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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 계원필경서(桂苑筆耕序) 본문

산문놀이터/삼국&고려

최치원 - 계원필경서(桂苑筆耕序)

건방진방랑자 2019. 5. 1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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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계원필경이라 이름한 문집을 지었는가?

계원필경서(桂苑筆耕序)

 

최치원(崔致遠)

 

 

초반에 글을 짓게 된 이유

淮南入本國兼送詔書等使前都統巡官承務郎侍御史內供奉賜紫金魚袋臣崔致遠, 進所著雜詩賦及表奏集二十八卷, 具錄如後

私試今體賦五首一卷五言七言今體詩共一百首一卷雜詩賦共三十首一卷中山覆簣集一部五卷桂苑筆耕集一部二十卷.

右臣自年十二, 離家西泛, 乘桴之際, 亡父誡之曰: “十年不第進士, 則勿謂吾兒, 吾亦不謂有兒, 往矣勤哉! 無隳乃力.” 臣佩服嚴訓, 不敢弭忘, 懸刺無遑, 冀諧養志. 實得人百之己千之, 觀光六年, 金名榜尾. 此時諷詠情性, 寓物名篇, 曰賦曰詩, 幾溢箱篋, 但以童子篆刻, 壯夫所慙, 及忝得魚, 皆爲棄物.

尋以浪跡東都, 筆作飯囊, 遂有賦五首詩一百首, 雜詩賦三十首, 共成三篇.

 

가까스로 20권이 되다

爾後調授宣州溧水縣尉, 祿厚官閒, 飽食終日, 仕優則學, 免擲寸陰, 公私所爲, 有集五卷. 益勵爲山之志, 爰標覆簣之名, 地號中山, 遂冠其首. 及罷微秩, 從職淮南, 蒙高侍中專委筆硯. 軍書輻至, 竭力抵當, 四年用心, 萬有餘首, 然淘之汰之, 十無一二. 敢比披沙見寶? 粗勝毁瓦畫墁, 遂勒成桂苑集二十卷.

 

군막에서 이름까지 정하고 책을 내다

臣適當亂離, 寓食戎幕, 所謂饘於是粥於是, 輒以筆耕爲目, 仍以王韶之語, 前事可憑. 雖則傴僂言歸, 有慙鳧雀, 旣墾旣耨, 用破情田, 自惜微勞, 冀達聖鑑, 其詩賦表狀等集二十八卷, 隨狀奉進, 謹進.

中和六年正月日, 前都統巡官承務郞侍御史內供奉賜紫金魚袋臣崔致遠, 狀奏.

桂苑筆耕集一部二十卷, 都統巡官侍御史內供奉崔致遠, .

 

 

 

 

해석

 

초반에 글을 짓게 된 이유

 

淮南入本國兼送詔書等使前都統巡官承務郎侍御史內供奉賜紫金魚袋臣崔致遠, 進所著雜詩賦及表奏集二十八卷, 具錄如後

회남(淮南)에서 신라에 들어오면서 조서(詔書) 등을 보내는 사신을 겸한, () 도통순관(都統巡官) 승무랑(承務郞) 시어사(侍御史) 내공봉(內供奉) () 자금어대(紫金魚袋) 신 최치원은 저술한 잡시부(雜詩賦) 및 표주집(表奏集) 28권을 올립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私試今體賦五首一卷五言七言今體詩共一百首一卷雜詩賦共三十首一卷中山覆簣集一部五卷桂苑筆耕集一部二十卷.

사시금체부(私試今體賦) 5() 1권과 오언칠언 금체시(五言七言今體詩) 1001권과 잡시부 301권과 중산복궤집(中山覆簣集)1() 5권과 계원필경집120권입니다.

 

右臣自年十二, 離家西泛, 乘桴之際, 亡父誡之曰: “十年不第進士, 則勿謂吾兒, 吾亦不謂有兒, 往矣勤哉! 無隳乃力.”

