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666)
건빵이랑 놀자

19년 만에 수양록을 정리하다 군생활을 2001년 2월 27일(火)에 입대해서 26개월을 꼬박 채운 후 2003년 4월 26일(土)에 마쳤다. 그후로 무려 19년이 흘러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어느새 40대 초반이 되었다.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의 시기별 특징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잊어도 되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가도 됨에도 왜 과거로 회귀하려 하는 것이며, 뜬금없이 지옥이라는 이미지로 남아 있는 군시절을 정리하려 한 것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갑작스레 하는 정리가 아니라고 말이다. 26개월의 발자취가 빼곡하게 담겨 있기에 언제든 꼭 한 번은 정리를 하고 싶었다. 맘은 원이로되 실천하긴 쉽지 않았다. 수양록을 적을 당시엔 한정된 페이지..

군대 수양록(修養錄) 목차2001년 2월 27일(火) ~ 2003년 4월 26일(土) 26개월의 군생활 소속: 6XX 2R 1BN 3CO 2P 1S군번: 01-73010754 신병교육01.02.27~04.13(7주) 03.04~10 신교대 둘째 주06(화) 나는 누구인가08(목) 군생활의 비감(悲感)09(금) 행복(幸福)이란 것03.11~17 신교대 셋째 주11(일) 종교와 초코파이13(화) 작은 감사15(목) 건강의 소중함16(금) 어이없는 벌에 대해03.18~24 신교대 넷째 주19(월) 억눌린 영혼들의 주먹다짐20(화) 사격과 놀이기구의 유사점23(금) 유격과 참호전투 / 봄 경치(화창한 날에) / 미래의 자화상과 전우들03.25~31 신교대 다섯째 주25(일) 사람의 한계(특공대를 보고서)26..

격동의 2002년 정리 03년 1월 1일(수) 매우 맑음 2003년을 분대장으로 시작한다. 입대할 때만 해도 2003년이 올까 하는 그런 답답한 마음도 있었고 고참들한테 “내후년 제댑니다”라고 말할 때의 그 무너지는 암울함을 느꼈었는데, 어느덧 ‘올해!’라고 벅찬 감격으로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오고야 말았다. 행복한가? 정말 행복하다! 군에서 제대로 보낸 02년이 이렇게 갔다. 솔직히 아쉬움 없는 한 해였지만 시간이 이렇게 흘렸다는 게 무척이나 아쉽기까지 하다. 2002년은 정말이지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1월엔 있었던 사진기와 수하문제 인해 소대의 미운 오리 새끼로 찍혀 최악의 군 생활을 경험하며 지냈다. 2월엔 철수 준비로 인해 소대 분위기가 너무나 어수선 했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3월엔 철수..

‘내 탓이오’와 ‘참기’의 문제점 02년 11월 10일(일) 매우 흐림 11월 1일, CO ATT를 뛰면서 참고 참았던 일이 드디어 터지고야 말았다. 바로 꼬바에게 개긴 일이다. 그건 예전 이등병 시기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감정이 그때 드디어 터진 것이다.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별로 좋은 감정이 아닌데, 어쨌든 그 일 때문에 느낀 게 있어 여기에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어떤 일이든 내 탓으로 돌린다. 그건 비단 나 혼자만의 일에서 뿐 아니다. 단체의 일에서도 그러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 탓이라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되게 괜찮은 방법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적절히만 할 수 있다면, 아주 괜찮은 일일 테지만 그걸 벗어났기에 심각한 문제라 하는 거다. 예를 들어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그 운동 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의 시비 02년 10월 14일(월) 전형적인 가을날씨인데 좀 추움 오늘부터 동계 작전 준비에 들어간다. 그래서 지뢰인 막걸리통, 철항공 그런 것들을 만들어야 한다. 일과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시작했는데 나는 운 좋게도 사리비 작업을 가게 되었다. 오후에도 열심히 싸라비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부소대장님이 3분인 홍원기와 HQ분인 김영주가 직업을 하는 황목 작업에 나를 넣은 것이다. 솔직님 걔네들하고 같이 작업하는 게 부담되었고 오전에 했던 싸리비 직업이 오히려 좋았던 터였기에 싫기만 했다. 하지만 부papa가 능력을 인정해 준 것이기에 하려던 찰나 3분이 “개종환. 너 되게 빠꼼하잖아. 그리고 작업도 못하고, 그니깐 싸리비 작업해”하고 나의 입장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첫날 유격 체험기 02년 9월 16일(월) 원래 15일(日) 점심에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바뀌어서 16일(月) 7시에 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다. 예정대로 갔다면 분반 복귀 후 조금의 휴식도 없이 바로 가는 강행군을 했을 터이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렇게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출발 준비를 했다. 출발 전 심정은 좀 착잡하기 했지만 그래도 3박 4일이라는 짧은 시간만 유격을 뛴다는 것과 복귀 행군이 없기에 좀 가벼운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군 생활 가운데 유적을 한 번 정도는 뛰어봐야지.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차라리 즐기리라!’라고 맘을 먹고 정신없이 유격 채비를 갖춘 다음에 바로 출발하게 되었다. 바로 독서당리를 거쳐서 유격장으로 향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뻘짓을 좋아하..

분대장교육대 일주일 생활기 02년 8월 24일(토)~30(금) 무지 더움 어제 드디어 분반에 왔다. 분대장들의 그 강압적인 억압과 중대 생활 (태권도 단증이 목표가 되어 모든 통제가 이루어짐)의 빡셈 때문에, 그리고 모처럼만에 훈련병들의 생활을 엿보면서 훈련병시절을 추억하고도 싶어 그렇게 오고 싶어 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오자마자 얼차려 부여로 시작되었다. 군장을 메고서 선착순을 시키질 않나, 오리걸음을 시키질 않나. 특히 오리걸음을 할 때는 어찌나 힘든지 쓰러져 죽는 줄 알았다. 내 군 생활 얼차려 중 최악의 일차려였다. 그렇게 한번 호되게 당하고 났더니 대답 소리도 커졌고 행동도 즉각적이 되었다. 역시 우린 어쩔 수 없는 군인인가 보다. 여기 와서 신교대 아이들을 보았더니, 솔직히 불쌍한 맘..

두 가지 하극상 02년 7월 4일(목) 몹시 더움 이번 달의 가장 큰 화두는 대대 ATT이다. 페바에 와서 처음 하게 되는 훈련이고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1년 5개월이란 군 생활 가운데 처음 받아보는 훈련이다. 그래서 걱정이 태산이지만 지금껏 해왔던 소규모 훈련들로 내실을 다져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잘하리라 은근히 기대해본다. 그래서 오늘은 예비 훈련 겸 전투모형훈련을 시작했다. 준비태세, 거점 이동, 전투 휴식 및 지형 정찰, 공격 후 복귀, 이게 바로 내일 00시까지 있을 훈련의 일과표지만 조금 어긋나기 시작했다. 화학전 하 준비태세는 08시에 예정대로 했으나 바로 거점으로 이동하지 않고 ‘재해 예방 공사’ 때문에 주둔지에서 배수로를 파야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소대 전원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진지 공사와 진심 없는 말 02년 4월 6일(토) 폭우 이번 주부터 다음 주까진 진지 공사 기간이다. 폐바 첫 진지 공사이기에 대단히 걱정했던 게 사실이다. 여기 FEBA는 GOP와는 달리 빡세다는 진지 공사였기에 걱정이 절로 들더라. 지금에서야 느끼는 거지만 GOP 진지 공사는 진지 개척이 아니라 진지 청소 정도의 작업이니 그만큼 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FEBA의 진지공사는 진지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고 밤까지 진행되기에 그만큼 힘들 수밖에 없다. 역시 우리들의 예상대로 빡센 일주일이었다. 5시에 일어나 8시정도부터 작업에 들어가서 저녁 6시에 접어 들어서야 끝나는 일정이다. 내리쬐는 뜨뜻한 햇살을 등지고서, 또는 앞대고서 그 무수한 땀방울들을 흘려가며 대지의 끊임 없는 생명력에 맞서 새로운 방벽을..

5분대기조 02년 3월 24일(일) 맑고도 바람 붐 3월도 이제 끝을 항해 치닫고 있어. 이제 얼마 안 있으면 4월이라는 전혀 다른 시간으로 접어든다. 분명 그다지 시기 상으로 다를 게 없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 좀 다른 시간에 치닫게 된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하고 내 꿈을 새롭게 모으기에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언제나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되어지는데, 그렇게 시간마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그 시간에 나의 희망과 꿈을 투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반가울 뿐이다. 시간이란 걸 만들어 놓고 그 절기 절기로 나누어 놓은 최초의 아무개에게 경의를 표할 뿐이다. 지금은 5대기(5분대기조) 기간이다. 그래서 오늘은 주일인데도 교회에 가지도 못하고 계속 내무실에 대..

페바의 첫 일주일 적응기 02년 3월 11일(월)~17일(일) 타임라인 오전오후03.11(월)시범식 교육(위병소, 탄약고, 근무요령, 5대기 요령, 매복요령)중대 뒷산으로 부엽토(腐葉土) 모으러 감. 03.12(화)299고지, 거점 지형 방문(7R 1BN)Co 앞 뜰 족구장 정비(능력에 비해 의욕만 앞서서 암구호판 만들다 욕 먹음)03.13(수)국지도발FTX 진지 방문 축조(2Co 옆 도로 뒤)2P 대청소, 간부 축구로 인한 자율시간(생일 PX 파티, 늦게 상남가 편지와 빵을 줌)03.14(목)우발 직계 지역 방문(동송고지, 아이스고지 후방)도보로 2차 지연 진지 방문(19BN 후방 → 77포대 → C3 오르기 전 진지)의욕이 인정 받지 못함(식기, 임무 숙지 안 함, 암구호 카드)03.15(금)지..

두려움에 대한 두 가지 반응 02년 3월 5일(화) 구름 많음 요즘은 겨울이 아니라 봄인 것만 같다. 분명 시기상으로 틀림없이 꽃 피는 봄이 왔지만, 작년 3월의 스산하고 매서운 바람이 불고 희뿌연 눈이 흩날리던 때와 비교해보면 너무 생판 다르기에 작년의 철원이 꿈인양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 요즘 새벽의 온도라 봐야 영하 5도 밖에 안 내려갈 뿐더러 날씨가 흐려지더라도 눈 내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춥디 추운 겨울이 다 지나고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이렇게 선뜻 찾아와서 한 편으로, 기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 철원의 겨울다운 겨울을 나지 못했음이 못내 섭섭하기도 하다. 이렇게 변화된 날씨에 맞추어 우리의 생활도 변했다. GOP에서 FEBA로의 철수가 그것인데, 사실 저번 주까진 그다지 실감..

