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안젤리나 졸리, 헬로키티, 쵸코파이의 공통점은?
여백이 있는 공간
문제부터 들이미는 뻔뻔한 후기를 보면서 깜짝 놀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심심풀이땅콩 같은 것이니 놀라지 마시라. 답이 무엇인지 짐작은 되시나. 답은 ‘1974년생’이다. 이런 문제는 답을 알고 나면 허무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문제 또한 그렇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어떨까?
문제: 콩나물, 날으는 그네, 크랙, 삐삐, 어화둥, 제비꽃, 건빵, 민혁, 민유의 공통점은?
이 문제를 처음 본 사람은 이게 무슨 ‘잡동사니’들을 모아놓은 건가, 의아할 것이다. 답도 ,아리송하겠지. 이것이야말로 ‘대략난감’이다. 하지만 그 대략난감 속에 정답이 있다. 이들은 『81호』 읽기 모임에 나온 사람들의 닉네임이니 말이다. 이날은 과천모임에서도 같이 참석하여 자리가 차고도 넘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민들레 읽기 모임은 어떤 곳일까?
한 달의 공백, 삶의 여백
한 달의 공백기 후에 시작된 민들레 읽기 모임. 이 모임이 친근한 이유는 사람들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치부가 치부가 되지 않고 찌질함이 찌질함이 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나다움의 표현’이며 ‘다양한 삶의 방식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비록 주류의 관점에서 엇나간 소리를 할지라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며, 전혀 아무 것도 모르는 소리를 할지라도 이해해준다. 다양성, 이것이야말로 민들레 읽기 모임의 미덕이자 활력소다.
자신을 감추길 요구하는 사회, 그 속의 반란
자기표현이 부족한 시대다. 거대담론은 넘쳐나지만, 정작 나의 갈등이나 상황을 담은 이야기는 늘 감추어야만 한다. 남에게 밑 보여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민유쌤의 말처럼 외부의 적이 명확할 때는 그들을 대적하며 나의 정의감을 불태우면 됐다. 하지만 어느 정도 민주화된 시대를 지나며 외부의 적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고 부모조차 ‘비폭력대화’를 앞세우며 민주적인 가정환경을 만든 것처럼 보이자, 오히려 혼란에 빠지게 됐다. ‘세상과 가정은 나름대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 문제될 것이 별로 없는데, 내 자신은 왜 이리 정신도 못 차리고 혼란스럽기만 한 걸까? 이건 분명히 나에게 문제가 있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다. 모든 문제가 나에게 귀결되던 순간, 우리들은 자신의 말을 잊고 말았다. 내 탓인데 이런 저런 핑계를 댄 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우린 입을 다물었고, 방 안에 틀어박혀 울분을 쏟아내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자신에게 필요한 건, ‘어머니의 된장국’이 아닌 ‘나의 욕구를 발설할 수 있는 공간’이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를 만나는 것이다. 민들레 공간은 바로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자기표현이 사라진 이 때, 나를 표현하고 사람들의 표현을 들으며 공감대를 느끼는 것. 운동이라느니, 신념이라느니 거창한 말보다는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공간이 바로 민들레인 것이다.
▲ 현병호 선생님이 러시아 여행에 갔다와서 사온 초콜릿.과 과천모임까지 함께 해서 자리가 꽉찬 우리들.
뇌과학, 그기 뭐꼬?
『81호』 특집은 뇌과학이다. 솔직히 ‘미엘린’, ‘촉삭돌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부터 내 머리는 새하얗게 되었다. 이건 외국어 수준을 넘어 우주어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 되겠다 사람 불러야 겠다~ 이야기는 주로 제비꽃님이 주도했고, 어화둥님은 다양한 고민을 이야기를 했으며, 크랙님은 뇌과학이란 이름으로 상업화된 현실을 비판했다.
