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교사는 전문가여야만 할까?
또 달랐던 부분이 있다. 2013년 당시엔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가 현장을 지도했다. 나는 영화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제작에 대해서도 기초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늘 ‘전문가의 좀 더 체계적인 도움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고민했었다.
▲ 광진청소년수련관과의 인연으로 아웃리치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배움은 바로 이런 곳에서도 이루어진다.
교육 전문가란 따로 있다?
아무래도 나의 부족한 부분이 도드라져 보였고, 그게 아이들에겐 ‘좀 더 체계적인 교육에 대한 갈급함이 있지 않을까’라는 부분이 미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가 지도하는 ‘영화 만들기 수업’은 영화팀 아이들에게 그런 갈급함을 채워주는 기회임과 동시에,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경험을 통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광진청소년센터의 푸쌤은 영화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을 모아 영화를 찍고 상영회를 해본 경험이 있는 게 전부일 정도로, 비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비전문가 선생님이 영화의 영자도 모르는 ‘단재학교 영화팀(왠지 이름이 아이러니하지만)’을 데리고 영화를 찍는다고 한 것이다. 과연 잘 되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푸쌤은 아이들과 함께 영화 두 편을 만들었고 쌤과 아이들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 12월 12일에 있었던 상영회에서. 멋진 영화팀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지켜봐 주신 푸쌤 모두의 축제의 장.
교사는 비전문가여야 한다
2013년엔 많은 학생들을 데리고 2팀으로 나누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수업 시간으로 배정된 시간은 적었고 영화를 만들어야 할 시간은 촉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시나리오를 짜고 찍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더욱이 선생님은 전문가이기에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 촬영 계획에 허점이 보였고, 그걸 하나하나 알려주다 보니 선생님의 입김이 전면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불만이 높아지며, 흥미를 급속도로 잃어갔다.
하지만 이번엔 선생님이 비전문가이기에 최대한 아이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고, 아이들의 상황을 고려하며 진행하였다. 간혹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그게 어느 정도 받아 들일만 하면 개입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되게 놔두었다. 그랬기에 아이들은 전면에 나서서 활동을 하게 되었고 고군분투를 하며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지지부진하고, 뭔가 대충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그랬더니 글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상영회 날짜가 다가옴에도 영화가 완성되지 못하자, 영화팀 아이들은 “푸쌤에게 정말 미안하네요. 계속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예요.”라는 말을 스스로 하기에 이르렀다. 푸쌤이 대놓고 혼내거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 않았을 텐데도, (오히려 그렇게 안 했기에) 아이들은 그런 마음을 먼저 알고 반성을 했던 것이다.
이런 두 가지 다른 상황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전문가만이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라는 거였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건 별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었던 것이다.
알기에 가르칠 수 있다면 똑똑한 부모 밑에서 어리석은 자식은 나올 수 없으며, 교육 전문가의 자식들은 모두 인성 지성이 완벽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주지교과主知敎科와 같은 ‘고정된 지식을 전수해주는 상황’에서나 가능하지, 다양한 변수가 있고 진리를 하나로 고정할 수 없는 현실에선 절대 불가능하다. 위의 예에서처럼 영화를 만드는 일은 다양한 변수, 다양한 관점을 포용해 가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렇기에 하나의 완벽한 결론으로 상황과 관점을 귀결시킬 때, 오히려 갈등과 혼란만을 부추길 뿐이다. 그런 부분에서 오히려 다양한 의사를 들을 수 있고, 그 부분들을 절충할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적임자라고도 할 수 있다.
▲ 영화 두 편을 완성하고 보무 당당하게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관계는 더 깊어졌다.
교사는 반보 앞서 가는 존재가 아닌, 반보 뒤에서 따라가는 존재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두 가지 장면이 있다. 단재학교에서 영화와 연극으로 프로젝트팀을 구성하던 2012년도에 준규쌤이 해준 말은 충격을 넘어 하나의 화두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건 바로 ‘교사가 모르는 분야를 수업해야 한다’는 거였다. 자신이 전문가라 생각하면 학생의 앞에 서서 이끌어주려 하고, 궁금해 하지도 않는데 알려주려 하기에, 오히려 모르는 분야를 학생과 함께 하나하나 배워 나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솔선수범하는 교사, 어찌 보면 그게 더 비교육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 2011년 10월에 아이들과 보길로 여행을 가며, 이때는 초임교사였고 뭐가 뭔지 몰라 헤매야 했다.
이와 비슷한 일화를 어느 학부모와의 대화 중에 들은 적이 있다. 아이가 어느 날 “엄마 나 심리학에 관련된 책을 읽고 싶어”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말에 엄마는 ‘드디어 때가 왔다’는 생각이 스쳤을 것이고, ‘쇳물도 단 김에’라는 속담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사서 아이에게 내밀었다고 한다. 엄마의 지극정성에 감동한 아이는 ‘환골탈태하여 수재로 거듭났다’는 식의 뻔한 스토리는 현실에선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가 내미는 책을 보며 ‘허걱!’ 놀라며, 더 이상 심리학책을 가까이 하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엄마는 아이의 열정적인 마음을 읽고 서점에 달려가 심리학 관련 책을 1권도, 2권도 아닌 여러 권을 한꺼번에 사서 아이에게 키다리 아저씨 같은 포즈로 내밀었기 때문이다.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 중에 ‘교사는 학생보다 한 걸음 앞서 가선 안 되며, 반보만 앞서 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말도 바뀔 필요가 있다. 교사는 학생보다 뒤처져도 상관없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학생이 교사를 이끄는 상황이더라도, 교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면, 그 속에서 배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 8월에 영화팀 아이들과 1박 2일로 북한강 라이딩을 갔었다. 그 때도 느껴지는 건 얼마나 지켜보며 앞서가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느냐였다.
이번에 푸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며, 배움에 대해 기존의 관념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힘들면서도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광진청소년수련관이라는 선분과 단재학교라는 선분이 약간의 어긋남으로 마주쳤다. 우연이 빚어낸 마주침은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고, 새로운 영화 두 편을 탄생시켰으며, 함께 무언가 고민할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 동지를 만들었다. 아래에 소개하는 영화는 바로 이러한 인연이 만든 작품이고 배움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자극하는 만남이 빚어낸 영상이다. 그 작품을 여기에 소개하며, 2015년의 인연론을 정리한다.
▲ 열심히 영화를 찍는 아이들. 그 작품이 이제 모두에게 공개된다.
김민석 감독의 영화, 『Game Over』
오현세 감독의 영화, 『FakeBook!』
제작진과의 대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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