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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1. 한바탕 울어재낄 수 있는 그대를 축복하며 호곡장론(好哭場論) 박지원(朴趾源) 初八日甲申晴. 요동벌에서 백탑을 마주하다 與正使同轎, 渡三流河, 朝飯於冷井. 行十餘里, 轉出一派山脚, 泰卜忽鞠躬, 趨過馬首, 伏地高聲曰: “白塔現身謁矣.” 泰卜者鄭進士馬頭也. 山脚猶遮, 不見白塔. 趣鞭行不數十步, 纔脫山脚, 眼光勒勒, 忽有一團黑毬七升八落. 吾今日始知人生本無依附, 只得頂天踏地而行矣. 사람이 우는 이유 立馬四顧, 不覺擧手加額曰: “好哭場! 可以哭矣.” 鄭進士曰: “遇此天地間大眼界, 忽復思哭, 何也?” 余曰: “唯唯否否. 千古英雄善泣, 美人多淚. 然不過數行無聲眼水, 轉落襟前. 未聞聲滿天地, 若出金石. 人但知七情之中, 惟哀發哭, 不知七情都可以哭. 喜極則可以哭矣, 怒極則可以哭矣, 樂極則可以哭矣, 愛極則可以哭矣, 惡極..
6.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를 지은 이유 余今夜渡此河, 天下之至危也. 然而, 我則信馬, 馬則信蹄, 蹄則信地, 而乃收不控之效如是哉! 首譯語周主簿曰: “古有爲『危語』者, 謂盲人騎瞎馬, 夜半臨深池, 眞吾輩今夜事也.” 余曰: “此危則危矣, 非工於知危也.” 二人曰: “何爲其然也?” 余曰: “視盲者有目者也. 視盲者而自危於其心, 非盲者知危也, 盲者不見所危, 何危之有?” 相與大笑. 別有「一夜九渡河記」, 在「山莊襍記」. 인용 余今夜渡此河, 天下之至危也. 내가 오늘밤 이 황하를 건넌 것은 천하의 지극히 위험한 것이었다. 然而, 我則信馬, 馬則信蹄, 그러나 나는 말을 믿었고 말은 발굽을 믿었으며 蹄則信地, 발굽은 땅을 믿었으니, 而乃收不控之效如是哉! 고삐를 잡지 않은 공효를 거둠이 이와 같구나! 首譯語周主簿曰: “古有爲..
황하를 하룻밤에 아홉 번이나 건너며 깨달은 것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박지원(朴趾源) 거침없이 흐르는 황하 河出兩山間, 觸石鬪狼. 其驚濤駭浪憤瀾怒波哀湍怨瀨, 犇衝卷倒, 嘶哮號喊, 常有摧破長城之勢. 戰車萬乘, 戰騎萬隊, 戰砲萬架, 戰鼓萬坐, 未足諭其崩塌潰壓之聲. 沙上巨石屹然離立, 河堤柳樹, 窅冥鴻濛, 如水祗河神爭出驕人, 而左右蛟螭試其挐攫也. 或曰此古戰場故河鳴然也, 此非爲其然也. 河聲在聽之如何爾. 내 감정이 소리를 변화시키네 余家山中, 門前有大溪. 每夏月急雨一過, 溪水暴漲, 常聞車騎砲鼓之聲, 遂爲耳崇焉. 余嘗閉戶而臥, 比類而聽之. 深松發籟此聽雅也, 裂山崩崖此聽奮也, 群蛙爭吹此聽驕也, 萬筑迭響此聽怒也, 飛霆急雷此聽驚也, 茶沸文武此聽趣也, 琴諧宮羽此聽哀也, 紙牕風鳴此聽疑也. 皆聽不得其正, 特胸中所意設而耳爲之..
만물의 변화무쌍함을 코끼리와 ‘상(象)’자를 보며 알게 되다 상기(象記) 박지원(朴趾源) 두 번의 코끼리를 보았던 추억 將爲怪特譎詭恢奇鉅偉之觀, 先之宣武門內, 觀于象房可也. 余於皇城, 見象十六, 而皆鐵鎖繫足, 未見其行動. 今見兩象於熱河行宮西, 一身蠕動, 行如風雨. 余嘗曉行東海上, 見波上馬立者無數. 皆穹然如屋, 弗知是魚是獸, 欲俟日出, 暢見之, 日方浴海, 而波上馬立者, 已匿海中矣. 今見象於十步之外, 而猶作東海想. 코끼리의 생김새 其爲物也, 牛身驢尾, 駝膝虎蹄. 淺毛灰色, 仁形悲聲, 耳若垂雲, 眼如初月. 兩牙之大二圍, 其長丈餘, 鼻長於牙, 屈伸如蠖, 卷曲如蠐. 其端如蠶尾, 挾物如鑷, 卷而納之口. 코끼리의 코를 보고도 착각하는 사람들 或有認鼻爲喙者, 復覓象鼻所在, 蓋不意其鼻之至斯也. 或有謂象五脚者, 或謂象目如..
2. 변화를 긍정하라 余曰 器譬則谷也 聲譬則風也 知谷之不可改 則風之出也無變 特有厲風和風猋風冷風之異耳 由是論之 律之有古今之殊者 無其器改而聲變歟 鵠汀曰 然 律聯而爲調 調諧而爲腔 腔合而爲曲 律無姦聲而調有偏音 果是一谷之風 有厲和猋冷之不同 曉夜朝晝之變焉 此其腔曲之所以情變聽移 隨時聳沮而始有古今之異 正蛙之別爾 唐虞之世 民俗煕皡 其悅耳者韶濩之聲 則又其所黜可知也 幽厲之時 民俗淫靡 其悅耳者桑濮之音 則又其所黜可知也 如近世雜劇, 演西廂記, 則捲焉思睡; 演牧丹亭, 則洒然改聽. 此雖閭巷鄙事, 足驗民俗趣尙, 隨時遷改. 士大夫思復古樂, 不知改腔易調, 乃遽毁鍾改管, 欲尋元聲, 以至人器俱亡. 是何異於隨矢畵鵠, 惡醉强酒乎? 해석 余曰 器譬則谷也 聲譬則風也 知谷之不可改 則風之出也無變 特有厲風和風猋風冷風之異耳 由是論之 律之有古今之殊者 無其器..
열하일기(熱河日記),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 서론 초판 머리말 / 개정신판을 내며 프롤로그 여행 / 편력 / 유목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1. 젊은 날의 초상 신체적 특징 태양인 우울증 ‘마이너리그’ 『방경각외전』 2. 탈주ㆍ우정ㆍ도주 미스터리(mistery) 분열자 ‘연암그룹’ 생의 절정 ‘백탑청연’ 연암이 ‘연암’으로 달아난 까닭은? 3. 우발적인 마주침 열하 마침내 중원으로! 웬 열하? 소문의 회오리 4. 그에게는 묘지명이 없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퀴엠’ 높고 쓸쓸하게 “나는 너고, 너는 나다” 2부 1792년, 대체 무슨 일이? 1. 사건스케치 서학과 명청문집 문체 전향서 희생자 이옥과 문체반정의 결과 2. 문체와 국가장치 지식인들을 길들이는 첨단의 기제 소품과 소설..
함께 읽어야 할 텍스트 『열하일기 1, 2, 3』 김혈조 옮김, 돌베개 2009 / 『열하일기 상, 중, 하』 리상호 옮김, 보리, 2004 『열하일기』 완역본은 ‘돌베개’ 판과 ‘보리’ 판 두 가지다. 후자는 북한판을 보리출판사에서 재출간한 것이다. 전자는 명실상부한 완역본이다. 이전에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나온 것이 있긴 했지만 한문식 고어투가 많아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았는데, 이 ‘돌베개’ 판은 그런 단점을 말끔히 해소한 역작이다. 꼼꼼하고 치밀한 고증으로 기존의 오역을 잡아내고 동시에 문장도 아주 깔끔하고 매끄럽다. ‘보리’판은 북한판이라 일상적 구어체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상, 하』(개정판) 고미숙ㆍ김풍기ㆍ길진숙 옮김, 북드라망..
주요용어 해설 기계(machine) 분자생물학자 자크 모노에 의해 정립되었고, 들뢰즈/가타리에 의해 철학적으로 변용된 개념. 기계라고 하면 명령 혹은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고정된 시스템을 떠올릴 테지만, 그때의 기계는 mechanism에 해당한다. 들뢰즈/가타리가 말하는 기계, 즉 machine은 어떤 활동 내지 에너지의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모든 것이다. 따라서 접속하는 짝이 달라지면 동일한 것도 다른 기계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입은 식도와 접속하여 영양(음식물)의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경우에 ‘먹는 기계’가 되고, 성대와 접속하여 소리의 흐름을 절단 채취하는 경우에 ‘말하는 기계’가 되며, 연인의 입이나 성기와 접속하여 성적 에너지의 흐름을 절단 채취하는 경우에는 ‘섹스..
『열하일기』 등장인물 캐리커처 장복과 창대, 그리고 말 연암의 수행인들, 장복은 하인이고, 창대는 마두(馬頭)다. 술은 입에도 못 대고, 일자무식인 데다 고지식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환상의 커플’ 중화주의가 뼛속까지 침투하여 중국은 ‘되놈의 나라’라며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종종 어이없는 해프닝을 저질러 연암을 질리게 한다. 갑작스럽게 열하행이 결정되면서 장복이만 연경에 남게 되자, 울고불고 하는 바람에 연암이 그걸 빌미로 ‘이별론’을 한바탕 늘어놓는다. 창대는 가는 도중 부상에, 몸살에 거의 죽을 고생을 한다. 덕분에 연암이 창대를 돌보는 처지가 된다. 이 고지식 커플에 비하면 말이 훨씬 더 지혜롭다. 이름은 없지만, 여행 내내 연암과 한몸이 되어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호곡장론(好哭場論)」ㆍ「..
중국의 장관은 ‘상의실종’과 ‘슬리퍼’에 있다?! “청문명의 장관은 버려진 기왓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壯觀在瓦礫 曰壯觀在糞壤]!” 『열하일기』 「일신수필(馹汛隨筆)」에 나오는 명문징이다. 기왓조각과 똥부스러기 하나도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재활용하는 하는 걸 보고 연암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거기에는 자기 삶에 대한 존중감이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변방의 가난한 사람들까지 이렇게 자기 삶을 배려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태평천하가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연암의 생각이었다. 그럼 지금 중국은 어떤가? 연암이 갔던 그 중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단 무지하게 먹고 가차 없이 버린다. 한마디로 쓰레기 천국이다. 이번엔 더 심했다. 단동과 책문 근처의 작은 마을들은 폭격을 맞은 듯 황폐했다. 자본주의하..
‘서프라이즈’ 사랑 여행은 만남이다. 길 위에 나서면 누군가를 만난다. 낯선 이든 혹은 이국인이든, 이번 여행도 그랬다. 다큐팀과의 만남은 아주 생소하고 신선했다. 정규직과 함께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데다 다큐를 찍는 프로들이라 더더욱 그랬다. 평소엔 여유있고 유연하지만 일에 대한 긴장감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 작업이 끝나면 반드시 회식을 하는 것도 역시 정규직답다!^^ 하지만 나는 잠이 많은 데다 회식체질이 아니어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대신 나의 룸메이트이자 동반 출연자였던 사랑이와의 만남은 아주 특별했다. 처음 사랑이를 봤을 때 두 번 놀랐다. 얼굴이 꼭 인형같이 생겼다. 무슨 연예인을 데려온 줄 알았다. 동갑내기인 양PD와 비교해도 완전 ‘애송이’처럼 보였다. 또 하나 이름이 ‘사랑’이라..
