리 낫기만 바랐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왜 갑자기 그렇게 낫기를 바라다가 낫게 되었을 땐 전혀 아무런 감흥이 없게 되었을까? 이런 게 바로 인간의 ‘똥 싸러 들어갈 때 맘 다르고, 나올 때 맘 다르다’와 비슷한 심리인가? 이와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었다. 왜 그렇게 달라지는지 새삼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런 감사할 줄 모르는 존재이기에 어쩜 인간은 영원히 죄악성을 지녀야만 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고 이 세계는 영원히 이기와 자만이 넘치는 사회인지도 모른다. 단지 ..
5분대기조 02년 3월 24일(일) 맑고도 바람 붐 3월도 이제 끝을 항해 치닫고 있어. 이제 얼마 안 있으면 4월이라는 전혀 다른 시간으로 접어든다. 분명 그다지 시기 상으로 다를 게 없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 좀 다른 시간에 치닫게 된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하고 내 꿈을 새롭게 모으기에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언제나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되어지는데, 그렇게 시간마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그 시간에 나의 희망과 꿈을 투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반가울 뿐이다. 시간이란 걸 만들어 놓고 그 절기 절기로 나누어 놓은 최초의 아무개에게 경의를 표할 뿐이다. 지금은 5대기(5분대기조) 기간이다. 그래서 오늘은 주일인데도 교회에 가지도 못하고 계속 내무실에 대기..
군종 투표에서 뽑히다 02년 3월 17일(일) 어제 중대 군종인 박영헌 병장님이 분대장에게 와서 이야기를 나눴고 그건 나를 중대 군종으로 추천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분대장은 수긍하지 않으며 급마무리 되었다. 오늘은 주일이기에 교회에 갔다. 평상시와 같이 주일답게 예배가 끝나고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는데 박영헌 병장님이 우리 중대원들을 다 모으더니 “오늘 중대 군중을 뽑을 테니 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봐.”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손을 들까 말까 고민하다가 지금 안 들면 후회할 것만 같아 손을 번쩍 들었다. 민호와 나 단둘이 손을 든 것이다. 그래서 투표를 하게 되었는데 운이 좋기라도 한 것인지, 하나님이 선택해주신 덕인지 내가 선출되게 되었다. 한번 할 기회가 있으면 너무나도 하고 ..
중대 군종으로 추천되다 02년 3월 16일(토) 토요일엔 중대장님, 사단장님 정신교육이 있었다. 사단장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역시 걸걸하시고 위엄이 있으시다. 그런 목소리 속에서도 가끔씩 위트가 넘치는 말들이 나온다. 저번 설날에 동석하고서 떡국을 먹을 때 여름이면 새까맣다가 겨울이면 새하얘지는 우리들을 보고서 “카멜레온이구만, 카멜레온이야!”라고 농을 치셨고 이번에 8사단 마크를 보면서 “발바닥 달고 다니면 쪽팔려서 살겠어”라고 농담을 거셨으며 자신의 전역한 자식을 보면서 “어느 순간 갑자기 군에 간다고 울상이더만 한두 번씩 백일휴가다 뭐다 나오더니만 어느 날은 집에 갔더니 개골이 친 군모를 딱 걸어 놓고 전역했다고 하더라고”라며 말씀하셨는데 그 어감이 하도 특이해서 무지 재밌었다. 최장섭 소장님 화..
열정이 깡그리 무시 당한 네 가지 사건 02년 3월 14일(목) 오늘은 하루종일 나의 열정이 인정 받질 못했다. 아침엔 김영주 상병이 하드보드지는 냅다 던지더니, 암구호판을 다시 만들라는 것이다. 처음 만드는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미 두 개나 만들었음에도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또 만들라고 확 던지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그런 상황이니 짜증이 확 날 수밖에 없었다. 더럽고도 야비하단 생각에 나의 손은 떨리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사실 처음 만들 땐 재료도 없고 노하우도 없이 열정만 넘쳤기에 거의 이틀 동안의 자유시간을 통째로 허비하면서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첫 작품은 되게 작았고 볼품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현실이기에 이렇게밖에 못 만들 것을 왜 그리 시간을 허비하..
