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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의 필살기 - 녹취록 본문

연재/배움과 삶

공생의 필살기 - 녹취록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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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전주에서 500명 대상으로 했는데, 광주를 거쳐 제주에 오고 김병주 주주주주가 겹치는 거다.

어젠 동아시아 평화와 교육이란 제목의 강연이었다.

어제 불만 섞인 표정으로 불만 섞인 지적을 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리고 앞에 앉은 분들 중에 어떤 얘기를 하는지 지켜보자라는 사람도 있었다. 중간에 일어서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역시 불만 중 한 사람이 일어서 당신이 한 얘기는 무슨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다하지만 역시 여선생님들은 달랐다. 웃어주는 선생님 중에 여선생님이 많았다.

여기에 오신 분들에게 최대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여러분이 태어나서 한 번도 듣지 못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우치다쌤은 교육학자가 아닌 인문학자이고 그렇기에 인문학자가 교육을 봤을 때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유심히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몸은 자연이다

 

합기도관 제자가 300, 아이들이 100, 어른들이 200명 정도 됩니다. 여성이 빨리 합기도를 익히는 모습을 본다. 보통은 남자가 완력이나 힘이 강하기에 빨리 배울 것으로 인식되지만, 평균적으로 여자가 더 빨리 습득합니다.

합기도를 배우러 온 여성들 중에서 학교 체육을 되게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학교 체육도 못하고 스포츠도 관심 없고, 경쟁도 관심 없는 아이들인 거죠. 하지만 자기 몸엔 관심이 있다. 내가 어떤 잠재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자기 몸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몸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자연물이다. 최악의 환경 강도, 바다도, 나무도, 없는 곳에 있어도 몸은 늘 있는 자연물이다. 인간의 지성이 발동하는 것은 자연과 대면했을 때 발동한다.

아이들을 산과 같은 곳에 데려가면 처음엔 지루해하지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어떤 아이는 하늘의 구름을 본다던지, 어떤 아이는 바다의 파도를 본다던지, 어떤 아이는 꽃을 본다던지, 자기 취미에 따라 자연의 대상물을 바라본다. 기본적으로 게임을 못하게 하는 환경이 있고 자연에 방치해두는 상황이 되면 멍청하게 하늘을 구름을 본다던지 하는 행동을 한다. 그런 아이들의 표정이 갑자기 바뀐다. 그 아이들은 패턴을 발견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 법칙 성이 있지 않나 발견하는 것이다. 그 때 법칙성 같은 것을 발견할 때 가설을 세우며 웃는 것이다. 그 때 아이들의 지성이 최대화되는 순간이다.

 

 

 

여자들이 합기도를 먼저 배울 수 있는 이유, 몸을 자연물로 집중하기에

 

조건 1. 패턴이 있지는 않을까?-이런 가설이 있을 수 있다-발견을 통해 증명한다.

이게 바로 지성이 발동하는 순간이다. 무질서로 보이는 것에 대해 질서를 부여하려는 노력이다. 법칙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때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과학적 감수성은 종교적 감수성과 똑같다. 아무런 맥락도, 논리성도 없는데 신이 만든 질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종교성이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배후에 아름다운 법칙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종교적 감수성과 과학적 지성은 자연을 앞에 두고 있지 않으면 발동되지 않는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에 대해 지성이 발전한다는 것은 드물다. 조금은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없다. 앞에 무수한 사람을 보며 저 바보 같은 사람들이 왜 이리 많지?’하는 것이 도시적 지성의 발동이라 할 수 있다. 이걸 보면 사람을 우둔하게 만드는 무언각 있지 않을까?’하는 배후를 찾게 된다. 인문과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랜덤한 것에 대해 법칙을 발견하려는 것으로 그게 바로 정치학, 경제학, 심리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곳에서는 기초적인 지성이 발달되지 않으면 힘든 부분이다. 고등교육에 그런 과목들이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게 아닐까. 아이들에게서 지성이 발달되는 것은 자연과의 접촉에서다. 인공적인 환경에 갇혀 있어도 몸은 자연이기에 그나마 희망이 있다. 자기 자신의 신체를 구름이나, 산이나, 바다와 같이 볼 때 법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합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남자는 왜 합기도를 잘 배우지 못하고, 여자는 잘 배우는지에 대한 얘기다.

