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카자흐스탄, 사막여행: 노래하는 사막 바르한
남자 아이들은 뛰어서 사구를 올랐다. 찌는 듯한 더위, 그리고 그 열기를 머금은 모래의 뜨거움, 거기다가 다리가 푹푹 빠져 오르기 쉽지 않은 현실까지 바르한은 ‘돈키호테의 풍차’ 같은 느낌이었다.
▲ 민석이의 나를 따르라. 그래 너를 따라 올라볼까.
느린 빠름
나도 맹렬하게 돌진했다. 최선을 다해 손까지 사용해서 올랐지만 1/6도 채 오르지 못하고 진이 빠지고 말았다. 사구를 오르는 게 이렇게 힘이 많이 드는 일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가 제대로 큰 코 다쳤다.
그러니 ‘여기서 물러설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오를 것인가?’라는 고민이 따를 수밖에. 조금 올라갔다 싶으면, 모래가 밀려서 다시 조금 내려오고, 그래서 오르려고 조금 움직이면 다시 밀려 내려와 처음 자리에 있게 되는 상황이 반복 되었다. 이건 꼭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열심히 올라가려 달음질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손과 발을 접지하고서 마치 사냥감을 눈앞에 둔 맹수라도 된 마냥 열심히 달려보았지만, 그럴수록 모래는 더욱 빨리 흘러내렸다. 모래는 뜨겁고, 태양빛은 따가워서 속으로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모래언덕은 젊은 혈기를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힘만으로, 열기만으로 달려들었다간 넉다운되기 일쑤다. 그제야 무작정 뛰어올라서는 결국 오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만 같다. 수영을 할 때 물에 몸을 맡겨야 하듯, 여기서도 다리에 힘을 빼고 모래를 존중하며 천천히 올라야 했던 것이다. 다리에 힘을 주면 줄수록 깊이 빠져들어 힘만 소비하는 꼴이 되지만, 힘을 빼고 천천히 밟고 올라가면 생각보다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인위적인 힘은 한 순간엔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지만, 그건 한 순간의 짧은 열정으로 끝날 뿐이다. 장시간 무언가를 하기 위해선 자연스런 흐름을 타야 한다고 나의 힘만으로 나의 능력만으로 밀어붙여선 안 되는 것이다.
▲ 밑에서 봤을 땐 언덕 정도의 느낌이라 오르기 쉬울 줄만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노래하는 사막
아까 전에 차에서 내릴 때 해설사가 사구에 오르면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난 그 말이 ‘사구의 정상에 서면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라는 말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그런데 막상 사구를 오르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관현악기 비슷한 소리가 쉴 새 없이 났다. 이 소리는 모래가 쓸려 내려가면서 모래끼리 마찰되어 나는 소리였던 것이다. 작은 알갱이들이 일시에 마찰되면서 소리가 났고 여러 사람이 함께 오르면 오를수록 그 소리는 더욱 크고 분명하게 들렸다. 이곳에 바람이 심하게 불 땐, 바람에 모래가 쓸려 내려가기에 이런 소리를 가만히 앉아서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 사막을 보고 콧웃음쳤다면 오르면서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를 명확하게 알게 된다.
사막 썰매
몇 분을 낑낑대며 천천히 올랐다. 정상에 오르고 나니, 그야말로 체력이 바닥났다. 남학생 중엔 주원이만, 여학생은 전부다 오르지 않았다. 신발에 모래가 들어간다, 정상에 오른들 별로 볼게 없을 것 같다, 날이 너무 뜨겁다 등등의 이유를 대며 오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다시 오지 않을 곳이며, 이 시간도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기에 모래에 푹 빠져 보고 끝까지 올라가서 너른 대지를 바라보는 경험은 그 어느 경험과도 결코 바꿀 수 없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경험이다. 언젠가는 ‘그 때 왜 그걸 하지 않았을까’하고 후회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 힘들지만 그걸 참고 사막의 정상에 올라본 사람들.
