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전주비빔밥 이야기
전주하면 비빔밥, 비빔밥하면 전주가 떠오른다. 왜 ‘전주비빔밥’이 유명해진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전주는 거대한 호남평야를 끼고 있는 곳이라 먹을거리가 풍부했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많은 음식들이 남을 것이고 그걸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비빔밥이 아닐까 싶다.
비빔밥의 유래와 철학
비빔밥은 네 가지 유래설이 있다고 있다. 첫째는 농경문화 유래설이다. 새참을 내갈 때 각 반찬 그릇을 모두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한 그릇에 반찬들을 담아 내갔고 그때 고추장에 비벼 먹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제사유래설이다. 야외제사를 지낼 때 음복하기 위해 하나의 그릇에 음식을 모조리 담아 먹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세시풍속 유래설이다. 겨울을 이겨낸 식물들엔 강인한 기운이 담겨있게 마련이다. 움파(움 속에서 겨울을 난 누런빛의 파), 산갓, 당귀, 미나리 싹, 무 싹 등의 오신채五辛菜를 밥 위에 얹어 먹는 풍속이 비빔밥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넷째는 궁중유래설이다. 조선시대에 하필 음식이 떨어질 때쯤 찾아온 손님을 위해 임시방편으로 밥 위에 남은 반찬을 얹어주었다고 한다.
이런 유래설과 더불어 비빔밥에 얹어진 나물들의 색깔이 철학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고 한다. 비빔밥엔 오방색(다섯 방위를 색으로 표현한 것으로, 우주의 기운이 들어있다고 동양인들은 생각함)이 곁들어져 단순히 밥을 먹어 배를 채운다는 게 아니라,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의미까지 부여한 것이다. 조선은 하나의 거대한 철학적인 배경 위에 건설된 나라인데 건축물뿐만 아니라 비빔밥이란 음식에도 이런 철학적인 배경이 곁들여 있다고 하니 조선의 멋과 풍류를 알만하다.
비빔밥 가격에 관해
하지만 이런 유래나 철학과는 반대로 지금 전주비빔밥은 기로에 서있는 게 분명하다. 유명세를 타고 가격이 천정부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을 치르고 비빔밥을 먹어야 한다. 전주비빔밥이란 유명세가 있기 때문에 한 번 먹어볼 수는 있겠지만, 두 번 다시 먹을 일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만큼 전주비빔밥의 전망은 밝지 않다는 이야기다.
물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더라도 5000원 이상을 내야 한다. 그건 당연시하면서 비빔밥 가격만 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비빔밥은 싱싱한 나물을 깨끗한 물에 적당히 데쳐야 하기에, 그만큼 좋은 재료를 선별하여 정성을 듬뿍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빔밥은 ‘남은 반찬을 없애기 위해 적당히 비벼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는 한, 비빔밥에 대한 가격 논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건 곧 전주비빔밥이 그만큼 유명하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그 유명세에만 의존할 경우 영영 전주비빔밥을 찾는 사람은 없어질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비빔밥집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합리적인 비빔밥집
그런 이유 때문에 이번에 우리가 찾은 곳은 ‘가격이 적당한 비빔밥집’이었다. 분위기나 깨끗한 곳만을 선호하지 않고, 나름의 맛과 합리적인 가격인 곳을 찾은 것이다.
전주시청 근처에 있는 백송회관이나 청라회관은 바로 그런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가 먹은 비빔밥은 육회비빔밥이었다. 이미 작년에 꽤 유명한 비빔밥집인 ‘고궁’에서 전주비빔밥을 먹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육회비빔밥을 먹으러 찾아온 것이다. 비빔밥 전문 식당은 아니기에 분위기는 대체로 산만하고 식당의 인테리어가 깨끗하진 않았지만 저렴한 가격에 육회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 그리고 육회비빔밥도 맛있었다. 나물의 간도, 고추장의 양도 적절했고 거기에 육회까지 듬뿍 들어있으니, 씹으면 씹을수록 감칠맛이 났다.
▲ 좌-백송회관, 우-청라회관 / 합리적인 가격에 비빔밥읆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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