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교육의 논리를 넘어 교사들끼리 한바탕 수다떨기
돈가스집엔 사람들이 가득 차서 시끄럽기에 8명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과만 이야기를 나눴다. 이 때 섬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 얘기 중 가장 놀라웠던 것 “북유럽의 선생님들이라 해서 한국과 다르지 않아요. 어찌 보면 수업방식이나 태도는 거의 똑같다고도 할 수 있죠. 그런데도 사회적으로 미묘하게 다른 것들이 있다 보니, 그게 차이를 만드는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였다.
▲ 우린 이야기를 하며 어떤 눈덩이를 굴렸을까?
교육은 교육의 논리로,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그러면서 “북유럽에선 인건비가 가장 비싸다 보니 사람을 통해 하는 일들이 가장 돈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되도록 외식을 하지 않고, 밤이 되면 거의 불이 꺼져서 바로 잠을 자는 분위기예요”라고 덧붙인다. 그 말인즉, 어찌 보면 북유럽엔 사람에 대한 가치를 그만큼 인정하는 사회이며 ‘돈이면 사람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다’는 생각과는 거리가 먼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한국과 정반대다. 한국에선 가장 싼 게 사람을 부리는 비용이니 말이다. 그러니 24시간 편의점을 운영할 수도 있고, ‘총알배송’이라며 속도경쟁을 펼치게 할 수도 있으며 문자 한 통으로 해고통지를 할 수도 있다. 왜냐 하면 일할 사람은 널려 있고, 그만큼 사람보단 돈이 더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사람 경시’, ‘물질만능’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이야기한들, ‘최저인금의 현실화’를 이야기한들 빈 구호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랬기에 섬쌤은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우리도 북유럽처럼 불편해질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해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교육은 사회를 비추는 프리즘이다. 사회의 모순이 교육의 모순으로, 교육의 방향이 사회의 방향으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흘러가고 있다.
▲ 최저임금이란 어찌 보면 '그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인 셈이다.
눈덩이 굴릴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초반엔 학부모님이 이야기를 거의 주도했다. 지금 교육부 앞에서 ‘한자병기 반대’ 집회를 하고 있으며, 아이들에겐 ‘최대한 자유를 존중해주는 선에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신 것이다. 학부모로서 사회운동가로서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무언가 하려 하는 자세가 남달라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스토리가 많은 분이라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시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던 부분은 아쉬웠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처음 보는 사람들이기에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그걸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비꽃님이 말한 ‘모모’가 된다는 게 그 순간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 왜 지금 이 시점에 병기 문제가 불거진 걸까? 난 그 내막이 궁금하다. 지금껏 병기를 안 해도 됐던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해야 한다며 여론 조성하는 이유는 뭘까?
학부모님이 가시고 난 후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 때 섬쌤의 이야기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는데, 다른 무엇보다 ‘큰일을 한다는 사명감’이나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자부심’ 같은 게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사명감이나 자부심은 어찌 보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은 될지 모르지만, 그런 마음이 강한 만큼 사람을 한 없이 무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처음의 말랑말랑한,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상력이 어느 순간엔 굳어져 하나의 도그마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눈덩이 프로젝트’는 ‘눈덩이’라기보다 ‘돌멩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이다. 섬쌤은 이번 번팅처럼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게 하고 그 가운데 어떤 식으로든 공명하거나 꿈틀거리는 게 있으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주의였다. 그게 맘에 들었다.
▲ '세월호 사건'은 '인성교육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진단을 내렸고 그에 따라 '인성교육진흥법'이 발의되고 각 학교엔 인성교육을 중시하게 되었다.
과연 '세월호'가 인성교육의 부재로 일어난 것일까? 서술이 잘못되니 처방이 잘못될 수밖에 없다. 교육이 사회와 얼마나 밀접한지 보여주는 예다.
衆口鑠金 - 함께 떠들면 쇠마저 녹일 수 있다
아무래도 첫 모임이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순 없었다. 이 때 첨예하게 대립된 이야기는 ‘목표를 정하는 게 왜 문제가 되나?’라는 거였다.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단재학교를 설명하며 “어떤 목표를 정하지 않고 개인의 역량에 따라 진행하고 있어요. 그리고 교사는 최대한 그 상황에서 뒤로 물러서 지켜보려 노력하죠”라고 말했더니, 그에 대해 다른 선생님께서 그런 질문을 던져주신 것이다. 그런 생각이 정리되기까지 8월에 떠난 자전거 여행이 한 몫 했지만, 그런 과정을 모르니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섬쌤은 “학교에서 학기 당 일괄적으로 정해놓은 목표, 성취가 잘못된 것이며, 그에 따라 당연한 듯 평가해야만 하는 시스템이 문제라는 거예요”라는 말로 그 이유를 명확히 해주셨고, 나도 “개인마다 능력이나 성취기준이 다르기에, 목표를 없앤다는 말이 아니라 개인에 따라 목표를 정하고 그에 따라 교육한다”고 말을 정리했다.
섬쌤은 한국에 귀국하여 낮잠을 잠시 잔 상태에서 나왔기에 시차 적응으로 컨디션이 정상일 수 없었고, 시간도 이미 늦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런 식으로 모여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는 길엔 풍납초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이 왕십리 근처에 산다고 하여 함께 올 수 있었다. 선생님도 섬쌤을 만난 적은 없는데, 이번에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막상 만나서 얘기 들어보니 더욱 좋았어요”라고 이야기를 하더라. 나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눈덩이프로젝트’라는 배치
2011년에 <수유+너머>에 왔을 때도 배치에 대해 생각했고 이번 모임을 통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떤 무리에 내가 있느냐, 그리고 거기서 날 어떤 존재로 규정되느냐가 결국 ‘나’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같은 경우, 또는 저번 민들레 모임 같은 경우 그 상황들은 배치로서 작용한다. 그런 자리에선 내가 대안교육을 대변하는 사람이기도 하며, 어떤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배치가 나를 만들고, 나도 그 배치 하에선 그렇게 행동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거친 생각들이지만,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눈덩이’는 그렇게 조그마하게 뭉쳐지기 시작했다. 단지 그 뿐이다!
▲ 지식채널E의 '공부 못하는 나라', 독일이 대단하다고, 독일교육이 낫다고 생각하지 말자. 교육에 대한 논의는 결국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논의이니 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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