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책/좋은 글들 (11)
건빵이랑 놀자
항소이유서 본 적 : 경상북도 월성군 내남면 망성동 163 주 소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흥 1동 한양아파트 11동 1107호 성 명 : 유시민 생년월일 : 1959년 7월 28일 죄 명 :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요 지] 본 피고인은 1985년 4월 1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이에 불복, 다음과 같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합니다. [다 음]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 형량의 과중함을 애소(哀訴)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또한 본 피고인은 1심 판결..
수단이 목적, 물음이 해답 手段がそのまま 수단이 그대로 目的であるのはうつくしい 목적이 되는 것은 아름답다. アイスクリームの容れものの三角が 용기로서의 아이스크림이 そのままたべるウエファースであり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웨하스이고 運ぶ材木の幾十百本が 운반하는 수천 개의 목재가 そのまま舟の筏であるように 그대로 배의 뗏목이 되듯이 「なんのために生きるのです」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이지요?” そんな少女の問いかけに 그런 소녀의 물음에 「問いはそのまま答えであり」と “물음은 그 자체로 대답”이라고 だれかの詩句を心に呟きつつ 누군가의 시구를 마음에 중얼거리면서 だまつて僕は微笑んでみせる- 杉山平, 「問い」 잠자코 나는 미소 짓는다.
사람에게 인상을 남기는 방법 나는 카메라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 사람이 실제 풍경을 보듯 인상적인 부분만 보고 그린다. 풍경의 왜곡이어도 그것이 사람에게 인상을 남기는 방법이다. - 미야자키 하야오, 한가람 레이아웃전에서
대변이 아닌 똥에 머물기를 ‘똥’이라는 말의 동심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순간, 거기에서 시적인 것이 발생한다. 그리고 ‘똥’이라는 말에서 벗어나 ‘대변’이라는 말을 흠모하려는 어린이들을 조금 더 오래 ‘똥’에 머물도록 만드는 게 동시의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한겨레신문』, 「안도현의 발견」, 13.12.30
좋은 사람과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 장조張潮 貌有醜而可觀者, 有雖不醜而不足觀者; 文有不通而可愛者, 有雖通而極可厭者. 此未易與淺人道也. 해석 貌有醜而可觀者, 얼굴이 추하지만 볼 만한 사람이 있고, 有雖不醜而不足觀者; 비록 추하진 않지만 볼 만한 게 없는 사람이 있다. 文有不通而可愛者, 글이 잘 이해되진 않지만 사랑스러운 글이 있고 有雖通而極可厭者. 비록 이해가 되지만 매우 싫어할 만한 것도 있다. 此未易與淺人道也. 이것은 쉽게 천박한 사람에게 말해줄 수 없는 것이다. 인용 까마귀의 날갯빛
인류는 진드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대한 바다와 산들은 모두 지질학적 토대의 변화에 따라 생겨나는 산물들이다. 지구라는 모자이크판에 끼워 맞춰진 지각판들의 배열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만약 그 지각판이 움직이면 모든 것이 재배치될 것이다. 인류는 바다가 낮아지고 기후가 비교적 온화해진 극히 짧은 시기에 일시적으로 불어나 지각판 위에 매달려 기생하는 진드기나 다름없다. 지금 있는 땅과 바다의 배열은 언젠가는 변할 것이다. 그와 함께 극히 순간에 불과했던 인간문명의 영화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리처드 포티Richard Fortey(Earth: An Intimate History, New York:Vintage Books, 2005, p.164) 인용 중용 26장
우분투 아프리카 부족에 대해 연구 중이던 어느 인류학자가 한 부족 어린이들을 모아 놓고 게임을 제안했습니다. 나무 옆에 싱싱하고 달콤한 과일들로 가득 찬 바구니를 놓고 누구든 먼저 바구니까지 뛰어간 아이에게 과일을 모두 주겠노라 한 것이지요. 인류학자의 말이 통역되어 전달되자마자 아이들은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손에 손을 잡은 채 함께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바구니에 다다르자 모두 함께 둘러앉아 입 안 가득 과일을 베어 물고 키득거리며 재미나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인류학자가 아이들에게 누구든 일등으로 간 사람에게 과일을 몽땅 주려 했는데 왜 손 잡고 함께 달렸느냐고 물어보자 아이들의 입에선 UBUNTU라는 단어가 합창하듯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한 아이가 이렇게..
나는 내가 아닌, 모든 사람들의 총화다 모든 살아있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배후에는 30명의 영혼이 서 있다. 그것이 죽은 자의 산 자에 대한 비율이다. 역사의 미명부터 지금까지 이 지상을 걸어간 사람은 천억 명에 이른다. -Clark
교사란 자리의 신비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희한합니다. 나는 지금 교탁 이쪽에 서 있습니다만, 이 장소에 서게 되면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라도 일단은 그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일단은 무지를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받을 교사는 없습니다. 사람은 알고 있는 자의 입장에 서게 되는 동안은 늘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 서는 한, 그 사람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자크 라캉, 『가르치는 자에 대한 물음 下』 중 ▲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의 키팅 교사와 학생들.
선택 아닌 선택 저는 ‘선택’하면 항상 떠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소피의 선택』인데, 주인공 이름이 ‘소피’입니다. 소피가 두 자식을 데리고 아우슈비츠로 끌려갑니다. 여기까지는 빤한 내용이지요. 그때 나치 장교가 소피에게 두 아이 중 한 명을 구해줄 수 있으니 선택하라고 합니다. 그 순간,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소피는 선택을 하지 못합니다. 저는 ‘선택’하면 늘 그 장면이 스쳐가곤 합니다. 그건 형식적으로 선택인 것 같지만 ‘선택’이 아닌 거죠. 두 자식 중 하나를 고르라는 건 선택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한국에 사는 사람들, 한국뿐 아니라 약자 혹은 피지배자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와 유사한 ‘선택’이 강요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을 ‘선택’하기 위해 여기 젊..
좋은 글의 조건 夫昔之爲文者, 非能爲之爲工, 乃不能不爲之爲工也. 山川之有雲霧. 草木之有華實. 充滿勃鬱, 而見於外. 夫雖欲無有, 其可得耶. - 蘇東坡, 「南行全集敍」 해석 夫昔之爲文者, 非能爲之爲工, 옛적에 글을 짓는 사람은 잘 짓는 것을 ‘좋은 글’로 여기지 않고, 乃不能不爲之爲工也. 짓지 않을 수 없어 짓는 것을 ‘좋은 글’로 여겼다. 山川之有雲霧. 草木之有華實. 充滿勃鬱, 而見於外. 산천의 구름과 안개, 초목의 꽃과 열매도 충만하고 무성하여야 밖으로 드러나듯이, 夫雖欲無有, 其可得耶. - 蘇東坡, 「南行全集敍」 인위적으로 짓고자 하지 않아야 좋은 글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