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피지와 파피루스
마가시대에는 종이에 해당되는 것이 두 가지 밖에 없었다. 하나는 양피지(parchment)라는 것인데 양가죽을 무두질하여 늘려서, 쎄무가죽처럼 야들야들하게 얇게 만든 것이다. 양가죽만 쓰는 것은 아니고 염소나 소가죽도 쓸 수 있다. 소가죽은 길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새끼가죽일수록 고급품이 나오는데 그것을 벨룸(vellum)이라고 한다. 이 양피지는 우리나라 족자처럼 양쪽에 나무를 껴서 두루루 만다. 따라서 한 면에만 쓴다. 앞뒤 양면을 다 쓰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양사로써 한 두루마리 즉 권(卷)의 의미를 지니는 볼룸(volume)이라는 말을 쓴다. 한 볼룸은 한 롤(roll)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양피지 이외로는 파피루스(papyrus)라는 소재가 있다. 이것은 나일강 델타지역에서 잘 자라는 키페루스 파피루스(Cyperus papyrus)라는, 4.6m 가량의 높이까지 자라는 풀의 줄기를 스트립으로 쪼개서 합하여 눌러 말려서 얇고 부드러운 표면을 형성시키는데, 이것은 양피지처럼 두루루 말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책모양으로 바인딩하는데 그것을 코우덱스(codex)라고 한다. 이 코우덱스는 양피지와는 달리 앞뒤 면을 다 쓸 수 있고 꼭 요즈음 성경책처럼 껍데기는 가죽으로 포장해서 싼다. 오늘날 성경의 모습이 아주 옛모습의 심층구조를 보존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성경에 해당되는 말로서 ‘바이블’(Bible)이라는 말을 쓰고있는데 그것의 고어는 ‘비블로스’(byblos)이다. 그런데 이 ‘비블로스’는 단순히 ‘파피루스’의 순화된 발음(p→b)일 뿐이다. 비블로스(Byblos)는 파피루스를 수출한 페니키아의 도시 이름이기도 하다(현재 레바논의 주바일 Jubayl, 수도 베이루트의 북쪽). 이 도시 이름에서 성경 즉 ‘바이블’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우리말의 경(經)은 ‘벼리’라는 뜻이다】.
▲ 파피루스 문서를 제본하여 가죽으로 싼 코우덱스. 나그 함마디 라이브러리
그런데 이 양피지가 되었든 파피루스가 되었든 이 재료는 구하기가 힘들고 비싼 물건이라서 아무나 쉽게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자료 위에다 동ㆍ식물, 광물에서 추출한 염료와 수액을 섞어 만든 잉크를 갈대펜으로 찍어 쓴다. 영화에서 보는 깃털펜(quill pen)은 7세기에나 등장한 것이다. 강철펜은 19세기 중엽에나 발명되었으니 그 전에 무엇을 쓴다고 하는 것은 매우 주의를 요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유대인들은 파피루스보다는 양피지를 더 즐겨 썼다. 양피지가 원래 그들의 율법서들의 전통이었다. 양피지의 원어인 파치먼트(parchment)라는 말은 에베소 위에 있는 페르가뭄(Pergamum, 현재 터키 베르가마, Bergama)이라는 희랍 도시에서 양피지가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아마도 마가는 복음서를 양피지 위에 썼을 것이다. 양피지가 고급재료이기 때문에 당연히 공간을 아껴야 한다. 그래서 매우 깨알만한 글씨로 작게 쓰는데 물론 당시에는 장ㆍ절의 구분이나 일체 띄어쓰기 같은 것이 없었다. 매우 시각적으로 불편한 것이었다. 즉 기록을 위한 것이지 일반인의 독서를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북의 달인, 흑우(黑雨) 김대환이 좁쌀 하나에 『반야심경』을 다 새겨넣어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하는데, 유대인들도 양피지에 깨알같이 많은 글씨를 써서 그것을 말아 부적으로 사용하곤 했다.
▲ 흑우 김대환의 유품인 쌀 한톨에 새긴 『반야심경』 283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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