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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 손자병법, 제8편 구변(九變) 본문

고전/손자병법

임용한 - 손자병법, 제8편 구변(九變)

건방진방랑자 2025. 4. 1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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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구변(九變)

 

 

구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홉 가지 변화다. 하지만 여기서 9가꼭 아홉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9최대’ ‘무한한’ ‘전부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구변은 무궁무진한 변화라는 뜻이다.

 

변화란 임기응변인데, 이는 임시변통과는 다르다. 현실에서 시행되는 전, 전투는 모두 현지의 지리, 상황, 목적에 최적화되어야 한다. 매 전투는 하나하나가 그 상황에 최적화된 것이어야 한다. 지휘관은 지형, 적장의 전술적 통찰력, 개성과 심리상태 이 모든 것을 통찰해야 한다. 손자는 그런 요소 중에서 지형 등 중요한 요소를 선별해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편의 서술 목적이 단지 지형에 관한 이해를 높이자는 의도는 아니다. 중국은 넓다. 화북과 강남은 기병과 수군처럼 주력 병종이 달라질 정도로 지형과 기후가 크게 다르다. 그렇기에 화북에서 훈련받은 군대가 강남에 들어가면 절반이 전염병으로 죽었다. 정복 전쟁에 참여하는 군대는 다른 문화, 식생활,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과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자기 땅에서 시행하던 습관과 타성 버리지 못한 군대는 한순간에 종말을 맞기도 했다.

 

 

 

 

1. 움푹 팬 땅에 주둔하지 않는다

 

용병의 법은 장군이 군주로부터 명을 받아 군을 소집해서 편성하고 적을 향해 진군한다. 이때 비지(圮地, 움푹 팬 땅)에서는 주둔하지 않는다. 구지(衢地, 접경 지역)에서는 외교를 맺는다. 절지(絶地, 적의 국경 안)로 들어갔을 때 고국이나 후방부대와 연결이나 후원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머무르지 않는다. 위지(圍地, 사방이 막힌 지역)에서는 계략을 써서 빠져 나간다. 사지(死地, 어쩔 수 없는 위험 지역)에서는 결전을 벌여 빠져나간다.

孫子曰: 凡用兵之法, 將受命於君, 合軍聚衆, 圮地無舍, 衢地合交, 絶地無留, 圍地則謀, 死地則戰.

 

길에는 통과하지 말아야 할 곳이 있고, 군은 싸우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성에는 공격하지 말아야 할 곳이 있고, 땅은 차지하려고 다투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왕의 명령에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그러므로 장군이 상황에 따라 갖가지 변화로 이익을 얻는 원리에 통달해야 용병을 안다고 할 수 있다. 장수가 변화의 이익에 통달하지 못하면 비록 지형을 안다고 해도 지형의 이익을 능히 획득하지 못한다. 군대를 다스리는 데도 상황에 따라 변화를 주는 기술을 알지 못하면 비록 지형을 이용하는 다섯 가지 이익을 안다고 해도 인재를 얻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塗有所不由, 軍有所不擊, 城有所不攻, 地有所不爭, 君命有所不受. 故將通於九變之利者, 知用兵矣; 將不通於九變之利, 雖知地形, 不能得地之利矣; 治兵不知九變之術, 雖知五利, 不能得人之用矣.

 

비지(圮地)는 움푹 팬 낮은 땅이다. 이런 땅은 습기가 많고 전염병이 쉽게 발생한다. 호수, 늪지, 낯선 계곡과 강은 군대에 예상치 못한 죽음을 선물하곤 했다.

 

1221년 제5십자군이 이집트에 상륙해 나일강 하류의 도시 다미에타로 향했다. 예루살렘을 빼앗고 3차 십자군을 좌절시켰던 살라딘의 왕국은 이미 망했고, 이집트의 술탄이 중동을 지배하고 있었다.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하려면 이집트를 공략해야 했다. 십자군 전쟁사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5차 십자군은 십자군 원정의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중요한 전역이었다. 라틴 제국에 유럽의 주요 제후들과 기사단이 가담한 전투력은 3차 십자군에 못지않았다. 이들은 길고 힘든 포위전 끝에 다미에타를 함락했다. 1221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병력이 다미에타에 합류했다.

