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책/교육(敎育) (26)
건빵이랑 놀자
에필로그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2014년 1월에 좋은교사운동과 한국평화교육훈련원(KOPI)이 연합하여 25년 넘게 회복적 정의를 실천해온 캐나다 벤쿠버 지역의 회복적 정의 단체들을 방문했다. 이제 막 회복적 실천의 첫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우리로서는, 먼저 시작한 단체와 지역을 방문하여 배우는 것이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캐나다 방문기의 자세한 내용은 좋은교사운동 www.goodleacher.org 또는 회복적생활교육연구회 http:// cale.daum.net/RD-goodteacher를 통해 관련된 자료를 다운받을 수 있다.】 우리가 방문한 단체는 캐나다 벤쿠버에서 활동하고 있는 CJI(Community Justice Initiatives)와 ARJAA(Abborts..
3. 회복적 사회의 지름길을 만드는 교사 시너지는 낡은 것을 버리고 새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발생하는 법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효과가 있을지 알지 못한다 해도, 그것이 장기적으로 미칠 효과를 굳게 믿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행위에서 생성되는 문화를 생각할 때, 바람직한 인식구조는 호스피스 봉사자라든가 새 생명을 위한 산파의 역할을 요구합니다. 진화론적 대변화가 일어난 모든 시대마다 이 두 가지 역할이 필요했습니다. -조안나 메이시 회복적 생활교육을 학교 현장에 실천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힘이고 동력인 건 바로 교사다. 교사의 변화는 교육의 질을 변화시키는 데 매우 핵심적인 과제다. 교사의 성장은 튼튼한 나무 한 그루의 성장과도 같은데, 아무리 튼튼한 나무라도 거친 태풍에는 꺾기고 부러지..
추천사 ‘회복의 교육’을 통한 ‘교육의 회복’을 꿈꾸며… 저는 ‘회복’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최근 교육계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창의성, 새로움, 혁신 등은 저에게 무언가 없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으로 다가오는데, ‘회복’은 우리가 꿈꾸는 좋은 상태가 이미 존재했다고 전제하기에 원래 있던 것을 기억하고 되찾으면 된다는 안도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만든다는 부담 없이 그것은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가능한 것으로 제게 다가와서 단기간에 교육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며 잔뜩 힘주고 긴장하던 저를 조금은 여유롭게 합니다. 지금의 교육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교육이 원래 지닌 본질과 그 소중한 가치를 다시 찾는 것, 곧 ‘회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교육의 가치가 정말 무엇인지를..
회복적 생활교육 목차 추천사 프롤로그 : 교사가 진정 원하는 것 1장 한계에 부딪힌 생활지도1. 길 잃은 교사2. “나는 올바른 지도법을 배운 적이 없다”3.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4. 폭력을 부르는 감정, 수치심 2장 아이들을 마음으로 만날 수 있을까1. 처벌이 아닌, 자발적 책임으로2. 신뢰와 존중이 깃든 생활교육3. 모두에게 안전한 학급으로 가는 길4. 서로 존중하는 관계일 때 받는 선물 3장 회복이 있는 학급 공동체 만들기 1. 아픔을 같이하고 함께 나아가다2. 관계가 우선인 학급3. 있는 그대로 만날 때 비로소 변화한다4. 갈등이 성장과 배움의 기회가 되다5. 동등함이 주는 힘, 서클 회의6. 모두가 동의한 규칙일 때 즐겁다 4장 교사가 변화할 때 성장하는 아이들 1...
도올의 교육입국론 목차 Ⅰ. 총론 1. 호학 민족에게 도래한 혁신교육감 시대충절과 반역, 수구와 혁명호학의 민족사, 『팔만대장경』을 보라! 2. 진보교육감 시대의 의의교육감만 장악하면 역사의 대세를 장악하는 대승대학생들의 아파티세월호 참변에 대한 안타까움 3.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관점 차이교육혁명 없는 정치혁명은 권좌의 교체일 뿐교육은 철학의 목적진보와 보수의 교육에 관한 철학적 담론의 차이: 인간론인식론과 진리론진보세력의 통렬한 반성이 요구되는 시대 Ⅱ. 공부론 1. 공부란 단어의 어원과 용례공부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공부의 어원, 한·중·일 단어의 비교공부라는 말의 역사적 용례 2. 공부와 시간공부의 원의와 희랍인의 아레떼도와 덕공부와 시간공부는 관념상의 변화가 아닌 몸의 단련 3. 공부와 경(..