카메라 : 권력과 은총의 화신 압록강을 건넌 후 연암 일행은 책문에 도착한다. 책문은 조선과 중국 사이의 경계, 곧 국경이다. 검문검색을 통과하느라 연암 일행은 온갖 곤혹을 치른다. 하지만 정작 그건 워밍업에 불과했다. 책문을 넘자 진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폭우다. 한창 장마철에 떠난지라 폭우로 강이 범람하면 말도 사람도 꼼짝할 수가 없다. 노숙을 하면서 하염없이 머무르는 수밖에. 그러다가 홀연 날이 맑으면 정신없이 달려야 한다. 만수절 행사 전에 연경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도착했건만 황제는 연경에 있지 않았다. 열하의 피서산장에 가 있었던 것. 게다가 만수절 행사에 조선 사신단을 꼭 참여시키라고 특별명령까지 내렸다. 이런! 일행은 다시 짐을 챙겨 연경에서 열하..
국경과 자본, 그 사이에서 16시간 향해 끝에 마침내 단동에 도착했다. 제일착으로 나오긴 했지만 촬영장비 때문에 발이 묶였다. 중국정부의 허가를 받은 비자를 보여줘도 막무가내였다. 우리를 담당할 중국관리와 현지 코디(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빠져나간 대합실에 덩그러니 우리 일행만 남을 즈음. 중국관리와 현지코디가 도착했다. 그들 덕분에 간신히 통과하긴 했지만 그때부터 또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나와 사랑이가 단동 관문을 통과하는 장면을 찍으려 하자 현지 관리들은 무조건 안 된단다. 담당관리가 가지고 온 중앙정부의 신임장도 현지에선 통하지 않는다. 공산당 일당체제인데 중앙정부의 명령이 통하지 않는 아주 ‘이상한 제국’이다. 다들 열을 받았지만 결국 포기하고 북한식당에 가서 만찬을 즐..
다시 열하로!(2012년 여름) 인트로: 문득, 망망대해 2012년(임진) 7월(정미) 20일(임오) 오후 5시, 인천항 연안부두 제1 터미널에서 나는 대형선박에 몸을 실었다. 난생 처음하는 항해였다. 강원도 산간 지역 출신이라 그런지 그간 바다와는 통 인연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바다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었다는 편이 맞겠다. 내게 있어 바다는 그저 막막하고 심심한 곳이었다. 게다가 뱃멀미에 대한 공포도 적지 않았다. 『열하일기』의 시발점이 단동이고 거기에 가기 위해선 배를 타야 한다는 걸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늘 비행기를 타고 심양으로 간 다음 거꾸로 요양 쪽을 되짚는 방식으로 여행을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연유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마침내 바다여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우째 이런 일이? ..
가는 곳마다 길이 되기를……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도무지 갈 데가 없었다. 로사(老舍)에서 보기로 한 경극도 취소되었고, 재래시장, 영화관 등 열린 광장들은 모조리 폐쇄되었다. 물어물어 연암이 다녀간 사찰들을 찾아갔건만, 거기조차 스산한 공고문과 함께 문이 닫혔다. 엄마가 깨를 사오라고 했다는 J와 여름나기 알뜰쇼핑을 계획했던 Y의 희망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L은 심각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댔고, 우리들은 이름없는 공원에 주저앉아 멍한 눈으로 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열하에 다녀오는 동안 베이징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느긋하게 관망하던 중국공산당이 인터넷 여론에 밀려 마침내 ‘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마스크의 행렬, 경계하는 눈빛들 귀국러시. 마치 외계인의 침입을 다..
낙타여! 낙타여! “찾았다!” 열하에서 돌아오는 길, 승합차 뒷좌석에서 L이 갑자기 소리쳤다. 그러고는 『열하일기』의 한 페이지를 내 코앞에 들이밀었다. 놀랍게도 거기엔 연암이 수천 마리의 낙타떼를 목격하는 장면이 또렷이 서술되어 있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초판에서 연암이 낙타를 번번이 놓쳤다고 썼기 때문이다. 그간 『열하일기』를 수도 없이 읽어댔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텍스트 좀 제대로 읽으세요.” L은 의기양양, 기고만장이다. 윽, 안 그래도 여행 내내 건건사사 신경전을 벌이는 도중이었는데. 이 결정타 앞에서 나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쓰라린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이건 또 어인 곡절인가. 가슴 저 밑바닥이 뭉클해진다. 전공도 다르고, 이번 여행..
달라이라마와 마르코스 ARS 퀴즈 하나. 달라이라마와 마르코스(Marx가 아님)의 공통점은? ① 유머로 승부한다. ② 권력이 없다. ③ 지도자다. 힌트 —— 한 사람은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끄는 수장이고, 또 한 사람은 멕시코 라칸도나 정글에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을 지휘하는 부사령관이다. 한 사람의 얼굴은 사방에 알려져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언제나 검은 마스크에 가려져 있다. 답은? ①, ②, ③번, 요약하면 둘 다 권력이 없는 유머러스한 지도자. 근데 이게 말이 되나? 된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정치적 상상력의 배치를 바꿀 것, 자발적 추대에 의해 구성되는 카리스마, 이데올로기가 아닌 직관의 정치, 적대가 아니라 생성에 기초하는 조직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두 사람에게는 ..
열하, 그 열광의 도가니 “노새의 족보는?” “엄마는 말, 아빠는 당나귀.” “맞았어. 말의 힘과 당나귀의 지구력을 겸비한 셈이지. 그럼, 엄마가 당나귀, 아빠가 말인 건?” “그런 놈도 있나? 글쎄다~.” “버새!” “그럼 힘도 없고 지구력도 딸리겠네? 그걸 워디에 써?” “아니지, 그러니까 되려 상팔자지. 우리도 그렇잖아. 푸하하.” L과 N, 그리고 그의 연인 Z의 ‘개콘’식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고북구를 나와 열하로 가는 길목 곳곳에서 노새와 당나귀들이 출몰(?)했기 때문이다. 연암은 ‘하룻밤에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너는「일야구도하(一夜九渡河)」’ 어드벤처를 겪었건만, 지금 그 강들은 겨우 형체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연암이 경탄해 마지않았던, 한 시간에 70리를 달리던 말들은 ..
‘앉아서 유목하기’ "건륭 45년 경자 8월 7일 밤 삼경(三更)에 조선 박지원이 이곳을 지나다[乾隆四十五年庚子八月七日夜三更, 朝鮮朴趾源過此].” 이름이란 한낱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던 연암이 이름을 남긴 곳. 그것도 남은 술을 쏟아 먹을 갈고, 별빛을 등불삼아 이슬에 붓을 적셔 자신의 흔적을 새겨넣은 곳, 고북구, 거용관과 산해관의 중간에 있어 험준하기로 이름난 동북부의 요충지다. 연암이 ‘무박나흘’의 고된 여정 속에서 통과했던 이곳을 우리는 베이징을 나선 지불과 반나절만에 도착했다. 백 개가 넘는다고 하는 입구 중 우리가 오른 곳은 반룡산(蟠龍山)에 있는 관문, ‘백두대간’을 연상시키는 천연의 요새 위로 장성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마치 용의 비늘인 양 꿈틀거린다. 오, 놀라워라! 하지만 어쩐..
여성들이여, 제기를 차라 베이징에서 합류하기로 한 후발대 중 세 명이 낙오했다. 사스 때문이란다. 뭔 사스? 아, 그러고보니 우리는 그동안 사스를 잊고 있었다! 요동벌판을 가로질러 오는 동안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기 때문이다. 황사의 괴력에다, 고속도로 위의 질주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뺨치는 수준이었다. 추월 과속은 기본이고, 중앙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현란한 액션에는 그저 아연할 따름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원시적 공포에 시달리는 동안, 도시에선 사스가 한층 기세를 떨치고 있었던가보다. 폭우로 범람한 강을 건널 때, 누군가 연암에게 물었다. 소경이 애꾸말을 타고 밤중에 깊은 물가에 섰는 것이야말로 위태로움[盲人騎瞎馬, 夜半臨深池]의 최고가 아니겠느냐고, 연암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소경은 아무것도..
사상체질 총출동! 나는 ‘용가리 통뼈’다. 너무 놀라지들 마시라. 마흔이 넘도록 뼈를 다치거나 삔 적이 거의 없기에 하는 말이다. 이번 여행중에도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첫관문이 있다는 발해만(渤海灣)엘 갔다가 택시기사의 실수로 바퀴에 발목을 밟히는 ‘참사’를 당했건만, 5분 만에 멀쩡해졌다. 강원도 산골 출신이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신장이 튼튼해서 그렇단다. 사상의학적으로 보면 신장이 튼튼한 사람은 소음인에 해당된다. 소음인, 차분하고 내성적이다. 내가? 그럴 리가! 하긴, 어린 시절엔 하루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그랬던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아니나 다를까, 신장 못잖게 폐가 강하다. 날카로운 인상에 목소리가 높고 성질이 좀 급한 편이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 산해관을 지나서도 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차창 밖에서는 한겨울의 칼바람 같은 굉음이 들려오고, 고속도로 위의 나무들은 날아갈 듯 휘청댄다. 사진을 찍기 위해 차 밖으로 나설라치면 머리가 사방으로 곤두서고 다리가 꺾일 정도다. 맑은 하늘을 본 게 언제더라? 그래, 거기에 가면 좀 쉴 수 있겠지, 숲도 있고, 물도 있을 테니, 수양산 ‘이제묘’를 찾아갈 때의 심정은 대략 이랬던 것 같다. 아득한 고대, 은나라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아버지인 왕이 세상을 떠나자 ‘형님 먼저, 아우 먼저’하며 군주의 자리를 양보했다. ‘흠, 훌륭한 덕을 갖춘 군자들이로군’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할 때 말고삐를 잡고 만류했으나 듣지 않자 수양산에 숨어서 고사리를 캐먹다 죽..
잡초는 범람한다! 2003년 4월 14일 오후, 여행의 첫 기착지 심양에 도착했다. 애초엔 배를 타고 단동으로 갈 작정이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일정이 바뀌는 바람에 심양이 출발지가 되었던 것이다. 일행은 나를 포함하여 모두 셋, 연암이 장복이와 창대를 동반했듯, 나 또한 Y와 J, 두 명의 후배와 함께 했다. 연암이 유머의 천재라면, 장복이와 창대는 연암조차 얼어붙게 할 정도의 ‘덤앤더머’였다. 그럼 우리 팀은? ‘갈갈이 패밀리’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Y, 중국어와 한국어에 모두 능통하고, 여성들만 보면 일단 말을 걸고본다. J, 중국어는 물론 모국어인 한국어도 약간 더듬거린다. 여성들 앞에선 더더욱 얼어붙는다. 공항에는 밤열차를 타고 달려온 L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 연구실(연구공간 수유+너머)에..
열하일기의 길을 가다(2003년 봄) 2003년 5월부터 6월까지 『문화일보』에 연재되었던 것임을 밝혀둔다. 군데군데 내용을 약간씩 추가 수정하였다. 천 개의 길, 천 개의 고원 길을 나서기도 전에 여행은 시작되었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열하일기』에 대한 ‘지독한 사랑’에 빠져 있었다. 동서고금 어떤 테마의 세미나에서건 『열하일기』로 시작해 『열하일기』로 마무리했고, 밥상머리에서 농담따먹기를 할 때, 산에 오를 때, 심지어 월드컵축구를 볼 때조차 『열하일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나의 원시적(!) 수다에 견디다 못한 후배들이 한때 『열하일기』를 ‘금서’로 지정하는 ‘운동’을 조직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맞섰다. “내가 『열하일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열하일기』가 나를 통해 자..