 

놀란 술탄은 다미에타를 반납하면 예루살렘을 돌려주겠다고 십자군에게 제의했다. 전략적 목표를 정확하게 달성한 것이었지만, 자만심과 함께 욕망도 폭주해버린 십자군은 거절했다. 프리드리히 2세의 본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이조차도 무시했다. 717, 십자군은 다미에타를 나서 부채모양의 나일강 삼각주를 따라 카이로로 행군했다. 다미에타와 카이로 중간에 위치한 만수라를 함락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나일강 본류와 지류 사이에 있는 좁은 지대에 진을 쳤다. 나중에 성왕루이(Louis, 1214~1270)의 십자군도 같은 장소에 진을 쳤던 것으로 봐서 이곳이 전술적 측면에서 여러모로 매력적인 지역이었음에 틀림없다. 좌우로 막힌 강은 보호막이 되어주고, 나일강 수로는 다미에타로 가는 보급선을 지탱해 주었다. 이곳은 와디(마른 강)로 갑작스러운 홍수의 위험이 있다는 경고가 있었지만, 지휘관인 펠라지오 갈바니(Palagio Galvani, 1165~1230) 추기경은 이를 무시했다. 주변은 온통 건조한 모래땅으로 물 한 방울 없고,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상류에서 우기가 시작되면서 나일강이 불어났다. 술탄이 수문을 열어 물을 방류하자 십자군은 나일강에 포위되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다. 십자군은 죽기 살기로 결전을 벌이려 했지만 이집트군은 코웃음 치며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들이 피를 흘릴 이유가 없었다. 가만있어도 계속 불어나고 있는 나일강이 그들을 삼켜버릴 것이었다. 십자군은 항복했고, 생환시켜주는 조건으로 다미에타를 반납했다토머스 F. 매든 지음, 권영주 옮김, 십자군루비박스, 2005, 260~261.. 예루살렘 왕국을 되찾을 수도 있었던 마지막 기회가 이렇게 날아갔다. 비지(圮地)에 진영을 친 대가였다.

 

십자군은 왜 이곳에 진을 쳤을까? 와디는 1년 내내 거의 메말라 있고, 대상들의 이동로로 사용된다. 지형에 따라서는 게릴라식 공격을 방지하기도 유리하다. 이곳에 포진할 이유와 장점은 분명했다. 다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험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나일강 상류가 불어나고 있었지만, 십자군이 있던 하류 지역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사막의 와디에서는 이런 일이 곧잘 벌어진다. 자신의 상식 범주, 일상적 관찰 범위 밖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십자군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상황을 종합해서 대응하는 능력을 기른다

 

손자는 장군이 상황에 따라 갖가지 변화로 이익을 얻는 원리에 통달해야 용병을 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자가 주목하는 조건은 지리, 적정, 그리고 인사(人事).

 

장군만이 아니라 중대장, 소대장, 분대장, 전투 현장에 있는 모든 지휘관은 지리와 상황에 관해 융통성을 발휘하고, 주변 부대와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소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접촉을 직접 유지하며 협력하는 경우와 연락이 되지 않지만 분명히 아군의 지휘관이라면 이런 식으로 행동하고 반응하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독소전쟁에 참전한 독일군 장교들은 소련군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악조건을 극복하는 특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이들이 10시간 동안 눈 속에 숨어 매복하라는 지시를 이행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이상할 정도로 경직되고, 상황 변화에 대처하지 못했다. 나중에 독일군은 소련군 부대가 해야 할 임무를 시간까지 지정한 작전예규에 구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독일군을 습격할 수 있는 고지가 비었어도 작전예규에 묶여 꼼짝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통신이 제대로 되지 않던 당시 전쟁에서 이런 작전예규는 보이지 않는지역에 있는 아군의 행동, 위치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그런 기능을 거의 못 한다. 독소전쟁에서도 독일군의 저항에 막히고, 수만 가지 변수가 발생했다.

 

독일군은 이런 결론을 내린다. 우수하고 진취적인 능력을 보유했음에도 소련군의 작전예규는 분명한 약점이다.

 

임기응변이란 주제에 직면했을 때, 사령관, 최고 지휘관은 작전의 기안과 수행에 더 큰 압박감을 느낀다. 수만의 병력, 수만의 장비는 하루에도 수천 가지 예측불허의 상황을 야기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진 대열을 약간 비틀고 공격 목표를 약간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수십만 개의 나사와 부품이 비명을 지르며 재작동을 해야 한다. 사령관에게 작전 계획의 묵수와 현장 대응은 어느 쪽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거대한 딜레마다.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전쟁 최대의 해전이었으며, 전쟁의 승부를 가른 결정적 터닝 포인트였다. 미드웨이 해전은 항모의 대결로 승부가 결정되었는데, 의외로 양측의 사령관은 모두 항모 경험이 없는 지휘관이었다. 일본군 사령관 나구모 주이치는 진주만 공습이 유일한 항모 선단 지휘 경험이었다.