 

 

 

남자들은 몸을 도구로 생각한다

 

역시 여성들은 자기 자신의 몸이 자연이라 생각한다. 특히 중년 남성들은 자신의 몸을 자연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몸을 도구라 생각한다. 내 몸은 성능이 좋은 도구, 어떤 몸은 성능이 안 좋은 도구라 생각한다. 보통 남성들은 몸이 안 좋으면 운동을 해서 성능이 좋은 도구로 만들려 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기능향상을 하려 한다. 그런 사람들 보면 자기 몸에 대한 경이나 신비로움이 전혀 없다. 특히 좋은 직장 나온 사회적 지위를 지닌 사람들은 자기 몸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자기 몸이 소유물이니까. 열심히 해도 잘 안 되니까, 하소연하길 제 몸이 말을 안 듣습니다라고 한다. 자기 몸이 자기 말을 안 듣는다는 건 도착적인 생각이다.

기본적인 자연물인 몸을 만나는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과 경이이다. 자기 몸이 어떤 가능성을 보이는 것인지? 무도의 기본적인 숙달이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던 신체부위를 내가 사용할 수 있게 되었구나’, ‘나한테 이런 신체의 기능이 있었구나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애당초 내가 이런 게 가능했을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무도의 기본이다.

 

 

 

무도란 불쾌하다는 걸 인식하고 불쾌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만약에 뇌가 몸을 콘트롤할 수 있는 건 10%밖에 되지 않는다. 90% 법칙성에 기초하여 뇌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동적으로 움직인다. 그건 바로 블랙박스로 가능성의 영역이다. 어떤 메커니즘일지 호기심과 관심이 있을 때 무도가 가능하다. 자기 자신의 몸에 대한 법칙성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 그리고 어떤 것을 하면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어떤 식으로 몸을 움직일 때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전신이 동시적으로 복잡한 움직임을 보인다. 불쾌를 피할 때 인간의 몸은 정확한 반응을 보인다. 무도의 수행이라는 건 잘 모르겠지만, 뭔가 불쾌한 것이 다가올 때 어떻게 피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 능력을 운동능력이나 신체능력이라 부를 때 위화감을 느낀다. 그건 감수성이라 해야 맞다.

무도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미세한 것에 반응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불쾌감이나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바로 그런 것을 피하는 능력이 무도다. 무도는 그런 불쾌감을 피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어 있다. 자기 자신이 최소 시간으로, 최소의 에너지, 최단 거리로 피하는 것이다. 남자들이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자기 완력으로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이나 여자들은 도망가려 한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불쾌감을 피하기보다 싸우고 만다. 보통 이해하려고 했는데 이해가 안 되면 남자들은 대립하려 한다. 저 말은 틀린 게 있다고 생각하니 각만 세운다. 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은 이해는 안 되지만, 즐기면서 들으려 한다.

 

 

 

공생이란 결국 남과의 공생이 아닌 자신의 몸과의 공생

 

공생의 필살기가 바로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이다. 공생하는데 가장 가까운 게 자기 몸이다. 자기 자신의 몸과 가장 공생할 수 있을까?하는 게 가장 최우선해야 하는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가장 좋아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그를 조심, 또 한 번 무라카미 하루키, 그를 조심이라는 책을 썼다. 제가 10월마다 하는 게 무라카미 하루키 상 축하합니다. 라는 글을 쓰지만, 한 번도 된 적이 없다. 보통 9월쯤 되면 로벨상 발표에 기해 글 좀 써달라고 요청이 오는데 벌써 10년째 쓰고 있다. 특별한 이벤트처럼 하고 있는데 그 정도로 펜이다.

그는 집필가로서의 자세를 존경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난다. 12시쯤엔 마치고 음악을 듣거나 달린다. 밤이 되면 조금 술을 마시고 보통 10시에 잡니다. 그런 생활을 몇 십년 동안 계속하고 있다. 엠마누엘 칸트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사람도 생활이 엄밀하다.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산책하는 코스가 똑같다. 칸트가 지나갈 때 사람들이 시계를 맞췄다는 얘기도 있다. 왜 그 생활이 중요하냐면 창의적인 일을 할 때 중요하다.