사단장님과 설날을 보낸 사연 02년 2월 12일(화) 맑음 2월 12일은 민족 대명절 설날이었다. 이 날은 보통 설에 비해 아주 특이한 날이었는데 기본적으로 군에서 보내는 첫 번째로 보내는 설이란 게 그것이며 특히 사단장님하고 동석 식사를 하며 새해를 열었다는 게 그것이다. 새해 첫날에 전망대에서 해돋이를 본다며 사단장은 1월 1일에 우리 부대에 오신다는 거다. 그래서 아침 식사를 우리 중대 대기 막사에서 하신다는 것이었는데, 그걸로 인해 우리들은 동석 식사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단장님을 맞이한다는 건 그렇게 그저 친구를 맞이하듯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사단장이 지나가는 곳에서 지적을 받아선 안 되기 때문에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청소하고 또 청소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린 며칠간 대기..

첫 폭설에 바뀐 감정 01년 12월 1일(토) 폭설 그렇게 눈이 많이 내린다던 철원에 눈이 내리지 않고 있었다. 작년엔 11월 초순에 첫 눈이 왔다던데 여긴, 아니 올해는 이상하게도 눈이 내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작업이란 의미 밖에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은근히 군에서 맞이하는 첫눈이니만치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사실 신교대에 도착하던 날에 눈이 엄청 내리긴 했다). 그렇게 나름의 조바심을 느끼게 하던 눈이 지금 밖에 엄청 내리고 있다. 그것도 화려한 신고식이라도 하려는 듯 진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내리고 있다. 싸리눈이었기에 쌓이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그렇게 작은 눈들도 계속적으로 많이 내리다 보니 어느덧 보지 못하던 사이에 쌓이기 시작했다..

연탄 갈이 01년 11월 5일(월) 어둡고 비내림 11월 1일(목)엔 비가 부슬부슬 온 터라 춥지도 않아서 근무를 서기에 정말 좋았다. 영상 8℃에서 그날의 근무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11월 2일의 근무는 무엇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11월 2일(금)은 후반야 근무였다. 전원투입 때도 왠지 어제완 다른 차디찬, 아니 매서운 추위가 느껴졌지만 말이다. 전반야 말대기였던 민호가 “영하입니다.”라는 말을 되뇌이며 있었던 건 암담한 현실을 직시해줬던 것이리라. 그 말에 이어 부소대장님은 모든 동계용품을 다 갖춰입으라고 말씀하셨다. ‘그 정도로 춥단 말이던가!’라는 생각을 하며 처음 입어보는 방상내피(깔깔이와 조끼), 방상외피(스컷파카)와 방하내피(깔깔이 바지), 방하외피(건빵바지..

일체유심조 01년 9월 16일(일) 매우 더움 오늘 교회에 가서 잠언 4장 20~23절 말씀으로 설교를 들었다. 내 아들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주의 깊게 들어라. 그것을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네 마음에 깊이 간직하라. 내 말은 깨닫는 자에게 생명이 되고 온 몸에 건강이 된다. 그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여기서부터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 현대인의 성경 이 구절의 핵심은 ‘모든 관념적 생각은 다 마음에서 나온다’라는 거였다. 원효대사의 명언, 그건 당연하다는 생각에 기반한 이야기다. 해골 바가지에 담겨진 물(썩은 육수)과 바가지에 담겨진 물(이슬), 둘 사이엔 엄청난 괴리가 숨어 있다. 썩은 육수는 감히 먹으려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이슬은 감히 안 먹으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

빗방울에 담긴 추억담 01년 8월 4일(토) 매우 더움 저번 주 토요일부터 그렇게 무덥게 내리쬐던 하늘에서, 빗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지금까지 주말이면 늘 내렸던 비와는 달리 어두우리만치 아련한 추억을 던져줄 전주곡일 뿐이었다. 그렇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쉽사리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긴 태풍의 영향에 의한 비였으니 쉽게 그치는 게 이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날이 아니었다. 주일 저녁, 전반야(前半夜)였다. 다행히도 비는 내렸다 말았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근무는 꽤나 수월한 편이었다. 하지만 합동 근무 시간 몇 분 전부터 감히 맞설 수 없을 정도의 비가 들입다 퍼붓기 시작했다. 그 비로 인해 우의를 입었음에도 전투복은 다 젖었고 전투화는 신은 게 더 불편할 정도로 물바다가 되어..

휴가 후에 달라진 것 01년 6월 31일(토) 어두움 백일휴가를 갔다가 소대에 도착하고 나서 놀라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휴가를 가기 전에 분대장님께서 “칠월 초나 유월 말에 신병을 받을 거니깐. 그때까지 적응 잘 해둬라”라고 말씀하셨기에 난 정말 그런 줄만 알고 휴가 복귀하였지만, 막상 도착했을 땐, 이미 우리 분대에 신병, 내 막내표를 떼게 해줄 아이가 들어와 있었으니까. 기분은 무지 좋았다. 내 후임인 용준이는 부산에 사는 아이란다. 박형국 일병님하고 같은 곳에 사는 아이이니만치 내가 휴가 가 있는 동안 들어온 용준이에게 참 잘해줬을 것이다. 19일에 홍민석씨가 나갔다. 나랑 싫으나 좋으나 같이 근무 서면서 애증을 모두 겪어온 사이이다. 사실 그분이 나갈 땐, 아쉬운 마음이 꽤 많이 들었..

Lee 박사 Live concert 1집 01년 6월 소초의 날 행사 때 [디스크 자키 모션을 취하며] 디비디비딥~ 딥딥딥! 아싸 가리가리 고추 가리> 해 저문 소양강에 우씌~ 우씌~ 우씌~> 황혼이 지면 아싸 가리 가리 고추가리> 외로운 갈대밭에 우씌~ 우씌~ 우씌~> 슬피우는 두견새야! 새야~ 새야~ 새야새야~ 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디비디비딥~ 딥딥딥!> FM Morning Date 명사의 한 마디 시간입니다. 오늘은 전주대 한문학과 교수 건빵 교수를 모셔놓고 명사의 한 마디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삼보다 산삼이 좋고 산삼보다는 중삼이 좋고 중삼보다는 고삼이 좋다더라~ 아~ 아!” 지나가던 여고생을 붙잡아 놓고 달콤한 사랑 얘기 들려줬더니, 아 글씨 그 년이 하는 말이~(느..

3주 만의 종교활동과 깨달음 01년 5월 6일(일) 구름 낌 오후 4시 9분 자대에 온 지 3주 만에 교회에 갔다. 아주 일상에 찌들어서 그저 주일이기에 교회에 찾아갔던 나의 신앙심은, 무려 3주나 교회에 가지 못하게 되자, 대단한 변혁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역시 가끔씩은 일상성을 벗어나 본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는 크나큰 깨달음을 안겨주곤 한다. 그렇게 교회에 가지 못하다 보니,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강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 강렬해진 신앙심을 가지고 찬양할 수 있고,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목소리 높여 기도할 수 있었다. 그동안 못해왔기 때문인지 대단한 기뻤고 그 순간만으로도 좋았다. 오늘 설교 말씀은 ‘가정 안의 행복은 물질적인 이상으로 충족될 수 없으며, 오로지 사랑, 격려 속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01년 4월 22일(일) 화창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去言美, 來言美]’는 속담은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말이다. 이 말이 속담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생각으로도 쉽게 납득될 말이다. 좋은 말을 해줬는데도, 거기다 대고 욕을 바가지로 해댈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이런 일반적인 원칙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난 두 가지 말실수를 하였다. 그 첫째는 강정명 병장님께서 옷을 꿰매고 있는 나를 보고서 “아직까지 바느질 하냐?”라고 물었을 때, 난 장난을 치고 싶어 “전역하는 그 날까지 할 것입니다.”라고 농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에 대한 반응은 참으로 상반되는 것이었다. 강정명 병장님에겐 ‘다른 일을 다 하기 싫고, 오로지 바느질만 하겠습니다.’라..

두 가지 지켜야 할 것 01년 4월 11일(수) 비 오고 추움 군생활 한 달 만에 얼마나 느낀 게 많겠느냐만은, 그래도 훈련병 생활을 마칠 정도의 짬밥을 먹어가는 가운데 깨달은 것이 있기에 이곳에 적어보고자 한다. 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군기(軍氣)일 것이다. 군기를 확립하기 위해선 무엇 무엇이 필요할까? 그 첫째는 마음가짐이다. 한 순간, 한 순간 ‘열심히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가운데 그렇게 자기를 움직여 가는 것이다. 늘 한 가지 관념을 지속해나간다는 건 지루함으로 인해 불가능해질 뿐 아니라, 적응과 그에 대한 더 큰 시련을 이겨 나가려는 다잡음의 되풀이 형식 사이에서, 더 큰 시련이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면 저절로 해이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든 것이기에..

소리엘 찬양에 위로받다 01년 4월 1일(일) 화창 드디어 군에 온 지도 두 달이 지났다. 물론 달수로만 그렇다는 것이고 2월 마지막 주에 입대했으니 6주째에 접어든다. 오늘은 주일이기에 교회에 갔다. 벌써 3주째 교회에 나가는 것이지만 오늘은 좀 특별한 주일이었다. 입대하기 전에 열심히 들었던 ‘주께 맡기는 자♬’라는 노래가 교회 스피커를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너무나 듣고 싶었던 그 곡을 들으니, 평소엔 느끼지 못했던 만족감을 느꼈고 행복과 함께 감사를 느꼈다. 주를 찬양하므로 주를 따르리라 주와 함께 가는 것자기를 부인하므로 삶을 드림으로 거듭난 모습주를 영접하므로 주께 맡기는 것 주께서 인도해자기의 십자가 지고 주를 따라 가리라 세상의 그 어떤 부와 명예도 주보다 귀할 수 없어이전에 나 몰..

사람의 한계(특공대를 보고서)人間之限界(視於特攻隊) 01년 3월 25일(일) 오늘 인간극장> ‘특공대’편을 보았다. 今日에 視於人間劇場之特攻隊하다 혹한의 겨울 훈련 중에 인간의 한계를 생각해보다.惑寒之冬季之訓練中에 想人間之限界하다 인간의 한계는 없는가? 한계와 한계 없음의 차이는 무엇인가?與人間之限界乎아 何差限界和非限界아 그 차이는 체력에서 비롯된 한계가 아니요, 의식에서 비롯된 한계이다. 其之差는 非於體限이오 差於意限이라 만약 의식이 바르고 견고하다면 아무리 육체가 되게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걸 이겨낼 수 있고若猶意之正而堅이오 深苦之肉이라도 可以克己오 의식이 바르지 못하고 얄팍하다면 몸이 편하고 즐거울지라도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한다. 若猶意之不正而薄이면 安樂之體라도 不可以克己라 그렇기에, 하물며 핑계댈..