 

그래도 나구모는 나은 편이었다. 미군 사령관 레이먼드 스프루언스(Raymond A. Spruance, 1886~1969)는 구축함과 순양함 합장 경력이 전부였고 전함조차 지휘해본 적이 없었다. 원래 미군 항모전대의 사령관은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의 함장이자, 별명이 황소였던 윌리엄 홀시(william Halsey, 1882~1959) 제독이었다. 능력, 배짱, 신망을 모두 갖춘 그는 태평양 함대 사령관인 니미츠부터 말단병사까지 모두가 가장 신뢰하는 제독이었다. 그런데 미드웨이 해전을 앞두고 홀시 제독이 심한 피부염에 걸렸다. 홀시는 걱정이 태산인 니미츠 제독에게 자신의 함대에서 순양함대를 이끌던 스프루언스 소장을 임시 지휘관으로 추천했다.

 

이런 대회전에서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초보 사령관들의 대결은 스프루언스의 승리로 끝났다. 나구모는 심각한 판단 착오를 저질렀다. 그는 미군 항모가 있는지 없는지, 미드웨이의 육상 기지를 먼저 공격할지 미군 항모를 공격할지를 두고 우왕좌왕했다. 처음에는 근처에 미군 항모가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함재기에 육상 공격용 폭탄을 장착하게 했다. 1차 공격부대가 발진한 후에 미군 항모가 발견되었다. 나구모는 대기 중인 2차 공격부대의 무장을 함선 공격을 위한 어뢰로 바꾸었다. 그러다가 다시 미군 항모의 위협은 임박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육상 공격용 폭탄으로 바꿔 달았다. 함재기가 출동하려 할 때쯤 앞서 미드웨이섬 공격에 나섰던 일본군 함재기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연료 부족으로 당장 착함해야 했다. 나구모는 이륙 직전이던 함재기를 격납고로 내려보내고 공격 편대를 착륙하게 했다. 동시에 미군 항모의 접근이 임박한 것이 분명해졌으므로 격납고로 내려간 함재기는 다시 어뢰로 무장을 교체하게 했다.

 

미군 항모에서 발진한 급강하 폭격기 편대가 출현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 일본군 항모와 호위 전투기들은 필사적인 노력을 했지만 항모를 완전하게 보호할 수 없었다. 항모는 단 한 발의 명중탄으로는 침몰시킬 수 없다. 그런데 일본군 항모의 갑판에는 연료를 가득 채운 항공기와 조금 전에 교체한 폭탄, 아직 교체하지 못한 어뢰가 널려 있었다. 원래 무장은 안전한 격납고에서 하게 되어 있었지만 지시를 여러 번 번복하는 바람에 일본군 정비사들이 규정을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단 한 발의 명중탄으로 지옥이 연출되었다. 일본군 항공모함 네 척 중세 척이 순식간에 침몰했다.

 

나구모의 입장에서 보면 운이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도 미군 항공모함의 존재와 공격 가능성을 염려하며 정찰기를 내보냈다. 정찰기 한 대가 고장 나서 30분 늦게 출발했는데, 하필이면 미군 함대가 있던 쪽으로 발진하려던 정찰기였다. 게다가 무전기 상태도 좋지 않았다. 미군 항모를 발견한 일본군 조종사가 너무 흥분해서 정확하게 보고하지 못하는 바람에 사령부에서는 미군 함대에 항모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그 뒤에 미군기가 공격해오고 정찰기가 항모를 발견했다는 정정 보고가 들어오면서 뒤늦게 미군 항모의 존재를 확인했던 것이다

 

여러 가지 우연과 필연이 교차했다. 정확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고 나구모는 여러 가지 가능성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나구모에게 닥쳤던 상황을 종합해보면 대부분 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는 모든 지휘관의 숙명이다. 팽팽한 전투일수록 불확실하고 모순적인 상황에서 단 하나의 판단으로 승패가 갈릴 수 있다. 결정을 내릴 근거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판단해야 한다. 명장과 평범한 지휘관의 차이가 여기서 갈라진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경우의 수를 대비하지 않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고, 또 진급한 상황에서 우왕좌왕했던 나구모의 행동은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었다.

