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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임용한 - 손자병법, 제6편 허실(虛實) 본문

고전/손자병법

임용한 - 손자병법, 제6편 허실(虛實)

건방진방랑자 2025. 3. 1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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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실(虛實)

 

 

병법은 나의 강한 것(실한 것)으로 적의 약한 것(허한 것)을 치는 것이다. 손자는 이것을 더욱 더 능동적으로 적용해서 허실의 판단을 내가 유도하고, 창안하는 방법을 논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주도권이다.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은 모든 명장들이 강조하는 전쟁의 진리다. 그러면 주도권이란 어떤 것일까? 왜 주도권 장악이 중요한가? 그것이 이편의 내용이다.

 

 

 

 

1.적이 오기를 기다리는 자

 

무릇 전장에 먼저 도착해서 적이 오기를 기다리는 자는 편하다. 뒤늦게 전장에 도착해서 전투 준비 과정을 쫓아가야 하는 자는 피로하게 된다.

孫子曰: 凡先處戰地而待敵者佚, 後處戰地而趨戰者勞.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사람은 적을 내 의도대로 이끌지 적에게 끌려다니지 않는다. 나에게 유리한 지역으로 적이 자진해 오게 하는 방법은 적이 그 지역을 자신에게 이로운 지역이라고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 적이 오지 않게 하는 방법은 적이 그곳을 자신에게 해로운 지역이라고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故善戰者, 致人而不致於人. 能使敵人自至者, 利之也; 能使敵人不得至者, 害之也.

 

적이 편안하면 피로하게 만들고, 적의 식량 사정이 좋으면 굶주리게 만들고, 적이 안주하고 있으면 움직이게 해야 한다.

故敵佚能勞之, 飽能飢之, 安能動之.

 

앞서가면 총에 먼저 맞는다.”

지뢰 밭에서는 앞선 사람의 발자국을 밝으며 따라가야 안전하다.”

 

언제 어디서나 지뢰밭의 논리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다. 손자는 이런 사고를 간단하게 반박한다. 전장에 먼저 도착해서 준비하는 자는 공격지점, 포격지점, 매복지점을 선점할 수 있다. 늦게 온 쪽은 불리함을 감수하거나 대응진지를 만드는 데 몇 배의 노력을 들여야 한다. 먼저 온 군대는 그동안 쉬다가 적이 작업으로 피로해지면 공격한다.

 

병력이 대규모일수록 서로 확실하게 상대의 규모와 배치를 확인한 다음 전투를 벌이는 것이 편했다. 불안한 상태로 서두르면 실수하게 된다. 일단 적과 마주하고 배치에 들어가면 일수불퇴 상황이다. 부대 배치를 서두르면 간격이 일정하지 않거나 전투 기준이 어그러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전투를 앞두면 작은 징크스에도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렇다고 재배치하면 군이 더 불안해진다. 전군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체력이 손실되고 리더십에 타격을 입는다.

 

불편함을 감수하면 전술 능력에 손상이 오고, 병사들이 동요한다. 이래저래 이미 절반은 지고 들어간다. 이것이 먼저 도착한 쪽은 편하고 나중에 도착한 자는 피곤하다는 의미다.

 

전쟁이든 경쟁이든 주도권을 쥐고 상대를 압박하는 자가 승리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선다.

 

 

한발 앞선 자가 승리에 한발 더 가깝다.

 

기원전 338필리포스 2(Philip , BC382?~BC336?)는 카이로네이아 근교에서 그리스 연합군과 조우했다. 전체 그리스의 패권을 결정하는 전투였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아들 알렉산드로스도 이때 처음으로 자신이 양성한 컴패니언 기병대를 이끌고 전투에 참전했다.

 

마케도니아군은 보병 3만 명에 기병 2,000명 그리스군은 아테네와 테베가 주축이 된 연합군으로 35,000명 정도였다. 마케도니아군은 필리포스의 강훈련과 행군, 보급 체제의 개선으로 1시간에 15킬로미터를 행군했다. 그리스군의 속도는 평균 4킬로미터 정도였다. 카이로네이아 평원에 행렬의 선두가 진입한 시간은 양측이 비슷했다. 하지만 3배의 속도를 지닌 마케도니아군이 이미 전투 준비를 마쳤을 때 그리스 연합군은 아직도 느릿느릿 평원에 들어오는 중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도시 간에 전쟁을 벌일 때는 양측이 전쟁 준비를 다 마침 때까지 기다려주는 관행이 있었다. 이것은 스포츠맨십 때문이 아니었다. 그리스 도시들의 군대는 서로 유사점이 많다 보니 행군 속도 역시 비슷해서 전투 장소에 도착해서 전투 준비를 마치는 시간도 비슷했다. 하지만 북방에서 온 마케도니아 군대는 전투에 임하는 각오도 달랐고, 그리스인과의 동질감도 박약했다. 필리포스는 자신이 힘들여 조련해서 얻은 속도의 이점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그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흐물흐물한 그리스군 진영을 보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전투는 마케도니아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번에는 2차 세계대전으로 가보자. 194112월 진주만 공습으로 의기소침한 미국은 다소 치졸한 복수를 구상했다. 일본 본토를 보복 공습해보자는 것이다. 1942418, 16대의 B-25 폭격기가 도쿄, 오사카, 고베, 나고야 등 일본의 주요 도시 상공에 나타났다. 겨우 16대로 여러 도시에 분산폭격을 감행했으니 일본에 끼친 피해는 모기에 쏘인 수준도 안 되는 것이었다.