5. 혁신은 창조적 전진이다. 해체가 아닌 형성이다 엄마가 남긴 교육자의 심상 나에게 있어서 교육자의 심상은 나의 엄마가 내 가슴에 그려놓은 것이다. 나의 모친은 무한한 호기심과 섬세한 미감의 소유자였다. 나의 엄마가 평생 어김없이 새벽기도를 다니신 이야기는 옛 천안 잿배기 가도에 칸트의 산보처럼 전해져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는 새벽기도를 가지 않았다. 왜? 엄마는 나팔꽃처럼 아침에 피어나는 꽃의 동태를 전부 관찰하고픈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꽃이 피어나는 그 모습을 두 눈으로 관찰하고 싶었던 것이다. 벼르고 벼르다가 엄마는 교회를 가지 않고 우리집 화단을 지킨 것이다. 어슴푸레 먼동이 트는 추이와 함께 3시간 동안 꼬박 꽃망울을 응시한 것이다. 내가 잠에서 눈을 떴을 때, “난 보았다!” 그 한마..
4.교육의 목표는 인하게 하는 것 공자의 인 공자가 그의 철학의 핵심을 ‘인(仁)’이라는 한마디로 압축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제자들을 평가할 때도 그 인격체가 가진 덕성의 장점을 허여하면서도, “그가 인(仁)합니까?”하고 물으면 항상 “인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인’은 그의 세계관의 궁극범주(ultimate category)였다. 그런데도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이 멀리 있다고? 내가 원하면 당장 여기로 달려오는 것이 仁인데[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論語』 「述而」]!”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인에 당하여서는 선생에게도 양보하지 말라[當仁, 不讓於師 『論語』 「衛靈公」]!” 선생과 학생의 관계에 있어서 공자가 얼마나 비권위주의적이었나 하는 것을 잘 말해준다...
3. 문명의 전사들, 교사 교사의 두 가지 덕성 교사의 자질을 결정하는 두 가지 위대한 덕성이 있다. 그 첫째는 학생들에 대한 따사로운 인간적 사랑이다. 학생들을 인격적 개체로 존중하고 그들의 마음상태에 이입(empathy)하는 정서적 폭을 갖춘 인격이다. 둘째는 자기가 소유한 지식과 자기가 신념으로 생각하는 정당한 가치를 가급적인 한 효율적으로 학생에게 분유시키고자 하는 지적 열정(intellectual ardor)이다. 주입은 그 위대한 방편이요, 토론은 주입의 평화롭고 효율적인 방법론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과목의 성격과 교실의 분위기, 학생들의 수용성과 지적 수준에 따라 상황적으로 결정될 뿐이다. 교육은 하나의 이념적 방법론에 치우칠 수 없다. 인간은 복합적이다. 자유와 필연의 복합체이며, 무..
2. 주입식이냐, 토론식이냐의 공허한 논의 공자의 세미나 공자는 학생들과 종종 세미나를 했다. 그가 유랑생활을 할 때 논두렁에 쪼그리고 앉아서도 틈틈이 세미나를 했다. 그의 유랑길을 시종일관 지킨 것은 자로와 안회였다. 쫓겨 다니면서 논두렁에서 밥을 지어 먹어야 하는 고달픈 인생! 공자는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 “야들아! 각자 인생 포부를 한 번 말해보기로 하자!” 그러니까 나서기 좋아하는 자로가 먼저 이렇게 말한다: “난 말이유, 천리마가 달린 고급수레 하나 타고 다니는 것이 소원이유.” 요즈음 말로 하면 최고급 벤츠 승용차 하나 굴리고 싶다는 소박한 포부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또 “가벼운 고급 털옷을 유감없이 입어보았으면 좋갔수.” 베르사체 모피외투라도 하나 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안연이..
5. 회고와 전망 1. 공자가 말하는 교학의 방법 교학상장의 실천론, 관계론, 생성론 내 글을 진지하게 읽는 사람들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이 한마디가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의미맥락으로부터 충격에 가까운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요리가 앞에 있어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길이 없다[雖有嘉肴, 弗食不知其旨]”라는 것은 교육에 있어서의 모든 실천주의, 과정론적 참여주의, 그리고 요즈음 말하는 체험학습의 의미를 압축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주체성과 그 존엄을 말하면서도, 교사라는 주체가 일방적인 주체가 아니며 반드시 학생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쌍방적ㆍ상감적(相感的)ㆍ융합적 주체라는 것, 다시 말해서 선생과 학생은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관계망 속..