 

나구모의 패전 원인을 경험 부족에서 찾을 수도 있다. 나구모가 처한 상황은 논리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경험을 통한 직관적인 결단을 요구받았는데, 항모 근무 경력이 없는 나구모에게는 그런 직관이 축적될 여지가 없었다. 이렇듯 손자가 말한 구변의 능력은 경험의 다양성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미군 스프루언스도 항모 초보자였다. 오히려 나구모보다 더 일천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일본군 함재기의 교대 시점에 시작된 공격은 우연이 아니라 계획된 작전이었다. 물론 이것은 항모 종사자라면 다 아는 전술이었고, 모든 항모 사령관이 노리는 호기였다. 스프루언스가 도박에 가까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것을 해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니미츠는 스프루언스가 신중하고 침착한 성격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인물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사령관보다는 참모장에 적합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니미츠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이때의 미군 사령부는 홀시처럼 용맹스러운 서부 사나이 기질의 인물이 사령관에 적합하다고들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덕분에 스프루언스는 참모장을 이미 두 번이나 역임했고, 니미츠는 스프루언스를 사령부의 참모장으로 인사 명령까지 의뢰한 상태였다. 홀시가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스프루언스는 사령부 상황실에서 미드웨이 해전을 관람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드웨이 해전에서 스프루언스는 사령관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증명했다. 신중하고 정확한 판단력,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 미드웨이 해전 후에 스프루언스는 제5함대를 지휘하며 남태평양 전투에 참가한다. 당시만 해도 일본이 전함과 함재기의 성능에서 우위에 있었지만 스프루언스는 침착하게 승부를 이끌었고, 단 한 번도 일본의 기습이나 유인 작전에 말려들지 않았다. 미군이 객관적인 전력에서 절대 불리하니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벌여야만 했던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홀시보다 스프루언스가 더 적합했다. 나구모와 스프루언스는 상황 적응력과 승부사적 결단력에서 차이가 났다.

 

태평양 전쟁의 명운을 가른 미드웨이 해전을 이끈 일본의 나구모 사령관과 미국의 스프루언스 사령관.

 

 

경험보다 더 중요한 것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의 적임자를 선발할 때 경력을 중시한다. 그러나 실제로 중요한 것은 경험을 축적하고 적용하는 능력이다. 경력을 볼 때는 그가 경험한 시간과 결과만 보아서는 안 된다. 경험을 응용하고 발전시키는 능력과 자세도 보아야 한다. 미래를 보고 사는 사람과 과거에 얽매이는 사람이 있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라는 것이 있어서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던 사람 어느 정도 가다 갑자기 안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정말 중요한 리더를 선임할 때는 그가 여전히 미래를 보고 도전할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지, 이제부터는 과거를 회상하며 살기로 마음먹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상황과 지형에 대처하는 법을 키우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하면 보통 순환 근무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순환 근무가 다양한 경험을 쌓기에 좋지만 단점도 분명하다. 자칫하면 개인과 조직 전체의 전문성을 약화시키고 매사에 적당히 하는 풍조를 조장한다. 더 큰 문제는 아무리 순환 근무를 활용해도 인생은 짧고 세계는 넓어서, 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의외로 제한적이다. 현실에 안주하며 단순히 경험을 학습하는 습관이 든 사람은 아무리 순환 근무를 해도 전문성은 놓치고 죽은 지식만 축적할 뿐이다.

 

최근에는 기업에서, 소위 이종교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고 혁신을 이룬 리더 중에는 의외로 그 분야의 초보인 사람이 많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 1932~2022)는 평범한 경력의 세라믹 기술자 출신이었지만, 일본 굴지의 기업인 교세라 그룹을 일구었다. 그런 그가 70대의 노령에 경험해본 적이 전혀 없는 일본항공(JAL)을 맡아 파산에서 구해냈다. 항공업이 전문성이 아주 중요한 업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기적이었다.

 

이런 사례를 보면서 외부에서 온 사람이 조직에 누적된 매너리즘을 극복하고, 변화와 창의를 주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들 한다. 다만 이런 방법은 성공보다 실패 사례가 더 많다. 이종교배의 적임자를 선택할 때, 이종 기업에서 성공을 이끌어낸 능력보다 현 기업에서 실적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아주 위험한데, 자신의 노하우를 맹목적으로 이식하는 것이 이종교배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종교배는 특정 노하우를 펼치는 게 아니라, 매너리즘에 빠져서 그 분야의 전문가들은 생각하지 못한 독특하고 유연한 발상을 현재의 장소에 맞게 응용하는 능력이 목적이다. , 이종교배에 특화된 인재는 자신의 경험 리스트에서 성공한 방법이 아니라, 해당 현장에 필요한 방법을 찾아내고 이식한다.

