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전주의 맛을 먹다Ⅱ
한옥마을의 은행나무길을 걷다보면, 낯선 모양의 건물이 나온다.
Cafe 76-11
분명히 지붕은 한옥인데, 건물은 나무를 덧대어 전원주택 같은 분위기가 난다. 그런데 더욱 특이한 것은 이곳의 이름이다. 한옥마을이라는 정체성에 맞게 한국적인 이름을 지을 수도 있었을 텐데, 버젓이 영어로 이름을 지었으며 의미 또한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예전에 이곳을 지나다닐 때 가게 이름이나 건물의 모습을 보고 ‘한옥마을의 정체성과 맞지 않다’며 못마땅해 하기도 했었다.
그랬던 이곳에서 밥을 먹게 될 줄이야. 이건 전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아마 누군가가 초대하지 않았다면 이곳을 들어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외지 학생들이 영화제에 참석하겠다고 하자 ‘전주시 영화영상산업과’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게 되어 이곳에서 밥을 먹게 된 것이다. 좋은 음식을 대접해주고 위에서 얘기했던 부채 만들기 체험 기회를 준 전주시청 관계자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는 이탈리아 돈가스(이하 이돈)를 시켰다. 이미 카페 안은 사람이 가득차서 시끌벅적 했다. 하지만 우리의 자리는 예약되어 있었기에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 바로 앉을 수 있었다. 돈가스가 나오기 전에 나온 샐러드는 푸짐했으며 이돈도 맛있었다. 그런데 백미는 따로 있었다. 보통은 그냥 맨밥이 나오게 마련이지만, 이곳은 해물이 잔뜩 들어 있으며 적당히 간이 밴 볶음밥이 나왔기 때문이다. 식욕을 북돋는 볶음밥을 먹으며 이돈까지 먹으니, 원래 갖고 있던 나쁜 인상도 눈 녹듯 녹아 내렸다. 또한 이날 비가 내리는 날씨 덕에 비로 물든 한옥마을의 거리를 내다보며 운치 있는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한옥마을의 분위기를 만끽하면서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싶다면, 이곳에 예약하고 점심을 느긋하게 먹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돈가스 추천- ‘돈가스닷컴’은 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돈가스집이다. 터미널이나 한옥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게 흠이지만, 특별하게 스프가 아닌 깨죽이나 호박죽이 나오며 돈가스와 함께 미역국을 준다. 돈가스 가격도 6~8천원대로 부담 없는 가격에 특별한 맛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엄마손 해장국
피순대의 맛을 보고 싶다면, 남부시장에 가야 한다. 이곳엔 피순대의 맛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은데, ‘조점례남문피순대(이하 조점례)’집은 여러 방송을 통해 홍보되고 여러 사람들의 블로그를 통해 알려진 덕인지, 조점례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홀이 엄청 넓음에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밥을 먹어야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난 그런 번잡함도 싫고 예전부터 단골로 갔던 곳이라 ‘엄마손 해장국(이하 엄마손)’으로 간다.
두 음식점의 순대국밥과 피순대를 먹어보면, 왜 ‘조점례’에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의 주관적인 미감으로 판단해 봤을 때, 순대국밥은 엄마손이, 피순대는 조점례가 낫다. 조점례의 순대국밥은 엄마손의 순대국밥에 비해 조미료맛이 심하게 나며 조금 밋밋하다. 그러나 조점례의 피순대는 엄마손의 피순대에 비해 부드럽고 잡냄새가 덜 나서, 피순대를 처음 먹는 사람도 부담 없이 당면순대와는 다른 피순대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조점례엔 사람들이 북적북적 붐벼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며 먹을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사람에게 쫓기듯 밥을 먹어야 하니 말이다. 선택이야 나름이지만, 전주에서 순대국밥을 먹고자 한다면 ‘엄마손’에 가길 권한다.
베테랑 칼국수
칼국수가 특별한 음식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더욱이 ‘베테랑 칼국수’집이 이렇게 유명해지리라곤 더욱 더 생각하지 못했다. 예전엔 성심여중고에 다니던 학생들이 다니던 분식집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 땐 여느 학교 앞에 있는 분식집처럼 고소한 칼국수를 싼 값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서 인기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절대적인 지지자였던 여중고 학생들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한옥마을이 유명해지면서 사시장철 관광객들로 북적이게 되었고 그런 만큼 칼국수도 비싸졌기 때문이다. 비싼 가격과 북적이는 관광객으로 여유와 낭만이 없는 공간이 되면서 더 이상 학생들이 찾지 않게 되었다. 유명해지는 만큼 최초의 단골손님과 멀어진다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개발되면 원주민들은 쫓겨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칼국수가 나왔다. 이곳 칼국수는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다. 한 그릇 가득 나오는 푸짐한 양도 허기를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물만두는 특별할 것이 없지만 칼국수와 함께 먹으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없이 빨리 먹고 나와야 한다. 색다른 칼국수를 먹고 싶어서 찾을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먹고 싶은 사람에겐 추천하지 않는 장소다.
소바, 콩국수집 추천- ‘진미집’은 40년 전통의 집이다. 그만큼 양도 많이 주며 콩국수의 시원한 맛이 일품인 집이다. 남부시장 근처에 있기에 한옥마을을 찾는다면 걸어갈 수 있는 집이기도 하다.
중화요리집 추천- ‘교동집’은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의 하해와 같은 은덕(?)으로 특별한 날 짜장을 먹던 곳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어렸을 때 향수 때문에 추천하나 보다’라고 생각할 테지만, 분명히 지금까지 이렇게 번성하게 된 데엔 비결이 있다. 지금은 물짜장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난 그냥 기본이 되는 짜장이나 짬뽕도 맛있다고 생각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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