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무엇에 쫓기며 살아왔나?
틀에 갇혀 살았다. 그 누구의 이목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솔직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 따위엔 나약한 내 자신만 있었을 뿐이다. 그 이목을 벗어나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는 게 두려웠던 것이고 그 틀에 맞춰 살아야 그나마 편하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자신의 나약함에 벌벌 떨며 그것에 쫓기어 왔던 것일 뿐이다.
틀만을 고집하다
애초에 무얼 해보려 하지도 않았던 무력감에 절어 있는 영혼이 있다. 태반(胎盤)의 포근함에 보호받고자 했던 여리디 여린 영혼 말이다. 가슴 속 깊이 답답함이 몸서리친다. 무에 답답했던 걸까? 예전엔 그게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무언가 정해진 게 없기 때문이라고 단정 지었었다. 즉, 임용에만 합격한다면 지금의 이런 답답함쯤은 가실 거라고 말이다. 순진하면서도 참으로 유아스러운 발상이었다. 물론 임용에 합격해보지 않았으니 정말로 답답함이 없어질진 모르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솔직히 그런 생각엔 회의적이다. 거기엔 틀이라는 것만 있지 나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제든 여전히 불안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타개책
이런 현실을 알았기 때문에 타개할 방법으로 마련한 것이 도보여행을 하자는 거다. 뭔가 획기적인 기획이며 계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겐 이만한 선물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길거리로 나설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렇기에 도보여행 중 획기적인 만남이나 계기를 마주치지 못한다 해도 그 자체로 좋기만 하다. 삶이란 애초에 그런 거겠지. 단지 지금은 이것저것에 치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있다. 그저 나 혼자만 생각하면 되니 말이다.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는 것도, 특단의 결정의 내려야 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길 위에 내가 있고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갈 뿐이다.
도드라짐의 긍정
그간 무언가에 쫓기며 살아왔던 나는 어느새 스스로를 생각하며 살아가도 될 때가 되었고 당당히 인생에 맞설 때가 되었다. 조작을 하는 사람은 어느 한 곳이 도드라져 보이는 곳을 찾아 그걸 깎아내 완성품을 만든다. 도드라짐은 개성의 발견이며 그것은 전체의 조화를 깨는 부분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달리 생각해보면 단일한 완성품이라는 환상만 벗을 수 있다면 오히려 독특한 모습일 것이다. 바로 그와 같이 얽매임이나 획일화에서 벗어나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누가 누굴 위해 사는 것도, 어찌 보면 각자의 양을 추구하며 사는 게 전부인 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답답증에 몸서리치던 날, 난 오히려 자유를 꿈꾼다. 그 자유는 나란 개체를 통해 표현되고 이와 같은 글을 통해 드러날 테다. 하고 싶은 열정으로 세상과 단단히 맞서며 더 이상 주눅 들진 말자. (14:42)
▲ 2009년 12월 4일 임용 1차 발표 낙방 후 무작정 변산에 가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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