억눌린 영혼들의 주먹다짐 01년 3월 19일(월) 주일이었던 어제 처음으로 더위를 느낄 정도로 무더웠다. 하지만 어제와는 생판 달리 안개 낀 새벽을 빌미로 어둑어둑한 하루가 계속 전개되었다. 그에 맞추어, 3주차의 주된 훈련은 K-2 소총 교육과 실전 사격 훈련이다. 이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이 맞물려 오늘 하루, 아니 이번 한 주에 대해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현실은 사실일 뿐이었다. 사실 오늘 훈련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 그저 저번 주에 했던 K-2 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똑같은 훈련을 반복했기에, 힘들었다면 여전히 PRI(Preliminary Rifle Instruction, 무의탁사격)가 가장 힘들었을 뿐이었다. 다만, 날씨의 저조증이 우리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했으며, 자기의 의지가 전혀 관여..

종교와 초코파이 01년 3월 11일(日) 화창한 날 입대 후, 처음으로 교회에 간 날이다. 어제 우리의 조교인 손병장님께서 “군에서 하는 게 어디 종교 활동이냐? 그저 먹을 것을 먹기 위해서 가는 것이지”라고 말했다. 그건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말이었으며, 종교의 본질성이 훼손된 예였다. 예배를 9시가 좀 넘은 시간에 드렸다. 찬양 시간일 때만 해도, 나도 그랬지만 아이들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하지만 설교시간이 다가오자, 아이들의 눈뿐 아니라, 나의 눈까지도 썩은 동태마냥 게슴츠레해졌다. 눈이 스르르 감기며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며 연거푸 인사를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오늘 새벽에 2시간 불침번을 서고 30분을 빨래하고 목욕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제야 현식이가 그럴 수밖에 ..
사람여행 목차 발길 닿는 대로 사람을 찾아 떠난 여행 1. 떠나기까지 1.10(월): 여는 글, 선언문 길의 가능성 국토종단과 사람여행의 차이 1.10(월): 사람여행에 대해 정의하기 갑작스럽되 예정된 사람여행 과정으로써의 사람여행을 바라며 곱지 않은 시선과 불안을 인정할 때 비로소 길이 보인다 3.06(일): 두 번째 떠나는 도보여행의 비판에 대한 해명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르기에 떠나는가? 거리를 둘 때 비로소 파랑새를 알게 된다 국토종단과는 다른 경로로 여행을 떠나려는 이유 걸은 만큼 그 만큼 나의 삶이 된다 3.15(화): 생각대로 살기 위해 떠나다 듣기 좋은 말이, 실천하긴 어렵다 사람여행, 나를 전면에 내세우고 가는 여행 3.16(수): 바람 불고, 우박이 떨어져도 날기 위해선 날갯짓을..

닫는 글, 공감능력이란 숙제를 안고 길에서 살아간다 2011년 3월 28일에 부산으로 떠나면서 시작되었던 사람여행은, 4월 30일 김제에 도착하면서 끝이 났다. 한 달의 시간을 오롯이 밖을 돌아다니고 헤매며 가능성을 탐구하고, 나란 사람에 대해 알게 되었다. 09년의 국토종단과 11년 사람여행의 차이 작품 하나가 만들어졌다. 건빵 주연, 건빵 각본, 우연한 연출쯤 되는 작품이다. 난 이 작품을 한마디로 정의해 보련다. ‘사람여행 34일과 21명의 인연선(因緣線)’이란 제목이 제격이다. 순간순간 깨어있는 감성으로 다가가고 맘껏 느끼진 못했다 할지라도, 그 시간들을 가슴속에 새기고 기록을 남겼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 자평하고 싶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무언가를 만들 듯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하지만 곰..

안녕! 사람여행, 안녕! 문화여행 지금 내가 걷는 길은 26번 국도길 ‘번영로(누굴 위한 번영인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유명한 길이다. 전주-군산간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기면서 이 길은 거의 잊혀졌다. 번영로를 걸으며 역사를 생각하다 이 도로로 걷기 전에만 해도 2차선 도로이며 차들이 별로 다니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막상 이 도로로 들어서니 시외버스도 많이 다니고 차량의 통행 대수도 많더라. 내 기대가 깨졌지만 이 길로 걷는다는 게 의미가 있었다. 이 길은 역사적인 길이다. 일제시대 때 쌀 반출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기획했던 도로이기 때문이다. 이 길에 대해 시대상을 알고 싶은 사람에겐 『아리랑』이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길가에 심어진 벚꽃도 그런 이유 때문에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군..

사람여행의 마지막 여정 깼다 잤다를 반복했다. 새벽 기도 후에 좀 더 누워있다가 6시 반에 일어났다. 밖에 비는 오지 않고 바람만 심하게 불고 있었다. 더 누워 있어봤자 잠은 못 자고 뒤척일 것 같았고 비가 오기 전에 여행을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준비가 끝나고 문을 열자마자 바람이 어찌나 센지 문이 저절로 열어젖혀 지더라. 힘을 다해 문을 닫고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다. 오늘은 호남제일문이 있는 곳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갈 예정이다. 호남제일문은 차를 타고 지나면서 봐왔던 터라, 걸어가면서 보면 색다른 기분이 들 것이다. 단양 시내를 벗어날 때도 단양임을 알리는 팻말이 있었는데, 그곳은 나와 상관없는 곳이라 별 느낌이 없었는데, 그때와는 다른 느낌일 것이다. 바람을 벗 삼..

마지막 여행일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이유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27분이다. 마지막 날이니 설레여, 감회가 특별해서 깨어났냐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내 인생에 있어 유일한 날이기 때문이다. 한 달이 넘도록 진행했던 사람여행을 마무리 짓는 날이니 감회가 없을 수 없다. 새벽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잠에서 깨다 하지만 아무리 유일하다 해도 달콤한 잠까지 물리치며 일어날 이유는 없다. 실상 이유는 딴 곳에 있었으니 말이다. 두둥~ 그건 바람에 흔들거리는 컨테이너 박스 이야기였던 것이다.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고 아는지. 모래 위에 지은 누각을 말한다. 기초가 없이 그냥 지은 집이기에 약간의 바람만 불어도 위태위태할 뿐만 아니라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런데 뜬금없이 왜 이런 이야기냐고? 오늘 내가 그 ..

아픔이 스민 호남평야와 아픔이 키운 군산을 걷다 군산시청 근처를 걷고 있는데 점심 시간이 되었다. 그때 눈에 딱 중화요리집이 보여서 들어갔다. 들어가서 삼선볶음밥을 시켰는데 처음엔 “1인분은 안 되요”라고 말하더라. 쟁반짜장 같이 애초에 2인분으로 나오는 음식의 경우에 이런 말을 듣는 건 이해가 되지만 볶음밥이 1인분이 안 된다는 건 처음 들어봐서 당황했다. 그래서 뻥찐 상태로 다른 메뉴를 찾고 있으니, 주방과 속닥속닥 얘기하며 해주겠다고 하더라. 삼선볶음밥이 이렇게 귀한 음식인 줄 처음 알았다. 하지만 막상 기다렸다가 먹는 보람은 있었다. 밥알 하나하나가 기름코팅도 잘 되었고 해산물도 풍부했으니 말이다. 아픔이 스민 호남평야와, 아픔이 키운 군산 점심을 먹고 배가 부른 상태로 걷는 기분이 정말 좋다. ..

새만금에 삼성이 투자한다는 희소식이 들리다 군산에 오면 이성당이란 빵집에 가고 싶었다. 대형 제과점 일색인 풍토에서 지역 제과점이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뉴스감이었고 식빵이 맛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확인하고 싶었다. 이성당아 다음에 보자 그런데 사람들에게 위치를 물어보고 나서는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왜냐 하면 이성당은 군산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어 거의 10㎞를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군산에서 하루 머물 생각이었다면 중심지로 들어가 숙소를 정하고 근대 유적지를 관광하는 것도 괜찮았을 것이다. 내일은 어떻게든 여행을 마치고 싶은데 오늘 군산에서 묵게 되면 내일은 무려 37㎞를 걸어야 하니 너무도 강행군이 될 것 같아 오늘은 이성당만 들러 야채빵을 사서 점심으로 먹고 익산으로 빠질 생각..

한 달만에 전북으로 복귀하다 오늘, 그리고 내일이면 한 달간의 대장정이었던 이 여행도 끝난다. 걷는 것도 좋았고 낯선 장소를 헤매는 것도 좋았다. 여행이 끝나면 좋은 점, 그리고 아쉬운 점 하지만 잠자리를 구하러 불안에 떨어야 하고 몹쓸 존재가 된 느낌으로 거부당해야 하는 건 싫었다. 초반엔 그런 것마저 태연히 넘길 수 있었는데 여행기간이 길어지고 피로도가 높아질수록 심한 압박으로 느껴졌다. 그건 내 맘 속에 여유가 점점 없어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쨌든 여행이 끝나가며 기쁜 한 가지 이유는 잠자리를 구하는 힘듦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편안한 내 방에서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이 두 다리 쭉 펴고 자도 된다고 생각하니 그게 행복할 뿐이다. 하지만 딱 그만큼만이다. 그것 외엔 모든 게 아..

교회에서 신세를 졌으니 교회에 다녀야죠 오늘은 많이 걷지 않고 바로 서천읍에 들어왔다. 재림교회에 찾아갔으나 당진에서처럼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더라. 교회에 낯선 사람을 들이기가 그렇게 힘들다고 하시며 거절하셨다. 지금껏 여행하면서 여러 교회를 지나쳐 왔지만 흔쾌히 승낙해주는 경우도 있었고 오늘처럼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들어주기에 어려운 부탁인 양 완만하게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낯선 사람을 들일 순 없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다. 남을 자게 해주는 일은 쉬운 일인가, 어려운 일인가? 이것 자체가 쉬운지 어려운지는 어디까지나 목회자의 마음가짐에 달린 일이라고 서산 부석면으로 걸어갈 때 얘기했었다. 이처럼 생각에 따라 쉬운 일도 어려운 일이, 어려운 일도 쉬운 일이 될 수 있으니 케바케(case by case..

비인해수욕장 길을 따라 가며 희망을 꿈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재보선 결과부터 봤다. 과연 정권 심판인가, 옹호인가? 최대의 관심 지역이었던 성남과 강원도에서는 심판을, 김해에선 옹호를 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파장이 있을 듯싶다. 재보선 결과, 희망을 꿈꾸다 하지만 정작 나의 관심이 집중된 곳은 순천이었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호남에서 비민주당, 그것도 민주노동당 의원이 당선되었다니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호남에서 민주당의 신화가 깨져야만, 그래서 진보 정당도 당선될 수 있어야만 혁명의 지역으로서 내실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영남에서 한나라당에 몰표를 줬고 그에 따라 영남 위주로 지역 발전을 시키자 호남은 반대급부로 줄곧 민주당만을 뽑았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영..