다른 조건을 똑같이 만들어야 조그만 변화를 알 수 있다.

늘 생활이 변하면 자기 몸의 작은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길로, 똑같은 행위를 해야 작은 변화를 눈치챌 수 있다. 특히 계절이 변화, 아침에 어두웠는데 밝아졌다. 봉우리 졌던 꽃이 폈다던지 모든 조건을 똑같이 해야 작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특수경호하는 사람들은 걸을 길을 미리 걸어본다.

보통 변화는 패턴이 두 개 밖에 없다.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없어야 하는 게 있다.

변화는 그 두가지 중 하나다. 없는 게 있다면 있으면 눈에 띤다. 있어야 하는 게 없을 땐 관찰력이 필요하다. 특수경호하는 사람과 같이 우리도 우리 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저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몸의 미세한 부분에 집중할 때 창의력은 신장된다

 

저는 530분에 일어나 합기도 하고 오전 활동을 한다. 늘 집에서 있으니 좀처럼 집에서 나가지 않는 지의 전도사이다. 하지만 판에 박은 생활을 할 때 가장 크리이에티브한 일을 할 수 있다. 새로운 일이란 게 가장 작은 어렴풋한 곳에서 튀어나온다. 저 사람 걷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사라져 마지막 남은 꼬리를 잡는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획득하는 건 바로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것을 잡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장기적으로 몰두해서 연구할 경우 아카데미 하이 상태에 놓이게 된다. 보통 판에 박은 생활을 하면 논문을 아직 쓰지 않았는데도 논문을 다 쓴 후의 자기를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전체 조감도가 보저는 그런 경우가 두 번 있었고, 감동합니다.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떠오르는 것을 그냥 메모한다. 메모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 하지만 다 썼다는 느낌은 있다는 거죠. 나는 반드시 이 논문을 끝맺는다. 그런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런 상상력이나 창의력은 몸의 미세한 변화에 집중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보통 공생하자면 내가 여기 있고, 저 사람은 저기 있기에 어떤 관계를 맺어야 공생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낟 공생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인간과 신체(자연)과의 관계라 생각한다. 자그마한 변화를 감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떠올랐을 때 그걸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 자기 안엔 미지의 것이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저 작은 단서를 잡았는데, 그걸 땡기니 엄청난 것을 끌려 나오는 느낌이다. 타자와의 공생 전에 바로 자기와의 공생이 먼저다.

 

 

 

나는 수미일관한 존재가 아닌 다양한 개체가 모여사는 다세대 주택

 

최근에 중학생과 인터뷰를 했다. “보통 사람들이 자기답게 살아라라고 말을 하는데 그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우치다 쌤은 자기답다란 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물론 저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답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중학생이 생각하는 자기답게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제가 생각하는 자기답다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단 주택같은 것이다. 더러운 목조건물에 복도가 있고 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느낌이다. 조용히 사는 사람도 있고, 시끄러운 사람도 있고, 깨끗한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지 맘대로 하는 사람, 여러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내 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 트라블이 생길 수 있다. 깨끄샇ㄴ 사람과 더러운 사람 사이의 조정자도 있다. 주민 중의 한 사람은 이런 게 인연인데 사이좋게 살아야지라는 사람도 있다. 저는 자아에 대한 이미지는 그런 이미지다. 주민이 많으면 많을수록 건물의 규모가 커진다. 크면 그만큼 분분해진다. 주민들이 다양해되어 간다.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이 문제는 302호에 물어야 한다, 어떤 문제는 503호에 물어야 한다는 것이 생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생각하니 맘이 편해졌다. 난 여기 살고 있는 한 명의 주민이 아니라 아파트 전체가 나다. 보통 수미일관성을 자기답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런 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공감은 역지사지가 아닌 내 안의 약한 부분을 끌어 안을 수 있는 것

 

보통 사람들에 대해 약자에 대해 배려해야 한다’, ‘개방적이 되어야 한다’, ‘관용적이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 중엔 그의 말과 반대되는 사람들이 많다. 인간은 오픈마인드가 되어야 한다고 강제하는 사람은 오픈 마인드가 아니다.