진지탐색 도보여행 02년 3월 14일(목) 오늘 역시 도보답사의 연장으로 우발 작계지역인 동송 고지에 갔다. 화요일에 299고지에서 285고지까지 도보로 탐사해서 가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 힘이 드는 줄 알고 있기에 이번에도 맘을 단단히 먹었다. 오늘도 저번처럼 차를 타고 이동한다기에 좀 수월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런 예상과는 달리 도보로 가게 되었다. 실질적으로 처음부터 걸어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좀 기대가 되었다. 대대 위병소를 나설 때 부풀었던 기대감은 이동하는 도중 더욱더 커졌다.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걷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나에겐 도보여행 같은 느낌도 들고 군장은 메지 않고 맘껏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밑엔 사단 전차대가 있었다. 우리 대대 앞마당을 시끄럽게 장식했던 장본인들이..
생일파티 02년 3월 13일(수) 별 특별한 일이 없다. 단지 오늘은 민증 상 내 생일이다. 그래서 저녁 식사 시간 후에 PX에 가서 분대 회식을 했다. 그렇게 기대를 많이 했는데 별로였다. 사실 맛있게 먹었지만 그걸 준비하는 시간이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렸기에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라 하겠다. 차라리 이럴 바에야 과자로 배부르게 먹는 게 나을 뻔했다. 이럴 때 GOP 회식이 그립기도 하다. 오늘 형식적인 생일임에도 별다른 것들은 없었다. 좀 섭섭하게 그렇게 지나가나 했고 싱겁게 회식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관물대에 빵과 우유가 들어 있지 뭔가. 놀랐다. 과연 누가 이렇게 개념 있는 짓을 했을까? 궁금했다. 쪽지가 놓여져 있어서 펼쳐 보니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내 동기..
지형정찰과 우공이산 02년 3월 12일(화) 오늘은 우리 지역 지형 정찰이 있는 날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부랴부터 단독 군장을 하고서 60에 올랐다. 이렇게 관광용(?)으로 60을 타보는 건 오랜만이라서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장시간을 달려 장벽 폭포, 전차대대 등을 지나 7R 2BN 후문에 있는 299고지에 도착했다. 거기서부턴 우리가 알아서 지형 정찰을 하는 것이다. 훈련 뛸 때 어떻게 뛰는지에 대한 거다 명료한 해석을 하고서 좀 지친 몸을 이끌고 내려갔다. 그래서 60에 다시 타고 부대에 복귀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맘에 안 들게도 가는 도중에 내려 285 고지까지 꽤 많이 걸어서 답사하게 된 것이다. 쉴 생각을 하던 차에 다시 한참을 걷게 되니 정말 짜증이 복받쳐 오르더라. 하지만 군대란 곳은 나의..
시범식 교육과 부엽토 작업 02년 3월 11일(월) 드디어 페바 첫 주의 시작이다. GOP와는 달리 주말, 주일엔 철저히 자유가 보장되었다. 아무래도 페바이니 이런 자유가 없으면 안 되겠지. 이번 주부터 좀 힘들 거라고 소대장님이 벌써부터 겁을 준다. 적어도 이번 한 달 정도는 진지 파악, 구축, 대대ㆍ중대ㆍ소대 정비, 개인 임무 숙지 등을 한꺼번에 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다시 입대한 그런 신병 같은 기분으로 지내야 한다. 그렇다면 성인이 말대로 1년 1개월짜리 군대에 다시 입대한 기분이라고나 할까나. 드디어 페바 첫 일과의 시작이다. 흡사 신교대와 같이 6시에 기상하자마자 전투복을 입고서 점오를 하러 사열대 앞으로 모였다. 신교대 이후로 점오를 해본 적이 없다가 새삼 이렇게 모이려니 기분이 좀 미묘했..