거절을 못하는 사람 잠자리를 구할 때 대부분의 경우는 바로 승낙을 해줬다. 하지만 거절을 당할 땐 내상을 입어 좌절하게 됐다. 부탁하는 입장에선 아무래도 거절당한다는 게 힘들게 걸어와 쉬고 싶은 마음을 꺾는 것이기에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내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외에 부탁을 들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로 하겠다. 부탁을 들은 입장에선 당연히 승낙을 할 것인가, 거절을 할 것인가의 두 가지 선택지로 나뉜다. 하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가 보면 ‘거절을 하고 싶은데 승낙을 하는 경우’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마음과 행동이 다르게 나온 경우일 텐데, 왜 이런 경우가 생기는 걸까? ‘거절의 심리학’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거절하는 것을 죽는 것만큼이나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

대천을 지나며 유령아파트를 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4.27 재보선이다. 강원도 영월을 지날 때, 강원민방 라디오를 들으며 강원도민이 얼마나 이 선거에 관심이 많은지 엿볼 수 있었다. 4.27 재보선에 대해 지금껏 강원도엔 보수의 바람만 불었었다. 아무래도 접경지역이다 보니 북한의 이슈에 가장 민감한 곳이며 그에 따라 반공(反共)을 중시하는 보수당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작년 지방선거에선 도지사와 교육감 모두 보수 계열의 인사를 뽑지 않는 이변을 연출했었다. 그러니 올해 재보선 선거에서 강원도지사에 대한 관심사가 높은 건 당연하다. 호남이 늘 경상도에 비하면 소외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가장 많이 소외된 곳은 누가 뭐라 해도 강원도였다. 바로 그런 소외감이 작년 지방 선거에서 분출된 것이리라...

덤으로 하는 여행 지금부터 하는 여행은 덤이라 생각한다. 누군가 병에 걸리거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후 ‘이제부터 나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삶’이라 생각하며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삶을 살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종교에 귀의하여 종교적 신념에 따라 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지금껏 받아온 것을 환원하기 위해 봉사하며 살기도 한다. ‘덤’이란 생각 자체가 삶의 방향성을 바꾸는 요인이 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덤으로 하는 여행도 기존에 해왔던 여행의 방식과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과연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하겠다는 것일까? 자린고비가 아닌 진정 즐기는 여행으로 지금까지는 돈을 아끼기 위해 배고픔과 추위, 거절의 부담도 끌어안은 채 여행을 했다. 최대한 돈을 쓰지 않으려..

시작만큼 중요한 제대로 된 마무리를 위해 이젠 여행에 완전히 적응됐다. 걷는 것도 좋고 낯선 공간ㆍ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다. 뚜렷한 목표 없이 맘껏 걸으며 먹고 싶은 것도 먹는다. 진정 여행다운 여행이란 마주치는 환경ㆍ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리라. 여행은 완성을 지향하지 않는다. 미완성의 반복일 뿐! 그런 면에서 난 아직도 여행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조금씩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여행의 맛도 알아가고 그에 덩달아 인생의 맛도 느껴가는 것이겠지. 여러 번의 실패를 통해 조금씩 성공에 가까워지듯, 여행도 여러 여행의 경험을 통해 참다운 여행의 맛을 느끼게 되는 걸 테다. 그러므로 완벽한 여행을 하겠다며 앞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떠나고 싶으면 떠나면 된다. ..

교회의 공연을 관람하다 분명한 건 잠자리를 구할 때 거절당했다고 끝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거절한 사람의 입장에선 되게 심기가 불편할 것이다. 그렇다면 저주라도 당한다는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전혀 그런 말이 아니다. 거절한 사람이 문제라는 말이 아니라 이 경우 초점은 거절당한 사람에게 있다. 거절당했다고 화낼 필요도, 섭섭해 할 필요도 없다. 분명히 잠자리가 안 구해질지 몰라 잔뜩 긴장하고 두려울 테지만 그것마저 의연히 넘어서면 분명히 더 좋은 계기가 온다. 새옹지마 오늘만 해도 그랬다. 서부면에 도착하자마자 언덕 위에 멀리 보이는 교회가 눈에 띄었다. 지나가며 다른 교회도 보였지만 이미 그 교회를 점찍었기에 그리로 향했다. 낑낑거리며 언덕을 올라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 건물 외..

서산시의 남해를 보며 홍성으로 향하는 길은 한산한 길이다. 96번 지방도에 접어드니 서해가 보인다. 그 길을 따라 가면 A지구 방조제를 지나 홍성으로 가게 된다. 최고의 데이트 코스, A지구 방조제 오늘은 일요일이라 바다로 나들이 나온 연인들이 많이 보인다. 방조제엔 산책길도 조성되어 있어 바닷바람을 맞으며 낭만을 향유할 수 있다. 시원하면서도 약간 추운 듯한 바닷바람과 약간은 비릿한 바다내음, 드넓게 펼쳐진 서해안의 광경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고 있노라면 정말 행복할 거 같았다. 연인들이여 둘만의 추억을 만들고 싶거든 서산의 A지구 방조제로 오시라. 서해인가? 남해인가? 그런데 여기서 생뚱맞은 질문 하나. 지금 내가 보는 바다는 서해인가, 남해인가? 일반상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 자체가 어이..

부활절 아침을 부석감리교회에서 맞이하다 한기가 올라오지 않도록 철저하게 막았고 우의까지 입고 잔 터라 별로 추운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문제는 자야 할 곳이 기도실이라는 사실이다. 낯선 사람이 누워있는데 무섭지도 않은지 할머님이 들어와 기도를 하시는 거다. 그 태연한(?) 행동에 오히려 내가 무서울 지경이었다. 몇 분 안 되어 나가셨는데 글쎄 미닫이문을 닫지 않고 가신 거다. 찬바람이 들어와 냉방을 더욱 얼음장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몇 분 후에 또 다른 할머니가 들어오시려다가 나가셨다. 그런 상황이 연거푸 반복되니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 부활절 새벽기도에 억지로 참석한 사연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잤다. 그런데 문제는 새벽기도 때에 있었다. 원랜 새벽기도를 이곳에서 드렸지만 오늘은 부..

여행자의 요구를 거절하게 된 목사님의 사연 이번 주가 고난 주간이랬나. 이런 주간엔 오히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잘 받아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고난에 동참하는데 어찌 고난을 자처하는 사람을 나몰라라 하겠는가. 그렇다고 그런 심리를 역이용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받은 만큼 나누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받았다고 해서 평생 그렇게 살진 않을 것이기에. 더욱이 아침에 찜질방을 나서며 ‘당당하고 활기차게 말해보겠다’고 다짐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나오며 두 군데 교회에 이야기 해봤는데 모두 거부당했다. 세 번째 교회에서 가까스로 허락되다 두 번째 교회는 분위기가 좋았다. 벨을 누르니 사모님이 나오셨는데 물리치지 않으셨다. 사모님은 목사님이 잠시 외출 중이니 올 때까지 기다려보라고 말씀하셨다. 그..

현실에 끌려다니지 말고 여행에 충실하라는 조언 서산으로 향하는 길에 ‘병천순대집’이 눈에 띄었다. 이미 순대의 본향인 병천에서 맛본 경험이 있는 터라 별로 고민하지 않고 들어갔다. 사람여행⑳: 현실인이지만 낭만을 품고 사시는 아주머니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별로 없다. 여기 순대국밥은 맑은 국물의 순대국밥이다. 맛은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아침도 먹지 않고 출발한 터라 순식간에 먹었다. 다 먹고 아주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부엌에서 양치질을 했다. 그때 아줌마는 큰 배낭을 보시더니 도보여행 중이냐고 물으신다. 보통 이런 경우엔 “등산 가시나 봐요?”라고 묻는 게 일반적인데 정곡을 찌르는 물음에 화들짝 놀랐다. 국토종단 때도 양평에서 식당 아주머니와 이런 식의 대화를 했었는데, 다른 듯 같은 풍경이다. 그래서 그..

즐거운 도보여행을 하려면 옛 도로로 가자 찜질방에서 6시에 일어났다. 몸이 조금 무겁긴 해도 마음만은 상쾌하다. 오늘은 어제 못 걸은 것까지 실컷 걸어야지. 짐도 재정비하고 옷매무새도 가다듬고 7시쯤 찜질방을 나섰다. 지도 과신 말고 사람 홀대 말자! 막상 찜질방에서 나오고 보니 위치 파악이 안 되더라. 어제 부랴부랴 사람들에게 위치를 물어보면서 찾아온 터라, 더욱 헷갈렸다. 어쩔 수 없이 걸어온 길을 역추적하며 사람들에게 방향을 물어봤다. 찜질방에서 출발하기 전에 지도를 살펴보니, 서산으로 가는 길은 4차선 국도 밖에 없어 고된 여행길이 될까봐 걱정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알려준 길은 2차선의 전혀 생소한 길이었다. 지도를 펴놓고 살펴보니, 도로명도 없는 길이더라. 아마도 서산으로 향하는 구도로인가 보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다 어젠 아무리 생각해도 힘겨운 날이었다. 겨우 16.8㎞를 걸었기에 4시간 정도 밖에 걷지 않은 셈이지만, 비 내리는 날씨라 기분도 그랬고 잘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에 거부까지 당해 충격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론 날씨가 흐릴 수도,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건 잘 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여태껏 잘 수 있도록 도와준 경우가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말에도 어폐가 있다. 각 교회마다 목사님들은 다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 서로 다른 목사님들이 자기만의 반응을 보인 것뿐이다. 그렇다면 역시나 목사님 성향에 따라 반응이 달랐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고, 상황에 따라 반응도 다르다 아직도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기에 목사님의 얼..

재림교회에서 최초로 거부 당한 사연 재림교회에서는 한 번도 거부당한 적이 없다. 다들 친한 사람을 맞이하듯 성심성의껏 대해주셨다. 그런 대우는 나에 대한 신뢰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재림교회 특유의 분위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열린 마음으로 맞이해주는 재림교회 특유의 분위기. 여지가 아예 없던 거절법 그런 기대감 때문에 당진에 와서도 다른 교회를 찾기보다 재림교회부터 찾은 것이다. 어려운 길을 가기보다 쉽고 편한 길을 가기로 맘 먹은 때문일까. 이번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일거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열심히 걸어서 교회에 찾아가 사택 앞에서 목사님을 계속 불렀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다. 분명히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지는데도 말이다. 아무리 이런 ..

빗길을 걸어 당진에 오다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일어나자마자 비가 오나 안 오나 확인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창문을 여니 사방이 어두웠고 비가 많이 내리고 있더라.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빗속 여행을 하게 되는 셈이다. 비 오는 날 빗길 여행을 걱정하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달갑진 않았다. 여름 날씨처럼 습하고 무더웠다면 오히려 빗속 여행이 기대됐을 것이다. 하지만 며칠 동안 서늘한 바람이 불어 외투를 입지 않고 걸으면 춥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비를 맞으며 걷는다면 몸서리 처지도록 한기가 온몸을 감쌀 것이기에 더욱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또 하나 걸리는 건 오늘 걸을 길도 차량 통행이 많은 4차선 도로라는 것이다. 차뿐만 아니라 차가 튀긴 흙탕물까지 신경 쓰며 가야 한다니, 빗속의 운치는커녕 빗속..

