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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겨울 1박2일 모임 - 3. 청소년을 중2병에 가두다 본문

연재/만남에 깃든 이야기

민들레 겨울 1박2일 모임 - 3. 청소년을 중2병에 가두다

건방진방랑자 2019. 4. 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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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님이 김영민 선생의 말을 인용하며 던진 틀이 바뀌면 꼴이 바뀐다는 말이 시작점이 되어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고, 별나들이님이 그 얘길 받아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는 말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변화를 위한 행동을 촉구했다.

 

 

트루먼은 안 하던 짓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 하던 짓을 해야 삶의 지도가 바뀐다

 

그렇지 않아도 반복되는 일상과 어느덧 익숙해진 학교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었기에, 번개를 기다리다 마침내 내리친 번개를 흡수한 피뢰침처럼 그 말은 나에게 번개와도 같이 깊이 흡수되었다.

 

 

장례식장이 들어서려 하니, 반대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렸다. 장례식장은 혐오시설이라 인식하기 때문이다.

 

 

별나들이님은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에서 죽는 주체가 바로 과거의 자신임을 명확히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안 하던 짓을 많이 하면 할수록 과거의 자신은 죽고 변화의 속도는 빨라진다. 내가 2009년에 무작정 떠났던 국토종단안 하던 짓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그땐 왜 그랬는지 그걸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는데, 막상 다 마치고 나니 많은 부분들이 바뀌어 있었다. 내 삶은 국토종단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 해도 될 만큼, ‘안 하던 짓의 효과는 분명했다. 그땐 갑작스레 과거의 나와 결별하면서 달라진 생각과 가치관으로 혼란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혼란이 단재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는데 도움을 줘서, 지리산 종주와 남한강 도보여행과 낙동강-한강 자전거여행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게 했다. 역시 사람이란 안 하던 짓을 많이 해봐야 한다.

 

 

 

무작정 떠난 국토종단은 '안 하던 짓'이었기에, 많은 부분들이 달라졌다.

 

 

 

어린이 여러분, 죽음은 나쁜 것이니 멀리하세요?

 

별나들이님은 이와 같은 생각이 담긴 책으로 어린왕자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있다고 알려줬다. 특히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엄마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인데, 주인공이 죽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기 때문이란다.

여기엔 죽음=부정적인 것이란 생각과 함께 어린이는 긍정적인 것만 보고 자라야 한다는 관념이 깔려 있다. 죽음을 사유할 수 없는 사회가 되다 보니 예전엔 장례를 마을 사람들이 함께 치르며 삶의 한 단면으로써의 죽음(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을 공동으로 경험했다면, 이젠 되도록 삶의 영역에 끼어들지 않도록 장례업체에 떠넘기고 무덤을 혐오시설로 여겨 마을 저 먼 곳으로 쫓아내 버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멀리하면 멀리할수록 삶은 죽음의 공포에 짓눌리게 됐고, 짓눌린 그만큼 삶은 빈약해졌다.

 

 

삶과 죽음이 한 곳에서 섞여 있는 경주 대릉원의 모습.

 

 

 

지혜가 살아 있는 옛 이야기를 맘껏 읽자

 

이런 관념은 아이들이 보아야 할 옛 이야기책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선 호랑이가 사람 신체의 일부를 먹는 화소話素를 뺐고, 콩쥐팥쥐에선 팥쥐 모녀를 처벌하는 화소를 용서하는 것으로 개작하거나 아예 빼버렸다. 어른의 관념으로 아이들이 봐서는 안 되는 것과 되는 것을 분명히 나누고 옛 이야기의 내용을 바꿔버린 것이다. 그러니 옛 이야기가 지닌 폭넓은 가치와 삶의 지혜는 사라지고 도덕교과서와 같은 지당하신 말씀만 남게 되었다.

 

 

이야기는 시대상에 따라 변화한다. 어른들이 전해주고 싶은 가치란 게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게 옳은지는 잘 살펴봐야 한다.

 

 

아마도 이런 식의 일차원적이며 맥락을 보지 않고 문자에 국한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별나들이님은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그래서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드러난 결말을 풀이하며 동화에서 다루는 죽음은 육신의 사라짐만을 의미한다고 볼 순 없어요. 그건 곧 정신의 죽음을 뜻하기도 하거든요. 과거의 나는 죽고 전혀 다른 내가 되었다는 상징적인 의미인 거죠라고 말했다.

