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형적인 삶이란 없다
왠지 섬뜩한 노래 가사가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이 노래는 가사 뿐 아니라 노래 자체도 굉장히 우울하다. 이 노래를 들을 때 생각났던 장면은 「에반게리온」에서 수많은 레이가 일제히 얼굴을 들던 장면이었다. 내 안에 있던 수많은 내가 고개를 들고서 또 다른 나에게 아우성을 치는 것만 같았으니까.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전형화된 공주의 틀을 깨다
사람은 누구나 다중적이다. 여러 역할을 수행하다보니 그렇게 여러 명의 자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내 안엔 너무도 나약한 어린 자아도 있고 누군가에게 잘난 체 하려는 거만한 자아도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자아들이 들쭉날쭉하며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다중성을 통합하여 ‘~한 나’라고 규정될 수 있는 단일한 나를 만드는 일은 가능할까?
『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 제목이 참 아이러니하다. ‘동화=공주’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동화≠공주’라는 전혀 아리송한 표현이 되니까. 동화 속의 공주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공주란 타이틀만 있으면 평생 잠만 자더라도, 평생 순진한 얼굴을 한 체 세상사에 무관심하더라도 괜찮다. 오히려 그런 순수미와 백치미 때문에 핸섬한 왕자들이 다가와 구해주고 싶어질 테니까. 거기다가 좀 위험한 상황(악랄한 도적에게 잡혀간다거나 독이 든 사과를 먹는다거나)까지 연출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뒷일은 전혀 걱정하지 마시라. 모든 건 왕자가 다 해결해줄 거니까. 공주는 그저 그 왕자를 따라 ‘그 후로 둘은 행복하게’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게 바로 동화 속에 그려진 공주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그런 동화를 보고 자라온 아이들이 꿈꾸는 행복한 가정상이다. 지금도 내 주위엔 그런 영향 탓인지 ‘언젠가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날 거라 기대하는 친구들이 있다. 너무나 순진하거나 너무나 바보이거나.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의 제목은 그런 일반적인 생각을 여지없이 깬다. 그건 이미 동화라는 유아적 상상의 공간에서 공주가 뛰쳐나왔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제목만 보고서 이 책이 끌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백설공주는 우리가 공주에 대한 환상을 갖게 만든 대명사다.
무수한 변수 속에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이 책을 다 읽고 나선 왠지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떠올랐다. 길을 걸으며 자신을 알아가는 모습이 비슷해 보여서 였던 것 같다. 길 위에 놓인 존재, 수많은 사건들은 지금까지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만을 맹목적으로 걸어가던 주인공을 각성시켜 자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도록 돕는다.
예전엔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한 모습으로 통합된 나 자신을 만들려 노력했다면, 이젠 내 속에 감춰진 여러 모습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만약 세상에 정답 같은 게 있다면, 그건 길 위의 예기치 않은 사건 속에 있을 것이다. 무언가 삶의 정답이 궁금해 미칠 것 같은 사람에게 이 책은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인용
1. 전형적인 삶이란 없다
2. ‘철’ 들지 마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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