빗소리를 듣고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움에 대해 오늘 같은 날은 가만히 있고 싶다. 가만히 앉아 하염없이 먼 곳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비 오는 날엔 무언가 하지 않아도 좋다. 내리는 빗소리를 가락 삼아 마루에 누워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성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인가? 권력욕을 계단에 오르는 것으로 비유하다 그건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도, 남에게 떵떵거릴 지위에 올라 있어도 결코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매우 어긋나는 발언인 셈인데, 왜 그런지 『열하일기(熱河日記)』 「일신수필(馹汛隨筆)」를 보며 생각해보자. 한참 동안 서서 바라보다가 내려오려 하니 아무도 먼저 ..

잠자리를 거절할 때 나오는 웃픈 말 두 가지 부탁을 거절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아무런 친분도 없는 사람이, 그것도 갑자기 나타나 잠자리를 부탁한다면 그건 더 거절하기 어렵다. 그러니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대비가 없기에 가식적이지 않은 진심이 나온다. 그런 얘기들 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웃픈 말들이 있었기에 지금부턴 그 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교회의 씁쓸한 유머 하나 하나는 “우리 교회 말고 옆에 큰 교회도 많은데……”라는 말이다. 내가 보기엔 꽤 규모가 큰데도 다른 큰 교회를 핑계 대는 것이다. 작은 교회는 사람도 제한해서 받는가 보다. 그렇다면 새신자가 오더라도 교회가 작아 받을 수 없다며, 큰 교회로 가라고 하는 걸까. 우리나라 큰 교회들이 더욱 커지고 작은 교회들이 더욱..

잠자리 부탁에 대응하는 사람의 4가지 유형 탐구 국토종단과 사람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사람들을 만나 잠자리를 구하다 보니, 대응하는 사람에 대한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가 되더라. 지금부턴 그 유형을 살펴보기로 하자. 네 가지 유형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자면, 당연히 잘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는 분과 거부하시는 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런 분류는 여행을 해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분류이기에 굳이 장황하게 썰을 풀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좀 더 세밀하게 분류할 필요가 있다. 각 유형에 대해 두 가지로 다시 분류가 가능하다. 허락해주시는 타입을 두 가지로 나누면, 허락해주긴 하나 자기가 해야 할 일만 하고 일절 관심 없는 분과 한 번 만나고 헤어질지라도 밀접하게 관계 맺고 이것저것 이야기 ..

힘듦을 피하지 않고 넘어설 때 행복이 온다 원랜 아산에서 바로 홍성까지 간 다음에 서해안을 타고 군산으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여행이 금방 끝날 것 같아 당진 쪽으로 가기로 했다. 경로가 바뀐 만큼 새로운 인연들이 이어질 것이다. 기대된다. 행복한 사람이 되는 법을 생각하다 오후에 삽교천에 도착하여 드넓게 펼쳐진 방조제를 보니,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삽교천 방조제는 4Km정도 됐다. 오른쪽으론 서해대교가 보이고 왼쪽 저 멀리엔 아산시의 건물들이 보인다. 시원하게 부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게 나는 갈매기를 보며 방조제를 건너노라니, 아까 전까지 차에 시달리던 스트레스는 온데간데없다. 이런 맛에 고통을 감내하며 걷는 거겠지. 언제고 내 맘과 같진 않지만 그 가운데 숨겨진 행..

차와 함께 블루스를, 기사와 함께 눈싸움을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부산에서부터 시작된 여행은 경상남북도와 강원도 영월군과 충청북도를 거쳐 충청남도에까지 이르렀다. 최종 목적지가 전주이니 어느덧 근처까지 온 것이다. 여행이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되게 아리송한데, 국토종단 때 느껴지던 기분과는 다르다. 09년 국토종단과 11년 사람여행의 차이 솔직히 국토종단 땐 섭섭한 마음보다 시원한 마음이 컸다. 통일전망대에 도착하던 순간, ‘이제 걷지 않아도 되고 자는 곳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구나’하는 안도감에 환호성을 질렀었다. 떠날 때야 ‘세상을 누벼보리라’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걷는 것보다도 힘들었던 건, 잘 곳을 구하는 문제였으니 말이다. 그게 늘 걱정거리이니 여행 자체가 즐..

온양 재림교회에 둥지를 틀다 아산에 들어서자마자 재림교회가 어디에 있는지 경찰서를 찾아갔다. 확인해 보니 아산에만 네 군데에 교회가 있더라. 여순경의 친절한 답변으로 시내에 있는 교회의 위치를 파악했다. 이럴 땐 스마트폰이 없는 게 가슴 아프지만 묻고 찾아가는 과정도 썩 나쁘진 않다. 온양 재림교회에서 잠자리를 얻다 재림교회를 찾아가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어제 예배드리러 병천교회에 갔었는데 사람들이 오지 않은 이유를 알고 싶었고 또 다른 하나는 지금껏 지나온 재림교회에선 환대를 받았는데 모두 다 그러는지 목사님의 성향에 따라 다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회에 5시 10분쯤 도착했는데 목사님은 외부에 나가셔서 7시나 되어야 돌아오신단다.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기다려 보기로 했다. 평상에 앉아 지..

21번 국도를 따라가며 겪은 천안과 아산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길을 나섰다. 21번 국도를 따라 아산까지 가는데 이 길은 차량 통행이 많은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는 건 천안에 비해 아산의 규모가 작다는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전주와 김제의 차이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통도 짜증도 여행의 한 부분 21번 국도는 역시나 차만을 위한 길이었다. 자동차 전용도로처럼 중앙선과 외벽이 있어서 바깥과 격리되어 있다. 경치를 구경하거나 사람을 구경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이니 걷는 데만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에 귀는 먹먹하고 쉴 곳도 마땅치 않아 계속 걷기만 하니, 발바닥은 아파오기 시작했다. 동해안의 7번 국도를 걸을 때 느꼈던 짜증이 다시 밀려온다. 이처럼 자동차..

탁월한 전도법을 선보인 목사님 목사님은 특이하게도 여성분이셨다. 얼핏 본 소감으론 도도한 느낌에 별로 고생을 해보지 않은 느낌이었다. 딱 정형화된 도시적 이미지를 지녔다고나 할까. 사람여행⑲: 사모에서 목사로 국밥을 먹으며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원랜 목사님 사모님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가시게 되자 목사님 안수를 받고 이렇게 목회 활동을 하게 되었단다. 여자 목회자로서 힘든 일들이 많았을 텐데 위축된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교회 외에도 다른 곳에 또 하나의 교회가 있더라. 주보에 보니 두 군데 교회가 표시되어 있어 어떤 상황인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셨는데 신자 수가 자꾸 줄어서 병천에 새 교회를 하나 더 개척한 것이란다. 어찌 보면 사업 확장 같..

아우내에 먹는 병천순대국밥의 맛 기도가 언제까지 계속됐는지 모른다. 언제 끝날지 모르기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잠시 눈이나 붙이고 있자고 그랬던 것인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코 고는 소리에 내가 놀라서 깼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코 고는 소리가 기도하는데 방해될까봐 깼다. 얼마나 피곤했던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다 그렇게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자다깨다를 반복하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예배당을 보니 어둑컴컴하더라. 언제 기도회가 끝났는지 불을 끄고 모두 간 것이다. 살짝 잠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밤엔 꽤 추웠다. 판넬의 온도를 너무 높이면 뜨끈뜨끈해서 잘 수가 없고 낮추면 추워서 뒤척였다. 얇은 이불 하나만 덮고 자니 보온이 안 된다. 거기다 어찌나 위풍이 센지 몸을 뒤척이..

조용한 기도와 격정적인 기도 오창-병천 도로는 확장공사 중이더라. 4차선 도로를 혼자서 점령하고 걷는 기분은 남달랐다. 차를 신경 쓰지 않고 여기저기 맘껏 구경하며 걸을 수 있다는 건 확실히 매력 만점이었다. 병천은 가게 상호로 자주 봤던 곳이다. ‘병천순대’라는 상호명이었는데, 오늘 가는 곳이 진짜 그 상호명의 병천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병천 진입로에 들어서니 순대국밥집이 정말 많더라. 그제야 그 병천이 그 병천인 줄을 알게 됐다. 여긴 유관순 누나의 기념관이 있다. 유관순 누나는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고 배웠는데, ‘아우내’라는 말이 ‘두 물이 아울러지는 곳’이란 뜻을 지닌 병천(竝川)의 우리말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보니 낯선 이 장소가 왠지 친숙한 장소마냥 보이더..

활기찬 걸음엔 향기가 나네 증평에서 잘 쉬었기에 오늘은 좀 오버하더라도 많이 걷고 싶었다. 날씨는 좋은데 바람이 세게 불고 꽤 쌀쌀한 편이다. 바람 한 점 없는 날보다 이런 날이 오히려 걷기에 더 좋다. 더욱이 오늘 걷는 길은 국토종단 때 와본 길이기도 하다. 그땐 초평면으로 갔기에 방향은 달랐지만 말이다. 그래도 같은 공간을 두 번이나 지나가는 것이기에 친근감이 들었다. 인삼조형물이 놓인 장소에서 사진을 찍으며 2년 전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2년이란 시간 동안 뭐가 달라진 것일까? 시간의 흐름만큼 조형물에도 먼지 더께가 두껍게 쌓였을 것이며, 나 또한 삶의 흔적들이 덕지덕지 붙었을 것이다. 경험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사람여행을 하다 보니 국토종단을 통해 얻게 된 지식들을 수정하게 되었다..

두 번의 혁명일 4.19 혁명의 날에 여행기를 쓴다. 4월 19일은 두 가지 혁명이 있는 날이다. 하나는 모두 다 알다시피 기념일로서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나만의 혁명일로서의 의미다. 1960년 4월 19일, 혁명은 현재 진행형이다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던 절대 권력이 민중의 힘으로 무너졌다. 촛불집회 때와 마찬가지로 이때도 학생들이 먼저 들고 일어났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학생들이 ‘머리의 피가 마를 대로 말라 굳어버린’ 어른들을 대신하여 부패한 권력에 맞섰다. 무수한 인명 피해가 났으나 그들의 열망은 권력을 무너뜨렸다. 아마도 삼국부터 시작되는 한(韓) 민족의 역사상 민중 봉기가 성공한 최초의 예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학생이 중심이 된 4.19혁명의 열매는 더 악질적인 권력자에게 탈취당하고 만..

피상적인 이해와 맹렬한 비난 옛길을 따라 가다 보니 언덕에 교회가 보여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갔다. 사순절 기간이라 성찬식도 하던데 먹진 않았다. 사람여행⑱: 도보여행을 하고 싶은 고등학생을 만나다 교회에서 남자 고등학생을 만났는데 도보여행에 관심이 많더라. 이미 중학생 때 자전거를 타고 일주일간 여행을 한 경험이 있단다. 나의 여행 이야기를 듣더니 당장에라도 부산까지 도보여행을 가고 싶다고 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나를 보니,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 녀석에겐 ‘산 교과서’로 보였나 보다. 아무래도 여행을 떠나면 나처럼 이곳저곳에 신세를 져야 하는데 나를 보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행도 사람의 성향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텐데, 내 여행의 방식을 하나의 전범으로..