약자에 대해 손을 내밀 수 있다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약한 부분에 대해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다. 먼저 자기 자신의 약한 부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보통 공생이라면 난 강하기에 약한 사람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공생이 아니다. 약자 사람과 공감하는 건 내 안에 그 약자와 같은 마음이 있다고 생각할 때 도와주려 생각한다. 자기기 때문이다. 타인이기 때문에 도와준다는 건 한계가 분명하다. 제가 가장 많이 듣는 건 아줌마답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21년 동안 여자 대학에 있으니 여성화가 되었다. 그렇게 여성화가 되었다는 게 저에겐 잘 된 일이라 생각한다. 아이 둘을 키운 싱글 파더였는데, 6살부터 18년까지 둘이서 같이 살았다. 보통 부녀 가정은 존재하지 않는데, 아버지는 별로 쓸모가 없잖아요. 어쩄든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의식주 해결이니 엄마가 필요하다. 특히 아버지는 생리적인 것의 해결이기에 별로 할 일이 없다. 보통 일요일이 되어 공부 잘하고 있나?’하는 게 아버지의 일이다. 6년 동안은 그렇게 했는데 이젠 엄마의 역할을 해야 했다. 표면적으로는 부자가정이지만, 실제적으론 모자가정이다. 위로 형님과 같이 지냈던 터라 모성이 있는지 몰랐는데, 젊었을 때는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이었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폭력, 공격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상냥한 엄마의 모습이 나오더라. 나한테 이런 캐릭터가 있었구나 상당히 놀랐다. 그 후 엄마 캐릭터를 찾으니 사회적인 관계가 안정되고 편해졌다. 여학생들도 상담을 하고자 하게 되엇으며 그 전엔 만나지 않을 사람을 만나게도 되었다.

 

 

 

인간의 성숙이란 내 안의 다양한 캐릭터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

 

인간적인 성숙이란 자기 안의 다양한 캐릭터를 발견하여 키워나가는 것이다. 어른이라는 것은 니 말도 맞다고 공감할 줄 아는 것이다. 나카타 코우라는 이슬람 율법학자가 있다. 일본인 무슬림으로 아주 독특한 케이스다. 이슬람에서 택시 운전사가 물을 마시면, ‘너도 마실래라고 쳐다본 사람에게 권하게 되어 있다. 그게 박애적이라기보단 이슬람 세계에선 상식이다. 이슬람은 힘든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의 공동점이 미망인이나 힘든 사람들이 당신 집에 찾아오면 그들을 대접해주라는 게 일신교의 공통점이다. 말도 안 통하는 사람이고,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사람인데 여러 분 집에 문을 두드렸을 때 환대하라. 특히 중동 같이 생활이 힘든 곳에서는 굶주리고 문을 두드리고, 목이 마를 때 남의 집 문을 두드릴 확률이 높다. 예외적으로 박애주의자만 문을 열어주는 사회면 힘든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없다. 또한 자기도 언젠가 헤맬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라크, 시리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리얼리키는 내가 언젠가 난민이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런 환경이기에 문이 반드시 열릴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공생을 생각할 때 물건이 많기에, 박애주의자기에 공생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다, 타자와 공생해야 한다는 기본 조건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보통 다문화주의와 공생해야 한다고 말들 한다.

 

 

 

공생을 위한 능력은 키워지는 게 아닌, 자연스런 인간의 본성이다

 

저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상당한 노력을 해야만 예외적인 사람만이 공생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난민을 잘 보살펴야 한다’, ‘따뜻하게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사람 중에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비관용적이 이야기를 많이 한다.

타자와의 공생은 쉬운 일이다라고 생각의 기조를 바꾸는 것이다. 지금도 당신들은 생각도 안 맞는 사람들과 살고 있지 않느냐. 그걸 넓혀가면 되는 거 아닌가. 일본의 난민 문제도 정치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너무 진지하게 하여 예외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상황이다. 그런 접근 자체가 역할 기르기’ ‘교사 역량 기르기처럼 기준을 높게 두니 더 힘들게만 느껴진다.

