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노장사상을 벗어난 장자를 만나 소통을 꿈꾸다
이 책에서 가장 크게 주장하는 것은 바로 노장사상老莊思想이라 묶어져 있던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사실이었다. ‘당연히 노장 사상 아니야?’라고 반문하며 책을 펼쳐봤던 나이기 때문이다. 노자가 만든 無의 사상을 장자가 완성했다고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 노장사상은 사마천이 쓴 사기의 '노장신한열전'을 통해 한 카테고리로 묶이게 됐다.
노자와 결별한 장자를 만나다
하지만 그 당연하다는 것에 매몰되는 순간, 우리의 사유의 범위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장자를 장자 자체로 이해하기보다 노자의 사상을 토대로 장자의 사상을 구분 지으려 하기 때문이다. 난 저자의 노장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리고 더 급진적인 주장으로 장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자’라는 텍스트마저 벗어나야 한다는 거다. 물론 텍스트를 완전히 벗어나면 그의 존재감조차 사라진다. 그렇기에 이 장자란 책을 기본으로 삼아 그의 사상을 살펴봐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게 장자라는 주체를 알게 되었을 때, 거기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건 곧 또 하나의 귀결점, 또 다른 편견을 만들 뿐이니까. 그런 점에서 새로운 논의가 가능하다. 텍스트마저 벗어나, 장자와 나와의 대화를 통해 ‘장자화된 내 자신’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곧 노자와 결별한 장자, 그리고 그 텍스트마저도 벗어난 장자를 만나야 하는 것이 우리의 독서 목적이 되어야 한다.
▲ 노자를 떠난 장자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나라고 규정된 한계를 잊고 소통하라
또한 이 책을 구성하는 가장 큰 논리는 ‘잊어버려라, 그리고 소통하라’이다. 바로 내 자신을 비워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노자의 無사상이 떠오를만하지만, 그 차이는 책에서 상세히 말하고 있다. 나라고 규정된 것들의 대부분은 주위에서 정의한 것일 뿐이다. 그건 나에게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는 희망이거나, 무언가를 하질 않길 바라는 바람일 거다. 그런 규정들에 나의 삶을 한정 지을 때,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탈을 쓴 타인이 살아가게 된다. 결국 그런 규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잊어버려라’, 즉 비워냄이란 논리로 풀어낸 것이다.
그렇게 나를 비워낼 때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 바로 내가 응원단을 할 때 ‘난 할 수 없어’라는 스스로 결정지은 한계를 제거함으로써 몰입할 수 있었듯이 말이다. 그렇게 맘껏 소통함으로 자유로운 신체의 조건을 형성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응원단-되기’를 이뤄낼 수 있었듯이, 우리 또한 타인의 희망이나 바람에 구속된 내가 아닌 자유로운 신체 조건을 형성하여 타인과 맘껏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라는 주체의 틀에 갇힌 자, 그에겐 세상이 하나의 감옥일 뿐이다.
응원단은 나에게 소통의 부재에서 벗어날 것, 바로 나라는 신체의 한계성을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딱딱하고 무감각해진 신체를 벗어나 자연의 흐름에 몽땅 몸을 맡길 줄 아는 부드러운 신체가 되라는 것도.. 그건 곧 장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일치하는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기반으로 앞으로 어떤 무수한 사유들, 무수한 인연들 속에 소통의 자유를 누리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인용
1. 응원단이란 게임과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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