페바의 첫 일주일 적응기 02년 3월 11일(월)~17일(일) 타임라인 오전오후03.11(월)시범식 교육(위병소, 탄약고, 근무요령, 5대기 요령, 매복요령)중대 뒷산으로 부엽토(腐葉土) 모으러 감. 03.12(화)299고지, 거점 지형 방문(7R 1BN)Co 앞 뜰 족구장 정비(능력에 비해 의욕만 앞서서 암구호판 만들다 욕 먹음)03.13(수)국지도발FTX 진지 방문 축조(2Co 옆 도로 뒤)2P 대청소, 간부 축구로 인한 자율시간(생일 PX 파티, 늦게 상남가 편지와 빵을 줌)03.14(목)우발 직계 지역 방문(동송고지, 아이스고지 후방)도보로 2차 지연 진지 방문(19BN 후방 → 77포대 → C3 오르기 전 진지)의욕이 인정 받지 못함(식기, 임무 숙지 안 함, 암구호 카드)03.15(금)지뢰교육..
페바 체육대회와 뒷풀이 02년 3월 10일(일) 화창 페바의 생활, 그건 흡사 신교대와도 비슷했다. 새벽 내내 걸어서 잠 한 숨 못 자고 이곳에 왔건만, 그래서 오후에까지 잘 수 있겠거니 기대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짐 정리를 대충 하고 벅찬 가슴을 안고 아침을 먹으러 갔지만 이제 웬일? GOP에서 밥을 먹고 싶을 때 조금만 기다리면 먹고 싶을 만큼의 밥을 먹을 수 있었기에 그게 바로 자대의 생활인 줄만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다. 여기 와서 보니 신교대와 별반 다를 바 없이 팔을 휘두르며 군기왕성하게 군가를 부르며 걸어가다가 식당 앞에 도착해서 길고 긴 줄을 차례대로 기다려야 한다. 막상 차례가 오면 “입장!”이라 크게 외치며 식당으로 입장해서도 거기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들어가서 식기를 씻을 때에도 한참..
철수의 순간을 기록하다 02년 3월 7일(목) 맑음 후반야 근무자와 비번자들은 대기막사에서 쉬면서 7중대 아저씨들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도착하면 바로 탄띠를 바꾸고 군장끈을 결속해야 하기 때문에 대기하면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전반야들은 여전히 상황에 상관없이 근무에 투입해야 했다. 그렇지만 이미 우리들의 기분은 한결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기에 보통 때 근무하는 것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들떠서인지 시간이 무지 더디게 갔다. 원랜 여섯 타입 근무제지만 오늘은 22시까지 근무하고 그 뒤로 A형 근무였기에 세 타임 근무만을 서면 되었다. 마지막 근무지인 대공에 올라갔더니 벌써 2대대 사람들이 입성했댄다. 다른 때는 전혀 볼 수 있던 거무스름한 무리떼가 신3번 도로로 북상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는..
마지막 근무와 첫 행군의 기대 02년 3월 7일(목) 맑음 끝은 시작의 다른 말이다. GOP 생활의 끝, 그건 곧 FEBA 생활의 시작이란 말이다. ‘마지막 주간 대공근무’ ‘마지막 전반야 근무’ ‘마지막 새벽 취침’ 등으로 GOP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렇게 끝이라 생각하고 나니 무척이나 아쉽고 무척이나 섭섭했다. 지겹도록 보아온 곳이고, 질리도록 굴러온 곳이련만 막상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새삼스레 더욱 주의 깊게 보게 되었던 것이다. 문득 몇 년 전에 수능을 볼 때 농고까지 버스를 타고 가던 어둠이 짙게 깔린 야경이 생각난다. 분명 별스럽지 않은 일상 속에서 늘 특별히 신경 쓰지 않던 주위 풍경이었지만 감정에 변화가 생기니 평이하던 장소가 한순간에 뭔가 의미 있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그러한 생각의 변화..
