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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9년 국토종단 - 18. 그림 같던 함평을 거닐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9년 국토종단 - 18. 그림 같던 함평을 거닐다

건방진방랑자 2021. 2. 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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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던 함평을 거닐다

 

 

드디어 이튿날 여행을 시작할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아직 덜 마른 배낭이 걱정이 되고, 눅눅한 신발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그래도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게 어딘가.

 

 

▲ 비가 그래도 그쳐서 다행이다. 이제 몸도 풀렸겠다 맘껏 걸어보자.

 

 

내가 그림 속에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조금 걷다 보니 날씨는 서서히 개어가고 있었다. 하늘은 찌푸려 있었지만 간혹 구름 사이로 햇살이 삐져나오고있었던 것이다. 구름 사이로 삐져나온 햇살은 선명한 빛줄기를 대지에 흩뿌리며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루앙 대성당이란 작품을 봤을 때의 경이로움과 비슷한 감정을 자아냈다. 모네의 작품을 보다 보면 형태가 있어서 어떤 상황이든 그 형태가 드러나는 것이 아닌, 빛에 따라, 산포(散布)되는 정도에 따라 다양한 색채와 변화무쌍한 형태가 드러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처럼 지금 보는 빛줄기도 구름의 모양에 따라 그 모양새를 달리 하며 우리 눈앞에 현현(顯現)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이런 광경을 보면서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 모네의 작품에선 빛에 따라 흐물흐물 드러나는 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은 현실을 잘 포착해 낼 때 감동적이며, 현실은 작품처럼 극적일 때 감동적이다. 그래서 우린 좋은 작품을 보다가도 사진을 보는 것 같다고 표현하며, 뭔가 되게 이상적인 광경을 보다가도 마치 그림 같다고 표현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야말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쓴 방김거사야거(訪金居士野居)라는 한시에도 나오기 때문이다. “가을구름 가득하고 온 산은 적막하며 낙엽은 소리 없이 떨어져 땅을 온통 물들였네. 다리 위에 말을 세워 돌아가는 길 물으려니. 미처 알지 못했구나, 내 몸이 이미 그림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秋雲漠漠四山空 落葉無聲滿地紅 立馬溪橋問歸路 不知身在畵圖中].”이라는 시인데, 정도전도 아주 풍광이 좋은 자연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림 속에 있다는 표현으로 썼던 것이다. 이처럼 우린 멋들어진 광경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그림 같다고 표현하고, 훌륭한 작품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사진 같다고 오래 시간동안 표현해 왔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언어의 한계가 만들어낸 아이러니한 표현의 향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순간 나도 내가 그림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고 말해야겠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어제의 빗길 도보여행과는 확연히 다른 운치가 느껴진다. 가벼운 맘으로 팔을 앞뒤로 힘차게 휘저으며 걸어간다.

 

 

▲ 구름 사이로 빠져나온 빛줄기. 정말로 그림 같다.

 

 

 

곤충의 습격, 함평에서 공포에 떨다

 

한참을 걷다가 함평으로 접어드는 길목에 있는 정자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 정자 뒤론 드넓은 벌판이 보이고 그 앞엔 민가 몇 채와 2차선 길이 있었다. 김밥을 먹고 있으니 들판에서 부는 바람이 몸을 자꾸 흔들어 댄다. 금세 땀이 식어 춥게 느껴지더라. 오래 앉아 있으려 해도 감기가 걸릴 것 같아서 밥만 먹고 바로 일어났다. 따뜻하기만 했어도 누워서 쉬었다 갈 텐데, 거기서 계속 앉아 있다간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아직은 날씨가 확 풀리지 않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별로 쉬지 못하고 계속 걷게 만든다.

함평은 나비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언젠가 가족끼리 한 번 와본 기억은 있다. 입장료가 7.000원으로 꽤 비쌌던 것 같은데, 실제로 그 금액엔 행사장 안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2.000원의 쿠폰이 들어 있으니 실제 입장료는 5.000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땐 기록을 잘 남기지 않던 때라 그저 흐릿한 잔상처럼 한 번 갔던 곳이란 느낌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내 발로 직접 걸어서 가고 있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가 함평이 아니랄까봐 곳곳에 나비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어느 언덕엔 나비 모양으로 단장을 해 놓은 곳도 있었고, 어느 언덕엔 꽤나 큰 곤충모양을 설치해 놓은 곳도 있었다. 메뚜기, 여치, 사마귀 등. 멀리에서 봤을 땐 기이한 생명체가 등장한 줄만 알고 까무러칠 뻔 했다. 하긴 작은 곤충만 봐도 깜짝 깜짝 놀라는 나니깐^^;;

 

 

▲ 여기가 함평이란 걸 언덕의 조형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함평엔 유채꽃이 지천에 있다

 

난 줄곧 23번 국도를 따라가고 있었다. 어제 1번 국도를 따라 걸었을 땐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여서 그나마 걷는 재미(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23번 국도는 고속도로처럼 4차선이고 마을을 비껴가는 도로여서 걷는 재미가 없더라. 걸으면서 느껴지는 상쾌함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차가 느리게 갈 때의 답답함만이 있다. 걸으며 마을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모습을 곁에서 음미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하지만 그 답답함도 잠시 4차선이 2차선으로 바뀌고 나선 참 좋았다. 간혹 길에 바짝 붙어 오는 차들 때문에 급하게 피해야 하는 곤혹을 치르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곁에서 볼 수 있으니 좋았다. 당연히 차도 별로 다니지 않고 바로 곁에 논도 있다. 그 푸르름에 시선을 뺐기기도 했다. 그 옆엔 유채꽃이 노란 물결을 이루며 한가득 피어 있었다. 도로와 차를 연신 보며 걷다 보니 오히려 몸과 마음은 지쳐가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유채꽃을 보며 걸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오죽했으면 라디오스타라는 영화에서 최곤이 팬들에게 몸을 날리듯이, 나도 유채꽃에게 몸을 던지고 싶었을까.

 

 

▲ 가는 곳곳에 유채꽃밭이 있었다. 최곤처럼 몸을 던지고 싶다.

 

 

한참을 가다보니 슈퍼가 있고 그 앞엔 평상이 있었다. 이미 그곳엔 할머니와 슈퍼 주인아주머니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내가 그런 것에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털썩 평상에 주저앉았더니 경계하는 듯한 눈초를 보내시더라. 낯선 사람이 앉으니 당연한 거겠지. 앉으면 그 분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웬 걸? 말은커녕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하긴 유명인사도 아닌데 유명인사라도 되는 양 착각했나 보다. 어색함 속에서 20분 정도 쉬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 유채꽃과 건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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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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