 

이 별 볼 일 없는 보복을 위해 미군은 상당한 투자를 했다. 애초에 일본 본토까지 장거리 비행을 할 군용기가 없었다. 항속거리가 가장 긴 폭격기를 개조해 연료를 최대한 적재하고, 이 무거운 항공기를 항공모함에서 발진시켰다. 세 척밖에 없는 항모 중 한 척을 일본 근해까지 접근시켰다. 둘리틀(James Harold Doolittle, 1896~1993) 중령이 이끈 이 폭격은 거의 자살공격이었다. 돌아올 연료가 없어서 조종사들은 폭격 후 중국이나 소련으로 날아가 불시착했다. 일부는 탈출에 성공했고, 일부는 포로가 되었다.

 

열과 성을 다했을 뿐, 아무런 효과도 없는 공습이었다. 미군도 주도권 확보 같은 거창한 의도는 없었다. 전쟁에 돌입하면서 국민의 사기 진작을 위한(이 의미 자체는 대단히 중요하긴 하다) 거대한 이벤트였다.

 

그런데 이 체면을 위해 벌인 쇼가 역사를 바꿀 결과를 초래한다. 일본은 전쟁이 나도 일본 본토와 민간인은 절대 안전하다고 선전해왔다. 일본이 제해권을 장악한 이상, 미군 항모가 일본 공습이 가능한 거리까지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미군 폭격기가 날아왔다. 자존심이 상한 일본 대본영은 이 작은 사건에 집착했다.

 

당시 일본은 개전 당시에 세운 목표를 매우 쉽게 달성했고, 다음 목표와 전쟁의 방향을 고민할 때였다. 태평양전쟁1기에서 2기로 넘어가는 중차대한 순간에 일본 해군 총사령관 야마모토 제독은 엉뚱하게 모기에 신경이 쓰였다. 당장은 불가능한 일본 본토에 대한 미군의 공습 위험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2기 전략으로 미드웨이 해전을 추진한다.

 

야마모토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그가 늘 걱정하고 있던 미국의 거대 경제력과 잠재력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둘리틀 공습은 핑계일 뿐, 이게 진짜 속셈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진주만 공습에서 미군 함대를 1년 동안 기동 불능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이상 두 번째 시도를 해야 했다.

 

성급하게 미드웨이 해전을 추진하면서 미군에게 정보가 노출되었다. 객관적 전력이 우위였음에도 주도권을 놓치고, 우왕좌왕하다가 이길 기회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결국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이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태평양전쟁의 흐름을 한순간에 바꾸었고, 일본군은 전쟁의 주도권을 완전히 미군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둘리틀 공습은 무의미하고 헛된 작전이었지만 전쟁의 승부를 바꾼 획기적 포인트가 되었다. 이것이 주도권의 힘이다. 둘리틀은 미국 최고의 전쟁영웅이 되었다. 승전 퍼레이드의 맨 앞자리는 둘리틀과 패튼에게 배당되었다.

 

 

 

 

2. 적이 가지 않을 곳으로 나가며

 

적이 달려가지 않을 곳으로 나아가며 적이 뜻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간다아군이 반드시 갈 것이라고 적이 예측한 곳으로 나가다가, 적이 의도하지 못한 곳으로 달려간다. 천 리를 행군해도 피로하지 않은 것은 적이 없는 곳을 가기 때문이다.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는 것은 수비하지 않는 곳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수비하면 견고하게 지켜내는 것은 적이 공격할 수 없는 곳을 수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격을 잘하는 자는 적이 수비할 방법을 모르는 곳을 공격한다. 수비를 잘하는 자는 적이 공격할 방법을 모르는 곳을 지킨다.

出其所必趨, 趨其所不意. 行千里而不勞者, 行於無人之地也. 攻而必取者, 攻其所不守也. 守而必固者, 守其所不攻也. 故善攻者, 敵不知其所守. 善守者, 敵不知其所攻.

 

미묘하고 미묘해서 아군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되고, 신기하고 신기해서 소리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적이 아군을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능히 적의 운명을 다룰 수 있다. 아군의 진격을 적이 막을 수 없는 것은 적의 허를 찌르기 때문이다. 아군이 후퇴해도 적이 추격하지 못하는 것은 아군의 행동이 신속해서 적이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微乎微乎, 至於無形, 神乎神乎, 至於無聲, 故能爲敵之司命. 進而不可禦者, 衝其虛也; 退而不可追者, 速而不可及也.

 

성루가 높고 해자는 깊은 성에 주둔하던 적이라도 아군이 싸우자고 하면 나와서 싸우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적이 반드시 구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을 아군이 공격하기 때문이다. 아군이 수비해야 하는데, 비록 땅바닥에 선만 그어놓고 지키더라도 적이 아군과 싸울 수 없는 것은 적이 아군과 어긋난 방향으로 가도록 했기 때문이다.

故我欲戰, 敵雖高壘深溝, 不得不與我戰者, 攻其所必救也; 我不欲戰, 畫地而守之, 敵不得與我戰者, 乖其所之也.

 

적이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이동하고, 대비하지 않은 곳을 공격한다. 전쟁사에서 회자되는 극적이고 전설적인 승리는 언제나 이 예상치 못한 경로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예상치 못한 경로는 오직 사자의 심장을 갖고 전쟁의 비결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길이다.

 

기원전 52년 베르킨게토릭스는 카이사르가 귀국한 틈을 타서 용의주도한 반란을 일으켰다. 카이사르가 반란 소식을 들었을 때, 베르킨게토릭스의 세력은 이미 갈리아 서북쪽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그를 추격하려면 갈리아 깊숙이 진격해야 한다. 그 시간 동안 반란은 더 확산되고, 깊이 들어간 로마군은 포위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로마군이 갈리아 땅에서 반란군을 쫓아다니면 전쟁의 주도권이 베르킨게토릭스에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주도권처럼 중요한 개념은 없다. 역사에 기록된 명장들은 주도권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때로 기발하고, 때로 무모할 정도로 위험한 선택으로 보이는 전역(戰役)들도 분석해보면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행동일 때가 많다. 그만큼 주도권은 승리의 필수 요소다.