올랐으면 내려가야 하는 법. 내려갈 땐 눈썰매 타듯이 내려왔다. 올라올 때에 비하면 엄청 쉽고 편하게 내려온 것이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신호에 맞춰 일제히 썰매를 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일시에 움직이니, 바르한의 노랫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마치 개선가처럼 우리의 무사귀한을 환영해주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마찰 때문에 아무리 발을 마구 굴러도 조금 밖에 내려가지지 않더라. 어쩔 수 없이 손과 발을 마구 움직이며 내려가야 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래썰매를 타며 우린 공동의 경험을 함께 했다. 그래서 그 순간, 우린 마치 어릴 때 언덕에서 포대자루 하나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함께 눈썰매를 탔던 것처럼 맘껏 내달렸다. 사막 썰매를 타던 순간만은 어린아이가 된 것마냥 옷이 더러워지든 말든, 어른이란 자의식이 있든 말든 맘껏 내달릴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때론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체면이나 자의식으로 막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상황이고 푹 빠져서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이 순간만은 그러지 않았다.
▲ 사막썰매와 더욱 웅장해진 바르한의 노랫소리
야유회의 맛있는 점심
바르한 근처엔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탁자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각 가정에서 싸준 점심을 조금씩 맛볼 수 있었다. 특히 엘다르의 부모님은 주원이와 규혁에게 정성을 다해 점심을 싸줬다. 채소와 오리 훈제와 과일까지. 내가 뺏어 먹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싸준 것이다. 그 덕에 나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먹으며 자유와 여유를 만끽하고 있으니, 야유회 기분이 물씬 났다. 하지만 근처의 산은 금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먹구름이 한가득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비가 쏟아질 것 같지는 않았기에, 느긋이 밥을 먹고 차에 탔다.
▲ 함께 싸와서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좋다. 이게 진정한 만찬 아닌가.
차는 알틴에멜의 비포장도로를 다시 달려갔다.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내리는 것이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차에서 내려 보니 뒷바퀴가 펑크나 있었다. 언제 어떻게 펑크 났는지, 타이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비는 서서히 굵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타이어를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다 차에서 내려야 했다. 스페어타이어로 교체하고 4시간여를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이래저래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 무사히 숙소에 잘 도착했다. 오늘은 새벽부터 정말 바빴고 완벽히 다른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계속 변경된 일정과 일방적인 통보
원랜 내일 점심시간에 학생들과 만나 함께 점심을 먹고 스파로 이동하여 놀다올 계획이었다. 이건 엊그제에 디아나 선생님이 직접 알려준 일정이었다.
하지만 버스가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내일 어떤 일정이며, 몇 시에 어디서 만나며, 준비물은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알려주지 않더라. 그래서 디아나 선생님에게 내일 일정에 대해 물어보니, 12시에 만나며 어디서 만날지는 아직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런 상황만 놓고 보더라도, 도대체 이 계획의 담당자가 누군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디아나 선생님이 담당자일 것 같은데, 막상 물어보면 모른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꾸 불만은 쌓여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메가톤급 황당함은 따로 있었다. 초반의 계획대로 일요일엔 12시에 학생들과 점심을 먹고 스파에 가는 줄만 알고 있었는데, 학생들은 점심을 같이 먹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굴심쌤이 디아나 선생님과 같이 앉아 이야기하면서 왔는데, 그 때 들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디아나 선생님은 나에게 그에 관해서 한 마디도 해주지 않았다.
숙소에 내리고 나서야 굴심쌤에게 이런 말을 들었으니 따질 수도 없었다. 그래서 굴심쌤에게 “왜 이렇게 계획이 수시로 바뀌는데도 우리에겐 상의도 없이 통보만 하느냐?”고 문제제기를 했던 것이고 내일 디아나 선생님과 이런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말 좀 전해주라고 한 것이다. 이래저래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단재친구들과 나만 귀머거리가 되어 끌려 다니는 느낌이다. 그래서 내일 학생들은 수영을 하러 들어갈 때, 디아나 선생님과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볼 작정이다. 이젠 탈디쿠르간 일정도 마무리되어가는 마당이라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앞으로 계속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려면 이와 같은 문제들이 당연히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에 잘 말해보련다.
▲ 저녁은 저 꼬치와 시원한 맥주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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