5. 교사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제안 교사혁명의 다섯 가지 조건 나는 교사의 존엄성과 학교의 면학분위기를 제고시키기 위한 현실적 개선방향으로서 다음의 다섯 가지 테제를 제시한다. 첫째, 교사는 교육의 커리큘럼을 조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가 주체적으로 시험문제를 내고 자기가 채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개성 있는 교육이 가능해지는 첩경이다. 수학자ㆍ물리학자로서 20세기의 가장 완정한 형이상학적 우주론을 수립한 화이트헤드(A. N. Whitehead, 1861~1947)는 교사가 자기가 가르치는 과목의 교과과정을 자신의 주체적 판단에 따라 상황적으로 조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인문ㆍ과학교육의 기본여건에 미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현재 입시교육의 전체주의적 엄격성 때문에 그러한 권..
4. 교육의 주체인 교사를 존중하라 에꼴 노르말의 경우 프랑스가 인류의 인문주의세계에 자랑하는, 세계지성계를 선도한 위대한 사상가들을 배출한 걸출한 교육기관으로서 에꼴 노르말 쉬페리외르(École normale supérieure)라는 것이 있다. 앙리 베르그송, 에밀 뒤르껭, 사르트르, 보봐르, 메를로 퐁티, 알튀세르,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알랭 바디우 …… 이 셀 수 없는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이 한 교육기관에서 쏟아져 나왔다. 참으로 경이롭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프랑스 교육부 산하의 교육기관이 고등학교 교사를 배출하기 위한 ‘사범학교’로서 출발한 기관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프랑스에서는 중ㆍ고등학교 교사도 ‘프로페쇠르(professeur)’라고 부른다. 에꼴 노르..
3. 학생은 온전한 개체이기에 풀어둬도 될까 존 듀이 철학을 왜곡하지 말라 그런데 진보주의교육이 왕왕 자유주의로 오해된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적 가치를 지상의 테제로 삼는 성향이 있다. 개체지상주의는 결국 방종으로 귀결된다. 몬테소리(Montessori), 섬머힐(Summerhill)류의 열린학교가 초창기의 건강한 혁명적 성격과는 달리 실패로 끝나는 이유가 결국 ‘방종’과 ‘훈육의 결여’, ‘결과적 진부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 미국 교육철학의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그의 리버랄리즘적 교육관의 계승자들이 시행한 교육방법론의 파탄은 미국의 공교육을 망쳐버리고 미국 사회를 근원적으로 해체시키는 데 공헌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
2. 소유하려는 마음이 자율을 제약하다 자유에서 자율로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는 일시적인 느낌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는가? 물론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 어떻게? 존재모드를 자유에서 ‘자율’로 전환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자율(自律)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자기에게 스스로 규율을 부과하는 것이다. 인간은 욕망의 주체이다. 욕망은 공생의 진리를 부정하는 강렬한 유혹성을 가지고 있다. 사적인 욕망에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법정 스님께서 그토록 가르치시고 실천하신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 우리의 존재모드를 소유모드에서 무소유모드로 전환하는 것, 이 전환을 나는 ‘협력(cooperation)’이라고 부른 것이다. ▲ 법정스님 다비식. 남김 없이 가셨다. 칸트의 자율적 도..
4. 교사론 1. 자유가 대중교육의 목표여선 안 되는 이유 전남대학교 철학과의 경우 인문학 르네상스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전남대학교 철학과에서는 1학년 정원 35명 중에서 6개의 자리를 특별히 대안학교 출신의 학생들에게 수능점수에 관계없이 배당한다고 한다. 처음에 3명만 받았다가 그들의 성적이 너무 우수하고 또 인간적으로 성숙되어 있어 6명으로 늘렸는데, 이들의 존재는 과의 면학 분위기를 놀랍게 향상시키고 있다고 한다. 자유로운 사색과 억압받지 않는 삶, 그리고 목전의 당면한 성취 스트레스에 오염되지 않은 여유로움을 지닌 어린 생령의 정신능력이 철학을 공부하는 데 훨씬 더 적합한 토양을 보유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입학 내규가 국립대학과 교수들 자체의 합의에 의하..
5. 엘리트를 위한 교육이 아닌 보통을 위한 교육 식민지교육이 폐허에서 피어난 혁신학교운동 일제식민지교육의 폐해를 극복한 것은 우리 학생들 스스로의 깨우침에 의한 것이었다. 3·1운동, 광주학생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그들이 산 시대에 항거했지만 그 항거를 억누르려는 식민통치자의 후손들은 식민지배를 계속 강화해나갔다. 그 변통을 모르는 타락의 소돔과 고모라의 현장에서 민중 스스로의 각성에 의하여 솟은 불길이 바로 해공 신익희가 다닌 바 있었던 너무도 초라한 남한산초교에서부터 시작한 ‘혁신학교’ 운동이다. 이 학교는 1912년 개교한 이래 해공 신익희가 다닌 바 있는 유서 깊은 학교였으나 2000년 3월 기준으로 학생이 26명밖에 남지 않았다. 폐교의 위..
