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②
일찍이 조식(曺植)이 지은 「무제(無題)」란 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雨洗山嵐盡 尖峯畵裏看 | 산안개 말끔히 비 씻어 가니 그림 같이 드러나는 뾰족 묏부리. |
歸雲低薄暮 意態自閑閑 | 저물녘 녈 구름은 낮게 깔리어 그 모습 제 절로 한가롭구나. |
비가 지나가자, 자욱하던 이내가 말끔히 걷히었다. 그래도 산허리엔 저물녘 하루 일과를 마친 구름이 귀가를 준비하고 있고, 그 위로 뾰족한 묏부리가 발묵(潑墨)의 그림처럼 새틋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바쁠 것 하나 없는 구름의 모습을 보면서 시인은 깊은 편안함에 잠겨든다. 유유자적하다.
山與雲俱白 雲山不辨容 | 산과 구름 모두 다 희고 희거니 구름인지 산인지 분간 못하네. |
雲歸山獨立 一萬二千峯 | 구름 가자 산만이 홀로 섰구나 일만이야 이천봉 금강이라네. |
송시열(宋時烈)의 「금강산(金剛山)」이다. 천인(千仞) 절벽 위에서 바윗돌을 굴리는 기상이 느껴진다. 개골(皆骨)이라 산도 희고 구름도 희다. 시인은 ‘불변용(不辨容)’의 상태에서 ‘운귀(雲歸)’로 미망(迷妄)을 걷어냄으로써 일만 이천 멧부리의 특립독행(特立獨行)을 돌올(突兀)하게 펼쳐 보인 것이다. 노산 이은상이 일찍이 금강을 노래하여, “금강이 무엇이더뇨 돌이요 물일래라. 돌이요 물일러니 안개요 구름일러라. 안개요 구름일러니 있고 없고 하더라”의 영탄을 발하였더니, 이제 고금의 솜씨가 방불함을 알겠다.
萬物變遷無定態 | 만물이 변천함은 일정함이 없나니 |
一身閒適自隨時 | 한가로이 자적하며 때를 따라 사노라. |
年來漸省經營力 | 근년 들어 사는 일은 돌보질 않고 |
長對靑山不賦詩 | 청산을 마주 보며 시도 짓질 않는다. |
이언적(李彦迪)의 「무위(無爲)」란 작품이다. 소동파(蘇東坡)는 「적벽부(赤璧賦)」에서 “대개 장차 그 변하는 것으로부터 본다면 천지는 일찍이 한 순간도 그대로 있지 못하고, 그 변치 않는 것으로부터 본다면 물(物)과 아(我)가 모두 다함이 없다[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고 했던가. 젊은 날 성취를 향한 집착과 작위하고 경영하던 마음을 훌훌 던져 버리고 자연의 변화에 몸을 맡겨 다만 일신(一身)의 한적(閒適)을 추구할 뿐이다. 청산은 말이 없으니 그를 보며 묵언(默言)의 마음을 배운다. 도학자의 구김 없는 마음자리가 잘 펼쳐져 있다. 낙천지명(樂天知命)의 높은 경계다. 활연(豁然)한 탈속(脫俗)의 경계를 맛보게 한다.
▲ 이인문, 「관수도(觀水圖)」, 18세기, 21X30cm, 개인소장.
지팡이 짚고 서서 물을 바라본다. 쉼 없이 흘러가는 저 물처럼 내 삶도 정체되지 않기를.
인용
6. 생동하는 봄풀의 뜻①
7. 생동하는 봄풀의 뜻②
8. 생동하는 봄풀의 뜻③
9. 생동하는 봄풀의 뜻④
13. 속인(俗人)과 달사(達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