 

 

 

 

2. 지혜로운 자가 계획을 수립할 때는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가 계획을 수립할 때는 반드시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로운 점을 참작해서 일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해로움을 배려해야 환난을 해결할 수 있다. 이런 까닭으로 해로움을 가지고 타국의 제후를 굴복시키고 어떤 업적에 제후가 종사하게 하며 이익을 가지고 제후들이 달려들게 할 수 있다.

是故智者之慮, 必雜於利害. 雜於利, 而務可信也; 雜於害, 而患可解也. 是故屈諸侯者以害, 役諸侯者以業, 趨諸侯者以利.

 

그러므로 용병할 때 방비를 하지 않고 막연히 적이 오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 기대서는 안 된다. 내가 적을 대비해 취한 실제적인 조치에 기대야 한다. 적이 나를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 의지하지 말고, 적이 공격할 수 없도록 하는 나의 실제적인 조치에 의지해야 한다.

故用兵之法, 無恃其不來, 恃吾有以待也; 無恃其不攻, 恃吾有所不可攻也.

 

병사들은 의외로 긍정적이다. 승리하고 살아서 돌아가기 위해서 그들은 작은 가능성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한다. 이것이 인간의 기본 심리다. 그러므로 리더는 아무리 위험하고 무모하고 어려운 계획이라도, 아군이지닌 장점과 이로움을 과장을 더해서라도 충분히 인지시켜야 한다. 우리의 검이 적의 검보다 정말 미세하게, 즉 별 의미 없게 더 단단하다고 해도 그 미세한 우위에 자신감이 더해지면 훨씬 더 강력한 검이 된다.

 

지휘관은 보통 예상되는 어려움을 감추려고 한다. 용병은 속임수다. 적도 속이고 아군도 속이고 때로는 자신도 속여야 한다. 그러나 속임수도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 아군의 위험과 단점을 감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병사들이 다 눈치채고 있는 약점은 감춘다고 감춰지는 것이 아니기에 지휘관에 대한 신뢰만 떨어트린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 난관을 알고 극복해야 군대와 병사는 더 단단해진다.

 

 

해로움으로 타국의 제후를 굴복시킨다

 

해로움으로 타국의 제후를 굴복시킨다[屈諸侯者以害]’는 구절은 전후 관계가 조금 이상하다. 중간에 생략된 부분이 있거나 해로움이란 단어를 보고 잘못 조합한 것 같다.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쟁, 가능한 한 적을 약화시키고 아군을 증강하는 방법으로 외교를 중시한다. 외교란 겉으로는 신사들의 파티이고, 안은 조폭의 세계다. , 협박과 유혹으로 봉건시대의 지도자들을 주무르라는 말이다. 이것도 전쟁의 규칙이다.

 

오스만튀르크에 대항해서 아랍의 반란을 주도한 메카의 파이살(훗날 이라크 국왕이 된다)은 시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을 근거로 하는 베두인족 출신이다. 베두인족은 로마 제국 시절부터 사납고 강력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부족이었지만, 부족 간에 단합이 되지 않았다. 파이살 일가가 봉기했을 때 봉착한 난관이 부족 이기주의와 부족 전쟁의 관습이었다. 부족 간에 사이가 좋지 않고 부족의 전통적인 영역을 벗어나 싸우는 전쟁을 꺼렸다. 그러나 이런 관행의 진정한 원인은 두려움이었다. 부족들이 자신의 땅에서만 싸우는 이유는 그곳을 최후의 거점으로 생각하는 이유도 있지만, 자신들이 익숙한 지형, 최후의 생존 의지가 오스만튀르크라는 대제국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라비아 로런스로 알려진 영국 장교 로런스는 아랍인들이 사막의 게릴라전에 걸맞는 강인한 정신과 신체, 전통, 전투력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사막과 바위산이 겹쳐있는 척박한 아라비아 땅에서 이는 탁월한 장점이었지만, 자신들은 이런 장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로런스와 아라비아 게릴라들이 은둔했던 요르단의 와디와 바위에 새겨놓은 로런스의 얼굴.

 

아랍 반란을 성공으로 이끄는 관건은 모든 부족이 이런 장점을 인지하고 이를 승리의 자신감으로 연결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었다(이것이 로런스의 독창적 깨달음이었느냐는 부분은 논란이 되고 있는데, 로런스 자신은 그렇게 믿었다).