 

카이사르는 베르킨게토릭스를 추격하는 대신 그의 본거지를 공격했다. 베르킨게토릭스도 예상한 일이었지만, 한겨울에 눈이 덮인 험준한 케벤나산이 방어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주도권의 가치를 알았던 카이사르는 눈사태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산을 넘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고향을 지키기 위해 회군해야 했다. 부족 연합군을 거느리고 있는 베르킨게토릭스의 입장에서는 본거지가 함락당하면 그의 권력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한 번의 기동으로 전쟁의 주도권은 카이사르에게로 넘어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에서는 영국군, 독일군, 이탈리아군이 대치 중이었다. 급거 북아프리카로 파견된 로멜은 수비로는 성에 안 차는 장군이었다. 그는 대규모 반격 작전을 구상했다.

 

영국군 정보팀은 키레나이카에서 독일군이 기습 공격을 감행할지 모른다는 첩보를 감지했다. 영국군 총사령관 웨이블(Archibald wavell, 1882~1950) 장군은 키레나이카 지역을 시찰하다가 방어 책임자인 님 (Philip Neame, 1889~1978) 중장이 탱크 통과가 불가능하다고 방치해둔 지역을 발견하고 불안감을 느꼈다. 자신이 보기에는 통과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웨이블과 님은 둘 다 사막 운행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로멜 군단이 5월 이전에 공격을 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판단을 내린 결정적 이유는 로멜을 자신들의 상식에서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만약 로멜이 당장 공격을 감행한다면 영국군은 대비책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국군은 로멜이 오기 전에 이탈리아군에게 거둔 승리에 도취되어 정예부대인 7기갑사단을 이집트로 돌려보내고, 영국에서 막 도착한 신참인 2기갑사단으로 대체했다. 그것도 절반만 이곳에 배치했다. 2기갑사단의 나머지 절반은 그리스로 파견되었다. 2사단은 전투 경험이 전혀 없었고, 그나마 갖춘 장비와 차량도 대부분을 그리스로 보내서 기갑사단이라는 명칭은 허울뿐이었다. 웨이블과 님은 너무 끔찍한 상황에 직면해서 더 끔찍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할 엄두를 내지 분했다.

 

전쟁사를 보면 모든 방어 대책과 진지는 자기 전술에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적이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거나 새로운 장비와 기술을 도입해서 예전과 다른 기동을 할 수 있게 되어도 이전의 경험, 자기 시나리오에 집착한다. 준비된 대책 덕분에 심리적으로 편하기 때문이다. “적이 이곳으로 올 것이다가 아니라 적이 이곳으로 와야 한다는 태도가 문제다.

 

로멜은 항구에 도착한 아프리카 군단을 6개월의 적응 기간을 무시하고, 바로 사막으로 내몰았다. 그것도 탱크가 절대 통과할 수 없다며 영국군이 확신하고 비워둔 바위 지역으로 말이다. 독일군 병사들은 암반 지역을 통과했고, 수백 킬로미터를 우회해서 진지의 뒤로 들어가 영국군을 단숨에 궤멸시켰다.

 

또 다른 전례다. 1950년 겨울, 30만 중공군이 의주와 강계 사이의 압록강을 넘어 개마고원까지 진출했다. 중공군 참전 경고가 빗발쳤지만, 미군은 대응하지 못했다.

 

정보를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극동군 사령부는 매일같이 정찰기를 띄워 중공군의 흔적을 찾았다. 국토 대부분이 민둥산이어서 시야를 가릴 것이 없고, 온통 눈으로 덮인 땅에는 보급 트럭도 병사도 보이지 않았다. 미군의 상식에 30만 명이나 되는 대군이 이렇게 아무 흔적도 없이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 땅에 중공군은 하얀 위장포를 쓰고 엎드려 있거나 나뭇가지를 꺾어 들고 숲을 이루며 서 있었다. 손자의 말대로 형체 없이, 소리 없이 이동해서 갑자기 나타난 그들은 개마고원에서 미 해병 사단을 완벽하게 포위했다. 여차하면 이것이 한국전쟁의 운명을 바꿀 뻔했다.

 

적에게 속지 않고 허를 찔리지 않으려면 자신의 상식과 경험만으로 세상을 보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적의 허를 찌르려던 적의 상식을 역이용해야 한다.

 

 

적이 없는 곳으로 달려 나가는 두 가지 방법

 

적이 달려가지 않을 곳으로 나아가며, 적이 뜻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간다.

 

이 구절에 관해서는 또 다른 해석이 존재한다. 판본의 한자부터 다르다. 손자병법의 대표적인 판본인 십일가주손자무경칠서계통의 모든 판본에 이 구절을 출기소불추(出其所不趨) 추기소불의(趨其所不意)’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통전』 『태평어람그리고 일본에 남아 있는 고문 손자에는 출기소필추(出其所必趨), 추기소불의(趨其所不意)’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1972년 발견된 손자병법죽간본에도 필추(必趨)’로 되어 있다. 겨우 한 글자로 뜻은 완전히 달라진다.

 

전자는 적이 달려가지 않는 곳[不趨], 즉 적이 없는 곳으로 나아가며, 적이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간다는 두 문장이 반복되는 대구다.