필요한 일 결혼, 부모가 되는 것, 가르치는 것, 이해도 공감도 되지 않는 사람하고 공생하는 것.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집단이 살 수 없잖아요. 부부가 될 때 남편이 되기 위해 이런 조건이 있다고 정해놓으면 누가 부부가 되겠나. 조건을 올리면 올릴수록 하지 않으려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어린 동포를 성숙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려면 모든 자원을 풀가동시켜야 한다. 누구든지 교사가 되어야만 이 사회가 유지된다. 무인도 이야기, 그 아이들은 15살 아이가 학교를 만들어 8살인 아이들을 가르친다. 가르칠 정도의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한 가지 학교가 없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이 아이들을 그냥 놀게만 뒀다면 멸망한다. 공동체 존속을 위해서 학교가 없어선 안 된다. ‘15소년 표류기지금의 교원자격을 그런 환경에 적용하면 안 되겠죠. 집단이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추모종교, 의료, 재판, 교욕이 필요하다.

 

 

 

교육은 공생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인류의 방법

 

난민 캠프에 가면 생활이 안정되면 먼저 하는 게 있다.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것 가장 최우선적인 과제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추모를 하고 기원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게 치료이다. 병에 걸린 조금이라도 기술을 가진 사람이 치료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술꾼이라 하더라도 소독약으로 소주를 쓰는데 난 술꾼이라 안 된다고 하는 경우는 업다. 이게 바로 인류학적 지혜이고 공생이다. 그 다음이 재판이다. 그 다음이 바로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이건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르친다.

인류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누군가 할 수 있는 일이어야만 한다. 가장 중요한 일이기에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어야만 한다. 집단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기에 경쟁이랑은 다르다. 가치관도 미의식도, 종교관도, 선악관도 다른 집단이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함께 살아가느냐가 공생의 길이라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있지 않으면 집단 같으면 싸움이, 개인간엔 다툼이 일어난다. 어렸을 때 갖춰야 하는 것은 가치관과 언어와 종교가 다른 개인과 만났을 때, 다른 집단과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느냐를 가르치는 것이다

 

 

 

학교가 할 일과 더 이상 하지 않는 일

 

근데 안타깝게도 한국, 일본, 어느 나라든 공생의 방법에 대해 어느 쪽도 가르치고 있지 않다. 어른들도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배울 기회가 없고 어른들도 이걸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답게 사는 것, 개인에 집중하게 하는 것만을 가르치려 한다. 인간이 자기 맘에 대해 아파하는 사람들이 공통점이 있는데, 피해의식, 자존심만이 있는 것이다. 지금 아이들이 보면 하나에 집착하고 집중하는 모습만 보인다. 내 것을 빼앗겼다는 피해의식, 사회 전체가 정신병자로 만들고 있다. 가장 위에 오는 게 집착이고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이다. 그런 집착에 사회적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둔다. 그런 집착에 집중하게 하면 아이들의 소비활동을 촉진시킨다. 그런 사람들은 사채를 빌려서도 물건을 산다.

그냥 옷 한 벌 입고 살면 되죠라는 사람들만 있으면 자본주의는 망한다. 자기에 대한 집착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자본주의를 망하게 한다. 어떤 차, 어떤 옷, 어떤 집에 사는지가 프라이드와 관련되어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한 집착이 자기가 어던 인간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 축소시키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아주 아름다운 아파트에 혼자 살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좋은 음식을 먹는 그런 자아를 추구한다. 그렇게 사는 게 가장 멋지게 사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사회가 주입시킨다.

 

 

 

그렇기에 더더욱 학교에서 할 일

 

가장 기본적인 단추를 잘못 퀘는 무엇이냐면 자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어떻게 디자인하느냐를 잘못하는 거죠. 제일 먼저 가르쳐야 할 게 여러분들은 다양한 것들과 혼재하고 있단다라는 것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대립되는 부분들이 혼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비겁한 부분도 용기있는 부분도, 착한 부분도 악한 부분도, 그게 바로 인간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원래 개성이라는 건 수미일관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개성이라는 것은 자아의 깊은 점, 넓은 점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나는 이런 패션 아니면 안되, 이런 가방을 메어야 해 라는 걸 개성이라느 생각하는데 그건 전형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개성은 니도 모르는 깊음, 풍부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다양한 감성을 느끼고, 다양한 사람들과 지낸 아이들이 공생의 감각을 키운다. 제가 들려 드리는 사회적인 상식에 위반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용

후기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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