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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餘善已殺郢, 威行於國, 國民多屬, 竊自立爲王. 繇王不能矯其衆持正. 天子聞之, 爲餘善不足複興師, 曰: “餘善數與郢謀亂, 而後首誅郢, 師得不勞.” 因立餘善爲東越王, 與繇王竝處.
至元鼎五年, 南越反, 東越王餘善上書, 請以卒八千人從樓船將軍擊呂嘉等. 兵至掲揚, 以海風波爲解, 不行, 持兩端, 陰使南越. 及漢破番禺, 不至. 是時樓船將軍楊僕使使上書, 願便引兵擊東越. 上曰士卒勞倦, 不許, 罷兵, 令諸校屯予章梅領待命.
元鼎六年秋, 餘善聞樓船請誅之, 漢兵臨境, 且往, 乃遂反, 發兵距漢道. 號將軍騶力等爲“呑漢將軍” , 入白沙ㆍ武林ㆍ梅嶺, 殺漢三校尉. 是時漢使大農張成ㆍ故山州侯齒將屯, 弗敢擊, 卻就便處, 皆坐畏懦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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