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악산 가려다 덕진공원에 가다
▲ 봄따라 맘따라 길을 나서다.
여느 흔한 날처럼 7시 50분쯤 올라와 55번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특별히 『연암을 읽다』란 책의 원문까지 인쇄하여 왔으니, 기분도 새롭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어린다. 그래서 『논어』를 펴고 ‘四勿箴’을 읽고 써보는 것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해보려 했다. 한참(그래봐야 제대로 공부한 건 30분도 채 되지 않는다) 읽다가 창문을 쳐다보니 최근엔 미세먼지와 안개로 거의 실루엣도 보이지 않던 모악산이 오늘은 선명하진 않아도 실루엣은 보이던 날이더라. 그래서 ‘모처럼 모악산의 자태를 보니 기분 좋다’고 단순히 생각하고 다시 공부하려던 찰나.
▲ 모악산이 오랜만에 자태를 드러냈다. 저 자태를 보는 것만으로 맘이 떨려온다.
모악산을 그토록 그리워했으면서도 모악산에 갈 생각은 안 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웅성대며 요동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건 어느덧 임고반에 자리 잡은 지 보름 정도가 되었고 꿈만 같던 이 순간이 익숙한 일상처럼 느껴지게 됐다는 점이다. 그러니 늘 공부가 하고 싶다, 책상에 앉아 다른 것 신경 쓰지 않고 공부에만 몰두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 어느 날은 버틸 수 없는 천형天刑처럼 무겁게, 압박처럼 힘겹게 느껴지게 된 것이다.
▲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이 자리에 얼마나 앉아 맘껏 공부를 하고 싶었던가. 하지만 모처럼 공부를 하니 힘들긴 하더라. 간사한 마음이여~
그리고 단재학교에 있을 땐 때에 따라 한 달에 한 번씩 트래킹으로 했기에 자주 나갔었다. 그런데 꽃이 피어 봄이 왔어도, 꽃이 지어 가을이 왔어도 당연히 보는 것이니 오히려 아무런 감흥을 느껴지지 않더라. 그런데 지금처럼 막상 공부를 맹렬히 해야 하기에 여행도 자제해야 할 때가 되니 멀찍이 꽃이 폈음을 봄에도 오히려 봄이 왔음이 온 몸으로 느껴지며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한다. 역시 뭐든 누릴 땐 모르지만, 오히려 제한되고 나면 더 절실해지고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왔을 때 그저 서울역 근처를 걷는 것만으로도 자유의 향기를 만끽했던 경험처럼 말이다.
그래서 불현듯 ‘전주에 왔는데 그간 한 번도 모악산에 갈 생각조차 안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가야겠단 생각이 들어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무작정 짐을 챙겨서 나왔다.
▲ 1월에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에 갔다 오는 길에 비행기는 모악산 위를 지나고 있다. 그리고 전주의 모습이 보인다.
갑작스런 여행에 따라 여러 변수들이 생기다
근데 전혀 예상에 없던 거라 핸드폰 배터리가 40%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지금 핸드폰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반나절은 버틸 수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불안해하며 산을 타긴 싫어 충전잭에 끼워놓고 도서관에 가서 내일 읽을 책도 빌려오고, 지원서를 넣을 곳도 찾아봤다. 학교에선 10시 30분 정도에 나왔음에도 그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벌써 11시 30분이더라.
어차피 올 때도 165번 버스를 타고 와야 하기에 겸사겸사 마트에서 장도 볼 겸 자전거를 타고 롯데마트 앞으로 갔다. 165번은 올 때까지 10분 정도나 남았다고 한다. 예전엔 전주대가 종점이었지만 지금은 혁신도시까지 가니 시간이 더 늘어난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사실 배차시간은 짧아져 그전엔 20분이었지만 지금은 16분이다.
버스를 타고 모악산에 가는 것은 처음인데 가는 방법은 여기서 165번 버스를 타고 평화동까지 나서 970번 버스로 환승해서 가야한다. 가는 데만 1시간 넘게 걸리고 환승까지 고려하면 넉넉하게 2시간은 잡아야 한다. 근데 여기서 한 가지 변수가 또 있었던 거다. 970번 버스는 배차 간격이 무려 40분 정도였던 거다. 가는 것도 오는 것도 합해서 생각하기엔 12시였던 지금 시간이 무지 어중간 했다. 그래도 맘먹고 나왔으니 가긴 가봐야지.
▲ 버스로 가려면 이런 루트로 가야 한다.
190번이 여행의 목적지를 바꾸다
그때 갑자기 190번 버스가 등장했다. 검색할 겨를도 없기에 경로를 살펴보니 종점이 평화동으로 되어 있더라. 그래서 타도 될 것 같아, 무작정 탔다. 처음으로 LG페이 티머니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이것 때문에 무려 심카드까지 바꿨으니 한 번 써봐야 한다.
NFC를 켜고 핸드폰을 단말기에 대니 바로 인식하며 1250원이 빠져 나가더라. 한 달간 겨우 3만원 내에서만 쓸 수 있다는 점이 걸리긴 했지만, 지금은 버스를 탈 일이 많지 않으니 아무래도 괜찮았다.
▲ 처음으로 LG페이 티머니로 버스를 타봤다. 잘 작동해서 다행이다.
자리가 비어있었기에 앉아 190번 버스의 경로를 검색해봤다. 그랬더니 이 버스는 서곡지구를 거쳐 서신동을 거쳐 전북대를 지나 평화동으로 가는 버스더라. 그러고 보니 남초등학교 앞을 지날 때 그곳에 안 보이던 버스정류장이 갑자기 설치되어 있어 무슨 버스가 다니나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딱 한 대의 버스가 다니는 걸 확인했는데 그게 바로 지금 이 버스였던 거다. 우연은 그렇게 마주치고 어긋나다가 다시 이렇게 마주쳤다. 하지만 이 버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돌아가라는 게 문제였다. 그래도 어차피 전북대를 지나니 거기서 내려 970번 버스를 환승해도 되긴 한다. 하지만 그때 바로 970번 버스가 온다는 보장도 없으며 거기서부터 탈 경우 모악산까지 가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이쯤에서 맘을 정해야 했다. 모악산을 지금 가는 건 약간 무리가 따르니, 나중엔 아침부터 나와 모악산을 타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다른 곳을 가는 것으로 말이다. 어차피 전북대에 가니 덕진공원에 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덕진공원은 20대 이후 나의 삶에 가장 많은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인데 호수 가운데 설치된 흔들다리인 현수교가 38년 동안 자리를 지켰는데 오래 됐다며 4월 중에 철거하고 좀 더 멋지고 좀 더 넓은 현수교로 재가설한다는 거다(실제론 1년이나 늦어져 19년 3월에 철거에 들어갔다). 저 현수교가 사라진다는 건 나의 덕진공원의 과거도 지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니 철거되기 전에 예전의 추억을 곱씹으며 저 곳을 사진에 가득 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법원 검찰청 정류장에서 내려서 걸어갔다.
▲ 19년 3월에 철거에 들어갔다. 예전 현수교의 추억.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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