힘 빼고 느긋하게 증평으로 가는 길은 국도를 따라가면 곧장이다. 단순한 노선이기에 길을 묻지 않고 나서려는데 목사님께서 붙잡으시더니, 증평으로 걸어가기엔 신도로보다 구도로가 더 나을 거 같다고 말씀해주시는 거다. 뜻밖의 정보였지만, 정말 유용한 정보였다. 먼 훗날에야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 지도를 보고 뻔한 길일지라도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원래 가려 했던 36번 국도는 4차선에 차량 통행이 많은데 반해 옛 길은 2차선에 구불구불 돌아가지만 차는 거의 안 다닌다. 그러니 최고의 도보여행 코스라고 할 밖에. 목사님 덕분에 한적한 들판의 풍취를 만끽하며 걸을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저기서 꽃놀이 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금이 꽃놀이철이기 때문인데, 막상 공부할 땐 자연..

재림교인에게서 본 신앙인의 모습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던 걸까. 이상하게도 자다깨다를 반복하면서 잤다. 여행이 3주째에 접어들면서 이 모든 게 일상이 된 느낌이다. 일상이 된다는 건, 더 이상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일상(反日常)에 머무는 법 특별한 경험도 자주 반복되면 일상이 되기 일쑤다. 비행기 여행을 떠올려 보면 이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처음 비행기를 탈 땐 그것 자체가 삶의 단 한 번뿐인 이벤트이기에 엄청 긴장되고 설렌다. 그리고 그 경험은 두고두고 회상될 정도로 강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게 연거푸 계속된다면, 그도 아니면 아예 해외출장을 늘 나가야 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그 감정은 무뎌지게 되어 있고 심지어는 그만하고 싶은 번거로..

쟤워준 사람에 대한 네 가지 원칙 목사님의 성함은 이신웅이다. 사모님은 나보다 어려 보였고 아들인 주헌이는 총명해 보였다. 또랑또랑한 눈망울이 참 예쁘더라.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얼른 장가가고 싶더라. 사람여행⑰: 재림교회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다 목사님은 목회자 모임이 끝나고 돌아오자마자 나를 사택으로 초대했다. 신혼집에 함부로 들어가도 되나 스스로 민망할 정도였는데, 오히려 목사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신가 보다. 사모님이 라면을 끓여줘서 그걸 먹으며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재림교회에선 결혼할 대상을 정해주는가 하는 것이 궁금했다. 아마 통일교와 체계가 비슷하다고 느꼈기에 그런 질문을 한 듯하다. 목사님은 정해주지 않으며 자신이 맘에 맞는 사람을 찾아 결혼하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화..

가능성이 0.1%라도 한 번 해봐 얼마나 맹렬하게 걸었던지 10시 50분쯤 면소재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건 뭐 면소재지란 말이 어색할 정도로 마을 규모가 작더라. 여태껏 지나온 면소재지엔 공통적으로 면사무소, 경찰서, 학교, 농협, 교회 등 건물이 많이 있어 눈에 확 띌 정도였다. 닥치지 않은 걱정이 현재를 옥죈다 그런데 여긴 건물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교회나 경찰서도 보이지 않았다. 음식점도 딱 하나만 보일 뿐이다. 이런 상황이니 교회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날씨는 덥고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아 기운도 없었다. 정자에 올라가 한참을 쉬었다. 거기서 한숨 자고 출발하면 좋겠던데, 아직은 가만히 있으면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야 할 정도로 서늘한 날씨다. 그래서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

자신의 시간을 창조하고 가능성에 맡겨라 이번 주는 수요일부터 도보여행을 시작한 탓인지 요일이 자꾸 헷갈렸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일어날 땐 토요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막상 걷다 보니 왠지 금요일 같은 거다. 금요일과 토요일의 차이라는 게 뚜렷한 건 아니고, 단지 느낌 상 그랬다는 거다. 그래서 금요일인 줄 알고 걷는데, 라디오에서 토요일 어쩌고 저쩌고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맞다! 오늘은 토요일이지!’하고 요일을 인지할 수 있었다. 달력의 시간에 눌리지 말고 자신의 시간을 창조하라 여행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데, 굳이 요일을 신경 쓰는 건 아직도 일상의 때를 벗지 못한 때문이다. 학교에 다닐 때나, 임용 공부를 할 때 일분일초를 쪼개 쓰려고 노력했었다. 당연히 시간을 늘 체..

우리네 어머니들의 마음 우리네 아버지의 슬픈 자화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한참을 달렸고 제천과 충주의 경계 부근에서 내렸다. 무려 14㎞나 되는 거리를 순식간에 온 것이다. 이렇게라도 시간을 버니 무겁던 맘이 금세 홀가분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쉬엄쉬엄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배춧잎 빼기 면 소재지에 도착한 시간은 4시쯤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밭에서 일하고 계시는 노부부가 눈에 띈다. 생각 같아서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잘 곳부터 구해야 했기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교회가 하나 있어서 가봤는데 목사님은 안 계시더라. 설마 내쫓기야 하겠냐는 심정으로 배낭을 교회 마당에 내려놓고 밭으로 향했다. 마치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와 가방을 벗어놓고 놀러 나가는 아이들 마냥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어색하..

우리네 아버지들의 서글픈 자화상 두 시간 여를 기다리며 반가운 여행자를 만나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눴다. 나와는 180도 다른 여행을 하던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시간도 잘 가고 여러 감상을 낳게 하더라. 그렇게 시간을 보냈고 마침내 버스가 와서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제 여행을 멈췄던 제천 수산면으로 가기 위해서다. 사람여행 최초의 히치하이킹 버스를 타고 수산에 도착하고 보니 11시가 넘었더라. 어제의 허탈한 기분 탓인지 걷기도 싫었다. 그래서 충주방향으로 가는 차를 잡아 중간지점까지 가기로 했다. 아마도 아침부터 걸었다고 생각하면 점심쯤 거기에 도착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차를 히치하이킹 해보기로 한 것은 국토종단까지 합하면 두 번째다. 국토종단 때는 고성으로 향하는 길에서 얻어 타고 고성 ..

멀리 살면 친구, 가까이 살면 원수 수산에서 제천으로 가는 길에 청풍호가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제천시내로 나오게 되었지만, 그 덕에 청풍호를 보게 된 셈이다. 불행과 행복은 이처럼 한 끗 차이로 교차한다. 청풍호? 충주호? 버스를 타고 지나며 보는 청풍호의 야경은 정말 멋졌다. 이곳을 보지 않고 제천을 지나쳤다면 꽤나 후회 했을 것이다. 물론 그 장관(壯觀)을 봤기 때문에 어리는 감정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제천 시내로 버스를 타고 나가는 그 상황이 전혀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어찌 청풍호의 가슴 벅찬 야경을 볼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찜질방에서 TV를 보며 내가 얼마나 무식한지 알게 됐다. 그건 다름 아닌 청풍호에 대한 얘기 때문이다. 방송을 보기 전엔 충추호와 청풍호가 다른 호수..

도보여행과 관광여행 8시가 못 되어 찜질방에서 나왔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35분이다. 어제 제천으로 나올 때 앞에 탄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7시 40분에 버스가 있고 한 시간마다 버스가 온다고 하셨다. 곧 오겠거니 기다리고 있는데 오지 않더라. 그래서 다른 버스 기사님에게 물어보니 9시 40분에 온다고 하시더라. 어젯밤 경황이 없어 잘못 들었나 보다. 이로써 두 시간 정도를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사람여행⑭: 관광여행자에게서 본 관광여행의 한계 정류장에서 여행자 한 명을 만났다. 이런 만남이야말로 예기치 않은 사건이 끼어든 경우다. 여행의 묘미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엇나간 곳에서 새로운 인연과 엮이는 법이니 말이다. 행색으로 봐서는 사무실 직원 같았다. 파리도 미끄러질 정도로 잘 닦여진 구두를 ..

여행 중 신세를 지려는 이유와 사람에 대한 예의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어제 교회에서 거부당하자 화를 냈는데, ‘몸이 안 좋아 과민반응한 게 아닌가?’라는 의문도 들 수 있다. 물론 그런 의문은 합당하다. 몸이 안 좋으면 신경은 날카로워지는 법이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엔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하도록 하겠다. 왜 부담을 주면서까지 신세지려 하는가? 잘 것을 부탁한다고 해서 모두 다 받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찌 모르는 사람을 이야기 몇 마디 듣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더욱이 지금처럼 ‘사람이 가장 무서운 세상’에선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 현실을 알기 때문에 부탁을 할 때 망설여지고 혹 받아준다 해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세를 지려 하는 건 ..

여행의 룰을 깬 것에 대한 비겁한 변명 어제 저녁에 제천 수산면에서 잠자리 구하기에 실패했다. 사람여행을 떠난 지 보름 정도가 지났는데 보름 정도만에 처음으로 잠자리 얻기에 실패한 것이고, 2009년에 한 달간 진행했던 국토종단까지 합하여 생각해보면 도보여행 45일 만에 최초로 잠자리를 얻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수산면의 경우엔 교회가 두 군데나 있었고 마을 규모도 큰 편이었기에 당연히 얻게 될 거라 기대를 했었는데 그 기대가 부질없이 무너져 내리자 모든 의욕은 감쪽 같이 사라졌다. 아침만 해도 그렇게 신나고 행복할 수가 없었는데 반나절 만에 감정은 180도 바뀌고 말았다. 이래서 인생이 재밌는 거고, 여행이 재밌는 거겠지. 룰을 깨다 그나마 다행히도 바로 제천 시내로 나오는 버스가 있었고 어렵지 않게 ..

사람여행 중에 닥친 최대의 위기 징그럽게 온갖 잠금장치들이 달려 있는 문을 보고 기가 막혔다. 하지만 어쩔 텐가? 이 교회도 이 교회만의 사정이 있는 것이고 나는 어떻게든 잘 곳을 구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이곳엔 교회가 두 군데 있지 않은가. 아직 실망하기엔 많이 이르다. 그래서 실망할 겨를도 없이 다른 교회로 가니 아까 전의 교회에 비하면 작지만 오히려 이 마을의 분위기엔 잘 어울리는 듯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실컷 비웃어 주리라 교회문도 열려 있다. 사택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문을 열고 사모님으로 추정되는 젊은 분이 나오신다. 정중하게 인사드리고 목사님 좀 뵐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런 경우 반응은 두 가지다. 사모의 권위가 세거나 자신이 나서도 된다고 생각하면 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오지 말거라 시간이 겨우 오전밖에 되지 않았기에 단양에서 잠자리를 구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물론 애초부터 이곳에서 하룻밤 묵을 생각이었다면 여관을 미리 잡고 남한강의 고적(孤寂)한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테지만, 그럴 생각이 아니었기에 수산면까지 가려 맘먹었다. 맘이 바뀌니 구불구불한 도로가 불편해지다 먼 거리이고 산등성이를 넘어야 하는 길이기에 속력을 높여야 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몸이 정말 무거웠다. 이런 컨디션으로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경치는 정말 빼어났다. 남한강을 따라 걸으니, 어디를 보든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오전과는 달리 맘이 급해지니 산등성이에 건설된 구불구불한 도로가 불편하게 느껴지더라. 구불구불..