()12살부터 집을 떠나 서해에 떠서 배를 띄울 즈음에 당도해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10년에 진사로 급제하지 못한다면 내 아들이라 말하지 말고 나 또한 아들이 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니 가서 부지런히 하렴! 게을리 말고 힘써라!”라고 경계하셨습니다.

 

臣佩服嚴訓, 不敢弭忘, 懸刺無遑, 冀諧養志.

신은 엄한 가르침을 몸에 지녀 감히 잊지 않고 현두자고(懸頭刺股)함에 겨를이 없이 뜻을 기름에 합치되길 바랐습니다.

 

實得人百之己千之, 觀光六年, 金名榜尾.

실제로 남은 백 번에 하는 걸 저는 천 번을 하며 터득하여 중국에 머문지 6년만에 급제자 명단 끝에 걸게 되었습니다.

 

此時諷詠情性, 寓物名篇, 曰賦曰詩, 幾溢箱篋, 但以童子篆刻, 壯夫所慙, 及忝得魚, 皆爲棄物.

이때 정과 성을 노래하며 사물에 부친 것인 명편(名篇)을 부()라고 하기도 하고 시()라고 하기도 한 것이 거의 상자에 넘쳤지만 다만 아이가 새겨둔 것篆刻: 조충 전각(雕蟲篆刻)의 준말로, 벌레 모양이나 전서(篆書)를 새기는 것처럼, 미사여구(美辭麗句)로 문장을 꾸미기나 하는 작은 기예라는 뜻의 겸사이다. ()나라 양웅(揚雄)법언(法言)2 오자(吾子), “동자(童子)의 조충전각과 같은 일을……장부는 하지 않는다.[童子雕蟲篆刻……壯夫不爲也]”라는 말이 나온다.이나 장부가 부끄러워하는 것이라서 욕되이 물고기를 얻은 것과거 급제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나서는 그동안 예행 연습으로 지었던 시문들을 모두 폐기 처분했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외물(外物)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생각하지 않게 되고……토끼를 잡고 나면 그물을 잊게 마련이다.[得魚而忘筌……得兔而忘蹄]”라는 말이 나온다.에 이르러선 버려진 물건이라 생각했습니다.

 

尋以浪跡東都, 筆作飯囊, 遂有賦五首詩一百首, 雜詩賦三十首, 共成三篇.

얼마되지 않아 동도(東都, 洛陽)에 유랑하며 붓으로 밥주머니를 지었고 마침내 부 5, 100, 잡시부(雜詩賦) 30수가 있어 모두 세 편을 이루었습니다.

 

 

 

가까스로 20권이 되다

 

爾後調授宣州溧水縣尉, 祿厚官閒, 飽食終日, 仕優則學, 免擲寸陰, 公私所爲, 有集五卷.

그 뒤 선주(宣州) 율수 현위(溧水縣尉)에 임명되었는데, 봉록은 후하고 관직은 한가하여 배불리 먹으며 하루를 마칠 수 있었지만, 벼슬하고서 여유 있으면 배워야 한다고 짧은 시간도 던지질 않고 공적이나 사적으로 하는 것이 모아 다섯 권이 되었습니다.

 

益勵爲山之志, 爰標覆簣之名, 地號中山, 遂冠其首.

더욱이 산을 만들 뜻에 힘써 이에 삼태기를 쏟는 명성을 타나내려 중산(中山)이란 지명으로 마침내 앞에 얹었습니다.

 

及罷微秩, 從職淮南, 蒙高侍中專委筆硯.

한미한 벼슬을 그만둠에 이르러 회남(淮南)의 직분을 따라 고시중(高侍中)의 저술가의 일[筆硯]을 전담함을 입게 됐습니다.

 

軍書輻至, 竭力抵當, 四年用心, 萬有餘首, 然淘之汰之, 十無一二.