『사람의 아들』을 통해본 종교성 02년 3월 5일(화) 구름 많음 ‘종교가 무엇인가? 종교의 본의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종교를 믿고 그 종교에서 내세우는 교리를 이행하려 하는가?’ 뭐 이러한 물음은 종교적인, 형이상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이 라면 원초적으로 지닌 물음이리라. 그 물음에 대한 당연한 대답은 “인간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이 세상에 버거운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하다 보니 인간 이상의 초월적 존재를 희구하게 되어서 결국 형이상학적인, 즉 우리들의 두뇌 활동을 벗어난 초월자인 신을 만들고 섬기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연히 같은 초월자를 모시는 사람들이 등장했을 것이고 그들은 한 곳에 모여 공동생활을 했을 것이다. 어떤 모임이든 법적 체계가 갖춰져야 공동체가 분란이 생기..
두려움에 대한 두 가지 반응 02년 3월 5일(화) 구름 많음 요즘은 겨울이 아니라 봄인 것만 같다. 분명 시기상으로 틀림없이 꽃 피는 봄이 왔지만, 작년 3월의 스산하고 매서운 바람이 불고 희뿌연 눈이 흩날리던 때와 비교해보면 너무 생판 다르기에 작년의 철원이 꿈인양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 요즘 새벽의 온도라 봐야 영하 5도 밖에 안 내려갈 뿐더러 날씨가 흐려지더라도 눈 내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춥디 추운 겨울이 다 지나고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이렇게 선뜻 찾아와서 한 편으로, 기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 철원의 겨울다운 겨울을 나지 못했음이 못내 섭섭하기도 하다. 이렇게 변화된 날씨에 맞추어 우리의 생활도 변했다. GOP에서 FEBA로의 철수가 그것인데, 사실 저번 주까진 그다지 실감이..
GOP 생활 정리기 02년 2월 25일(월) 맑음 이제 다음주면 GOP 철수다. 과연 내 자대 생활 내내 있었던 GOP를 다음 주면 정말 떠나게 될 것인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역시 이래서 ‘백문불여일견 백견불여일행(百聞不如一見 百見不如一行)’이라 하는가 보다. 이쯤에 이르러서 사람들 반응이 참 이채롭다. 몇 달 전만해도 ‘빨리 나가고 싶다’를 연발하던 사람들 입에서 이상하게도 ‘잔류’라는 말이 드문드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FEBA가 더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기대와 함께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정말로 너무나 익숙해져서 뭘 해도 편해져 버린 이곳에 남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과정이기에 이겨내야만 한다는 생각도 든다. ‘도전의식’과 ‘현실 안주의..
계급과 성장시기 02년 2월 25일(월) 맑음 입대하고 나서 자대에서 한 좌담회에서 ‘이래도 저래도 2년 2개월이니 잘 지내보자’란 얘기를 나누면서 안 가는 시간에 불만을 토로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과연 일 년이란 시간이 순간순간마다 빠르게 흘러갔냐 하면, 전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지 않은 걸로 봐서는 이 생활이 그렇게까지 즐겁다거나 슬프지 않다는 얘기이며 생각 이상으로 잘 적응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닐까? 상병을 달았다. 군 생활한 지 일 년이면 누구나 달게 되는 계급이기에 별 감흥은 없다. 단지 일 년이란 시간이 더디게라도 이렇게 지나갔다는 것이 기쁠 뿐이요, 계급장의 크기가 더욱 커졌기에 시각적인..
소대 중간에 대한 조언 02년 2월 16일(토) 조금 눈 옴 그렇게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2월이 오고야 말았다. 2월엔 내가 군에 온 지 1주년 되는 날이기도 하고 G.O.P에서 보내는 마지막 달이기도 해서 아주 많이 뜻깊은 한 달임에 틀림 없다. 상병이 되었다. 덩달아 군 생활을 한 지 1년이 됐단 뜻이다. 시간이 그만큼 지났다는 건 무언가에 많이 능숙해지고 익숙해졌다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걸 뒤집어 보면 타성에 많이 젖었다고도 할 수 있다. 나만은 그렇지 않다고 선뜻 부인하기가 힘들다. 시시때때로 수양록을 쓰면서 나를 되돌아보고 달라진 점이 뭔지, 잘못된 점이 뭔지 되새겨 보고 바꾸려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익숙해진 삶 속에 타성에 쪄들어버릴 대로 쪄들어 버린 내 의식이 그런 걸 쉽게 감지해내지 못..
