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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 13. 질의응답 본문

연재/배움과 삶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 13. 질의응답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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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질의응답

 

 

개성을 말살시키는 일본의 중등교육에 대해

 

Q

지금 일본에서 교육과 관련하여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일본의 경우 중등교육이 문제가 있습니다. 초등학교는 느슨한 편이고, 대학은 더 느슨한 편이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문제입니다. 교과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압력을 자꾸 주는 모양새입니다. 사춘기에 있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며 교육을 받다보면 스스로의 가치를 파괴당하게 됩니다. ‘집단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둘까?’집단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를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집단과 동화할 것인지, 떠날 것인지 양자택일만 강요받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양자택일을 강요받다 보니, 집단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개성이라 착각하게 됩니다. ‘너희들과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는 것을 개성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개성이 결코 아닙니다. 언제든 집단을 참고 대상으로 삼으며, 내적 자발성에 의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집단과 멀어진 나는 이상한 사람인가?’를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이런 식으로 개성은 완벽하게 파괴당하는 환경인 셈입니다.

그러하다 보니 진짜 창의적인 아이들은 부적응자가 되고, 그 외에 집단과 동화하지 않겠다고 정한 아이들은 전형적인 불량 청소년(사회적인 틀에 맞춘)이 됩니다.

그제 중학생들이 찾아와 저를 인터뷰할 때, “일본의 중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고, 저는 일본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일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가장 감수성이 민감하여 그 감수성을 신장시킬 수 있을 때, 오히려 감수성을 무디게 하는 방향으로 교육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일본 교사들은 이런 교육의 폐해에 대해 거의 자각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봅시다. 초등교사들의 경우 여러 가지 목소리(발성법)를 내고, 여러 표정을 지으며 다채로운 감성을 표현하고 받아줍니다. 대학의 교수들도 여러 목소리를 내어 강연을 생동감 있게 진행합니다. 하지만 중등교사들은 하나 같이 똑같은 목소리를 냅니다. 동작은 경직되어 있으며, 한층 까칠한 표정으로 하나의 목소리(악을 지르는 듯한, 지적하는 듯한)만 냅니다. 그런데도 중등교사들은 자신이 그런 하나의 목소리를 통해 학생이 지닌 개성을 파괴시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기에 고등교육은 괜찮지만, 중등교육은 좀 다른 방향으로 교육 받았으면 합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청소년 시기는 중요한 시기이니 차라리 그 때 개성을 무너뜨리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경우 대학 졸업을 어렵게 하여 성년 초기에 동화시키지만, 일본의 경우 청소년시기에 동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운이 좋은 아이는 동화되는 것을 피해 다닌 아이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중등학교는 과할 정도로 동화되도록 가르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기에 교사들은 아이들을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가치에 묶어두려 하지 않나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 학교는 공부를 통해 학생들을 현재의 가치에 묶어두려 한다. 

 

 

 

평화를 위해 교육자들이 할 수 있는 일

 

Q

오늘 주제가 동아시아평화와 교육인데 여기 계신 선생님과 대한민국 교육자들에게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들려줬으면 합니다.

 

A

평시에 익숙해 있으면 비상시의 문제에는 둔감해집니다. 평화는 상태가 아닌 운동의 상태 그 자체이기에 위험을 피하는 행동이 평화를 지키는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평화주의자입니다라는 말만 해서는 평화주의자가 되지 못합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에 맞도록 행동하고 고민하는 게 중요합니다(비상시의 교육에 대해선 본 강연 후기 참고).

 

 

우치다쌤이 보여준 이 한 장의 사진에 기성세대는 젊은 이들을 밑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우치다식, 위기대처법

 

Q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이란 주제를 교수님이 정한 것인가?

 

박동섭

아닙니다. 연구사님이 정해준 것입니다.