군대의 문서가 몰려들어 힘을 다해 감당하니 4년간 마음을 쓴 것이 만 여수지만 쓸 데 없는 것을 걸러내니 101~2도 없을 지경입니다.

 

敢比披沙見寶? 粗勝毁瓦畫墁, 遂勒成桂苑集二十卷.

감히 모래를 파내다가 보물을 발견한 것남조(南朝) ()나라 종영(鍾嶸)시품(詩品)1반악(潘岳)의 시는 비단을 펼쳐놓은 것처럼 찬란해서 좋지 않은 대목이 없고, 육기(陸機)의 글은 모래를 파헤치고 금을 가려내는 것과 같아서 왕왕 보배가 보인다.[潘詩爛若舒錦 無處不佳 陸文如披沙簡金 往往見寶]”라는 말이 나온다.에 비교하겠습니까?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깨진 기와나 그려진 담장보단 나으리니 마침내 계원집20권을 만들었습니다늑성일가(勒成一家): 글을 엮어 책을 만드는 것을 늑위성서(勒爲成書)’ 늑성(勒成)’이라 하고, 특색 있는 저작을 일가서(一家書)’라고 한다..

 

 

 

군막에서 이름까지 정하고 책을 내다

 

臣適當亂離, 寓食戎幕, 所謂饘於是粥於是, 輒以筆耕爲目, 仍以王韶之語, 前事可憑.

신은 마침 난리를 당해서 군막에서 우거하고 먹어 소위 여기에서 미음을 먹고 여기에서 죽을 먹는 것공자(孔子)의 선조인 정고보(正考父)의 솥[]대부 때에는 고개를 수그리고, 하경(下卿) 때에는 등을 구부리고, 상경(上卿) 때에는 몸을 굽히고서, 길 한복판을 피해 담장을 따라 빨리 걸어간다면, 아무도 나를 감히 업신여기지 못하리라. 나는 여기에 미음을 끓여 먹고 여기에 죽을 끓여 먹어 내 입에 풀칠을 하면서 살아가리라.[一命而僂 再命而傴 三命而俯 循牆而走 亦莫余敢侮 饘於是 鬻於是 以餬余口]”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春秋左氏傳 昭公7이었으니, 대번에 필경(筆耕)’이라 제목을 삼았고 따라서 왕소(王韶)의 말로 앞선 일을 증빙할 만했습니다.

 

雖則傴僂言歸, 有慙鳧雀, 旣墾旣耨, 用破情田, 自惜微勞, 冀達聖鑑, 其詩賦表狀等集二十八卷, 隨狀奉進, 謹進.

비록 몸을 구부리고 돌아옴에언귀(言歸): 돌아오다. 돌아가다. [‘은 조사(助詞)이에라는 뜻임] (=言旋) 오리와 참새 같은 이들에겐 부끄럽지만 이미 개간하고 이미 김매서 정()의 밭을 파헤쳐 스스로 작은 노력을 안타깝게 여기고 성군의 거울에 도달하길 바라기에 시()ㆍ부()ㆍ표()ㆍ장() 등 문집 28권을 소장(疏狀)을 덧붙여 받들어 진상하오니 삼가 진상합니다.

 

中和六年正月日, 前都統巡官承務郞侍御史內供奉賜紫金魚袋臣崔致遠, 狀奏.

중화(中和) 6년 정월 일에중화(中和) 6: 이는 고운(孤雲)의 착오로, 서유구(徐有榘)서문마지막 부분에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 도통순관(都統巡官) 승무랑(承務郞) 시어사(侍御史) 내공봉(內供奉) () 자금어대(紫金魚袋) 신 최치원이 소장(疏狀)을 상주(上奏)합니다.

 

桂苑筆耕集一部二十卷, 都統巡官侍御史內供奉崔致遠, .

계원필경집120권을 도통순관(都統巡官) 시어사(侍御史) 내공봉(內供奉) 최치원이 짓다.

 

 

인용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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