그들은 만나지 않았다! 윤리학적 태도에 있어서도 그들은 전혀 달랐다. 연암이 ‘우도(友道)’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데 비해, 다산은 ‘효제(孝悌)’를 일관되게 주창한다. 다산에게 있어 효제는 독서의 근본이자 수행의 근간이다. 고정된 의미화를 거부하는 연암의 철학적 태도는 필연적으로 ‘우정의 윤리학’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에 반해 주체의 명징성을 강조하는 다산에게는 우정보다는 ‘효제’라는 가치를 실천적으로 확충하는 것이 더 절실했던 것이다. 물론 이 차이는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행로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연암에게는 벗의 사귐이 일상의 요체였지만, 다산의 인맥은 대체로 가문과 당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전자의 경우, 중심적인 가치로부터 벗어나 상하를 가로지르며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데 주력했..
호락논쟁에 대한 관점 차이 한편, 18세기 철학적 논쟁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인물성동이논쟁과 관련하여 볼 때, 천기론이 인간과 자연의 연속성을 강조한 동론(同論)의 입장과 연결된다면, 다산의 ‘상제관’은 이론(異論)과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격신의 설정을 통해 이론(異論)보다도 훨씬 더 과격한 인간중심주의를 표방한다. 다산에 따르면 인성과 물성은 결단코 다른 것이어서, 물성은 사물의 자연적 법칙에 한정된다. 인간의 존재는 이 물질계의 어떠한 유(類)로부터도 초월해 있으며, 이 모든 것을 ‘향유’하는 주체이다. 인간이 이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영명(靈命)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영명은 기타 물질계와의 연속성이 부정된 독자적인 인식의 주체로서 작용한다. 자연의 모든 사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
우주와 주체에 대한 관점 차이 다음, 우주와 주체에 대하여, ‘천’에 대한 연암의 관점은 ‘천기론(天機論)’의 지평 위에 있다. 연암을 비롯하여, 이덕무(李德懋), 박제가(朴齊家), 이옥(李鈺) 등에 의해 구성된 ‘천기론’은 ‘천리론(天理論)으로 표상되는 중세적 초원론을 전복하여 자연을 생성과 변이의 내재적 평면으로 변환시킨 것이다. 욕망, 여성, 소수성(minority) 등 기존의 체계에서 봉쇄되었던 개념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장이기도 했다. “참된 정(情)을 편은 마치 고철(古鐵)이 못에서 활발히 뛰고, 봄날 죽순이 성난 듯 땅을 밀고 나오는 것과 같다”는 이덕무의 언급이 그 뚜렷한 예가 된다. 이옥의 다음 글은 가장 명쾌한 선언에 해당된다. 천지만물은 천지만물의 성(性)이 있고, 천지만물의 ..
말과 사물에 대한 관점 차이 연암의 미학적 특질이 유머와 패러독스라면, 다산은 숭고와 비장미를 특장으로 한다. 앞에서 음미한 「양반전(兩班傳)」과 「애절양(哀絶陽)」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유머와 패러독스가 ‘공통관념’을 전복하면서 계속 미끄러져 가는 유목적 여정이라면, 숭고와 비장미에는 강력한 대항의미를 통해 자기 시대와 대결하고자 하는 계몽의 파토스(pathos)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런 미학적 차이 뒤에는 몇 가지 인식론적 접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말과 사물의 관계. 조선 후기 비평담론에 있어 언어와 세계의 불일치는 핵심적인 논제였다. 언어를 탈영토화하기 위한 다양한 모색이 이루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크게 보면, 언어를 탈영토화하는 방향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혁명시인의 비분강개 다산은 그와 달라서 지배적인 담론에 대항하기 위하여 거대한 의미체계를 새롭게 구축한다. 연암이 그러했듯이, 그 또한 문장학의 타락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과거학의 폐해를 이단보다 심하다고 분개해 마지않았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대안은 그것들이 잃어버린 원초적 의미들 혹은 역사적 가치들을 다시 복원하여 역동성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다산에게 있어 진정한 시란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읽어내고, 세상을 경륜하려는 욕구가 충일한 상태에서 문득 자연의 변화를 마주쳤을 때 저절로 터져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런 시는 시가 아니며,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不愛君憂國非詩也 不傷時憤俗非詩也]”다. ..
표현기계의 발랄함 자, 워밍업은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연암이 표현형식을 전복하는 데 몰두한 데 반해, 다산은 의미를 혁명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것은 두 사람의 비평적 관점에서도 그대로 확인되는 사항이다. 먼저, 연암 비평의 핵심은 주어진 언표의 배치를 변환하는 데 있다. 당대 고문이 지닌 경직된 코드를 거부하고 우주와 생의 약동하는 리듬을 포착하는 것이 ‘연암체’의 핵심이었다. 문장에 고문과 금문의 구별이 있는 게 아니다. (중략)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본 바에 따라 그 형상과 소리를 곡진히 표현하고 그 정경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만 있다면 문장의 도는 그것으로 지극하다. 『나의 아버지 박지원』 4권 常..
‘표현기계’와 ‘혁명시인’의 거리 蘆田少婦哭聲長 갈밭 마을 젊은 아낙네 울음소리 길어라 哭向縣門號穹蒼 고을문 향해 울다가 하늘에다 부르짖네 夫征不復尙可有 수자리 살러 간 지아비 못 돌아올 때는 있었으나 自古未聞男絶陽 남정네 남근 자른 건 예부터 들어보지 못했네 舅喪已縞兒未澡 시아버지 초상으로 흰 상복 입었고 갓난애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三代名簽在軍保 할아버지 손자 삼대 이름 군보에 올라 있다오 薄言往愬虎守閽 관아에 찾아가서 잠깐이나마 호소하려 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처럼 지켜 막고 里正咆哮牛去皁 이정은 으르대며 외양간 소 끌어갔네 磨刀入房血滿席 칼을 갈아 방에 들어가자 삿자리에는 피가 가득 自恨生兒遭窘厄 아들 낳아 고난 만난 것 스스로 원망스러워라 蠶室淫刑豈有辜 무슨 죄가 있다고 거세하는 형벌을 당했나요..
서학(西學), 또 하나의 진앙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하나 더 있다. 서학이 그것이다. 정조 집권시에는 노론계열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패사소품 외에도 남인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졌던 서학 역시 정치적 소용돌이를 야기하는 또 하나의 진원지였다. 그럼에도 정조는 유독 전자를 문제삼음으로써 후자를 적극 보호해주었다. “서양학을 금지하려면 먼저 패관잡기부터 금지해야 하고, 패관잡기를 금지하려면 먼저 명말청초의 문집들부터 금지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명분이었다. 서학과 패관잡기가 대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언뜻 비약과 모순투성이로 보이는 이런 논법의 속내는 사실 매우 단순하다. 서학은 교리가 너무 이질적이어서 솎아내기가 쉽지만, 패사소품은 은밀하게 침투하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부를 교란한다는..
그때 ‘다산’이 있었던 자리 비평사적 관점에서 볼 때 문체반정(文體反正)은 하나의 특이점이다. 일단 ‘문체와 국가장치’가 정면으로 대결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그 사건으로 인해 18세기 글쓰기의 지형도가 첨예한 윤곽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열하일기』가 이 사건의 배후조종자로 지목되었고, 연암이 정조의 당근과 채찍을 교묘하게 피해갔음은 이 책 2부에서 밝힌 바와 같다. 그렇다면 그때 다산은 어디에 있었던가? 혈기방장한 20대 후반을 통과하면서 관료로서의 경력을 쌓고 있었던 다산은 문체반정이 일어나기 직전, 이런 책문을 올린다. 신은 혜성(彗星)ㆍ패성(孛星)과 무지개 흙비 오는 것을 일러 천재(天災)라 하고 한발 홍수로 무너지거나 고갈되는 것을 일러 지재(地災)라 한다면, 패관잡서..
오만과 편견 연암 박지원(1737~1805)과 다산 정약용(1762~1836). 이 두 사람은 조선 후기사에 있어 그 누구와도 견주기 어려운 빛과 에너지를 발산한다. 두 사람이 펼쳐놓은 장은 17세기 말 이래 명멸한 수많은 ‘천재’들이 각축한 경연장이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이성의 지대이다. 그래서인가? 그들이 내뿜는 빛에 눈이 부신 탓인가?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서로 유사한 계열로 간주하고, 그렇게 기억한다. 그러나 앞에서 언뜻 엿보았듯, 그들은 한 시대를 주름잡은 천재요 거장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유사성을 거의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질적이다. 그런데 어째서 둘은 마치 인접항처럼 간주된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둘을 비춘 렌즈의 균질성이 차이들을 평면화했기 때문이다. ‘중세적..
연암과 다산: 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두 가지 경로 같은 책 다른 독법 그대가 태사공의 『사기(史記)』를 읽었다 하나, 그 글만 읽었지 그 마음은 읽지 못했구료. 왜냐구요. 「항우본기(項羽本紀)」를 읽으면 제후들이 성벽 위에서 싸움 구경하던 것이 생각나고, 「자객열전」을 읽으면 악사 고점리가 축을 연주하던 일이 떠오른다 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늙은 서생의 진부한 말일 뿐이니, 또한 부뚜막 아래에서 숟가락 주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아이가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司馬遷)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요. 앞발은 반쯤 꿇고 뒷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해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가, 손은 잡았는가 싶었는데 나비는 호로록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계면쩍어 씩 웃다..
이름의 중력에서 벗어나 我服地黃湯 내가 지황탕을 마시려는데 泡騰沫漲 印我顴顙 거품은 솟아나고 방울도 부글부글 그 속에 내 얼굴을 찍어놓았네 一泡一我 一沫一吾 거품 하나마다 한 사람의 내가 있고 방울 하나에도 한 사람의 내가 있네 大泡大我 小沫小吾 거품이 크고 보니 내 모습도 커다랗고 방울이 작아지자 내 모습도 조그맣다. (中略) 我試嚬焉 一齊蹙眉 시험 삼아 얼굴을 찡그려보니 일제히 눈썹을 찌푸리누나 我試笑焉 一齊解頤 어쩌나 보려고 웃어봤더니 모두들 웃음을 터뜨려댄다. (中略) 斯須器淸 香歇光定 이윽고 그릇이 깨끗해지자 향기도 사라지고 빛도 스러져 百我千吾 了無聲影 백명의 나와 천 명의 나는 마침내 어디에도 자취가 없네 咦彼麈公 過去泡沫 아아! 저 주공은 지나간 과거의 포말인 게고 爲此碑者 現在泡沫 이 비..
네 이름을 돌아보라! ‘인성과 물성이 같다’는 것은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 사이의 경계를 설정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먼지’로 이루어졌을 뿐인데, 인간과 ‘인간 아닌 것’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가 대체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그리고 이렇게 되는 순간, 인간 내부의 경계 또한 무의미해진다. 즉 개별인간들에게 부과된 고유한 정체성 역시 불변의 위치를 고수할 이유가 없다. 인연조건에 따라, 배치에 따라 일시적인 주체로 호명될 따름이지, 근원적으로는 모두가 무상(無常)한 것이다.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인간은 자아의 영원성을 지키기 위해 안달한다. 무엇보다 이름이 그러하다. 이름이란 대체 무엇인가? 한번 자신의 이름을 돌아보라! 卽此汝名 匪在汝身 그것이 네 이름이기는 하지만 너의 ..
