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여름에 눈덩이를 굴리겠다고?
때는 바야흐로 2015년 8월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이었다. 얼마나 더우면 개도 땅바닥과 합체하여 세상에 대한 관심을 거둔 지 오래고, 나 또한 방학의 무료함에 장판과 일체가 된 지 오래였던 그 때, 섬쌤은 ‘한 여름에 눈덩이를 굴리겠다’는 화끈하고도 야릇한 발상(?)을 전해주었다. 당연히 귀 쫑긋, 눈엔 힘 팍팍 들어갈 수밖에. 아마도 한 여름의 무더위로 무생물처럼 더위와 동화되어 있던 때라, 그런 제안은 오랜만에 내가 생물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할 정도로 짜릿했다.
▲ 더운 여름에 눈을 굴려보겠다는 제안. 아싸라비용~
한 여름의 밀짚모자, 꼬마 눈덩이 프로젝트
섬쌤은 ‘민들레 읽기 모임’에서 몇 번 본 것 외에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 얼핏 알기로는 목포에서 초등학교 선생님하다가 교원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하지만 현실에선 모르는 사람이어도 페이스북에선 나름 북유럽 여행기를 읽다보니, ‘친한 듯, 친하지 않은, 친한 너’라고 할 수 있는 복잡미묘한 관계였다. 그런데 선뜻 ‘눈덩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이다.
솔직히 누군가에게 갑자기 “우리 뭐 해봅시다”라는 제안을 들으면, 거부감이 들어 후다닥 도망갈 것이다. 왜냐면, 무언가를 하자는 건 단순히 뜻만 있어선 되지 않고 열정도 필요하고 추진할 수 있는 의사도 필요하니 말이다. 목적이 뚜렷한 일일수록 초반에 모이는 힘이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열정은 클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옥신각신하며 좌초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담스러운 일엔 짐짓 당황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다듬은 후에 “전 돈이 필요해서 교사하고 있지, 교육에 대해 관심 없어요.”라고 말하면 ‘끝!’.
하지만 섬쌤의 ‘눈덩이 프로젝트’는 그와 같은 부담감이 전혀 없었다. 왠지 제안을 듣는 순간 ‘재밌는 거 하나 생겼다. 꺄오~’라는 외침이 절로 나왔다. 세상의 일이란 게 부담감으로 시작되는 일들도 있겠지만, ‘징한 놈의 이 세상, 한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이란 마인드로 시작되는 일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건 클리나멘clinamen이다. 직선으로 떨어지기만 하던 원자가 아주 미세한 차이로 비스듬히 떨어지게 되면서 옆에 있던 원자와 부딪히고, 그 원자는 또 옆의 원자와 부딪히며 우연히 우주가 형성되었다는 이야기다. 우주라는 게 어떤 거대담론에 의해 탄생한 것이 아닌 우연에 의해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면, 우리의 프로젝트도 거대담론이 아닌 미시담론으로, 구호가 아닌 삶으로 구현해 내면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눈덩이 프로젝트’는 꼬마 눈덩이들이 만들어져 그게 어느 접점에서 합쳐지기도 흩어지기도 하며 굴러갈 것이다.
▲ 늦은 저녁이지만 용산으로 모두 모두 모여라.
모여라, 그러면 어떤 이야기든 흘러 나온다
‘눈덩이 프로젝트’ 모임이라곤 할 수 없지만, 섬쌤이 한국에 오던 8월 26일에 번개 모임이 만들어졌고 그 자리에 나도 참석하게 되었다. 워낙 계획대로 살아온 인간인지라 갑작스런 모임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런 ‘뜬금없음’을 사랑한다. 생각해보면 날 키운 건 ‘8할이 우연’이었다. 계획은 세우지만, 계획은 수시로 어그러졌고 그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며 여기까지 왔으니 말이다.
모두 8명이 모였다. 나를 포함한 2명은 대안학교(고양 자유학교) 교사, 5명은 초등학교 교사, 1명은 학부모였다. 이 조합 은근히 맘에 든다. 여기에 학생까지 함께 한다면 완전 ‘치킨 & 맥주’의 환상 조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시 40분쯤 용산역에 도착하여 식당을 둘러보고, 돈가스집에 자리를 잡았다.
과연 우린 어떤 얘기를 나눴을까?
▲ 뜬금없어서 더욱 재밌는 이야기.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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