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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문헌과 청각적 문헌
내가 왜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가? 우리는 너무도 ‘사실’에 무지하다는 것이다. 성경을 운운한다면 우리는 우선 성경이라는 아주 객관적인 문헌에 관한 사실들을 알아야만 한다. 그러한 사실을 토대로 초대교회의 역사적 정황을 정확하게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복음이 들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서구의 매우 위대한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이러한 사실들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것은 때때로 오늘날의 우리의 체험 속에서 왜곡된 주관적 인간의 언사에 불과할 수가 있다. 성령을 주장하는 정통파들일수록 인간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착각하는 오류의 폐해를 주책없이 전파하는 경향이 심하다.
내가 말하려는 복음서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복음서는 시각적 문헌이 아니라 청각적 문헌이라는 것이다. 요즈음처럼 사람들의 독서를 위하여 기록된 책, 즉 비블로스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양피지 위에 특수한 목적을 위해 쓰여진 수고(手稿: 신학계에서는 ‘MSS’라는 약자를 쓴다)일 뿐이다. 내 말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초대교회의 정황을 말해주는 한 성서의 구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전 5: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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