생태주의 연암은 윤리적인 차원에서도 이런 태도를 실천하려고 했다. 사사로이 도살한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개는 주인을 따르는 동물이다. 하지만 기르면 잡아먹지 않을 수 없으니, 처음부터 기르지 않는 게 낫다”며 집에서 개를 기르지 못하게 했다. 또 한번은 타고 다니던 말이 죽자 하인에게 묻어주게 했는데, 하인들이 공모하여 말고기를 나누어 먹은 일이 있었다. 연암은 살과 뼈라도 잘 수습하여 묻어주게 한 다음 하인의 볼기를 치며, “사람과 짐승이 비록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이 말은 너와 함께 수고하지 않았느냐? 어찌 차마 그럴 수가 있느냐?”며 내쫓았고, 그 하인은 문 밖에서 몇 달이나 죄를 빈 다음에야 비로소 집에 들어올 수가 있었다 한다. 열하에서 종마법에 대해 웅변을 토할 때도 그의 관점은 단지 실용..
인성 물성은 같다! 18세기 철학사의 주요한 이슈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논쟁이 될 것이다.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은 같은가? 다른가? 이것을 둘러싸고 연임이 속한 노론 경화사족들 내부에서 한바탕 논란이 벌어진다. 기본적으로 동양의 사유는 인성과 물성을 연속성의 차원에서 접근한다. 인간과 외부 사이에 확연한 경계를 설정하지 않는 것이 인식의 근본전제이기 때문이다. 물아일체(物我一體) 혹은 천인합일(天人合一) 이 도의 궁극적 지향점인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전제를 공유하면서도 그 내부에서는 인성/물성의 차이 및 상대적인 위계를 강조하는 쪽과 그 둘의 연속성을 극단적으로 지향하는 입장이 갈라졌던 것이다. 후자의 입장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담헌 홍대용(洪大容)이다. 사람에게는 ..
3장 인간을 넘어 주체를 넘어 만물의 근원은 ‘먼지’ 연암은 연행이 시작되자, 말 위에서 중원의 선비들과 만나면 어떻게 논변을 펼칠까를 궁리한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지전설, 지동설로 한판 붙어보는 것.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이미 일반적인 상식이 되었지만, 지구가 돈다는 것은 아직 서양에서도 밝히지 못한 논변이다. 물론 그건 연암이 독자적으로 밝힌 이론이 아니라, 친구 정철조(鄭喆祚)와 홍대용(洪大容)에게서 귀동냥한 것이다. 「곡정필담(鵠汀筆談)」에서 드디어 실전이 벌어진다. 곡정이 묻는다. 우리 유학자들도 근래에는 땅이 둥글다는 설[地球之說]을 자못 믿습니다. 대저 땅은 모나고 정지되어 있고, 하늘은 둥글고 움직인다고 하는 설은 우리 유학자의 명맥이지요. 한데, 서양 사람들이 그것을 혼란스럽게 만들..
소박한 이단 『열하일기』에 그려진 천주교는 그래서 매우 유치한 수준이다. 대저 저 서양인들이 말하는 야소(耶蘇, 예수)는 중국의 군자나 토번의 라마와 비슷합니다. 야소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늘을 공경하여 온 천지에 교리를 세웠지만, 나이 서른에 극형을 당하고 말았답니다. 해서, 그 나라 사람들이 몹시 애모하여 야소회를 설립하고는 그를 신으로 공경하여 ‘천주’라 부르게 되었지요. 그래서 야소회에 들어간 자는 반드시 비통해하면서 야소의 수난을 잊지 않는다고 합니다. 「곡정필담(鵠汀筆談)」 耶蘇者 如中國之語賢爲君子 番俗之稱僧爲喇嘛 耶蘇一心敬天 立敎八方 年三十遭極刑 而國人哀慕 設爲耶蘇之會 敬其神爲天主 入其會者 必涕泣悲痛 不忘天主 왕곡정은 이런 식으로 천주교를 간단히 정리한 뒤, 이것이 비록 부처를 배격하고 있으..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 열하에서 곡정과 필담할 때 담배가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이 담배는 만력 말년에 절동(浙東)과 절서(浙西) 지역에 널리 유행했습니다. 이 물건은 사람들의 가슴을 막히게 하고 취해 쓰러지게 하는 천하의 독초이지요. 먹어서 배가 부른 것도 아니건만 천하의 좋은 밭에서 나는 귀한 곡식과 이문이 같고, 부녀자와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고기보다 더 즐기며 차나 밥보다 더 좋아합니다. 쇠붙이와 불을 입에 당겨 대니, 이 또한 세상 운수라 해야 할지. 아무튼 이보다 더 큰 변괴가 어디 있겠습니까.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萬曆末 遍行兩浙間 猶令人悶胸醉倒 天下之毒草也 非充口飽肚 而天下良田 利同佳糓 婦人孺子 莫不嗜如蒭豢 情逾茶飯 金火迫口 是亦一世運也 變莫大焉 그러자 연암은 “만력..
이단과의 강도 높은 접속 정황이 그러하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중국을 유람하다가 마음껏 주희를 반박하는 이를 만나면, 반드시 범상치 않은 선비로 여기고 이단이라면서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차분히 대화를 이끌어 그 속내를 알아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를 통해 천하의 대세를 엿볼 수 있으리라. 「심세편(審勢編)」 駁朱者 知其爲非常之士而毋徒斥以異端 善其辭令 徵質有漸 庶幾因此而得覘夫天下之大勢也哉 이 유연한 도움닫기! 여기에서도 역시 영토화하는 선분과 탈영토화하는 선분이 뒤섞여 있다. 그의 위치는? 두 선분의 사이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암은 주자주의와 청왕조, 지식인과 주자학, 주자주의와 반주자주의 등의 선분들이 교차하는 사이를 매끄럽게 왕래한다. 그렇다면 양명학을 포함하여 주자학의 외부, 불학과 도학 ..
주자학과 이단들 주자는 주자주의자일까? 아닐까? 아마도 가장 정확한 대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일 것이다. 긍정의 경우는 주자주의가 기존의 배치를 동요시키면서 새로운 담론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상황을, 부정의 경우는 주자주의가 교조적 담론으로 기능하는 상황을 상정한 것일 터이다. 즉 이 단순소박한 문답은 어떤 전복적 사유도 시공간적 배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뿐 아니라, 자신에 반하는 의미까지도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준다. 중세의 텍스트를 다루는 이들에게 주자는 언제나 넘어서야 할, 탈주자주의의 맥락에서만 그 얼굴을 드러내는 존재다. 앞서 간략하게 짚었듯이 16세기 이후 조선은 주자학이 통치이념으로 자리잡았고, 17세기 당파 간 분열이 가속화되면서 육경(六經)에 대한 주자 이외의 어떤 ..
천하의 형세 분석 물론 그렇다고 연암의 의도가 청문명을 예찬하는 방향으로 귀결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이념적 명분이 아니라 지상에서 펼쳐지는 힘의 배치다. 연암의 정치적 촉수는 이 배치의 미세한 결을 더듬는다. 가령 조선의 선비들은 변발을 비웃는다. 변발은 청이 한족에게 강요한 야만적 습속 중 가장 악질적인 것이다. 그럼 어째서 조선에는 그것을 강요하지 않았는가? 생각하면 정말 의아하기 짝이 없다. 그들의 무력으로서는 조선을 무릎 꿇리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을 터인데. 연암이 보기에 청나라 쪽의 입장은 이렇다. “조선은 본래 예의로 이름이 나서 머리털을 자기 목숨보다 사랑하는데, 이제 만일 억지로 그 심정을 꺾는다면 우리 군사가 돌아온 뒤에는 반드시 뒤엎을 터이니, 예의로써 얽어매어 두느니만 못할..
2장 세 개의 첨점: 천하ㆍ주자ㆍ서양 북벌론이란 관념에 갇히지 않고서 ‘사이의 은유, 차이의 열정’을 당대의 첨예한 이념적 사안들에 투사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우리는 이미 앞에서 그가 중화주의, 북벌, 주자학 따위를 어떻게 비틀고 헤집고 다녔는지를 대강 살펴본 바 있다. 그걸 바탕 삼아 몇 가지 첨점들을 좀더 탐색해 보자. 때론 와이드 비전으로, 때론 현미경을 들이대고서. 당시 청왕조 치하의 한족 지식인들의 고심은 이런 것이다. 심정적으로는 절대 만주족 오랑캐의 통치를 인정할 수 없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그들이 명왕조를 무너뜨리고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일까. 천하를 통치하는 건 하늘의 뜻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오랑캐로 하여금 천하를 지배하게 한 그 하늘의 뜻은 대체 뭐란 말인가. 「곡정필담(鵠..
그대 길을 아는가? 연암의 손자는 대원군 집정시 우의정까지 지냈고, 개화파의 선구자로 꼽히는 박규수다. 그가 평양감사를 지내던 시절, 친지 중에 한 사람이 박규수에게 이제는 ‘『연암집』을 공간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제안을 했다. 뜻밖에도 ‘공연히 스캔들 일으키지 말자’는 게 박규수의 답변이었다 한다. 연암 사후 무려 수십 년이 지난 19세기 후반까지도 연암의 글은 금기의 장벽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그만큼 그는 조선 후기 담론사의 외부자였다. 그러던 그가 20세기 초 지식의 재배치 속에서 화려하게 복권되었다. ‘태서신법(泰西新法)’의 선각자로서, 그 이후 내재적 발전론과 더불어 실학이 한국학의 주요담론으로 부상하면서 연암의 텍스트는 탈중세, 민족주의 민중성의 맹아, 근대주의 등등으로 집중적인 스포트라..
‘사이’의 은유 초월적인 중심을 전복하고 현실의 변화무쌍한 표면을 주시할 때 진리 혹은 선악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만약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만 본다면 허무주의(nihilism)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치의 무화라는 벡터(vector)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변화하는 흐름을 예의주시하면서 때에 맞게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시켜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편이 바로 ‘사이에서’ 사유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열하로 가는 무박나흘의 대장정’을 아직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비몽사몽 상태를 연암은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솔솔 잠이 쏟아져서 곤한 잠을 자게 되니 천상의 즐거움이 그 사이에 스며 있는 듯 달콤하기 ..
코끼리에 대한 상상 그 구체적 결과물이 「상기(象記)」다. ‘코끼리의 철학’이라 부를 만한 이 텍스트는 초월적 주체에 대한 의혹으로부터 시작된다. 아, 사람들은 세상의 사물 중에 터럭만 한 작은 것이라도 하늘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그러나 하늘이 어찌 하나하나 이름을 지었겠는가, 형체로 말한다면 천(天)이요, 성정(性情)으로 말한다면 건(乾)이며, 주재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상제(上帝)요, 오묘한 작용으로 말하자면 신(神)이니, 그 이름도 다양하고 일컫는 것도 제각각이다. 이(理)와 기(氣)를 화로와 풀무로 삼고, 뿌리는 것과 품부하는 것을 조물(造物)로 삼아, 하늘을 마치 정교한 공장이로 보아 망치 도끼 끌 칼 등으로 조금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噫! 世間事物之微, 僅若毫末, 莫非稱天, 天何..
5부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1장 사이에서 사유하기 말똥구리에서 코끼리까지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을 아껴 여룡(驪龍)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룡 또한 여의주를 가지고 스스로 뽐내고 교만하여 저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螗琅自愛滚丸, 不羡驪龍之如意珠; 驪龍亦不以如意珠, 自矜驕而笑彼蜋丸. 이 글은 연암의 벗이자 제자인 이덕무(李德懋)의 것으로, 연암이 「낭환집서(蜋丸集序)」에서 재인용하면서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회자된 아포리즘(aphorizm)이다. 요점은 척도를 고정시키지 말라는 것. 진리 혹은 가치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놓이는 자리, 곧 배치에 따라 달라질 따름이다. 지극히 낮고 천한 미물인 말똥구리와 신화적 상상력에 감싸인 여룡을 대비함으로..