그런데 뇌과학을 민들레에서 이야기한 것에 대해 어떤 사람은 배신감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뇌를 어떻게 단련시키 학습욕구가 샘솟는다’, ‘정신 산만한 아이들이 뇌과학을 통해 집중력이 짱인 아이로 탈바꿈될 수 있다’는 식의 뇌과학 만능론이 세상에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뇌호흡학원’이나 ‘두뇌트레이닝’이라는 게임이 있는 거 아니겠는가. 아마도 이번 호 특집을 보며 ‘민들레도 대세에는 어쩔 수 없나 보네’라며 실망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들레의 특집은 전혀 이런 대세에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람은 열린 존재라는 것. 그래서 시냅스가 서로 연결되어 왕성한 뇌 활동을 하듯이 인간도 서로 끊임없이 관계 맺고 연결되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솔직히 말해 SNS를 충분히 활용함에도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선 철저히 자기를 감추는 닫힌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더욱이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가르치려고만 하는 모습은 너무도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학습기억은 신념 기억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억인데, 공부를 하지 않으면 멈춰버린다. 예컨대 대학생의 기억이 절차 기억 10%, 신념 기억 30%, 나머지 60%가 학습 기억이라고 하면 학습을 거의 하지 않는 35세가 넘어가면 학습 기억은 거의 사라지고 신념 기억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pp 54
그렇기에 공부해야 한다고 선뜻 결론 내리고 싶진 않다.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 신념기억이 우리를 뒤덮기 전에 자신은 열린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세상에 대한 흥미를 가지며, 사람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뇌가 활동할 때 쓰이는 포도당에는 차이가 없다고 한다. 늙었다고 뇌가 거의 활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아니 아니 아니 되오~ 그렇다면 자주 전두엽을 자극하여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린 아이가 세상에 대해 궁금해 하고 사람에 대해 이해하려 애쓰듯, 나이가 많다 해도 그런 감수성과 이해심은 있어야 하는 거다.
뇌를 잘 쓰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얘기한다면, 첫째는 감정을 풍부하게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pp 52
그럴 때 우린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뇌과학이 필요한 거지, ‘인간 능력의 비약적인 상승’을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뇌과학자들이 금기시하는 것은 뇌과학이 어떤 만병통치약으로 오인 받는 것이다. 교육에 뇌과학이 들어가면 아이들의 학습능력이 향상된다고 믿거나, 의료에 들어가면 정신적인 질병이 말끔히 사라지리라 믿는 그런 풍조 말이다. 뇌과학은 삶을 삶답게 살고자 하는 과학에 기초한 표현일 뿐, 신내림과 같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 뇌괴학을 만병통치학이 아닌 삶에 대한 다른 주제를 알려줄 소재로 공부하는 것도 괜찮다.
개념을 창조하라
과중력 세대(30대 후반 이후 세대)들은 무중력 세대(10대)에게 ‘열정 있는 삶’, ‘의지 있는 삶’을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다.
웹툰을 보거나, 영화를 보며 하루를 보내면 허투루 하루를 보냈다고 ‘좀 멀쩡하게 살 길’ 강요하는 것이다. 영화나 웹툰이야말로 ‘책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부모들의 ‘하루를 알차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증은 ‘열정’이나 ‘의지’란 단어로 표현된다.
어디 이들 뿐인가? 민유쌤은 출판학교나 여러 강연회에서도 강사들은 끊임없이 ‘열정’을 외쳤다고 말했다. 알게 모르게 열정이 과잉된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거 어쩌랴? 저중력이어서 세상에 뿌리조차 내릴 수 없었던 세대들에게 이건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열정을 지녀본 적도 없고, 혹 열정을 지녔다 해도 그걸 맘껏 펼칠 환경조차 허락받아보지 못한 세대에게 ‘열정’이란 단어는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만큼 맥아리 없는 말일 뿐이다.
그렇기에 단어의 개념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민유쌤은 말했다. 같은 용어를 쓰더라도, 개념을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 녹색당의 ‘녹색성장’과 새누리당의 ‘녹색성장’이 180도 다르듯이, ‘열정’이란 단어에서 자본주의적 색채를 빼고 가슴 뛰는 순간의 느낌을 담아야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가슴 뛰는 순간을 살기에 청춘’인 것처럼.
▲ 사람이 많으니 좀 더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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