 

Q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아이들을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는 위기상황을 기본 전제로 말씀해주셨는데, 저는 오늘 강연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아이들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건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건지, 오감을 열게 하여 오픈 마인드를 갖도록 하는 게 평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 건지, 일차산업에 종사하도록 아이들을 교육시켜 강대국으로부터의 식량주권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A

(한 마디로 답변하시길) 저도 죄송합니다.

 

 

저 질문을 들었을 때, 우치다쌤은 어떤 답변을 하실지 궁금했다. 그 때 나온 완벽한 한 마디가 바로 'すいませんでした'. 

 

 

 

독서란 나와 다른 사고방식, 생활방식을 지닌 사람의 방식을 차용하는 것

 

Q

선생님의 사회를 보는 방식이나 관점에 대해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평소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A

책은 맘대로 선택하기에 특별히 선호하는 책은 없습니다. 오늘 하시모토 오사무의 노인론이란 책을 비행기에서 읽으며 왔고. 그 전엔 이시하라 칸지로의 평전을 읽었습니다.

기본적인 독서 습관은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면 어떻게 보일까?’를 상상하며 읽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거리상으로 먼 거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역사상으로는 고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또한 저를 가장 두근거리게 하는 것은 사고방식보다 그 사람이 오감으로 느끼는 방식을 간접 경험할 때입니다.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책을 많이 번역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중등교육을, 프랑스에서 대학교육을 받았고 프랑스에서 유대인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번역한 책의 내용은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 당시의 혼란과 그 혼란을 수습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나와 레비나스 사이엔 공통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평화적인 일본의 분위기에서 태어나 자랐던 나와, 홀로코스트를 몸소 겪은 유대인인 레비나스와는 전혀 공통점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번역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레비나스와 나 사이에 회로가 열리며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레비나스가 느끼는 것에 그대로 공감하는 순간이 오게 되었고 그의 호흡이나 리듬감을 그대로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저자의 세계관을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역사를 중시하는 자세

 

Q

대한민국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떤 견해이신가요?

 

A

절대 국정교과서처럼 하나로 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그런 중대한 결정을 국가가 독단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국민의 역사관을 통일하는 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엔 13천 만명의 관점이 있는데 그걸 모두 하나로 통일한다는 건 말도 되지 않습니다. 가장 합리적은 것은 이런 내용도 있구나, 저런 내용도 있구나 비교해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국정교과서화가 되면 선택을 할 수 없게 되니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여러 역사교과서가 있어 다양한 관점으로 비교해볼 수 있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역사에 대해 풍부한 상식들을 가질 수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일에 대해 모두가 똑같은 말만 한다면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정화교과서는 학교가 '이념 전파 기관'임을 천명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근현대사 교육을 기피하는 일본의 풍토

 

Q

일본에선 역사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나요?

 

A

일본에선 역사 교육이 별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근현대사는 거의 가르치지 않습니다. 야요이 시대부터 시작하여 수업을 하다 보면 1차 세계대전 즈음에서 끝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건 교사들이 근현대사를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근현대사를 가르치려 하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역사적인 관점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럴 경우 학부모나 학생들의 클레임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 복잡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교사 스스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근현대사를 거의 배우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모릅니다.

 

 

 오사카 시장의 위안부 망언에 대해 문제 없다는 답변이 7456표나 나왔다. 일본의 이런 모습을 한국정부는 부러워하나 보다

 

 

 

우치다쌤이 존경하는 분은?

 

Q

일본이란 나라에서 우치다쌤이 스승으로 여길만한 살아 있는 분이 있습니까?

 

A

보통 제가 존경하는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셨습니다(65).

츠루미 신슈스케, 시바 료타로, 미야자키 하야오(유일하게 살아계심)를 존경하는데 그 분들은 나보다 5~10살 정도 많은 사람들입니다. 제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로써 우치다쌤의 '동아시아 평화와 교육'이란 주제의 후기를 마친다. 다음엔 '공생의 필살기' 후기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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