사단장님과 설날을 보낸 사연 02년 2월 12일(화) 맑음 2월 12일은 민족 대명절 설날이었다. 이 날은 보통 설에 비해 아주 특이한 날이었는데 기본적으로 군에서 보내는 첫 번째로 보내는 설이란 게 그것이며 특히 사단장님하고 동석 식사를 하며 새해를 열었다는 게 그것이다. 새해 첫날에 전망대에서 해돋이를 본다며 사단장은 1월 1일에 우리 부대에 오신다는 거다. 그래서 아침 식사를 우리 중대 대기 막사에서 하신다는 것이었는데, 그걸로 인해 우리들은 동석 식사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단장님을 맞이한다는 건 그렇게 그저 친구를 맞이하듯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사단장이 지나가는 곳에서 지적을 받아선 안 되기 때문에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청소하고 또 청소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린 며칠간 대기 막..
바닥에서 일어서기 02년 1월 27일(월) 매우 맑음 지난 날, 지나버린 그 곳에서의 암울하며 처량하기까지 했던 과거 편린(片鱗)들이(그 편리들로 인해 삶이라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하나의 기억 조각 정도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2주 정도의 시간만으로도 아무렇지 않아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그런 이유에서 아무리 생각하고 아무리 달리 바라보려 해봐도 시간만한 만사(萬事) 해결사(解決士)는 없는 것 같다. 정말 견디기 힘든 순간들을 꿋꿋이 견뎌낸 내 자신이 지금은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느껴질 뿐이다. 지금은 모든 게 시간 속에 파묻혀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의 의식 저편에서 여전히 꿈틀꿈틀 거리고 있는 나 자신의 잠재적 올무이며 얽매임이다. 그래서 지금 그저 태연한 척 웃으며..
제설 중 맞이한 새해 01년 12월 31일(월)~1월 1일(화) 대설 후 맑음 그렇게 안 갈 것만 같던 2001년과 그렇게 오지 않을 것만 같던 2002년 새해가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진짜 다사다난했던 2001년이 그렇게 가고야만 것이다. 연말이면 으레 교회에 가서 올라이트를 하고 새벽의 해가 뜰 때쯤 되어선 학산에 진규와 함께 올라 일출의 기쁨을 느꼈었는데 이젠 그럴 수 없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후반야였기에 묵은해에서 새해로 접어드는 기쁨을 그나마 만끽할 수 있다는 것 정도이다. 연말인 오늘을 난 그저 평일처럼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낮에 기상함과 동시에 밤엔 무지하게 많은 눈이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였다면 기쁨의 한 획이었겠지만 적어도 여긴 그렇지 않다. 화려한 새해..
선임병의 상(像) 01년 12월 28일(금) 맑음 선임병과 후임병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어 갈등을 겪는 곳이 바로 군대이다. 하지만 이곳은 사회와는 달리 느슨한 시간 뒤에 서서히 입장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단시간 뒤에 입장이 바뀌는 것이기에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입장적 행동에 대해 오류를 일으킬 때가 있다. 군이란 계급 사회가 원래 그렇다라는 관념에 의해 군대의 입장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임병은 지존의 하늘이요, 후임병은 비하의 땅이요라는 의식이 팽배해져 있는 것을 입장적 행동에 대한 오류라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적인 무의식 속의 괴리가 숨어져 있기 때문에 선후임병은 같은 존귀한 인간임에도 일방적으로 먹고 먹히는 그런 양육강식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 후임병일 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