 

파이살은 부족들을 설득하고 유도해서 게릴라전으로 조금씩 끌어들였다. 영국군 폭파 전문가에게서 철도를 파괴하는 기술을 배워 낙타를 타고 사막을 다니며 철도를 폭파했다. 이런 방식으로 게릴라전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유리한 전투 방식인지, 자신들이 부족의 영역을 넘어선 지역에서 단합해서 싸우면 얼마나 강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 결정판이 아카바 항 공략 작전이었다.

 

아카바는 이등변 삼각형을 엎어 놓은 모양인 시나이반도의 동쪽 끝 지점이었다. 반대편 끝 지점에는 영국군이 점거한 수에즈 운하가 자리 잡고 있다. 아카바를 점령하면 삼각형의 양쪽 두 점을 장악함으로써 시나이반도가 완전히 통제권에 들어온다. 오스만튀르크군은 아카바를 점령하려면 좁은 아카바 만을 통과해 들어오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육로로 오는 길은 원주민도 꺼릴 정도로 너무 덥고 험하며 위험했다.

 

파이살군은 이 빈틈을 노렸다. 그들은 시나이반도의 서쪽 해안지대에서 북쪽으로 출발해서 거의 반원을 그리며 1,000킬로미터를 행군해서 아카바 항의 뒤쪽 육지에서 아카바를 습격했다. 아카바의 수비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오스만튀르크군 1,200명이 전멸했지만 파이살군의 사상자는 단 두 명이었다. 아카바 항 점령은 아라비아 반란의 꽃이며 분기점이었다.

 

아카바 항 공략전은 이 편에서 손자가 말한 모든 내용, 이로움과 해로움의 효과, 적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가진 위험의 집약판이다.

 

수에즈 운하를 점거한 영국군은 아카바를 점령하기 위해 아카바만으로 들어오는 대신 수에즈에서 북쪽으로 크게 돌아가는 육로를 택했다.

 

 

 

 

3. 장수에게 있는 다섯 가지 위험

 

장수에게는 다섯 가지의 위험이 있다. 필사적인 성격을 가진 자는 살해될 위험이 있다. 살고 싶은 욕망이 강한 자는 항복해서 포로가 될 가능성이 있다. 화를 잘 내고 성급한 자는 남에게 모멸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청렴결백한 자는 모욕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백성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자는 번거로워질 가능성이 있다.

故將有五危: 必死可殺也, 必生可虜也, 忿速可侮也, 廉潔可辱也, 愛民可煩也.

 

무릇 이 다섯 가지는 장수의 과오나 용병에서의 재난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 요소다. 군대를 패배하게 하고 장수를 죽게 만드는 것은 반드시 이 다섯 가지 위험 때문이니 신중하게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凡此五者, 將之過也, 用兵之災也. 覆軍殺將, 必以五危, 不可不察也.

 

사람의 생명은 하나하나가 소중해 누구의 생명이 다른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전장에서 많은 병사들을 이끄는 리더가 목숨을 잃으면 집단이 와해되어 더 많은 생명의 손실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서 지휘관의 존재는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손자는 굳이 죽음에 이르지는 않더라도, 군대를 위험에 빠트리는 지휘관들을 성격적 요소를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손자가 이 구절을 언급한 본래 의도는 상대의 성격적 특성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적장이 화를 잘 내고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의 분노를 돋우거나 짜증나는 상황에 몰아넣음으로써 실수를 유도할 수 있다. 반대로 청렴결백한 사람은 자존심이 강하고 명예에 집착한다. 적은 그에게 모욕을 주어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고, 판단력을 흐리게 할 것이다.

 

 

필사적 성격을 가진 지휘관

 

필사적인 성격은 지휘관에게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성격이다. 선봉이 되어 적진에 뛰어드는 장수처럼 매사에 용감하고 성급하게 승부의 끝장을 보려는 성격을 말하는데, 이런 성품을 지닌 장교는 전쟁에서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필사적인 성격은 분명 장점이지만, 손실 위험이 크다. 그래서 리더가 유의하고 활용법을 관리하며 보호해주어야 한다.

 

영화로도 제작된 <위 워 솔저스(we were soldiers)>의 저자 헤럴드 무어(Harold Gregory Moore Jr., 1922~2017)는 한국전과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탁월한 리더십의 소유자이자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전쟁영웅이며 하버드대에서 학위를 받은, 문무를 겸비한 리더였다. 그가 베트남에서 부대원들에게 했던 연설은 지금도 리더십 분야의 명문으로 회자된다.

 

기관들이 전원 무사히 생존해 돌아갈 거라는 약속은 해줄 수 없다. 그러나 귀관들과 전지전능한 하느님께 이것만은 맹세한다. 우리가 전투에 투입되면 내가 먼저 적진을 밟을 것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적진을 나올 것이며, 단 한 명도 내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 우리는 살아서든 죽어서든 다 같이 고국에 간다.

