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에
추일(秋日)
&
가을바람 불 적에
추풍(秋風)
서거정(徐居正)
茅齋連竹逕 秋日艶晴暉
모재연죽경 추일염청휘
果熟擎枝重 瓜寒著蔓稀
과숙경지중 과한저만희
遊蜂飛不定 閒鴨睡相依
유봉비부정 한압수상의
頗識身心靜 棲遲願不違
파식신심정 서지원불위
해석
茅齋連竹逕 秋日艶晴暉 | 초가집 대나무 길에 이어져 가을볕 곱고도 밝다네. |
果熟擎枝重 瓜寒著蔓稀 | 과일 익어 가지에 달려 있기엔 무겁고 참외 차가워 덩굴에 달린 게 드무네. |
遊蜂飛不定 閒鴨睡相依 | 놀던 벌 정처없이 날고 한가로운 오리는 서로 기대 잔다네. |
頗識身心靜 棲遲願不違 | 매우 몸과 맘의 고요함을 아노니 하릴없는 삶【서지(棲遲): 하는 일 없이 느긋하게 돌아다니며 놂】의 바람이 어긋나지 않았구나. |
해설
이 시는 가을바람을 노래한 것이다.
대나무 길에 띠풀로 지붕을 이은 서재가 있고, 때는 가을이라 곱고 맑은 햇살이 서재를 비추고 있다. 가을이라 열매는 익어 가지 위에 주렁주렁 달려 있고, 오이는 성근 덩굴 위에 매달려 있다. 겨울을 앞둔 벌은 쉴 새 없이 꿀을 모으느라 날고 있고, 이에 비해 오리는 물 위에서 한가롭게 서로를 의지한 채 졸고 있다. 이렇게 여유로운 생활을 얻었으면 그 생활을 어기지 말기를 바란다.
이 외에도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는, “세종 조에는 인재가 배출되어 일시에 뛰어난 문장 석학들이 매우 많았다. 그러나 고시(古詩)는 옛 사람에 비하면 자못 부끄러울 뿐 아니라 율시나 절구에 있어서도 놀랄 만한 것이 없었다. 다만 서거정(徐居正)의 시가 지루하다 하지만, 그래도 부섬하고 아름다워 간간이 좋은 구절도 있다. 이를테면 ‘달빛은 벌레 소리 너머 비치고, 은하는 까치 그림자 속에 흐르네’ ‘다시 한 번 난새 타고 철적을 불며, 깊은 밤 밝은 달에 강남을 찾고 싶네’와 같은 구절들은 역시 아취가 있다[英廟朝, 人才輩出, 一時文章鉅公甚多, 古詩殊愧於前人, 而律絶亦無警策, 唯徐四佳雖曰漫衍飫緩, 而舂容富艶, 時有好處, 如游蜂飛不定, 閑鴨睡相依, 月色蛩音外, 河聲鵲影中, 更欲乘鸞吹鐵笛, 夜深明月過江南等句, 亦有佳處].”라 평하고 있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65~66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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