 

하지만 후자의 필추(必趨)‘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적이 반드시 달려갈 곳

아군이 반드시 갈 곳이라고 적이 생각하는 곳

 

그리고 이 두 번째 해석이 가장 그럴듯하다. 우리가 반드시 갈 거라고 적이 생각하는 곳으로 가는 척하다가, 그들이 의도하지 못한 곳으로 달려간다는 것이다.

 

전자의 해석은 무인지경을 달려 쉽게 승리를 얻는다는 인상을 준다. 손자가 활동하던 중원 지역은 광활한 평야지대여서 이런 기동이 더욱 사실감 있게 느껴졌을 것이다. 뒤에 이어지는 천 리를 행군해도 피로하지 않은 것은 적이 없는 곳을 가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이런 상쾌한 느낌을 배가시킨다.

 

그러나 중원이 아무리 광활한 평야지대라고 해도 요충은 요충이고, 길목은 길목이다. 실제로 중국의 전쟁사를 보면 특히 당나라 말기에 반란을 일으켰던 소금상인 황소(黃巢)나 청나라 말기의 태평천국군 같은 농민 반란군은 정부군이 없는 지역과 농촌 지역을 광범위하게 돌아다니며 갈지자 행보를 반복했던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그저 남은 생명을 연장해줄 뿐이다. 시간을 끌다 운이 좋으면 상대의 실수를 통해 기회를 얻을 수는 있지만, 주도적으로 전황을 역전시키고 승리하는 방법과는 거리가 있다.

 

이 구절을 적이 없는 빈 공간으로 뛰어다니라는 말로 해석하는 것은 현장 상황과 맞지 않는 몽상가의 탁상공론이거나 쉬운 승리, 거저 얻는 블루오션을 찾는 심리다. 손자는 이런 승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쉬운 승리도 주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력 없이 얻는 공짜 승리를 추구하는 지휘관이라면 천 리 길도 피곤하지 않게 달려가기는커녕 스스로 지쳐 쓰러지고 말 것이다.

 

남다른 사람은 우연히, 그리고 쉽게 얻은 승리에 탐닉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상황을 만들어내거나 한니발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듯 남이 가지 않는 협로를 개척하기 때문에 남다른 것이다.

 

다시 말해 천 리를 행군해도 피로하지 않은이유는 장애물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특별한 노력과 적을 압도하는 지략, 적에게 없는 능력으로 성취한 길이기에 기쁨과 성취감에 의해 피곤하지 않은 것이다.

 

아군이 적이 예상하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적을 유인하고, 적이 걸려들면 이번에는 의도하지 않는 곳으로 달려간다. 이런 전술은 아군이 적보다 더 많이 걷고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전제가 바탕이 된다. 이런 전술을 사용하기 위해서 지휘관은 평소에도 일반적인 병사들의 이동 속도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빠르고 멀리 기동할 수 있도록 병사들을 단련해야 한다.

 

천 리 길을 뛴다면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승리의 확신이 있다면 병사들은 해낼 수 있다. 적과 전투를 피하기 위해서, 적이 무서워서 천 리를 우회하는 것이 아니라 적과 수준이 다른 군대여서 이 길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이런 기동을 위해 병사들에게 모포 한 장만 던져주고 무거운 텐트를 버리게 했다.

 

 

편안한 자와 절박한 자의 차이를 명심한다

 

1차 세계대전에 중대장으로 참전했던 로멜의 장기는 적 방어선의 구멍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그것도 북아프리카에서처럼 무방비 상태의 공간이 아니라 참호와 철조망, 때로는 방벽이 설치된 방어선에서 흐린 밤, 혹은 비 오는 날에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만한 허점을 찾아냈다. 그런 허점은 로멜만이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밤마다 적의 방어선 앞을 기어다녔다. 허점을 찾고 나서 공격 계획을 마련하므로 제1차 세계대전 내내 로멜 중대는 단 한 번의 공격 실패도 없었고, 몇 배나 적은 병력으로 고지나 요새에 웅거하고 있는 적군을 격파하는 쾌거를 이루곤 했다.

 

이 사례의 교훈은 어떤 방어벽에도 허점이 있다거나 악착같이 허점을찾으면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아니다. 어떤 방어벽이라도 허점은 있기 마련이니, 자신이 고안한 상황과 설정에 전적으로 의존하면 실패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허점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적의 관점에서 상황을 살피고 적을 유인해야 한다. 한니발을 봉쇄하려 했던 로마 군단은 봉쇄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봉쇄를 통해 한니발을 늪지에 몰아넣는다는 개념으로 접근했어야 했다.

 

 

 

 

3. 적은 드러나도록, 나는 감춰지도록

 

적은 형태를 드러내게 하고, 내 형태는 알 수 없게 하면 아군은 병력을 집중할 수 있고, 적군 병력은 분산된다. 아군은 집중되어 하나이고 적군은 열로 분산되니 열의 힘으로 하나를 공격하게 된다. 아군은 많고 적군은 적어서 다수로 소수를 공격할 수 있으니 싸움이 쉬워진다. 아군이 전투를 벌일 지역을 적이 알 수 없으니 적은 수비할 곳이 많아진다. 수비할 곳이 많아지면 아군이 상대할 적군은 적어진다. 그러므로 적군은 앞을 수비하고자 하면 뒤가 약한 것을 염려하게 되고, 뒤를 대비하려면 앞이 약한 것을 걱정하게 된다. 좌측을 수비하면 우측의 병력이 적어지고 우측을 수비하면 좌측이 적어지는 것이다. 전후좌우 전부를 수비하면 병력이 부족해진다.