4. 교육의 지향점은 자유가 아닌 협력이다 교육이 지향하는 인간상: 역사이념의 체현 교육이란 그 교육이 처한 역사가 체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상적 상과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교육은 인간형성(Human Building)이다. 빌딩에는 설계도가 있기 마련인데 그것은 그 역사사회가 구현하고자 하는 이념의 체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희랍인들의 교육은 폴리스에 사는 사람들의 염원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폴리스는 전쟁국가였다. 도시국가간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는 전사(Warrior)들을 길러내지 못하면 존속이 불가능한 커뮤니티 형태였다. 따라서 희랍의 모든 교육이념은 어떻게 이상적인 전사를 길러내느냐 하는 명제로 집약된다. 플라톤의 『국가』를 읽어보면 너무도 끔찍한 전체주의적 사유에 치를 떨게 된다...
3. 교육보수주의와 식민지 멘탈리티 한국의 보수는 식민지 멘탈리티의 연속태 우리 국민이 가난하고 힘없고 부당하게 억압받던 일제식민지시절! 그나마 구한말로부터 시작하여 경술국치(庚戌國恥) 이전까지 짧은 신교육의 각성기가 있었지만, 그 꿈은 산산이 좌절되었다. 독자적인 폴리테이아(πολιτεία, 플라톤이 『국가』라는 책에서 ‘정부의 형태’라는 의미로 씀)의 주체기반을 갖지 못한 우리 민중에게 있어서 교육을 받아 신분의 상승이나 확보를 성취할 수 있었던 유일하고도 확고한 길이 의대를 가서 의사가 되거나, 법대를 가서 법관이 되는 것이었다. 의사가 되면 돈 잘 벌고 일경에게 정치범으로 몰리지 않고 별 탈 없이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었고, 법관으로 임관되는 영예를 누리게 되면 일본인과 거의 대등한 관..
2. 교육보수주의의 실상 보수와 진보의 학교론, 가치론 앞서 나는 보수 교육철학과 진보 교육철학의 진리에 대한 관점을 절대적ㆍ상대적, 고착적ㆍ역동적, 선재적ㆍ상황적인 시각의 차이로써 규정한 바 있다. 그렇게 되면 선(善)에 대한 인식에 관해서도, 불변의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이성을 사용하는 보수주의자들은 학생의 행동이나 습관 그리고 그 평가방식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선악의 기준을 선재적으로 전제할 것이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모든 가치는 시대의 변화와 그때마다 등장하는 인류의 욕구에 맞추어 재구성되어야 하며 영구적인 선악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학교의 존재이유에 관해서도, 이성주의적 입장에서 명료하게 규정하며, 가정환경이나 도제체제로써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집단적 탁월한..
3. 제도론 1. 새로움의 창출만이 퇴몰을 막는다 교육에는 진보ㆍ보수가 없다 교육에는 진보ㆍ보수가 없다. 내가 이 글의 제목을 ‘혁신교육감시대’로 규정한 것도, 교육감을 사소한 몇몇의 방법론적 기준에 의하여 진보와 보수라는 카테고리로써 분류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나는 매사에 보수를 싫어하지만 진보주의자는 아니다. 나는 역사의 진보(the Progress of history)를 신봉하지 않는다. 나는 헤겔의 역사철학적 사관이나 칼 맑스의 경제발전단계설적 유물사관류의 필연주의적 역사주의(historicism)를 거부한다.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 역사 그 자체는 인간의 언어행위나 가치관의 소산인 ‘진보’라는 개념에 의하여 규정될 수 없다. 역사는 진보하지도 퇴보하지도 않는다..
3. 공부와 경(敬) 퇴계의 『성학십도』와 경의 철학 퇴계의 말년 걸작인 『성학십도(聖學十圖)』에는 우주와 인간 전체가 상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명(天命)’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즉 인간에게 명령하는 하늘, 인격적 주재자의 가능성으로서의 천(天)이라는 관념이 소실되어 버린 것이다. “천명, 즉 하늘의 명령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퇴계는 명쾌히 대답한다: “천(天)은 리(理)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죄를 사하여 줄 수 있는 천(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모든 행위는 나의 책임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늘은 곧 나의 마음이다. 나의 마음은 곧 리(理)며 성(性)이다. 나의 마음은 나라는 존재의 일신(一身)을 주재한다. 그런데 그 마음을 주재하는 것은 경(敬)이..