북벌(北伐) 프로젝트 물론 이런 정도로 중화사상이 골수에 박힌 자들이 설복당할 리가 없다. 연암 또한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강경한 전략을 구사한다. 먼저 표적을 북벌론(北伐論)으로 잡았다. 잘 알고 있듯이 소중화(小中華)주의는 북벌론과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 조선이 ‘작은 중화’라면, 마땅히 청나라 오랑캐를 물리쳐 중원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북벌론의 요지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한 이후 인조는 북벌을 통치이념으로 내세운다. 복수에 눈이 먼 인조와 그 추종자들에게 청과 조선의 역학 관계 따위가 제대로 보일 리가 없다. 청문명의 역동적 기류에 눈뜬 소현세자가 조선에 돌아와 뜻을 펴지도 못한 채 의문의 죽음을 당했음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소현세자를 ..
모두가 오랑캐다! 조선이 청문명을 거부하는 이유는 청이 북방의 유목민이고, 그들의 문화는 오랑캐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 역시 동이, 곧 동쪽 오랑캐다. 차이가 있다면, 농경민이라는 것뿐이다. 오랑캐가 오랑캐를 타자화하는 것, 이것이 소중화(小中華) 주의의 내막인 셈이다. 그럴 수 있는 근거는 조선은 비록 종족적으로는 오랑캐지만, 정신은 더할 나위없이 순수한 중화라는 것이다. 더구나 중화문명의 수호자인 한족이 멸망했으니, 이제 문명은 중원땅에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중화의 지리적, 종족적 실체가 사라진 마당에 이제 헤게모니는 누가 더 중화주의를 순수하게 보존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조선 후기 들어 주자학이 도그마화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자학이란 송나라 때 주희에 의해 완성된 유학의 한 분파다. 주희는 당..
3장 “문명은 기왓조각과 똥거름에 있다” 문명과 똥 ‘똥과 문명의 함수’ 아니면 ‘똥의 역사’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웬 ‘개똥’ 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이건 정말 진지한 담론적 이슈다. 똥이야말로 문명의 배치를 바꾸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였던바, 어찌 보면 똥의 역사야말로 태초 이래 인류의 궤적을 한눈에 집약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까닭이다. 요즘 사람들의 똥에는 파리가 들끓지 않는다고 한다. 너무 독성이 강해서 파리떼도 기피한다는 것이다. 이러다간 ‘똥파리’라는 종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똥파리 없는 똥’,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바로 이 사실만큼 인류가 현재 처한 상황을 잘 말해주는 것도 없지 않은가? 생태계의 파괴, 이성의 경계, 타자성 등, 지금 소위 ‘포스트 모던’ 철학이 씨름하..
말의 아수라장 그의 패러독스는 모든 차이들을 무화시켜 동일성으로 환원하려는 도그마에 대한 통렬한 웃음이 깔려 있다. “중요한 것은 이데아를 파면시키는 것이고, 이념적인 것은 높은 곳이 아니라 표면에 있다”(들뢰즈), 그의 언어가 가장 높은 잠재력에 도달하는 것도 이 ‘역설의 열정’에서이다. 물론 자신도 그 프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머와 개그의 주인공이 언제나 연암 자신이었듯이, 타자의 시선, 혹은 역설의 프리즘은 연암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투사된다. 사신을 따라서 중국에 들어가는 사람에겐 모름지기 부르는 호칭이 있다. 역관은 종사(從事)라 부르고, 군관은 비장(裨將)이라고 부르며, 나처럼 한가롭게 유람하는 사람은 반당(伴當)이라고 부른다. 소어(蘇魚)라는 물고기를 우리나라 말로는 ‘밴댕이[盤當]’..
전족에 대한 시선 한족 여인들의 전족(纏足)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전족이란 여성들이 발을 작게 만들기 위해 발을 꼭꼭 싸매는 습속이다. 예쁘고 작은 발이야말로 가장 성적인 표징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금병매(金甁梅)』를 보면, 여주인공 반금련의 걸음걸이를 연보(蓮步), 즉 연꽃 같은 발걸음에 비유하는 경우가 종종 나오는데, 그게 바로 이런 맥락이다.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그걸 위해선 아주 어릴 때부터 두 발을 조일대로 조여 성장을 멈추게 해야 했으니, 이 습속이야말로 여성에 대한 신체적 억압의 대표적 사례인 셈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중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전족의 거부’를 핵심 강령의 하나로 채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이 철저히 한족의 습속이라는 점이다. 『열하..
판첸라마의 동불도 받지 못하는 편협함 어떻든 이처럼 외부자 혹은 타자의 시선으로 ‘우리’를 보면, 전혀 예기치 않은, 혹은 보이지 않던 면목들이 ‘클로즈 업’ 된다. 시선의 전복을 통한 봉상스(bon sens)의 해체! 이런 식의 수법은 단지 풍속의 차원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을 평가할 때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열하에서 판첸라마가 동불(銅佛)을 하사했을 때, 조선 사신단이 마치 꿀단지에 손 빠뜨린 것처럼 당혹스러워하며 한바탕 소동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 일에 대해 연암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 구리 불상도 반선이 우리 사신을 위해 먼 길을 무사히 가도록 빌어주는 폐백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이라도 부처에 관계되는 일을 겪으면 평생 누가 되는 판인데, 하물며 이것을 준..
우리의 술문화 시점변환이야말로 연암이 즐겨 사용하는 기법 중 하나다. 말하자면, 타자의 눈을 통해 조선의 문화나 습속을 바라봄으로써 익숙한 것들을 돌연 ‘낯설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 사신들의 의관은 신선처럼 빛이 찬란하건만, “거리에 노는 아이들까지도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서” 도리어 연극하는 배우 같다고 한다. 또 도포와 갓과 띠는 중국의 중옷과 흡사하다. 연암이 변관해와 더불어 옥전의 어느 상점에 들어갔더니, 수십 명이 둘러서서 자세히 구경하다가 매우 의아하게 여기면서 서로 말하기를, “저 중은 어디에서 왔을까” 한다. 유학자보고 중이라니?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대체 중국의 여자와 승려와 도포들은 옛날 제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조선의 의관은 “모두 신라의 옛제도를 답습한 것이 많..
타자의 시선으로 ‘이목(耳目)의 누(累)’는 시선의 문제로 수렴된다. 시선은 대상을 보는 주체의 관점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공고해질 경우, 견고한 표상의 장벽이 구축된다. 소중화(小中華)주의나 ‘레드 콤플레스’ 등 한 시대를 관통하는 이데올로기 또한 결국은 시선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연암의 패러독스는 무엇보다 시선의 자유로운 이동을 수반한다. 밀운성에서 한 아전의 집에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정사가 불러서 청심환 한 알을 주자 여러 번 절을 해댄다. 몹시 놀라고 두려워하는 기색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막 잠이 들었을 즈음 문을 두드리는 이가 있어 나가보니 사람 지껄이는 소리와 말 우는 소리가 시끌벅적한데, 모두 생전 처음 듣는 것이었을 테니. 게다가 문을 열자 벌떼처럼 뜰을 가득 메우는 사람들, 이들은..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봉상스(bon sens)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각에 의한 ‘알음알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울음을 단지 슬픔에만 귀속하는 것이 울음의 잠재력을 위축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인간의 지식은 한없이 비루해진다. 이목에 좌우되어 대상의 본래 면목을 보지 못하는 사유의 한계, 그것을 격파하고자 하는 것이 연암의 진정한 의도이다. 여행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문의 번화함을 마주한 연암은 기가 팍 꺾여 그만 돌아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치민다. 순간, 온몸이 화끈해진다. 이것도 남을 시기하는 마음이지. 난 본래 천성이 담박해서 남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는데. 이제 다른 나라에 한 발을 들여놓았을 뿐, 아직 이 나라의 만분의 일도 못 보았는데 ..
2장 시선의 전복, 봉상스의 해체 ‘호곡장(好哭場)’? 유머가 만들어놓은 매끄러운 공간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물론 범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중세적 엄숙주의와 매너리즘이 전복되면, 그 균열의 틈새로 전혀 예기치 못한 일들이 솟구치기 때문이다. 그 순간, 18세기 조선을 지배했던 통념들은 가차없이 허물어진다. 무엇보다 그의 유머에는 언제나 패러독스가 수반된다. 주지하듯이 패러독스, 곧 역설은 통념의 두 측면인 양식(bon sens)과 상식에 대립한다. 봉상스, 그것은 한쪽으로만 나 있는 방향이며, 그에 만족하도록 하는 한, 질서의 요구를 표현한다. 그에 반해 역설은 예측불가능하게 변하는 두 방향 혹은 알아보기 힘들게 된 동일성의 무의미로서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패러독스란 봉상스의 둑이 무너진 ..
판첸라마 대소동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판첸라마 대소동!’이다. 천신만고 끝에 열하에 도착한 일행에게 또 하나의 ‘불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티베트의 판첸라마를 만나 예를 표하라는 황제의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춘추대의(春秋大義)’로 무장한 그들로선 만주족보다 더 망측한 서번의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린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날벼락’이었다. “모두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당번 역관들은 허둥지둥 분주하여 술이 덜 깬 사람들 같았다. 비장들은 공연히 성을 내며 투덜거렸다. 거 참, 황제의 분부가 고약하기 짝이 없네. 망하려고 작정을 했나.”라는 극단적 발언이 오고가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 연암은 무얼 했던가? 나야 한가롭게 유람하는 처지인지라 조금도 참견할 없을 뿐더러 사신들 ..
술 마시기 사건 다음은 ‘코믹 액션’의 일종이다. 열하에 도착해서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한 술집에 들어선다. 마침 몽고와 회자 패거리들이 수십명 술집을 점거하고 있다. 오랑캐들의 구역에 동이족(東夷族) 선비가 느닷없이 끼어든 꼴이 된 셈이다. 워낙 두 오랑캐들의 생김새가 사납고 험궂어 연암은 후회막심이나 이미 술을 청한 뒤라 괜찮은 자리를 골라 앉았다. 연암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넉 냥 술을 데우지 말고 찬 것 그대로 가져오게 한다. 심부름꾼이 웃으면서 술을 따라 가지고 오더니 작은 잔 둘을 탁자 위에 먼저 벌여놓는다. 나는 담뱃대로 그 잔을 확 쓸어 엎어버렸다. “큰 술잔으로 가져 와!” 그러고는 큰 잔에다 술을 몽땅 따른 뒤, 단번에 주욱 들이켰다.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酒傭笑而斟來 先把兩小盞 ..
상갓집 사건과 기상새설 사건 먼저 상갓집 해프닝, 연암이 십강자(十扛子)에 이르러 쉬는 사이에 정진사, 변계함 등과 함께 거리를 거닐다가 한 패루(牌樓)에 이르렀다. 그 제도를 상세히 구경하려 할 즈음에 요란스런 음악이 시작된다. 정과 변, 두 사람은 엉겁결에 귀를 막고 도망치고, 연암 역시 귀가 먹을 것 같아서 손을 흔들어 소리를 멈추라 하여도 영 막무가내로 듣지 않는다. 다만 할끔할끔 돌아보기만 하고 그냥 불고 두드리고 한다. 호기심이 동한 연암은 상갓집 제도가 보고 싶어 따라가니, 문 안에서 한 상주가 뛰어나와 연암 앞에 와 울며 대막대를 내던지고 두 번 절하는데, 엎드릴 땐 머리가 땅에 닿도록 조아리고 일어설 땐 발을 구르며 눈물을 비오듯 흘린다. 그러고는 “창졸에 변을 당했사오니 어찌해야 좋을지..