故形人而我無形, 則我專而敵分; 我專爲一, 敵分爲十, 是以十共其一也, 則我衆而敵寡; 能以衆擊寡者, 則吾之所與戰者, 約矣. 吾所與戰之地, 不可知; 不可知, 則敵所備者多, 敵所備者多, 則吾之所戰者, 寡矣. 故備前則後寡, 備後則前寡, 備左則右寡, 備右則左寡, 無所不備, 則無所不寡.

 

병력이 적은 쪽은 수비를 하게 되고, 병력이 많은 쪽은 적이 수비하도록 하게 한다. 그러므로 전투를 벌일 장소와 날짜를 알아서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면 천 리를 이동해서도 전투를 할 수 있다. 전투가 벌어진 장소와 날짜를 모르면 좌측은 우측을 구원할 수 없고 우측은 좌측을 구원할 수 없다. 전위가 후위를 구원할 수 없고 후위가 전위를 구원할 수 없다. 하물며 멀리 떨어진 자는 수십 리, 가까이 있는 자도 수 리나 된다면 어떻게 구원할 수 있겠는가?

寡者備人者也, 衆者使人備己者也. 故知戰之地, 知戰之日, 則可千里而會戰. 不知戰地, 不知戰日, 則左不能救右, 右不能救左, 前不能救後, 後不能救前, 而况遠者數十里, 近者數里乎?

 

내가 헤아려보건대, 나라의 병력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승패에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 적이 아무리 많아도 싸울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以吾度之, 越人之兵雖多, 亦奚益於勝敗哉? 故曰: 勝可爲也. 敵雖衆, 可使無鬪.

 

집중과 선택은 전술의 기본이다. 그런데 집중과 선택에는 전술적 집중과 국지적 진정이 전술적 집중은 고도의 기동과 효율, 조직력을 요구한다. 단순하게 봤을 때 아군의 수가 적군에 비해 많을수록 전쟁에서 유리하다. 전쟁에서 병력과 물자는 언제나 결정적인 변수다. 그러나 군의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느려지고 부담도 커진다. , 기동과 순환 기능은 약화된다. 더욱 명심해야 할 점은 전술적 집중을 무시하고 물리적 집중에 집착하는 군대는 언제나 비극적 결과를 얻었다는 점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 전쟁사를 보면 이 부분을 착각하거나 균형을 잃어버림으로써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던 사례들이 가득하다. 본문에서 손자는 월나라를 비판하면서 월나라가 대군을 동원했지만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배경이 되는 사건과 월나라 군대의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오나라에 한번 패한 월나라가 급박하게 대군을 동원하면서 질보다 양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고, 손자는 벌써 월나라 군대가 병력을 전술적으로 운영할 능력이 떨어진다는 약점을 파악했던 것 같다.

 

 

물리적 집중과 전술적 집중

 

근대 전쟁사에서 손자의 전술적 집중의 원리를 제대로 보여준 사람이 나폴레옹이다. 덕분에 나폴레옹이 손자병법을 읽었다는 소문이 오랫동안 퍼지기도 했다. 알렉산드로스 이래로 세기의 명장들이 꼭 배워야 알았던 것은 아니다. 이는 손자도 마찬가지다.

 

19세기의 장군들은 나폴레옹 전술의 예찬자였지만, 산업화에 의한 물량 공세와 파괴의 기술도 동시에 물려받았다. 공장은 생산력을 폭증시켰고, 철도라는 괴물이 기동과 수송의 개념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19세기 전술가들은 근대 전쟁이 제한된 공간에 얼마나 많은 병력과 화력을 빠르고 집중적으로 투입하느냐에 달렸다는 교리를 도출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나폴레옹 전술의 묘미인 분산과 집중의 원리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공장과 군수창고는 전국에 흩어져 있고, 징병제로 바뀐 시대라 병력도 전국에서 모아서 전투 장소에 투입해야 했다. 이게 분산과 집중이 아니고 무엇인가?

 

막상 전쟁을 시작하자 이런 생각은 철도가 토해놓은 군대를 목표지점을 향해 인해 전술로 밀고 들어가는 산술적 집중으로 곧잘 전환되었다. 남북전쟁과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장군들은 엄청난 병력을 이전보다 더 빠르게 총과 포탄 앞으로 밀어 넣었다. 그 결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살상극이 벌어졌다. 남북전쟁 당시 보병들은 콘크리트 요새 앞으로 100, 200명씩 밀집 대형을 이루고 전진했다. 유산탄 한 발에 70명에서 100명이 쓰러진 사례도 있다. 연대 규모인 2,000명이 단 한 번의 일제 사격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남북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수가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의 수를 합한 것보다도 많다는 사실을 말하면 사람들은 믿지 못한다. 그것도 인구 증가를 무시하고 비교한 수치다. 인구 비례를 고려하면 5, 10배로 늘어난다.

 

이런 비극은 1차 세계대전까지 지속되었다. 서부 전선에서 연합군 전사자만 1,000만 명이다. 결과는 누군가가 말했듯이 고기 써는 기계에 병사들의 살과 뼈를 밀어 넣는 격이었다. 승부는 전략이나 전술이 아니고, 고기를 누가 더 잘 써느냐도 아니고, 어느 쪽이 기계에 밀어 넣을 고기가 먼저 떨어지느냐로 결정되었다

 

인해 전술은 한국전쟁에서 언론에 의해 탄생한 용어다.한국전쟁에 참전해서 중공군의 돌격 장면을 체험했던 참전용사들은 그들이 본 인간의 파도와 그것이 주는 공포감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입율 모았다. 병력이 얼마나 밀집되어 있었는지 눈앞에서 총알 한 발에 세 명, 다섯 명, 일곱 명이 쓰러졌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옆으로 더 많은 병사들이 달려든다는 점이었다.

