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서
금강산(金剛山)
송시열(宋時烈)
山與雲俱白 雲山不辨容
산여운구백 운산불변용
雲歸山獨立 一萬二千峰
운귀산독립 일만이천봉
해석
山與雲俱白 雲山不辨容 | 산과 구름 함께 하얘 구름과 산 분별하질 못했는데 |
雲歸山獨立 一萬二千峰 | 구름 걷히자 산 홀로 서있는 1만 2천 봉우리 |
해설
금강산 같은 첩첩 장관이야 천만어(千萬語)론들 설진(說盡)할 수 없거늘, 하물며 20자의 절구, 고 표주박 만한 용기로 몇 건더기나 담아 낼 수 있으랴? 이미 수많은 고래의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이 시도(試圖)해 본 면면기관(面面奇觀)의 나열은, 기껏 2ㆍ3을 건지고 7ㆍ8을 빠뜨리는, 그리하여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그 낡은 수법은 이제 그만…… 차라리 입은 다물어 두자. 중요한 건 눈!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다.
그렇다, 우선 흰구름을 장막삼아 십습비장(十襲秘藏)해두었다가, 어느 비 개고 햇살 밝은 좋은 한 때를 골라, 만이천 영봉(靈峰)의 전모대관(全貌大觀)을 극적으로 제막(除幕)하여 보이는 일이다. 그리하여 홍몽 (鴻濛)이 부판(剖判)하는 조물자(造物者)의 낙성(落成) 현장을 육안으로 보게 하는 것이다. 감흥은 각자의 것, 작자가 앞장설 일은 아니다.
이상이 이 시의 구상의 대강이었으리라.
이리하여, 작자는 오히려 다물었던 입을, 우리는 지금 그 장쾌감에 사로잡혀 아연(啞然)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동파(蘇東坡)의 ‘연강첩장도(煙江疊嶂圖)’의 일절은 다음과 같아 비슷한 구성이다.
山耶雲耶遠莫知 | 산인지 구름인지 아득하더니 |
煙空雲散山依然 | 연기ㆍ구름 흩고 나니 산은 예런듯…… |
그러나 ‘산의연(山依然)’에서는, 늘 보아 오던 산의 모습이 변함없이 그대로 거기 있었음을 확인함에 그쳤을 뿐, 본시에서처럼 황홀한 초대면의 경탄성(驚歎聲)은 들려 오지 않는다.
수사법으로는, 고저 장단의 평측법(平法)ㆍ압운법(押韻法)에 두운법(頭韻法)ㆍ반복법ㆍ연쇄법 등이 가세하여, 사슬이 맞물려 넘어가듯, 긴박한 박동감(搏動感)ㆍ호흡감을 실감케 하고 있다.
-손종섭, 『옛 시정을 더듬어』, 정신세계사, 1992년, 448~449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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