주인공은 바로 ‘나’ 이처럼 장쾌한 편력기답게 『열하일기』에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그러나 그 가운데 단연 도드라진 인물은 연암 자신이다. 그는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신의 심리를 미세한 부분까지 아낌없이 드러내 보인다. 불타는 질투심과 호기심, 우쭐거림, 머쓱함 등, 그 생동하는 파노라마는 이 편력기에 강렬한 색채를 부여한다. 여행이 시작되고 얼마 있다 그는 꿈을 꾼다. 밤에 조금 취하여 잠깐 조는데, 몸이 홀연 심양성 안에 있다. 꿈속에서 보니 궁궐과 성지와 여염과 시정들이 몹시 번화ㆍ장려하다. 연암은 “이렇게 장관일 줄이야! 집에 돌아가서 자랑해야지[余自謂壯觀]”하고 드디어 훌훌 날아가는데, 산이며 물이 모두 발꿈치 밑에 있어 마치 소리개처럼 날쌔다. 눈 깜박할 사이..
중국 아이와의 우정 그 숱한 엑스트라들 중에 아역이 없을 리 없다. 호삼다(胡三多)라는 꼬맹이 친구가 바로 그다. 나이는 열두 살, 얼굴이 맑고 깨끗하며 예도에 익숙하다. 일흔세 살된 노인과 함께 곡정 왕민호에게 글을 배운다. 매일 새벽이면 삼다는 노인과 함께 책을 끼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걸음을 맞추어 와선 곡정을 뵙는다. 곡정이 바쁠 때면, 노인은 즉시 몸을 돌려 동자인 삼다에게 고개를 숙이고 강의를 받고선 간다. 돌아가선 여러 손자들에게 다시 배운 바를 가르쳐준다고 한다. 노인은 스스럼없이 어린 삼다를 동학(同學) 혹은 아우라 부른다. 연암은 이들 짝궁을 보고, “늙은이는 젊은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젊은이는 늙은이를 업신여기지 않[老者不恥 稚者不侮]”는 변방의 질박한 풍속에 감탄해 마지않는다. 한..
중국 문인들과의 우정 중국 장사치들과의 만남이 아름답고 애틋한 ‘우정의 소나타’라면, 선비들과의 교제는 일종의 ‘지적 향연(symposium)’이다. 고금의 진리, 천하의 형세, 민감한 정치적 사안들을 두루 망라하는 색채로 비유하면 전자는 경쾌한 블루 톤에, 후자는 중후한 잿빛 톤에 해당될 것이다. 연암은 서울을 떠나는 순간부터 중원의 선비들과의 만남을 준비한다. 내가 한양을 떠나서 여드레 만에 황주에 도착하였을 때 말 위에서 스스로 생각해보니, 학식이라곤 전혀 없는 내가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중국에 들어갔다가 위대한 학자라도 만나면 무엇을 가지고 의견을 교환하고 질의를 할 것인가 생각하니 걱정이 되고 초조하였다. 余離我京八日 至黃州 仍於馬上 自念學識固無藉手 入中州者 如逢中州大儒 將何以扣質 以此煩寃 그..
중국 상인들과의 우정 중국인 친구들에 대한 터치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중국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그저 그런 인물들이지만, 연암이 연출하는 ‘필드’ 안에 들어오는 순간, 빛나는 엑스트라가 된다. 예속재(藝粟齋)는 골동품을 다루는 점포로 수재(秀才) 다섯 명이 동업을 하는데, 모두 나이가 젊고 얼굴이 아리따운 청년들이다. 또 가상루(歌商樓)는 먼 곳에서 온 선비들이 운영하는 비단점이다. 연암은 가상루에 들러 사람들을 이끌고 예속재로 가기도 하고, 예속재의 친구들을 꼬드겨 가상루로 가기도 한다. 연령은 10대에서 4, 50대까지 걸쳐 있다. 그런데도 다들 동갑내기들처럼 허물이 없다. 「속재필담(粟齋筆談)」과 「상루필담(商樓筆談)」은 그들과 주고받은 ‘우정의 향연’이다. 연암이 그들과 접선하는 코드는 매..
정진사와 득룡 스케치 이제 독자들도 장복이와 창대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상당히 낯이 익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연암의 시종들이라서가 아니다. 만약 연암이 그들을 그저 그림자처럼 끌고 다니기만 했다면, 장복이와 창대는 벌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연암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의 말, 행동, 생김새까지 눈에 삼삼하도록 생생한 호흡을 불어넣었다. “한참 서성거리다 몸을 돌이켜 나오는데 장복을 돌아보니 그 귀밑의 사마귀가 요즘 더 커진 듯했다.” 귀밑의 사마귀까지 캐치하는 놀라운 관찰력. 그래서 그들은 별볼일 없는 인물이지만 출현하는 장면마다 강렬한 악센트를 부여한다. 이름하여 ‘빛나는 엑스트라.’ 누구든 그렇다. 연암과 함께 움직이면, 혹은 연암의 시선에 나포되면 누구든지 ..
말의 아수라장 ‘워밍업’을 위한 퀴즈 하나 더, 『돈키호테』의 저자는? 세르반테스 정말 그렇다고 믿는가?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하게 있으면 그 사람은 분명, 책을 읽지 않았다. 그럼 세르반테스가 아니냐구? 물론 제자는 세르반테스다. 그러나 『돈키호테』를 읽다보면 원저자가 따로 있고 세르반테스 자신은 마치 번역자인 것처럼 너스레를 떠는 대목들과 도처에서 마주친다. 처음엔 웃어넘기다가도 같은 말을 자주 듣다보면, 웬만큼 명석한(?) 독자들도 머리를 갸우뚱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2부는 1부의 속편이 아니다. 1부에서 돈키호테가 한 기이한 모험들이 책으로 간행되어 사람들 사이에 널리 유포된 상황이 2부의 출발지점이다. 말하자면 돈키호테는 자신이 저지른 모험을 확인하기 위한 순례를 떠나는 것이다. 이처럼 ..
포복절도(抱腹絶倒) 퀴즈 두서너 가지, 『열하일기』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먹거리는? 술, 『열하일기』에서 돈보다 더 유용한 교환가치를 지닌 물건은? 청심환, 가장 큰 해프닝은? ‘판첸라마 대소동!’이 정도만 맞혀도 『열하일기』의 진면목에 꽤나 접근한 편이다. 그럼 『열하일기』에 가장 자주 출현하는 낱말은? 정답은 포복절도! 여행의 목적이 마치 포복절도에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연암은 이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그 자신이 남을 포복절도하게 만들 뿐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그 자신 또한 기꺼이 포복절도한다. “내 성미가 본디 웃음을 참지 못하므로, 사흘 동안 허리가 시었다”고 할 때, 그건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연암이 움직일 때마다 ‘웃음의 물결’이 출렁거린다. 열하에서 윤가전, 기려천 등과 ..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1장 유머는 나의 생명! ‘스마일[笑笑] 선생’ ‘호모 루덴스’가 펼치는 ‘유머와 역설의 대향연’ ―― 만약 『열하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나는 예고편의 컨셉을 이런 식으로 잡을 작정이다. 고전을 중후하게 다루기를 원하는 고전주의자(?)들은 마뜩잖아 할 터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유머 없는 『열하일기』는 상상할 수조차 없으니.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열하일기』는 유머로 시작하여 유머로 끝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도처에서 유머를 구사한다. 그것은 배꼽잡는 해프닝이 일어날 때만이 아니라, 중후한 어조로 이용후생을 설파할 때, 화려한 은유의 퍼레이드나 애상의 분위기를 고조시킬 때, 언제 어디서나 수반된다. 이를테면 유머는 『열하일기」라는 ‘고원’을 관류하는 ..
달라이라마를 만나다! 청왕조는 판첸라마를 황제의 스승으로 모시는 한편, 피서산장 근처에 황금기와를 얹은 전각을 마련해두고서 극진히 대접했다. 이렇게 판첸라마를 떠받든 것은 티베트의 강성함을 억누르기 위한 정치적 방편이기도 했지만, 그 못지않게 티베트 불교의 신성함을 존중하는 유목민의 유연한 태도 역시 작용했다. 그럼, 조선의 사행단은 어떠했던가? 청나라조차 오랑캐라고 보는 마당에 ‘황당무계한’ 티베트법왕에게 머리를 숙일 리 만무했다. 열하에서의 ‘한바탕 소동’은 이렇게 해서 일어난 것이다. 이름하여, ‘판첸라마 대소동!’ 「찰십륜포(札什倫布)」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예부에서 조선 사신들도 판첸라마에게 예를 표하라는 명령이 내려온다. 사신단은 “머리를 조아리는 예절은 천자의 처소에서나 하는 것인데, 어찌 ..
환생과 이적 잘 알고 있듯이, 달라이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환생으로 간주된다. 연암은 윤회와 환생의 차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법왕이 남의 몸을 빌려 태어나는 것과 윤회는 어떻게 다릅니까[余曰目今法王投胎奪舍之法 非輪回之證耶]?” 윤형산의 대답은 이렇다. “그것은 몸을 바꾸는 것이나 같은 것입니다.” “밝게 빛나는 지혜와 금강의 보체(寶體)는 본디 젊지도 늙지도 않는 것입니다. 장작 하나가 다 타고 나면 다른 나무로 불이 옮겨 붙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維此光明信識 金剛寶體 固無童耄 薪盡火傳].” “비유컨대, 천 리를 가는 자가 집을 짊어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라, 반드시 숙소를 옮겨 가면서 길을 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천하에 다정한 사람이라 해도 주막집에 정이 들었다고 그대..
흰 수건과 대보법왕 먼저 다음 장면부터 음미해보자. 때는 2001년 여름쯤이고, 장소는 인도의 북부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궁전 앞이다. 궁을 나섰을 때 나는 정말 놀랐다. 궁으로부터 보드가야의 대탑에 이르는 연도에는 수천수만의 티베트 군중들이 달라이라마를 한번 뵙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더더욱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은 그 순간에 전개된 군중들의 모습이다. 달라이라마와 내가 궁을 나서는 순간, 갑자기 온 거리가 정적에 휩싸였다. 영화의 뮤트 슬로우 모션처럼. 온 세계가 너무도 조용해진 것이다. 미동의 소리도 없었다. 그들은 달라이라마를 육안으로 쳐다보는 그 감격을 가슴으로, 눈빛으로만 표현했다. (중략) 달라이라마는 그들의 군주였고, 다르마의 구..
마술이 예지가 되는 순간 다음은 ‘판타지아’ 「환희기(幻戱記)」의 클라이맥스이자 대단원이다. 요술쟁이는 큰 유리 거울을 탁자 위에 놓고 시렁을 만들어놓는다. 거울을 열어 모두에게 구경시키니, 여러 층 누각과 몇 겹 전각이 단청을 곱게 칠했다. 관원 한 사람이 손에 파리채를 잡고 난간을 따라 서서히 걸어 간다. 아름다운 계집들이 서넛씩 짝을 지어 보검을 가지고 혹은 금병을 받들고, 혹은 봉생을 불고 혹은 비단 공도 차며, 구름 같은 머리와 아름다운 귀걸이가 묘하고 곱기가 비할 데가 없다. 방 안에는 백 가지 물건과 수없는 보물들이 그득하여 참으로 부귀가 지극하니, 여러 사람들은 부러움을 참지 못하여 서로 구경하기에 바빠서 이것이 거울인 줄도 잊어버리고 바로 뚫고 들어가려 한다. 그러자 요술쟁이가 즉시 거울..