 

중공군은 야간 전투를 좋아했다. 야간이면 수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달밤에 중공군은 흰 위장포를 쓰고 눈밭에 엎드려 있다가 공격 신호가 울리면 일제히 일어나 돌격을 감행했다. 그들이 일어나면 하얀 눈발에 검은 그림자가 생겼다. 그들이 일어나는 순간 테이블보를 뒤집듯이 눈앞의 온 산하가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휙 뒤집혔다. 장진호 전투의 생존자인 어떤 해병은 온 산하가 벌떡 일어나 자신에게 달려드는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물리적 집중의 나쁜 사례를 들라고 하면 누구나 중공군의 인해 전술을 지목할 것이다. 실제로는 정반대다. 인해 전술은 겉보기에는 물리적 집중이지만 전술적으로 보면 전술적 집중과 분산의 원리를 체현하고 있다.

 

손자가 아군은 집중하고 적은 분산시키라고 했다고 해서 19세기의 장군들이 그랬듯이 가시적 집중에 매몰되거나 시간과 공간을 고정시켜서는 안 된다. 이동하고 분산하고 집중하면서 집중과 분산의 전술적 이득을 취하면 그만이다. 중공군은 일본군, 미군과의 전쟁에서 병력의 우위와 화력의 열세라는 특징을 집중과 포위로 상쇄했다 중공군은 위장과 은밀 기동에서 세계 최고의 군대였다. 그들은 한국의 산악 지형을 이용해 국군과 미군의 후방에 침투시켜 사전에 여러 개의 포위망을 구축하고 도로를 차단했다. 전투 개시 시간이 되면 먼저 포병대를 공격해 미군의 장점인 화력의 집중력을 해체한다. 손자가 말한 적이 많아도(강해도) 싸울 수 없게하는 것이다.

 

이렇게 먼저 부대를 쪼개 포위하고, 우리가 인해 전술이라고 말하는 무자비한 공격을 감행해서 최단 시간에 승부를 낸다. 물리적 기준으로 보면 손자가 말한 다수가 소수를 공격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전술적으로 보면 전투력이 떨어지는 군대가 미군을 분산시키고, 떨어진 전투력을 수와 분산으로 보강하며 공격하는 것이다.

 

쪼개진 국군과 연합군은 협력 방어나 예비대 운용이 불가능하다. 어느 쪽으로 원군을 보내도 아군의 병력이 적어지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손자는 적이 아군의 동정을 몰라 어느 쪽에서 공격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공군의 경우는 반대로 모든 부대가 사방에서 공격하고 있어서 누구도 원군을 보낼 수도 받을 수도 없다.

 

이 포위를 뚫고 살아남아서 후퇴하는 유엔군이 있으면 중공군이 사전에 확보한 고개나 협로에서 매복 공격으로 섬멸한다. 유엔군은 중공군이 매복하고 있는 지점을 뻔히 알아도 그곳을 통과하지 않을 수가 없다. 중공군에게는 생지, 유엔군에게는 사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손자의 집중과 선택에 충실했던 중공군의 인해 전술이 절반의 성공, 혹은 전반부의 성공만을 거두고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물리적 분산은 달성했지만 전술적 분산은 완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위력적이었던 미군의 항공 전력, 항공 보급을 통한 해병의 전투력과 포병의 화력 유지와 함께, 열악한 중공군의 수송 능력이 미군의 전술적 집중력은 유지시키고, 중공군의 집중력은 떨어트렸다.

 

물리적 집중과 전술적 집중은 일반 사회에서도 물량 작전 상품 다양화, 판로 다양화, 스펙 쌍기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양의 증가와 종류의 증가는 집중이 될 수도 있고 분산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자신이 전술적 집중의 방법과 목표를 이해하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다.

 

 

 

 

4. 계획을 세워 득실을 알아낸다

 

그러므로 계책을 세워 득실을 알아내고 행동을 보여 적의 동정을 파악한다. 적의 형태를 보아 생지와 사지를 알아낸다. 적을 슬쩍 찔러보아서 적의 병력이 많은 곳과 부족한 곳을 알아낸다. 그러므로 군대를 운 용하는 극치는 형체가 없는 무형의 경지다. 무형의 경지란 적의 간첩이 잠입해서 아군의 동태를 보아도 우리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라도 계책을 세울 수가 없다. 적의 형세에 알맞은 조치를 해서 대중 앞에서 승리를 얻어내지만, 대중은 이 원리를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모두 아군이 승리할 때의 형태를 알지만, 아군이 승리를 얻어낸 형의 원리는 모른다. 그러므로 한 번 승리한 방법을 다시 사용하지 않고, 형의 응용은 무궁무진하게 되는 것이다.

故策之而知得失之計, 作之而知動靜之理, 形之而知死生之地, 角之而知有餘不足之處. 故形兵之極, 至於無形; 無形則深間不能窺, 智者不能謀. 因形而錯勝於衆, 衆不能知; 人皆知我所以勝之形, 而莫知吾所以制勝之形. 故其戰勝不復, 而應形於無窮.

 

무릇 용병의 형태는 물의 형상과 같아야 한다. 물은 높은 곳에는 막히고 아래쪽으로 흘러내려간다. 군대의 형태는 적의 실한 곳을 피하고 허한 곳을 쳐야 한다. 물은 땅의 형태를 따라 자연스럽게 흐름을 만든다. 용병은 적에 따라 적합한 방법으로 승리를 얻는다. 그러므로 용병에는 고정된 형태가 있고, 물도 일정한 형상이 없는 것이다. 적에 따라 능숙하게 대응해서 승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전쟁의 신이라고 한다. 이것은 오행이 항상 강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강하고 약한 이치가 있고, 사계절은 고정되지 않고 늘 변하며, 해는 짧을 때와 길 때가 있고. 달은 찼다가 저무는 이치가 있는 것과 같다.

