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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다음 글을 바탕으로 추론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1.5점]
○ 최치원, 「桂苑筆耕序」 爾後調授宣州溧水縣尉 祿厚官閒 飽食終日 仕優則學 免擲寸陰 公私所爲 有集五卷 益勵爲山之志 爰標覆簣之名 地號中山 遂冠其首 及罷微秩 從職淮南 蒙高侍中專委筆硯 軍書輻至 竭力抵當 四年用心 萬有餘首 然淘之汰之 十無一二 敢比披沙見寶 粗勝毁瓦畫墁 遂勒成桂苑集二十卷 臣適當亂離 寓食戎幕 所謂饘於是粥於是 輒以筆耕爲目 ○ 『三國史記』 致遠自西事大唐 東歸故國 皆遭亂世 屯邅蹇連 動輒得咎 自傷不遇 無復仕進意 逍遙自放 山林之下 江海之濱 營臺榭植松竹 枕藉書史 嘯詠風月 (중략) 最後帶家 隱伽耶山海印寺 ○ 『三國遺事』 聰生而睿敏 博通經史 新羅十賢中一也 以方音通會華夷方俗物名 訓解六經文學 至今海東業明經者 傳受不絶 ○ 최해, 「送奉使李中父還朝序」 進士取人 本盛於唐 長慶初 有金雲卿者 始以新羅賓貢 題名杜師禮牓 由此以至天祐終 凡登賓貢科者 五十有八人 ○ 『世宗實錄』 昔新羅薛聰 始作吏讀 官府民間 至今行之 然皆假字而用 |
① 崔致遠의 『桂苑筆耕』은 宣州의 溧水縣尉로 근무하던 시절에 창작한 시문을 모아 엮은 것이다.
② 唐에서 귀국한 崔致遠은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지 못하고 울울하게 지내다가 가야산에 은둔하였다.
③ 新羅三文章으로 불리는 薛聰은 六經과 文學書를 우리말로 풀이하였다.
④ 金雲卿 등 많은 신라인이 賓貢科를 통해 唐에 진출하면서 양국 간의 문화 교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⑤ 薛聰의 吏讀는 借字表記 방식의 하나로서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公私 문서에 활용되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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