판타지아(fantasia) 등불이 노끈에 이어져 저절로 불이 붙어 타오른다. 노끈을 따라 타면서 또 다른 등불로 이어진다. 4~50등이 일시에 타면서 주위가 환하게 밝아진다. 1천여 명의 미모의 남자들이 비단 도포에 수놓은 비단 모자를 쓰고 늘어섰다. 각각 정자 지팡이 양쪽 끝에 모두 조그만 붉은 등불을 달고 나갔다 물러섰다 하여 군진(軍陳) 모양을 하더니 순식간에 삼좌(三座) 오산(鼇山, 자라 등 위에 얹혀 있었다는 바닷속 산으로 신선이 산다고 함)으로 변했다가 다시 일순, 변해서 누각이 되고, 또 졸지에 네모진 진형으로 바뀐다. 황혼이 되자 등불빛은 더욱 밝아지더니 갑자기 ‘만년춘(萬年春)’이란 석 자로 변했다가 갑자기 ‘천하태평(天下太平)’ 네 글자로 변한다. 이윽고 두 마리 용이 되어 비늘과 뿔과..
부와 권력에 눈 먼 이들에게 다시 서두의 논의로 돌아가면, 그에게 있어 이용과 후생은 정덕을 위한 교량이다. 정덕(正德)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건 삶의 지혜이다. 이것이 뒷받침되지 않는 부와 편리함이란 무의미하다. 그런 점에서 연암이 추구한 문명론을 ‘근대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오히려 그의 문명론은 물질과 부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근대적 패러다임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취한다. 따라서 이용후생학자로서 연암을 다룰 때, 반드시 그가 ‘삶의 지혜’를 설파하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장대기(將臺記)」와 「황금대기(黃金臺記)」가 좋은 텍스트다. “만리장성을 보지 않고서는 중국이 얼마나 큰지 모를 것이고, 산해관을 보지 않고는 중국의 제도를 알지 못할 것이며, 관 밖의 ..
수레와 의학을 통한 이용후생 그의 관심은 이렇게 벽돌, 가마, 온돌에서 시작하여 수레, 말로 이동한다. 수레와 말은 공간적 한계를 가로지를 수 있는 이동수단이기 때문이다. “대개, 수레는 천리로 이룩되어서 땅 위에 행하는 것이며, 물을 다니는 배요, 움직일 수 있는 방이다. 나라의 쓰임에 수레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시급히 연구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조선에도 수레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조선의 수레는 바퀴가 온전히 둥글지 못하고 바퀴자국이 틀에 들지 않으니, 이는 수레 없음과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사대부들은 “우리나라는 길이 험하여 수레를 쓸 수 없다”고 한다. 언어도단! 수레를 쓰지 않으니 길이 닦이지 않는 것인데, 사태를 거꾸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결론은 “사방이..
이용(利用)ㆍ후생(厚生)ㆍ정덕(正德) ‘이용(利用)’이 있은 뒤에야 후생(厚生)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뒤에야 정덕(正德)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롭게 사용할 수 없는데도 삶을 도탑게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드물다. 그리고 생활이 넉넉지 못하다면 어찌 덕을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도강록(渡江錄)」 利用然後可以厚生 厚生然後正其德矣 不能利其用而能厚其生 鮮矣 生旣不足以自厚 則亦惡能正其德乎 이게 그 유명한 ‘이용후생’이라는 테제가 담긴 문장이다. 연암을 실학자 중에서도 ‘이용후생파’라고 분류하는 건 이런 명제들에 근거한다. 근데 어째서 ‘정덕’이라는 항은 생략되었을까? 덕을 바로 잡는다는 게 너무 추상적이어서 ‘헛소리’처럼 느껴진 건가? 아니면 너무 지당한 말이라 ‘하나마나’ 하다고 간주한 탓일까? 깊..
호모 루덴스(Homo Rudens) 그러니 이런 악동의 눈에 길 위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건이 유쾌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한번은 길에서 소낙비를 만나, 비를 피하느라고 점포에 들러 차대접을 받고 있었다. 점포의 앞마루에 여인네들 다섯이 부채에 붉은 물감을 들여 처마 밑에 말리고 있는데 별안간 말몰이꾼 하나가 알몸으로 뛰어들었다. “머리에 다 해어진 벙거지를 쓰고, 허리 아래에 겨우 한 토막 헝겊을 가릴 뿐이어서 그 꼴은 사람도 아니요, 귀신도 아니고 그야말로 흉측했다.” 마루에 있던 여인들이 왁자그르 웃고 지껄이다가 그 꼴을 보고는 모두 일거리를 버리고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주인이 화가 치밀어 팔을 걷어붙이고는 뺨을 한 대 때렸다. 말몰이꾼의 말인즉슨, “말이 허기가 져서 보리찌꺼기를 사러 왔는데 당신은 ..
벽돌과 돌과 잠 그는 타고난 장난꾸러기다. 사람들 사이의 장벽을 터주면서 동시에 자신 또한 기꺼이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사건들마다 ‘유쾌한 악센트’를 부여하는 악동! 새벽에 길을 떠나면서 보니 지는 달이 땅 위에서 몇 자 안 되는 곳에 걸려 있다. 푸르고 맑은 기운이 감도는데, 모양은 아주 둥그렇다. 계수나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고, 옥토끼와 은두꺼비가 가까이서 어루만져질 듯하다. 항아의 고운 비단 옷자락에 살포시 흰 살결이 내비친다. 나는 정진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참 이상도 하이.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네그려.” 정진사는 처음엔 달인 줄도 모르고 나오는 대로 응수한다. “늘상 이른 새벽에 여관을 떠나다 보니 동서남북을 분간하기가 정말 어렵구만요.” 일행이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일신수필(馹汛隨..
예기치 않은 사건 속을 경쾌히 질주하다 정진사ㆍ조주부ㆍ변군ㆍ내원, 그리고 상방 건량판사(乾粮判事)인 조학동 등과 투전판을 벌였다. 시간도 때우고 술값도 벌자는 심산이다. 그들은 내 투전 솜씨가 서툴다면서 판에 끼지 말고 그저 가만히 앉아서 술만 마시란다. 속담에 이른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격. 슬며시 화가 나긴 하나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지만 옆에 앉아 투전판 구경도 하고 술도 남보다 먼저 먹게 되었으니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다. 與鄭進士 周主簿 卞君 來源 趙主簿 學東 上房乾粮判事 賭紙牌以遣閒 且博飮資也 諸君以余手劣 黜之座 但囑安坐飮酒 諺所謂‘觀光但喫餠’也 尤爲忿恨 亦復柰何 坐觀成敗 酒則先酌也 非惡事 벽 저쪽에서 가끔 여인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가냘픈 목청에 교태 섞인 하소연이 마치 제비나..
변화무쌍한 시공간을 은유로 담다 그러나 중원의 풍경이 이렇게 매혹적이기만 할 리가 없다. 땅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스케일로 움직이는 대기의 흐름은 종횡무진으로 구름과 비를 몰고온다. 특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공할 소낙비를 만났을 때, 그것은 일종의 경외감을 자아낸다. 이제묘(夷齊廟)에서 야계타(野雞坨)로 가는 도중 날씨가 찌는 듯하고 한점 바람기가 없더니 갑자기 사람들의 손등에 한 종지 찬물이 떨어지며, 마음과 등골이 섬뜩해지기에 사방을 둘러 보았으나 아무도 물을 끼얹는 이가 없다. 다시 주먹 같은 물방울이 모자와 갓 위에 떨어진다. 그제야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해 옆으로 바둑돌만 한 구름이 나타난다. 맷돌 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삽시간에 지평선 너머 사방에서 자그마한 구름이 일어난다...
3장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목소리’ 분출하는 은유 『열하일기』 곳곳에는 이국의 풍광과 정취가 매혹적으로 그려져 있다. 거대한 스케일과 무시로 변화하는 중원의 대자연을 포착하기 위해 그는 환상의 은유, 공감각, 돌연한 비약 등 화려한 수사학을 구사한다. “황대경씨의 글이 사모관대(紗帽冠帶)를 하고 패옥(佩玉)을 한 채 길가에 엎어진 시체와 같다면, 내 글은 비록 누더기를 걸쳤다 할지라도 앉아서 아침 해를 쬐고 있는 저 살아 있는 사람과 같다”고 자부했던 바대로, 그는 풀잎과 새의 울음, 별과 달의 움직임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기꺼이 ‘언어의 연금술사’가 된다. 그 이미지들은 때론 화려한 스펙터클로, 때론 그윽한 서정으로, 때론 공포의 어조로 변주되면서 은유와 환유의 퍼레이드를 펼친다. 먼저 그는 ..
대단원 열하에서 보낸 시간은 모두 엿새였다.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연암의 심정은 못내 아쉽다. “일찍부터 과거를 폐하여 하찮은 진사 하나도 이루지 못했”는데, “이제 별안간 나라를 떠나서 만 리 밖 머나먼 변방에 와 엿새 동안을 노닐”다 이제 다시 돌아가자니, 감회가 없을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떠나고 머무는 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사항이다. 국가간 외교사절단을 쫓아온 것이니만큼 공식일정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열하는 정녕 매혹적인 공간이었다. 거기다 황제의 특별한 배려까지 더해져 연암은 생애 가장 특이한 엿새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황제의 편애는 조선 사신단에 예기치 않은 불운을 안겨다준다. 바로 티베트의 지도자 판첸라마를 접견하도록 은혜(혹은 명령)를 베푼 ..
낯선 세계와의 만남 이때만 해도 그렇다. 황제의 70세 잔치인 천추절 당일날 황제가 있는 곳까지 부르는 바람에 엄청난 규모의 진공(進貢)행렬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연암이 보기에, 세계 곳곳에서 당도한 수레가 만 대는 될 듯하다. 사람은 지고, 약대는 신고, 가마에 태우고 가는데, 마치 형세가 풍우와 같았다. 거대한 바람이 움직이는 듯한 진공대열에서 연암의 눈을 사로잡은 건 억센 쇠사슬로 목을 맨 범과 표범, 그리고 길들인 사슴, 크기가 말만 하고 정강이는 학처럼 우뚝 선 악라사(鄂羅斯, 러시아의 옛이름) 개, 모양은 약대 같고 키가 서너댓 자나 되는데 하루 300리를 간다는 타계 등 기이한 금수(禽獸)들이었다. 반양(盤羊)이라는 동물도 신기하기 짝이 없다. 사슴의 몸에 가는 꼬리가 있으며, 두 뿔이 구..
열하, 그 열광의 도가니 삼도량에서 잠깐 쉬고 합라하를 건너 황혼이 될 무렵에 큰 재 하나를 넘었다. 조공을 실은 수레들이 앞다투어 달려간다. 서장관과 고삐를 나라히 하여 가는데 깊은 계곡에서 갑자기 범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두세 번 들려온다. 그러자 동시에 모든 수레가 길을 멈추고서 함께 고함을 친다.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듯하다. 아아, 굉장하구나!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少歇三道梁 渡哈喇河 黃昏時 踰一大嶺 進貢萬車 爭道催趕 余與書狀倂轡而行 崖谷中忽有二三聲虎嘷 萬車停軸 共發吶喊 聲動天地 壯哉 연암으로 하여금 수도 없이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게 했던 열하는 이렇게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그 위용을 드러냈다. 열하는 동북방의 요새답게 수레들이 달리는 소리, 범의 포효를 효과음으로 선사한 것이다...