夫兵形象水, 水之行, 避高而趨下, 兵之形, 避實而擊虛, 水因地而制流, 兵因敵而制勝. 故兵無常勢, 水無常形, 能因敵變化而取勝者, 謂之神. 故五行無常勝, 四時無常位, 日有短長, 月有死生.

 

전쟁터란 태풍 속과 같다. 서로에게 대응하고 반응하며 변화한다. 전쟁터에 도착해서 대치하는 중에는 적군의 상태를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상대 지휘관의 능력에 따라 대응도 달라야 한다. 전략에서 전술, 작전의 단계로 들어설수록 상태는 혼돈으로 바뀐다.

 

손자는 적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내가 먼저 행동을 보여 적의 반응을 보고, 적을 찔러보아서 적의 약한 곳과 강한 곳을 찾아내라고 했다.

 

이 두 가지 전략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적의 상태를 빨리 파악하는 통찰력과 나의 상태를 간파당하지 않는 요령이다. 신속하고 현란한 기동과 전술적 움직임으로 나는 감추고, 찰나의 순간에 드러나는 모습으로 적의 의도를 파악한다.

 

과거 스키타이, 거란, 튀르크, 몽골은 기병 중에 경장 기병을 아주 잘 활용했다. 경기병을 동시에 여러 곳으로 보내 적진 주변을 돌며 활을 쏘아대는 등 도발한다. 그 과정에서 적의 약한 부분, 훈련이 안 된 부대나 단결이 부족한 병력이 포진한 구역이 드러난다. 이때 상대도 자신들의 약점이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관건은 결단력과 반응 속도다. 적진의 약한 곳을 발견한 경기병대가 즉시 약속한 신호로 자기 주변으로 집결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면 사방에 흩어져 있던 기병들이 그 지점으로 신속하게 모여든다. 보병 위주인 군대는 이 광경을 보면서도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다. 속도가 느릴 뿐만 아니라, 이런 훈련을 하지 않아서 결단이 늦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병대장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 바로 이 희미한 찰나의 순간을 잡아내고 실행에 옮기는 순간적인 판단력과 결단력이다.

 

기병대장은 이길 것으로 예상될 때, 자신의 모든 병력을 이용하길 주저해서는 안 된다. 압도적인 승리를 후회 없이 거두려면 그래야만 한다.

-크세노폰(Xenophon. BC431~BC350?)

 

경기병은 즉시 공격을 가해 진형에 구멍을 내거나 적진을 휘저어 놓는다. 이 능력으로 거란은 중국을 점령하고 요나라를 세웠다. 몽골은 이 능력을 사단 단위, 전략적 규모로 확대해 세계를 정복했다.

 

 

한번 사용한 전술을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

 

한번 쓴 전술을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는 구절은 전술을 한 번만 사용하고 버려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번 효과를 보았다고 맹목적으로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손자의 지혜는 이 수준을 넘어선다. 최고의 전술은 상황과 환경, 적의 현실에 최적화된 전술이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모든 전술은 일회용일 수밖에 없다. 다음 전투에는 다시 그 상황에 최적화시켜야 한다.

 

전투가 끝나면 누구나 전술을 복기한다. 그리고 아군의 장단점, 전술의 효과, 무기의 위력을 검증한다. 이때 전투에서 드러난 장점을 본질적 장점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작고 가볍고 빠른 전투기는 기동성이 좋다. 누구나 이 전투기의 장점을 짧은 선회 반경과 기동성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말하자면 카탈로그에 기록된 장점이다. 그러면 그것은 항상 장점이 될까? 만약 전투기가 지상 목표물을 공격하거나 폭격 업무에 투입된다면 기동성과 선회 반경을 위해 포기한 두꺼운 장갑과 적재중량이 크게 아쉬울 것이다. 모든 특성은 주어진 상황 및 목적과 결부시켜 보면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복잡한 요소가 가미된다. 상성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중장보병대는 위풍당당한 지상전의 왕자였지만,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아프리카 토인 부족이 완전한 경무장으로 주변을 돌면서 투창 공격을 감행하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중장갑을 착용한 병사들은 느려서 이 벌거벗은 아프리카 원주민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방패와 갑옷으로 투창 공격을 무한정 막을 수도 없었다. 전투 장소가 열사의 사막이라면 갑옷을 달구는 태양에 이 장갑병들은 3시간도 채 버티지 못한다.

 

그런데 만약 중장갑 보병과 벌거숭이 원주민이 만난 장소가 넓은 개활지가 아니고. 주민의 목적이 동굴 신전 안에 있는 보물을 지키는 것이라면 양측의 상성은 역전된다. 이런 경우 중장보병대의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 고정 진지를 지켜야 하는 경보병부대다. 장단점뿐 아니라 상성도 지형, 전황,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바뀐다.