이런 해석을 들으니, 김영민 선생이 쓴 컨텍스트로, 패턴으로라는 책 제목이 떠올랐고, 그가 말하는 무엇보다도 차이가 주는 긴장을 손쉽게 풀 수 있는 권위나 정답의 유혹 앞에 당당하라는 말이 생각났다. 어찌 보면 위대한 철학자란 박제된 상아탑 속에,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비근한 일상에서 다양한 의미를 찾고 기존의 문법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나와는 전혀 다른 생명체(자식)를 이해하려 부단히 애쓰는 엄마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엄마들이여 자기의 판단으로 좋고 나쁨을 가리려 하지 말고, 약간의 부정적인 화소(?)일지라도 옛 이야기의 전체적인 맥락에선 꼭 필요한 것이니 아이들이 맘껏 읽을 수 있도록 허락하자.

 

 

어른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듣고, 아이들은 아이들의 세계에서 당당히 살아간다.  

 

 

 

2이란 단어가 그리는 청소년의 자화상

 

이야기는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종횡무진 전개되고 있다. 이번 주제는 요즘에 최고로 핫한 2이다.

여태껏 사춘기思春期(여기서 이란 한자는 계절의 의미이기보다 성적행위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성적행위를 담은 그림을 춘화春畵라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사춘기라는 것은 2차 성징의 발달에 따라 성에 대해 급격하게 눈을 뜬다는 말이라 볼 수 있다)’란 말은 들어본 적이 있어도, ‘2이란 말은 최근에서야 겨우 듣게 됐을 뿐이다. ‘사춘기는 신체적인 변화에 중점을 두고 그 나이 때 아이들을 파악한 것이다. 그러니 그런 식의 명명은 전혀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2이란 단어는 전혀 그렇지 않다. 병증disorder으로 이해하여, ‘잘못된 것이기에 고쳐야 한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애초에 일본에서 처음 쓰였을 때만 해도 청소년의 자유분방함을 말하기 위한 단어 정도였던 것이, 무언가 특이하고 신경질적이며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청소년들이 자기 스스로 작년에 중2병에 걸려서 그렇게 망나니짓을 했었나 봐요라고 말을 하거나,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친구를 보며 2병에 걸려서 그래요라고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쓰게 됐다. 이렇게 점차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를 넘어서 병적인 의미의 단어로 뿌리를 내려갔다.

 

 

  이 리스트를 보고 있으면 팔팔한 감정을 지닌 인간이 떠오르는가? 병들어 치료가 필요한 인간이 떠오르는가? 

 

 

 

단어는 이해를 돕지만, 대상을 가두기도 한다

 

그러나 단어의 무서운 점은 어느 순간에 우리의 인식을 그 의미 속에 가둬버린다는 데에 있다. ‘2을 병증으로 인식하는 순간, 그에 대한 치료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되니 말이다. 최근에 급격하게 늘어나는 청소년 상담소는 결코 우연이라 볼 수 없다. 물론 상담소가 정말 필요한 청소년들도 있겠지만, 보통의 경우 부모가 자식을 병에 걸린 환자로 보기 때문에 가지 않아도 되는 청소년들이 상담소를 찾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민들레에선 2의 본질을 짚고 있다.

 

 

만약 사춘기를 병적인 시기로 보아 그와 같이 명명했다면 나는 사춘기 옹호론을 펴고 싶다. 아이들이 대체로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예민한 것은 감성이 최고조로 순정한 시기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 있다. 민들레96, pp 145

 

 

즉 단어가 가진 힘에 짓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기존의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며 돌파할 수 있어야 된다는 얘기다. 지금도 방송이나 주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미운 네 살’, ‘죽이고 싶은 일곱 살’, ‘임신우울증’, ‘ADHD’와 같은 말들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잔뜩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이런 단어를 듣고 흘려버릴지언정 그 단어에 사람의 활발발한 모습을 가둬버려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이런 단어들은 한 개인의 파도치는 심리의 다양한 측면을 무시하고 한 측면만을 부각시켜, 당사자를 비정상적인 상태로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단어를 쓰는 사람도 별 생각 없이 쓰며, 당사자도 무비판적으로 이런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상태를 말한다. 심리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으며 경계성 ADHD’라는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고 있는 학생은 그 약을 먹을 때마다 나는 병자다라는 것을 주기적으로 내면화하게 된다. 그러니 어느 순간엔 약을 먹어 낫자는 게 아닌, ‘약을 먹기에 나는 병자일 뿐이라는 체념으로 흐르게 되고 그 늪에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된다. 악순환도 이런 악순환이 없다.

관점이 없으면 상이 맺히지 않는다는 말처럼 단어는 세상을 받아들이고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완벽한 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왜곡된 상을, 한 부분의 상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니 하나의 방편으로 삼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세상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할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는 다음 후기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이게 하루에 먹어야 할 약이란다. 맙소사란 말이 절로 나온다. 병증으로 보는 사회의 끔찍한 현실이다.

 

 

인용

목차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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