2. 공부와 시간 공부의 원의와 희랍인의 아레떼 현재 중국인이 사용하고 있는 백화적 표현에서 ‘꽁후우(나의 씨케이시스템으로 표기한 ‘쿵후’)’는 쿵후라는 좁은 무술의 개념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신체적 혹은 정신적 단련을 통하여 달성하는 모든 신묘한 경지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선반공이 쇠를 정교하게 깎는다든가, 용접공이 철판 용접을 감쪽같이 해낸다든가, 서예인이 능란하게 붓을 휘두른다든가, 어느 학동이 암산을 귀신같이 한다든가, 도축업자나 요리사가 식칼을 자유자재로 놀린다든가 하는 것을 중국인들은 ‘타더꽁후우뿌추어(他的工夫不錯, 그 사람, 공부가 대단하다)’라고 표현한다. 희랍철학에서 덕(德)이라는 것을 ‘아레떼(aretē)’라고 표현하는데, 아레떼는 바로 칠예(七藝)의 모든 방면에서 한 인..
2. 공부론 1. 공부란 단어의 어원과 용례 공부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말에 ‘공부’라는 말이 있다. 이 ‘공부’라는 말은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육을 생각할 때, 그 함의의 99%를 차지한다. 나의 자녀를 ‘교육시킨다’는 말은 ‘공부시킨다’는 말과 거의 같다. 나의 자녀에 대한 자랑도 ‘우리 아이는 공부를 잘해요’라는 명제로 표현된다. ‘공부를 잘한다’는 뜻은 과연 무엇일까?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를 복잡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우리 일상언어의 가장 평범한 의미체계를 정직하게 밝히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것은 ‘학교 시험 점수가 높다’는 뜻이다. 우리 아이 공부 잘한다는 의미에 실제로 딴 뜻이 없다. ‘학교 시험 점수가 높다’는 것은 대학입시에 유리하다는 뜻이고, 대학입시에 유리하다는 것..
3.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관점 차이 교육혁명 없는 정치혁명은 권좌의 교체일 뿐 정치적 혁명이야말로 역사에서 강렬하게 표출되는 진정한 전변의 계기인 듯이 보이지만, 대부분의 정치혁명은 권좌의 인간들을 환치(換置)시키는 데 그치고 말 뿐이며, 교육혁명을 수반하지 않는 한 좌절로 끝나버리고 만다. 다시 말해서 정치혁명보다 교육혁명이 역사의 진로를 더 근원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정부형태 이상의 것이며 그것은 공동생활의 형식이요, 공유하는 경험의 양식이다. 교육받은 유권자 없이는 보통선거권은 의미가 없으며, 사회가 민주화되지 않으면 국민이 평등한 교육기회를 가질 수 없다. 민주와 교육은 한 몸이며, 교육은 민주사회의 지표이다. 교육의 바른 방향을 주도하는 세력이야말로 진정한 역사의 주체..
2. 진보교육감 시대의 의의 교육감만 장악하면 역사의 대세를 장악하는 대승 우익보수의 한 진실한 대부임을 자만하는 언론인이 이와 같이 말했다: “새누리당이 6·4 지방선거에서 참패해도 전 학생인구의 40%를 관장하는 서울·경기도의 교육감만 장악하면 승리하는 것이요, 반대로 대승한다 하여도 서울·경기도 교육감을 놓치게 되면 대패하는 것이다. 이것은 헌법정신이 사느냐 죽느냐의 대결전이다.” 참으로 통찰력 있는 명언이다. 도대체 그분이 생각하는 헌법담론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국가의 운명을 통시적으로 생각하는 혜안은 가상한 것이 있다. ▲ '반대한민국적 성향=좌파 후보'라는 말이 눈에 띈다. 최근 나는 어느 유수 대학에서 이공계 1·2학년 500여명을 상대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세월호 참변 이후의 참..
1. 총론 1. 호학 민족에게 도래한 혁신교육감 시대 충절과 반역, 수구와 혁명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파랑을 격파하며 나아간다[讀萬卷書, 破萬里浪].” 진리 탐구를 위해 눈물겨운 여정을 감행하였던 신라의 구법승(求法僧)들이 유학 장도에서 읊었던 장쾌한 절구의 한 소절! 어찌 만 리의 파랑이 서해바다의 파랑일 뿐이리오? 그것은 기구한 우리 인생의 파랑이요, 기나긴 반만년 역사의 격랑이요, 충절과 반역, 수구와 혁명, 억압과 자유의 기복으로 점철된 우리 정치사의 풍랑이리라! 공자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열 가호쯤 되는 조그만 마을에도 나처럼 충직하고 신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그러나 나만큼 배우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論語』 「公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