 

 

무한한 아이디어를 장려하는 법

 

형의 응용은 무궁무진하다.’ 다시 말해 응형무궁(應形無窮)은 아이디어가 무한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장수도 전투마다 기발한 전술을 창안해낼 수는 없다. 지휘관의 임기응변 능력은 샘솟는 아이디어나 무한한 창의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최적화 능력, 장단점과 상성을 현장에 적용하는 능력이다. 현대적 용어로 표현하면 맞춤형 전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근대 이후 기술의 발달 속도가 빨라지면서 전술의 유효기간이 줄기 시작했다. 전술은 더 복잡해졌고. 창의력이나 상황에 대한 응용력의 가치가 더욱 높아졌다. 앞으로 기술 발달과 사회 변화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더 빨라질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서 장단점을 조립할 수 있는 능력이 승부의 절대적 기준이 될 것이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인문학적 통찰도 이런 필요성에 의해 제기된 것이다. 자연적·인간적·사회적 요인을 조합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응형, 즉 전술의 무한한 창조와 운영이 가능할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작전이 많은 스포츠로는 미식축구, 농구, 야구 등이 있는데, 아무리 뛰어난 작전 코치라 해도 전술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변화를 주는 방법은 무한하다. 똑같은 작전이라도 수행하는 개인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 축구를 예로 들면 좌우 윙이 측면을 돌파한 뒤 중앙의 타깃형 스트라이커에게 크로스를 올리는 작전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스트라이커가 누구냐에 따라 부분 전술은 또 달라진다. 장신 스트라이커라면 동료들이 만들어준 빈 공간으로 뛰어들어 헤딩슛을 날릴 것이고, 세계 최고의 드리블러라면 수비수와 몸을 붙이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볼을 낚아채서 숲을 날리거나 골키퍼까지 제쳐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전술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응형은 무한하다는 말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그런데 당신의 조직은 무한한 응형을 위해 어떤 노력과 준비를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응형무궁에서 무궁함의 최종 관건은 지휘관의 천재적인 두뇌가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의 활용법이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전지전능한 사람은 없다. 조직 구성원은 대부분 한두 가지 재능만 갖고 있다. 진정으로 창의적이고 무한한 응형은 이 개인들의 능력을 적재적소에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각자의 장점을 찾아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 결과로 평가받는다. 그렇다 보니 전술의 무한한 응용이 되는 게 아니라 고정화가 진행된다. 조직의 운영 원리가 경직되면 개인의 능력도 잘 발휘되지 않는다. 구성원들은 자신에게 맞는 전술만 선호하고, 그에 따른 호평을 즐긴다. 이런 방법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지만 승리의 기쁨이 커질수록 조직은 경직되고 양형의 능력은 감소한다. 응형의 기회를 주지 않은 승리는 미래를 희생시키며 얻는 승리다.

 

손자는 적에 따라 능숙하게 대응해서 승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즉 어떤 곳에서 어떤 상대를 만나도 최적의 대용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전쟁의 신이라고 했다. 정복자는 스스로의 태생적 한계나 익숙함을 이겨낸 이들이다. 이런 사람은 상대의 한계와 단점을 찾아내는 데도 남다른 능력을 발휘한다. 적의 홈그라운드에서도 승리할 수 있고, 누구도 싸워보지 못한 땅에서도 승리하며, 어떤 상황, 어떤 적을 만나서도 최적의 전략과 전술을 개발할 수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신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다면 스스로의 경험에서 벗어나 매번 새롭게 대상을 파악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상대를 만나도 정확하고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고, 신의 능력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다.

 

 

이정의 육화진법과 모듈식 조직

 

과거에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조직의 목표였다. 현대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다 보니, 가변성과 적응력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모듈식 교육, 모듈식 조직이 화두가 되었다. 대량 생산 방식을 선도하는 자동차 산업에서 폭스바겐은 모듈식 생산 방식인 MQB(Modularer Querbaukasten, 모듈식 횡 배치 플랫폼)를 도입해서 독일 자동차 3사 중에서 압도적인 판매고를 확보했다. MQB는 비용 절감을 매력으로 내세우지만, 어디까지나 다양성과 변화를 위한 비용 절감 방식이다.

 

훈련으로 응형을 다양화하는 방법은 비용이 많이 들고, 구성원의 소화력에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 단순히 응형을 다양화하는 것이 아니라 응형하는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 원리를 적용한 전술이 이정의 육화진법이다.

 

당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공세적인 왕조였다. 제국 군대의 숙명은 제국을 둘러싼 다양한 지형 및 적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군은 원래가 병력 지향형 군대고, 농민 출신 병사는 훈련 수준이 낮다. 권역별로 상대 전력에 맛춰 전문 군대를 양성할 경우, 그 지역이 무너지면 손쓸 방법이 없다. 다양한 전술훈련을 하자니 병사들의 수준이 따라주지 않는다.

 

천재 전술가였던 이정은 대형의 다양화를 위해 모듈에 주목했다. 이것이 육화진법이다. 그전까지 대형의 기본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각형이었다. 사각형을 짜 맞추면 큰 사각형, 작은 사각형으로의 변화밖에 추구할 수 없다. 이정은 기본 대형을 삼각형으로 바꾸었다. 삼각대형은 그 자체로는 방어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압도적인 전투력을 지닌 군대의 돌파 작전 정도에나 사용했다. 이정은 삼각형을 종합하면 사각에서 원형까지 다양한 대형을 쉽게 형성할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기존의 사각대형을 두 개의 삼각형으로 나누자 병력도 절반이 되어 통솔과 훈련도 쉬워지고 병사들의 단결력도 높아졌다.

 

삼각대형으로 대응력과 가변성을 높여도 적세를 파악하고 대형에 변화를 주려면 시간이 걸린다. 이정은 위험할 정도로 장병기, 즉 궁수와 노수의 비율을 높였다. 유목 기병에 대한 파괴력을 높이려는 시도였지만, 전투 범위를 넓혀 유형의 가변력과 여유를 키우는 데도 유효했다. 장병기의 증가로 약화된 백병 능력은 노수가 사격이 끝나면 노를 버리고, 단병으로 전환하는 멀티 플레이로 해소했다.

 

이정의 육화진법은 손자병법응형무궁원리를 실현한 전술 혁신으로, 화약 병기가 나오기까지 중국군의 표준 전술이 되었다.

 

 

인용

지도 / 목차 /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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