최고의 도보여행 코스, 단양 가는 길 가곡면에서 단양군내까지는 8㎞의 거리다. 이 길이 좋은 이유는 남한강을 옆에 두고 걷는 길이라 운치가 좋다는 점이다. 단양까지 걷는 길 상쾌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7번 국도를 걸을 때도 동해를 실컷 보며 걸을 생각에 엄청 기대를 하며 그곳으로 갔던 것인데 막상 그곳에 가선 어떻게든 빨리 벗어나려 애를 썼었다. 한적한 바닷길을 상상했는데 고속도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차량통행도 많은 데다 엄청 빨리 달렸고 곳곳엔 물고기의 사체만이 넘쳐났으니 말이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가곡면에서 단양군으로 가는 59번 국도길은 그때 상상했던 바로 그 길이었다. 남한강을 굽이굽이를 따라 도로가 만들어져 있다. 그러니 최근에 만들어진 쭉쭉 뻗은 도로만을 달리는 사람이라면 답답하게 느껴질지..

가곡교회 목사님과의 맛난 대화와 아쉬운 작별 목사님은 새벽 예배 후에 주무시고 계셨고 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택으로 와서 아침을 먹으라는 사모님의 전화를 받고 혼자 올라갔다. 목사님의 아버님과 함께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며 오전 중에 소나무를 마당에 심을 거라고 하시더라. 아이들은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목사님과 단둘이 심어야 한단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오늘 목사님이 바쁘시겠구나 하는 생각만 했다. 밥을 다 먹고 사모님과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사택으로 내려왔다. 사람여행⑬: 소나무를 같이 심었어야 했는데 목사님은 일어나 계시더라. 목사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짐을 챙겨 길을 떠났다. 그런데 한참 걷고 있으니, 그제야 왜 이렇게 급하게 떠났는지 후회되더라. 소나무를 심고 오후쯤 ..

형님이라 부르고 싶은 목사님을 만나다 4시쯤 되어서야 남한강변에 도착하게 되었다. 국토종단 때 양수리까지 걸어가며 남한강의 경치를 만끽했는데 2년 만에 다시 보니 반갑더라. 이 강줄기가 흐르고 흘러 서해로 간다고 생각하니 참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서서히 저무는 햇빛이 남한강에 비치니, 남한강을 둘러싼 산들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즈넉하게 보이더라. 이런 광경을 눈으로 보며 걸을 수 있다니, 참 행복하다. 가곡면에 둥지를 틀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마음은 여유로웠다. 그 이유는 수요예배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보통 7시나 7시 30분에 시작되니, 그 시간까지만 교회에 도착하면 된다. 물론 빨리 도착하면 좋겠지만 시골은 몇 시간을 걸어야 겨우 마을이 나오며, 교회가 없는 경우도 많으니 안심할 수 없다. 그..

돈이 사람을 왕따시키는 세상아! 단양으로 경로를 바꾸길 정말 잘했다. 차량통행도 별로 없는 한적한 길이라 신나게 걸을 수 있었다. 날씨도 어찌나 화창한지 이런 날 집에 있거나, 사무실에 박혀 있었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자본의 하수인 일이라는 거, 당연히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자아실현과 자본증식과 인정욕 등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한다는 걸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당연히 일을 하고 싶지만, 지금은 뜻대로 되지 않아 쉼표처럼 여행을 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당연함에 의문을 던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은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이다. 시골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접..

Young World, 영월의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다 원래는 영월에서 제천, 충주를 거쳐 서해안으로 가려 했다. 그런데 충주에서 버스를 타고 영월로 오는 길을 보니, 차들이 어찌나 많이 다니던지 도무지 걸어갈 만한 길은 아닌 것 같더라. 그래서 지도를 보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적극적으로 부딪히리라 한참 보고 있으니, 단양을 경유해서 가는 길이 괜찮아 보이더라. 지방도라는 점이 특히 맘에 들었다. 물론 지도를 통해서만 본 것이기에 얼마나 험한지, 얼마나 차량통행이 많은 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런 걸 일일이 알아야만 출발할 수 있다면,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떤 길이든 떠나기로 한 이상 앞서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부딪혀 보면, 별 것 아닐뿐더러 새로운 길이 열..

꿈을 통해 나 자신을 엿보다 방이 어찌나 추운지 덜덜 떨면서 잤다. 벽에 온도조절기 같은 게 붙어 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스위치가 안 보인다. 아마도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통제하나 보다. 이불 반쪽을 깔고 반쪽을 덮고 자야 하니,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잘 수밖에 없었다. 몸이 오므라드는 느낌마저 든다. 그나마 새벽이 되어 보일러가 켜져서 다행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오늘 여행을 망칠 뻔했다. 보일러가 켜져 바닥이 따끈해지고 나서야 푹 잘 수 있었다. 꿈까지 꾸며 말이다. 꿈, 의식으로 눌러버린 진실의 한 단면 그때 꾼 꿈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침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에 맞춰 버스가 왔으나 정류장에 다 와서 엔진 과열로 멈춘 것이다. 신속하게 상황이 처리되어 다른 버스가 왔고 멈춘 버스에 타고..

영월 KBS 방송국을 굳이 찾아간 이유 영월읍내로 들어서니, KBS 방송국의 위치를 알려주는 팻말이 보인다. 여기야말로 『라디오스타』의 중심 촬영지다. 그 영화 때문에 영월을 찾아왔는데 어찌 이곳을 보지 않고 그냥 가랴. KBS 영월 방송국 방송국으로 올라가는 길의 오른쪽엔 유유히 동강이 흐르고 있다. 해질녘의 싸늘한 강바람을 맞으며 오르니, 꼭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 길을 따라 박민수(안성기 분)와 최곤(박중훈 분)이 오를 때면 어느샌가 이스트리버(노브레인)가 따라붙어 노래를 한 곡만 부르게 해달라느니, 홈페이지를 개설했다느니, 100일 기념 콘서트를 열겠다느니 하는 여러 제안을 해왔었다. 화면에 나타난 길은 꽤나 넓어 보였는데(차가 두 대 정도는 지나가는 길), 현실의 길은 차 한 대..

단종의 애환이 서린 청령포에 가다 단종(端宗)의 비운이 서린 고장, 『라디오스타』라는 영화의 중심무대인 영월에 왔다. 나의 후반기 여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영월에 오고 싶었다 영월엔 언젠가 한 번 오고 싶었다. 그건 순전히 영화 탓이다. 밀양은 『밀양』이란 영화 때문에 가고 싶었던 것처럼, 이곳 또한 영화로 인해 친근감이 느껴져 오고 싶었다. 이곳에 오면 ‘최곤(영화 주인공)’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에 비해 영월읍은 꽤 컸다. 영양군, 봉화군 등 작은 고장들을 지나왔기에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영월에 간다고 하니 꼭 가보라고 추천해준 곳이 있다. 굽이치는 계곡의 절경을 볼 수 있는 청령포(淸冷浦)와 삼촌에 의해 권력의 희생양이 된 단종의 무덤이 있는 장릉(莊陵)이다. 이곳을 ..

국토종단과 사람여행의 세 가지 차별점 어느덧 여행이 중반기에 접어들었다. 이쯤 되면 여행이라기보다는 일상이라고 표현해도 될 듯하다. 그만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어느 정도 목표한 바는 이루었으니, 여기서 관둔다 해도 아쉬울 게 없다. 사람여행을 다시 떠나며 그렇다면 물어보자. 과연 이번 여행을 통해 무엇을 이루어 냈는가? 2009년에 했던 국토종단에 대한 관성으로 여기까지 온 건 아닌가? 막상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나니, 이번 여행의 한계가 보이는 듯도 하다. 아무래도 국토종단과 여행의 패턴이나 방향이 엇비슷하기 때문이리라. 꼭 차이가 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애초에 ‘사람여행’이라 명명한 이상,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국토종단 식(式)의 여행은 어떤 가시적인 성취감을..

처음으로 재림교회에서 자게 되다 봉화읍에 도착한 시간은 4시가 못 되어서였다. 처음 보이는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연하게도 여기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더라. 어떻게 이런 일이 하루에 두 번이나 일어날 수 있을까. 참 신기한 순간이었다. 바로 이 교회 옆에 규모가 매우 큰 예수교 장로회 교회도 있었지만 두 번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여기에 잠자리를 정하기로 했다. 이 좋은 기회를 뭐 하러 코앞에서 놓치겠는가. 그래서 사택에 찾아가 보니 아쉽게도 목사님이 안 계시더라. 벌써 삼 일째 똑같은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 어쩌겠는가 결정한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기다려봐야지. 무작정 기다렸더니 일곱 시가 약간 넘어서야 목사님이 오셨고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바로 오케이 하셨다. 사람여행⑫: 낯선 이를 낯설지..

감자밭에서 일을 하며 만난 인연 오후 2시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걷는다. 느낌으론 봉화읍내가 멀지 않은 것 같다. 짧은 거리를 걷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절로 여유로워지며 모든 것에 말 걸고 싶어진다. 그러니 금방처럼 재림교회에도 들어가 한참이나 썰을 풀고 올 수 있었으며 물씬 내린 봄기운을 만끽하며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도움의 손길을 다시 내밀다 남은 시간을 주체할 길이 없어 둘러보며 가는데 노부부가 밭일을 하는 게 보인다. 무작정 그루터기에 배낭을 벗어놓고 그분들에게 다가가 도와줄 거 없냐고 물었다. 감자를 심는 모습이 보였기에,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으리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도 환하게 웃으시면서 그럴 필요 없다고 하신다. 뭐 거부 또한 예의상 그런 것일 수도 있으니, 그냥 내가 할..

배선[船]이란 한자엔 성경 내용이 담겨 있다? 재림교회에서 점심을 먹을 때, 내가 한문을 전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분이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하셨다. ▲ 노아의 방주와 배주[船]의 상관관계. ‘배선[船]’엔 성경이 담겨 있다? 이야기인즉슨, 한자에 성경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성경 말씀이 한자 형성에 관여하여 몇 개의 글자만 연구해봐도 성경 내용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맞다면 정말로 충격적인 이야기다. 내가 한참 진규와 성경에 관해 이야기할 때, ‘과연 하느님의 진리란 게 어디든 있고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이라면 왜 동양 사람들은 서양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하느님이나 성경에 관한 내용을 알지 못하고 문물교류를 통해서 알게 됐던 걸까?’하는 문제제기를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

이단이란 낙인이 찍힌 재림교회와의 첫 인연 이 교회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란다. 예전에 기독교인이었을 때(나도 한 땐 열렬한 신자였다. 그때 열렬히 믿은 탓에 지금은 열렬히 돌아섰긴 하지만~) 목사님으로부터 이단이라는 수식어로 많이 듣곤 했던 곳이다. 그땐 목사님 말씀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을 뿐, 왜 이단인지, 무엇이 다른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맹신(盲信)으로 목사님 말이라면 쉽게 순종하고 의심하지 않던 때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인연이 되어 토요일에 예배드리는 이유도 듣고 사람들도 만나보게 되었으니, 인생 한번 재미지다. 여행하면서 ‘신천지’도 ‘여호와 증인’도 여타 기독교의 다른 종교기관도 모두 접해보고 싶었는데 지금에서야 그 소원이 이..