 

이런 무어도 참전 준비 과정에서 큰 실수를 하나 했다. 무어 대대에 헨리 헤릭(Henry Herrick)이라는 빨간 머리 신참 중위가 부임해 왔다. 헤릭은 미식축구 선수 출신이며, 용감하고 저돌적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의 천문학과 교수였는데, 학벌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무어는 헤릭을 문무를 겸비한 용사라고 보았다. 무어는 위험하면서도 용기와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한 정찰 소대장으로 헤릭을 임명하려고 했다.

 

101 공수사단 출신으로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며, 대대 선임 상사인 플럼리(Basil Leonard Plumley, 1920~2012)가 이를 반대했다. “헤릭이 정찰 소대장이 되면 소대를 전멸시킬 겁니다.” 무어는 일단 선임 상사의 의견을 존중했지만, 나중에 기어코 그를 소대장으로 임명하고야 말았다Harold G. Moore & Joseph L. Galloway, We were soldiers onceand young, Ballentine books, 1992, 73.

 

무어의 대대가 투입된 아이드랑은 프랑스 외인부대가 참패했던 디엔비엔푸 전투가 벌어진 지역이었다. 헬기에서 선두로 내린 헤릭 중위는 소총 소대를 이끌고 성급하게 전투에 돌입했다. 근처에서 아군에게 총을 쏘아대는 월맹군을 발견한 헤릭은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 신경질적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전투 투입 전에 무어가 측면을 지키라고 신신당부했는데도 헤릭은 그 명령을 잊고 달려나갔다.

 

월맹군의 유인 작전에 걸려든 신참 중위는 그 자리에서 전사했고 소대원 전원이 적진에 고립되었다. 헤릭이 전사한 직후 한국전 참전용사였던 노력한 소대 선임 부사관마저도 허무하게 전사해버리는 바람에 새비지(Ernie Savage)라는 상병이 소대를 지휘해야 했다. 생존자들은 간신히 탈출했지만 소대 병력 절반 이상을 잃었다.

 

 

살아야겠다는 집념이 강한 지휘관

 

적에게 사로잡힌다는 말은 투항한다는 말이다. 유럽에는 명예로운 항복이라는 전통적 개념이 있었다. 반면 동양에서는 투항 자체가 국가에 대한 배신행위로 간주되었다. 물론 춘추전국시대에는 아직 국가관도 약했고, 봉건적인 주종관계가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내전이 있을 때는 적에게 사로 잡히거나 투항했다가 적장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므로 여기서 포로가 되기 쉽다는 말은 삶에 집착하는 사람은 겁에 질려 임무를 쉽게 포기하거나 배신하기 쉬우니 경계하라는 뜻이다.

 

필사적인 용기는 천성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말하는 살고자 하는 욕망은 개인적인 상황에 많이 좌우된다. 삶에 미련이 없던 사람도 연인이 생기면 갑자기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기도 한다. 후방에 있는 가족이 정부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하면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약해진다. 전쟁은 생명을 건 승부이기 때문에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작은 감정적 동요가 망설임을 유발하고 그것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선진화된 군대와 기업에서 주기적인 심리 검사와 상담을 실시하는 이유다.

 

 

청렴결백한 지휘관

 

청렴결백한 사람이 모욕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손자의 말은 언뜻 와닿지 않는다. 마음이 맑고 욕심 없는 사람이 무슨 일로 모욕을 당할까? 그런데 리더십의 관점에서 청렴결백은 조금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청렴결백은 리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명백하게 보여주는 특징이다. 따라서 적에게 이용 당하기도 쉽다. 반대로 적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리더는 적의 오판을 유도하기도 쉽다.

 

특이한 경우지만, 오히려 자신의 특정한 이미지를 강조해서 적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영웅이 된 패튼은 기이한 행동과 언변으로 악명이 높았다. 반듯한 용모의 귀족 가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속한 욕설을 입에 달고 살았다. 병적으로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그의 행동은 대중적 반감을 샀다. 백만장자였던 그는 육군 중위 시절 콘센트 막사에 살 때도 식탁에 은촛대를 켜고, 자신은 턱시도를 입고 부인은 드레스를 입혀서 우아하게 식사했다. 부대 장교들은 페튼 부부를 남작 부부라고 불린다. 그는 전선을 시찰할 때 노란 장갑차를 타고, 앞뒤로 수행하는 차에 깃발을 화려하게 꽂고 다녔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중세 영주의 행차 같다고 빈정거렸다.