‘천신만고(千辛萬苦)’ 그러나 가장 힘든 건 뭐니뭐니해도 ‘야간비행’이다. 일정을 당기기 위해서는 쉴참을 건너뛰는 것, 밤을 도와 행군하는 것 말고 달리 방도가 없었다. 마침내 온 나흘 밤낮을 쉬지 않고 달리는 마지막 난코스가 시작되었다. 무박나흘의 ‘지옥훈련’! 하인들이 가다가 발을 멈추면 모두 서서 존다. 나 역시 졸음을 이길 수 없어, 눈시울은 구름장을 드리운 듯 무겁고 하품은 조수가 밀려오듯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눈을 빤히 뜨고 사물을 보긴 하나 금세 기이한 꿈에 잠겨버리고, 옆사람에게 말에서 떨어질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일깨워주면서도 정작 내 몸은 안장에서 스르르 옆으로 기울어지곤 한다. 下隷行且停足者 皆立睡也 余亦不勝睡意 睫重若垂雲 欠來如納潮 或眼開視物 而已圓奇夢 或警人墜馬 而身自攲鞍 창대가 ..
열하로 가는 험난한 여정 물론 이건 수난의 서곡에 불과했다. 북방의 기후는 한마디로 예측불허 그 자체였다. 느닷없이 구름이 덮여 하늘은 깜깜해지고 바람이 삽시간에 모래를 날려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으니, 하루에 도 천국과 지옥을 수시로 오르내려야 했다. 중류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남쪽에서 한 조각 검은 구름이 거센 바람을 품고 밀려왔다. 삽시간에 모래를 날리고 티끌을 말아올려 자욱한 안개처럼 하늘을 덮어버리니,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배에서 내려 쳐다보니 하늘빛이 검푸르다. 여러 겹 구름이 주름처럼 접힌 채, 독기를 품은 듯 노여움을 발하는 듯 번갯불이 번쩍번쩍하고 벽력과 천둥이 몰아쳐 마치 검은 용이라도 튀어 나올 듯한 모습이다.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方渡至中流 忽有一片烏雲裹..
비약과 단절의 연암식 기법 열하로 가는 길은 연경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하다. 지리지에는 450여 리라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700리, 그것도 험준한 산과 물을 수도 없이 지나야 하는 코스다. 길은 멀고 일정은 빠듯한지라 인원을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했다. 연암은 비공식수행원이라 가도 되고 안 가도 상관없는 처지다. 그래서 연암은 머뭇거린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요해의 땅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북경에 남아 이국(異國)의 친구들을 사귈 것인가. 정사이자 삼종형인 박명원은 그에게 중국에 온 뜻을 되새기면서 이번 길이야말로 좀처럼 얻기 어려운 기회라며 꼭 가야 한다고 충고한다[汝萬里赴燕爲遊覽 今此熱河 前輩之所未見 若東還之日 有問熱河者 何以對之 皇城人所共見 至於此行 千載一時 不可不往]. 연암도 그..
아닌 밤중에 홍두깨 그러나 황제는 연경(북경)에 있지 않았다. 열하에 있는 피서산장에가 있었던 것이다. 사신 일행은 그저 제날짜에 도착하여 예만 표하면 그뿐이라고 여긴 탓에 이 문제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정사만은 연경에 오는 도중 혹 열하까지 오라는 명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근심을 놓지 않긴 했다. 그러나 연경에 도착하여 나흘 동안 별일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을 놓는 순간, 사태는 예기치 않게 꼬이기 시작했다. ‘예부에 가서 표자문(表咨文)을 내고’ 숨을 돌리는 사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일이 벌어진다. 깊은 밤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온다. 자다가 놀라 깨어나면서 연암은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안 그래도 관문이 깊이 잠긴 것을 생각하면서 역사적인 변고를 떠..
2장 열하로 가는 ‘먼 길’ 요동에서 연경까지 압록강에서 연경까지가 약 2천여 리. 연경에서 열하까지가 약 700리. 토탈 육로 2천 700여 리. 상상을 초월하는 거리다. 낯설고 이질적인 공간은 언제나 모험의 대상이다. 공간적 이질성이 주는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여행은 불가능하리라. 다른 한편 두려움과 경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여행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스릴도, 서스펜스도 없다면, 대체 뭐 때문에 여행을 한단 말인가? 강을 건너 요동으로, 요동벌판을 지나 성경(지금의 심양)을 거쳐 북경 관내에 이르는 약 2천여 리의 여정은 어드벤처의 연속이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 몸서리 쳐질 만큼 엄청난 폭우, 산처럼 몰아치는 파도 등 대륙의 위력은 만만치 않았다. 강을 건너는 때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소낙비는..
유리창을 헤맨 외로운 늑대 그래서 정말로 연암과 동행한 벗들은 멀리 있는 이들이다. 연암은 추억의 갈피를 들춰 여정마다에서 그들과 대화하고, 흔적을 찾는다. 특히 유리창(琉璃廠)에서 연암은 자기보다 앞서 연행을 했던 친구들 생각으로 깊은 감회에 젖는다. 조선시대 연행에서 ‘유리창’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무려 27만 칸에 달하는 서점, 골동품 가게들이 즐비한 지식의 보고(寶庫), 아니 용광로, 그야말로 세계의 지식이 흘러들어오고 다시 뻗어나가는 곳이 유리창이었다. 그러므로 근대 이전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있어 유리창은 연행의 필수코스였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공식적 업무가 없는 지식인들의 경우, 연행의 목적지는 북경이 아니라 유리창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홍대용(洪大容)이 ‘..
소중화가 만든 고지식 하긴 달밤뿐이랴. 한낮의 거리에서도, 시끌벅적한 장터에서도 그는 언제나 ‘솔로’였다. 그것은 무리로 움직이는가 아닌가와는 무관한 사항이다. 가장 가까운 동행자인 장복이와 창대는 뼛속까지 중화주의의 세례를 받았을 뿐 아니라, 대책 없는 고지식 계열의 인물들이다. 책문 밖에서 벌어진 에피소드 하나(「도강록渡江錄」). 아침밥을 먹고 행장을 정돈한즉, 양편 주머니의 왼편 열쇠가 간 곳이 없다. 샅샅이 풀밭을 뒤졌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장복이를 보고, “너는 행장을 조심하지 않고 늘 한눈을 팔더니, 겨우 책문에 이르러서 벌써 이런 일이 생겼구나. 속담에 사흘 길을 하루도 못 가서 늘어진다는 격으로, 앞으로 2천리를 가서 연경에 이를 즈음이면 네 오장인들 어디 남겠느냐. 내 듣건대 구요동(..
달빛 그리고 고독 대상을 투시하는 예리한 시각, 끈적하게 들러붙는 촉감적 능력은 잠행자만의 특이성이다. 대열을 일탈하여 솔로로 움직이고, 대열이 잠들 때 깨어 움직이는, 말하자면 지루하게 반복되는 리듬 속의 ‘엇박’ 같은 존재. 그는 새벽을 도와 먼저 떠나거나 아예 뒤떨어져 떠난다. 사행단의 또 다른 책임자인 부사(副使) 및 서장관과는 압록강에서 120리나 되는 책문을 지나 어느 민가에 들어서야 비로소 인사를 나눌 정도이다. 연암답게 “타국에 와서 이렇게 서로 알게 되니 가히 이역(異域)의 친구로군요[定交於他國 可謂異域親舊].”라는 농담을 잊지 않는다. 그뿐인가. 설령 함께 거리에 나섰다가도 온갖 자질구레한 일상사를 면밀히 주시하다 보면 일행들이 버리고 떠나기 일쑤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늘 무리 속에서..
티벳 불교에 관한 조선 최초의 기록 클라이맥스는 뭐니뭐니해도 티베트 불교와 관련된 부분이다. 열하에서 일어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티베트의 대법왕(大法王)인 판첸라마와의 마주침이다. 불교 자체를 사교(邪敎)로 취급하고 있던 당시 조선인들에게 밀교적 분위기에 감싸인 티베트 불교는 절대 상종해선 안 되는 이단(異端) 중의 이단이다. 조선 사행단이 벌인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은 뒤에서 자세히 언급될 것이다. 중국 선비들에게도 이 문제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던가 보다. 특히 옹정제(雍正帝)가 티베트 불교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린 선비에게 찢어 죽이는 형벌을 내린 이후, 그들에게 있어 불교와 티베트에 관한 이야기는 금기 중의 금기였다. 「황교문답(黃敎問答)」에는 추사시(鄒舍是)라는 비분강개형의 투사적 지식인이 하나 나온..
속내를 끄집어내기 위한 동물적 감각 장사치들과의 밀회(?)가 수행원들의 감시를 따돌리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라면, 열하에서 만난 재야선비들과의 필담은 거의 비밀 지하조직과의 접선을 연상시키듯 팽팽한 긴장 속에서 진행된다. 잘 알다시피, 당시는 만주족 출신이 지배하던 시절이라 사회 전체에서 이른바 만족과 한족 사이의 갈등이 만연해 있었다. 「피서록(避暑錄)」을 보면, 만주인 기려천(奇麗川)은 나이가 스무살이나 많고 벼슬도 조금 높은 한족 출신 윤형산(尹亨山)을 노골적으로 멸시한다. 그런가 하면 연경에서 돌아와 한인들에게 기려천에 대해 물었을 땐, “점잖은 선비가 어찌 되놈의 새끼를 안단 말이오[士大夫安知靼子]” 한다. 그만큼 두 종족 사이의 알력이 심했던 것. 연암이 만난 이들은 주로 한인들인데, 연암은 이..
스릴 만점의 잠행 실제로 그의 시선 혹은 필력은 불가사의할 정도다. 길에서 만난 여인네들의 장신구, 패션, 머리 모양에서부터 곰이나 범, 온갖 동물들의 모양새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미치지 않는 영역이 없다. 한번은 객관 밖에서 재주부리는 앵무새의 털빛을 자세히 보려고 등불을 달아오는 동안에 주인이 가버리는 일도 있었다. 북진묘에서 달밤에 신광녕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수차(水車) 세 대가 막 불을 끄고 거두어 가려는 것을 잠깐 멈추어 세우고 ‘수총차(水統車)’를 이리저리 뒤집어 보며 그 제도를 상세히 체크하기도 했다. 또 열하에선 담장 너머로 광대 소리가 들리자 일각문 안을 엿보려고 사람들 머리 사이 빈곳으로 바라보는데, 한 사람이 연암이 오랫동안 발꿈치를 들고 선 것을 보고는 걸상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질적인 것과 접속하려는 욕망 연암의 목적은 관광이 아니다. 명승고적을 둘러보거나 기념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일 따위에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고, 보이는 것에서 숨겨져 있는 것들을 보려 한다. 그런 까닭에 사신을 비롯하여 구종배(驅從輩, 하인들)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되놈의 나라’라서 산천이며 누대조차 노린내가 난다고 눈도 주지 ‘않은’ 채 오직 목적지만을 향해 나아가는 집합적 배치 속에서 연암은 그 길을 함께 밟아가면서도 끊임없이 옆으로 ‘샌다’. 이질적인 것들과 접속하려는 그의 욕망에는 경계가 무궁하다. 북경 안팎에 있는 여염집과 점포들을 유람할 때, 그는 이렇게 투덜거린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구경한 것은 겨우 그 백분의 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3부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 1장 잠행자 혹은 외로운 늑대 돈키호테와 연암 여행은 압록강을 건너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여행은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다. 한양에서 압록강에 이르기까지도 한 달여가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암은 이 과정은 일체 생략해버렸다. 젊은 날 이미 ‘팔도유람’을 했던 그로서는 조선 내에서의 여정에 대해 특별한 감흥을 맛보기 어려웠을 터, 그러므로 「도강록(渡江錄)」이 『열하일기』의 서두를 장식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는 이 사절단의 비공식 수행원이다. 중요한 결정에는 낄 수도 없고, 공식적인 성명단자에는 포함되지도 않는다. 북경에서 느닷없이 열하로 가게 되었을 때, “정사(正使) 이하로 직함과 성명을 적어서 예부로 보내어 역말 편에 먼저 황제에게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