도움의 손길 내밀기와 도움의 손길 잡기 오늘도 길을 나선다. 좀 더울 거라지만 아침에는 약간 춥다. 오늘은 봉화읍까지만 갈 생각이다. 멀지 않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한결 가볍다. 이제 즐기며 가기만 하면 된다. 일요일이니만치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점심도 거기서 해결해야지. 저번 주 일요일에도 이런 생각으로 걸었었는데 교회가 보이지 않아 그러지 못했다. 이번에는 부디 지나는 길에 교회가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처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다 봉화읍도 코앞이고 마음도 한결 여유롭다 보니 지나가는 풍경들이 새롭다. 어떤 광경이냐? 농사짓는 광경. 그동안은 내가 가야 할 길이 바빴기에 농사일하시는 분들에게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하지만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한들 뭐할 텐가. 조금 일찍 도착했다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우리 모두, 수고했어 오늘도 어느덧 해는 저물어 석양빛이 짙게 물들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한 둘씩 집으로 들어가 공터는 썰렁해졌다. 다시 사택으로 가보니,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집에 불이 켜져 있지 뭔가. 그렇다면 아까부터 사람이 있었다는 얘긴데, 왜 초인종을 눌렀을 때 아무도 나오지 않았던 것일까. 쉽게 잠자리를 구하다 그런 의구심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그랬더니,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 나오더라. 사정을 이야기하니, 목사님에게 전화해보겠다며 안으로 들어와 기다리란다. 켜져 있는 티비를 보며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목사님이 오셨고 바로 승낙해주셨다. 목사님은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쇼파에 푹 파묻혀 귀찮은 말투로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신다. 왠지 ‘밥벌이의 지겨움’ 같은 게 ..

아이들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창 청량산 입구에 들어서니 공사중이란 팻말이 보이더라. 그 옆엔 입산금지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산불 나기 쉬운 계절이기에 입산을 통제한단다. 그 순간 많이 망설였다. ‘입산금지’ 기간에 무단으로 입산했다가는 벌금도 물고 다시 하산해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가기도 싫었다. 이렇게 된 이상 무작정 가보는 거다. 까짓것 걸리면 “몰라서 그랬어요”라고 발뺌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청량산 코스를 놓쳤으면 어쩔? 초입길은 경사도 급한 데다 길까지 파헤쳐 있으니 걷기가 참 불편했다. 조금 오르니 포크레인이 보였다. 공사 중이라고 통행이 안 된다고 막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들 식사하러 가셨는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10분 정도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올랐다. 끔찍하..

두 번째 걷다가 길 위에서 만난 만남 한 시간 정도를 걸었나. 길가에서 한 분이 쉬고 계신다. 행색으로 보아서는 도보여행을 하는 건 아니고 등산을 하시는 분 같았다. 목례를 하고 지나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날 때쯤 그분도 짐을 챙기더니 일어서시는 거다. 같은 방향으로 걷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사람여행 중 청도군의 운문호를 거닐 때에 이어 두 번째 길에서의 만남이다. 사람여행⑩: 뜻밖의 만남, 그리고 여행 애찬론 그분의 나이는 56살로 이 근처에 별장이 있어서 한 번씩 쉬려고 오신단다. 근 한 달 동안 그곳에서 생활하며 이 근방을 하릴없이 돌아다니셨단다. 그렇다고 가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나이 때가 되면 오히려 이렇게 한 번씩 떨어져 지내는 게 서로에게 더 좋..

귀농한 자식들을 달갑게 여기지 못하는 아버지의 사연 장로님의 두 아들들은 다른 일을 하다가 뜻대로 안 되어 최근에 귀농(歸農)했단다. 어쩐지 어제저녁에 보니 사람이 많다 했다. 대가족의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는 사회이기에, 그런 광경이 낯설면서도 좋아 보였다. 사람여행⑨: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그런 나의 느낌과는 달리 장로님은 자신의 맘만 같지 않은지 한숨만 푹푹 쉬시더라. 아들들이 자신의 일을 하기보다 농사일을 이어받는다는 게 못마땅하셨나 보다. 그건 농사엔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은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야”라고들 말한다. 그러면서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절대 자식들에겐 농사지으라고 하진 않을 거야”라는 거였다. 농사..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들의 집단 4시 20분쯤 눈이 떠졌다.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새벽기도에 나갈 채비를 하고 조심조심 문을 열고 나갔다. 집 밖으로 나오니, 어제만 해도 무섭게 느껴졌던 개 세 마리가 오늘은 매우 반갑게 느껴진다. 대문 쪽을 바라보니, 장로님과 사모님, 그리고 큰 며느님이 나오신다. 가족 전체가 기도회에 참여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깜짝 놀랐다. 장로님은 거동이 불편한 사모님을 부축하며 걷고 난 큰 며느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사람여행⑨: 장로님이 이끄는 새벽기도 교회에 도착하니, 사람이 별로 없다. 목사님에게 부탁을 받으셨는지, 장로님이 나가서 기도회를 이끈다. 전형적인 농사꾼으로 정식교육을 받은 것 같지 않은데도, 강단에 반듯하게 서서 정연하게 말씀을 전해주..

좋은 것도 고착되면 나쁜 것이 된다 아들이 쓰는 방에서 자게 됐다. 침대도 있고 안락하니 좋다. 따뜻한 물도 나와서 샤워까지 말끔히 할 수 있었다. 민가에서 자게 되면, 여행기를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 경험담을 들으며 사람을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여행⑨: 사람여행의 이유, 어우러지기 거실에서 TV를 같이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문을 열고 옆방으로 건너가니, 장로님 혼자서 TV를 보고 계시더라. 가족이 다 같이 있는데, 혼자만 TV를 보고 계시는 모습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이런 걸 ‘군중 속의 고독’이라 할 수 있으려나. 그래서 거실로 가지 않고 장로님 옆에 앉아 이것저것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로님은 77살이라고 하셨다. 젊었을..

잠자리를 구하기 위한 고군분투 점심은 과자와 음료수로 간단히 때웠다. 가는 길에 조지훈 생가가 있는 ‘주실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도로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갈 수 있는데도 그냥 지나쳤다. 여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랬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바쁜 것도 아니었고, 힘든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막상 걸어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그 당시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스산한 바람에 실린, 온갖 망상들 4시쯤 교회가 보여 가봤으나 목사님은 안 계셨다. 시간이 너무 이른 것 같아 조금 더 걷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부턴 더 첩첩산중이더라. 산으로 앞이 가로막혀 있고 계속 가봐야 언제 마을이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정확히 어제 정자에 올랐을 때의 기분과 같았다. 그때 버스정류장에 서 ..

산림욕과 기우(杞憂) 독경산을 따라 걷는다. 2차선 도로로 차 통행도 많지 않다. 산세를 관찰하며 걷는 데 열중하기만 하면 된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 껴있고 기온은 서늘한 듯했다. 삼림욕, 산행의 즐거움 이런 날이 걷기 좋은 날이다. 아직 이파리가 무성하게 자라지 않아 산록의 푸르름을 느낄 순 없지만 새싹들이 피어오르는 걸 보고 있노라니, 참 행복하더라. 천지가 생동하는 기운이 나에게도 전달된다. 내 몸도 천지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의 약동(躍動)은 나에게 힘을 그대로 전해준다. 산바람은 시원하고 상쾌했다. 누군 삼림욕을 즐기러 비싼 돈을 내고 찾아간다는데 나는 일상 속에서 이렇게 즐기고 있다. 점심때쯤 영양읍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음도 가볍고 발걸음도 가볍다. 어제 일정을 정할 땐 영양읍까지만 가려고 ..

빨리 가는 인생보다 한 걸음씩 걸어가는 인생을 잠자기 전에 우의도 입고 잠바까지 껴입었다. 그것으로도 안심이 안 되어 두꺼운 이불을 두 겹이나 덮었고 바닥엔 교회 의자용 포를 세 겹이나 깔았다. 잘 채비를 마치고 이불 속에 들어가니, 잠시 몸에 한기가 돌았다. 체온으로 이불 속이 데워지면 금세 따뜻해질 것이다. 한기에 뒤척이다 곧 잠이 들었다. 잠자리의 한기를 막기 위한 방법 자는 내내 몸을 더욱 움츠렸던 것 같다. 따뜻해지긴 커녕 한기가 온몸을 감싸 안았기 때문이다.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며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급기야 새벽 3시에 눈이 떠지고 말았다. 방 안의 차가운 공기는 이불이 잘 막아주고 있었지만,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그러지 못했다. 의자포가 얇은 탓에, 세 겹 깐 것으론 아무..

넘어져봤기에 낮은 자의 자세로 다가가다 목사님이야말로 삶의 다종다양한 아픔이나 슬픔을 맛들인 분이셨다. 그렇게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까지 다양한 일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사람여행⑧: 넘어선 자의 여유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뼈가 으스러지고 반신불수가 되었단다. 몸도 아프셨겠지만 그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은 얼마나 더 아프셨을까. 목사님은 종교인이기에 보통 종교인처럼 기도와 말씀에 의지한 채 살았어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무기력한 삶(신앙심 가득한 삶)을 택하진 않으셨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재활치료에 집중했고 몸이 조금씩 낫자, 아예 훌훌 털고 여행을 다니셨다. 그 결과 지금은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해 보인다. 운동도 하시고 여행도 다니시면서 보통 사람보다도 더 건강하게 사신다. 고통을 회피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목사님과의 만남 열심히 걸어 교회에 도착해 주위를 살폈다. 교회문은 열려 있고 교회 바로 옆엔 목사님 사택이 있다. 하지만 목사님은 사택에 계시지 않나 보다.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 없는 공허함만 감도니 말이다. 그래서 교회 근처를 둘러보고 있는데 목사님 같은 분이 나오시더라. 다짜고짜 인사부터 하고 공손하게 이야기했다. 이럴 때일수록 부드러운 듯 힘 있게, 그러면서도 건방져 보이지 않게 이야기하는 게 핵심이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목사님은 교회 사정이 좋지 않아 숙박시설이 있는 인근 교회로 데려다주겠다고 하신다. 거부하는 게 아니었기에 왠지 잘 이야기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불편해도 좋으니 여기서 자게 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목사님도 결국은 승낙해주시더라. 사람여행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