 

이런 성격과 생활 태도는 꾸며낸 것이 아니었다. 패튼은 진심으로 안하무인의 성격이었고, 자기 만족적인 행동을 거리낌 없이 했다. 동시에 그런 모습이 주는 왜곡된 이미지를 적에게 십분 활용했다. 지휘관이 이런 사람이라면 전장에서 성급하고 준비성이 부족하며 멍청한 부류, 한마디로 돈키호테 같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패튼 전차 군단의 질주는 영락없이 돈키호테의 질주처럼 보였지만, 아주 정밀하고 주도면밀한 계산을 깔고 하는 행동이었다. 화를 잘 내고 참을성이 없는 탓에 패튼은 아군 지휘관들과 기자들에게 많은 모멸을 당했지만, 적에게만은 우롱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캐릭터를 활용해 적과 아군까지 우롱할 줄 아는 영악한 지휘관이었다.

 

 

백성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지휘관

 

번거롭다는 말은 작은 것에 얽매여 승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다. 소탐대실이라고 할 수도 있고, 명분과 인정에 얽매여서 큰 실수를 저지른다는 말도 된다.

 

현대적 전시 인권 개념이 없는 고대인이라고 해서 인간의 생명과 권리를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인간의 생명은 존귀한 것이고 모든 인간의 삶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기본적 가치관은 옛날부터 변함이 없다. 다만 물자도 부족하고, 제도적 뒷받침도 부족하다 보니 전쟁에서는 가혹한 행동을 요구받게 된다. 초한지의 영웅 항우(項羽, BC232~BC202). 진나라의 명장 백기(白起, ?~BC257), 한나라의 명장 이광(李匡. ?~BC119) 모두 항복한 군대를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들의 최후 증언을 보면 평생 죄책감으로 고통을 받기도 했던 것 같다.

 

옛날에도 양심적인 지휘관들은 가능한 한 피해를 줄이고 민간인을 위로해서 긴장된 상태를 완화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하려면 남들보다 더 바쁘고 신경 쓸 것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손자가 이 정도를 번거롭다고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그런 지휘관이 감정에 휘둘려 참호를 파거나 마을을 파괴할 수 없다며 일부러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등의 행동으로 병사들의 체력을 비축할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경우다.

 

인정 때문에 다른 방어 거점을 찾는다고 시간을 허비하고, 잘못된 위치 선정으로 부대를 전멸시켜서 더 많은 사람이 비극을 겪도록 만든다면 어떤 말이 나올까? 손자는 이런 경우를 번거롭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전쟁터에서는 악마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현실을 기반으로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목표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차가움과 따뜻함의 균형을 찾는 경험도 강인하고 현명한 전사로 성장하기 위해 겪어야 할 필수적 과정이었다.

 

 

참모를 활용해 리더십의 개성을 보완하라

 

손자는 지휘관의 개성에 따른 위험 다섯 가지를 나열했다. 이 개성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장점 속에 단점이 있고 단점 속에 장점이 있다. 스스로, 또 주변 사람이 이 개성에 따른 단점을 인식하고 조심하라는 의미도 포함된다.

 

손자의 경고를 명심하고 조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인간이 자기 성격을 완전히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단점을 버리면 장점도 함께 사라진다. 개성이 주는 위험을 피하고, 장점을 살리는 유용한 방법이 참모제도다. 현대에는 참모 조직을 통해 이런 단점을 보완하는 시도를 많이 한다. 하지만 많은 리더들이 참모의 기능을 효율적 관리, 정보 수집 및 분석, 업무 분담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참모를 통해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자신이 인정하는 단점에만 치중한다. 결국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이나, 자신이 참아낼 만한 성격의 사람으로만 채우게 되고, 그날로 참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사라진다.

 

단점 중에서 가장 위험한 단점은 바로 자신의 장점과 연결된 단점이다. 혹은 장점 그 자체가 상황에 따라 단점이 되는 경우도 있다. 참모 입장에서는 이런 단점과 위험성을 지적하기가 가장 힘들다. 사람은 누구나 자부심을 식량으로 삼아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의 장점을 비난한다고 생각하면 커다란 모욕감을 느낀다.

 

참모진이 이로 인한 재앙을 막는 것이다. 리더는 자신이 수긍하는 단점이 아니라, 자신이 보지 못하는 장단점을 찾아주고 지적하는 참모를 기용하고 아껴야 한다.

 

 

인용

지도 / 목차 /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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